창세기

창세기 제50장 강해 - 야곱의 장례와 요셉의 죽음

chukang 2012. 3. 16. 14:54

창세기 제50장 강해 야곱의 장례와 요셉의 죽음

 

  본 장은 창세기의 마지막 장으로 1-14절은 야곱의 장례식, 15-21절은 12아들의 화목, 22-26절은 요셉의 죽음에 대한 내용입니다. 하나님께 택함은 받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인 야곱과 그의 12아들들의 애굽 생활 중에 야곱을 이어 요셉까지의 죽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야곱의 죽음에 형제들은 혹시나 요셉이 과거 자신들의 악행에 대한 앙갚음을 두려워하고 있으나, 요셉은 그들을 이미 용서했음을 밝히면서 형제들이 서로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른 형제들의 기록은 없으나 요셉의 마지막 생의 부분들과 죽음에 대하여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1,2: 요셉이 아비 얼굴에 구푸려 울며 입 맞추고, 그 수종 의사에게 명하여 향 재료로 아비의 몸에 넣게 하매 의사가 이스라엘에게 그대로 하되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각별한 사랑을 받은 요셉은 아버지의 죽음에 자연스럽게 애곡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의 슬픔은 누구보다 깊었을 것입니다. 눈물은 인간의 가장 순수한 감정의 표현으로 사랑을 아는 자만이 흘릴 수 있습니다. 요셉은 슬픔에만 빠져 있을 수 없었습니다. 수종의사를 통하여 애굽의 전통적 관례에 준하여 장례를 준비하게 됩니다. 수종의사는 요셉을 시중드는 주치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총리의 주치의이므로 매우 이름난 의사였을 것이고, 이 의사가 야곱이 병들어 침상에 누웠을 때부터 줄곧 수종을 들어 왔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향 재료는 부패를 방지하는 방부제로, 시체가 부패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사용하는 몰약과 같은 것으로 보입니다. 몸에 향 재료를 넣었다는 것은 몸을 미라로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애굽에서는 일찍부터 왕족이나 귀족이 죽으면 그 시체를 썩히지 않고 영원히 보존하기 위한 목적으로 미라를 만드는 기술이 발달되어 있었습니다(46:11).

 

3: 사십 일이 걸렸으니 향 재료를 넣는 데는 이 날수가 걸림이며 애굽 사람들은 칠십 일 동안 그를 위하여 곡하였더라.

  미라를 만드는 일이 얼마나 정교하고 공이 많이 드는지를 짐작케 합니다. 무려 40일 동안이나 걸려서 미라를 만든 것입니다. 신분이 높을수록 미라를 만드는 데 더 힘이 들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합니다. 요셉의 신분에 비추어 볼 때 이 정도의 시간은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야곱)의 장례는 70일 장으로 성대하게 치러졌습니다. 더운 열대 지방임에도 불구하고 고도로 발달된 미라 기술 덕택에 시체는 70일이 지나도 상하게 않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장례가 국장으로 70일 만에 치러진 것을 보면 당시 요셉이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인정을 받고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4-6: 곡하는 기간이 지나매 요셉이 바로의 궁에 말하여 가로되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청컨대 바로의 귀에 고하기를, 우리 아버지가 나로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내가 죽거든 가나안 땅에 내가 파서 둔 묘실에 나를 장사하라 하였나니 나로 올라가서 압지를 장사하게 하소서 내가 다시 오리이다 하라 하였더니, 바로가 가로되 그가 네게 시킨 맹세대로 올라가서 네 아비를 장사하라.

  요셉은 야곱이 임종 직전에 특별히 당부한대로 그의 관을 가나안으로 가져가서 장사하고자 한다는 것을 알리게 했습니다. 직접 말하지 않고 제3자를 통해 고한 이유는 당시 상중이었으므로, 관습상 상중에는 왕 앞에 나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과, 애굽 관습상 왕 앞에 나아갈 때는 수염을 깎고 의복을 단정해 해야 되는데 요셉은 상중이라 그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요셉은 애굽의 총리였으므로 이스라엘의 장례는 국장으로 성대히 치러지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애굽 국경을 넘어 가나안 땅에 장사 지내기 위해서는 왕의 허락이 있어야 했습니다.

 

7-9: 요셉이 자기 아비를 장사하러 올라가니 바로의 모든 신하와 바로 궁의 장로들과 애굽 땅의 모든 장로와 요셉의 온 집과 그 형제들과 그 아비의 집이 그와 함께 올라가고 그들의 어린 아이들과 양떼와 소떼만 고센 땅에 남겼으며, 병거와 기병이 요셉을 따라 올라가니 그 때가 심히 컸더라.

  애굽의 모든 신하와 바로 궁의 장로들, 애굽 땅의 모든 장로까지 가나안으로 함께 장례를 치르러 간 것을 볼 때에 국장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장례식이 얼마나 성대했는지를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장로라는 말은 국가 지도자들을 뜻합니다. 장례기간만 긴 것이 아니라 장례식 참여자의 수적인 면에서도 대규모였습니다. 왕은 총리대신의 직위와 명예를 존중하여 병거와 기병까지 동원시키기도 할 만큼, 요셉이 애굽 내에서 왕과 관료들과 국민들로부터 신망과 존경을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10,11: 그들이 요단 강 건너편 아닷 타작마당에 이르러 거기서 크게 호곡하고 애통하며 요셉이 아비를 위하여 칠 일 동안 애곡하였더니 그 땅 거민 가나안 백성들이 아닷 마당의 애통을 보고 가로되 이는 애굽 사람의 큰 애통이라 하였으므로 그 땅 이름을 아벨미스라임이라 하였으니 곧 요단강 건너편이더라.

  타작마당은 곡식을 타작하기 위해 둥그런 모양으로 땅을 평평하고 단단하게 만들어 놓은 마당입니다. 이런 타작마당들이 몇 개씩 인접해 있어서 대규모 타작이나 집단 타작에 유리하도록 만들어 놓았다고 합니다. 따라서 넓은 마당에 요셉 일행이 머물며 애곡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호곡은 슬픔에 젖어 가슴을 치며 먼지와 티끌을 머리에 흩뿌리고 소리를 내어 우는 것입니다. ‘아벨평원, 목초지라는 뜻이며, ‘미스라임은 애굽 인을 뜻합니다. 따라서 아벨미스라임은 애굽인의 평원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12-14: 야곱의 아들들이 부명(父命)을 좇아 행하여 그를 가나안 땅으로 매어다가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헷 족속 에브론에게 밭과 함께 사서 소유 매장지로 삼은 곳이더라. 요셉이 아비를 장사한 후에 자기 형제와 호상군(護喪軍)과 함께 애굽으로 돌아왔더라.

  야곱은 살아 있을 때에 자신이 죽으면 애굽에 장사하지 말고 가나안 땅 막벨라 굴에 장사하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47:29-31). 그리고 장례는 그의 유언대로 치러졌습니다. 야곱이 부귀와 영화를 누리던 애굽을 마다하고 가나안 땅에 장사되기를 원했던 것은, 가나안이 이스라엘 후손의 안식처가 되리라는 하나님의 언약(15:12-21;46:1-7)을 철저히 믿었기 때문입니다. 호상군은 이스라엘의 장례 행렬의 호위를 위하여 바로가 특별히 동행시켰던 애굽 군대입니다. 일반적으로 호상군이라 함은 장례식에 참여한 유족들과 참여객과 군대를 통칭하는 말이라고 하겠습니다.

 

15: 요셉의 형제들이 그 아비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요셉의 형제들에게 근심거리가 생겼는데, 그것은 요셉이 아버지 야곱이 살아있을 때에는 자신들을 용서하는 것처럼 하였다가, 이제 죽었으니 미워하여적의를 품고 지난날 자신들의 죄 값(37:12-14)

을 물으면 어떻게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16,17: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가로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다 하라 하셨나니 당신의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의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요셉의 형제들의 자신의 할 말을 요셉에게 직접 하지 못하고 형제들 중 대표자나 다른 사람을 대신 보내어 했습니다. 이는 그들이 자신들이 과거에 저질렀던 일과 그에 대한 보복을 얼마나 둘려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들은 아버지 야곱이 살아있을 때에 자신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고 말했다고 하지만 성경에는 그런 말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뒤늦게 자식들 간의 과거를 알아낸 이스라엘이 이런 유언을 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어떤 자식보다 요셉을 가까이 하고, 요셉 앞에서 유언을 남겼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완전한 용서를 요셉으로 받기 위해서 당신의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자신들이 조상대대로 믿는 선민이며 언약 백성의 후손임을 강조하여,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는 요셉으로부터 자비를 받기를 원한 것입니다. 이런 형제들의 간청에 요셉은 울고 말았습니다. 이 울음에는 두 가지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미 형들을 용서했음에도 불구하고(45:4-8) 여전히 형들이 두려워하고 있는 것에서 오는 상호불신에 대한 슬픔 때문이며, 또 하나는 화해 간청의 말을 듣는 순간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슬픔이 되살아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18: 그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가로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

  형제들은 요셉이 눈물을 흘렸다는 회신을 받은 후에는 두려움을 버리고 친히 찾아 갔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종이라고 합니다. 이는 또 한 번 요셉의 꿈(37:5-11)이 성취되는 순간입니다. 종이 되겠다는 표현은 정말로 종이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용서를 바라는 간절한 애원의 표현입니다. 이는 공식적으로 자신들의 죄를 자복하고 용서를 비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도들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에 대한 분명한 자복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용서의 하나님이시지만(53:6) 스스로 뉘우치지 않는 죄까지를 일방적으로 용사하지는 않습니다(15:15-20; 베전 2:25).

 

19-21: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요셉은 형들에게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대신하여 벌을 내릴 수 있겠습니까?”라는 말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설리(45:5-9)에 의한 것임을 확신하기 때문에 결코 자신이 벌을 내릴 수 없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자신의 모든 것이 주의 의로운 손길에 의해 이뤄진 것임을 믿을 때에는 어떤 경우에도 실족하지 않고 범죄하지 않습니다(1:21). 그러니 비록 당신들은 나를 해하고자 하는 악을 행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악을 선으로 바꾸셔서, 아버지 야곱과 당신들 모두를 구원하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결코 두려워하지 말라고 오히려 위로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으로 되돌려 주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참 사랑과 은혜를 체험한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22,23: 요셉이 그 아비의 가족과 함께 애굽에 거하여 일백 십 세를 살며, 에브라임의 자손 삼 대를 보았으며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아들들도 요셉의 슬하에서 양육되었더라.

  요셉은 아비 이스라엘이 죽은 후 56년을 더 살았습니다. 요셉은 아브라함의 175, 이삭의 180, 이스라엘의 147세에 비하여 짧은 생애를 살았습니다. 그러나 110세를 향유하며 고손자까지 보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요셉은 그가 31세에 결혼하여 37세경에 이미 두 아들을 보았고(41:50) 56-60세경에 손자를, 78-85세 경에 증손자를, 그리고 100-110세경에 고손자를 보았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마길은 므낫세가 아람 여인을 첩으로 두어 얻은 아들입니다(대상 7:14), 또한 마길은 갈르앗, 베레스, 세레스 등의 아들을 낳았습니다(대상 7:14,16). 이들까지도 요셉이 양육했다는 것은, 비록 첩의 소생임에도 불구하고 귀여워했다는 것은 요셉의 자애로운 성품을 밝히는 것입니다.

 

24: 요셉이 그 형제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이 말은 자신의 능력과 생명의 유한함을 깨닫고 있으며 생명의 주관자는 하나님께 달려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역사는 결코 실패하지 않고 영속적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권고는 방문하고 또 방문한다는 뜻으로 늘 관심을 가지고 돌보아 주시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관심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심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아브라함의 후손이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삼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약속은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영원히 계승될 것입니다. 비록 요셉 자신의 때에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반드시 장래에는 이루어질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25: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정녕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요셉도 야곱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시신이 애굽이 아닌 가나안 땅에 묻히기를 소원하였습니다. 애굽은 자신이 평생을 살아온 땅이며 부귀와 영화가 보장된 땅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나안을 그리워한 것은 바로 언약을 철저하게 신뢰하는 믿음 때문입니다.(11:22) 요셉의 사망 후(B.C. 1805년경) 그 유해는 곧바로 가나안에 장사되지는 못했지만, 360년 후에 출애굽하는 후손들에 의해 가나안 땅에 안치 되었습니다(24:32).

 

26: 요셉이 일백 십 세에 죽으며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요셉의 몸에 향 재료를 넣는 것은 미라로 만드는 과정입니다. 이로써 족장시대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구속사적인 측면에서 제1단원이 막을 내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출애굽기에서 다시 언약에 따라 가나안으로 복귀하는 제2단원의 막이 오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