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 쉬운 성경 말씀

주님 닮아가기

chukang 2009. 11. 29.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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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닮아가기 에베소서 4:1-16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같은 모든 종류는 서로 좇아간다는 뜻입니다. 쉽게 말하면 “끼리끼리 모인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각 개인의 성격을 보면 그가 속해 있는 단체의 성격을 알 수가 있게 됩니다. 반대로 어떤 단체의 성격을 보면 그 단체에 속한 구성원들의 성격을 알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친구라는 작은 단위부터 동아리, 정당 등을 봐도 알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또 어떤 가정에서는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살펴보면, 가족 구성원 대부분이 같은 것을 좋아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떤 가정은 여행을 좋아하고, 어떤 가정은 운동을 좋아 합니다. 어떤 가정은 책 읽는 것을 좋아 합니다. 한 울타리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그 생각하는 것이나 취미 활동 등이 같거나 비슷한 것을 보게 됩니다. 물론 그 중에는 완전히 다른 취향을 보이는 경우도 간혹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비슷한 특징을 보이게 됩니다.

친구들이 모두 농구를 좋아하기 때문에 모이면 농구를 합니다. 그 중에 한 친구는 농구보다는 축구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늘 축구를 하지 않는다고 불평을 합니다. 그러면 그 축구 좋아하는 친구는 농구를 좋아하는 친국들 사이에 낄 수가 없고, 축구를 좋아하는 친구들을 찾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한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성도들입니다. 한 성령의 인도를 받고 있습니다. 통일성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교회는 기도할 때 보면 큰 소리를 외치기를 좋아하는 경향을 보이는가 하면, 또 어떤 교회는 조용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어떤 교회는 은사를 내세우고, 또 어떤 교회는 오직 성경 말씀만을 위주로 하는 교회도 있는 것입니다.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하냐고 하는 교회도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살펴보면 ‘하나’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몸이 하나입니다. 몸은 그리스도의 신비의 몸, 즉 우주적인 영적인 교회를 가리킵니다(롬 12:5; 고전 10:17). 그리스도의 몸이 교회가 하나 되는 것은 한 성령에 의해 구원을 받은 성도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성령이 하나입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된 것입니다(고전 12:13). 그리고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다고 하였습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하나님의 부르심의 궁극적인 목적에 있어서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천국 즉 구원이라는 한 가지 소망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즉 교회나 성도는 구원이라는 한 가지 소망으로 일치하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는 주님이 하나입니다. 우리의 구주되시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입니다. 다른 그 어떤 존재도 우리에게 구주가 될 수 없습니다. 넷째는 세례가 하나입니다.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시므로 그 분에 대한 믿음과 세례도 하나인 것은 당연합니다. 믿음이 주님께 대한 내적이고 실제적인 것이라면 세례는 내적 믿음의 외적인 표현이며 상징적인 거이므로, 한 대상에 대한 믿음과 세례는 하나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이러한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공적으로 알리고 고백했으므로 그들의 믿음이 하나인 것 같이 세례도 하나인 것입니다. 세례는 성도 각자가 그리스도의 몸과 연합되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했음을 나타내는 외적인 표징입니다. 다섯째는 하나님이 하나입니다. 만유의 아버지로서의 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유일성은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 신앙으로부터 내려온 신앙의 유산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만물의 창조주이시라는 신앙에서 시작이 됩니다.

이렇게 하나라고 하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모든 성도는 하나님 안에서 하나임을 말하기 위하여, 교회의 성도가 하나라고 하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은 왜 교회 안의 모든 성도가 하나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일까요?

7절을 보면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은혜(카리스)는 하나님께서 모든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구원의 은혜’(엡 2:5, 8)와는 달리 ‘은사’(카리스마)의 의미로 쓰였습니다. 즉 구원의 은혜는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들에게 차별이 없이 주어지지만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하여 각 성도에게 주시는 은사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은사에 관해서는 고린도전서 12:4-31에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은사의 분량에 따라 각 직분자들을 세우신 것은 교회의 일치와 영적 성숙 및 교회의 사명 수행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므로, 이러한 직분자들 간에 유기적인 연합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신 본문 말씀에 나오는 직분자들은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가 있습니다. 사도(아포스톨로스)는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신약 성경에서는 이 사도라는 말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사용이 되어 그리스도의 대사요 증인으로서 세상에 파송되는 것을 의미한 말입니다(요 13:16; 17:18; 20:21). 또 교회의 사도들로서 교회의 사명을 맡아 교회에 의하여 파송된 자들을 가리키기도 합니다(고후 8:23; 빌 2:25) 또한 그리스도의 사도들로서 예수님의 12제자와 바울과 주의 형제 야고보를 포함한 무리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행 1:21, 22; 10:40-44; 고전 9:1; 15:8-9). 여기에는 주님의 제자들과 주님 승천 후에 사도와 같은 역할을 감당한 사람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선지자는 구약 시대에서는 하나님의 대변자요 직접적인 계시의 전달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에서는 사도들과 함께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그들은 때로는 미래를 예견하기도 했습니다(행 11:28; 21:9,11). 또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함으로써 인간들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도록 하기도 하고(고전 14:24), 훈계의 말씀으로 교회에 새로운 힘을 더하여 주기도 했습니다(행 15:32). 신약의 선지자의 직분은 사도직과 마찬가지로 한정된 직분으로 교회가 굳게 서가고 성경의 기록이 완성되면서 곧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유다와 실라(행 15:32)를 비롯하여 빌립의 네 딸(행 21:9) 등은 초대 교회의 이름난 선지자들입니다. 구약 시대에서는 선지자들이 종교 생활을 주도하였으나, 신약 시대에서는 사도들이 주도권을 갖고 있었습니다.

복음 전하는 자는 사도들 밑에서 각지를 순회하면서 전도하는 것입니다. 빌립은 전도자로 불리웠고(행 21:8) 디모데는 전도인의 일을 하라는 사도 바울의 교훈을 받았습니다(딤후 4:5).

목사와 교사가 있는데, 목사는(포이멘) 목자라는 뜻입니다. 즉 목자장이신 그리스도(히 13:20; 벧전 2:25; 5:4)의 양무리를 맡아 영적 양식을 먹이고 그들을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직분을 뜻합니다. 그리고 교사(디다스칼로스)는 가르친다는 말에서 유래하였는데 거의 목사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학자는 신약 시대 초대 교회에서 목사와 교사는 한 직분이나, 목사는 직분에 관점에서, 교사는 목사가 갖는 직무의 한 측면에서 가르치는 일을 하는 것과 관련하여 기록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교회에 은사를 주셔서 직분자들을 세우셨을까요?

1. 성도를 온전케 하기 위함입니다.

주님께서 교회에 직분자를 세우신 첫 번째 목적입니다. 온전케 한다는 것은 완전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완성품으로 만드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완성품이 되어지기 위해서 준비하고, 연단을 받고, 훈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 직분자는 성도들을 말씀으로 가르치고 양육하여 영적으로 성숙해지도록 하기 위해 세움을 받은 것입니다.

2. 봉사의 일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봉사(디아코니아)는 하인, 봉사자, 집사에서 유래한 말로 섬기는 것, 원조하는 것, 집사직의 뜻이 있습니다. 즉 교회의 직분자는 온전케 된 성도들로 하여금 교회의 일치를 위하여 섬기는 일을 감당할 수 있게 도와주도록 세움을 받은 것입니다.

3.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입니다.

이것은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도들을 말씀으로 양육하고 그들로 하여금 봉사의 일을 하게 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그의 몸 된 교회를 세워나가게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도록 하기 위해 직분자를 세우신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설명한 내용이 바로 13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이 말씀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워나가는데 있어서 교회 직분자들이 힘써야 할 과제를 말합니다. 아는 것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주님에 대한 교리적 지식뿐만 아니라 깊은 교제를 통한 인격적인 앎을 의미합니다. 성도 간에 신앙의 일치를 이루는 기본 조건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일치해야 합니다. 이 지식이 일치하지 못할 때 교회는 분열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을 바로 알게 될 때에 ‘온전한 사람’이 될 수가 있습니다. 즉 충분히 성장한 성도가 된다는 것입니다. 온전한 사람은 곧 장성한 사람입니다. 어린 아이의 신앙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모든 성도가 주님께 대한 신앙과 지식으로 하나가 되어 ‘한 새 사람’으로 변화되어지는 것이 바로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한 새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 새롭게 된 사람들의 연합체인 ‘새로운 인류’ 즉 우주적인 교회를 의미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 안에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여자나 남자나 종이나 자유자나 모두 다 하나이며, 이 모든 사람이 한 몸 안에 즉 주님 안에서 모이는 것을 가리켜 우주적인 교회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면 최종적으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성도 각 개인과 교회의 영적 성숙의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주님께 대한 신앙과 지식이 온전한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어린 아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온전한 사람과 대조되는 개념으로 영적으로 미성숙한 사람입니다. 이런 어린아이는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넘어가기 쉽습니다. 마귀의 간교한 술책에 넘어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한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 선생도 믿음이 없는 사람을 가리켜 ‘바람이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성도들이 영적으로 미성숙하여 거짓 교사들의 교훈에 흔들리고 놀아나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직분자를 세워 성도를 양육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이 어린아이에서 벗어나서 장성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온전한 믿음의 성도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런 성도가 되어서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사랑과 진리(참된 것)는 항상 동반합니다. 진리를 떠난 사랑이 있을 수 없고, 사랑 안에 있지 않은 진리를 행하는 것은 잇을 수가 없습니다. 즉 진리와 사랑은 신앙의 기본 요소이며 교회의 기초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사랑과 진리를 실천하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하신 사랑과 진리에 이르는 것입니다.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시에 복종하여 따름으로 교회는 그리스도를 점점 닮아가며 성숙하여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가 되는 교회의 모습을 16절에서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몸의 각 구성 마디마디가 연결됨으로 성장과 진정한 기능이 가능한 것을 교회에 비유하여 성도들이 서로 연합하여 하나를 이루어 주님의 지시에 온전히 순종할 때 교회가 성장하고, 그 본래의 기능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엡 2:21,22을 보면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각 개인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였습니다(고전 3:11). 그리스도를 모퉁이 돌로 하여 온 우주적 교회를 세워나가는 것입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성전이라는 것은 곧 마디를 의미합니다. 마디마디가 연결해야 큰 성전을 이루게 됩니다. 주님 안에서 서로 연합하여 통일 되어야 합니다. 주님 안에서 영적인 연합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가리켜 우주적 교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일치를 강조한다고 하여 각 개인의 은사나 역량을 무시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직분과 은사가 다양하지만, 성도들이 각자가 맡은 바를 하나님의 능력에 힘입어 분수대로 감당해 나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모든 각자 개인들이 강건해져야만 교회도 강건해 질 수가 있습니다. 개인의 성장이 없이는 교회의 성장도 없는 것입니다. 몸이 머리의 통제 아래 협력하여 성장하듯이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그의 사랑 안에서 각자 맡은 바 직분에 충실함으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까지 교회를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모든 내용들을 쉽게 정리해 보면 우리는 주님을 닮아갈 때에 비로소 온전한 사람으로 장성 할 수가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주님 안에서 사랑과 진리로 서로 한 마음 한 뜻으로 하나가 되어야 만이 성전이 지어져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이렇게 되는 것을 너무나 싫어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하게 방해를 하고, 서로 하나가 되지 못하게 하는 온갖 방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알지 못하고 내 생각과 다르면 정죄하고, 자기 자신에게는 관대한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네가 제일 잘났다고 속삭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거기에 넘어가서 교만해집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네가 가장 못났고, 네가 가장 연약하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에 동의할 때에 주님께서는 자신의 능력을 우리에게 부어주셔서 강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겸손으로 말씀에 순종할 때에 주님의 강한 능력의 도움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이런 성도가 어린 아이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닮아가는 것은 곧 주님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깨닫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명하신 것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어떠하든지 나부터 주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님을 닮아갈 때에 성도가 교회 안에서 하나가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런 교회는 영적으로 강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는 온전한 모습으로 성장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을 닮아 교회를 바로 세우고 성장시키는 가운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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