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 갇혀서 사도행전 12:1-19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성령 강림으로 인하여 12사도를 비롯한 제자들이 큰 능력을 받고 전도하는 가운데 교회는 크게 부흥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예수님을 죽이는 주체 세력이었던 제사장들까지도 기독교로 개종하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제사장이 8천명에 이르렀는데 이들 중에서 많은 제사장들이 주님을 영접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이런 모습을 그대로 두고 볼 리가 없겠죠? 마귀는 사울이라는 아주 유능한 청년을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울은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믿는 자들을 핍박하기 시작했고, 그 절정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교회의 초대 7곱 집사 가운데 한 명인 ‘스데반’을 잡아서 돌로 쳐서 죽게 만드는 것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사울이 회심하게 되고 교회에 대한 핍박이 잠시 주춤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귀의 주목적은 어떻게 해서든지 주님의 역사를 훼방하는데 있었으므로, 이번에는 ‘헤롯’왕(헤롯 아그립바 1세로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에 왕이었던 헤롯 대왕의 손자)을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명령을 내려 기독교인의 박해를 진두지휘했습니다.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유대인이 싫어하는 기독교 공동체에 결정적 타격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즉 교회의 지도자들을 제거하려고 시도했는데, 그 중에서 야고보가 순교를 당하고, 베드로는 감옥에 갇히는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야고보는 베드로 요한과 더불어 주님의 3대 제자로 손꼽히기도 했습니다. 요한 사도와는 형제입니다. 이러한 헤롯왕의 처세술은 성공하여 유대인들이 기뻐하게 만들었습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서 베드로까지 체포하여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베드로는 유대 종교지도자들에 의해서 두 번 투옥 당하였고(행 4:3; 5:18) 이번이 세 번째 감옥에 갇히게 되는 것입니다. 헤롯은 베드로를 잡아 가두고 군졸들에게 지키게 하였는데, 군졸들은 4명이 1조로 4개조로 구성이 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네 명 중에서 2명은 베드로와 같이 쇠사슬에 매여져 양 곁에서 수비를 하였습니다(6절). 나머지 두 명은 옥문 밖에서 1차, 2차 파수를 했습니다. 이렇게 삼엄한 경비를 한 것은 그만큼 베드로에 대한 비중을 높게 두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헤롯은 베드로만 처치할 수 있다면 보다 확고한 유대인의 지지를 얻어 정권을 강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베드로가 그만큼 예루살렘 교회의 중요한 지도자였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만찬 후에 잡히시고 그 다음 날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헤롯은 베드로를 유월절이 지난 후에 백성 앞에 끌어내어서 재판을 하려고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에게 판결권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헤롯은 그들을 만족시키려고 하는 고도의 정치적 술수를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투옥이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에 교회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예루살렘 교회는 물론 유대 지방의 모든 교회와 기독교 공동체 모두가 하나님께 간절히 빌었습니다. 교회는 베드로를 위해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사랑과 믿음 안에서 일치단결하여 옥에 갇혀 고생하는 하나님의 일꾼인 베드로의 안전과 출옥을 위해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교회가 환난을 당한 중에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가운데 자신들에게 닥친 고난과 핍박을 이겨나갈 수 있도록 사랑과 믿음 안에 똘똘 뭉쳐서 행동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한 당시 핵심 지도자인 베드로를 잃는다는 것은 교회에 치명적인 타격이 될 것이므로, 성도들은 하나님께 간절히 무릎을 꿇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상황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셨을까요? 베드로는 유월전 전에 잡혔을 것이고(4절) 무교절 명절이 끝나는 때까지 감옥에서 쇠사슬에 매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헤롯은 명절이 끝난 직후에 그를 끌어내어 재판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명절날 밤입니다. 베드로는 여전히 두 명의 병사와 함께 쇠사슬에 묶인 채로 있었습니다. 즉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탈출을 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훗날 바울은 로마에서 한 군사에 의해 지켜졌으나(행 28:16) 베드로는 중죄인으로 취급이 되어 이처럼 두 군사에 의해 두 쇠사슬에 매어 있었습니다. 베드로의 상태는 어땠을까요? 그는 누워서 자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두 가지의 가정을 할 수 있게 합니다. 첫째 가정은 감옥 생활이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지쳐 잠이 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 가정은 믿음 가운데 마음이 평안해서 잠을 자고 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가정이든지 베드로는 탈출할 여건도 되지 않았고, 그럴 마음도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겠죠. 4명의 파수병 중 두 사람은 죄수와 함께 매여 있었고, 두 사람은 옥 밖에서 지켰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여기에는 베드로가 당분간 감옥에서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교회는 베드로를 위하여 기도할 수밖에 없는 시간들을 만들어 주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가 힘들고 어려운 시간들을 지내는 것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는 것이며, 또한 기도할 시간을 주시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천사가 나타날 때에 ‘옥중에 광채가 조요하며’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조요라는 말은 빛이 비추어 빛이 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 때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천사는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서 깨웠습니다. 베드로는 이런 고난과 고통 중에서도 깊이 잠이 들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깊이 잠들었기 때문에 베드로를 세게 쳤습니다. 그리고 급히 일어나라고 했습니다. 그 순간 베드로에게 묶었던 쇠사슬이 풀어졌습니다. 할렐루야! 이처럼 인간들의 완벽한 억압 도구도 하나님 앞에서는 한낱 실보다도 못한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진노에 손길에 빠지는 것이지 인간의 박해가 아닌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천사가 ‘띠를 띠고 신을 들메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까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합니다. 병사들이 베드로의 겉옷을 벗기고 신도 벗겨 놓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천사를 따라가는데, 이것인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가 없는 그런 멍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천사는 베드로를 이끌어 감옥에서 나와서 성으로 통한 쇠문에 이르렀고, 이때에 쇠문은 저절로 열려졌습니다. 그리고 천사는 떠나갔습니다. 그제서야 베드로는 정신을 차리고 주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구원해 주신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마가라고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갔습니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기도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베드로는 대문을 두드리고 로데라는 여자 아이가 나와서 보니 베드로의 음성이 들리므로 너무나 기뻐서 문을 열어주는 것도 잊어버리고 다시 달려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베드로가 대문 밖에 있다는 것을 알렸습니다. 사람들은 이 여자아이의 말을 믿고 않고 미쳤다고 합니다. 어떻게 감옥에 갇혀 있는 베드로가 나타날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어쩌면 베드로의 천사라고 하였습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상화입니다. 베드로는 계속해서 문을 두드렸습니다.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니 사람들이 나와서 문을 열어보니 정말로 베드로가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들을 조용하게 하고 감옥에서 나오게 된 경위를 자세하게 말을 한 후에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전하게 한 후에 다른 곳으로 떠나갔습니다.
한편 감옥에서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날이 샐 때까지 아무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베드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감옥 주변은 온통 아수라장이 되엇을 것입니다. 이 날은 헤롯이 베드로를 군중 앞에 끌어내려고 계획한 날이었으므로, 죄가 없어졌으니 헤롯은 화가 났겠죠. 파숫군들을 심문한 후에 죽이게 하였습니다. 당시에 로마법에는 중대한 죄수를 파수병이 지키지 못하면 그 파수병을 대신 사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빌립보 감옥의 간수가 바울이 도망한 것으로 여겼을 때에 자결하려 했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행 16:27). 헤롯 왕은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거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당시 헤롯 왕은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알 수가 없으나, 그들이 유대에서 식량을 수입해 갔으므로 화해를 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날을 택하여서 백성들 앞에 왕복을 입고 나갔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헤롯은 은으로 장식된 옷을 입고 반원형 경기자의 귀빈석에 앉았는데, 그 옷이 햇빛에 반사되어 군중들이 그를 바라볼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날은 로마 황제 글라우디오(행 18:2)가 영국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돌아 온 것을 축하하기 위해 열린 경기일의 둘째 날이자 황제의 생일인 8월 1일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헤롯이 가이사랴로 내려간 이유는 그 경기를 준비하기 위함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날을 택하여 두로와 시돈과의 화해의 날로 삼았을 가능성이 많은 것입니다.
헤롯은 백성을 효유하였다고 했습니다. 즉 보좌에 앉아서 백성들에게 연설을 하였습니다. 이 연설은 ‘효유’ 즉 알아듣게 타이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두로와 시돈의 사절단과 무리들에게 앞으로 유대와 우호관계를 유지할 것을 권면하였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런 연설을 들을 때에 백성들은 ‘신의 소리’라고 했습니다. 아첨꾼들의 극한 아첨입니다. 당시 이방 세계, 특히 헬라 문명권에서는 왕이나 영웅을 신격화해서 부르는 관습이 있었는데(행 14:11; 28:6), 유대 백성들의 입에서도 그런 이교적 언사가 헤롯에게 행해졌습니다.
만일 이 행사가 유대와 두로와 시돈의 사절들과 호해 조약 체결 행사였다면 이러한 말을 한 자들이 두로와 시돈의 사람들이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날이 로마 황제의 승리를 기념하는 축제일이었다면, 유대인들도 상당수가 있었을 것이며, 아첨꾼들의 말이 아닌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불경스러운 말을 한 것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유대 백성들은 불경하다는 죄목으로 예수님과 스데반을 죽이고도 지금 자신들 스스로 불경죄를 저지르는 극악한 모순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즉 근본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되이 여겼을 때에 신성모독죄를 범했다고 정죄한 유대인들이 이번에는 도리어 한낱 피조물에 불과한 헤롯을 신의 위치까지 격상시키므로서 십계명 중 1,2 계명을 어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헤롯은 이 말을 듣고 당연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헤롯은 피조물을 신격화하는 불경죄를 거절하거나 꾸짖지 아니하고 이방인처럼 그것을 오히려 받아들이고 교만하게 마치 자신이 진짜 신이 된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고넬료가 베드로를 맞이하여 엎드려 절했을 때에 베드로는 그를 일으켜 세우면서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행 10:26)고 말한 것이나, 루스드라 사람들이 이적을 행한 바울과 바나바를 신이라 칭하였을 때 저들을 만류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행 14:8-18)과는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주의 사자가 헤롯을 쳤습니다. 헤롯을 충이 먹고 죽었습니다. 이 때의 병이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경죄를 저지른 헤롯이 심판을 받아 죽었다는 것입니다. 외경 마카비서에 의하면 헤롯은 배에서 벌레가 나고 그로 인해 악취가 날 정도로 몸이 썩어 들어가다가 죽었다고 합니다(마카비 2서 9:9). 헤롯이 죽고 교회는 안정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교회가 흥왕하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알 수가 있는 것은
1. 간절하게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이 베드로를 구출할 때에 많은 사람들이 동원이 되어 감옥을 부수고 구출했나요? 그들은 다만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모여 간절히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이 기도는 그 어떤 무력으로도 할 수 없었던 베드로의 쇠사슬을 풀었고, 옥문을 열었고, 성문까지 열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의 힘입니다. 그 어떤 무력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간절한 기도는 해결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간혹 성도들은 이런 일이 있을 때에 기도하지 않고 오히려 좌절하고 시험에 들고 기도하지 않는 모습을 보입니다. 세상의 모든 칼과 권세를 이겨낼 수 있는 성도들의 가장 큰 무기가 바로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간절한 기도인 줄로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2. 합심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기도하되 어떻게 했습니까? 온 교회가 합심으로 기도했습니다. 전교우들이 마음을 모아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헤롯이 왜 야고보를 살해하고 베드로를 투옥했을 것 같습니까? 지도자 몇 사람만 처치하고 나면 나머지는 저절로 흩어지리라는 계산된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왜요? 초대 교회 성도들은 핍박으로 말미암아 더욱 똘똘 뭉쳐서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시험이 닥쳐올수록 성도는 마음을 하나로 모아야 합니다. 가족과 친척과 이웃 성도들도 모두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성도들의 합심 기도는 세상의 그 어떤 막강한 위력도 능히 물리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3.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베드로가 자기들의 눈앞에 나타날 때까지 기도했습니다. 말하자면 기도가 응답될 때까지 하나님께 매어달리며 기도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기도의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성도들이 기도하면서도 왜 환난을 이겨내지 못하는 줄 아십니까? 조금 기도하고 낙심하고 또 조금 기도하고 하기 현실을 한탄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자세로는 결코 기도 응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아울러 작은 어려움도 쉽게 이겨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기도를 해도 처음과 똑같은 열정과 믿음으로 응답을 받을 때까지 끝까지 해야 하는 것입니다.(왕하 5:14).
4. 하나님의 계획을 깨달았습니다.
베드로가 잡히고 감옥에 갇힐 때에 인간적인 생각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지할 때에 천사를 통하여 그를 구출해 주셨습니다. 천사가 구해 줄 때에는 마치 꿈을 꾸는 것과 같았으나, 천사가 사라진 후에야 비로소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 지를 깨달은 것입니다. 핍박을 받는 것도, 감옥에 들어가는 것도 하나님의 뜻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자신을 보여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증거하고 형제들을 위한 후에 헤롯의 병사들이 자신을 찾을 수 없도록 피하였습니다. 그가 몸을 피한 것은 아직 이 세상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만일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있었다면 그는 또 다시 잡혔을 것입니다. 그러나 몸을 피하였고, 그는 나중에 로마로 가고 그곳에서 순교를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잘못한 것도 없이, 다만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수모와 핍박을 당하는 일만큼이나 억울한 일도 없을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처럼 감정으로 맞대응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력을 사용해 해결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초대 교회와 같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여야 합니다. 믿음의 이웃과 함께 합심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또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때까지 지치거나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반드시 응답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환난을 복으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들의 슬픔을 기쁨으로 변화시켜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우리가 깨달아야 할 바입니다. 우리 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로 값 주고 사신, 그래서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하나님의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내 뜻대로 내 몸을 사용하고 함부로 해서는 안 되며, 오직 하나님의 계획과 그 뜻을 깨달아 거기에 맞춰나가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크신 은혜 아래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지만, 주님 손잡고 한 걸음 또 한 걸음씩 나아가며, 주님 안에서 더욱 자신의 몸을 아끼고 마음을 아름답게 가꾸며 사랑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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