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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제38편 강해: 여호와의 징계에 대한 참회

chukang 2018. 1. 11. 06:47

시편 제38편 강해: 여호와의 징계에 대한 참회

 

이 시는 다윗과 밧세바와의 간음 사건(삼하 11:1-12:23)을 배경으로 하는 참회시입니다. 참회시들 중에서도 가장 애절한 호소를 담고 있는 것으로 손꼽힙니다. 시의 내용에는 자신의 범죄에 대한 시인이나 사죄의 간구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의 지위의 회복 등 참회의 범적 요소에 대한 자인이나 간구 이전에 당장 하나님의 징계로 견딜 수 없는 영육간의 번뇌에 빠진 애절하고도 긴박하게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을 호소하는 내용으로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요 정복자였던 다윗이 모든 세속적 가식을 벗어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벌거벗은 심정으로 징계를 거두어 주실 것을 호소하는 모습을 통하여 우리 모든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 죄인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다윗의 호소는 네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습니다. 모든 고통의 원인이 절대적으로 자신에게 있다고 시인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고통은 생명과 인격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만으로 해결될 수 있음을 직시했습니다. 자신이 그 아비에게 용서를 호소하는 것 이상으로 피조물이요 피택자로서 창조자이시며 선택자이신 하나님을 향한 호소의 차원에서 자신의 현재의 비루하고 추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내어 보이며 사죄를 진정으로 호소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자신의 호소가 분명히 열납 될 것을 믿으며 사죄가 실현되는 그 순간까지 끝까지 사죄를 간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용사로서 왕으로서 한편으로는 순전한 믿음의 성도로서의 삶을 살았던 다윗마저 크고 작은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엄정한 징계를 받을 수밖에 없었고, 그럴 때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전인격을 벌거벗는 심정으로 드린 애끓는 호소는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죄인일 수밖에 없는 모든 인간들에게 큰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택한 왕 다윗마저도 강력하게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의 모든 죄악은 반드시 종말론적 심판을 가져올 것임을 예표적으로 경고하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사죄와 구원의 길이 있다는 진리와 절대 균형을 이루고 있는 구속사의 원칙이며 역사적 현실입니다.

 

1: 여호와여 주의 노로 나를 책하지 마시고 분노로 나를 징계치 마소서.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동일한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참회 시인 시편 6편의 서두와 동일한 내용으로 본 시도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는 자신이 현재 겪고 있는 극심한 육체적, 정신적 시련과 고통이 자신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철저히 인식하고서 그러한 징계를 중단시켜 주실 것을 간청하고 있습니다.

 

2: 주의 살이 나를 찌르고 주의 손이 나를 심히 누르시나이다.

주의 살은 하나님의 분노의 화살, 즉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 또는 징벌을 뜻합니다. ‘주의 손은 대개 하나님의 권능을 상징하는데 여기에서는 죄인을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의미합니다.(17:14). 따라서 주의 살주의 손은 모두 하나님의 징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백성들을 징계하시는 방편에 있어서는 육신의 무서운 질병(6:4)이나 기근(5:16), 또는 일반적인 재난(32:23) 등이 두루 사용됩니다. 여기에서 볼 때 당시 시인은 육신의 질병과 함께 대적들의 반란 행위 등으로 인하여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동시에 받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3: 주의 진노로 인하여 내 살에 성한 곳이 없사오며 나의 죄로 인하여 내 뼈에 평안함이 없나이다.

시인은 먼저 하나님의 징계로 인해 겪고 있는 극심한 자신의 육체적 고통에 대하여 호소하고 있습니다. ‘살이 성한 곳이 없다.’는 표현은 그의 피부에 문둥병과 같은 질병이 생겼음을 의미한다기 보다는 은유적으로 자신의 육신 전체가 힘이 없고 수척하며 고통 속에 있음을 뜻합니다. ‘뼈에 평안함이 없다.’는 표현은 극심한 육신의 고통으로 인하여 잠시도 평안한 휴식을 취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30:17, 30; 6:2) 이는 죄의 심각성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가 단절된 자의 참담하고도 절망적인 상황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4: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감당할 수 없나이다.

여기에서 죄악과 관련된 것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 밧세바와의 간음 사건이나(삼하 11:2-5), ? 인구조사 사건(삼하 24:1-10)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다윗이 문둥병이나 온역과 같은 피부병으로 인한 고통을 부르짖고 있는 것으로 보고 온역의 징계를 받았던 인구 조사 사건과 연관시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육체의 질병을 앓고 있는 듯 한 묘사들을 하나님의 징계로 인한 다윗의 고통을 극심함을 보다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은유적인 표현으로 본다면 굳이 인구 조사 사건과 연관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11절에서 상처라는 말이 전적으로 은유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아 이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주장이라고 하겠습니다. 더욱이 인구 조사 사건이 일어나 것이 다윗 왕국의 번영이 절정에 이른 때이며 그의 왕권도 매우 확고하던 때였음을 감안할 때에 11, 12절에서 언급한 것처럼 친구들로부터 버림받고 대적들의 공공연한 반란이 꾀해지는 일들과 인구 조사 사건과는 거리가 멀다고 하겠습니다. 오히려 밧세바 간음 사건 이후 압살롬 반역 사건이 있기 이전의 어느 때로 보아야 하는 것이 더 적합하게 보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엄중한 징계를 통하여 자신의 죄악의 크기와 무게를 실감하고 있는 것입니다.

 

5: 내 상처가 썩어 악취가 나오니 나의 우매한 연고로소이다.

5-7절은 하나님의 징계로 인한 자신의 처절한 고통을 극심한 육신의 고통에 비유하여 토로하면서 그러한 고통으로 인하여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지은 죄가 얼마나 큰가를 깨달았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상처는 마치 채찍에 맞아서 피부가 얼룩덜룩하게 줄무늬가 진 것 같은 것을 말하고 악취가 나다는 말은 그 상처가 썩어 고름이 나며 냄새가 나는 것을 뜻합니다. ‘우매는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저지른 범죄 행위 자체를 말합니다. 이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뜻대로 순종하여 사는 것을 뜻하는 지혜’(111:10)와 대조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6: 내가 아프고 심히 구부러졌으며 종일토록 슬픈 중에 다니나이다.

아프다는 말은 몸이 심하게 위축된 상태를 뜻하며 구부러지다는 극심한 고통으로 인하여 몸이 심하게 뒤틀린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는 물론 비유적으로 죄책감으로 인한 극심한 양심의 고통을 가지킬 수도 있고, 또 그러한 양심의 고통이 육체에 큰 영향을 미쳐 육신까지도 심각한 고통을 받게 했음을 뜻할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시인이 자기 죄로 인해 얼마나 처절하게 영육 간에 고통을 받고 있는지 잘 보여줍니다.

 

7: 내 허리에 열기가 가득하고 내 살에 성한 곳이 없나이다.

허리(케셀: כסל)’살찌다’ ‘힘이 세다’ ‘자신 있다등의 뜻이 있는 히브리어 카살(כסל)에서 파생된 것으로 힘과 생명력을 상징합니다. 이는 인간이 허리를 다치면 힘을 쓸 수 없고 또한 허리는 생식기를 뜻하는 비유법적 표현임에서 비롯된 의미입니다. ’열기(칼라: קלה)‘불타다‘ ’굽다라는 동사에서 나온 것으로 불이 타는‘ ’볶이는등의 의미입니다. 따라서 문자적으로 허리 부분이 타는 듯이 아픈 고통에 처해 있다.‘는 말입니다. 이는 곧 시인이 자신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때문에 힘과 생명력을 잃어 거의 죽게 되었음을 뜻합니다.

 

8: 내가 피곤하고 심히 상하였으매 마음이 불안하여 신음하나이다.

지금까지 5-7절에서는 하나님의 징계로 인한 자신의 고통을 처절하게 표현했는데 8-10절에서는 정신적인 고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피곤하다’(푸그: פוג)쇠잔하다는 뜻으로 육신의 힘이 거의 다 소모되어 더 이상 움질일수조차 없게 된 상태입니다. ‘상하다’(다카: דכה)부서지다는 의미로, 이는 심령이 완전히 상할 대로 상하여 온전치 못한 것입니다. 시인은 육신의 고통을 말할 것도 없고 그 마음이 갈기갈기 찢기는 듯하여 불안하고 초조함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9: 주여 나의 모든 소원이 주의 앞에 있사오며 나의 탄식이 주의 앞에 감추이지 아니하나이다.

지금까지 시인이 호소하였던 하나님의 징계로 인한 처절한 영육간의 고통을 통하여 깨닫게 된 시인의 신앙고백입니다. 즉 우매하여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그 뜻을 거슬러 범죄한 결과가 시인 자신에게 이 같은 처절한 고통과 절망을 가져왔다면, 실로 이러한 고통과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그 같은 징계를 내리신 하나님께만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깨달음 때문에 자신이 고통을 다른 어떤 존재에게 부르짖지 아니하고 주께만 나아가 긍휼을 호소함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죄인 된 우리는 모두가 여호와께 나아가 죄 용서와 긍휼을 간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은 우리 자신의 죄가 사망의 징벌을 받아 마땅할 만큼 크고 심각한 것이기 때문입니다.(6:23)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 창조주요 절대자인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10: 내 심장이 뛰고 내 기력이 쇠하여 내 눈의 빛도 나를 떠났나이다.

심장이 뛰다는 말은 마음이 불안하여 생기는 동요나 혼란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눈의 빛이 떠났다.’는 말은 인간의 건강 상태를 판단할 수 있는 눈의 총기가 사라졌다는 말로 곧 사람의 생명력이 거의 쇠잔한 것을 의미합니다. 즉 시인은 자신의 영육 간에 처한 상태를 심장이 뛰고, 기력이 쇠하고, 눈의 빛이 떠났다는 삼중적인 표현으로 나타냄으로써 자신의 영적, 육적인 고통이 극심함을 한층 더 강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11: 나의 사랑하는 자와 나의 친구들이 나의 상처를 멀리하고 나의 친척들도 멀리 섰나이다.

상처는 하나님께 범죄한 시인을 바른 길로 돌이키기 위해 가하신 징계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징계 결과 자신이 주변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소외된 상황을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습니다. 즉 자신의 징계 당한 곤고한 처지를 보고 주변의 친구들과 친척, 그리고 가족 조차도 위로와 도움을 주기는커녕 그를 멀리하고 떠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시인이 진정으로 강조하고자 나는 것은 그처럼 평소에 자신과 가까이 했던 사람들이 결코 환난 때에 자신에게 진정한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사실(19:13, 14), 환난과 고통 중에 있는 자에게 진정한 긍휼과 자비로 도움을 줄 이는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30:18; 3:1).

 

12: 내 생명을 찾는 자가 올무를 놓고 나를 해하려는 자가 괴악한 일을 말하여 종일토록 궤계를 도모하오나

여기서 다윗의 생명을 찾는 자가 누구를 가리키는 지에 대해서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혹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키기 직전에 다윗을 비방하고 반란의 모의를 꾀한 것과 본 절이 관련된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괴악한 일다윗의 곤고한 처지를 보고서 비방하며 험담하는 대적들의 불의한 행위를 가리킵니다.

 

13,14: 나는 귀먹은 자 같이 듣지 아니하고 벙어리 같이 입을 열지 아니하오니, 나는 듣지 못하는 자 같아서 입에는 변박함이 없나이다.

시인은 세 가지 이유로 자신을 말 못하고 귀먹은 사람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원수 된 자들의 비방과 험담에 심히 억눌려서 자신을 변호하려 해도 입술이 열려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그토록 비방당할 수밖에 없는 원인이 근본적으로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범죄한 것이기 때문임을 시인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만을 바라는 무언(無言)의 기원으로 하나님만이 자기 사정을 아시니 사유함과 회복의 은총을 베풀어 달라는 의미에서입니다.

 

15: 여호와여 내가 주를 바랐사오니 내 주 하나님이 내게 응락하시리이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왜냐하면(: כי)’이란 접속사가 초두에 붙어 있어 본 절이 13, 14절의 이유가 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시인이 대적들의 비방에 대하여 인내하며 침묵한 것은 곧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에 대한 징계로서 대적들로 하여금 자신을 비방하게 하셨으므로 오직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시고 사죄하셔서 그러한 고통을 제하여 주실 것으로 믿고 기다렸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실로 자신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징계의 손실이 자신에게 임한 것을 깨닫지 못하고 죄의 용서를 구하기는커녕 징계의 고통만 원망하는 어리석은 자들과 얼마나 대조가 되는 자세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16: 내가 말하기를 두렵건대 저희가 내게 대하여 기뻐하며 내가 실족할 때에 나를 향하여 망자존대할까 하였나이다.

망자존대(妄自尊大: 앞 뒤 생각 없이 함부로 잘난 체 하는 것)’라는 표현은 시인이 실족하여 넘어졌을 때 대적들이 기세를 부리며 의기양양해 하는 모습을 뜻하는 것입니다(삼하 15:10). 즉 시인은 하나님께 사죄의 은총을 요청하는 궁극적인 이유가 자신의 실족 때문에 악인들이 망자존대하여 하나님을 욕되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다윗은 일차적으로 자신의 범죄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으나 이제 속히 사죄를 베푸셔서 하나님이 스스로 그 영광을 다시 회복하시기를 간구하였던 것입니다.

 

17: 내가 넘어지게 되었고 나의 근심이 항상 내 앞에 있사오니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이전 상태로 회복될 희망이 전혀 없으며 오히려 순간순간마다 심한 고통과 괴로움 속에 처하게 될 뿐임을 토로하면서 간절하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18: 내 죄악을 고하고 내 죄를 슬퍼함이니이다.

9절에 이어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징계로 인하여 자신의 죄의 크기와 심각성을 충분히 깨달았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런 고백은 사죄의 은총을 역설적으로 강하게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19: 내 원수가 활발하며 강하고 무리하게 나를 미워하는 자가 무수하오며

활발하다는 말은 악인이 계속적으로 풍성한 번영을 누리고 있음을 뜻합니다. ‘무수하다는 말은 악인의 수가 많아져서 세력이 강해졌음을 뜻합니다. 본 절은 16절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언급으로서 여기서 시인은 자신이 심히 쇠약해져 있는데 악인은 점점 그 수가 많고 강대해져서 하나님 앞에서 망자존대하고 있음을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20: 또 악으로 선을 갚는 자들이 내가 선을 좇는 연고로 나를 대적하나이다.

시인이 대적을 가리켜 악으로 선을 갚는 자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아 그 대적은 평소 다윗의 총애를 받았던 자들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선을 좇은 연고로라는 말은 그 대적들이 다윗에 대항하는 이유가 그들의 이기심을 충족시키는 데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좇는 다윗이 방해가 되기 때문임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악인들은 의인들의 선행을 질투하여 또는 그 선행이 그들의 악한 계획과 배치되기 때문에 의인들을 핍박하는 것입니다.

 

21, 22: 여호와여 나를 버리지 마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멀리하지 마소서. 속히 나를 도우소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

시인은 자신이 간구하는 기도의 내용을 함축하여 잘 타나내고 있습니다. 짧은 구절 속에서 시인은 버리지 마소서 멀리하지 마소서 도우소서 라는 삼중적인 표현을 씀으로 하나님의 긍휼을 간구하는 자신의 심정이 얼마나 절박하고 간절한 상태에 놓여 있는가를 여실히 드러내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부르짖음은 역으로 시인이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의지하고 있는 사실과 동시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자신을 환난에서 건져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지니고 있음을 증거합니다. 이러한 위기 시에 하나님께 부르짖은 시인의 기도와 관련하여 우리는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50:15)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해야 하겠습니다.

본 시를 통하여 우리가 깨달아야 할 부분은, 우리가 우리의 잘못으로 인해 심히 하나님의 큰 징계를 당할지라도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도 안 되지만 그로 인해 낙심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들을 징계하심은 결코 그를 완전히 버리셨기 때문이 아니라 그를 사랑하사 그가 죄에서 떠나 성화에 이르도록 만들어 위한 목적에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맺게 해 줄 것이라는(12:11) 사실을 명심하고 징계 중에 오히려 영적 각성과 성숙으로 나아가는 믿음의 성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