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하

사무엘상 제2장 강해: 한나와 엘리 가문

chukang 2016. 8. 28.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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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제2장 강해: 한나의 감사 찬양과 엘리 가문의 몰락

전반부 1-11절에서 한나의 찬양은 개인적인 기도의 응답을 넘어서, 하나님의 감동으로 전 구속사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과 그런 주권을 가지신 분께서 자신을 사랑하심을 깨달아 신앙 고백과 찬양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후반부 12-36절은 경건한 생활을 하고 있는 어린 사무엘의 모습과 모든 이스라엘의 신앙생활을 책임질 대제사장 가문이면서도 하나 같이 타락하고 무기력해진 엘리 가문의 모습이 대조되고 있습니다. 이런 엘리가문의 멸망과 그의 후손에게 대제사장 계승권이 박탈되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1차적으로는 엘리의 사후 형식적으로 대제사장직을 엘리의 후손 아히둡이 승계했으나 사무엘이 실질적 대제사장 역할을 할 것을 가리킵니다. 아론의 후손 중에서도 이다말 계열의 후손이었던 엘리 가문의 대제사장직 계승이 폐지됨으로써 민 25:11-13절에 기록된 대로 엘르아살 계열에게 대제사장직이 승계되게 될 것을 가리킵니다. 이는 솔로몬 시대에 엘르아살 계열의 사독과 그의 후손에게 대제사장직이 계승권이 주어짐으로써 성취가 되었습니다.

1-11: 한나의 찬양입니다. 사무엘을 출산 후 그를 하나님께 바친 한나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 찬양은 단순히 자식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를 넘어서 하나님의 거룩하심,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식, 하나님의 절대 주권, 우주적인 신정 통치를 언급하고 있어서 사람의 성정(性情)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녀가 하나님의 뜻대로 이 땅을 통치할 왕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한나를 통해 앞으로 전개될 이스라엘 역사의 방향을 예시해 주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에 있어서 지금가지 이어져 온 신정 체계가 장차 왕정 체계로 전환될 것임을 예시하고 있습니다. 이런 본문에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는 궁극적으로 메시아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한나의 노래는 단순히 이스라엘에 장차 왕정 체제가 수립될 것만 예시한 것이 아니라 전우주적인 메시아의 통치, 곧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하나님 나라 건설을 예언한 것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한나의 찬양 속에는 구속사를 꿰뚫고 있다는 매우 중요한 의의가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1: 한나가 기도하여 가로되 내 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를 인하여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함이니이다.

참으로 한나는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환난과 고통 속에서 애타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간 그녀는 응답을 받고(삼상 1:20) 자신이 서원한 것(삼상 1:11)을 완전하게 이행한 후에 이처럼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내 마음이~ 내 뿔이~ 내 입이~ 크게 열렸으니이는 같은 의미를 지닌 말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히브리 문학적 표현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베푸신 은혜를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케렌: קרן)’은 머리를 높이 치켜든 들소의 모습을 나타내는 표상으로, 성경에서는 , 명예, 권위등을 상징합니다.(33:17; 75:10; 112:9) 한나는 사무엘을 낳기 전에 브닌나가 자신을 대적하는 것을 연상하면서(삼상 1:6)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 자신의 뿔을 높이 들 수 있게 되었음을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나의 기쁨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베푸신 구원, 즉 사식을 주시므로 무자할 때의 고통과 괴로움에서부터 건져내 주신 것으로 인한 기쁨이며, 한나의 찬양은 하나님의 감동을 입어 나온 것임을 기억할 때 주의 구원이란 예언적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영적, 도덕적으로 타락한 시대 상황에서 하나님이 사무엘을 통해 자기 백성을 구원할 것을 의미한다는 점입니다. 보다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성도의 구원을 의미한다는 점입니다.

2.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거룩하신 이하나님께서 거룩하신 분이라는 것은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도덕적으로 완전하시다는 뜻이며, 둘째 하나님께서는 피조물과 구별되는 절대적 위엄과 영광을 지니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한나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그 은혜를 깨닫게 되면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모세도 이스라엘이 애굽에 대하여 승리하였을 때에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찬양하였으며(15:11),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 있는 모든 생물들도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찬양하고 있습니다(4:8).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하나님의 거룩성에 근거해 하나님의 유일성(Unique)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주 밖에 없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한 분뿐이시라는 단일성과 그 속성에 있어서 비교될 다른 존재가 없다는 유일성을 함께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반석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는 주로 그의 백성들에 대한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나타내는 데 사용합니다(32:4; 19;14). 이러한 표현은 암석들이 많은 팔레스틴의 지역적 상황에 비추어 볼 때 하나님의 확실하고도 굳건한 보호하심에 대한 적절한 묘사라고 하겠습니다.

3.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보시느니라.

한나는 브닌나가 자신에게 그렇게 했던 것과 같이(1:6,7)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지 못한 채 함부로 남을 판단하거나 스스로를 남보다 낫게 여기는 일을 그 누구도 해서는 안 될 것임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지식의 하나님전지(全知)하신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표현입니다. 지혜와 지식의 근본(1:7)이신 하나님께서는 세상 만물의 모든 것을 바르게 판단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나는 이 말로써 브닌나와 자신의 사이에서 하나님께서 올바르게 판단하셔서 자신을 구원하셨음을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4. 용사의 활은 꺾이고 넘어진 자는 힘으로 띠를 띠도다.

은 병사에게 필수적인 무기입니다. ‘용사의 활은 문자적인 의미의 이 아니라 그런 외적 힘을 과신하여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꺾이다(하타트: חתת)’는 외적인 부러짐이 아니고 사람이 멸망의 상태에 처하는 것을 뜻합니다. 한나는 하나님 앞에서 교만한 자들이 깨어질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넘어진 자는 교만히 행하는 자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던 순전한 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교만한 자들의 최후와 달리 하나님의 권념하심으로 말미암아 강성하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속사에서 연약한 자, 가난한 자, 소외된 자를 구원하시는 것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5. 유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않도다. 전에 잉태치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

한때 유족(裕足)하였으나 교만하여 하나님께 징벌을 받아 품을 팔아야 하는 자의 처지와, 한때 가난하여 굶주렸으나 겸손하여 하나님께 은총을 받아 부유하게 된 자의 처지를 대조하여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한나가 자신과 브닌나의 처지를 염두에 둔 묘사이기도 합니다. 한나가 잉태함으로써 그녀의 괴로움이 기쁨으로 변한 반면 브닌나는 더 이상 교만한 말을 떠벌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유의 주이시기 때문에 부한 자나 가난한 자를 언제든지 바꾸실 수 있습니다. 재물은 인간의 능력 유무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재물도 생명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주권에 의하여 주어지고 빼앗기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가난할 때든 부유할 때든 항상 감사하는 중에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부자의 자만과 가난한 자의 좌절은 똑같은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는 허물과 죄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전에 잉태치 못하던 자는무려 7명의 자녀를 낳았다는 실제 상황이 아니라 히브리 문학적인 표현입니다. 7은 충만과 완전을 상징하는 수로서 한나는 사무엘을 하나님께서 주신 최대의 복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자녀를 둔 자녀는 쇠약하였다.’는 말은 한나의 출산으로 인해 더 이상 자랑거리가 없게 된 브닌나의 처지가 어떻게 추락했는지를 잘 암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자랑거리를 거두어 가시면 그가 맛볼 참담함과 수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 될 것입니다.

6~7: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 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 도다.

같은 의미 다른 말로 반복적으로 표현하여 강조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사화복이 여호와의 주권적 섭리로 이루어짐을 나타냅니다. 이는 한나 자신과 브닌나의 처지가 바뀐 것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 이루어졌음을 고백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음부(쉐올: שׁאל)’는 본래 내부가 비어 있는 공간이라는 뜻입니다. 구약 시대 당시 히브리인들은 이 음부를 죽은 자의 영혼이 가서 거처하는 처소로 이해하였습니다(37:35). 오늘날에 있어서는 낙원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구원 받은 성도의 영이 최후의 심판 때까지 거하는 중간기 처소가 낙원인데 반해(23:43) 불신자의 영이 거하는 중간기 처소가 음부입니다(16:23).

8.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 위에 세우셨도다.

이는 가난하고 비천한 자가 처한 곤핍한 처지를 의미하면서 또한 영적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겸비한 자의 심령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하시고자 하는 뜻대로 이들을 존귀케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5:3)고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과 상통하는 것입니다. ‘땅의 기둥들~ 그 위에 세우셨도다.’라는 말은 당시 과학적 지식이 부족하던 때에 평평한 지구로 생각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으나,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통치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모든 만물이 그분께 속하고 그분이 다스리신다는 것이 주요 골지라고 이해를 해야 할 것입니다.

9: 그가 그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며 악인으로 흑암 중에서 잠잠케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

거룩한 자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진실하고 경건한 삶을 추구하였던 각 시대의 의인들을 가리킵니다(6:9; 1:19). ‘발을 지키실 것이요.’ 하나님께서 그 발걸음을 인도하사 결코 사망의 길에 처하거나 인간적으로 실해하지 않게 될 것임을 의미합니다.(23:3, 4) ‘악인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의인을 핍박하는 자들입니다. 한나는 자신과 브닌나를 비교하며 또한 모든 의의 세력과 악의 세력을 염두에 두고 궁극적으로 의인이 승리하고 악인은 망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1:6) ‘흑암 중에서 잠잠케 하시리니이는 음부에 처하게 하시리니라고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악인이 필연적으로 당할 멸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20:10).

10: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 우레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베푸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들은 악인이며, 그들의 계획은 깨어지기 위한 것이며 또한 그들의 성공은 실패를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진리와 공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분 앞에서 악인의 도모하는 바가 끝까지 형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29:6). ‘땅 끝까지 심판을 베푸시고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성도들에게 넓은 땅을 차지하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본 절은 모든 무릎을 예수님 앞에 꿇게 하시는(2:10-11) 하나님의 섭리를 가리킴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신실한 성도에 대항하는 원수들을 심판하시는 심판주가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10:5,6). ‘기름부음을 받은 자는 일반적으로 왕, 선지자, 제사장입니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사명을 받아 일하기 위하여 구별되어 임명을 받은 자들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리스도를 높이사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왕권을 견고히 하실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나의 입술을 주장하사 자신의 장래 계획과 뜻을 계시하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11: 엘가나는 라마의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그 아이는 제사장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니라.

엘리 앞에서엘리의 지도하에라고 해석할 있습니다. ‘섬기니라(솨라트: שׁרת)’는 성경에서 특별하게 제사장 직분을 가리킬 때에 사용되고 있습니다(29:30; 1:50). 사무엘은 그의 일생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뿐이 아니라 제사장직도 함께 수행하였습니다. 사무엘은 자라가면서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점점 더 사랑스러워졌다(21~26)고 했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어린 시절과 유사합니다(2:52). 이처럼 성도의 가정에서도 어린아이들에 대한 신앙 교육을 잘 시켜야 합니다.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하나님을 섬긴 것처럼 성도는 자녀들이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가도록 부지런히 가르쳐야 합니다. 어린이도 부패한 본성을 지닌 한 인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교육과 훈련을 필요로 합니다.

12~26: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제사장의 신분으로 하나님 앞에서 영적, 도덕적으로 매우 성결하고 헌신적인 삶을 살아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제사 제도를 문란하게 하고 심지어는 하나님의 전에서 보사하는 여인을 추행하는 등의 추악한 죄를 일삼았습니다. 반면 사무엘은 어려서부터 성실히 하나님의 경외하였으며,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자로 성장하였습니다. 이렇게 엘리의 아들과 사무엘을 대조 비교하는 것은, 장차 타락한 이스라엘의 종교를 개혁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가 사무엘임을 부각시키기 위함입니다. ‘사무엘이 점점 자라며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26)는 마치 예수님께서 성장하실 때의 모습(2:40, 52)을 표현한 것과 같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이 타락하게 된 배경에는 엘리의 자녀 교육에 대한 소홀함이 근본 원인임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엘리는 두 아들의 잘못을 알고서도 적절한 책망과 징계를 소홀히 하고 오히려 그 죄를 묵과하여 죄를 허용하는 과오를 범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무엘의 부모 엘가나와 한나는 사무엘이 어릴 적부터 지극한 관심과 애정으로 그를 돌보는 데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사무엘은 점차 신앙적으로, 인격적으로 성숙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신앙 교육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깨닫게 합니다.

12: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

불량자는 벨리알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극악하고 패역하며 무가치한 자들을 가리킵니다.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는 엘리의 아들들 곧 홉니와 비느하스가 불량자로 불린 이유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죄를 법하였습니다(13-17, 22-25).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는 알고 있었으나 궁극적으로 그분의 뜻을 행하려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악행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몰랐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13,14: 그 제사장들이 백성에게 행하는 습관은 이러하니 곧 아무 사람이 제사를 드리고 그 고기를 삶을 때에 제사장의 사환이 손에 세 살 갈고리를 가지고 와서, 그것으로 남비에나 솥에나 큰 손에나 가마에 찔러 넣어서 갈고리에 걸려 나오는 것은 제사장이 자기 것으로 취하되 실로에서 무릇 그곳에 온 이스라엘 사람에게 이같이 할 뿐 아니라

습관은 여기에서 제사장들에게 보장된 법적 권한을 뛰어넘은 월권행위를 가리킵니다. 당시 제사장직을 수행하던 엘리의 불량 아들들은 불법을 습관적으로 자행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바쳐졌던 제물 중 율법에 규정된 몫은 흔든 가슴과 든 뒷다리였습니다(7:34). 그러나 이들은 제사장의 권한을 이용하여 갈고리에 걸려 나오는 무조건 자신들의 몫으로 취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하나님의 것을 탈취하는 것은 도적질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제사를 업신여기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15,16: 기름을 태우기 전에도 제사장의 사환이 와서 제사 드리는 사람에게 이르기를 제사장에게 구워 드릴 고기를 내라 그가 네게 삶을 고기를 원치 아니하고 날 것을 원하신다 하다가, 그 사람이 이르기를 반드시 먼저 기름을 태운 후에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취하라 하면 그가 말하기를 아니라 지금 내게 내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억지로 빼앗으리라 하였으니

모든 제사의 제물은 먼저 여호와의 몫인 기름을 번제단에 태워 여호와께 바쳐야 합니다(7:23-25; 17:6). 그리고 그 후에야 비로소 제사장의 몫을 취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엘리 아들들의 이러한 행위는 율법을 완전히 무시한 죄악 된 행동으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면할 수 없었습니다(28:34). 엘리 제사장을 통해서 혹은 모세와 여호수아의 명령을 통하여 제물의 중요성을 알고 있던 백성들은 패역한 엘리의 아들들에게 염려의 충고를 하였습니다. 백성들을 가르치고 훈계해야 할 제사장들이 오히려 이처럼 백성들로부터 훈계를 받은 것은 당시의 부패한 종교상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같은 타락상을 일소하고 다시금 여호와 신앙을 회복시켜야 할 새 종교 지도자의 출현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17: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멸시(니아추: נאצו)’는 하나님을 향한 악인들의 적극적인 도전과 방해공작을 의미합니다. 그들의 행위는 도덕적, 윤리적인 죄일 뿐 아니라 신성 모독죄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이들의 죄악은 우상숭배는 아니었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잡신 정도로 여기며 망령되이 행한 범죄입니다. 특히 제사장의 이런 행실이 백성들의 신앙을 크게 병들게 하며 하나님의 제사와 제물의 가치를 격하시켰다는 것은 정말 큰 문제입니다. 이러한 행위는 진리를 적극적으로 대적하는 이단 행위와 같은 것입니다(1:8, 9).

18: 사무엘이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 섬겼더라.

에봇은 본래 제사장들이 입던 일종의 겉옷입니다. 대제사장의 에봇이 색실로 만든 화려한 것이었다면(28:6) 일반제사장들의 것은 그냥 세마포(linen)로 만든 희색 에봇입니다(삼상 22:18). 이러한 에봇은 특별한 종교 행사 때에 다윗이 착용한 예복으로도 언급되고 있습니다(삼하 6:14). 사무엘이 에봇을 입고 여호와를 섬겼다는 것은 그가 본격적으로 성소 봉사를 수행하였음을 보여줍니다. 오늘날의 성도는 그리스도로 옷 입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제사장들입니다(3:37;벧전 2:9).

19: 그 어미가 매년제를 드리러 그 남편과 함께 올라갈 때마다 작은 겉옷을 지어다가 그에게 주었더니

한나가 성소에 올라갈 때마다 이처럼 옷을 준비한 것은 아들에 대한 사랑과 함께 하나님께 대한 정성이었습니다. 한나는 사무엘이 단순한 자기 자식이 아닌 하나님의 성소에서 봉사하는 하나님의 종으로 인식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이 듬뿍 담겨있었던 것입니다.

20: 엘리가 엘가나와 그 아내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게 후사를 주사 이가 여호와께 간구하여 얻어 드린 아들을 대신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니 그들이 그 집으로 돌아가매

엘리가 한나를 위해 다산을 축복하였습니다. 서원을 온전히 수행한 한나에게 하나님께서 더 많은 자식을 주시고자 엘리를 통해 축복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필요에 따라 그의 종들의 중보 기도를 통하여 자기 백성에게 복을 주십니다(5:14).

21: 여호와께서 한나를 권고하사 그로 잉태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고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

권고하다(파카드: פקד)’방문하다는 뜻입니다. 우연한 방문이 아닌 계획 되어진 방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나에게 많은 자녀를 주시기로 작정하셨다가 때가 이르매 엘리의 기도를 통해 복을 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실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그 사랑하심이 계획대로 이루어지게 만드시는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22: 엘리가 매우 늙었더니 그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과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였음을 듣고

엘리의 나이는 삼상 4:15에 의하면 이 때 98세의 고령자였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그처럼 늙은 아비의 말에 귀를 잘 기울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온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엘리의 아들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제물을 취한 죄악을 가리킵니다.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은 성소에서 섬기는 여인들입니다(38:8). 그런데 그들의 구체적인 직무에 대해서는 성경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들은 제사 후에 제기(祭器)를 씻거나 절기 때에 노래를 부르는 등의 일을 맡아 보았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동침하였음을 듣고동침(솨카브: שׁכב)하는 것은 함께 눕다, 잠자다는 뜻입니다. 성경에서는 정상적이고 합법적이지 못한 성관계를 묘사할 때 자주 쓰입니다(35:22; 15:33; 18:22). 이처럼 엘리 아들들의 죄악은 더욱 심해져 성전에서 음란한 행위를 하는 데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들의 이러한 죄악은 다른 사람들을 실족하게 만들었으므로 하나님께서도 결코 간과하지 않으셨습니다.

23-24: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 내 아들아 그리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과케 하는도다.

엘리는 아들들의 범죄가 백성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사실임을 알고 그 죄악이 가지고 오게 될 결과를 지적하였습니다. 백성들의 죄악을 경고하며 돌이키게 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저들이 도리어 죄악의 선봉장이 된 것은 백성들을 자기들과 동일한 죄악의 길로 인도하는 심각한 파멸 행위입니다.

25: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판결하시려니와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하되 그들이 그 아비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었더라.

사람의 죄가 다 용서될 수 있는 것이지만 사유(赦宥)의 은총을 거부하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은 더 이상의 속죄를 구할 수 없게 합니다(10:26). 엘리의 아들들의 행위가 바로 이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이런 무서워 죄에 대하여 엘리가 취한 경고의 소리는 너무 늦었고 너무 약했습니다. 대신 그러한 말은 하나님의 심판을 확정 짓는 마지막 선언이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와 가나안 족속의 마음을 강퍅케 하신 것처럼(4:21; 11:20) 그들의 범죄를 적극적으로 막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이 범죄로 인해 죽음의 길로 가는 것을 허용하신 것이지 그들로 범죄 하도록 만든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회개시키시지 않으면 우리 모두 이와 같은 죽음을 받게 됩니다(11:18).

26: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

엘리 가문의 몰락과 사무엘의 영적, 육적 성장이 대조가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사람은 이처럼 사람들에게도 칭찬 받게 됩니다(2:52). 우리도 세상 사람들에게 본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져야 합니다(5:16). 엘리와 두 아들이 죽고 난 후에 그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가 된 이가 바로 사무엘입니다. 이처럼 레위 지파의 보잘 것 없는 인물 사무엘을 들어 대제사장 엘리 가문을 대신하게 한 하나님의 역사는 무릇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순종하는 겸손한 자를 높이시고 교만한 자는 물리치신다는 성경의 진리입니다(23:12).

27~36: 장차 엘리의 가문이 몰락하게 되리라는 예언의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선지자를 세워 엘리의 과오를 책망한 다음(27-30) 그와 두 아들의 죄로 인하여 엘리와 두 아들이 당대에 비명횡사하며 그 가문의 제사장직이 영구히 상실될 것을 선포하셨습니다. 그 가문에 속한 자들이 단명함은 물론 물질적으로도 매우 궁핍하게 될 것임을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와 아울러 그들을 대신할 새로운 제사장을 세우시리라고 선포하셨습니다.

27-28: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 조상의 집이 애굽에서 바로의 집에 속하였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 나타나지 아니하였느냐.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내가 그를 택하여 나의 제사장을 삼아 그로 내 단에 올라 분향하며 내 앞에서 에봇을 입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이스라엘 자손의 드리는 모든 화제를 내가 네 조상의 집에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나님께서는 익명의 선지자를 통하여 엘리를 책망하시며 출애굽 사건과 제사장 제도를 친히 세우셨음에 의거하여 엘리 가문에 대한 심판의 정당성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시므로 우리의 죄악 또한 징계하실 권리가 있습니다(8:5). 엘리 집안의 조상들이 동족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애굽에서 종노릇 하던 때에 아론 가문을 제사장 가문으로 구별하신(28:1-4) 것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바친 제물 중 제사장들의 몫으로 돌아간 음식은 화제라고 하였습니다(2:3, 10;6:16, 18;7:8;10:13-15). 이는 곧 다른 일은 하지 않고 성직만을 감당한 자들의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것입니다.

29: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나의 처소에서 명한 나의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의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스스로 살찌게 하느냐

나의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엘리의 두 아들이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여 백성들이 드리는 제물을 임의로 취한 죄악을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러한 죄악에 대하여 엘리까지도 함께 책망하고 있음은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자녀 교육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부모로서의 잘못이 있습니다. 둘째는 성소를 관리하며 여호와께 드리는 제사를 감수해야 할 대제사장으로서의 직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하나님께서 아들들의 죄악에 대한 엘리의 책임을 추궁하시는 장면입니다. 엘리는 아들들에게 소극적으로 타일렀을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교육시키지 못했습니다. 성경은 자식에 대해한 보다 적극적인 교육을 권유하고 있습니다.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13:24). 우리는 이러한 말씀을 보면서 한나의 신앙과 엘리의 신앙을 비교할 수 있습니다. 자식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며 신앙으로 양육한 한나는 결과적으로 복을 받았지만,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을 방관하고 풀어놓은 엘리 제사장은 지금 공범으로 정죄를 받으며 집안이 멸망당할 것이라는 저주를 받게 된 것입니다. 브닌나와의 관계에서 신앙으로 승리한 한나는 불의하고 악한 세태 가운데서도 신앙으로 그 빛을 발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낸 사무엘을 길러낸 믿음의 어머니였습니다. 반면 엘리의 불의에 대한 불감증은 자신과 자신의 자손들을 죽음으로 이끌었던 것입니다(삼상 3:12-18).

30: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아론 가문을 구별하셔서 영영토록 제사장 직무를 맡도록 하셨습니다(28:1-3; 29:9). 그런데 이제 그렇게 하지 않으시리라는 것은 1차적으로 아론 자손 엘리 가문의 제사장직이 장차 폐직될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보다 궁극적으로는 아론 가문의 대제사장직인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그리스도께로 넘어갈 것임을 의미합니다. 이는 실로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사의 일환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하나님께서 높이시고 위대하게 만드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정확한 자기 인식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즉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자기를 부정하는 것은 유별난 미덕이 아니라 정상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경건치 못하며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경멸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공포스런 조치가 아니라 당연하고 지극히 합리적인 처사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이름과 명예와 성취의 근원이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인식하여 하나님을 최대의 유일한 소망으로 알아야 할 것입니다.

31: 보라 내가 네 팔과 네 조상의 집 팔을 끊어 네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게 하는 날이 이를지라.

팔을 끊어팔은 성경에서 ’, ‘권세를 상징합니다(10:15, 37:17). 그러므로 이는 엘리의 집에서 제사장의 직분과 권세를 빼앗는다는 뜻입니다. ‘노인이 하나도 없게고대 가부장적 사회에서 노인은 한 집안을 지탱해 주는 기둥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 말은 엘리 자손들이 조사(早死)하리라는 예언이며 또한 집안의 몰락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32: 이스라엘에게 모든 복을 베푸는 중에 너는 내 처소의 환난을 볼 것이요 네 집에 영영토록 노인이 없을 것이며,

내 처소의 환란(아르 마온: צר מעון) ’ 마온은 처소의 뜻이 있으나 그것이 엘리의 집을 가리키는지 상소를 가리키는지는 분명히 알 수는 없습니다. ‘차르의 뜻이 환란’, ‘고통’, ‘원수이기 때문에 번역하는 데 어려움이 따릅니다. 문맥을 살펴볼 때에 엘리의 가족 관계에서의 환란으로 보는 것이 무난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번영해도 엘리의 집안은 비극적인 저주를 받아 번영하지 못하리라는 것입니다.

33: 내 단에서 내가 끊어 버리지 아니할 너의 사람이 네 눈을 쇠잔케 하고 네 마음을 슬프게 할 것이요 네 집에 생산하는 모든 자가 젊어서 죽으리라.

내 단에서 내가 끊어버리지 아니할 너의 사람이하나님께서 제사장 직무를 위하여 남겨 놓은 엘리의 후손을 가리킵니다. 엘리의 증손 아히야가 사울 당시 제사장 직무를 수행하였음은 14:3에서 확인이 됩니다. 그러나 그도 기운이 진하여 죽고 그의 후손들은 칼에 맞아 죽게 되는데, 이는 실제로 사울에 의해 성취되었습니다(삼상 22:9-19).

34: 네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으리니 그 둘의 당할 그 일이 네게 표징이 되리라.

표징(오트: אות)’표시, 증거, 암시, 징조등의 뜻입니다. 엘리의 두 아들의 죽음은(삼상 4:10) 지금까지 선포한 하나님의 사람의 징벌의 예언이 모두 성취될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될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엘리의 두 아들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죽고 말았습니다(삼상 4:11).

35: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니 그 사람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리니 그가 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영구히 행하리라.

충실한 제사장삼중적 의미가 있습니다. 비록 엘리의 사후, 형식적으로 그의 증손 아히둡이 대제사장직을 계승했으나 실질적으로는 전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직을 수행한 이스라엘의 사사이자 선지자인 사무엘(7:9)을 가리키며, 2차적으로는 훗날 이다말 계열의 엘리의 후손을 대신해 대제사장이 된 엘르아살 계열의 사독(왕상 2:27-35)을 가리키며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피를 희생 제물로 하여서 전 인류의 영원한 구속을 위한 제사를 직접 치르신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10:1-14). 이처럼 성경의 예언은 종종 이중 또는 삼중의 의미를 내포하기도 합니다. 다윗과의 언약에서 하나님께서 1차적으로 솔로몬에 대한 예언을 하면서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예언한 것은 그 좋은 예입니다(삼하 7:12, 13). ‘기름 부음을 받은 자란 장차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울 이스라엘의 왕을 가리킵니다. 이는 10절과 더불어 장차 이스라엘에 왕정 체제가 수립될 것임을(삼상 8, 10) 시사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계획하고 계신 이스라엘의 왕정 체제란 결코 전제주의적 왕정이 아닌 신정주의적 왕정 체제임을 분명히 가르쳐주고 있습니다(삼상 13:14;15:28;16:1).

36: 네 집에 남은 사람이 각기 와서 은 한 조각과 떡 한 덩이를 위하여 그에게 엎드려 가로되 청하노니 내게 한 제사장의 직분을 맡겨 나로 떡 조각을 먹게 하소서 하리라 하셨다 하니라.

은 한 조각과 떡 한 덩이를 위하여한 조각(아고라트: אגורת)과 한 덩이(키카르: ככר)는 구걸하여 얻은 동전 한 닢, 빵 한 조각을 가리킵니다. 이는 곧 엘리 가문에 대한 징벌로 경제적 궁핍함이 찾아올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가장 좋은 것을 착복해 스스로 살찌웠던 엘리 가문이 장차 이러한 어려움에 처하게 되리라는 것은 실로 하나님의 적적한 징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무엘상 제2장 강해.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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