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제5장 강해: 블레셋에 내린 하나님의 재앙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한 원인은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대신 보이는 법궤를 숭배한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믿음보다 교회의 크기나 시설을 보는 경우도 이에 해당합니다. 교회 중에는 예배당 안에 십자가 없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이는 정통 교회인 경우에 그 십자가가 우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강단 위에 걸어 놓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이단 중에는 이름만 ‘하나님의 교회’이지 전혀 기독교와는 무관한 종파도 있습니다. 오직 성경 말씀에 순종하며 참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질 때에 법궤는 생명력이 있는 임재의 상징물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법궤를 탈취하여 단곤 신상 옆에 두었습니다. 이는 다신론 사상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만이 유일한 신이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다곤이 땅에 엎드러지고 손목이 끊어지는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또한 독종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결국 블레셋은 법궤를 가드로 옮겼으나 그곳에서도 독종이 재앙이 번성하게 만드셨으므로 결국 이스라엘에 돌려보낼 결심을 하게 됩니다.
1-5절: 이스라엘로부터 언약궤를 탈취한 블레셋은 전투에서의 승리를 기념하는 동시에 그들의 신인 ‘다곤’에게 감사하는 표시로 언약궤를 다곤 신전에 두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곤을 엎드러지게 만드셨습니다. 즉 실제로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로 인해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호가 이방인들에 의해 모멸을 당하고, 썩어질 우상이 살아계신 하나님보다 뛰어나다는 생각을 사람들이 하도록 방치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상은 무가치한 것이라고 가르쳐 주시며, 오직 하나님만이 유일한 참 신이심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1: 블레셋 사람이 하나님의 궤를 빼앗아 가지고 에벤에셀에서부터 아스돗에 이르니라.
블레셋이 아벡 전투에서 이스라엘로부터 여호와의 언약궤를 탈취하였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기 위해 저들의 손에 붙이셨기 때문입니다. ‘아스돗’은 예루살렘 서쪽 약 51km지점에 위치하여 전략적으로 중요하였습니다. 이곳은 블레셋의 주요 다섯 성읍 중 하나로 시리아에서 애굽으로 가는 ‘공로’(high road)에 위치하여 전략적으로 중요하였습니다. 아스돗은 여호수아가 유다 지파에게 분배한 곳인데, 유다는 이곳을 정복하지 못했습니다(수 15:47). 블레셋이 이곳을 법궤를 옮겨 온 이유는 블레셋의 다곤 신당이 있어서 법궤를 그들의 신인 다곤에게 전리품으로 바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궤를 다곤 곁에 둠으로써 자신들의 신이 영광을 받게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홀로 영광을 받으셔야 하는 유일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러한 블레셋의 기대는 곧바로 허물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도리어 다곤 신상을 무참히 깨뜨리셨습니다. 이는 비록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잠시 환난 가운데 버려두셨을지라도, 그 일로 인해 하나님께서 모독을 당할 수는 없으셨기 때문입니다.
2: 블레셋 사람이 하나님의 궤를 가지고 다곤의 당에 들어가서 다곤의 곁에 두었더니
‘다곤(דגון)’은 일반적으로 ‘다그(דג: 물고기)’에서 유래했다고 봅니다. 이 신상은 상체는 상아로 치장한 원추형 모양의 왕관을 쓰고 턱수염을 기른 사람의 모양이고, 하체는 물고기 몸의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바다에서 헤엄을 치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물고기는 굉장한 번식력을 상징하며 또한 가나안 농경 문화권에서 풍성한 수확과 관련된 신으로 숭배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언약궤를 단곤 곁에 둔 것에 대하여는 첫째, 그들의 이스라엘에 대한 승리가 다곤의 여호와에 대한 승리라고 생각했으며, 둘째 언약궤를 신전 안에 가두어 둠을 이스라엘을 포로로 잡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3: 아스돗 사람이 이튿날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그 얼굴이 땅에 닿았는지라 그들이 다곤을 일으켜 다시 그 자리에 세웠더니
‘엎드러 지다(나팔: נפל)’는 ‘항복하다’는 의미로도 사용이 되며(왕하 7:4) 절대자에 대한 경외의 자세를 의미하기도 합니다(삼상 25:23; 수 7:6; 삿 13:20). 따라서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다곤 신을 굴복시키셨음을 분명하게 나타내 보이신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다곤 신상이 엎드러진 것을 단순히 우연한 일로 여기고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들이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 엎어진 것이 다곤이 아무런 능력도 발휘할 수 없는 헛된 우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전혀 알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4: 그 이튿날 아침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얼굴이 땅에 닿았고 그 머리와 두 손목은 끊어져 문지방에 있고 다곤의 몸둥이만 남았더라.
그들이 세워 놓은 다곤상은 그 다음날 또 다시 넘어져 있었는데, 이번에는 목이 끊어지고 두 손목도 끊어진 상태였습니다. 첫날 그냥 넘어져 있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이 숭배하고 있는 모든 우상은 하나님 앞에서 여지없이 훼파되고 말 것임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또한 이는 블레셋에 대한 엄중한 경고입니다.
5: 그러므로 다곤의 제사장들이나 다곤의 당에 들어가는 자는 오늘까지 아스돗에 있는 다곤의 문지방을 밟지 아니하더라.
무지한 블레셋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쓰러진 다곤의 손이 문지방에 닿았다고 해서 문지방까지 신성하게 생각하고 밟지 않고 넘어갔습니다. 이처럼 깨닫지 못하는 자들은 더욱 더 악한 길로만 향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풍습은 ‘오늘날’ 즉 사무엘서가 기록될 때까지 계속되었으며 또한 그 후에도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습 1:9). 이런 것이 바로 하나님을 모르고 우상을 숭배하는 어리석은 인간의 본성이 어떠한 것인가를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6-12절: 여전히 우상에 빠져서 깨닫지 못하는 블레셋을 하나님께서는 언약궤가 옮겨지는 곳마다 죽음과 독종으로 징벌하셨습니다. 블레셋에 대한 심판은 하나님께서 결코 인간의 조롱거리나 포로가 될 수 없으며 세상을 공의로 심판하시는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분임을 잘 보여줍니다. 아스돗에서 가드로 다시 에그론으로 언약궤을 옮기는 이유는 혹시 다른 지방으로 옮기면 하나님의 재앙이 그칠까 하는 바람 때문이었습니다. 블레셋은 ‘지역신’의 개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역을 옮김으로써 재앙을 피고하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전 우주의 창조자이시며 통치자이시기 때문에 저들은 더 큰 화를 자초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블레셋은 전쟁의 승리를 만끽하며 언약궤를 탈취하여 즐거움에 빠져들었으나, 사실은 불행의 시작이요 심판의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물론 블레셋은 이스라엘을 징계하기 위한 도구로서 사용된 것은 틀림이 없는 사실입니다. 도구가 이스라엘보다 더 나았기 때문에 도구로 사용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게다가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등 자신들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6: 여호와의 손이 아스돗 사람에게 엄중히 더하사 독종의 재앙으로 아스돗과 그 지경을 쳐서 망하게 하니
‘여호와의 손’은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표현하는 관용어입니다.(대상 29:12; 시 89:13) 여기서는 하나님의 역사를 깨닫지 못한 블레셋을 징벌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냅니다. ‘독종(오펠: עפל)’은 대게 치질이나 피부염 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러한 질병을 멈추게 하기 위해 블레셋이 하나님께 금독종과 금쥐를 드린 것(삼상 6:4)으로 보아 여기서는 쥐가 퍼뜨린 ‘페스트(pest)’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쳐서 망하게 하니(야크: יך)’는 ‘짓밟다’ ‘쳐부수다’는 뜻입니다. 앞서 다곤 신상을 깨뜨리신 하나님께서 이제는 다곤을 숭배하는 자들에 대해 강력한 징벌을 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대적하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7: 아스돗 사람들이 이를 보고 가로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와 함께 있게 못할지라 그 손이 우리와 우리 신 다곤을 친다 하고
독종의 재앙을 당한 블레셋은 그제서야 비로소 3,4절의 사건이 모두 하나님께서 역하사신 결과임을 깨닫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즉 다곤 신상 뿐 아니라 그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진노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다곤 신보다 권세 있음을 깨닫게 하고 인정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그 권능으로 대적자들에게까지도 인정을 받으시며 스스로 영광을 드러내십니다.(출 8:19) 블레셋은 언약궤로 인하여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인정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일과 관련하여 하나님과 화해하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단지 그들은 이런 하나님의 징벌의 심판을 모면하기 위해 법궤를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려는 궁리만 했을 뿐입니다. 이처럼 어두움에 속한 자들과 악한 자들은 결단코 하나님과 화목하지 않으며, 심판을 받을수록 강퍅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시1편; 눅 6:45).
8: 이에 보내어 블레셋 사람의 모든 방백을 모으고 가로되 우리가 이스라엘 신의 궤를 어찌할꼬 그들이 대답하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가드로 옮겨 가라 하므로 이스라엘 신의 궤를 옮겨 갔더니
블레셋은 가사, 아스글론, 가드, 아스돗, 에그론의 다섯 개의 도시 연합 국가의 형태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도시들은 수장인 ‘방백’이 다스렸습니다. 그러면서도 거족적으로 대처해야 할 문제가 생기면 이들 다섯 방백이 모여 협의하여 처리하였습니다. 협의 결과 언약궤를 ‘가드’로 옮기기로 결정이 되었습니다. 이는 그들이 독종 재앙의 원인을 하나님께서 아스돗 신당의 다곤 신에게 진노한 탓에 일어난 것으로 오해한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법궤를 다곤 신당이 없는 곳으로 옮기면 하나님의 진노가 멈추어지리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저들이 하나님을 일개 한 지역을 관장하는 지역신 정도로만 오해한 것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멈출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자신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침해하였음을 깨닫고 법궤를 이스라엘로 되돌려 보내는 것뿐이었습니다(삼상 6장). ‘가드’는 아스돗 동쪽 약 20km 지점에 위치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 당시 미처 정복되지 못하여(수 11:22) 여전히 블레셋의 수중에 있었으나 사무엘에 의해 일시 회복이 되었습니다(삼상 7:14).
9: 그것을 옮겨 간 후에 여호와의 손이 심히 큰 환난을 그 성에 더하사 성읍 사람의 작은 자와 큰 자를 다 쳐서 독종이 나게 하신지라.
‘심히 큰 환난’ 환난(메후마: מהומה)은 ‘혼란’ ‘교란’ ‘파멸’ ‘소동’등의 뜻으로 ‘때려 부수다’라는 뜻을 가진 ‘훔(הום)’에서 나온 말입니다. 여기에 ‘심히’와 ‘큰’이란 수식어가 덧붙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로 인한 심판의 징벌이 얼마나 크고 심했는가를 잘 나타내 줍니다. ‘작은 자와 큰 자’ 극과 극의 두 단어를 사용하여 전체를 나타내는 히브리 문학적 표현으로 모든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런 본 절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아스돗에서 다른 성읍으로 옮김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멈추고자 한 블레셋의 모의가 전혀 소용이 없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0: 이에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에그론으로 보내니라 하나님의 궤가 에그론에 이른즉 에그론 사람이 부르짖어 가로되 그들이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와 우리 백성을 죽이려 한다 하고
‘에그론’은 아스돗 북동쪽 약 20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지중해 연안에서 동쪽으로 약 15km 지점에 위치한 오늘날의 ‘아키르(Akir)로 추정합니다. 이곳은 여호수아에 의해 유다 지파의 기업으로 할당이 되었지만(수 13:3; 15:11) 이스라엘 역사상 거의 블레셋의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렘 25:20). 아스돗과 가드에서 일어난 징벌의 소식을 들은 에그론 사람들이 법궤로 인하여 자신들에게 임할 진노를 두려워하여 부르짖고 있습니다. 에그론 사람들은 여호와가 그들의 생명을 멸할 수 있는 능력의 신이심을 그들의 입을 통하여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11: 이에 보내어 블레셋 모든 방백을 모으고 가로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어 본처로 돌아가게 하고 우리와 우리 백성 죽임을 면케 하자 하니 이는 온 성이 사망의 환난을 당함이라 거기서 하나님의 손이 엄중하시므로
하나님의 언약궤가 이르는 성읍마다 재앙을 당하자 블레셋인들이 결론적으로 도출해 낸 문제 해결 방법은 ‘본처’ 즉 이스라엘 땅으로 되돌려 보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재앙도 이스라엘로 몰려 갈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본처’는 블레셋이 언약궤를 벧세메스로 보낸 사실(삼상 6:9)에 비추어 볼 때 정확히 성막이 설치되어 있던 이스라엘의 성소 ‘실로’(삼상 1:3)를 가리키는 말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이는 포괄적인 의미로 이스라엘 영토 또는 이스라엘 성읍을 가리킨 것입니다. 이렇게까지 언약궤를 이스라엘로 돌려보내는 것은 아스돗에도 독종의 재앙이 임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엄중하시므로’ 이 구절은 다른 성읍들보다 에그론에 임한 재앙이 보다 더 심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12: 죽지 아니한 사람들은 독종으로 치심을 받아 성읍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더라.
‘사무치다(알라: עלה)’는 ‘오르다’ ‘타오르다’는 뜻입니다. 에그론 거민들의 부르짖음이 타올라 하늘까지 미쳤다는 것은 다른 곳에서보다도 에그론에서의 재앙이 더욱 심했음을 증거합니다. 그 부르짖음은 과거 애굽인들이 하나님의 마지막 재앙에 온 나라가 떠나갈 정도로 호곡(呼哭)하였던 것을 생각나게 합니다.(출 12:30). 이로 보아 하나님은 더 이상 언약궤가 블레셋 족의 성읍에 방치되어 있는 것을 원치 아니하셨기 때문에 재앙을 가중시키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심한 재앙으로 인해 블레셋 방백들은 언약궤를 본처로 돌려 보내기로 결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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