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사사기 제14장 강해: 삼손의 결혼 사건

chukang 2015. 5. 3.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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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제14장 강해: 삼손의 결혼 사건

 

  삼손이 블레셋의 딤나 여인을 아내로 취하여 혼인 잔치를 배설한 사건과 관련된 내용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미 태어나기 전부터 사사로 임명된 자가 이방인과 결혼하고 또 그 결혼 실패가 오히려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압제로부터 구해내는 촉진제가 되었습니다. 이방인과의 통혼은 비단 삼손뿐만 아니라 신앙이 해이해진 당시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저지르던 악한 풍습이었습니다. 이방인과의 통혼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그들과 결혼하여 그들을 여호와 신앙으로 인도하여 선민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스라엘이 우상숭배에 빠지는 경우가 더 많았기 때문에 이방인과의 통혼이 일반적으로 금지되었던 것입니다. 삼손은 단순히 이방 여인의 아름다움으로 인하여 결혼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즉 무엇인가 이 결혼 과정에서 빌미를 잡아 동족을 괴롭히던 블레셋을 응징할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삼손의 계획은 매우 유치하고 또 먼저 하나님께 여쭈어보지도 않은 자신의 혈기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런 삼손의 잘못된 계획이나마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한 기회의 하나로 활용해 주셨습니다. 삼손의 행적은 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일관된 섭리에 의한 사건이라는 것이 핵심입니다.

 

  1-4: 삼손이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에 앞서 블레셋 여인을 취하여 아내로 삼고자 하고 있습니다. 삼손은 블레셋 족속들이 거주했던 딤나로 내려가 그곳에서 한 블레셋 처녀를 보고 결혼하고자 그 부모에게 허락을 구합니다. 이에 삼손의 부모는 반대하지만 결국 끈질긴 요구에 허락하게 됩니다. 그런데 삼손이 결혼하고자 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 여인의 미모와 성적 욕구에 의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삼손은 결혼을 통하여 블레셋 사람들의 호감을 산 후에 기회를 봐서 블레셋을 공격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비록 선한 목적이기는 하였지만 근본 하나님의 뜻과는 맞지 않다면 그것은 올바른 것이 아닙니다. 삼손은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하나님께 방도를 구하지 않고 지극히 인간적인 수단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큰 잘못을 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삼손의 행위를 통해서도 뜻을 이루어가셨습니다.

 

1: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거기서 블레셋 딸 중 한 여자를 보고

  ‘딤나는 거름더미란 뜻을 지닌 성읍으로 원래 단 지파에 속한 땅이었으나(19:34), 사사시대에는 아모리 족속에 이어(1:34) 블레셋에게 복속이 되었습니다(대하 28:18). 현재의 지명은 티브네로 삼손의 고향인 소라남서쪽 6.4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보고(라아: ראה)‘ 는 외모 혹은 모양새를 본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즉 삼손이 신앙적으로 그 여자가 지혜롭거나 현숙하다거나 혹은 여러모로 보아 자신의 배우자로 합당한지의 여부를 살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삼손은 여자의 외적인 모습만 보고 그 여자를 좋아하게 되었고 이것이 결혼의 이유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매우 경솔한 행동입니다.

 

2: 도로 올라와서 자기 부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가 딤나에서 블레셋 사람의 딸 중 한 여자를 보았사오니 이제 그를 취하여 내 아내로 삼게 하소서

  딤나는 소라보다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해발 242m 정도이며, 삼손의 고향인 소라는 354m 높이입니다. 딤나로 내려갔던 삼손이 자신의 결혼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부모님이 있는 소라로 올라와서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지리적 상황에 근거한 것입니다. 삼손이 결혼문제를 상의한 것은 현명한 일로 보입니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결혼은 부모의 허락으로 이루어졌으며(21:21), 또한 신랑이 신부를 데려오려면 그 부모가 결혼지참금을 신부의 가족에게 주어야 하기 때문에 붐에게 결혼문제를 상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34:12; 삼상 18:25). ‘취하다(라카흐: לקח)’받아들이다’, ‘데리고 오다’, ‘얻다는 뜻으로 신랑이나 또는 그 부모가 신부를 맞이하는 전통적인 히브리식 결혼 관습을 나타내는 전문용어입니다.(4:19; 34:16).

 

3: 부모가 그에게 이르되 네 형제들의 딸 중에나 내 백성 중에 어찌 여자가 없어서 네가 할례 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에게   가서 아내를 취하려 하느냐 삼손이 아비에게 이르되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나를 위하여 그를 데려오소서 하니

  삼손의 부모는 이방 여인임을 들어서 결혼을 반대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성별하여야 하기 때문에 저들의 사악한 풍습에 물들지 않기 위해 가급적 삼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특히 삼손은 나실인이기 때문에 이런 원칙은 더욱 중요하게 지켜져야 했기 때문에, 완강하게 반대했을 것입니다. ‘할례 받지 아니한이란 말 속에는 이방 민족의 부정함에 대한 경계뿐만 아니라, 삼손의 잘못된 선택에 대한 비난까지 내포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그 여자가 내 눈 속에서 즐거워하기 때문에또는 그녀가 내 눈에 옳으니라는 뜻입니다. 일차적으로 삼손은 여인의 육체적 매력에 이끌렸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삼손이 이 여인을 취하고자 한 데에는 또 다른 목적도 있는데 4절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나를 위하여 그를 데려오소서’ ‘그를(오타: אותה)’은 강제형으로 그를 꼭이란 뜻입니다. 삼손은 부모의 반대 의사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입장만 계속 고집하여 블레셋 여자와의 결혼을 추진하였습니다.

 

4: 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관할한 고로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으나 그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서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

  삼손이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블레셋 여인과 결혼하려 한 의도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상황이 블레셋을 공격하기에 알맞은 때라고 생각하고 결혼을 위장하여 자신의 계획을 수행하려 했습니다(12, 19). 삼손의 이런 생각은 이라는 단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토아나: תאנה)’알맞은 때에 일어남’(21:3), ‘정시에 이루어짐’(12:21), ‘어떤 사람을 해하기에 알맞은 때를 찾음’(왕하 5:7)이란 뜻으로 삼손의 개인적 의도를 알 수 있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이런 계획은 방법적인 면에서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블레셋을 공격하려는 계획은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지만(13;5), 그 방법에 있어서 나실인인 삼손이 굳이 블레셋 여인을 취하면서까지 그 일을 수행할 필요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비성경적인 것이며 하나님의 편에서 볼 때에는 불순한 도모였으므로 삼손은 그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16:21). ‘이 일이 여호와께로서 나온 것삼손의 개인적인 생각에서 비롯된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경륜과 일치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개인의 실수나 잘못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섭리는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곧 나실인인 삼손이 이방 여인을 취한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명백하게 위반한 것입니다(34:15, 16; 7:3, 4). 그렇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잘못이나 실수로 인해 자신의 거룩한 뜻을 성취하지 못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도리어 인간의 잘못을 계기로 또는 그것과는 전혀 상관없이 당신의 계획을 이루시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삼손이 블레셋 여인을 취한 것이지 결코 인간의 악한 수단이나 방법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왔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즉 삼손 자신이 인간적 혈기로 이 일을 도모하였으나 그 이면에는 하나님께서 그의 개인적인 원한을 이용하여 블레셋과 싸우도록 계획하셨다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애초에 삼손을 통해 이스라엘을 블레셋에게서 구원하려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삼손의 개인적인 동기가 작용했을 뿐입니다.

 

  5-9: 삼손이 그 부모를 설득하여 블레셋 여인을 취하기 위해 딤나로 내려가는 도중에 생긴 일입니다. 삼손은 딤나로 내려가는 도중 뜻하지 않게 사자를 만났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삼손은 그 사자를 맨 손으로 찢어 죽입니다. 그런 후에 딤나 여인을 만난 후 집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딤나로 내려가는 길에 그가 죽인 사자의 몸에서 꿀을 발견합니다. 이에 삼손은 그 꿀을 취하여 먹고 또한 부모에게도 갖다 주어 먹게 하였습니다. 이런 본문은 삼손이 얼마나 큰 힘을 소유했는지 잘 알려줍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은사로 삼손에게 어마어마한 완력을 주셨던 것 같습니다. 짐승의 왕이라고 할 수 있는 사자를 삼손이 맨 손으로 찢어 죽인 사건은 당시 근동 지역의 왕과 같이 군림했던 블레셋을 크게 쳐부술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징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나약한 성도들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만 하면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우리의 영적 대적도 능히 쳐부수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삼손이 맨 손으로 사자를 찢어 죽인 사건이나 성도들이 마귀의 궤계를 물리치고 승리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들로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상상하지 못할 기인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는 성도들에게는 반드시 그 같은 역사가 일어날 것인데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와 복입니다.(고전 1:18).

 

5: 삼손이 그 부모와 함께 딤나에 내려가서 딤나의 포도원에 이른즉 어린 사자가 그를 맞아 소리 지르는지라

  딤나는 포도 재배로 유명한 소렉 골짜기 근처에 있었으므로(16:4; 5:2; 2:21), 소라에서 딤나로 내려가는 지역에는 포도원이 많았었습니다. 이 같은 포도원에는 여우 등의 짐승이 굴속에 살았는데, 본 절의 사자는 이런 작은 짐승을 잡아먹기 위해 포도원 근처에 가끔 나타난다고 합니다.

 

6: 삼손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어 손에 아무것도 없어도 그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음같이 찢었으나 그는 그 행한 일을 부모에게도 고하지 아니하였고

  ‘감동되다임하다의 뜻으로 하나님의 신곧 성령께서 삼손에게 임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삼손이 사자를 찢어 죽인 힘을 비롯해서 후에 블레셋 인들을 죽인 힘의 원천이 삼손의 근육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의 감동하심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에 감동된 삼손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를 나타내는 것이 바로 사자를 염소 새끼처럼 찢었다는 표현입니다. 아주 쉽게, 힘들이지 않고 사자를 찢어 죽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블레셋이 삼손에게 크게 패할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삼손은 그의 부모와 동행하고 있었으므로 삼손에게 일어난 일을 알 수 있었으나 성경은 그렇지 않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앞으로 있을 수수께끼 사건을 설명하기 위한 도입부로서 본문을 언급하였기 때문에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는 것입니다.

 

7: 그가 내려가서 그 여자와 말하며 그를 기뻐하였더라.

  ‘그를 기뻐하였더라.’ 이 보다는 그 여자가 그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로 번역하는 것이 더 타당해 보입니다. 삼손이 딤나의 여인을 사랑하게 된 것은 그 여인의 외모나 행동이 삼손의 눈에 어여쁘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8: 얼마 후에 삼손이 그 여자를 취하려고 다시 가더니 돌이켜 그 사자의 주검을 본즉 사자의 몸에 벌떼와 꿀이 있는지라.

  정확한 시간을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삼손이 죽였던 사자의 시체에 벌떼와 꿀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상당한 시간이 경과했을 것으로 추측이 됩니다. 왜냐하면 벌은 아주 까다로운 곤충으로 금방 죽은 시체나 아직 습기가 남아 있는 곳에는 집을 짓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본문은 상당한 시간이 경과되어 시체가 완전히 부패되고 앙상한 뼈만 남거나, 혹은 태양열과 당시 아라비아 사막의 건조한 바람에 의해서 썩지 않고, 가죽과 뼈가 바싹 마른 상태가 되어 벌이 서식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9: 손으로 그 꿀을 취하여 행하며 먹고 그 부모에게 이르러 그들에게 그것을 드려서 먹게 하였으나 그 꿀을 사자의 몸에서 취하였다고는 고하지 아니하였더라.

  ‘취하여(라다: רדה)’v긁어모으다는 뜻입니다. 요나단도 야생 꿀을 발견하고 원기 회복을 위하여 먹은 적이 있습니다(삼상 14:24-30). ‘고하지 아니하였더라.’ 삼손이 죽은 시체를 만진 것은 나실인의 규례에 어긋나는 행동이었습니다.(6:6, 7) 율법은 의식상의 정결을 위해 동물이나 사람의 죽은 시체를 만지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삼손은 부모에게 그 꿀을 어디서 가져왔는지 말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10~20: 우여곡절 끝에 삼손은 마침내 딤나의 여인과 결혼하게 됩니다. 고대 근동의 관습에 따라 칠 일에 걸친 장치를 배설하였습니다. 삼손은 잔치의 흥을 돋우기 위해 블레셋 동무들에게 잔치 기간인 7일을 기한으로 하고 수수께끼를 내었습니다. 그러나 3일이 지나도록 수수께끼를 풀 수 없자, 삼손의 아내인 블레셋 여인으로 하여금 삼손으로부터 그 답을 알아내도록 협박하여 제7일에야 겨울 답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그들이 부당한 방법으로 수수께끼의 답을 알아낸 것을 알았습니다. 삼손은 그 내기에 졌지만 약속한 대가를 치를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내기에 건 물품을 주기 위하여 블레셋의 아스글론에서 30명을 죽이고 그들의 옷을 약탈하여 수수께끼를 풀었던 30명의 블레셋 동무들에게 나누어 죽었습니다. 이 같은 본문에서 삼손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게 됩니다.

 

10: 삼손의 아비가 여자에게로 내려가매 삼손이 거기서 잔치를 배설하였으니 소년은 이렇게 행하는 풍속이 있음이더라.

  잔치(미쉬테: משׁתה)마실 것’ ‘마시는 행위를 뜻하는 것으로 연회입니다. 이러 잔치에서 이방 여인과 결혼까지 하려는 삼손이기 때문에 분명히 술도 마셨으리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본 절은 삼손이 나실인의 서원을 지키지 않았음을 은연중에 나타내고 있습니다. 본 절은 당시 블레셋 결혼 풍습을 보여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결혼 풍습은 신랑의 부모가 신부의 부모에게 결혼지참금을 지불한 후 신부를 신랑 집으로 데려와 그곳에서 결혼 잔치를 배설하였기 때문입니다(24; 22:1-10). 삼손이 블레셋의 결혼 풍습을 따른 것은 그들의 신뢰를 얻어 후에 그들을 용이하게 쳐부수기 위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 방법 역시 옳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11: 무리가 삼손을 보고 삼십 명을 데려다가 동무를 삼아 그와 함께 하게 한지라.

  ‘보고(라아: ראה)’두려워하다(야레::ירא)’로 바꿀 것을 제인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을 두려워하여 경계할 목적으로 친구 30명을 보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 절은 단순히 삼손을 신랑으로 맞이하는 기쁨을 더하기 위해 친구들을 함께 있도록 했다는 사실 이상의 의미는 없습니다. 만약 그들이 삼손을 두려워했다면 결혼 그 자체를 반대하고 방해하였을 것이나 본문은 그러한 사실에 대해 아무런 암시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12: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너희에게 수수께끼를 하리니 잔치하는 칠 일 동안에 너희가 능히 그것을 풀어서 내게 고하면 내가 베옷 삼십 벌과 겉옷 삼십 벌을 너희에게 주리라.

  ‘수수께끼(후드: חוד)’어려운 문제(왕상 10:1)’, ‘은밀한 말’(12:8) ‘오묘한 말’(49:4; 1;6)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런 수수께끼는 고대에 기지나 기량을 시험할 때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삼손이 낸 수수께끼는 오락의 한 형태로서 고대 근동이나 헬라 사람들 가운데 잔치의 흥을 돋우기 위해 널리 행해진 풍습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삼손이 수수께끼를 낸 이유는 그저 결혼식에 모인 친구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한 순수한 생각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베옷(세디님: סדינים)’은 일상적인 옷이라기보다는 피부에 닿는 세마포 속옷을 말합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인도산 마직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겉옷’(베가딤: בגדים)‘은 평상복이 아니라 축제나 국가적 경사가 있을 때에 입는 예복입니다. 고대 동방에 있어서 베가딤은 존귀와 부의 상징이었으며 귀중한 선물로 많이 이용되었습니다(45:22; 3:6, 7).

 

13: 그러나 그것을 능히 내게 고하지 못하면 너희가 내게 베옷 삼십 벌과 겉옷 삼십 벌을 줄지니라 그들이 이르되 너는 수수께끼를 하여 우리로 듣게 하라.

  삼손의 제안을 듣자마자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에게 문제를 내라고 재촉하였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30명의 지식을 모으면 능히 수수께끼의 답을 알아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삼손이 낸 문제는 개인적인 체험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지식으로는 풀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블레셋 사람들은 약속된 칠 일의 기간 동안에 답을 찾지 못했으며, 마침내 삼손의 아내를 협박하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삼손을 향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됩니다. 삼손은 단순히 잔치를 즐겁게 하려는 목적으로 수수께끼를 냈으나, 블레셋 사람들은 자신들의 위신이 손상될 것을 우려해 삼손의 아내가 될 동족 여인을 협박하였습니다. 이 위협으로 인해 삼손과 블레셋 족속 간의 감정이 악화되었고 이것은 하나님의 계획대로 삼손으로 하여금 블레셋을 공격하게 하는 계기가 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14: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 그들이 삼 일이 되도록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였더라.

  삼손의 수수께끼는 히브리 시의 대구법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먹는 자강한 자그리고 먹는 것단 것은 서로 같은 내용을 가리키면서도 서로 대구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것을 쉽게 풀어쓰면 다른 짐승을 잡아 머고 사는 동물에게서 먹는 식물이 나왔는데, 그 동물은 매우 강하고 그 식물은 달라.’는 의미가 됩니다. 그러나 이 수수께끼는 순전히 개인적인 체험에 근거한 것이므로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기는 매우 힘들었습니다.

 

15: 제 칠 일에 이르러 그들이 삼손의 아내에게 이르되 너는 네 남편을 꾀어 그 수수께끼를 우리에게 알리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와 네 아비의 집을 불사르리라 너희가 우리의 소유를 취하고자 하여 우리를 청하였느냐 그렇지 아니하냐

  14절의 삼 일17절의 칠 일과 연관지어 볼 때 이해하기는 힘듭니다. 왜냐하면 삼손이 아내의 간청에 못 이겨 답을 가르쳐 준 것이 제7일인데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의 아내를 협박한 날도 같은 칠 일이라고 보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17절에서 그 아내가 7일 동안 울었다는 대목과 관련해서도 해석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14절의 삼 일다음날인 사 일째 날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NIV) 즉 약속 기간인 칠 일 중 삼 일이 지나도록 답을 찾지 못한 블레셋 사람들이 초조하여 다음날인 사 일째 되는 날에 삼손의 아내를 찾아와 남은 기간 동안 답을 알아내라고 협박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또는 그들이 4일 째에 단순한 위협을 했으나 여인이 말을 듣지 않자 마지막 7일에는 불에 태우겠다는 극한 협박을 가한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7’에 해당하는 쉐비이(שׁביעי)’‘4’에 해당하는 레이비(רביעי)’ 사이에는 단지 자음 하나(: , 레쉬: ר) 밖에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꾀어(파타: פתה)’유혹하다’ ‘아첨하다’ ‘설득하다는 뜻으로 삼손을 어떤 방법으로든지 유혹하고 속여서 수수께끼의 답을 알아내라는 의미입니다. 블레셋 무리들은 만일 그 답을 알려주지 않을 때에는 여자와 그 아비의 집을 불사르겠다고 협박하였습니다. 그들은 또 올무를 하나 놓았습니다. 곧 삼손이 의도적으로 블레셋 사람들이 맞추지 못할 수수께끼를 내어 그들의 소유를 빼앗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협박은 그대로 적중하여 삼손의 아내로 하여금 담을 알아내게 하는 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결국 블레셋 무리들의 소유는 더욱 큰 손해를 입게 되고(15:5), 여자와 아비는 불살라지는 화를 당하게 되고 말았습니다(15:6).

 

16: 삼손의 아내가 그의 앞에서 울며 가로되 당신이 나를 미워할 뿐이요 사랑치 아니하는도다 우리 민족에게 수수께끼를 말하고 그 뜻을 내게 풀어 이르지 아니하도다 삼손이 그에게 대답하되 보라 내가 그것을 나의 부모에게도 풀어 고하지 아니하였거든 어찌 그대에게 풀어 이르리요 하였으나

  삼손의 아내는 수수께끼의 답을 알아내기 위해 자신에 대한 삼손의 사랑을 이용하였습니다. 그녀는 먼저 울었고, 자기를 미워할 뿐 사랑하지 않는다고 토라졌으며, 그리고 계속 매달려서 추궁하였습니다. 이것은 그녀가 자기와 가족의 안전만을 생각하고 있었을 뿐 남편 된 삼손을 신뢰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됩니다. 만일 그녀가 삼손을 신뢰하였다면, 그들의 협박을 말리고 함께 대책을 강구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녀는 단순히 자기 민족의 협박을 더 크게 생각하고 두려움에 빠져 있었습니다. 때문에 그녀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삼손을 꾀었습니다. 그 사랑을 아주 값싸게 팔아버린 것입니다. ‘미워하다(사네: שׁנא)’는 일시적인 미움이 아니라, 적개심에 불타서 적을 증오하는 듯한 미움의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은 혹 그녀가 삼손을 적대국의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오해할 수도 있지만, 여기에서는 단순히 삼손을 꾀어내기 위한 말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삼손은 자신의 부모에게도 풀어 고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는 삼손이 자기 아내를 부모보다 덜 사랑한다는 의미라기보다는 단지 난처한 처지에서 벗어나려고 변명을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삼손이 부모에게 고하지 않은 것은 나실인의 규례에 저촉이 되기 때문이요, 또한 수수께끼에서 승리하여 민족적인 자존심과 자기의 기량을 세우는 동시에 블레셋 족속에게 수모와 치욕을 안겨주며 그들의 소유를 정당하게 빼앗으려고 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남편의 사랑에 호소하는 아내의 유혹을 반드시 무마시켜야 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부모를 가장 좋은 변명거리로 만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17: 칠 일 잔치할 동안에 그 아내가 앞에서 울며 강박함을 인하여 제 칠 일에는 그가 그 아내에게 수수께끼를 풀어 이르매 그 아내가 그것을 그 민족에게 고하였더라.

  본문대로라면 삼손의 아내는 답을 알기 위해 잔치하는 칠 일 동안 내내 운 것이 됩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해석으로 보이고, 삼손의 아내는 잔치 사 일째 되던 날 협박을 받았고(14), 그날부터 수수께끼의 답을 알아내기 위해 삼손에게 간청한 것입니다. 즉 칠 일 동안의 잔치 기간 중 며칠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강박함(추크: צוק)’압박하다’ ‘억압하다’ ‘재촉하다는 뜻으로 마음을 압박하여 도무지 말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한다는 뜻입니다. 기쁘게 잔치하는 날 동안에 잔치의 주인공인 신부가 신랑 앞에서 우는 모습은 사람들의 이목에 앞서 삼손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을 것입니다. ‘제 칠 일에는’ 15절과 16절의 두 가지 내용이 하나로 합치되는 대목입니다. 결국 아내의 간청으로 삼손은 잔치의 마지막 날에 수수께끼의 답을 알려주었습니다. 이것은 여자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삼손의 약점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18: 제 칠 일 해지기 전에 성읍 사람들이 삼손에게 이르되 무엇이 꿀보다 달겠으며 무엇이 사자보다 강하겠느냐 한지라 삼손이 그들에게 대답하되 너희가 내 암송아지로 밭 갈지 아니하였더면 나의 수수께끼를 능히 풀지 못하였으리라 하니라.

  ‘성읍 사람들은 삼손의 수수께끼를 풀기로 한 30명의 동무입니다. 삼손의 아내를 협박하여 답을 알아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지혜로 힘들게 답을 알아낸 거처럼 시적 대구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자기 아내가 그들에게 수수께끼의 답을 가르쳐 주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그것은 수수께끼의 답을 삼손 자신과 그의 아내만이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암송아지삼손이 남편의 비밀을 누설한 아내에게 비유한 경멸적인 의미를 지닌 단어입니다. 삼손은 이런 속담을 사용함으로써 그들의 간사한 계략과 술책을 비난할 뿐만 아니라 아내의 배신을 힐책하는 것입니다.

 

19: 여호와의 신이 삼손에게 크게 임하시매 삼손이 아스글론에 내려가서 그곳 사람 삼십 명을 쳐 죽이고 노략하여 수수께끼 푼 자들에게 옷을 주고 심히 노하여 아비 집으로 올라갔고

  ‘아스글론에 내러가서아스글론은 딤나에서 남서쪽으로 40km 정도 떨어진 지중해 바닷가에 위치한 블레셋의 다섯 성읍 중 하나입니다. 이 성읍은 블레셋 땅의 깊숙한 곳, 곧 이스라엘 민족의 거주지와 동떨어진 곳에 위치했기 때문에 성경에 잘 언급되지 않는 성읍입니다. 삼손이 이곳까지 혼자 가서 블레셋 인들을 죽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의 신에 감동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노략하여이는 벗기다’ ‘빼앗다는 뜻으로 간교한 블레셋 사람들의 술책에 대해 삼손이 심히 분노하였음을 입증하는 단어입니다. 이 같은 삼손의 노략은 그가 블레셋 사람들과 멀어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나, 이는 이미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었던 일이었습니다(4). ‘아비 집으로 올라갔고결혼 잔치는 칠일 동안 계속되었지만, 실제 부부 관계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막상 신방에 들어가는 제7일 째에 블레셋 사람들은 수수께끼의 답을 제시하고, 삼손은 이것이 그의 아내로 인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삼손은 신방을 치르지도 않고, 아스글론의 블레셋 인들에게서 빼앗은 옷을 수수께끼를 푼 자들에게 주고 바로 딤나에서 소라 땅 아비의 집으로 올라갔습니다.

 

20: 삼손의 아내는 삼손의 친구 되었던 그 동무에게 준 바 되었더라.

  ‘그 동무최적임자혹은 제일 친한 자의 뜻으로 삼손의 친구였던 30명의 블레셋 청년 중 한 명입니다. 즉 여인의 부모는 삼손이 변절한 아내를 버렸을 것이라 생각하고 결혼이 취소된 수치를 면하기 위하여 딸을 그 동무와 결혼시켰는데 이것은 삼손의 뜻은 아니었습니다(15:6). 때문에 이처럼 그 여인의 부모들이 삼손의 아내를 블레셋 사람에게 주어 버린 행위는 삼손의 블레셋을 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