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사사기 제12장 강해: 이스라엘의 내전 및 입다의 죽음

chukang 2015. 3. 4.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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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제12장 강해: 이스라엘의 내전 및 입다의 죽음

 

  암몬 족속과의 전쟁 직후에 이스라엘 형제 지파 사이에 내전이 발발하게 되었습니다. 정치적인 측면에서 보면 부족 연합 국가 성격이 강했던 사사 시대에 지파 사이에서 발생한 일종의 헤게모니(Hegemonie) 쟁탈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속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토록 큰 복을 주시면서 정복하라고 지시한 이방 족속은 정벌하지 못하면서도 오히려 자기들끼리 싸우는 큰 범죄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가 파괴되었을 때에 필연적으로 인간끼리의 수평적 관계도 파괴될 수밖에 없다는 구속사적 진리의 한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1-7: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뒤에 암울한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이 암몬 족속과의 전쟁에서 큰 승리를 더운 입다의 공을 시기하여 결국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나고 만 것입니다. 간략하게 정리를 해 보면, 에브라임 지파가 암몬과의 전투에 자신들을 부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입다를 대적하고 입다는 그들의 주장이 부당한 것임을 지적하고 무마시키려고 노력을 하지만 에브라임 지파가 길르앗 사람들의 말을 전혀 사실 구근이라고 비방하자 입다는 에브라임 지파를 공격하여 42,000명을 죽이고 평정한 후에 입다가 사사가 된 지 6년 만에 죽고 길르앗 성읍에 장사되었습니다. 본래 에브라임 지파는 명예욕과 우월감에 사로잡혀 있었으나 여전히 그 태도를 버리지 못하여 기드온에게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입다에게 시비를 걸어 분쟁을 자초하였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우두머리가 되고자 하는 헛돤 자만심과 시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고, 어려운 일은 피하면서도 승리의 열매를 나눌 때에는 가장 좋은 것을 차지하려는 이기적이며 파렴치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결국 그들은 입다의 손에 42,000명이나 되는 백성이 죽임을 당하였고 길르앗을 향해 도망자라고 비방하던 그들이 도리어 도망자의 신세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분노가 미련한 자를 죽이고 시기가 어리석은 자를 멸한다.’(5:2)는 말씀을 우리는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머리가 되고자 할 때에는 낮은 자리에 앉기를 즐겨하라‘(23:2-12)고 하셨습니다. 대접받기를 원하는 자는 먼저 남을 대접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7:12). 주님께서는 본시 하나님이셨지만 도리어 자기를 낮추어 인간을 섬기는 자가 됨으로써 하나님께서 그를 높여 만왕의 왕이요, 교회의 머리가 되게 하셨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4:15; 2:6-9; 17:14).

 

1: 에브라임 사람들이 모여 북으로 가서 입다에게 이르되 네가 암몬 자손과 싸우러 건너갈 때에 어찌하여 우리를 불러 너와 함께 가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우리가 반드시 불로 너와 네 집을 사르리라.

  암몬 족속에게 침략을 당한 적이 있는 에브라임은(10:9) 입다가 암몬 족속을 패배시키는 과정에서 자기들의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입다에게 시비를 걸기 위해 찾아 갔습니다. 그러나 에브라임의 진짜 속셈은 작은 지파 출신의 입다가 계속적인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에 대한 시기와 질투를 표면화시키고, 승리의 영광과 그 전리품을 나눈 데 있었음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들은 여호수아가 속한 지파로서 상당한 우월감을 가졌는데, 이전에 이미 기드온에게도 그 오만한 우월 의식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8:1). 그 때엔 기드온이 겸손으로 평화롭게 해결하였지만 이제는 입다가 기드온과 달리 그들을 파괴시켜 동족상잔의 비극을 초래하게 된 것입니다. ‘(차폰: צפון)’은 두 가지 뜻이 있는데, 하나는 숨겨진’, ‘어두운이란 뜻과 함께 방위상 북쪽을 의미하는 것과, 또 다른 뜻은 갓 지파에 속한 요단 동쪽의 도시 사본(Zaphon)을 가리키는 것입니다(13:27). 여기서는 막연한 북쪽이 아닌 길르앗의 영지인 사본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길르앗은 에브라임의 북쪽이 아닌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입다에게 불로 너와 네 집을 사르리라.‘고 하였습니다. 입다와 그의 가족을 완전히 멸망시키겠다는 말입니다. 이런 태도는 자신들이 직접 심판자로 서겠다는 교만한 의지의 표현이며 이치에도 맞지 않는 부정한 것으로 당시 에브라임 지파가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2: 입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와 나의 백성이 암몬 자손과 크게 다툴 때에 내가 너희를 부르되 너희가 나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지 아니한 고로

  입다가 암몬과의 전쟁을 앞두고 에브라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만일 에브라임이 그의 요청을 들어주었다면 이번 전투에서 길르앗과 함께 승리의 기쁨을 나누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에브라임은 입다의 요청을 거절하였기 때문에 길르앗의 승리에 대해 어떠한 불평이나 자기들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입다를 위협하고 있는 것입니다.

 

3: 내가 너희의 구원치 아니하는 것을 보고 내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건너가서 암몬 자손을 쳤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붙이셨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오늘날 내게 올라와서 나로 더불어 싸우고자 하느냐 하고

  입다는 극히 미약한 군대를 이끌고 생명을 건 싸움에서 승리하였습니다. 그러나 입다는 승리의 영광을 자신이 아닌 하나님께 돌림으로써 에브라임 지파와 화해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탐욕과 감정적인 충동이 앞선 에브라임 지파는 입다의 화해 요청을 거부하여 스스로 파국을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4: 입다가 길르앗 사람을 다 모으고 에브라임과 싸웠더니 길르앗 사람들이 에브라임을 쳐서 파하였으니 이는 에브라임의 말이 너희 길르앗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에서 도망한 자로서 에브라임과 므낫세 중에 있다 하였음이라.

  암몬을 격파한 후에 길르앗 사람들은 각자의 생활터전으로 돌아갔으나 또 다시 에브라임과의 전쟁의 위협으로 입다는 다시 군대를 소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싸움의 동기는 에브라임의 무례와 교만에 있었습니다. 에브라임은 길르앗 사람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기에 충분한 모욕적인 언사를 하였습니다. 그것은 도망하는 자(팔리트: פליט)’란 의미가 이스라엘 전체 공동체에 속하지 아니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길르앗이 에브라임에 복속된 조그만 지파이면서 다른 곳으로 떨어져나가 독립 국가를 세우려 했다는 의미로서 더 이상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아니라는 뜻까지 포함하기 때문에 길르앗은 이러한 굴욕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에브라임 지파의 이런 조롱은 요단 동편 지역의 지파들은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로부터 이탈한 족속이라는 그들의 독선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길르앗 거민은 분명히 에브라임이 아닌 므낫세 지파의 한 분파의 후손이었으며(26:29), 에브라임으로부터 도망쳐 나온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5: 길르앗 사람이 에브라임 사람 앞서 요단 나루턱을 잡아 지키고 에브라임 사람의 도망하는 자가 말하기를 청컨대 나로 건너게 하라 하면 그에게 묻기를 네가 에브라임 사람이냐 하여 그가 만일 아니라 하면

  에브라임을 패배시킨 길르앗 군사들은 에브라임의 퇴로를 차단시키기 위하여 요단 나루턱을 장악하엿습니다. ‘잡아 지키다(라카드: לכד)’잡다’ ‘취하다라는 뜻으로 군사적인 요충지를 점령한다는 의미이며, ‘나루턱(마아바르: מעבר)’가로지르는 곳즉 걸어서 건널 수 있는 얕은 개울입니다. 고대에는 강을 건너는 가장 흔한 방법이 나루턱에서 걸어서 건너는 것이었으며(2:7; 삼상 13:7), 요단강의 나루턱은 여러 곳이 있었으나 하천의 흐름에 따라 다소 간에 그 장소가 바뀌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강의 길목이자 전략상 요충지인 나루턱을 점령한 것은 완전한 승리의 확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제 에브라임 사람들이 도망하는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6: 그에게 이르기를 십볼렛이라 하라 하여 에브라임 사람이 능히 구음을 바로 하지 못하고 씹볼렛이라 하면 길르앗 사람이 곧 그를 잡아서 요단 나루턱에서 죽였더라. 그 때에 에브라임 사람의 죽은 자가 사만 이천 명이었더라.

  에브라임 지파는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 사람들과 같은 언어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히브리 문자 ()’사멕(ס)으로 발음하는 특유의 사투리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길르앗 사람들은 요단 나루턱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곡식의 이삭혹은 시내를 뜻하는 히브리 단어인 십볼렛(שׁבלת)‘을 발음하게 하여 그들이 씹볼렛이라 발음하면 에브라임 사람으로 인정하여 잡아 죽였습니다. 이 때 죽은 사람이 무려 42,000명이나 되었습니다.

 

7: 입다가 이스라엘 사사가 된 지 육년이라 길르앗 사람 입다가 죽으매 길르앗 한 성읍에 장사되었더라.

  입다의 매장지는 불분명하지만 여기서는 창 13:12처럼 유다 성읍들에라는 일반적인 문구가 쓰였습니다. 70인역과 다른 사본들은 그 장소를 구체적으로 길르앗의 미스베로 적고 있습니다.

 

  8-15: 입다 사후에 일어난 입사, 엘론, 압돈의 세 명의 사사들에 의해 이스라엘이 25년 동안 평화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특히 자손의 번성과 빈번한 타국인과의 혼인 사례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이는 이들 세 사사 시대 동안 백성들이 전쟁을 모르는 채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8: 그의 뒤에는 베들레헴 입산이 이스라엘의 사사이었더라.

  ‘그의 뒤에는이라는 무구는 사사들의 교체 시에 사용된 것으로, 입다의 뒤를 이은 입사, 그 후의 엘론과 압돈이 입다의 이야기에 종속되어 있음을 뜻합니다. ‘베들레헴 입산이곳은 유다 지파의 베들레헴인지, 아니면 나사렛 서북쪽 11km에 위치한 스불론 땅의 베들레헴(19:15)인지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가 요세푸스는 입산이 유다 베들레헴 출신이라 하였고, 이를 근거로 고대 히브리 전승은 입산을 보아스(2:1)와 동일 인물로 추측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기초로 볼 때 별로 신빙성이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옷니엘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사들은 북왕국 이스라엘에 속한 지역에서 활동하였고, 또한 유다 지파에 속한 베들레헴을 명칭할 때에는 그냥 베들레헴이라 하지 않고 유다의 베들레헴혹은 베들레헴 에브라다라고 언급했기 때문입니다(5:2).

 

9,10: 그가 아들 삼십과 딸 삼십을 두었더니 딸들은 타국으로 시집보내었고 아들들을 위해서는 타국에서 여자 삼십을 데려왔더라. 그가 이스라엘 사사가 된 지 칠 년이라. 입산이 죽으매 베들레헴에 장사되었더라.

  입산은 입다와는 대조적으로 아들, 딱 각각 30명씩을 자식으로 두었습니다. 그는 딸들을 타국으로 시집보내거나, 혹은 타국 여자들을 며느리로 삼아 정치적 동맹을 통한 자기의 신분적 입지를 강화하였습니다. 여기에서 타국은 이방 족속이 아닌 타지파를 가리키는 것으로 추측이 됩니다.

 

11: 그의 뒤에는 스불론 사람 엘론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십 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더라.

  입산이 죽자 가나안 북쪽에 있는 스불론 사람 엘론이 사사가 되어 10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엘론이란 이름은 테레빈 나무혹은 백향목이란 뜻으로 구약 성경에서 이 사람 외에 스불론의 둘째 아들(46:14)과 에서의 장인인 헷 사람(26:34; 36:2) 엘론이 있습니다. 엘론이 다스리기 시작한 때에 블렛 사람들의 40년간 속박이 이미 시작이 되었고(18:1) 그 때 즈음에서 삼손이 태어났다고 보고 있습니다.

 

12: 스불론 사람 엘론이 죽으매 스불론 땅 아얄론에 장사되었더라.

  ‘엘론아얄론은 자음만을 보면 동일한 글자입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이 성읍은 엘론이 거기 장사되었기 때문에 아얄론이라 불려진 것 같으며 단 지파에 속한 아얄론은 아닌 것 같습니다(19:43).

 

13: 그의 뒤에는 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이 이스라엘의 사사이었더라.

  압돈은 아멜렉 사람의 산지에 있는 에브라임 지파에 속한 비라돈 사람입니다. 이 압돈으로 인해서 여호수아 시대 이래로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던 에브라임 사람들이 다시 명성을 얻었습니다. 비라돈은 에브라임 북쪽 곧 세겜 땅의 서쪽에 있는 현대의 페라타로 알려져 있습니다.

 

14: 그에게 아들 사십과 손자 삼십이 있어서 어린 나귀 칠십 필을 탔었더라. 압돈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팔년이라.

  엘론과 마찬가지로 압돈도 그 자손이 번창하였습니다. ‘어린 나귀 칠십 필이라는 구절을 볼 때에 압돈의 후손들은 관직에서 일하는 자 혹은 뛰어난 인물로 부귀영화를 누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15: 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이 죽으매 에브라임 땅 아말렉 사람의 산지 비라돈에 장사되었더라.

  에브라임 땅의 비라돈으로 지목된 이 명칭은 과거에 있었던 어떤 사건이나 행적으로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즉 고대에 아말렉 족속이 그곳에 거주했거나 아니면 이스라엘과의 전쟁이 과거에 있었음을 암시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곳이 아말렉 사람의 어떤 고립된 당이 아니라면(17:8-13; 25:17-19), 아마 아말렉 사람의 산지라는 것은 아말렉의 침략과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3:13; 6:3; 7:12; 10:12).

 

  입다 이후에 3명의 사사에 대하여 기록할 때에 정치, 종교적 행위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은, 오히려 그들에게 특별히 나쁜 점이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긍정적인 측면에서는 저들의 큰 과오가 없이 이스라엘을 잘 이끌었다고 할 수 있으며, 후손에 대한 악행도 보도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자식 또한 잘 다스린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