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 쉬운 성경 말씀

갈급한 내 영혼

chukang 2009. 10. 10. 19:52

갈급한 내 영혼 히브리서 6:9-20

 

목이 마르면 어떻게 하면 되나요? 물을 마시면 됩니다. 축구 경기하는 모습을 보면, 잠깐만 틈이나도 선수들이 물병을 들어 물을 마시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또 배가 고프면 밥을 먹어야 합니다. 몸이 필요로 하는 것들은 반드시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필요한 것은 반드시 먹어야만 합니다. 갈급할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먹든지 마시든지 해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갈급하다는 것은 은혜를 사모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먹어도 갈급할 수가 있습니다. 즉 기도를 해도 부족함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예배를 드려도 허전함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성경을 읽어도 마음에 와 닿지 않을 경우도 있는 것이지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마귀의 역사가 있을 수가 있습니다.

마귀의 역사라고 하면 어떤 큰 사건이나, 아주 큰 신앙적인 잘못이나 그런 것을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마귀는 작은 것에서부터 우리를 갉아 들어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작은 것에 상처를 받고, 그 상처가 낫지 않으면 더 큰 상처로 커져가서 슬픔과 고통과 좌절로 이끌려 가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마귀의 가장 큰 역사는 말씀을 빼앗아 가거나, 왜곡을 시킨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제일 무서운 것입니다. 그래서 "작은 일에 충성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큰 사람, 큰 일꾼이 되고 싶다면, 작은 것부터 살펴보고 실천하는 습관이 들어야 합니다.

마귀는 말씀을 빼앗아 가기 위해서 작은 일에 대하여 소홀히 지나치게 만들기도 하고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생각을 하게 만들기도 하고, 슬픈 일이 생기게도 하고, 짜증이 나게 만들기도 하고, 지나친 걱정을 하게 만들기도 하고, 죄를 부각시켜서 내 자신을 아주 초라하게 생각하게도 만들지요. 마음의 상태가 이렇게 되면 은혜가 떨어지고 갈급한 상태가 되는 것이지요.

 

둘째는 신앙의 원리를 확실하게 알지 못하고 있을 수가 있습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은 나의 구원을 위하여 어떤 일을 행하셨고, 또 하실 것인가? 소명-중생-회심(회개)-믿음(신앙)-칭의-양자-성화-견인-영화의 구원의 9단계를 확실히 알아두면 흔들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알기는 알 것 같은데,, 그래도 무엇인가 허전하다면.... 설교를 들어도 그 때뿐이라면.... 아직까지 신앙의 원리를 확실하게 부여잡고 있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셋째는 내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확실히 알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도대체 나라는 존재는 어떤 존재인가?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내가 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나의 과거, 현재, 미래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과, 예수님께서 나를 구원하시는 것은 내가 잘나서, 내가 똑똑해서, 내가 착한 일을 해서, 내가 성경을 읽어서.... 이 모두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요, 선물이라는 사실입니다. 많은 중요한 요소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자신에 대해서 알아야 구원의 진리를 깨닫을 수 있고,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를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이것만으로도 갈급함은 상당히 해소될 수 있습니다.

 

넷째는 감사하는 생활이 없지 않았을까요?

이것은 아주 무서운 것입니다. 마귀가 제일 좋아하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마귀는 감사가 없는 성도를 매우 좋아합니다. 감사가 없는 성도는 마귀의 밥과 같이 될 수 있습니다. 감사를 해야 하나님께서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신다는 사실을 아시는지요? (빌립보서 4:6,7) 감사하는 성도는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기 때문에 악한 영이 틈타기가 어렵습니다. 악한 영이 틈타는 것은 곧 마귀의 역사입니다. 첫번째의 현상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감사가 없다는 것은 곧, 불평, 불만, 슬픔, 걱정, 고통, 비방....... 그리고 모든 것이 남의 탓으로 보입니다. 나는 잘하는데 남 때문에, 너 때문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어야 행함으로 나타납니다. 행함이 있어서 칭찬을 받는 믿음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소금과 빛"의 생활입니다.

 

다섯째는 기도가 부족하지 않을까요?

기도가 부족하면 허전합니다. 영혼이 갈급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기도를 했다고 해서 갈급함이 다 해소되지 않습니다. 기도한 후에 반드시 행함이 따라야 합니다. 실컷 기도하고 미워하는 것은 안 되겠죠? 기도하고 용서 못하면 안 되겠죠? 기도는 하나님과의 약속입니다. 이렇게 살겠습니다 해 놓고 저렇게 살면 안 되겠죠? 우리의 삶은 "기도하면서 살고, 기도한 대로 사는 것" 이야말로 최상의 최고의 최선의 신앙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갈급하다는 것은 결국 영적인 문제입니다.

혹시 내가 좋지 않은 환경에 속해 있는지를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환경으로 인하여 갈급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나 자신도 모르게 악한 것이 내 영혼을 흐트러놓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항상 내 곁에 있습니다. 그리고 해결 방법도 바로 내 옆에 있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내 자신의 생활 속에서 신앙적이 아닌 것이 있나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영적인 갈급함은 은혜를 더욱 사모하는 마음에서 일어나기도 하지만, 악한 것이 틈탔을 때에 이것을 물리치라는 내 영혼의 부르짖음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신앙의 원리, 구원의 원리, 나라는 존재를 아는 것은 신앙서적을 통하여 반드시 배워야 합니다. 체계적으로 배워야 흔들리지 않는 기초를 가질 수가 있습니다. 말씀을 알기는 알아도 이 말씀을 어떻게 적용을 시키고, 이 말씀이 구원과 어떻게 관련이 되고, 이 말씀이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지, 나중에 적용을 시켜야 하는 지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 볼까요? 어떤 사람이 와서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에 대하여 질문을 하기도 하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 말이 맞을까요 틀릴까요? 구원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예처럼, 신앙의 체계적인 기초가 없기 때문에 이단이 와서 이렇게 저렇게 둘러대며 유혹하면 넘어가는 것입니다. 신앙의 기초를 세우기를 원한다면 "칼빈주의 5대 교리"를 통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고 정확합니다.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대소요리문답도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오늘 말씀에서는 이 갈급함에 대하여 어떤 해결책을 주셨을까요? 바로 ‘소망’입니다. 이 소망을 꼭 붙들어야만 된다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믿음의 조상’이라고 별명이 붙은 아브라함을 소개하면서 이 소망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정말로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받은 사람임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 아브라함에게는 영적인 갈급함이 없었을까요? 15절을 보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주셨는데, 그 약속을 받기까지는 오래 참는 기간이 필요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오래 참는 기간이 아브라함에게는 갈급한 시간들이었다는 것이죠.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지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나안 땅에 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이방인에 대한 두려움과 흉년으로 인한 고통이었습니다. 즉 현실적인 문제, 육적인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은 이런 육신적인 문제로 인하여 영적인 소망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결국은 애굽에까지 내려갔다가 큰 망신을 당하고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또 아비멜렉에게도 망신을 당하였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첫째는 마귀의 역사입니다. 작은 것을 크게 부각시켜서 우리들을 타락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들에게 먹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닐 수가 있지만, 그것은 사람의 생각이고, 주님께서는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에 아브라함을 이끌고 오셨을 때에는 굶겨 죽이려고 그렇게 하셨을까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데리고 나와서 광야에서 굶겨 주이시려고 그러셨나요? 그렇지 않은 것은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만나 내려 먹이시지 않았습니까? 메추라기 보내어 고기 먹게 하지 않으셨나요? 40년 동안 옷과 신발을 공급해 주시지 않으셨나요? 그런데 막상 성도들도 이같이 육신적인 문제를 딱 부딪치게 되면 아브라함과 같이 애굽으로 도망갈 생각부터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알면서도 그렇게 되는 것은 곧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또 주신다는 아들을 아직 안 주셨습니다. 1년이 지나, 2년이 지나, 3년이 지나 10년, 20년, 무려 30년이나 지나서야 이삭을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 사이에 아브라함은 어떤 모습을 보였습니까? 그 아내 사래도 어떻게 했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하녀 ‘하갈’을 아브라함에게 주어서 아들을 낳게 했습니다. 이것도 역시 하나의 육신적인 갈급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마귀는 육신과 관계되는 작은 일을 크게 부각을 시켜서 사람의 지혜로 그것을 해결해 나가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또한 아브라함의 이러한 모습은 신앙의 원리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한번 자신을 태하시고 약속을 하셨다면 반드시 이루어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셨다면 절대로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게 된 이유는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하여 바로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대단한 사람이었습니까? 네 대단한 사람이기는 했지만, 그 아버지가 우상숭배자요, 우상을 만들어 파는 사람이었습니다. 우상과 관련된 대단한 사람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런 자신을 하나님께서 택하셨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택함은 무조건적 선택이 아닙니까? 그가 하나님께 기도해서 하나님께서 택하셨나요? 그가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나요? 그가 참 착한 행실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성경에 기록하고 있나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셨습니다.

우리도 역시 동일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지 않으셨지 않습니까? 그러나 한 번 부르셨으면 우리는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게 되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아무 것도 아닌 존재, 죄와 허물 속에서 방황하고 있는 우리를 부르시고 자녀로 삼으신 하나님을 믿고 따라야 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죄를 짓게 된 것도 다른 면에서 보면 감사하는 마음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먹을 것에 대하여 어려움이 닥치니까, 그 동안 인도하시고 먹여 살려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에 데려다 놓으셨는데, 왜 이렇게 흉년을 주시고 힘들게 하십니까? 원망이 있었다는 것을 추측해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힘들어도 가나안에 남아 있어야지 왜 애굽으로 갔겠습니까? 감사하지 않으니까 마귀가 속삭입니다. 애굽으로 가! 거기에는 곡식이 넉넉하고 얼마나 살기 좋은지 몰라! 그 유혹에 넘어가고 만 것입니다.

아브람이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신뢰하고 있었다면,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에 어떻게 했을까요? 네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그 어느 곳에서도 아브라함이 기도하고 애굽에 내려갔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기도가 부족하기 때문에 마귀가 틈을 탄 것입니다. 거꾸로 마귀가 틈을 타니까 기도도 하지 못했던 것도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 쪽이 앞선 순서이건 간에 결론은 마귀에게 넘어가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어떤 것이든지 갈급함이 있을 때에 이 갈급함을 채워주는 것이 있지 않으면 넘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이 갈급함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채워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항상 넘어지고 쓰러지고 좌절하고 마귀의 놀림감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그건 아니니까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해결책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참고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얼마나 기다렸는데 또 더 기다려야 되나요? 내 생각에는 기다릴 만큼 기다린 것 같은데, 하나님은 더 참고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나보다 더 지혜로우시지요? 그러면 내 생각대로 기다리는 것을 포기해야 할까요? 아니면 하나님 말씀대로 더 기다려야만 할까요? 인내 할 때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내가 없으면 소망도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5:4을 보면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낳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인내한다는 것은 곧 연단을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냥 참고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저런 어렵고 힘든 일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것들을 이겨내면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기지 못하면 소망은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거꾸로 소망이 있다면 인내하게 됩니다. 우스개소리로 ‘생일상 얻어먹으려고 삼일을 굶는다.’는 말도 있지만, 어머니가 아들에게 생일날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느라고 시간이 좀 늦어졌는데, 아들은 그냥 배가 고프다고 라면 하나 끓여 먹었습니다. 조금만 더 참으면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지만 그것을 포기하고 당장의 배를 채우기가 급급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더 좋은 것으로 주시려고, 우리를 기다리게 하시고, 우리를 연단하시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19절을 보세요. “소망은 영혼의 닻”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의 흔들리는 영혼을 꼭 붙들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소망입니다. 하나님은 미쁘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에 한 번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게 하시는 소망의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우리가 소망을 잃어버리게 되면 우리의 영혼은 그야말로 추풍낙엽입니다. 망망대해에 일엽편주와 같은 신세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이 소망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인내해야 합니다. 인내하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기도해서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바로 성도의 구원의 여정과 같은 것입니다. 크게 보면 구원의 여정이지만, 이구원의 여정 속에는 크고 작은 일들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겪는 모든 힘들고 어려운 일들, 또 기쁘고 즐거운 일들 이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항상 기쁘고 즐거운 일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런 기쁘고 즐거운 일들은 거주 주어지지 않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소망을 가지고 기도하면 인내할 때에야 비로소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제 밀려오는 파도에서 우리의 눈을 옮겨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주어진 환경이 힘들고 어렵다고 좌절하고 절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붙들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주님만 믿고 의지할 때에 반드시 소망의 항구로 인도하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소망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소유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선정한은혜복음성가Vol[1] 1-04 내가어둠속에.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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