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실과 아모스 8:1-3
아모스는 다섯 가지의 환상을 보았습니다. 황충, 불, 다림줄, 여름 실과, 성전의 부서진 문설주입니다. 이들 환상이 주는 메시지는 바로 북이스라엘의 멸망입니다.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확정지으셨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황충은 말 그대로 벌레가 갉아 먹는다는 상징입니다. 풀, 나무, 심지어는 집이나 텐트까지 유기질은 다 갉아 먹어서 없애버리기 때문에 멸망의 상징입니다. 불은 불로 태우는 심판을 의미합니다. 다림줄은 납이나 주석과 가은 무거운 물질로 추를 만들어 수평이나 수직을 잡아 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것은 상징적으로 참되고 정확한 하나님의 공의를 뜻합니다. 따라서 ‘다림줄로 띄우고 쌓은 담’이라는 (암 7:7) 말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절대 공의로 세우신 북이스라엘 왕국을 가리킵니다. 다림줄을 주님께서 잡으셨는데, 그것은 곧 정확한 공의로 심판하실 것임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다림줄은 정확하다는 뜻이 담겨있기 때문에 지옥에 갈 자는 반드시 지옥에 갈 것이며, 구원을 얻을 자는 반드시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여름 실과를 보여주셨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여름 실과는 일 년 중 마지막 시기에 수확을 합니다. 여름 실과는 히브리어로 ‘카이츠’라는 단어인데, ‘끝’이라는 단어는 ‘케츠’라고 합니다. 이 두 단어는 같은 뜻은 아니지만 발음이 유사하여 빗대어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가리켜 ‘언어유희’라는 합니다. 우리말에도 ‘동음이의어’가 있어서 말장난을 할 때에 사용하기도 합니다. 즉 여름 실과를 거두는 것은 일 년 추수 중 맨 마지막에 있는 일로서 북이스라엘 대한 최후 심판의 시기가 임박하였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름 실과의 특징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쉽게 상한다는 점입니다. 여름 실과는 맛이 달고 좋지만 그만큼 더 빨리 상하게 됩니다. 여름 실과가 매달려 있을 때에는 탐스럽고 아름답게 보입니다. 일단 따게 되면 대부분 1주일 정도가 지나면 상해서 먹을 수가 없게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또 실과를 따 버린 나무나 줄기는 정말 초라하게 보입니다. 즉 현재는 번영한 듯 보이지만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이 실현 되엇을 때에 북이스라엘이 처하게 될 비참한 모습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보여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름 실과가 주는 교훈은;
첫째,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말에도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이 있습니다. 색깔은 아주 맛있게 보이지만 먹어 보면 쓴 맛을 내는 것입니다. 겉모습만 번지르르한 것을 말합니다. 고려 말기에 관료로써 조선의 건국 공신이 된 이직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가 지은 시조 중에 “가마귀 검다 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 겉이 검은들 속조차 검을소냐. 겉 희고 속 검은 짐승은 네야 긘가 하노라.”고 했습니다. 세종 7년에는 영의정에까지 오른 사람입니다. 당시 고려의 충신들은 정몽주와 같이 죽거나 숨어 버렸습니다. 그렇지만 숨은 사람들 중에서도 나와서 조선에서 벼슬을 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숨어서 충절을 지킨다는 사람들이 볼 때에는 그들은 ‘가마귀’ 즉 검은 짐승과 같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직은 오히려 그들 중에는 겉만 하야면서도 속이 검은 짐승과 같은 사람도 있다고 비꼬는 시조를 지어서 그들의 표리부동을 지적한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도 열매도 겉모습은 아름다고 멋있고 맛있고 좋아 보이는 것들이 있지만, 그 속은 겉모양과 아주 다른 것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요즘 세상이 바로 그렇습니다. 눈을 현혹시키는 포장, 디자인으로 유혹을 합니다. 껍질은 매우 좋아 보이지만 알맹이는 보잘 것 없고, 실속 없는 것들도 많이 있는 것입니다. 바로 여름 실과처럼 겉으로 보기에는 좋아 보이는 이 세상의 것, 곧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충동질하는 모든 것에 현혹되지 말아야 할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2:15-16을 보면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쁜 옷을 입었다고 마음이 예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돈을 많이 벌었다고 성공한 사람이 아닙니다. 공부를 많이 했다고 훌륭한 인격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큰 교회에 다닌다고 큰 믿음을 가진 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하지 않습니까? 성도라면 주님을 닮아가는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언제나 겸손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나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말만 번지르르 하게 하는 사람보다는 묵묵히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을 높이기보다는 남을 인정해 줄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겉이 화려할수록 속은 썩어 있다는 것입니다.
현 세상이 겉으로 화려하고 번성하게 보일수록 오히려 그 내면은 더욱 심하게 썩어 하나님의 최후 심판을 재촉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는 경고입니다. 아브라함 시대에 번성하였던 소돔과 고모라가 바로 그와 같았습니다.
황량한 벌판과 바위산이 대부분인 가나안 지역과는 대조적으로, 푸른 초장과 시내물이 흐르는 요단 벌판, 그리고 석조로 웅장하게 세워진 소돔과 고모라 성이 얼마나 아름답고 멋있어 보입니까? 유목 민족이 바라볼 때에는 그곳에는 걱정이 없을 것 같아 보이지 않습니까? 롯이 거기에 현혹이 되어서 요단들에서 양을 먹이다가 점점 더 고모라 성으로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했고, 마침내는 성내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곳은 심히 타락한 곳이었습니다. 얼마나 타락했는지 하나님께서 그 성들을 멸망시키기로 작정을 하셨고, 롯이 아브라함의 조카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성을 멸망시킬 것을 미리 알려주시기도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통하여 롯과 그 가족을 구출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오늘날 과학 문명이 얼마나 눈부시게 발전했습니까? 아름다운 옷에 눈과 입을 즐겁게 해주는 볼거리와 먹을거리들이 얼마나 풍성합니까? 그러나 날이 갈수록 인간들은 그 지식으로 인하여 교만을 더해가고, 그렇게 좋은 먹을거리를 가지고서도 건강은 날로 떨어지고, 좋은 건물 좋은 자재를 사용하였다고 하는데, 공해 물질을 더 많이 배출이 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요즘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외치면서, 벌레 먹은 채소를 찾고, 가공하지 않은 원자재를 사용하여 가구를 만들고, 원목으로 된 집이나 황토로 지은 집은 짓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우리의 신앙을 화려하게 포장하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과 같이 제각기 서로가 큰 은사를 받았다고 외치고 있지는 않은지요. 바리새인들과 같이 나는 십일조를 내고 이레에 한 번씩 금식을 한다고 공포하면서 씻지도 않고 머리를 풀고 길거리 모퉁이에 나와서 기도를 하는 모습을 보이는 신앙으로 포장하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도, 성령을 좇아 살지 아니하고, 허탄한 세상 것들을 좋아하고, 꾸미기를 좋아하고, 자신을 나타내기를 좋아하면서, 아모스 선지자가 말하는 것과 같이 ‘궁핍한 자를 삼키며, 땅의 가난한 자를 망케 하려는 자’들과 같이 되지 않았을까요? 체면 때문에 십일조를 드리고, 건축헌금하고 감사헌금을 할지언정, 구제와 전도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는 자가 아닌가요? 또 체면 때문에 교회에 나와서 앞자리에 앉아있지만 마음속에는 세상 것으로 가득 차 있어서, 설교는 들어오지도 않는 그런 죽은 예배를 드리고 있지는 않을까요?
아모스는 이런 자들은 심판 날에 그들이 소유하고 있던 이 세상에서의 모든 부귀영화를 박탈하고 오직 수치와 절망 속에서 애곡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더욱 심한 것은 이렇게 아무런 소망이 없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그 어떤 것도 알려주시지도 가르쳐주시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영적 기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 기갈이 찾아오게 되면 우상 숭배로 이어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사울 왕이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까? 도저히 앞날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찾아 간 곳은 신접한 여인이었습니다. 그곳에서도 속습니다. 신접한 여인이 불러낸 귀신이 사무엘로 가장을 하고 나타났지만 속고 마는 것이 아닙니까? 결국 그의 왕조는 당대로 끝이 나고 다윗이 이스라엘의 영원한 왕으로 등극하게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아모스는 오늘날 우리 성도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주고 있을까요?
1. 영적인 만족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누리는 행복이라는 것은 부귀영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얻을 수 있는 영적인 만족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이 주님께 찾아와서 유혹을 하지 않습니까? 첫 번째는 먹을 것으로 유혹을 했지만 주님께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시면서 물리치셨습니다. 두 번째는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도 다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지만, 주님께서는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물리치셨습니다. 세 번째는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서 세상을 보여주면서 내게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다 준다고 했지만 주님께서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하여 물리치실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 시험은 곧 물질에 대한 시험입니다. 두 번째 시험은 명예에 대한 시험입니다. 세 번째 시험은 권력에 대한 시험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보다 앞서지 못하는 것임을 분명히 밝혀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세상 것을 좇게 되면 영은 쇠퇴하고 죽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만나를 먹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일에는 내리지 않을 것이니 주으러 나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먹을 것에 욕심으로 인하여 안식일에도 만나를 주으러 나갔지만 만나는 얻을 수 없었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의 탐욕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는 것은, 예비 일에는 갑절로 거두게 해 주셨고, 그것을 확인까지 했었다는 사실입니다. 평소에 갑절로 거둘 수 없었습니다. 아껴서 남겨두면 벌레가 먹고 썩어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예비 일에 갑절로 거둔 것은 그대로 있어서 안식일에도 먹을 수 있게 해 주셨지만, 탐욕에 눈이 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히 들어도 순종하지 않는 백성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마다 주일마다 새벽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선포되고 있지만, 그 말씀을 듣기는 들어도 순종하지 않는 것은 곧 내가 ‘영적인 기갈’ 상태에 들어 가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내 마음이 흡족하고 만족하게 되려면 말씀에 거하며 순종하는 삶에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세상적인 것을 추구하는 결국은 멸망입니다.
야고보 선생은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 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 너희가 옳은 자를 정죄하였도다. 또 죽였도다.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약 5:1-6)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세상적인 모든 것들은 결국 석고 녹슬고, 불 같이 자기 살을 먹게 된다는 무서운 경고입니다. 이것은 곧 세상적인 것들을 추구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의 욕심을 채우는 모든 사람들은 최후 심판 때에 반드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된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3. 사랑의 실천을 하라는 것입니다.
아모스 당시의 부요한 자들, 권세자들은 헐벗고 가난한 자들을 도와주지 않고, 저울추를 속이고, 작은 돈으로 그들을 종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그들의 행위를 영영 잊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자기만을 아는 생활, 자기만 부자가 되면 되는 세상, 나만 배부르고 즐거우면 되는 세상은 사랑이 없는 세상입니다. 돈을 조금 주어서 하인이나 종으로 만들어 버리면서도 그것을 자선을 베푸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세상이 아모스 때의 세상이요, 오늘날의 세상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이들의 결국은 애통이 찾아올 것입니다. 곤고한 날이 찾아올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자에게 물 한 잔을 주는 것도 사랑이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시는 것과 같이, 너희도 하나님을 사랑해야 되고, 형제와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요일 4:20,21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만일 인생이라는 것이 죽음과 동시에 모든 것이 끝나고 그 후에는 아무 것도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굳이 힘들게 도덕적으로 선하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고, 그저 이 땅에서 살아 있는 동안 쾌락과 권세를 추구하며 마음대로 살다가 죽으면 그만일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의 인생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다음에는 모든 사람에게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였습니다(히 9:27). 사람은 누구나 이 땅에서 각기 행한 대로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에 들지 않도록 세상 끝 날까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제 마음대로만 살아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는 아모스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 성도들은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가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하고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은 모든 세상적인 재물과 권세와 명예보다 믿음을 소중히 여기고 굳건히 지켜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랑하며 선하고 올바른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힘들고 어려울 때 일수록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한 번 그의 자녀 삼으신 자는 끝까지 사랑하시며, 모든 환난에서도 견고히 믿음을 지키며 소망을 잃지 않는 자를 책임지시고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능력의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원한 소망인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달려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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