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사사기 제4장 강해: 사사 드보라와 바락

chukang 2014. 11. 1. 20:22

 

첨부파일 사사기 제4장 강해.hwp

 

사사기 제4장 강해: 사사 드보라와 바락

 

  여 사사 드보라는 가나안 북부 지역의 대표적 사사로, 하솔 왕 야빈의 20년간에 걸친 압제와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에 하나님의 은혜는 여자인 드보라를 사사로 세우시고, 군대 장관 바락과 협력하여 이스라엘을 야빈의 손에서 벗어나 평화를 찾게 하셨습니다.

 

  1-3: 사사 에훗과 삼갈의 활약으로 80년 동안 평화 가운데 지내던 이스라엘은 다시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솔 왕 야빈을 들어 이스라엘이 회개하기까지 무려 20년 동안 압제를 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침내 회개하고 부르짖는 이스라엘의 호소를 들으시고 사사 드보라를 세워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십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타락과 하나님의 징계와 그리고 구원의 악순환을 다시 보여주고 있는 본문이 주는 교훈은 하나님께 대한 범죄의 기준은 인간의 판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기준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죄는 계속되는 평안 중의 나태함에서 비롯되기 쉽다는 것입니다. 죄는 회개할 때까지 자신을 괴롭히는 올무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고 부르짖는 자의 음성을 결코 외면치 않으신다는 점입니다.

 

1: 에훗의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

  ‘에훗의 죽은 후에이 말은 역사적 시점의 변화를 알리며, 아울러 독자들로 하여금 에훗의 죽음 후에 이스라엘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합니다. 또한 이 말은 에훗 통치 아래서 누렸던 태평성태가 끝났음을 암시하며 동시에 배교와 재난의 시기가 임박하였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3:11 참고). ‘~ 악을 행하매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우상숭배에 빠졌음을 말합니다(2:19;3:7). ‘라고 하였으므로 죄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음과, 그들의 부르짖음이 진정한 회개의 부르짖음이 아니라 고통의 해결을 위한 부르짖음이었음을 알게 합니다.

 

2: 여호와께서 하솔에 도읍한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그들을 파셨는데 그 군대 장관은 이방 하로셋에 거하는 시스라요

  수 11:1-13에 의하면 하솔 왕 야빈이 갈릴리 지역의 여러 도시국가들과 연합하여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을 막으려다가 오히려 여호수아에게 패하여 하솔이 불태워졌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 절에서도 하솔 왕 야빈의 등장합니다. 야빈이라는 이름은 하솔 왕의 세습적 칭호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마치 애굽 왕들을 바로라고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에게 섬멸당한 하솔이 어떻게 하여 또 다시 강성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북부 가나안 지역에 다 진멸되지 않았던 몇몇 성읍들의 거민들이 연합하여 세운 나라일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솔은 갈릴리 북쪽 10.6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갈릴리의 주요 통상로가 지나가는 전략적인 요충이라고 합니다. ‘그들을 파셨는데이스라엘의 소유권을 하솔 왕 야빈에게 넘겨주었음을 말합니다. 즉 이스라엘로 하여금 야빈의 종이 되게 하였다는 의미입니다. ‘이방 하로셋’ ‘이방(고임:גוים)’이방나라’ ‘이방인을 의미하는 고이의 복수형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고임을 족속의 잉름이나 지명으로 볼 것이냐 아니면 이방인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냐 입니다. 개역 성경에서도 수 12:23과 창 14:1에서는 지명으로 쓰고 있는 반면에 사 9:1이방의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 중 어느 것이 더 정확한 이해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위치가 갈릴리 지역이었던 것은 틀림없습니다. ‘하로셋은 중앙 평원의 서쪽 끝에 있는 기손 골짜기에 위치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3: 야빈 왕은 철 병거 구백 승이 있어서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학대한 고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철 병거는 고대 힛타이트를 중심으로 하는 팔레스틴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강력한 병기로 애굽까지 그 명성이 알려질 정도였습니다(1:19). 하솔 왕 야빈의 군대 장관인 시스라가 철 병거 구백 승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그 당시에 대단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이런 군사력은 20년 동안이나 이스라엘을 압제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솔의 침공을 받은 북부 갈릴리 지역의 납달리나 스불론 지파의 백성들은 심한 압제와 착취를 당했습니다.

 

  4-16: 하나님께서는 범죄의 대가로 야빈에 의해 학대를 당하던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에 그들을 구원할 자로 여선지 드보라를 세우셨습니다. 드보라와 군대 장관인 바락의 활약상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20년 동안 야빈의 압제에 시달린 북부 갈릴리 지방의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변변한 무기를 갖출 수 없었음은 물론 군사 훈련이나 전쟁의 전술도 생각할 수도 없는 처지였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당시 최고의 철 병거를 900승이나 무장한 야빈의 군대에 대항해서 싸운다는 것은 마치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겪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드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승리를 확신하며 바락과 함께 야빈의 군대에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이는 전쟁의 승패는 군사의 수가 무기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에 달려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말씀에 순종할 때에 놀라운 역사가 함께 한다 진리입니다.

 

4: 그 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랍비돗(לפיד)’횃불’ ‘번개등의 의미를 지닌 라피드(לפיד)’의 여성복수형으로 횃불들혹은 번개들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랍비돗의 아내번개의 아내라고 번역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그 이름의 의미가 번개바락이 랍비돗과 동일 인물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즉 바락이 드보라의 남편이라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이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없습니다. ‘여선지는 어떠한 목적을 위해 하나님께로부터 영감을 받은 여자 선지자란 의미입니다. 선지자들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계획을 알려주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선포하며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기 위해 특별히 선택받은 자입니다. 그리고 드보라는 꿀벌을 의미합니다.

 

5: 그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와 벧엘 사이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 거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은 그에게 나아가 재판을 받더라.

  베냐민 지파의 경내에 있는 라마는 아셀 지파의 라마(19:29, 30)‘나 납달리의 라마(19:32, 36), 그리고 시므온의 라마(19:8)와는 구별이 됩니다. 이곳은 예루살렘 북쪽 약 9km 지점이라고 합니다. ’라마와 벧엘 사이드보라만 여기서 활동한 것이 아니라 사물엘도 사사 집무를 이곳들을 오가며 수행했습니다(삼상 7:16). 이러한 사실은 이곳이 드보라 이후 사사시대의 행정 중심지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 거하였고드보라의 종려나무는 드보라가 심었기 때문이 아니라 드보라가 그 종려나무 아래서 재판이나 공무를 수행한 것에 유래하며 후대의 사람들이 붙인 이름일 것입니다. 종려나무 아래 거하였다는 것은 그곳에서 장막을 짓고 살았다는 것이 아니라 종려나무 아래 앉아서 공부를 집행했다는 뜻입니다. ’거하다의 히브리어 야솨브(ישׁב)거하다의 의미뿐만 아니라 앉다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재판은 사사의 집무 중 하나였으며, 백성들이 그를 사사로 인정하며 따랐습니다.

 

6: 드보라가 보내어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납달리 게데스에서 불러다가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하지 아니하셨느냐 이르시기를 너는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일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으로 가라.

  ‘바락천둥, 번개라는 뜻입니다. 이는 그가 여호와의 번쩍이는 칼이 되기 위해서 부름 받았음을 암시합니다. ‘게데스에서 불러다가게데스는 북부 갈릴리의 구릉성 산지에 있던 가나안 성읍(12:22)이었다가, 여호수아의 정복으로 인해 납달리 지파에게 분배되었습니다(19:32). 도피성 중의 하나입니다(20:7). 이곳을 유다 남쪽의 에돔 경계에 위치한 게데스(15:23)나 잇사갈의 성읍인 게데스(19:20)와 구별하기 위하여 갈릴리 게데스’(20:7), 혹은 납달리 게데스라고 부릅니다. 드보라는 바락에게 자신이 말하려는 것이 자신의 소망이나 갈망을 담은 의견이 아니라 신적인 기원과 권위를 지닌 명령임을 선포하기 위하여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하지 아니하셨느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납달리자손과 스불론 자손을 전투에 참여시킨 것은 이들이 하솔 왕 야빈에게 직접적으로 학대를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거느리고‘ ’거느리다‘(라카:לקה)뽑다‘, ’소집하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납달리와 스불론 자손 중에서 일만 명을 뽑아서 전투에 참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볼 산은 이스르엘 골짜기 북동쪽에 있는 해발 400m 높이의 원뿔형 봉우리입니다. 이 산은 납달리, 스불론, 잇사갈 지파의 경계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세 지파의 군사력을 집결시키기 용이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곳은 높은 고지였기 때문에 평지에서 철병거로 무장한 적을 아래에 두고서 공격하기 용이한 장소입니다. 따라서 다볼 산으로 가라는 명령은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내려진 명령임을 알 수 있습니다.

 

7: 내가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 병거들과 그 무리를 기손 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그를 네 손에 붙이리라 하셨느니라.

  여기에서 기손 강은 평소에는 마른 땅이었다가 비가 오면 강으로 변하는 와디’(wadi:나할:נחל)입니다. 다볼 산 서남쪽 약 16km 지점에 있는 에스드랄론 남쪽 산악지대에서 발원하여 스불론, 납달리, 잇사갈 지역을 통과하여 지중해로 흘러들어갑니다. 기손 강가에는 넓은 들이 있어 철병거를 배치하기엔 적당한 장소입니다. ‘이끌어’(마솨크:משׁך)끌다’, ‘유인하다의 뜻을 지니고 있으므로 기손 강으로 이끈다는 것은 기손 급류를 전략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 시스라의 군대를 유인해 들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이는 메말라 있던 강에다 폭우를 내려 그 일대를 범람케 함으로써 마른 평야지대에서만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야빈의 철병거가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게 만든 하나님의 전략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5:20,21).

 

8: 바락이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는 가지 않겠노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바락은 드보라가 그와 함께 전쟁터에 나가야만 한다는 조건 하에서 그 명령을 받아들였습니다. 그 순종은 조건을 앞세우는 조건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여호와의 절대 명령에 대한 합당한 응답이라고 할 수 없을뿐더러 드보라를 통한 하나님의 신탁을 의지한 것도 아닙니다. 즉 바락의 불신앙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

 

9: 가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그러나 네가 이제 가는 일로는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임이니라 하고 드보라가 일어나 바락과 함께 게데스로 가니라.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선지자가 함께 간다는 것은 바락과 그의 군사들에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신시킬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확신을 심어주는 효과가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바락의 조건부 순종은 승리의 영예가 그에게 돌아가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이라는 여호와의 계획은 적장을 잡아 완전한 승리를 가져오는 것은 바락과 그의 군대가 아니라 한 여인에 의하여 이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10: 바락이 스불론과 납달리를 게데스로 부르니 일만 인이 그를 따라 올라가고 드보라도 그와 함께 올라가니라.

  ‘게데스로 부르니’ ‘부르다(자아크:זעק)’소집하다, 불러 모으다의 뜻을 지니고 있으므로 게데스로 부른다는 것은 게데스에서 군사들을 소집했음을 말합니다. ‘그를 따라 올라가고올라간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전투지역이 높은 지대에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구약성경에서 일반적으로 전쟁에 나감을 나타낼 때 쓰는 전문용어입니다. 따라서 일만 군사가 바락을 따라 전쟁을 치를 다볼산으로 갔음을 말합니다.

  여기에서 아주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왜 드보라는 바락에게 명령을 내리지 못하고 여호와의 명령임을 알리고 전쟁에 참여하도록 하였을까요? 이 점은 여자 목사를 주장한 사람들이 근거로 삼고 있는 구절이기 때문에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이는 드보라가 행정적인 면에서는 선지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지만, ‘군사권을 갖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즉 완전한 국가의 지도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바락이 국가의 통솔자인 것입니다. 열왕기상하, 역대상하를 보게 되면 선지자가 왕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즉 여자의 남자의 머리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고전 11:3) 그래서 교회에서 여자가 머리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여자 목사들이 주장하고 있는 이 구절은 그들이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11: 모세의 장인 호밥의 자손 중 겐 사람 헤벨이 자기 족속을 떠나 게데스에 가까운 사아난님 상수리나무 곁에 이르러 장막을 쳤더라.

  ‘모세의 장인 호밥10:29, 1:16 참고. 겐 사람 헤벨이 자기 족속을 떠나(파라드:פרד)는 스스로 나누고, 스스로 끊어서 자기 씨족인 호밥 족속에서 스스로 분리하여 나갔음을 말합니다. 겐 족속의 정착지인(1:16) 유다의 남쪽 황무지에서 떠나 납달리 지경 안에까지 이주해 왔음을 뜻합니다. 그런데 드보라의 출정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가 갑자기 헤벨이 언급되는 까닭은 17-22절에 걸쳐 소개되고 있는 헤벨의 아내야엘의 소속 가문을 소개하기 위함입니다. 동시에 헤벨이 겐 족속의 거주지인 남방에서 북방인 납달리까지 이주해 온 것은 야엘의 야빈의 시스라를 죽이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하나님의 뜻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사아난님 상수리 나무는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으나 다볼과 가데스 사이의 구릉지대에 있는 얍느엘 계곡의 한 곳으로 보고 있습니다. 19:33에 의하면 납달리의 남쪽 경계에 위치한 성읍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2: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다볼 산에 오른 것을 혹이 시스라에게 고하매

  시스라 쪽에서 이스라엘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정탐꾼은 이스라엘이 전쟁을 위하여 다볼 산으로 오르는 것을 탐지하고 시스라에게 알려준 것입니다.

 

13: 시스라가 모든 병거 곧 철 병거 구백승과 자기와 함께 있는 온 군사를 이방 하로셋에서부터 기손 강으로 모은지라.

  이스라엘의 일만 병사가 공격 태세를 갖추었다는 정탐꾼의 보고를 받은 시스라의 대응은 자신이 관할하고 있는 모든 철 병거 9백승을 기손 강으로 모았습니다. 기손 걍 유역에는 철 병거를 세울 수 있는 약간의 넓은 땅이 있었기 때문에 시스라의 행동은 타당한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시스라의 행동은 드보라를 통하여 밝힌 하나님의 전략이 성취되어 가고 있음에 대한 증거입니다.

 

14: 드보라가 바락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붙이신 날이라 여호와께서 너의 앞서 행하지 아니하시느냐 이에 바락이 일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에서 내려가니

  ‘일어나라(:קום)’은 단순히 일어나다’ ‘착수하다의 의미를 넘어 신적인 승리가 보장된 전쟁에 두려워 말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라는 의미입니다(2:17; 7:2; 7:15). ‘붙이신 날이라이는 단순히 시스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20년간 계속된 야빈의 압제 아래서 해방되는 날임을 뜻합니다. 이스라엘 군대는 시스라가 있는 기손 강으로 내려가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15: 여호와께서 바락의 앞에서 시스라와 그 모든 병거와 그 온 군대를 칼날로 쳐서 패하게 하시매 시스라가 병거에서 내려 도보로 도망한지라.

  전쟁은 오직 하나님께 달려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증명해 주는 구절입니다. 전쟁은 사람이 하지만 승패는 오직 하나님께 달린 것임을 명확하게 기록하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시스라가 패하여 도망을 하였습니다.

 

16: 바락이 그 병거들과 군대를 추격하여 이방 하로셋에 이르니 시스라의 온 군대가 다 칼에 엎드러졌고 남은 자가 없었더라.

  바락은 시스라가 아직껏 병거부대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의 군대를 추격하되 시스라의 본거지인 이방 하로셋까지 진격했습니다. 이는 시스라의 군대가 에스드랄론 평원의 서쪽으로 도망쳤음을 뜻합니다.

 

  17-24: 이스라엘과의 전투에서 패한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의 최후와 야빈의 파멸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의 다볼 산 전투에서 패한 시스라는 간신히 목숨만을 건져 평소 야빈과 친분이 있던 해벨의 집으로 도망하여 헤벨의 아내 야엘의 장막에 숨었습니다. 그러나 시스라는 드보라의 예언대로 헤벨의 아내 야엘의 손에 피살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17: 시스라가 도보로 도망하여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의 장막에 이르렀으니 하솔 왕 야빈은 겐 사람 헤벨의 집과 화평이 있음이라.

  야엘의 남편 헤벨의 집은 게데스 근처에 있었으므로 시스라가 도망한 곳은 하솔이라고 주장하는 견해가 많습니다. 이는 시스라가 도망한 곳은 자기 군사들과는 달리 동북쪽이었음을 말합니다. 이와 같은 시스라의 도주 방향은 바락을 비롯한 이스라엘 군대를 속이기에 적당했을 것입니다. 시스라가 야엘의 장막으로 피신한 이유는 야빈과 헤벨은 화친 관계 즉 서로 우호적이며 친분관계가 두터웠기 때문입니다. 이는 헤벨의 종족 겐 족속이 이스라엘에 우호적이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라고 하겠습니다.

 

18: 야엘이 나가 시스라를 영접하며 그에게 말하되 나의 주여 들어오소서 내게로 들어오시고 두려워하지 마소서 하매 그 장막에 들어가니 야엘이 이불로 덮으니라.

   헤벨의 아내 야엘은 군대 장관 시스라를 환대하여 그를 안심시켰습니다. 그를 숨기기 위하여 이불로 덮었습니다. 단순한 이불이라기보다는 자신의 몸을 숨기는데 필요한 것이므로 유목민의 장막 가까이에 있던 침상 덮개로 이해하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19: 시스라가 그에게 말하되 청하노니 내게 물을 조금 마시우라 내가 목이 마르도다 하매 젖부대를 열어 그에게 마시우고 그를 덮으니

  목이 말라 물을 요청한 시스라의 말은 그가 이스라엘 군대의 추격을 피해 급박하게 도망쳐 온 데 따르는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부대는 액체를 담기 위해 만든 가죽부대로, 일반적으로 포도주나 우유와 물 등의 음료를 담는데 사용합니다.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젖은 곧 엉긴 적(5:25)으로 요쿠르트와 비슷한 최고급 우유를 말합니다. 이처럼 야엘이 최고급 우유로 시스사를 마시게 했다는 것은 그에 대한 대접이 극진했음을 보여줍니다.

 

20: 그가 또 가로되 장막 문에 섰다가 만일 사람이 와서 네게 묻기를 여기 어떤 사람이 있느냐 하거든 너는 없다 하라 하고

  쫓기는 자는 당연히 자기가 오지 않았다고 말해 달라고 하는 것처럼 시스라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정보가 유출되는 것을 방비한 것입니다.

 

21: 그가 곤비하여 깊이 잠든지라 헤벨의 아내 야엘이 장막 말뚝을 취하여 손에 방망이를 들고 그에게로 가만히 가서 말뚝을 그 살쩍에 박으매 말뚝이 꿰뚫고 땅에 박히니 시스라가 기절하여 죽으니라.

  시스라는 야엘의 환대를 받으므로 안심하여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그 잠은 영원한 잠이 되고 말았습니다. ‘장막 말뚝은 장막이 넘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밧줄을 땅에 고정시키는 말뚝으로 나무로 만들어졌습니다. ‘방망이(마케베트:מקבת)’는 구멍을 뚫는데 사용되는 망치를 의미하는 데 이 망치 또한 나무로 만들어졌습니다. ‘말뚝을 그 살쩍에 박으매’ ‘살쩍’(라카:רקה)은 머리의 옆면 즉 관자놀이입니다. 야엘은 급소인 관자놀이를 쳐서 무딘 나무로 다른 부분을 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그리고 안전하게 시스라를 죽일 수 있었습니다. 야엘이 어떻게 말뚝을 뽑고 시스라의 살쩍에 박을 수 있었느냐 하는 것은, 당시 여자들이 장막을 쳤기 때문에 그런 용구를 다루는데 익숙하였기 때문입니다. ‘기절(야에프)’지친’, ‘기진한’ ‘곤비한등의 뜻이 있습니다. 즉 기절하여 죽은 것이 아니라 곤비하여 죽었다는 것입니다. 자다가 봉면을 당하여 죽은 것입니다. 관자놀이는 타격을 받으면 즉시 죽는 급소입니다. 관자놀이에 말뚝이 박힌 결과를 말하는 것보다는 시스라가 야엘에게 죽게 된 요인과 그 상황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22: 바락이 시스라를 따를 때에 야엘이 나가서 그를 맞아 가로되 오라 내가 너의 찾는 사람을 네게 보이리라 바락이 그에게 들어가 보니 시스라가 죽어 누웠고 말뚝은 그 살쩍에 박혔더라.

  ‘따르다’(라다프:רדף)‘~ 뒤쫓다’ ‘추격하다는 뜻이므로 바락이 시스라를 추적하여 야엘의 집까지 오게 된 것을 말합니다. 야엘이 시스라를 죽인 후에 바락을 맞이했으므로 드보라의 예언은 그대로 성취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이 전쟁의 영광은 전투를 치른 바락이 아니라 적장을 죽이고 전쟁을 종식시켜 완전한 승리를 가져 온 한 여인야엘이 받게 되므로 그녀의 예언은 적정하였습니다.

 

23: 이와 같이 이 날에 하나님이 가나안 왕 야빈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 패하게 하신지라.

  이스라엘을 압박하고 학대하던 야빈의 취하에서 해방된 것은 일차적으로 성전(聖戰)을 호소한 드보라와 시스라를 죽인 야엘의 활약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들 앞에서 적들을 섬멸하는 장군으로 활약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고 저자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승리라는 선물을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입니다.

 

24: 이스라엘 자손의 손이 가나안 왕 야빈을 점점 더 이기어서 마침내 가나안 왕 야빈을 진멸하였더라.

  그나마 강력한 세력을 자랑하던 가나안 왕 야빈이 마침내 진멸되어 가나안 족속들이 점차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가나안 왕 야빈이 언제 이스라엘에게 진멸되었는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왕정 제도가 수립되기 이전이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래서 남은 가나안 족속들은 다윗에 의해 거의 소탕될 수 있었습니다(삼하 8장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