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사사기 제6장 강해: 미디안의 압제와 기드온

chukang 2014. 12. 9. 20:41

 

첨부파일 사사기 제6장 강해.hwp

 

 

사사기 제6장 강해: 미디안의 압제와 기드온

 

  제6~8장은 가나안 중부 지역의 대표적인 사사 기드온의 행적에 대한 내용으로 미디안의 압제로부터 고통을 당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 장에서는 택한 백성을 위한 구원의 역사, 곧 구속사를 이루어 나가시는 하나님께서 그 구속사의 도구로 사용할 기드온에게는 물론 모든 택한 백성들에게 소망의 확신을 주셨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께 하나님 되심의 표징과 또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승리를 주실 것에 대한 표징을 거듭 구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런 요구에 묵묵히 응답하셨습니다. 이런 표징의 요구는 연약한 인간 측에서 보면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과거 그토록 많은 구원을 베푸신 것 이외에도 또 표징을 요구하는 인간에게 대하여 그 왜곡된 죄성으로 인한 완고한 불신을 탓하실 수도 있으셨으나, 하나님께서는 그 선과 악을 따지기 전에 인간 구원의 큰 뜻을 위하여 요구를 들어주시며 확신 위에 확신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 결과 소심하고 왜소한 한 청년 기드온은 태초부터 종말까지 이어지는 구속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그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호하신다는 확신을 받았기에 사사로 일어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1-10: 이스라엘이 또 다시 범죄하여 7년 동안 미디안의 압제를 당하게 되어, 백성들은 대부분 산으로 도피하여 토굴을 파고 생활하는가 하면 극심한 식량난을 겪었습니다. 그리하여 견디다 못한 백성들은 결국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하기에 이르렀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에 앞서 저들의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타락~징계~회개~구원의 악순환의 역사는 계속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이스라엘의 모든 곧 나의 모습입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완악하여 하나님을 멀리하고 악에 탐닉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8:5; 4:18).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호소하는 백성들을 위해 구원자를 세우기에 앞서 선지자를 보내시고 그들이 당하는 고통의 원인을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하셨으며, 이러한 사실을 회개를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구원의 필수 조건이라는 사실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이 범죄하면 그 잘못을 깨닫도록 가장 적절한 매를 들어 징계하심으로써 죄를 회개하고 돌아오게 하십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 영의 눈이 가려진 인간은 하나님의 징계를 당하면서도 때로 왜 자신이 고난을 당하는지 조차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을 원망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1: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 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붙이시니

  ‘이스라엘이 또 다시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에게 절하는 악을 행함으로 인하여 태평 시대가 끝나고 징벌의 시대’, ‘어둠의 시대가 도래함을 알리고 있습니다(3:7,12; 4:1). 이스라엘을 징벌하기 위한 도구로 채택된 미디안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처 그두라 사이에 태어난 미디안의 후손들을 가리킵니다(25:1-4). 그들을 아카바 만 근처와 요단 동편에 걸쳐 살던 유목민들이었다는 것만 알 뿐 정확한 그들의 지경에 대해서는 알 수 없습니다. 그들은 에돔, 모압 그리고 암몬 족속이 거하는 요단 동편 지역을 다 정복하고 요단강을 건너 팔레스틴을 정복하되 북쪽으로는 이스르엘 골짜기남쪽으로는 가사까지 정복하였음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2: 미디안의 손이 이스라엘을 이긴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을 인하여 산에서 구멍과 굴과 산성을 자기를 위하여 만들었으며

  이스라엘 백성이 미디안의 압제를 피하여 안전한 피난처를 만들었음을 말합니다. 그런데 팔레스틴의 상지는 석회석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천연 동굴이 많았으며 급류로 인해 생겨난 산 구멍도 많았습니다. 또 굴을 파기도 용이했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만들었다는 것은 동굴이나 구멍이나 요새인 산성을 파거나 만드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이미 있는 굴을 확장하여 거처로 삼거나 그대로 사용하는 것 모두를 포함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도피처는 미디안의 압제를 피해 도망하기 위한 장소만이 아니라 농작물의 저장을 위해서도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3, 4절에서 미디안의 압제가 농산물 탈취와 땅의 폐허를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는 데서 확실해집니다.

 

3: 이스라엘이 파종한 때면 미디안 사람, 아말렉 사람, 동방 사람이 치러 올라와서

  이는 미디안의 압제가 가나안의 왕 야빈의 압제와 같이 지속적인 점령이 아니고 계절적인 침략이었음을 나타냅니다. 이스라엘의 파종기는 종교력 4-10월 초의 건조기가 끝난 우리가 시작되는 10월 중순입니다. ‘아말렉 사람이들은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와 그의 첩 딤나 사이에 태어난 아말렉의 후손(36:15,16)으로 유목민입니다. 멸망당할 때까지 항상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대표적 족속입니다(1:16; 3:13). ‘동방 사람은 팔레스틴 동쪽에 거주하던 유목 민족들을 매우 폭넓게 일컫는 말입니다. 29:1에서는 하란, 11:4에서는 에돔이나 모압을, 49:2825:4, 10에는 아랍인들을 가리킵니다. 팔레스틴 동편에 있는 사막 지역에 거주했던 모압, 에돔, 그리고 아랍과 그 지역의 여러 종족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아랍족속으로 보는 것으로 옳은 듯합니다(6:33; 7:12; 8:10).

 

4: 진을 치고 가사에 이르도록 토지 소산을 멸하여 이스라엘 가운데 식물을 남겨 두지 아니하며 양이나 소나 나귀도 남기지 아니하니

  ‘진을 치다’(하나:חנה)장막을 치다의 의미로 여기서는 이스라엘을 약탈하기 위한 전초기지를 세웠음을 말합니다. 진을 친 위치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33절에 의하면 이스르엘 골짜기로 나타납니다. ‘가사에 이르도록가사는 블레셋의 중심 성읍으로 팔레스틴의 남서쪽 끝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미디안의 약탈이 팔레스틴의 북쪽에 있는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가사에 올 때까지 광범위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동시에 미디안과 그의 동맹국들이 요단을 넘어 이스르엘 골짜기를 거쳐서 팔레스틴에 있는 평야 지대인 가사까지 정벌한 정복 경로를 나타냅니다. ‘토지의 소산식물가축을 말합니다. 식물을 남겨 두지 않았다는 것은 목초나 곡식이나 과실을 약탈해 갔다는 의미보다는, 그것들을 짓밟아 황폐하게 만들었다는 의미가 강합니다. 왜냐하면 미디안이 쳐들어 올 때는 파종기 때였다고 3절이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양이나 소나 나귀 등으로 설명되는 가축은 초장의 황폐나 먹이의 결핍으로 인한 죽음과 미디안 사람들의 약탈로 모두 없어졌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요 생계 수단인 곡물과 가축 모두를 잃게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5: 이는 그들이 그 짐승과 장막을 가지고 올라와서 메뚜기 떼 같이 들어오니 그 사람과 약대가 무수함이라 그들이 그 땅에 들어와 멸하려 하니

  미디안과 그의 동맹국들은 모두가 유목민이었기에 초지를 찾아다니다가 방목에 적당한 곳을 찾으면 그 곳에 장막을 치고 장기가 체류하였습니다. 이 구절은 이러한 그들의 생활 방식에 따라 이스라엘이 파종하여 놓은 곡식밭을 초지로 삼아 그곳에 장막을 치고 장기간 체류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들과 밭은 황폐화 되어 곡물이나 과수가 결실을 맺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메뚜기 떼 같이이는 숫자상 많은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그들의 피해가 막대했음을 표현합니다. 구약에서 메뚜기 떼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수단으로 거론됩니다(10:4; 28:42). 메뚜기 떼에 비유하여 말한 것은 미디안과 그의 동맹군이 단순한 약탈자의 위상을 넘어서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음을 효과적으로 암시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그 사람과 막대가 무수함이라.’ 약대는 평화 시에 여행이나 대상들이 상품을 운반하는 일에 사용되었으나 전시에는 군수품을 운반하는 일이나 군인들이 그 등에 타고 싸우는 전투용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여기에서는 평화 시가 아니라 전시이기에 이 약대들은 군인들이 타고 싸우는 전투용과 군수품을 보급하는 운반용을 의미합니다. ‘약대가 많았다는 것은 미디안과 그의 동맹군의 수송 능력이 뛰어났음을 말하며 그들의 전투력이 엄청났음을 의미합니다. 아울러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은 약탈에 참여한 미디안 족속의 수와 전투를 할 수 있는 군인들이 많았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에서는 미디안과 그의 동맹군의 엄청난 군사력이 이스라엘 영토를 초토화시키는 일을 가능케 한 근본적인 요인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6: 이스라엘이 미디안을 인하여 미약함이 심한지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미약(다랄:דלל)’억압당하다, 가난하게 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7년간 계속된 미디안의 이스라엘에 대한 약탈과 초토화 작전으로 인해 국토가 황폐화되고 그에 따라 극심한 경제적 궁핍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께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직 여호와만이 유일한 구원자이심을 고백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단지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 종교적 탄원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평안하면 하나님을 잊고, 극도로 어려우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을 찾는 인간의 간사함이 사사기 전체에 있는 이 말 속에 함축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인간들의 간사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부르짖음의 소리를 외면치 않고 구원해 주심으로 의로우심을 나타내고 계십니다. 이것은 사사기를 비롯한 구약 성경 전체의 흐름이기도 합니다.

 

7: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을 인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은 고로

  ‘부르짖은 고로(자아크:זעק)’는 힘없는 자가 힘센 자의 압제 하에서 구원자를 부르는 행위를 말합니다. 구약에서는 항상 이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상달되어 하나님의 행동을 유발시켰습니다(22:22-24).

 

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한 선지자를 보내사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며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여

  선지자는 하나님의 계획과 의지를 인간에게 전달하기 위해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보냄을 받은 자를 의미하며 사자와는 구별됩니다. 특히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을 때 나타나 책망하여 회개를 촉구하는 일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택된 선지자를 통하여 출애굽의 목적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그 목적은 바로 여호와만을 섬기는 나라를 세우는 데 있었습니다(8:1). 그런데 지금의 그들이 그것을 잊어버리고 우상을 섬기고 있으므로 그 목적을 생각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동시에 그들이 그 목적에 어긋나게 행동한 것을 경책하여 하나님께로 돌이키도록 하기 위한 근거가 됩니다.

 

9: 애굽 사람의 손과 너희를 학대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너희를 건져내고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었으며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얼마나 열심히 사랑하셨는지를 알려줍니다. ‘학대하는 모든 자는 가나안 입성 시에 그들을 괴롭히며 방해하던 가나안 족속뿐만 아니라 가나안 정착 후에도 그들을 압제하고 고통을 주던 메소포타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과 모압 왕 에그론과 하솔 왕 야빈 등과 같은 이방 족속도 포함이 됩니다. 그러므로 본 절은 출애굽에서부터 가나안 입성과 그리고 기드온까지의 역사를 회상시키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땅땅을 언급하는 것은 그 땅은 거룩한 땅이므로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아야 한다는 계명을 기억나게 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셨던 목적을 상기시키기 위함으로 보입니다.

 

10: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기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 너희의 거하는 아모리 사람의 땅의 신들을 두려워 말라 하였으나 너희가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 하였느니라 하셨다 하니라.

  아모리 사람은 가나안 사람 전체를 다르게 표현한 것입니다(15:16; 24:15). ‘두려워하다(야레:ירא)’는 심리적으로 두려워하다’, ‘존경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나 여기서는 어떤 신에 대한 종교적 예배를 드리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하나님만 섬기고 그만 경배하라(34:10-16; 7)는 하나님의 계명들을 어기고 가나안의 신들에게 절했음을 말합니다(3:5-7 참고).

 

  11-24: 미디안의 압제로 인해 부르짖는 백성들의 간구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을 사사로 세우기 위해 부르셨습니다.

 

11: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아비에셀은 수 17:2와 대상 7:18에 따르면 므낫세 지파의 한 작은 족속으로 나타납니다. 오브라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지만 이스르엘 골짜기에 있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상수리나무는 가나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가나안 사람들은 이 나무를 신성하게 여겨서, 이 나무로 신상을 만드는가 하면(44:14-17) 그 나무 아래 제단을 설치하여 우상을 섬기도 했습니다(57:5). 기드온의 아비 요아스가 지니고 있던 바알 제단(25,26)도 상수리나무 아래 설치되어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들이 모르게 하기 위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했다고 했습니다. 미디안의 점령으로 인한 약탈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처해 있는 처참하고 궁핍한 생활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밀 타작은 넓은 마당이나, 타작을 위해서 만든 뜰에서 합니다(대상 21:20-23). 그리고 타작용 마차나 신이나 황소를 밀 위에 끌고 다니면서 타작을 했습니다. 지금 기드온은 바위를 파서 만든 포도주를 짜는 기구인 포도주 틀에다가 밀을 넣고 타작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포도주 틀에는 소량의 곡식을 넣어 타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타작하다(하바트:חבט)’는 막대기로 치는 것을 의미하므로 황소나 타작용 기구를 이용하던 평화시의 방식과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여기에 나타나는 기드온의 모습은 영웅적인 모습보다는 오히려 궁색한 한 인간으로 소개가 되고 있습니다. 이는 사사들이라고 해서 모두 능력이 뛰어난 것이 아니라 연얀한 한 인간에 지나지 않음을 밝히기 위함입니다. 즉 사사는 도구이며 하나님만이 구원자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12: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기드온에게 큰 용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기드온이 육체적인 조건이 뛰어나거나 지혜가 출중하거나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함께 하셔서 하나님 일을 하는 자에게 능력과 지혜를 주시고 그 일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13: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미쳤나이까 또 우리 열조가 일찍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기드온은 이스라엘의 고통에 대하여 여호와께 항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함께 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즉 자신들의 고통은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고 하는 것입니다. 12절의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는 말에 대한 기드온의 불신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기드온은 출애굽 노정에서 보이신 하나님의 능력들이 지금까지 이스라엘과 함께 있었다면 오늘날의 이 고통이 없었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즉 오늘날 자신이 미디안으로부터 받고 있는 이 엄청난 고통은 하나님께서 출애굽 때 보였던 이적으로 원수들을 물리쳐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기드온의 항변이 그들이 당하고 있는 고통의 근본적 원인이 자신들의 불순종이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데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기드온의 영안이 타락한 백성들과 동일한 수준이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여기에서도 기드온의 항변을 통해 기드온이 뛰어난 영웅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과 동일하게 나약하고 지혜가 없는 한 인간에 불과함을 밝히고 있습니다.

 

14: 여호와께서 그를 돌아보아 가라사대 너는 이 네 힘을 의지하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네 힘은 언 듯 보기에는 기드온 자신의 힘으로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기드온과 함께 계셔서 그에게 주시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애석하게 기드온은 이 말의 진의를 파악치 못하고 자기 자신의 힘으로 나가 싸우라는 말로 이해하고 말았습니다.

 

15: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

  이는 강대한 미디안과 그 동맹 세력을 어떻게 자신의 힘으로 꺾을 수 있느냐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약속을 전혀 믿지 않고 있습니다. ‘나의 집은 단순히 가정의 범위를 벗어나 씨족이나 문중을 의미합니다. 즉 인구가 적어서 군사력이 약하다는 의미입니다. ‘가장 작은 자라는 말은 가장 어리다는 뜻으로, 결국 기드온 자신이 미디안을 쳐부수는 데 선봉이 될 최적자가 되지 못함을 말함과 동시에, 그의 문중이 메뚜기 같이 많은 미디안의 군사들을 쫓아내고 이스라엘을 구원할만한 군사력이 없음을 말합니다. 기드온은 아직도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 있으며 또 의지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16: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이처럼 영적, 육적 능력도 없는 기드온에게 하나님께서는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해방시키신 것 같은 큰 능력으로 역사하셔서 반드시 미디안을 쫓아내고 이스라엘의 해방을 주신다는 하나님의 의지의 표현입니다. 이는 기드온의 연약함을 다 아시고 그에게 힘을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자상하신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7: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 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불신앙으로 가득한 기드온은 하나님의 말씀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 되시는 표징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표징(오트:אות)’증거, 표시, 기적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이 기적의 핵심적인 기능은 기드온이 자기와 이야기하고 있는 상대가 누군지를 확인하려는 데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18: 내가 예물을 가지고 다시 주께로 와서 그것을 주 앞에 드리기까지 이곳을 떠나지 마시기를 원하나이다 그가 가로되 내가 너 돌아오기를 기다리리라

  ‘예물(민하:מוחה)’소제(素祭)을 의미하기도 하고(7:37), ‘조공또는 공물’(3:15)이나 선물을 뜻하기도 합니다. 여기에서는 손님에게 드리는 선물’, ‘손님을 대접하는 음식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19: 기드온이 가서 염소 새끼 하나를 준비하고 가루 한 에바로 무교전병을 만들고 고기를 소쿠리에 담고 국을 양푼에 담아서 상수리나무 아래 그에게로 가져다가 드리매

  기드온은 염소 새끼 한 마리와 무교전병과 국을 준비했습니다. 당시 상황으로 볼 때에 얼마나 극진한 대접인지 모릅니다. ‘에바는 고체의 부피를 나타내는 단위로 22리터 정도이며, 무교전병은 누룩을 넣지 않고 만든 떡입니다.

 

20-21: 하나님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고기와 무교전병을 가져 이 반석 위에 두고 그 위에 국을 쏟으라 기드온이 그대로 하니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잡은 지팡이 끝을 내밀어 고기와 무교전병에 대매 불이 반석에서 나와 고기와 무교전병을 살랐고 여호와의 사자는 떠나서 보이지 아니한지라

  하나님의 사자는 기드온이 볼 수 있는 형상을 입고 있지만 실상은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음식을 먹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바치는 제사와 같이 반석위에 진열시키고 그 위에 국을 붓게 했습니다. 그리고 손에 잡은 지팡이를 내밀어 고기와 무교전병에 대니 불이 반석에서 나와서 불살랐습니다. 이것은 기드온의 표징 요구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기드온이 바친 제물을 흠향하셨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불신앙으로 일관하는 기드온에게 초자연적인 능력을 보이시므로 군사력이 강한 미디안을 능히 물리칠 수 있음을 확신시켜 주신 것입니다.

 

22: 기드온이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줄 알고 가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

  초자연적인 역사를 체험한 기드온은 그제야 자신이 만난 존재가 여호와의 사자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이는 ! 주님 여호와여!’라는 원문의 번역입니다. ‘!’(아하:אחה)는 특정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슬픔이나 놀람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감탄사이므로, 우리 성경에서는 슬프다는 말로 덧붙여 번역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면 죽는다고 생각했습니다(33:20 참고 신 5:25, 13:23). 기드온이 놀람과 슬픔을 나타낸 것을 보면 이러한 사실들을 기억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기드온은 표징을 보고 여호와의 사자를 보았기 때문에 죽을 것이라고 심히 두려움에 떨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을 안심시키시고 위로하고 계십니다. ‘안심하라솰롬으로 평강, 평화, 안전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24: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단을 쌓고 이름을 여호와살롬이라 하였더라 그것이 오늘까지 아비에셀 사람에게 속한 오브라에 있더라

  ‘거기는 기드온이 가지고 온 예물을 놓은 반석과 그 주위를 말합니다. 그곳에서 단을 쌓았습니다. 단을 쌓는 것은 특별한 사건을 기념하기 위함입니다.(22:14;31:47-49; 33:20; 22:34). 또한 이는 그 단을 쌓는 사람의 하나님께 대한 헌신을 의미하기도 합니다(13:18; 28:16-19). 기드온이 단을 쌓게 하나님을 위해쌓은 것은 그의 집안이 바알과 목상들을 섬기는 우상숭배 행위를 거부하고 하나님만을 섬기게 되었음을 말합니다. ‘여호와 살롬은 평강의 하나님, 평화의 하나님입니다. 이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탄식하고 있는 기드온에게 여호와의 사자가 안심하라고 위로한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서 세운 제단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25-32: 기드온은 하나님의 사자를 대면한 후 이스라엘의 사사로 세움 받은 날 밤에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명령을 이행했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죽을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이러한 결단이 없이는 결코 개혁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기드온은 백성들을 고통 속에서 구원하기 위한 사사로의 첫 걸음은 하나님 앞에 자신부터 성결해 지는 것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25: 이날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네 아비의 수소 곧 칠년 된 둘째 수소를 취하고 네 아비에게 있는 바알의 단을 헐며 단 곁의 아세라 상을 찍고

  ‘수소 곧 칠 년 된 둘째 수소학자들은 이 구절에서 수소가 두 마리인지 한 마리인지를 놓고 견해를 달리하고 있습니다. 두 마리라고 하는 주장에서 한 마리는 기드온 자신과 그의 가정을 위한 것이고 또 다른 한 마리를 온 백성을 위해 속죄 제물로 바쳤다고 주장합니다. 한 마리였다고 하는 주장은 수소와 칠 년 된 둘째 수소는 하나라고 하는 견해인데, 26, 28절에서 드린 제물을 언급할 때에 그 둘째 수소라고만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소한 것을 가지고 대립하는 것은 결코 유익하지는 않아 보입니다. 구속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거나 신학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네 아비에게 있는기드온의 아비 요아스가 신상을 소유하고 숭배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알의 단은 가나안의 풍요와 다산의 남신인 바알을 위한 제단이며, ‘아세라는 바알의 배우자 아스다롯여신의 상징으로 거룩한 목상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들 이방신상 제거에 대한 명령은 근본적으로 그 땅의 정화를 위함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우상 숭배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미디안에게 넘겨주신 것입니다. 또한 신상 제거 명령은 기드온이 하나님을 섬기는지 이방신을 섬기는지를 확증하기 위한 시험이었습니다.

 

26: 또 이 견고한 성 위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규례대로 한 단을 쌓고 그 둘째 수소를 취하여 네가 찍은 아세라 나무로 번제를 드릴지니라

  ‘이 견고한 성 위에여기에서 성은 요새, 성채란 의미와 함께 암벽, 바위의 의미도 있습니다. 이 바귀의 끝 위에라고 하는 것이 더 좋아 보입니다. 왜냐하면 보통 우상 제단은 산꼭대기나 그 근처에 있는 큰 바위 위에 돌을 쌓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이는 이전에는 바알을 위한 단을 쌓고 그에게 경배했지만 이제는 돌이켜 하나님을 위한 단을 쌓고 그를 경배하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규례대로(마아라카:מערכה)’정돈되다’ ‘배치하다’ ‘배열하다는 의미로 정돈되게 줄을 맞추어차곡차곡 쌓으라는 의미로 보입니다. ‘아세라나무로 번제를아세라는 고대 근동 여러 지방에서 숭배하던 수태의 신 또는 월신(月神)입니다. 한 때는 이 아세라가 아스다롯과 동일한 신인 것으로 오해하기도 했으나 서로 다른 신인 것이 밝혀졌습니다. 번제는 제물을 불에 태워 바치는 제사입니다.

 

27: 이에 기드온이 종 열을 데리고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행하되 아비의 가족과 그 성읍 사람들을 두려워하므로 이 일을 감히 백주에 행하지 못하고 밤에 행하니라

  열 명의 종을 데리고 단을 파괴했다면 그 단이 얼마나 규모가 컸는지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밤에 철거하는 것을 비겁하다고 평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만약 낮에 철거를 하다가 성읍 사람이나 문중 사람의 방해를 받게 되면 효과적으로 그 일을 처리하기 힘들 것을 미리 계산한 기드온의 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드온이 그의 아비의 가족과 성읍 사람들을 두려워했다는 것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디안의 고통 아래서 그토록 신음하면서도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고 계속 바알을 고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토록 고통을 당하면서도 그 원인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28,29: 성읍 사람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본즉 바알의 단이 훼파되었으며 단 곁의 아세라가 찍혔고 새로 쌓은 단 위에 그 둘째 수소를 드렸는지라 서로 물어 가로되 이것이 누구의 소위인고 하고 그들이 캐어 물은 후에 가로되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이를 행하였도다 하고

  밤중에 일어난 우상과 제단 파괴 사건에 대하여 사람들은 당연히 궁금해 하고, 그들이 하나님으로 섬기는 신상과 제단이 파괴가 되었기 때문에 매우 큰 사건으로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그 장본인을 색출하여 처벌하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또한 새 단 위에 제물을 드린 것도 그들로서는 배반이라고 생각하여 소상히 조사한 결과 범인은 기드온으로 밝혀졌습니다.

 

30: 성읍 사람들이 요아스에게 이르되 네 아들을 끌어내라 그는 당연히 죽을지니 이는 바알의 단을 훼파하고 단 곁의 아세라를 찍었음이니라

  이스라엘 사람 중 우상을 숭배하는 자는 그 성읍 사람들이 끌어내고 공개 하에 돌로 쳐 죽임으로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충성을 재확인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기드온이 사는 성읍 사람들은 오히려 바알을 깨어버린 기드온의 행위에 분개하여 그를 끌어내어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기드온을 공개 처형하여 바알에 대한 충성을 재확인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바알에 대하여 얼마나 열심인지를 말해 주는 단편입니다.

 

31: 요아스가 자기를 둘러선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바알을 위하여 쟁론하느냐 너희가 바알을 구원하겠느냐 그를 위하여 쟁론하는 자는 이 아침에 죽음을 당하리라 바알이 과연 신일진대 그 단을 훼파하였은즉 스스로 쟁론할 것이니라 하니라

  요아스는 기드온을 끌어내어 죽이려고 둘러싼 모든 사람들에게 외쳤습니다. 바알이 신이라면 자신의 우상을 해치 자를 스스로 처벌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쟁론(리브:ריב)’변호하다는 뜻이므로 백성들에게 너희가 바알을 위해 변호하느냐라고 하는 외침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참 신이신 살아계신 하나님의 징벌이 바알을 위해 변호하는 자들에게 임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즉 요아스는 참 신과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거짓 진의 구별 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구별 점은 그 신이 자신의 대적자를 직접 벌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바알의 무능력을 비웃는 것입니다. 요아스는 그동안 바알을 섬겼으나, 오히려 하나님을 믿는 기드온의 편을 든 것은 의외지만 그 또한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변화시키시며 입술을 주장하시고 용기를 주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32: 그 날에 기드온을 여룹바알이라 하였으니 이는 그가 바알의 단을 훼파하였은즉 바알이 더불어 쟁론할 것이라 함이었더라.

  ‘여룹바알바알과 대적하다’, ‘바알과 논쟁하다는 뜻으로 기드온이 바알 신상과 바알 단을 깨어버렸어도 바알은 죽은 신이기에 어떠한 보복 조치도 취할 수 없는 거짓 신임을 조소하는 이름입니다.

 

  33-40: 기드온은 사사로 세움을 받는 그 때에 미디안 연합군이 이스라엘을 치기 위해서 몰려오자 기드온은 군사를 소집하고 하나님께 표징을 구하였습니다.

 

33: 때에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 사람들이 다 모여 요단을 건너와서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친지라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 사람들은 모두 요단 동편에 거주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이스라엘을 초토화시키기 위하여 용기백배하여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쳤을 것입니다. 이스르엘 골짜기는 갈멜산 북부에서 팔레스틴을 가로지르는 평원을 가리키는데 에스드라엘론혹은 므깃도 평원이라고 불립니다. 이 골짜기 근처에는 므낫세, 잇사갈, 스불론, 납달리와 아셀 지파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34: 여호와의 신이 기드온에게 강림하시니 기드온이 나팔을 불매 아비에셀 족속이 다 모여서 그를 좇고

  ‘여호와의 신은 성령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성령은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성취하시기 위해 특정한 사람에게 강하게 역사하셨습니다. 이 같은 성령의 역사는 오늘날도 동일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드온이 성령의 강한 감동을 받았다는 것은 미디안 동맹군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에 평화를 가져오기 위한 사명과 능력이 기드온에게 임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드온에게 강림하시니강림(라브사:רבשׂה)입혔다는 뜻으로 이는 기드온에게 성령이 임하여 쇠사슬이나 무거운 장비와 같은 것이 기드온을 감싸서 저항할 수 없게 하엿음을 묘사하는 말입니다. 즉 성령에 사로잡혔음을 뜻합니다. ‘나팔을 불매이는 전쟁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며 동시에 군대 소집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아비에셀 족속이 다 모여서 그를 좇고기드온의 씨족인 아비에셀 족속이 기드온의 편에 서서 하나님의 전쟁에 참여하고 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바알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온 것입니다.

 

35: 기드온이 또 사자를 온 므낫세에 두루 보내매 그들도 모여서 그를 좇고 또 사자를 아셀과 스불론과 납달리에 보내매 그 무리도 올라와서 그를 영접하더라

  여기서 사자는 특사라는 의미보다 전령을 의미합니다. 므낫세, 아셀, 스불론, 납달리 네 지파는 미디안 동맹군의 전초 기지가 있는 이스르엘 평원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으므로 많은 피해를 입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기드온의 소집 명령에 따른 것은 당연한 것 같지만, 이 또한 성령의 감동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올라와서(알라:עלה)’는 구약 성경에서 올라가는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적을 향해 전진함과 적을 치기 위해 전쟁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36: 기드온이 하나님께 여짜오되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려 하시거든

  이는 12, 14, 16절의 약속 내용을 다시 한 번 확증 받고자 하는 것으로 아직도 기드온의 심령에는 두려움과 불안이 도사리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37,38: 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마당에 두리니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사면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줄 내가 알겠나이다 하였더니 그대로 된지라 이튿날 기드온이 일찍이 일어나서 양털을 취하여 이슬을 짜기 물이 그릇에 가득하더라

  기드온이 양털 뭉치에만 이슬이 있게 하고 사면 땅이 마르게 해 달라는 표징을 구한 것은 아직 하나님의 능력에 대하여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했다는 증거라고 하겠습니다. 그만큼 미디안 연합군의 군세가 강하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39: 기드온이 또 하나님께 여짜오되 주여 내게 진도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말하리이다 구하옵나니 나로 다시 한 번 양털로 시험하게 하소서 양털만 마르고 사면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께서 기드온의 표징 요구를 들어주셨지만 또 한 번 표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전쟁에 직면하고 있는 인간의 내면이 얼마나 두려운 지를 잘 표현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너무나 약한 이스라엘 군대와 강력한 미디안 연합군과의 싸움을 인간의 눈으로 볼 때엔 승패가 너무나 명확하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신다는 표징을 거듭 구하여 반대로 양털은 마른대로 있고 땅 사면은 젖은 것을 보여 달라고 한 것입니다.

 

40: 이 밤에 하나님이 그대로 행하시니 곧 양털만 마르고 사면 땅에는 다 이슬이 있었더라.

  하나님께서는 그대로 들어주셨습니다. 불안에 사로잡혀 있는 기드온을 위로함은 물론 모든 군사들과 백성들도 그 기도의 응답을 보고 용기를 북돋워 주기 위함입니다. 믿음이 약한 자를 꾸짖지 아니하시고 성실하게 설득하고 확증시켜 맡긴 일을 잘 이행할 수 있도록 해 주시는 하나님의 너그럽고도 변함이 없으신 사랑이 나타난 것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