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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제8장 강해: 미디안 정벌 완료 및 기드온의 말년

chukang 2014. 12. 20.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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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제8장 강해: 미디안 정벌 완료 및 기드온의 말년

 

  본 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 데 앞 1-21절에서는 이스라엘 지파 간의 갈등은 기드온의 양보로 해결이 되고 화해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고, 22-35절에서는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한 근본적인 깨달음조차도 없는 백성들의 모습과 기드온의 말년 타락한 모습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는 결국 인간이 아무리 뛰어나도 한 인간일 뿐이며,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만이 이루어주심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해 준다고 하겠습니다.

 

  1-3: 기드온과 미디안 연합군과의 전투는 몇 가지 에피소드를 낳았는데 그 첫 번째 기사는 에브라임 지파의 태도입니다. 기드온은 미디안의 침략으로 피해가 극심했던 므낫세, 납달리, 스불론, 아셀 지파에게 군사 모집 요청을 했고, 에브라임에게는 도주하는 미디안을 섬멸하기 위해 지원군을 요청하여 퇴로를 차단하고 격멸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한 가지 문제는 에브라임 지파가 처음부터 자신들을 부르지 않았다는 것에 불만을 품고 기드온에게 격렬하게 항의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자신의 공로보다도 뒤늦게 참여한 에브라임 지파의 공로가 더 크다가 치하함으로써 에브라임 지파의 불만을 해소시키고 분쟁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1: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네가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에 우리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우리를 이같이 대접함은 어찜이뇨 하고 크게 다투는지라.

  기드온은 미디안과 그 연합군을 대항하여 싸운 전투에서 적들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므낫세, 아셀, 납달리, 스불론 지파만 부르고 다른 지파들은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에브라임 지파는 자기 지파만 전쟁에서 빠진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기 지파를 처음부터 전쟁에 참여시키지 않은 사실에 대하여 항의하고 있습니다. 이는 영광스러운 성전에 참여하지 못한 아쉬움의 표현이거나 늦게 전쟁에 개입함으로 인한 전리품 분배에 손해를 본 데서 불만의 표출이 아니라, 전쟁의 주도권을 기드온이 소속되어 있는 므낫세 지파에게 빼앗겨 자존심과 체면이 상해 표출시킨 불만입니다. 그들은 전쟁에서 맹활약함으로 자신들이 가장 큰 영광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므낫세 지파에게 빼앗긴 것에 대한 화를 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뒤에 나오는 다투는지라2절에서의 기드온의 대답에서 더욱 확실해 집니다. ‘크게 다투는지라에서 다투다(리브:ריב)’말다툼하다’, ‘꾸짖다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므로 본 구절은 심하게 언쟁을 벌이는 모습을 묘사한 것입니다.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요셉의 아들로 친형제이며 야곱이 죽을 때 장자인 므낫세보다 에브라임이 더 우위에 서게 될 것이라고 축복한 데서 우위권 다툼이 늘 있어왔습니다. 본문도 그러한 배경에서 일어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2: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의 이제 행한 일이 너희의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나의 이제 행한 일이~ 비교 되겠느냐너희가 한 것 같이 큰일을 하지 못했다.’는 말로 기드온의 겸손한 표현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에브라임 사람들의 불평으로 인해 발생할지도 모르는 이스라엘 내분을 미리 예견하고 그것을 막기 위한 태도로 보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전쟁이 하나님의 주도 아래 이루어졌으며, 승리의 주역 또한 하나님이셨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자세를 보였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끝물 포도맏물 포도를 수확한 후 별 쓸모없이 남겨진 찌꺼기같은 포도를 말합니다. 맏물 포도에 비해 맛이나 당도와 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가치가 별로 없습니다. 이러한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므낫세의 맏물 포도보다 낫다는 것은, 전쟁의 막바지에 참여하여 미디안의 후퇴로를 차단하고 그 두 방백 오렙과 스엡을 죽인 일(7:25)이 이 전쟁의 처음부터 참전하여 주도권을 장악하고 미디안을 참패시킨 기드온의 용사들의 공로보다 낫다는 것을 풍자한 말입니다. 이러한 기드온의 겸손한 태도가 이스라엘 지파간의 반목질시할 수 있는 소지를 없앤 것입니다.

 

3: 하나님이 미디안 방백 오렙과 스엡을 너희 손에 붙이셨으니 나의 한 일이 어찌 능히 너희의 한 것에 비교 되겠느냐 기드온이 이 말을 하매 그들의 노가 풀리니라.

  기드온은 자신의 전과(戰果)보다 에브라임이 전쟁 말미에 참여하여 세운 공적이 더욱 크다고 말합니다. 이는 기드온의 겸손이 돋보이는 말입니다. 이는 평소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수적으로 요청이 되는 자세라고 하겠습니다. ‘그들의 노가 풀리니라.’ ‘’(루아흐: )바람, , 등을 의미하는데 여기에서는 노기의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4-21: 횃불 작전의 성공과 하나님의 역사하시므로 그리고 납달리, 아셀, 므낫세 및 에브라임 지파의 협력으로 말미암아 기드온이 미디안의 주력 부대를 섬멸하고 패주하는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추격하여 사로잡은 후 처형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은 불신앙을 토대로 한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의 극단적 이기주의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한 민족으로서 응당 기드온과 그 용사들을 도왔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미디안 군대가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기드온과 용사들의 맹활약으로 완승을 거든 후에 그들의 말 그대로 징계를 받게 되고 말았습니다.

 

4: 기드온과 그 좇은 자 삼백 명이 요단에 이르러 건너고 비록 피곤하나 따르며

  이는 기드온의 적들인 미디안과 그 연맹군은 수없이 죽어갔지만 기드온을 따르는 삼백 명은 한 명도 죽거나 다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르며(라다프:רדף)’ 어떤 목적을 가지고 뒤쫓다’, ‘추격하다는 의미로, 여기서는 미디안과 그 동맹군을 추격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전쟁을 치르느라 피곤한 그들에게 또 에브라임의 격렬한 항의가 보태졌지만 그들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부터 숙곳까지 적을 추격하여 완전히 적을 섬멸하려는 기드온과 삼백 용사를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5: 그가 숙곳 사람들에게 이르되 나의 종자가 피곤하여 하니 청컨대 그들에게 떡덩이를 주라 나는 미디안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따르노라.

  ‘숙곳오두막이란 뜻으로 요단 동편에 있는 얍복 강 바로 위에 위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이곳은 갓 지파가 분배받은 성읍입니다.(13:27). 그런데 여기서 숙곳 사람들이이란 이스라엘 백성의 후손을 가리키는 것인지 아니면 요단 동편에 거하는 이방인을 지칭하는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갓 지파의 성읍인 만큼 이스라엘 사람들로 봅니다. 기드온의 부대가 숙곳으로 미디안 군대를 쫓아갔다는 것은 미디안 군대의 퇴각 방향이 두 갈래였음을 말해줍니다. 하나는 미디안의 방백들인 오렙과 스엡 부대가 퇴각한 벧 바라쪽이었으며, 다른 한 곳은 미디안 왕인 세바와 살문나가 퇴각한 숙곳 방향입니다. ’세바희생이란 뜻이고 살문나거절당한 은신처란 뜻을 담고 있습니다. ’미디안 두 왕은 미디안을 다스리는 왕이 두 명이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미디안 연합군인 동방 사람과 아말렉 족속 중 어느 한 왕과 미디안 왕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각 나누어 부르지 않고 미디안 두 왕이라고 성경 저자가 기록한 이유는 이들 나라가 미디안의 동맹국이었기 때문으로 보고 있습니다.

 

6: 숙곳 방백들이 가로되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어찌 네 손에 있관대 우리가 네 군대에게 떡을 주겠느냐.

  ‘세바와 살문나의 손바닥이 이미 네 손 안에 있느냐고 숙곳 방백들이 기드온에게 묻고 있습니다. 고대의 전쟁 풍습 중에 죽은 자의 손을 자라 모으는 것이 있었는데, 본 구절은 그 풍습을 반영하고 있는 듯합니다. 따라서 살문나와 세바가 당신 손에 죽었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물음은 미디안 왕들의 생사 여부를 묻는 물음이 아니라 기드온과 삼백 명의 보잘 것 없는 군사로 세바와 살문나의 군대를 추격하여 그들을 잡아 죽인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고 조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숙곳 방배들의 말에 비추어 볼 때 세바와 살문나를 따르는 군대는 아직도 막강한 상태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숙곳 사람들은 미디안 군사들이 재정비하여 돌아올 때에 기드온 군대를 지원했다는 이유로 당하게 될 보복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7: 기드온이 가로되 그러면 여호와께서 세바와 살문나를 내 손에 붙이신 후에 내가 들가시와 찔레로 너희 살을 찢으리라 하고

  ‘찢으리라(두쉬:דושׁ)’타작하다, 도리깨질 하다는 의미입니다. 너희 몸뚱이를 타작하리라NEB는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는 가시와 찔레로 된 도리깨로서 그들을 마치 농부가 알곡을 까기 위해서 때리듯 혹독하게 쳐 죽일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8: 거기서 브누엘에 올라가서 그들에게도 그같이 구한즉 브누엘 사람들의 대답도 숙곳 사람들의 대답과 같은지라

  ‘브누엘은 숙곳에서 동쪽으로 약 9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곳 또한 숙곳과 같이 갓 지파의 성읍입니다. 한편 이곳은 야곱이 그의 형 에서를 만나기 전에 천사와 밤새도록 씨름했던 곳인 브니엘’(하나님의 얼굴)과 동일한 지역입니다.

 

9: 기드온이 또 브누엘 사람들에게 일러 가로되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에 이 망대를 헐리라 하니라.

  평안(솰롬)은 평화의 의미도 지니는데 여기서는 전쟁에서 승리한 후 무사히 돌아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망대를 헐리라망대는 농업용에서 전쟁용에 이르기까지 여러 용도로 사용됩니다. 성의 부속물 중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또 망대는 성벽보다 높게 건축되어 멀리서 침공해 오는 적군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적군의 공격에 대항하는 방어물이자 피난처였습니다. 그래서 망대는 성의 안전을 도모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 망대를 헐어버린다는 것은 그 성의 안전과 평안을 없애버리겠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결국 그 성을 파괴하겠다는 뜻입니다.

 

10: 이 때에 세바와 살문나가 갈골에 있는데 동방 사람의 모든 군대 중에 칼 든 자 십 이만 명이 죽었고 그 남은 일만 오천 명 가량은 그들을 좇아 거기 있더라.

  ‘갈골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그들이 동쪽으로 도망쳤기에 아라비아 사막의 한 지점으로 추정합니다. ‘칼 든 자 십 이만 명이 죽었고기드온의 군대가 거둔 승리는 믿기지 않고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것은 기드온과 삼백 명의 힘으로는 도저히 일 수 없는 전과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우수한 전력을 갖춘 군대일지라도 삼백 명으로 십 이만 명을 죽인다는 것을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이 저들을 쳤기 때문입니다.

 

11: 적군이 안연히 있는 중에 기드온이 노바와 욕브하 동편 장막에 거한 자의 길로 올라가서 적군을 치니

  ‘안연히(베타흐:בטח)’안전하게’, ‘안심하고등의 의미입니다. 세바와 살문나를 위시한 온 군사가 기드온의 추격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생각하여 안심하고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아마 그들은 요단강을 건너 아라비아 사막까지 240km 정도를 도망 왔으니 여기까지야 쫓아 왔겠느냐고 생각하고 편히 쉬고 있었을 것입니다. ‘장막에 거한 자의 길이란 유목민의 길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대상들이 다니던 길로서 갈골로 통하는 길이었던 것 같습니다.

 

12: 세바와 살문나가 도망하는지라 기드온이 추격하여 미디안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사로잡고 그 온 군대를 파하니라.

  설마 이 먼 갈골까지 오겠느냐고 안심하면서 휴식을 취하던 미디안 군대를 기드온이 기습 공격함으로 믿기지 않을 전과를 또 한 번 울리게 됩니다. 기드온과 삼백 명의 군사는 이스라엘 영토를 마음껏 유리하여 초토화시켰던 원흉인 미디안의 두 왕을 사로잡고 그 많은 군대를 격파했던 것입니다. 지치고 허기진 기드온과 삼백 명의 군사가 그들의 오십배도 넘는 미디안 군대를 쳐서 또 이기는 기적을 낳은 것입니다. 이는 군인의 정신력이나 전투력이 뛰어난 데서 연유한 결과가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어떤 손길이 있었음을 말합니다. 오직 이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셨다는 사실을 성경 기자는 알리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온 군대를 파하니라군대가 흩어졌다.’는 것입니다. ‘파하다(하라드:חרד)’공포에 떨게 하다’ ‘당혹케 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음으로 보아 그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13: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헤레스 비탈 전장에서 돌아오다가

  ‘헤레스 비탈에 대한 이해는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첫째 지명으로 번역하는 경우(LB,RSV,NIV)와 둘째 해뜨기 전으로 번역하는 경우입니다. 이 차이는 헤레스(חרס)‘를 단순히 지명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태양을 의미하는 시적 표현으로 볼 것인가에 따라 나타납니다. 여기서는 갈골 근처에 있는 한 지명으로 봄이 더욱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14: 숙곳 사람 중 한 소년을 잡아 신문하매 숙곳 방백과 장로 칠십 인을 그를 위하여 기록한지라

  소년(나아르:נער)은 유년기에서 청년기까지의 남자와 하인을 통칭하는 단어로 여기서는 청년이나 하인을 가리킵니다. 왜냐하면 77명이나 되는 숙곳의 방백들과 장로들의 이름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숙곳 방백과 장로 칠십 칠 인방백은 행정 관리나 군대의 지휘관을 가리키며 장로는 문중의 대표로서 국정을 논의하던 지도급 인사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숙곳 성읍을 다스리고 관할하던 지도자들입니다. ‘기록한지라그 당시에는 종이가 없었으므로 아마 토기 조각 같은 곳에 칠십 칠 인의 명단을 기록했을 것입니다. 중요한 점은 문자가 B. C. 1400경에 도입된 이후 일반 대중에게까지 널리 퍼져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15: 기드온이 숙곳 사람들에게 이르러 가로되 너희가 전에 나를 기롱하여 이르기를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어찌 네 손에 있관대 우리가 네 피곤한 사람에게 떡을 주겠느냐 한 그 세바와 살문나를 보라 하고

  ‘전에 나를 기롱하여’ ‘기롱(하라프:חרף)’모욕하다’ ‘무시하다’ ‘조롱하다등의 뜻을 지니는 말로, 6절의 내용을 회상시킵니다. 당시 기드온은 그의 군사들과 패주하는 미디안의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추격 중이었는데, 허기에 지친 병사들과 기드온이 숙곳 사람들에게 떡덩이를 처하자, 숙곳 사람들은 세바와 살문나의 보복이 두려워 이를 거절하였었습니다. 이제 기드온이 세바와 살문나를 포로로 잡아와서 그들에게 보여주면서 말합니다. 너희들의 결정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며 얼마나 악한 행위였나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로서 그들의 형제를 멸시한 자들이요 그의 형제들 편에 서기보다 원수들의 편에 서서 자신의 영달을 꾀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것을 거부한 채 세상의 권력과 타협하며 세상의 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어느 누구에게나 결단을 요구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과 세상의 어떤 힘, 악과 거짓 중에 어느 것에 대해 충성를 표할 수가 있을까요?

 

16: 그 성읍 장로들을 잡고 들가시와 찔레로 숙곳 사람들을 징벌하고

  ‘징벌하다(야다: ידע)’는 원래 알다’, ‘이해하다’, ‘경험하다는 뜻인데, 여기서는 가르침을 받다’ ‘개우치다’ ‘교훈 받다는 의미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이는 그들을 징계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숙곳 사람들로 하여금 들가시와 가시로 된 도리깨로 그들을 혹독하게 징벌할 만큼 그들의 죄과가 무거운 것임을 깨닫게 했다는 의미입니다. 즉 징계에 핵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징계로 인한 깨달음에 있습니다.

 

17: 브누엘 망대를 헐며 그 성읍 사람들을 죽이니라.

  브누엘 망대를 헐었다는 것은 성을 완전히 파괴한다는 의미로 9절에 있는 선언대로 행한 것입니다.

 

18: 이에 세바와 살문나에게 묻되 너희가 다볼에서 죽인 자들은 어떠한 자이더뇨 대답하되 그들이 너와 같아서 모두 왕자 같더라.

  기드온은 미디안 왕에게 다볼에서 죽인 자들에 대하여 질문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살인 행위는, 7년 동안 이스라엘을 유린할 때, 미디안과 그의 동맹군이 이스라엘과 다볼 산에서 대치하고 있을 때, 미디안이 패하여 도주할 때, 혹은 언제인지 모르거나 정확히 알 수 없는 시기에 이루어진 것이지만, 아마도 서로 다볼 산에서 대치하고 있을 때에 발생한 소규모의 국지전에서 일어났을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이들은 모두 왕자 같더라고 말합니다. 이는 기드온의 노를 누그러뜨리고 환심을 사는 아첨의 말인지 아니면 실제로 기드온과 그의 형제들이 이스라엘 사회에서 명망이 높은 지위에 있었음을 말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19: 가로되 그들은 내 형제 내 어머니의 아들이니라 내가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노니 너희가 만일 그들을 살렸더면 나도 너희를 죽이지 아니하였으리라 하고

  이는 기드온의 동족임을 강조하는 말이거나 아버지는 다르나 어머니가 같은 한 배의 형제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친형제였음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이 구절은 기드온이 그토록 세바와 살문나를 잡으려고 애썼던 이유는 전쟁을 완전히 승리로 이끌고 종결시키겠다는 동기 외에도 개인적인 복수라는 부차적 동기가 있었음을 밝혀줍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고살(故殺)’된 피살자의 가장 가까운 혈족은 피의 보수자가 되어 살인자의 생명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었습니다(35:16-34; 19:11-13). 바로 이 법에 따라 기드온은 형제들의 죽음에 대한 복수자의 자격으로 세바와 살문나를 처형하겠다는 뜻입니다.

 

20: 그 장자 여델에게 이르되 일어나 그들을 죽이라 하였으나 그 소년이 칼을 빼지 못하였으니 이는 아직 어려서 두려워함이었더라.

  기드온이 나이 어린 여델에게 두 왕을 처형하라고 명한 것은 첫째 그 왕들에게 소년의 칼에 죽었다는 수치와 불명예를 안겨 주기 위함이며, 둘째 자신의 아들 여델에게 적장을 죽이는 영예를 안겨주기 위함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여델은 소년즉 말 그대로 어린 소년이라서 두려움으로 인하여 칼을 뺄 수가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어린 소년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은 미디안의 두 왕으로 하여금 극도의 치욕에 떨다 죽게 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1: 세바와 살문나가 가로되 네가 일어나 우리를 치라 대저 사람이 어떠하면 그 힘도 그러하니라. 기드온이 일어나서 세바와 살문나를 죽이고 그 약대 목에 꾸몄던 새 달 형상의 장식을 취하니라.

  세바와 살문나는 기드온에게 죽여 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어린 아이의 손에 죽는 치욕보다는 큰 용사인 기드온의 손에 명예롭게 죽겠다는 청입니다. ‘사람이 어떠하면 그 힘도 그러하니라.’ 사람에게는 그가 소유하고 있는 지위나 능력이나 연령만큼의 힘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여델이 너무 어려서 사형을 집행할 역량과 자격을 갖추지 못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새 달 형상의 장식고대 근동 지방 사람들은 초승달 모양의 장식품을 사람의 목이나 전쟁에 사용되는 약대의 목에 부적처럼 달고 다니며 월신(月神)의 보호를 기원했습니다. 사람의 목에는 금이나 은으로 만든 장식을, 짐승의 목에는 여러 가지 잡다한 금속으로 만든 장식을 달아주었습니다. 이러한 장식은 그 당시 유행하던 월신숭배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7:25에 따르면 이방 국가와 전쟁에서 승리를 하면 이방신상 숭배와 관련된 모든 물건들은 전리품으로 취하지 말고 불태워 버릴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 취한 물건들 때문에 우상숭배의 올무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그것들을 불태우지 않고 자기가 가졌습니다. 이런 행위는 후에 이스라엘이 도 다시 우상숭배에 빠지는 올무가 되고 말았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기드온의 행위를 기록함으로써 그가 그토록 많은 하나님의 능력과 기사를 체험했을지라도 하나님의 계명에는 얼마나 소홀했는가를 또 무지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록을 통하여 미디안에게 그토록 유린당하고 고통당한 근본적 원인이 이방신을 섬긴데 있다는 사실에 대해 깨달음이 없었으며 무지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즉 기드온의 태도 6:13에 나타는 그 근본적 태도가 조금도 변하지 않았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압제를 받은 것이지, 자신들이 우상숭배를 했기 때문이라는 것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던 그 모습 그대로 아직도 변화 받지 못한 것입니다.

 

22: 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

  전쟁에 참여한 지파 사람들은 기드온이 자신들을 구원하였으니 왕이 되어 다스려달라고 간청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주체가 하나님이 아니라 기드온이라고 인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처럼 불가능한 가운데 엄청난 승리를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승전의 요인을 하나님이 아닌 인간에서 찾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상태가 어떠한지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드온과 그의 후손들이 대를 이어 자신들을 왕이 되어 통치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은 하나님을 완전히 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팔레스틴의 주변국들에서는 왕이 통치를 하고 있었던 것도 한 요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뢰하는 신앙보다 외적인 인간의 능력이나 제도에 의존하여 자신들의 안전을 도모하려고 하는 불신앙적인 태도에서 왕을 요구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진정하고 오직 하나뿐이신 왕은 여호와이심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23: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그러나 기드온은 이 같은 백성들의 요청을 단번에 거절하였습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통치권은 오직 하나님께 있으며 하나님만이 그들의 보호자가 되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번 미디안과의 싸움에서 귀중한 교훈을 얻은 기드온이기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라고 확실하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4~32: 기드온은 말년에 두 가지의 큰 잘못을 했는데 그것에 대한 기록입니다. 첫 번째 잘못은 하나님께서 명하시지 않은 에봇을 만든 것입니다. 그는 미디안과의 전투에서 탈취한 귀금속으로 에봇을 만들어 자기 성에 보관함으로써 장차 백성들이 범죄할 소지를 만들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문란한 사생활을 했다는 점입니다. 여러 명의 아내와 첩을 두고 70여 명에 이르는 아들을 둔 것입니다. 이러한 기드온의 행적은 아무리 위대한 신앙이이며 지도자라 할지라도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로서 항상 실수할 수밖에 없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릇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에서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24: 기드온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청구하노니 너희는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내게 줄지니라 하니 그 대적은 이스마엘 사람이므로 금귀고리가 있었음이라.

  이스마엘 족속은 하빌라와 이집트, 그리고 유프라테스 강 사이에 위치해 있던 아라비아 사막 지대에서 유목 생활을 한 사람들이나 대상(隊商)들을 특별히 지리적 또는 인종적 구별이 없이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즉 아라비아 유목민에 대한 일반적인 명칭입니다. 따라서 미디안과 동방 사람과 아말렉을 함게 부르는 이름입니다. ‘귀고리(네젬:נזם)’코걸이’, ‘귀걸이’, ‘보석등의 의미를 지니므로 코걸이, 귀걸이를 총 망라하여 금으로 된 장신구를 가리킵니다.

 

25: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가 즐거이 드리리이다 하고 겉옷을 펴고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그 가운데 던지니

  ‘즐거이주다’ ‘수여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드리리이다. 드리리이다.’ 반복을 하여 기꺼이 바치겠다는 의미가 됩니다.

 

26: 기드온의 청한 바 금귀고리 중수가 금 일천 칠백 세겔이요 그 외에 또 새달 형상의 장식과 패물과 미디안 왕들의 입었던 자색 의복과 그 약대 목에 둘렀던 사슬이 있더라.

  한 세겔은 약 11.4g이므로 금귀고리의 총 무게는 19.38kg이 됩니다. ‘패물(네티파:נטיפה)’는 특히 진주로 만들어진 장식품을 나타낼 때 사용합니다. ‘자색 의복자색은 고대 염료 중에서 가장 값진 색깔로서, 홍자색상에 속하는 색상을 총망라합니다. 이 색깔은 주로 조개에서 채취하여 옷감의 염색에 사용되었는데, 이 색깔로 염색한 옷을 자색 옷이라 합니다. 이 자색 옷은 명예와 부의 상징으로 왕이나 왕족이 입었던 옷입니다.

 

27: 기드온이 그 금으로 에봇 하나를 만들어서 자기의 성읍 오브라에 두었더니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므로 그것이 기드온과 그 집에 올무가 되니라.

  에봇은 대제사장 복장의 일부로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는 우림과 둠밈을 넣는 주머니가 부착되어 있습니다(28:6-14). 기드온은 제사장 복장이 에봇을 금으로 만들어 자신의 집에 두었습니다. 이런 행위는 당시 실로에 있던 법궤와 제사장들에게 가서 예배하거나 하나님의 뜻을 묻는 행위를 자기 처소에 있는 에봇에게 와서 행하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즉 그는 제사장의 기능을 가로채 실로에 있는 장막 성전에 버금가는 예배처소를 자기 집에 세웠다는 뜻입니다. 당시 합법적인 성소는 실로에 있었는데, 지금 기드온은 오브라에 북쪽 지파를 위한 불법 성소를 지어 백성들의 종교 생활의 중심지로 삼았음을 말합니다. 이러한 행위는 중앙 성소법, 즉 하나의 합법적성소를 명한 하나님의 명령에 어긋나는 행위로 그가 얼마나 하나님의 율법에 무지하고 무관심했는지를 부여는 단면이라고 하겠습니다. ‘음란하게 위하므로간음하다는 뜻을 지닌 음란(자나:זנה)’는 는 구약 성경에서 우상에게 절하거나 미혹된 상태를 묘사하는 데 사용이 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모든 백성들이 기드온의 금 에봇에 마음이 미혹되어 그것을 섬기고 하나님을 버렸음을 의미합니다. 결국 이 에봇은 기드온과 그의 가족이 멸망당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고 맙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방신에게서 구해내고, 우상 숭배를 척결하라고 부르신 뜻을 저버리고 오히려 기드온 자신이 앞장서서 혼합주의적 신앙으로 가는 징검다리를 놓았던 것입니다.

 

28: 미디안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복종하여 다시는 그 머리를 들지 못하였으므로 기드온의 사는 날 동안 사십 년에 그 땅이 태평하였더라.

  ‘그 머리를 들지 못하였으므로이는 전쟁의 패배로 인하여 힘과 정신이 완전히 와해된 상태를 묘사하고 있습니다(1:21). 미디안의 패배로 이스라엘에 40년 동안 태평한 세월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태평세월은 사사기에 기록된 마지막 평화의 기간이기도 합니다.

 

29: 요아스의 아들 여룹바알이 돌아가서 자기 집에 거하였는데

  본 절부터 32절까지는 기드온의 생활상과 죽음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드온이 사사로서의 공직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 여생을 보내었습니다. 즉 미디안을 쳐부수고 돌아온 이후의 사생활, 즉 사정 생활을 말합니다.

 

30: 기드온이 아내가 많으므로 몸에서 낳은 아들이 칠십 인이었고

  고대의 이방사회에서 많은 부인을 두었던 사람은 왕이나 귀족입니다. 기드온에게 아내가 많았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법에는 무지하고 무관심하였으며, 그의 삶이 완전히 이방화 되어 있었음을 말합니다.

 

31: 세겜에 있는 첩도 아들을 낳았으므로 그 이름을 아비멜렉이라 하였더라.

  ‘세겜에 있는 첩세겜은 므낫세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의 경계 상에 있는 도시로 교통의 요충지입니다. 기드온이 자신의 집이 있는 이스라엘 골짜기의 오브라에서 먼 곳인 세겜에까지 첩을 두었다는 것은 그의 사생활이 얼마나 문란했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하겠습니다. ‘아비멜렉은 아버지의 뜻인 아브(אב)’을 뜻하는 멜렉(מלך)의 합성어로 아버지의 왕혹은 나의 아버지는 왕이다.’는 의미로 해석합니다. 이러한 이름은 기드온이 사사 정도의 통치 수준을 넘어 왕으로서 백성 위에 군림하였음을 화정시키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아비멜렉도 그 아비의 뒤를 이어 왕으로서 군림할 것임을 예시합니다. 합법적인 부인에게서 난 70명의 아들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일개 첩의 아들의 이름을 밝힌 것은 정통성 없는 통치자가 앞으로 들어 설 것임을 예시하고 있습니다.(9)

 

32: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나이 많아 죽으매 아비에셀 사람의 오브라에 있는 그의 아비 요아스의 묘실에 장사하였더라.

  기드온은 우상숭배에서 백성들을 구하기는커녕 우상숭배로 향하는 징검다리를 놓고, 하나님의 백성을 잘 관리하기는커녕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특권을 마음껏 휘두르다가 죽어간 일대기를 남겼습니다. 이러한 기드온의 해위는 과거 미디안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구하는 등의 업적을 한 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리는 실로 패역하고 비참한 인생의 말로가 아닐 수 없습니다.

 

  33-35: 기드온의 업적에 힘입은 이스라엘은 기드온이 살아있는 동안 40년간 평화기를 맞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기드온이 죽자 또 다시 하나님을 멀리한 채 우상숭배에 탐닉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대적의 손에서 건져내신 하나님 대신에 가나안의 신 바알을 섬겼으며, 기드온이 생전에 자신들에게 베푼 은혜마저 잊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는 사사기에서 반복되고 있는 악순환의 연속입니다.

 

33: 기드온이 이미 죽으매 이스라엘 자손이 돌이켜 바알들을 음란하게 위하고 또 바알브릿을 자기들의 신으로 삼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기드온이 죽자 즉시 우상숭배로 돌아섰음을 말합니다. ‘바알브랏()’, ‘바알을 뜻하는 바알(בעל)’과 언약을 뜻하는 베리트(ברית)’의 합성어로 언약의 바알’, ‘언약의 주를 뜻합니다. 그리고 의 원어는 하나님을 뜻하는 엘로힘(אלחים)’입니다. 따라서 본 구절은 문자적으로 언약의 주인 바알을 자신들의 하나님으로 삼았다.’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언약을 저버리고 바알과 언약을 맺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정작 택해야 할 생명의 신인 여호와를 버리고 죽음의 신이요 거짓 신인 바알을 택하여 바알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34: 사면 모든 대적의 손에서 자기들을 건져내신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을 기억지 아니하며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성경 저자는 바알브랏, 자기의 신(하나님)’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을 강하게 대비시켜 진정으로 이스라엘이 택했어야 할 대상은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미디안의 압제에서 구해 낸 신은 바알브릿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기억지 아니하며이스라엘의 전 역사는 하나님에 대한 망각의 역사입니다. 그들은 항상 필요할 때는 하나님을 이용하고 평안할 때는 관심조차 갖지 않는 배은망덕한 역사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35: 또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의 이스라엘에게 베푼 모든 은혜를 따라서 그의 집을 후대치도 아니하였더라.

  ‘후대(헤세드:חסד)’인자’, ‘친절등의 의미를 지닙니다. 여기서는 언약적 측면에서의 충성을 표현한 말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드온과 그의 후손에게 충성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던 약속을 지키지 않았음을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