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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제7장 강해: 기드온의 삼백 용사

chukang 2014. 12. 13.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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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제7장 강해: 기드온의 삼백 용사

 

  군사력의 규모가 승패를 결정적으로 좌우하게 되는 일반 원칙과는 달리, 하나님께서는 32천명의 병력 중에서 오직 300명만을 선발하셨습니다. 그리고 타고난 성격이 조심스럽고 소심한 기드온에게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확신을 주시기 위해서 한 병사의 꿈을 꾸게 하셨습니다. 본 장에서 강조되는 것은 이스라엘의 승리가 결코 군사력의 많음이나 전략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 때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2절에서 보듯이 이스라엘의 구원이 오직 여호와의 은혜와 능력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밝히 보여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행하신 것입니다. 이는 태초부터 종말가지 이어지는 구속사는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사랑과 능력으로만 전개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1-8: 하나님께 표징을 구하여 승리를 확신하게 된 기드온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32,000명 중에서 단 300명만을 추려내어 강력한 미디안 군대 135,000명을 전멸시키는 놀라운 전과를 이루어 내었습니다.

 

1: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과 그를 좇은 모든 백성이 일찍이 일어나서 하롯 샘 곁에 진 쳤고 미디안의 진은 그들의 북편이요 모레 산 앞 골짜기에 있었더라.

  ‘여룹바알바알에게 대적하다는 뜻으로 기드온이 바알의 단을 훼파하여 얻은 별칭입니다. ‘모든 백성이이는 이스라엘 전체가 아니라 기드온의 군사 소집 나팔 소리에 응하여 모인 군사들입니다. ‘하롯샘은 전통적으로 북쪽 골짜기를 내려다보고 있는 길보아 산의 서쪽 가장 자리에 있는 아인 야룻으로 보고 있습니다. ‘모레 산은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이스르엘 평원의 북쪽에 위치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2: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은 즉8:10에 의하면 미디안과 그 동맹국의 숫자는 135,000명인데 비해 이스라엘 군사 수는 32,000명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비교될 수 없을 만큼의 큰 차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마저도 많다고 하는 말을 기드온에게는 해당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힘으로 승리했다고 할까 염려하심이었습니다.

 

3: 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고하여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서 떠는 자여든 길르앗 산에서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 명이요 남은 자가 일만 명이었더라.

  ‘누구든지 두려워서 떠는 자여든이는 군대를 축소하는 첫째 방안입니다. ‘떨다(차팔:צפר)’는 우여곡절 끝에 되돌아오는 것, 새 길로 도망치는 행위를 말합니다. 따라서 첫 번째 축소 대상자들은 전쟁을 무서워 하거나 전쟁 중에 도망칠 가능성이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 자들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사업에 동참할 자격이 없는 자들입니다. ‘길르앗 산에서 떠나 돌아가라.’ 길르앗 산은 요단 동편에 위치하고 있는데 방해 지금 이스라엘이 진치고 있는 곳은 요단 서편에 있는 이스르엘 골짜기와 그 근처이므로 해석하기가 매우 애매합니다. 그래서 여러 견해가 있습니다. 길르앗은 기드온 군대가 진치고 있는 곳인 길보아 산을 잘못 기록한 것이라는 견해, 길르앗 후손들이 요단 동편에서만 산 것이 아니라 요단 서편에서도 살았기 때문에 또 다른 길르앗 산이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견해, 길르앗 산에서 떠나 돌아가라는 말을 집으로 돌아가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견해가 있습니다. 이들 견해 중 가장 타당성 있는 것은 이스라엘이 미디안에 대적하여 진치고 있던 곳이 길보아 산이었기에 길르앗에서 떠나길보아 산에서 떠나로 고치면 아무런 무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 번역본이 정확하게 옮겼다고 하면 본 절의 길르앗 산에서 떠나라는 하는 구절이 옳을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정확무오하기 때문입니다.

 

4: 여호와께서 또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그들을 인도하여 물가로 내려가라 거기서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 무릇 내가 누구를 가리켜 이르기를 이가 너와 함께 가리라 하면 그는 너와 함께 갈 것이요 내가 누구를 가리켜 이르기를 이는 너와 함께 가지 말 것이니라 하면 그는 가지 말 것이니라 하신지라.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처음에 보인 삼만 이천 명 중 이만 이천 명이 떠나고 만 명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재차 감축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승전 시에 자신의 능력을 자랑치 못하게 하고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찬양케 하기 위함입니다. ‘시험하리라시험하다(차라프:צרף)정련하다’ ‘연단하다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여기서는 남은 군사 중에서 전쟁에 참여할 사람들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군인을 선발하는 권한은 지도자인 기드온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으며 어떠한 자를 뽑아도 기드온은 그와 함께 반드시 전쟁에 나가야 함을 말합니다.

 

5: 이에 백성을 인도하여 물가에 내려가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무릇 개의 핥는 것 같이 그 혀로 물을 핥는 자는 너는 따로 세우고 또 무릇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도 그같이 하라 하시더니

  군축을 위한 하나님의 두 번째 방안입니다. 그런데 왜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와 개의 핥는 것 같이 그 혈로 물을 핥는 자를 구분하라고 하셨을까요? 이에 대한 대표적인 견해는 조심성을 알아보기 위한 시험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견해에 의하면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는 전쟁 시에 적이 뒤에서 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사람들로서 자제력이나 조심성이 결여된 사람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는 주위를 경계하는 조심성과 자제력과 군인 정신이 투철한 사람이라고 보았습니다. 두 번째 견해는 숫자를 감소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임의적인 방법이었다는 견해입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목마를 때 무릎을 꿇고 마시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물을 효과적으로 먹을 수 없기 때문에 두 손으로 물을 움켜서 먹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일반적 사실을 알고 숫자가 아주 작게 나오는 쪽을 택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셨다는 주자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특별한 방법을 좇아 소수의 선택된 용사 300명을 선발하셨습니다.

 

6,7: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 명이요 그 외의 백성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지라.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물을 핥아 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그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

  뽑힌 300명이라도 이들은 잘 훈련된 군사는 아니었습니다. 남들과 같은 방식으로 물을 마시지 않았을 뿐입니다. 만약 잘 훈련된 군사들이었다면 이들이 미디안을 쳐부순 것을 최정예 부대의 능력으로 승리했다고 했을 것입니다. 이제 32,000명 중에 22,000명이 돌아가고, 남은 만 명 중에서 300명만 남고 9,700명은 돌려보내고 전쟁을 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미디안 군사는 135,000명이나 됩니다. 300명으로 도무지 불가능한 전쟁을 하나님은 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8: 이에 백성이 양식과 나팔을 손에 든지라 기드온이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을 각각 그 장막으로 돌려보내고 그 삼백 명은 머물러 두니라 미디안 진은 그 아래 골짜기 가운데 있었더라.

  이제 전투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양식과 나팔에는 두 견해가 있습니다. 양식에 대해서는 문자 그대로 해석해서 양식으로 번역하기도 하고(NIV:provisions, KJV:victual), 원래 전투용 양식을 넣었던 용기를 가리킨다고 보아서 항아리, 단지등으로 번역하기도 합니다(LB:clay jars, RSV:jars, 공동번역은 단지). ‘나팔(쇼파르:שׁפר)’은 수양의 뿔로 만든 나팔을 의미합니다. 이는 전쟁을 선포하거나 군사를 소집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머물러 두니라(하자크:חזק)’돌려보내다의 원어 쉴라(שׁלה)의 반대어로 꼭 잡다’ ‘억지로 잡아두다는 뜻입니다.

 

  9-15: 300명으로 군사를 추리신 하나님께서는 그날 밤 기드온에게 나타나 먼저 미디안 연합군 격퇴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그리고 기드온으로 하여금 적군의 진영에 이르러, 적군들이 나누는 꿈 이야기를 듣게 하셨습니다. 그 꿈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기드온의 칼날에 붙이셨다는 것이므로 이에 기드온은 승리에 대한 확신과 용기를 얻고 진영으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3차례에 걸쳐 표징을 보여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표징을 보여주신 까닭은 기드온과 300용사들을 격려하시기 위함입니다. 두려움을 가지고 있을 그들을 하나님께서 친히 이끌고 전쟁을 하실 것임을 계시함으로써 승리의 확신을 불어넣어 주신 것입니다.

 

9: 이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내려가서 적진을 치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붙였느니라.

  ‘내려가서이는 일차적으로 이스라엘의 진이 미디안의 진보다 고지대에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지만 전쟁을 치르러 나감을 의미합니다. ‘네 손에 붙였느니라.’ ‘붙였다(나탄:נתן)’주다’ ‘넘기다는 의미를 지니는데 여기서는 소유권을 넘기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미디안을 이스라엘에게 넘긴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미디안의 손에 넘어갔던 상태에서 회복됨을 의미합니다.

 

10: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 부라를 데리고 그 진으로 내려가서

  이는 기드온이 전에 주어진 격려와 표징들로 인한 승리에 대한 확신에도 불구하고 미디안을 공격하기를 두려워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고 능력을 발휘하신다고 해도 300명으로는 도무지 승리가 불가능해 보였던 것입니다. 이런 기드온의 심리 상태를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또 다른 표징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11: 그들의 하는 말을 들으라 그 후에 네 손이 강하여져서 능히 내려가서 그 진을 치리라 기드온이 이에 그 부하 부라를 데리고 군대가 있는 진 가에 내려간즉

  ‘네 손이 강하여져서’ 135,000명이나 되는 미디안 군대와 300명의 군사로 맞서 싸워야 하는 기드온은 차마 엄두가 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은 기드온의 마음에 힘과 의욕이 치솟을 수 있는 승전에 대한 표징을 보여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군대가 있는 진 가에 내려간즉이는 전투 대형의 가장자리로 갔다는 것입니다. 아마 파수꾼들이 있는 초소를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12: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의 모든 사람이 골짜기에 누웠는데 메뚜기의 중다함 같고 그 약대의 무수함이 해변의 모래가 수다함 같은지라.

  이스라엘의 300명 군사가 싸우게 될 미디안의 군대 규모가 어떤가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군사는 메뚜기 떼에 비교될 만큼 많고, 군사들이 타고 싸우거나 군수품을 수송하는 약대가 셀 수 없을 만큼 많았음을 과장하여 묘사하고 있습니다.

 

13: 기드온이 그곳에 이른즉 어떤 사람이 그 동무에게 꿈을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으로 굴러 들어와서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엎드러뜨리니 곧 쓰러지더라.

  구약 성경에서는 모든 꿈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고 믿었으며 그것을 해석하는 데는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40:8; 41:16; 2:19-23). 꿈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선택 받은 자들이나(33:15, 16) 왕에게(삼상 28:6) 그리고 예언자에게(12:6) 전달하는 수단 중의 하나였습니다. 즉 꿈은 계시의 수단입니다. 이와 반대로 꿈은 헛된 꿈이 있었고 아무런 의미도 없는 꿈도 있었습니다(73:20; 5:7). 여기에서는 하나님의 계시의 수단입니다. ‘보리떡 한 덩어리보리떡은 빈민 계급이 먹는 가장 흔한 떡입니다. 여기서는 비천하고 압제 당하는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한 장막~ 쓰러지더라.’ 한 장막은 중요한 장막으로 장군의 장막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미디안 진에 있는 전체 장막을 가리킵니다. 전체 장막이 쓰러진다는 것은 미디안 군대가 참패하고 파괴되는 것을 싱징합니다.

 

14: 그 동무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날이라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군대를 그의 손에 붙이셨느니라 하더라.

  13절의 꿈의 내용과 본 절에서의 해몽은 미디안 사람들의 기드온과 이스라엘 군대에 대한 공포의 뚜렷한 증거입니다. 과거 이스라엘은 출애굽 후 홍해를 건너고, 아모리 왕 시혼과 옥을 멸절시킨 바 있습니다. 이에 이스라엘이 계속해서 요단을 마른 땅 같이 건너 가나안에 들어가려 하자, 가나안 인들은 이스라엘이 도착하기도 전에 이들에 대한 공포로 떨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이 미디안 인들의 공포가 바로 이와 같은 것입니다(23:37; 2:9, 10).

 

15: 기드온이 그 꿈과 해몽하는 말을 듣고 경배하고 이스라엘 진중에 돌아와서 이르되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미디안 군대를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 하고

  미디안의 진 곁에서 두 군사가 나누는 꿈에 대한 대화를 듣고 난 후에 취한 기드온의 반응을 적고 있습니다. ‘경배하고문자적으로 엎드려 절하다는 말입니다. 이는 승리의 표징을 보여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표현입니다. ‘일어나라이는 전투를 부축이는 말입니다. 또한 이는 삼백 명으로 135,000명을 보고 두려워하며 싸울 엄두도 못내던 데서 기드온이 꿈의 표징을 통하여 승리의 확신을 가지게 되었음을 나타냅니다.

 

  16-25: 하나님께로부터 승리에 대한 결정적 표징을 받은 기드온은 작전을 세우고 즉시로 미디안 군대를 기습하여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이처럼 전쟁의 승패는 우수한 무기와 군사의 수에 따라 결정되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는 전쟁 수행에 필요한 작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성도들도 대적들과의 싸움을 물리적인 힘이나 자신의 지혜로 수행하고자 하면 반드시 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대적 사단은 실로 엄청난 능력을 지녔으며 매우 교활하여 우리의 지혜로는 도저히 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고후 11:3; 12:9).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함께 싸워주시도록 온전히 의지하지 않은 안 됩니다(6:11). 또한 대적을 상대하는 무기로 복음의 나팔과 진리의 햇불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온의 삼백 용사가 사용한 무기가 고작 나팔과 횃불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지한 삼백 용사의 돈에 들릴 때에 그것은 그 어떠한 무기보다 우수한 무기가 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대적과의 싸움에 하나님의 복음과 진리의 횃불을 들고 나가야 합니다(6:19-17). 그것들은 게상 사람들이 미련하게 여기는 것이나 실상은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고후 10:4)입니다.

 

16: 삼백 명을 세 대로 나누고 각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리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고

  기드온은 삼백 명을 세대로 나누어서 공격했습니다. 적을 여러 방면에서 공격하여 보다 큰 효과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 전술입니다. ‘각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 ‘나팔은 전쟁을 선포하거나 군사를 소집할 때 사용되었고, ‘빈 항아리는 물을 긷거나 양식을 담는 데 사용된 토기입니다.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고횃불을 항아리 안에 감춘 것은 미디안 군대 진영 가까이에 가서 갑자기 횃불을 꺼내 흔들어 적군을 당황하게 만들기 위한 전술입니다. 본 장에는 3가지 상징이 있는데, 횃불, 항아리, 보리떡입니다. 보리떡 한 덩어리와 진흙 항아리는 인간의 무능력과 무가치를 상징하며 항아리 속에 감추인 횃불은 진흙같은 인간을 사용하사 하나님께서 나타내실 구원의 영광을 상징합니다. 이것은 보리떡 같고 질그릇 같은 연약한 기드온과 그의 삼백 용사들을,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한 사역의 도구로 사용하사 영광스러운 구원을 이루셨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동참함에 있어 우리의 자신이 질그릇 됨을 깨달아야 하며, 우리의 사역의 궁극적 목표는 질그릇이 깨어지듯 우리의 자아가 깨어지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이 드러나야 하는 것(고후 4:7)임을 개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는 모든 이론과 지식과 생각을 그리스도께 복종하기 위해 포기하고 주님께서 주시는 능력을 따라서만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참여해야 하는 것입니다(고후 10:1-8).

 

17: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만 보고 나의 하는 대로 하되 내가 그 진 가에 이르러서 하는 대로 너희도 그리하여

  이는 기드온이 하는 행동을 군사들 모두가 그대로 따르라는 말로서 행동의 통일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8: 나와 나를 좇는 자가 다 나팔을 불거든 너희도 그 진 사면에서 또한 나팔을 불며 이르기를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하라 하니라.

  원래 전쟁 나팔은 한 방향으로 한 사람이나 두 세 명이 불었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300명이 동시에 사면에서 전쟁 나팔을 불게 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군대가 강한 미디안 군대를 포위할 만큼 많고 강한 것처럼 보이기 하여 미디안 군대로 하여금 두려움에 떨며 당황하게 만들기 위한 전술입니다.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20절에는 이라는 단어가 첨가되어 나오는데 여기에서는 그 단어가 없습니다. 그런데 몇몇 히브리어 역본들과 사본에서 이란 단어를 삽입시켜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KJVRSV(Sword)’을 넣어 번역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칼이 쓰이지 않은 것은 우연히 본문에서 누락되었거나 함성의 축소형으로 쓰였기 때문으로 해석합니다(Pulpit Commentary). 공동 번역에는 야훼 만세! 기드온 만세!’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는 전투 시에 외치는 구호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전쟁임을 선포하여 적들의 간담을 녹게 하였을 것입니다.

 

19: 기드온과 그들을 좇은 일백 명이 이경 초에 진 가에 이른즉 번병의 체번할 때라 나팔을 불며 손에 가졌던 항아리를 부수니라.

  ‘이경 초이스라엘 사람들은 우리와는 달리 일몰에서 다음 날 일몰까지를 하루로 정하고, 해질 때부터 다음 날 해뜰 때까지인 밤을 세 부분으로 구분하였습니다. 일경은 해질 때부터 밤 10시가지, 이경은 밤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삼경은 새벽 2시부터 동틀 때까지입니다. 따라서 이경 초라는 말은 밤 10시에서 11시 사이입니다. ‘번병의 체번할 때라보초가 교대하는 시간입니다. 첫 번째 보초와 두 번째 보초가 교대하는 시간입니다.

 

20: 세 대가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좌수에 횃불을 들고 우수에 나팔을 들어 불며 외쳐 가로되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 하고

  본 절은 16~18절에서 지시한 기드온의 명령을 이스라엘 군사들이 일사불란하게 따르고 있음을 말합니다.

 

21: 각기 당처에 서서 그 진을 사면으로 에워싸매 그 온 적군이 달음질하고 부르짖으며 도망하였는데

  이것은 이스라엘 군대가 미디안 군대의 사방에 서서 단순히 횃불을 밝히고 나팔만 불고 있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 군인들이 미디안의 진 안으로 들어가 그들과 싸우지 않았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디안 군대는 달음질(야라츠:ירץ)’하기에 바빴습니다. 황급히 서두르고 갈팡질팡하는 것입니다. ‘부르짖으며는 아우성치는 모습을 연상하게 하며 도망함은 장막에 있는 가축이나 모두 소유를 도피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이스라엘 군대는 가만히 횃불만 들고 있었고 나팔만 불었을 뿐인데 그 효과는 이상하고도 엄청난 것이었다고 저자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22: 삼백 명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와께서 그 온 적군으로 동무끼리 칼날로 치게 하시므로 적군이 도망하여 스레라의 벧 싯다에 이르고 또 답밧에 가까운 아벨므흘라의 경계에 이르렀으며

  또한 이스라엘은 무기로 공격하지 않았는데, 저희들끼리 서로 칼로 죽이는 기상천외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저자는 이 일을 이스라엘 군대의 강성함과 기드온의 지혜로움의 결과가 아니라 여호와께서행하신 결과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23: 이스라엘 사람들은 납달리와 아셀과 므낫세에서부터 모여서 미디안 사람을 쫓았더라.

  ‘이스라엘 사람들은이들은 기드온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해산시켰던 군인들을 말합니다.

 

24: 기드온이 사자를 보내어 에브라임 온 산지로 두루 행하게 하여 이르기를 내려와서 미디안 사람을 치고 그들을 앞질러 벧 바라와 요단에 이르기까지 나루턱을 취하라 하매 이에 에브라임 사람들이 다 모여서 벧 바라와 요단에 이르기까지 그 나루턱을 취하고

  본 절에는 요단강을 건너 도주하려는 미디안과 그의 동맹군의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기드온이 에브라임 지파에 지원을 요청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브라임 온 산지이는 에브라임 지파의 모든 경내의 다른 말로 에브라임 지파를 가리킵니다. 이렇게 기드온이 에브라임 지파에 전령을 보낸 것은 미디안의 퇴로가 가나안 중부지역까지 미쳤음을 암시합니다. ‘벧 바라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나 아마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요단강에 있는 도선장(渡船場)으로 갈 수 있는 어느 한 지점으로 보입니다. ‘나루턱의 원어는 마임(מים)으로 문자적으로 강물‘(Water: NIV, KJV. RSV)을 의미하나 여기서는 요단강을 건너서 도망할 수 있는 배가 있는 도선장입니다. 이러한 도선장을 점령하라는 것은 미디안의 군대가 도망할 요단 동편의 퇴로를 차단하라는 의미입니다.

 

25: 또 미디안 두 방백 오렙과 스엡을 사로잡아 오렙은 오렙 바위에서 죽이고 스엡은 스엡 포도주 틀에서 죽이고 미디안 사람을 추격하고 오렙과 스엡의 머리를 가지고 요단 저편에서 기드온에게로 나아오니라.

  방백은 일반 행정직의 지도자가 아니라 군대지휘관들 중의 한 사람입니다. 오렙은 까마귀란 뜻을 지니고 있으며 스엡늑대를 뜻합니다. ‘머리를 가지고고대 전쟁에서는 승리의 표시로 적장의 목을 잘라 가지고 개선했습니다. 그러한 군사적 관례에 따라 에브라임 지파가 두 미디안 방백의 머리를 잘라가지고 왔는데 이는 그들을 토벌하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단 저편에서기드온이 요단 동편에 있을 때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이 요단 서편에서 오렙과 스엡의 머리를 가지고 왔다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