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사사기 제3장 강해: 남겨 둔 가나안 족속들과 사사시대의 시작

chukang 2014. 10. 17.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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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제3장 강해: 남겨 둔 가나안 족속들과 사사시대의 시작

 

  본 장은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들을 다 쫓아내지 않고 남겨두신 이유가 기록되어 있고, 이로 인한 이스라엘의 타락과 징계와 회개와 다시 하나님의 사랑이 임하심 그리고 또 다시 타락하는 악순환으로 인하여 사사의 등장이 필연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6: 남겨진 가나안 족속들은 타락한 이스라엘을 징계하는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시험하시는 주체로 등장하지만, 그러나 그 시험은 제공하는 주 원인은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 자체에게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으로 말미암아 파생된 여러 요소들이 곧 시험의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성실하게 준행했다면 그들은 자신들을 시험에 빠지게 하는 요소들을 발생시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지 않고 하나님께서 분부하신 명령을 태만히 하여 결국 스스로 시험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1: 여호와께서 가나안 전쟁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

  본 절에서는 여호수아 시대에 가나안 족속을 속히 쫓아내지 않은 두 번째 이유가 기록되고 있습니다. 시험하기 위함입니다. 여기에서 시험은 나사(נסה)’단련하다, 연단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나안 정복 이후 태평시대를 살아 가나안 전쟁에 대한 경험이 없는 새 세대에게 전쟁을 위해 훈련시키려는 목적이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2: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하사 남겨 두신 열국은

  가나안 족속을 쫓아 내지 않은 세 번째 이유입니다. 이는 가나안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새 세대에게 어떻게 싸우느냐?’ 그리고 어떻게 성공적인 정복을 할 것인가?’를 가르치기 위한 목적이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전생의 성공적인 방법들뿐만 아니라 왜 가나안 정복이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이해, 즉 가나안 정복의 목적도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전쟁의 필요성, 방법, 목적을 세 세대들로 알 수 있게 하려고 가나안 존속을 남겨 두었던 것입니다. 사사 2:21부터 본 절까지 나타난 이유들 외에 또 다른 이유는 들짐승들이 번성하여 너희를 해할까 하노라.’입니다. 들짐승이 번성한다는 것은 전쟁으로 인한 황폐를 상징합니다. 이런 사실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을 완전히 멸절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놓고는 이스라엘의 인구가 적어 그 땅에 들어가 살 사람이 없어 땅이 버려져 있으므로 들짐승들이 우글거리게 되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남겨 두신 열국은 여호수아가 완전히 정복하지 못한 성읍들인데, 사실은 여호수아가 남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남겨놓으신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불신앙 때문에 정복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순종여부를 알기 위하여 몇몇 성읍을 대표적으로 남겨두셨기에 다 정복하지 못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3: 블레셋 다섯 방백과 가나안 모든 사람과 시돈 사람과 바알 헤르몬 산에서부터 하맛 어구까지 레바논 산에 거하는 히위 사람이라

  블레셋 다섯 방백은, 블레셋의 다섯 성읍으로 가사, 가드, 아스돗, 에그론, 아스글론을 다스리던 군주를 일컫습니다. ‘가나안 모든 사람은 가나안 정복 시에 여호수아가 완전히 정복하지 못했던 성읍에 살던 가나안 원주민입니다. ‘시돈 사람은 팔레스틴 북서쪽에 있는 페니키아에 살던 가나안 원주민입니다. 시돈은 무역이 성행하던 항구도시입니다. ‘바알 헤르몬 산13:5에 의하면 그발 사람의 남쪽 경계로서 헤르몬 산 아래 바알갓이라고 보다 정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알갓은 수 11:17에 따르면 여호수아가 정복했던 이스라엘의 북방 경계인 레바논 골짜기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하맛 어구이곳은 레바논 골짜기에 있는 바알갓의 맞은편입니다. 해안에서 들어오는 도로와 시리아 사막에서 오는 도로와 그리고 시리아의 남북을 가르는 도로가 만나는 교통의 중심지입니다. ‘히위 사람메소포타미아의 미타니 왕국과 관련된 호리 족속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36:2에서는 히위 족속 중 시브온으로 언급되고 있지나 20절에서는 호리 족속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히위족은 호리족의 또 다른 이름임을 알 수 있습니다.

 

4: 남겨 두신 이 열국으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여호와께서 모세로 그들의 열조에게 명하신 명령들을 청종하나 알고자 하셨더라.

  여호수아 때에 위의 성읍들을 점령하지 않고 남겨둔 이유에 대하여 재차 거론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의 유무에 대한 증거로 삼기 위함입니다. 모세를 통하여 주신 명령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입니다. 여기에서는 가나안을 정복할 때 유의사항을 말했던 신 7:3, 4의 명령입니다.

 

5: 이스라엘 자손은 마침내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 사이에 거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청조하는지 알기 위하여 남겨둔 가나안 사람들에게 이스라엘이 동화되어 갔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사는 사람들과 동맹계약을 맺지 말라고 하셨으나, 그 경고를 무시하고 그들과 동맹계약을 맺고 함께 살았다는 것입니다.

 

6: 그들의 딸들을 취하여 아내를 삼으며 자기 딸들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며 또 그들의 신들을 섬겼더라.

  가나안 족속들과 동맹 계약으로 함께 사는 이스라엘이 그들과 통혼하며 그들의 신들을 섬기는 데까지 나아가게 되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7:3에 의하면 가나안 족속의 여자와 결혼하는 것은 명백하게 금지하고 있습니다. 즉 이방신을 섬기는 지역의 여인과 통혼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 여인이 유혹하여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들을 섬기도록 설득할 때에 넘어갈 우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7:4). 그런데 그들이 그 명령을 어겼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신을 섬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시험하기 위해 남겨둔 성읍에 동화되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확증하고 순종할 기회를 잃어버리고 오히려 이방신들에게 빠진 불순종으로 빠진 것입니다.

 

  7-11: 사사기의 본론이 시작이 됩니다. 사사기는 위기 때마다 하나님께서 사사를 보내사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신 역사의 반복입니다. 첫 번째로 옷니엘이 등장합니다. 먼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바알과 아세라를 섬긴 대가로 하나님의 형벌을 받아 메소보다미아의 지배하에 8년 동안이나 억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때서야 비로소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하자 사사 옷니엘을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옷니엘은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정복 사역 당시 크게 활약하였던 갈렙의 조카로, 그의 뛰어난 용맹과 신앙은 그가 드빌을 쳐서 정복할 때부터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는 이제 이스라엘을 구원할 초대 사사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어떤 식으로든 준비된 자를 불러 도구로 삼으심을 보여줍니다.

 

7: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악을 행하여하나님의 율법에 역행하는 행위는 곧 악으로 표현이 됩니다. 여기에서는 하나님을 잊고 우상을 숭배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아세라들제사를 실행하는 성소나 제사하는 장소에 세워두었던 나무로 만든 기둥 형태의 목상입니다. 보통 이 목상은 바알 신상의 맞은편에 서서 풍요의 여신인 아스다롯 여신을 상징합니다. 복수형으로 사용된 것은 바알 신이 여러 지역에서 여러 형태로 섬겨졌듯이(2:11) 아세라 목상도 지역에 따라 여러 형태로 섬겨졌음을 말합니다.

 

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팔 년을 섬겼더니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이방신들을 섬긴데 대한 하나님의 진노로 인한 징벌입니다. ‘메소보다미아는 시리아를 뜻하는 아람(ארם)’과 강을 뜻하는 나하르(נהר)’의 복수형이 사용되어 두 강의 아름을 뜻합니다. 메소포타미아는 앗시리아, 바벨론이 다스렸으며 보통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을 중심으로 한 비옥한 초승달 지역을 일컫습니다. 그런데 본 절에서의 문제는 옷니엘과 싸우는 구산 리사다임의 출전지가 너무 멀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히브리어로 아람(ארם)’에롬(ארם)’이 철자상 비슷한 것으로 보아 에롬이 아람으로 잘못 기록된 것이라고 하여 에롬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영역본 NEB, NIV에서는 메소포타미아로 번역하지 않고 문자 그대로를 표기하여 아람 나하라임(ארם נהרים)’으로 번역하여 두 강의 아람이란 의미를 살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LB에서는 동부 시리아(estern Syria)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두 강의 아람은 앗시리아와 바빌로니아를 뜻하기보다는 유프라테스 강 남서쪽의 오른테스 강 유역에 위치한 동북부 시리아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메소포타미아는 앗시리아, 바빌로니아의 본 영토가 있는 곳이기 보다는 북부와 동부 시리아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봅니다. ’구산 리사다임은 아라비아 지역의 지명인 구산(כושׂן)‘사악하게‘, ’범죄등을 의미하는 레솨(רשׁע)‘의 복수형인 리슈아타임(רשׁעתים)‘의 합성어로 배나 사악한 구산의 의미입니다. 이 이름은 구산 왕이 얼마나 이스라엘 백성을 압제하여 고통을 주었는지를 짐작하게 합니다. ’구산이란 이름은 창 10:8에 따라 바벨론의 왕인 니므롯의 부친인 구스(כושׂ)‘에서 유래했다고 추정하나 객관적인 근거가 부족합니다. ’손에 파셨으므로는 소유권을 넘긴다는 뜻입니다(2:14).

 

9: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구산 리사다임의 혹독한 압제로 고통을 받던 백성들의 호소와 그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의 기록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재난이나 고통 중에서 도움을 청하는 울부짖음입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다는 것은 구산 리사다임 왕의 혹독한 압제 아래서 당하는 고통에서 구해줄 것을 하나님께 호소했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반응은 그들이 섬기고 있던 우상들이 그들을 악한 압제자에게서 구해 낼 수 없는 무능한 신들임을 깨달은 결과이며,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신앙의 표현입니다. 따라서 이는 거짓 신들을 버리고 참 신이신 여호와께 돌아왔음을 의미합니다.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이스라엘의 부르짖음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은 한 구원자를 세워 그들을 압제자의 손에서 구원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한 구원자는 사사를 말합니다. 사사를 구원자라고 부르는 것은 적들의 압제 하에서 고통당하는 백성들을 그 고통에서 구해주는 일을 수행한데서 연유합니다.

 

10: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여호와께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그 손에 붙이시매 옷니엘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니라.

  여기에서 여호와의 신은 성령입니다. 구약 시대에 성령의 임함은 한 번 임하면 영원히 떠나지 않는 신약 시대와는 달리 제한적이었고 한시적이었다고 합니다. 즉 어떤 특정한 신적 사업을 위해 특정한 사람에게 임하였다가 그 일이 완성되었을 때는 떠나갔습니다. 구약에서 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어떤 중요한 일을 수행하거나 완성하기 위해 택함을 입었음과 능력을 받았음을 뜻합니다. 이에 따라 옷니엘에게 성령이 임했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께 지목되어 선택 받았음을 말합니다. 또한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산 리사다임 왕의 세력을 물리치는 일 뿐만 아니라, 그 백성을 지혜롭게 다스릴 수 있는 능력도 받았음을 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아람 사람의 손에 파셨듯이, 적군의 왕을 옷니엘의 손에 넘기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해방되었다는 것뿐만 아니라 압제자들을 항복 시켰음을 말해 줍니다. 이러한 승리와 해방은 여호와께서 주시는 선물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1: 그 땅이 태평한 지 사십 년에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더라.

  적의 압제 아래서 고통하며 신음하는 자들을 이끌어 내어 하나님을 다시 믿게 하며 언약에 순종하도록 하여 정치, 종교적 평화를 구가하는 사대가 오게 했다는 것입니다. 옷니엘이 여호와께서 사사로 부르신 목적을 잘 이행했습니다. 옷니엘의 죽음은 평화의 시대에 대한 종국을 말하며, 동시에 배교와 재난의 새로운 시작임을 암시합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아람의 압제에서 구원하기 위해 세움을 받은 옷니엘의 구원 사건은 사사기서의 전체의 모형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의 배교, 하나님의 진노의 도구인 압제자로 인한 고통, 백성들의 탄식과 참회, 사사를 통한 구원, 구원에 따르는 평화가 계속해서 다른 사건들 속에서도 되풀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의 악순환이 거듭되는 것입니다.

 

  12-30: 두 번째 사사로 활약한 에훗에 대한 내용입니다. 옷니엘이 사사로 있는 40년 동안은 평화가 있었으나 또 다시 완악해져서 범죄하였는데, 하나님께서는 모압을 도구로 사용하셔 18년 동안이나 이스라엘을 징계하셨습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 회개하여 구원을 호소하였습니다. 그 때 세우신 사사가 바로 에훗입니다. 이스라엘은 80년 동안 태평하였습니다.

 

12: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므로 여호와께서 모압 왕 에글론을 강성케 하사 그들을 대적하게 하시매

  본 절부터 30절까지는 사사 에훗의 구원 사건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사 옷니엘이 죽고 난 후 이스라엘이 모세의 법을 떠나 다시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신을 좇아가는 배교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말하는 7절에 비추어 볼 때 우상숭배를 지칭하기 때문입니다. ‘모압은 롯이 그의 큰 딸과 근친상간으로 생긴 아들인 모압의 후손입니다(19:30-38). 그들은 사해 동편 아르논 강과 세렛 강 사이에 있는 영토엣 살았습니다. ‘강성케 하다의 원어 하자크(חזק)’는 전쟁에서 강함, 즉 강한 전투력(왕상 20:23)뿐만 아니라, 전쟁에 대해 소극적인 사람에게도 용기를 불어 넣어 적극적인 자세로 전쟁에 임하도록 하는 격려도 포함하는 단어입니다(삼하 10:12). 따라서 하나님께서 모압 왕 에글론을 강성케 했다는 것은 그들의 군사력을 강하게 했다는 것뿐만 아니라 전쟁의 동기 또한 불어 넣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이는 모압의 강성함이 모압 자체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나온 것임을 분명이 밝히는 말로서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를 부각시킵니다. 더 나아가 모압은 이스라엘을 징계하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13: 에글론이 암몬과 아말렉 자손들을 모아가지고 와서 이스라엘을 쳐서 종려나무 성읍을 점령한지라

  암몬은 롯이 둘째 딸과 잠자리를 같이하여 생겨난 아들, 벤암미의 후손들입니다(19:38). 그들은 요단 동편에 있는 모압의 북동쪽에 있는 영토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아말렉 족속은 에서의 후손으로 팔레스틴 남방의 광야에서 시내 반도까지 이르는 땅에서 유목생활을 하며 살아가던 족속입니다. 결국 이 구문이 말하려는 것은 요단 동편의 암몬과 모압과 그리고 팔레스틴 남부의 아말렉 족속의 연합군이 이스라엘을 침공해 와서 유린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쳐서여기서 문제는 모압의 연합군이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점령한 땅의 범위와 피해의 규모가 어느 정도였느냐는 것입니다. ‘쳐서의 원어 나카(נכה)’는 상대에 대한 가해 행위를 묘사하는 말로 29절에서는 죽였으니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RSV’에서는 패배시키다(defeated)’, NIV에서는 공격하다(attack)’로 각각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번역에서 보듯이 정확한 피해의 성격과 규모와 범위에 대해서 알 수는 없지만 요단강을 중심으로 위치하고 있습니다. 르우벤과 에브라임 그리고 베냐민 지파의 약간의 땅이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종려나무 성읍은 여리고 성을 말합니다.(1:16) 요단 강 하류 계곡의 지배권은 누가 이 성읍을 차지하느냐에 따라 달라졌기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성읍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이 여리고 성을 점령했다는 것은 요단 강 하류에 대한 지배권을 획득하여 이스라엘 전체를 칠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의미입니다. 한편 이 때의 여리고 성은 요새화되지 않았고 거민들이 살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점령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14: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왕 에글론을 십팔 년을 섬기니라.

  옷니엘 사사 시대에는 8년 동안 압제를 받았지만 에훗 사사 시대에는 18년 동안 압제를 받았습니다. 이는 시대를 거듭할수록 그들의 죄악이 깊어갔음을 말함과 동시에 아울러 그에 따른 하나님의 징계가 가중되어 갔음을 말해주는 단면입니다. ‘섬기다는 그들의 통치 아래서 노예 생활을 한다는 의미와 더불어 공물을 바쳤음을 의미합니다.

 

15: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우셨으니 그는 곧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그를 의탁하여 모압 왕 에글론에게 공물을 바칠 때에

  모압 왕 에글론의 심한 압제로 고통을 받던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께 고통을 탄원함에 따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고통에서 구해내기 위하여 사사 에훗을 보냈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습니다. 에훗은 베냐민 지파임을 알려주고 있으며 따라서 베냐민 지파의 땅이 모압의 연합군 아래 점령당했기에 그곳에서 사사가 나와 백성들을 구출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라는 베냐민 지파의 한 씨족의 이름으로 추측됩니다(46:21; 삼하 16:5). ‘왼손잡이문자대로 번역하면 오른손이 제 구실을 못하는 사람입니다. 이는 오른손이 사고로 잘려 나갔거나 이용할 수 없을 만큼 팔을 다쳤다는 의미가 아니라 단지 오른손보다 왼손을 잘 쓰는 사람을 뜻합니다. 그런데 20:16에 의하면 베냐민 지파에 소속된 전사들의 특징은 왼손잡이였습니다. 즉 에훗은 베냐민 지파의 전사였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를 의탁하여즉 이스라엘이 그를 보내어 조공을 바치는 일을 위해 선정한 사신이나 책임자로 삼았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공물을 바치는 자는 일반적으로 그 나라의 지도급 인물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이 에훗을 조공 바치는 책임자로 삼아 모압 왕에게 보냈다는 것은 에웃이 베냐민 지파의 뚜렷한 지도자였음을 짐작케 합니다. 공물은 종주국에 바치는 조공을 위한 예물입니다. 일반적으로 공물은 농산물과 가축 그리고 금과 은과 값비싼 일상용품이었다고 추측을 할 수 있습니다.

 

16: 에훗이 장이 한 규빗 되는 좌우에 날선 칼을 만들어 우편 다리 옷 속에 차고

  규빗은 어른의 팔꿈치에서 손끝까지를 기준으로 하는 길이의 단위로 약 45.6cm 정도입니다. 좌우에 날선 칼은 양날을 가진 단검입니다. 약 한 규빗 정도의 길이를 가진 단검은 오른쪽 허벅지에 찼을 때 다른 사람에게 발각되지 않을 것이며 모압 왕을 죽이기에도 적당한 길이였을 것입니다. 우편 다리 옷 속에 찼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아 보입니다. 오른쪽 다리에 찬 것은 아마도 왕의 호위들이 무기를 숨기고 들어왔음을 쉽게 찾지 못하도록 위장한 것으로 보입니다. 즉 에훗이 왼손잡이였기 때문에 칼을 오른쪽에 찾을 것이라고는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17: 공물을 모압 왕 에글론에게 바쳤는데 에글론은 심히 비둔한 자이었더라.

  ‘비둔한 자’(이쉬 바리: אישׁ בריא)사람을 의미하는 이쉬살찐’ ‘뚱뚱한의 의미를 지닌 바리의 합성어로 뚱뚱한 사람입니다. 이는 그가 얼마나 남의 것을 많이 탈취하고 살았는지를 암시합니다.

 

18: 에훗이 공물 바치기를 마친 후에 공물을 메고 온 자들을 보내고

  ‘공물을 메고 온 자는 짐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조공을 바치러 올 때 동행한 수행원들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수행원의 크기는 종주국에 대한 존경의 정도를 가늠하는 잣대의 구실을 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종주국의 호의를 사기 위해서는 많은 수의 수행원이 조공을 바치는데 동원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풍습에 따라 에훗도 여러 수행원들과 함께 조공을 바치러 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19: 자기는 길갈 근처 돌 뜨는 곳에서부터 돌아와서 가로되 왕이여 내가 은밀한 일을 왕에게 고하려 하나이다 왕이 명하여 종요케 하라 하매 모셔 선 자들을 다 물러간지라.

  길갈은 수 4:19에서 알 수 있듯이 여리고 근처에 위치한 성읍이며, 여호수아가 요단 강을 건너고 나서 기념비 12개를 세웠던 곳입니다. ‘돌 뜨는 곳에서 뜨는의 원어는 페실(פסיל)’의 복술 페실림(פסילים)’으로 우상들, 채석장, 조각한 기념비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 세 가지의 의미 중에 어느 것이 이 문장이 의미하고자 하는 바를 잘 나타내 주느냐는 것입니다. 학자에 따라서 이 단어가 새기 우상을 묘사하는데 21회나 사용되었기에 우상들이라고 이해하기도 합니다. 이 견해에 따르면 돌 뜨는 곳돌로 만든 신상이 잇는 곳’(Pulpit Commentary, Barney, NASB, NIV) 즉 이방신의 신전이나 제단이 잇는 곳을 의미하게 됩니다. 다른 견해는 돌을 채취하는 채석장으로 보는 견해입니다.(Living Bible, KJV) 또 다른 하나의 견해는 기념비로 보는 것입니다. 이 견해에 따르면 여호수아가 요단 강 도하를 기념하기 위하여 길갈에 세운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열두 개의 기념비를 가리킨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4:19-24). 그리하여 돌 뜨는 곳은 길갈의 기념비가 있는 곳이라고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이밖에도 또 어떤 학자는 지명 경계표라고 하기도 합니다. 고대 근동에서는 어떤 왕이 점령한 영토의 경계선 위에 자신의 얼굴 형상을 새긴 돌비석을 세워 경계표로 삼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풍습에 따라 모압 왕 에글론이 요단강 계곡을 점령하면서 길갈에다 자신의 주권이 미치는 영토임을 천명하기 위하여 돌을 조각하여 경계표로 세운 것이라고 말합니다. RSV돌 뜨는 곳조각한 돌들’, 즉 형상을 새긴 경계표라고 번역하여 이 견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이상의 네 가지 견해 중 비교적 가장 타당한 것은 네 번째 견해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길갈에 신전이 있었다는 증거가 없으며, 있었다면 여호수아의 정복 때 훼파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길갈 주위에 채석장이 있었다는 증거도 빈약합니다. 더욱이 본 문을 잘 살피면 이에 대한 설득력이 있는 근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 19절에서 에훗이 조공을 바치고 난 후 그의 수행원들과 함께 길갈 근처 돌 뜨는 곳까지 갔다가 자신만 돌아온 것은 그곳에 이스라엘 땅과 모압의 땅을 구분 짓는 경계표가 있어서 그 경계만 넘으면 안전하였기에 수행원들을 안전지대까지 보내놓고 돌아왔음을 뜻합니다. 그리고 26절에도 보면 에훗 자신도 그 지역을 지나서 이스라엘 영토 안으로 피신하여 안전을 도모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근거로 할 때 돌 뜨는 곳은 경계표임에 틀림없어 보입니다. ‘은밀한 ~ 고하려’ ‘은밀하다의 원어 세테로(סתר)’비밀스럽다는 의미이므로 은밀한 일이란 남들이 들어서는 안 되는 국가의 중요한 일을 뜻합니다. ‘종용케하라’(하사: חסה)잠잠하게 하다또는 조용히 하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은 에훗에게 한 말이 아니라 신하들이나 수비대에게 한 말로 정숙을 요하는 명령이 아니라 어전에서 물러갈 것을 명한 말입니다.

 

20: 에훗이 왕의 앞으로 나아가니 왕은 서늘한 다락방에 홀로 앉아 잇는 중이라 에훗이 가로되 내가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왕에게 고할 일이 있나이다 하매 왕이 그 좌석에서 일어나니

  ‘서늘한(메케라:מקרה)’여름, 시원한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여기서는 여름 궁전, 시원한 장소등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서늘한 다락방이란 왕의 여름 궁전에 있는 다락방이란 의미가 됩니다. 보통 다락방은 일반적인 회의실이 아니라 중대사를 다룰 때 쓰이는 회의실입니다. 따라서 왕이 중대한 논의를 위하여 에훗을 여름 궁전에 있는 다락방으로 불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다락방은 건물의 한 구석에 지붕보다 높게 지은 부속 건물로, 어떤 것은 탑과 같은 형태를 지니는 것도 있습니다. 모든 방면에 창을 내어 공기의 유통이 잘 되었기에 그 집에서 가장 편한 곳입니다. ‘하나님의 명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말입니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신탁을 의미합니다. ‘왕이 그 좌석에서 일어나니이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함이거나 은밀한 일을 더욱 가까이에서 듣기 위함이 아니라 신탁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행동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21,22: 에훗이 왼손으로 우편 다리에서 칼을 빼어 왕의 몸을 찌르매, 칼자루도 날을 따라 들어가서 그 끝이 등 뒤까지 나갔고 그가 칼을 그 몸에서 빼어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기름이 칼날에 엉기었더라.

  에훗이 얼마나 확실하게 에글론을 죽였는가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끝이 등 뒤까지 나갔다는 것은 에훗이 에글론을 완전히 죽였다는 말입니다. ‘기름이 칼날에 엉기었더라.’ 그의 체구가 뚱뚱하였기에 당연한 결과입니다.

 

23: 에훗이 현관에 나와서 다락문들을 닫아 잠그니라

  현관(미스데론:מסדרון)주랑(柱廊: 기둥만 있고 벽이 없는 복도)’, ‘현관 내부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나 정확한 형체에 대한 자료는 없습니다. 추측해 볼 때 현관은 여러 개의 기둥들만 나란히 서 있고 벽이 없는 누각의 형태를 지니고 있었을 것입니다. ‘다락문들을 닫아 잠그니라.’ 이러한 행동은 왕의 죽음이 외부로 알려지는 것을 방지하여 자신의 안전지대로 안전하게 도망갈 시간을 벌기 위한 에훗의 지혜입니다. 이런 지혜는 다락문을 신하들이 왕의 허락이 없이는 열 수 없다는 것에 근거하였을 것입니다.

 

24: 에훗이 나간 후에 왕의 신하들이 와서 다락문이 잠겼음을 보고 가로되 왕이 필연 다락방에서 발을 가리우신다 하고

  ‘발을 가린다는 것은 히브리어를 문자 그대로 번역한 표현인데 이는 잠을 잔다또는 용변을 본다는 뜻으로 인간의 생리 현상을 달리 표현한 완곡어법입니다.

 

25: 그들이 오래 기다려도 왕이 다락문을 열지 아니하는지라 열쇠를 취하여 열고 본즉 자기 주가 이미 죽어 땅에 엎드러졌더라.

  우리 성경에서는 그저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이는 원문 성경에 있는 부쉬(בושׁ)’라는 단어를 빼고 번역한 것입니다. ‘부쉬부끄러워하다.’ ‘당황하다는 의미입니다. 이 구문은 그들이 부끄러울 때까지 기다려도로 번역되어야 합니다. 이 말은 왕이 오랫동안 기척이 없음을 보고 무슨 일이 일어났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 때까지라는 의미입니다.

 

26: 그들의 기다리는 동안에 에훗이 피하여 돌 뜨는 곳을 지나 스이라로 도망하니라.

  본 절은 에글론의 죽음을 확인하는 동안 에훗은 이미 안전지대로 탈출하였음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돌 뜨는 곳을 지나모압의 지계표를 넘어섰다는 말로 모암 왕의 영향권을 벗어나 안전한 곳으로 도피하였음을 의미합니다. ‘스이라로 도망하니라스이라에 대해서는 본 절 외에 다른 곳에서는 언급이 없습니다. 추측해 보면 숲이 많이 거칠어 숨기 좋은 에브라임 산지의 어느 한 부분에 위치하고 있을 것으로 봅니다.

 

27: 그가 이르러서는 에브라임 산지에서 나팔을 불매 이스라엘 자손이 산지에서 그를 따라 내려오니 에훗이 앞서가며

  ‘나팔을 불매’ ‘전쟁 나팔을 불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전쟁에 나갈 군인을 소집하기 위함입니다.(6:34; 삼상 13:3). 에훗이 이렇게 신속히 전쟁을 위해 군사 소집을 한 것은 왕이 죽어 혼란에 빠져있는 모압을 쳐서 이스라엘에게 자유를 주기 위함입니다. ‘에훗이 앞서가며사사는 이민족의 압제 아래서 고통당하는 백성들을 구해내어 해방시키는 일을 수행하는 근사적 지도자였으므로 에훗이 백성들 앞에 서서 가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28: 무리에게 이르되 나를 따르라 여호와께서 너희 대적 모압 사람을 너희의 손에 붙이셨느니라 하매 무리가 에훗을 따라 내려가서 모압 맞은편 요단강 나루를 잡아 지켜 한 사람도 건너지 못하게 하였고

  ‘잡아’(라카드: לכד)는 적군을 각종 덫이나 그물 그리고 함정 등으로 포획하는 것을 연상시킬 때 쓰는 단어입니다. 이에 따라 에훟은 요단 강 서편의 길갈 근처에 있는 요단강 나루를 점령하여 적군을 잡기 위한 함정이나 덫으로 사용했음을 나타냅니다. 에훗이 요단강 나라를 점령한 것은 요단 서편에 상주하고 있던 모압 군대와 사람들의 퇴로를 차단하여 모압 본진으로 도망하는 것을 막아 효율적으로 섬멸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요단 동편에 있는 모압의 본토에서 쳐들어 올 군대를 효율적으로 막기 위함입니다.

 

29: 그 때에 모압 사람 일만 명 가량을 죽였으니 다 역사요 용사라 한 사람도 피하지 못하였더라

  요단강 나루를 점령한 이 작전은 성공하여 모압 사람 일만 명을 죽였습니다. ‘역사’(솨멘:שׁמן)뚱뚱한, 살진등의 의미로 풍성한, 잘 사는 자등을 나타낼 때 사용합니다. 여기서 뜻하는 이들은 아마 귀족이나 군대 장관이었을 것입니다. ‘용사(하일: חיל)’는 주로 싸움에 능하고 용기 있는 군인을 일컫는 데 사용됩니다. 따라서 죽은 모압 군사들은 모두 전쟁에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자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군인들의 죽음은 보압이 결정적으로 패배했음을 말하며 모압에게 있어서는 커다란 군사적 손실이었기에 이스라엘에게 항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30: 그 날에 모압 사람이 이스라엘의 수하에 항복하매 그 땅이 팔십 년 동안 태평하였더라.

  이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은 80년의 태평성세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사사 시대 동안 가장 긴 평화의 시대였습니다.

 

31: 에훗의 후에 아낫의 아들 삼갈이 사사로 있어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을 죽였고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더라.

  에훗 이후 사사 삼갈이 블레셋의 침략을 물리치고 이스라엘 구원한 사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삼갈의 출신지와 활동사항 그리고 그의 시대적 배경에 대해서는 알져진 것이 없습니다.(5:6) 그래서 삼갈을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어떤 학자는 그의 아버지 이름이 가나안 여신인 아낫과 그 이름이 갓은 것에 근거하여 그를 바알과 그의 배우자인 아낫의 아들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또 어느 학자는 아낫이 바벨론식 이름과 유사하기 때문에 그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라 이방 사람 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또 바닷사람의 첫 이주에 대항하는 전투에 참가한 반유목 용병이라고도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해석들은 논증이 없는 추측일 뿐입니다. 삼갈의 사사직은 에훗의 죽음 이전에 받았음을 삿 4:1은 암시합니다. 4:1에서는 삼갈의 죽음에 대하여 기록하지 않고 에훗의 죽음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삼갈의 사사직은 에훗이 너무 늙어 사사직을 잘 수행할 수 없을 때 수행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소 모는 막대기는 고대 근봉지압의 농부는 막대기를 무기로도 사용하였습니다. 길이는 약 2.4m이며 한쪽 끝에는 뾰족하고 큰 못이 달려 있었으며 다른 한쪽에는 끝과 같은 모양의 쇠가 붙어있었습니다. 이것은 소 모는 일 뿐만 아니라 땅을 일구는 쟁기의 역할도 있습니다. 삼갈이 농기구로써 블레셋 사람 600명을 죽였다는 것은 그의 힘이 대단했음을 말함과 동시에 하나님이 그에게 그만한 일을 이루도록 능력을 허락하셨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