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여호수아 제22장 강해: 요단 동편의 제단 건립 사건

chukang 2014. 8. 25.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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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제22장 강해: 요단 동편의 제단 건립 사건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가 이제 자기들의 땅으로 돌아가던 중 일어나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사에 대한 율법을 주시면서 그 장소는 오로지 여호와의 성막으로, 그 집행자는 오로지 제사장과 레위인으로 국한시켰습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은 오직 한 분뿐이시며 당신은 절대 거룩하시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 의식도 이를 반영해야 하기 때문에, 무분별한 백성들이 자의로 아무 곳에서나 제사를 드릴 경우 그 제사가 불완전할 것은 물론 우상 숭배 제사와 혼동될 위험까지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일 성소 설치’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신 12장). 율법은 비록 후대로 가면서 많이 훼손되었으나(삿 2:10), 적어도 이 당시 가나안 정복의 기초를 마무리하고 가나안에 정착하는 이스라엘 초기 백성들은 이를 순수하게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영토로 귀환하던 요단 동편 지파들이 한 단을 쌓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앞서 말한 여호와 제사 제도의 단일성 및 순수성을 모독하는 제사용 제단이 아니라, 다만 자기들이 요단 서편 사람처럼 하나님의 백성의 일원이며 또 그 가나안 정복 본토 전쟁에도 참여한 것을 기념하여 후대에 증거하려는 것이었습니다(26-29). 그러나 그 진의를 몰랐던 나머지 열 지파 사람들이 이를 크게 오해하여 동족상잔의 위기까지 갔다가, 진의를 파악하고는 오히려 더욱 굳은 단결을 시도한 것이 바로 요단 동편의 제단 사건입니다. 이와 같은 기사를 기록한 목적은 본서 저자가 후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정착 초기 백성들은 순수한 열정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킬 의지가 있었음을 반증해 주는 예화로써 제시하고자 하였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1-9절: 요단 동편 용사들의 귀환입니다. 여호수아는 두 지파 반의 용사들을 불러 장기간에 걸친 정복 전쟁 동안 수고한 공로를 치하한 후에, 그들에게 권고와 더불어 축복하고, 여러 재물을 주어 그들의 기업으로 돌아가도록 조처하였습니다. 동편 지파의 용사가 가나안 정복 전쟁에 참여한 것은, 첫째 형제애입니다. 그들은 다른 형제 지파들이 가나안 정복을 마치는 그 날까지 계속해서 그들과 함께 한 것입니다. 정복 정착 전쟁은 5년이라는 긴 기간으로 힘든 것은 물론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위험한 나날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항상 정복 전쟁의 선두에서 활약했고 여호수아의 명령을 성실하게 준행했습니다. 이는 실로 자신의 기업을 얻기 위한 조건부 참전이었기는 하지만 그 바탕에는 이타적인 희생정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성도들도 형제들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사랑을 지녀야 함은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둘째 귀환하는 두 지파 반을 빈손으로 보내지 않는 여호수아의 미덕입니다. 여호수아는 전쟁에서 노획한 많은 재산과 가축과 기타 재물을 두 지파 반의 용사들에게 주어 그들의 가족들과 나누어 갖도록 했던 것입니다. 사실 두 지파 반의 용사들은 약속에 의하여 당연히 그들의 의무를 수행한 것이었지만, 여호수아는 그들의 수고를 잊지 않고 충분하게 보상하고자 한 것입니다. 이처럼 성도들은 남들로부터 은혜를 입었을 때에 보답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스스로는 이웃에게 선을 베풀고도 갚음을 기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성도의 마땅히 힘쓸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랑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고 더 큰 상급으로 갚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마 10:42).

 

1: 그 때에 여호수아가 르우벤 사람과 갓 사람과 므낫세 반 지파를 불러서

  그 때는 가나안 땅에 대한 분배가 모두 끝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하고 있을 때입니다. 아마도 요단을 건건 후 약 7년이 지난 때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가나안 정복 정착 전쟁을 마친 때가 요단 도하 후 약 5년(수 11:18)이었고, 땅 분배를 위한 소요 기간이 약 2,3년 정도 걸렸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를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기업을 얻기까지’라고 말했었습니다(민 32:18). 여호수아가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를 부른 것은 이들이 7여 년 동안 약속을 성실히 지켰고, 이제 이스라엘 대한 땅 분배가 끝나자 여호수아가 이들의 맹세 조건을 풀어 자기 땅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 부른 것입니다.

 

2: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한 것을 너희가 다 지키며 또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일에 내 말을 너희가 청종하여

  그들 두 지파 반이 형제 지파를 도와 가나안을 정복하는 데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성실하게 행했기 때문에 여호수아는 그들이 모세의 명령에 충실했고(민 32:20-24; 신 3:18-20), 또한 여호수아의 명령(수 1:12-16)도 기꺼이 순종했습니다. 군인으로서 마땅히 지휘관에게 충성하고 순종해야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미 자신들의 기업이 확정된 상태(수 13:8-13)에서 형제 지파를 위해 끝까지 어려움을 이기고 충성심을 발휘하였으므로 그들의 행동이 대대로 귀감이 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형제를 돕되 억지로나 가식으로 하지 않고 진심으로 형제를 돕고, 끝까지 성실한 태도로 도와주어야 함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3: 오늘날까지 날아 오래도록 너희가 너희 형제를 떠나지 아니하고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하신 그 책임을 지키도다.

  ‘날이 오래도록’ 형제 지파를 돕기 위하여 선발된 4만 명(수 4:12-16)의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의 용사들은 가나안 정복을 위해 5년, 땅 분배가 마치기까지 약 2, 3년 도합 7여 년을 형제 지파를 위해 봉사하였습니다.

 

4: 이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대로 너희 형제에게 안식을 주셨으니 그런즉 이제 저희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요단 저편에서 너희에게 준 소유지로 가서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되

  요단 서편에서 기업을 분배받은 아홉 지파 반(수 14-19장)이 평화와 안정 상태에 들어가게 되어서 이들을 모세로부터 받은 기업으로 돌려보내는 것입니다. 이들도 역시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서 평화롭게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5: 크게 삼가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한 명령과 율법을 행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계명을 지켜 그에게 친근히 하고 너희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그를 섬길지니라 하고

  ‘크게 삼가’는 ‘힘을 다하여’ ‘주의를 기울여’라는 뜻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잘 변하기 때문에,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에게 신명기의 말씀을 인용하여(신 6:5; 10:12; 11:13, 22) 모세의 율법을 준수하고 주의 길로 행하며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모세와 여호수아의 명령에 순종함으로써 전쟁에서 승리한 군인들은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서도 모세의 명령을 지키되 전쟁의 수행이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온 성품과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친근히 하라는 권면을 받은 것입니다. 위기 상황이나 어려움을 당할 때에는 극복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붙들게 되지만 평화를 누리게 되는 상황에서는 신앙이 흔들리기가 매우 쉬운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재차 실질적인 최후의 승리를 당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만을 섬기는 것이 삶의 원리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뿌리를 내리고 터가 굳어져야 하는 것입니다(골 2:19).

 

6: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축복하여 보내매 그들이 자기 장막으로 갔더라.

  여호수아는 아마도 민 6:24-26에 나오는 제사장의 축복과 같은 축복을 집으로 돌아가는 용사들에게 해 주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매우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을 향하여 출발했을 것입니다.

 

7: 므낫세 반 지파에게는 모세가 바산에서 기업을 주었고 기타 반 지파에게는 여호수아가 요단 이편 서편에서 그 형제 중에서 기업을 준지라 여호수아가 그들을 그 장막으로 돌려보낼 때에 그들에게 축복하고

  7절은 여호수아서에 4번이나 반복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수 13:8; 14:3; 18:7). 반복 서술을 하는 것은 히브리 문체에서 나타는 특징으로, 어떤 사실을 강조하고 부각시키기 위함입니다.

 

8: 일러 가로되 너희는 많은 재산과 심히 많은 가축과 은, 금, 동, 철과 심히 많은 의복을 가지고 너희 장막으로 돌아가서 너희 대적에게서 탈취한 것을 너희 형제와 나눌지니라 하매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전리품을 나누는 데 있어서 하나의 원칙이 있었는데, 그것은 전쟁에 직접 참여한 자나 혹은 후방에서 지원한 자 등 모두가 전리품을 나누어 가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민 31:2-47; 삼상 30:21-25). 이런 원칙은 이스라엘 백성은 모두가 한 형제라는 공동체 의식에서 출발한 것으로서, 오늘날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 역시 하나님 앞에서 하나가 되어야함을 잘 보여줍니다.(행 2:45) 여호수아가 전리품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은, 전리품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비난이나 불평과 같은 것이 없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9: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가나안 땅 실로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떠나 여호와께서 모세로 명하신 대로 얻은 땅 곧 그 소유지 길르앗으로 가니라.

  ‘가나안 땅 실로’에서 가나안을 앞에 붙인 것은 곧 가나안은 요단 서편, 곧 가나안 본토만을 지칭하는 반면, 길르앗은 길르앗과 바산, 곧 요단 동편의 르우벤과 갓, 므낫세 반 지파가 할당 받은 땅 전체를 가리킵니다.

 

  10-20절: 가나안 정복 정착 전쟁을 마친 후 돌아가던 요단 동편 두 지파 반 용사들과 요단 서편 지파 사이에 자칫 분쟁을 발생시킬 뻔한 원인이 된 큰 제단을 쌓은 것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전 지파가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요단 서판 지파 사람들은 오해하여 분개하여, 그들과 싸우기 위해 실로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조사단을 구성하여 파견하게 된 것입니다. 어떤 점에서는 요단 동편의 두 지파 반 용사들은 5년 동안이나 전쟁을 치른 후에 자기들의 기업으로 돌아가는 것이 매우 감격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요단 서편 강가에 이르러 그 동안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보호해 주신 사실을 기념하고 자신들도 요단 서편의 지파와 동일한 하나님의 언약 백성임을 증거하기 위해서 큰 단을 쌓은 것입니다. 그들의 행위는 매우 신앙적이며 민족적 화합을 위한 애국심의 발로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단 서편 지파들은 그들의 행동을 우상숭배 행위로 오해하여 민감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는 그들이 이미 과거 광야 생활 동안 우상 숭배의 결과가 어떠한 것인지 뼈저리게 경험했기 때문입니다(민 25:1-9). 그래서 그들은 비록 요단 동편 용사들이 자기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한 형제들이기는 하나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는 싸움도 불사하겠다고 결의했고 조사단을 파견하게 된 것입니다. 요단 동편 지파의 용사들의 신앙과 형제애는 성도들이 당연히 본받아야할 귀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충분히 오해를 받을 소지는 사전에 여호수아나 제사장 엘르아살과 전혀 논의하지 않고 감행하였기 때문에 경솔한 행동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선한 목적의 일이라도 그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염려와 근심을 끼치거나 신앙공동체 내에 분란을 일으키는 일만은 피하는 지혜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서편 지파 사람들의 의분과 성급한 판단도 잘한 것은 아닙니다. 서편 지파 사람들은 지난날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하고 다시는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기 위해 자신들을 독려함은 물론 형제의 잘못을 보고서 즉각 의분을 품은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성도 역시 죄에 대해 의분을 가짐을 물론 지난날과 같은 과오를 또 다시 저지르지 않기 위해 마땅히 자신을 성찰해야 함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요단 서편 지파 사람들이 사실 여부를 가리기에 앞서 먼저 두 지파 반의 용사들에게 적개심을 가졌던 것은 옳지 못한 자세였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진실을 알기 전에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만으로 성급히 남을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눅 6:37). 더욱이 남을 정죄하기에 앞서 자신도 동일한 죄인임을 인정하며 형제의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주님의 가르침입니다(마 5:43-48; 7:1-5). 마지막으로 서편 사람들은 눈물겨운 호소를 했습니다. 진의를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사람들은 두 지파 반의 잘못을 시정하기 위해서라면 자신들의 기업이라도 내어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태도는 실로 신앙공동체로서의 참된 연대 의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신앙을 수호하고 형제를 죄에서 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 것이라도 희생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골 3:16; 딤전 4:13). 그것이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십자가에 내어 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는 진정한 형제 사랑이라고 하겠습니다.

 

10: 르우벤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가나안 땅 요단 언덕 가에 이르자 거기서 요단 가에 단을 쌓았는데 볼만한 큰 단이었더라.

  히브리 원문에는 갓 지파도 함께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단 언덕 가’는 구릉지입니다. 눈으로 보기에 매우 큰 단으로 멀리서도 볼 수 있는 단을 쌓았습니다. 그러나 결코 제사를 위한 단은 아니었습니다. 단의 형태를 가졌지만 오직 후대 자손들에게 자기들도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로 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22-27절). 두 지파 반 용사들은 모세와 맺은 언약을 무사히 완수하고 가나안을 동서로 나누는 요단에 이르렀을 때에 요단이 자기 지파들을 이스라엘 공동체로부터 단절시키는 지형적 장애물이 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를 한 것 같습니다(24, 25절). 그래서 그들은 요단의 서편이나 동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있도록 기념할 단을 쌓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행동은 그 목적이 훌륭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각 지파들로 하여금 우상 숭배 행위로 오해하게 하는 실수를 범했습니다. 즉 그들은 그 열심을 발휘함에 있어서 좀 더 사려 깊은 주의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신앙과 관계된 일이라 할지라도 다른 사람들과의 상식적인 관계성을 무시하는 것은 경솔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1: 이스라엘 자신이 들은 즉 이르기를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가나안 땅의 맨 앞편 요단 언덕 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편에 단을 쌓았다 하는지라.

  가나안 본토에 있는 이스라엘이 요단 동쪽 지파가 단을 쌓았다는 소식을 듣고 순식간에 흥분해서 그들과 싸워야 한다고 외친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동편 지파가 충분한 의사 전달과 이해의 요청도 없이 일을 성급하게 추진함으로써 오해를 받게 된 것은 강 동편 지파의 실수임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에 대하여 차분하고 확실한 상황 분석도 없이 흘러가는 소문을 듣고 전체가 분노의 소리를 높인 것도 역시 비판을 받아야 합니다. 성도들이 생각 없이 즉흥적인 처방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들이 진실을 알게 된 후에 부끄러움을 당했을 것으로 여겨지는데, 성도들도 성급한 판단과 처방이 자신을 난처하게 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전 8:6; 요 8:15; 롬 2:1).

 

12: 이스라엘 자손이 이를 듣자 곧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그들과 싸우러 가려 하니라.

  요단 서편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 지파 반의 용사들이 요단 언덕 가에 단을 쌓았다는 소식을 듣자 그들과 싸우기 위해 실로에 모였습니다. 왜냐하면 두 지파 반의 용사들의 행동이 하나님의 율법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성막 문 앞을 제외하고는 어디에도 제단을 쌓지 못하도록 금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를 어기는 자는 죽임을 당해야 한다고 선언하였습니다(레 17:3-9; 신 12:2-14). 이는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예배와 제사가 질서와 규모 없이 행해지므로 말미암아 점차 세속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처였습니다. 따라서 제단 쌓는 일에 분개하고 그들을 처벌하고자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적 열심은 지극히 타당하고 가상한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행동을 하면서 여호수아나 대제사장에게 의논을 하지 않은 것은 동쪽 두 지파 반 사람들의 경솔함이었습니다. 요단 동편의 지파와 서편의 지파가 동일하게 하나님을 섬기며 모세의 율법을 지키려고 했지만 서쪽 지파는 요단 동편 지파가 새 제단으로써 서로 분리하여 신앙을 가지려는 것으로 보았고, 동편 지파는 분리를 염려하여 동일성을 유지하려고 단을 쌓아 증거를 삼으려 하였습니다. 이처럼 열심 있는 신앙 속에서도 오해는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해는 자칫 분리와 환난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런즉 이를 사전에 방지하는 지혜가 우리에겐 절실히 요구된다고 하겠습니다.

 

13: 이스라엘 자손이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를 길르앗 땅으로 보내어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를 보게 하되

  사람들은 정치적 이유이든 경제적 이유이든 혹은 사회적 이유이든 일단은 남을 정죄하고 보는 무서운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와서 변론하자고 말씀하시는 것과는 정반대의 양태입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하여 지파별로 1인씩 10인을 뽑아 조사단을 파견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 조사단을 이끌고 가서 임무를 수행할 책임자가 ‘비느하스’였습니다. 비느하스는 아론의 셋째 아들인 엘르아살의 아들로서(출 6:25; 민 25:7), 엘르아살의 뒤를 이어 20여 년간 대제사장직을 수행했습니다(민 25:13 수 24:33; 삿 20:28). 특히 모세를 도와 미디안 정벌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민 31:6) ‘바알 브올’ 사건 때 이스라엘을 우상 숭배로 더럽히 시므리와 고스비를 처단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한 대제사장직의 언약을 받기도 했습니다.(민 25:12, 13). 그 후 비느하스의 자손들은 엘리 가문이 대제사장직을 수행했던 짧은 기간을 제외하고는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A. D. 70년)까지 대제사장직을 수행했습니다. 이러한 비느하스가 요단에 쌓은 제단에 대한 조사단으로 뽑힌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14: 이스라엘 각 지파에서 한 방백씩 열 방백을 그와 함께 하게 하니 그들은 각기 이스라엘 천만인 중 족속의 두령이라.

  천만인(알르페: אלפ)는 문자적으로 ‘수천’ 또는 ‘가족들’ ‘집들’이란 뜻을 가지고 있으며(삿 6:15), 두령(로쉬: ראשׁ)는 대체로 ‘족장’을 의미합니다(수 14:1; 19:51). 따라서 본절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족장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15: 그들이 길르앗 땅에 이르러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나아가서 그들에게 말하여 가로되(여호수아 13:25 참고하세요.)

 

16: 여호와의 온 회중이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하나님께 범죄하여 오늘날 여호와를 좇는 데서 떠나서 자기를 위한 단을 쌓아 여호와를 거역하고자 하느냐

  ‘거역하다(마라드: מרד)’는 불순종과 배역을 뜻하는 단어로서(창 14:4; 왕하 18:7), 단순히 ‘범죄하다’를 뜻하는 ‘마알(מעל)’보다 훨씬 강력한 표현입니다. 즉 자신을 위해 단을 쌓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께 대한 범죄 이상으로,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반역하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17: 브올의 죄악으로 인하여 여호와의 회중에 재앙이 내렸으나 오늘날까지 우리가 그 죄에서 정결함을 얻지 못하였거늘 그 죄악이 우리에게 부족하여서

  ‘브올의 죄악’ 이스라엘 백성들이 싯딤에 머무는 동안 그들 중 일부가 모압 여인들과 음행하며, 그들의 신 바알 브올을 숭배하여 하나님께 범죄한 사건을 가리킵니다(민 25:1-9). 이때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이 일에 가담한 24,000명이 염병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비느하스의 결단 있는 행동으로 그 사건은 마무리되고 염병이 그쳤습니다. 따라서 비느하스가 브올의 죄악을 상기시킨 것은 우상 숭배, 곧 자신을 위하여 단을 쌓는 행위를 책망하기에 적합한 것이었습니다. 그 때의 죄악으로 아직까지 죄의 오욕(汚辱: 더럽고 욕됨)이 아직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며, 또한 아직도 이스라엘 중에 은밀히 바알을 숭배하는 자들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수 24:14-23).

 

18: 오늘날 너희가 돌이켜 여호와를 좇지 않고자 하느냐 너희가 오늘날 여호와를 배역하면 내일은 그가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진노하시리라.

  요단 서편 지파의 입장을 잘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동편 지파의 행위에 대한 단순한 분노뿐만 아니라 최근에 보여 주셨던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그의 공의로우신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항상 신앙 공동체로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따라서 요단 동편 지파의 범죄에 대하여서는 서편 지파들이 함께 연대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19: 그런데 너희 소유지가 만일 깨끗지 아니하거든 여호와의 성막이 있는 여호와의 소유지로 건너와 우리 중에서 소유를 취할 것이니라 오직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단 외에 다른 단을 쌓음으로 여호와께 패역하지 말며 우리에게도 패역하지 말라.

  ‘너희 소유지가 만일 깨끗지 아니하거든’이라는 말은 ‘너희 소유지가 거룩하지 않거나 부패했거든’이라는 뜻입니다. 즉 ‘너희 주위에 우상을 숭배하는 족속들이 살고 있는 까닭으로 그 땅이 부정하고, 또 요단 강으로 인하여 실로에 있는 성소로부터 분리되어 결국 그곳이 거룩하게 여겨지지 않아 단을 쌓음으로 거룩하게 하고자 한다면’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이러한 가정을 한 것을 그들의 땅이 더러우며 그곳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는 편협한 사고방식으로 한 말이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이것은 신앙공동체의 분열을 막으려는 진실한 마음에서 나온 말입니다. 10지파의 방백들은 동편 지파의 분리를 안타까워하면서 저들이 다른 단을 쌓음으로써 모든 영역에서의 분리가 일어날 것을 우려했던 것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하나님의 성막이 있는 요단 서편에 와서 함께 하나님을 잘 섬기며 살자는 권유로써, 형제에 대한 관대함과 사랑이 담겨있는 표현입니다. 만일 너희가 다른 단에 제사를 지내서 하나님께 패역하게 되면 그의 진노가 온 이스라엘에게 내릴 것이며, 그 결과 우리에게도 패역하게 되는 것이므로 그리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이와 같은 비느하스의 말은 이스라엘이 한 운명공동체임을 잘 반영해 주는 것으로써 이스라엘 자손은 결코 분열을 원치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20: 세라의 아들 아간이 바친 물건에 대하여 범죄하므로 이스라엘 온 회중에 진노가 임하지 아니하였었느냐 그 죄악으로 망한 자가 그 사람뿐이 아니었느니라.

  여기서 비느하스가 다시금 역사적 사건인 ‘아간의 범죄’(수 7:1)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한 공동체임을 강조하여 두 지파 반이 잘못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설득하기 위함으로 보입니다.

 

  21-34: 분쟁이 해결되고 함께 찬송하며 기뻐하는 이스라엘입니다. 비느하스를 단장으로 하는 요단 서편 지파 조사단의 충고와 질책을 받은 두 지파 반 용사들은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진정을 몰라주는 것에 야속했을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지난날 그들의 위해 희생한 자신들의 공로를 무시한 채 싸우러 온 요단 서편 지파 사람들의 태도가 매우 불쾌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두 지파 반 용사들은 감정을 억누르고 자신들의 행동 취지와 목적이 희생 제사를 드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도 하나님의 언약 백성임을 후손들에게 알리기 위한 방편이었음을 성실하게 설명하였습니다. 이런 사실에서도 두 지파 반 용사들과 요단 서편 지파 사이의 오해와 분쟁은 하나님께 대한 양편 모두의 신앙의 열의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더욱 우의가 돈독해지고 하나님께 대한 신앙적 열의도 심화되었습니다. 이는 종교적 편견과 오해로 인하여 서로 싸우고 불신하는 풍조가 팽배한 오늘날의 교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는 교훈입니다. 신앙공동체 내에서도 일시적인 분쟁이나 오해 등이 발생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고 그것을 보다 성숙한 신앙과 우의를 다지는 계기로 삼아야지 결코 그로 인해 반목질시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성도들은 후손들의 신앙을 염려하여 그들을 보다 바른 신앙으로 양육시키고자 하는 요단 동편의 두 지파 반 용사들의 태도에서 오늘날 자녀들의 신앙교육의 중요성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성도들은 자녀들을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함은 물론 경건한 환경을 조성해 주어야 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모든 지혜와 교육의 근본임을 주지시켜야 합니다.(신 4:9; 6:7; 잠 22:6; 딤전 3:12)

 

21,22: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이스라엘 천만인의 두령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께서 아시나니 이스라엘도 장차 알리라 이 일이 만일 여호와께 패역함이거나 범죄함이거든 주는 오늘날 우리를 구원치 마시옵소서.

  요단 동편 지파는 서련 지파의 오해를 풀기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두고 자신들의 뜻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구절에서 하나님께 사용된 세 가지 이름이 나타납니다. ‘전능하신 자’에 해당하는 ‘엘(אל)’은 ‘강한 자’를 나타내며, ‘하나님’에 해당되는 엘로힘(אלהים)은 ‘두려워해야 할 능력 있는 자’를 나타냅니다. 또 ‘여호와(יהוה)’는 ‘진실로 홀로 계시는 언약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이 세 명칭을 모아 함께 사용한 것은 자기들의 변호가 진실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며, 또한 하나님께 강력히 호소하는 것을 나타내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원문 상에 나타난 것을 종합해서 보면, ‘신들 중의 신이신 여호와, 신 중의 신이신 여호와’가 됩니다. 동편 지파의 대표자들은 이 말 속에서 이미 자신들은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는 자들임을 천명함으로써 자신들이 다른 제단을 만들며 다른 신을 섬기는 우상 숭배자가 아니라는 것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여호와께서 아시나니’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진심을 판단하시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모든 문제의 결정권자로 인정하는 신앙은 하나님만이 은밀한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모두 알고 계심을 믿는 신앙인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우리를 구원치 마옵소서.’라고 말합니다. 동편 지파가 경건한 신앙 모습을 보이기 위하여 하나님을 증인으로 내세운 것인 만큼 거짓이 없음을 목숨을 걸고 변호한 것입니다.

 

23-25: 우리가 단을 쌓은 것이 돌이켜 여호와를 좇지 아니하려 함이거나 혹시 그 위에 번제나 소제를 드리려 함이거나 혹시 화목 제물을 드리려 함이어든 여호와는 친히 벌하시옵소서. 우리가 목적이 있어서 주의하고 이같이 하였노라 곧 생각하기를 후일에 너희 자손이 우리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희 르우벤 자손 갓 자손아 여호와께서 우리와 너희 사이에 요단으로 경계를 삼으셨나니 너희는 여호와께 불의가 없느니라 하여 너희 자손이 우리 자손으로 여호와 경외하기를 그치게 할까 하여

  동편 지파가 요단 언덕 가에 단을 세운 목적입니다. 그들이 단을 세운 것은 그곳에 번제나 소제, 또는 화목 제물과 같은 제사를 드리려 함이 아니었습니다. 그 대신 후일 요단 서편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기 자손들에게 이스라엘 공동체의 일원이 아니라고 하면서 요단 서편에 있는 하나님의 성막에 가서 제사하는 것을 금지시킬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라고 해명을 하고 있습니다. 만일 다른 신을 섬기려고 했다면 ‘여호와는 친히 벌하옵소서.’라고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없는 마음과 충성으로 인정받는 자들만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들의 이와 같은 기원은 자신에게도 적용이 되지만 의인을 억압하는 악한 세력에 대하여 보응을 의뢰하는 현명한 자세입니다.

 

26,27: 우리가 말하기를 우리가 이제 한 단 쌓기를 예비하자 하였노니 이는 번제를 위함도 아니요 다른 제사를 위함도 아니라 우리가 여호와 앞에서 우리 번제와 우리 다른 제사와 우리 화목제로 섬기는 것을 우리와 너희 사이와 우리의 후대 사이에 증거가 되게 할뿐으로서 너희 자손으로 후일에 우리 자손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여호와께 분의가 없다 못하게 하려 함이로라.

  동편 지파가 세운 단은 성막에 있는 단 모형을 세워서 동편에 있는 지파로 이스라엘과 하나님께 받을 ‘분의(分誼: 받을 몫)’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를 온 이스라엘 사람과 자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요단 서편에 거주하는 아홉 지파 반과 자기들을 영구히 결합시킬 수 있는 보장 조치를 취한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자기의 후손들로 하여금 영원토록 하나님만을 섬기며 하나님의 선택받은 거룩한 백성임을 잊지 않게 하려는 의도도 가졌습니다. 사실 이런 염려도 무리는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가나안의 경계는 요단 강을 중심으로 서편만이 설정되었을 뿐만 아니라(민 34:1-12), 요단 강은 양쪽 지경을 통행하는 데 있어서 큰 장애 요인이었기 때문에, 요단 동편은 훗날 요단 서편 사람들에게 타국인으로 취급될 여지가 있었던 것입니다.

 

28,29: 우리가 말하였거니와 만일 그들이 후일에 우리에게나 우리 후대에게 이같이 말하면 우리가 말하기를 우리 열조가 지은 여호와의 단 모형을 보라 이는 번제를 위한 것도 아니요 다른 제사를 위한 것도 아니라 오직 우리와 너희 사이에 증거만 되게 할 뿐이라. 우리가 번제나 소제나 다른 제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성막 앞에 있는 단 외에 단을 쌓음으로 여호와께 패역하고 오늘날 여호와를 좇음에서 떠나려 함은 결단코 아니니라 하리라.

  ‘단’ ‘돌’ ‘기둥’을 세워 어떤 일에 대하여 증거를 삼는 예는 고대 민족들 사이에 흔히 있는 일이었고, 또한 성경에도 그러한 예가 무수히 많이 있습니다(창 31:44-52; 수 24:27; 사 19:19). 따라서 요단 동편 사람들이 우상 숭배를 위하여 단을 쌓거나 제사만 드리지 않는다면 성막 앞에 있는 제단의 모형대로 단을 쌓았다 할지라도 전혀 문제가 될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만 아무런 상의 없이 부주의하게 단을 쌓은 것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처사였습니다.

 

30: 제사장 비느하스와 그와 함께 한 회중의 방백 곧 이스라엘 천만인의 두령들이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자손의 말을 듣고 좋게 여긴지라.

  비느하스를 비롯한 요단 서편 9지파 반의 방백들은 요단 동편 지파의 행위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다른 신을 섬기기 위함이 아니요 오히려 자기들과의 유대 관계를 더욱 결속시키고 하나님을 잘 섬기기 위한 조처였음을 알고 매우 만족해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민족의 단합을 꾀하고 신앙을 후대에 잘 전승시키려 한 요단 동편 두 지파 반 사람들의 자세를 본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서로의 오해를 지혜롭게 해결함으로써 동종 상잔을 피하고 오히려 형제애를 확인한 이스라엘 자손들의 훌륭한 모습을 교회 안에서 모법적으로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31: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르우벤 자손과 각 자손과 므낫세 자손에게 이르되 우리가 오늘날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 줄을 아노니 이는 너희가 이 죄를 여호와께 범치 아니하였음이라 너희가 이제 이스라엘 자손을 여호와의 손에서 건져내었느니라 하고

  ‘여호와의 손’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지만 여기서는 ‘하나님의 심판’을 나타냅니다. 요단 동편 지파들이 범죄했다면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했을 터인데, 범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에서 자신들은 물론 같은 운명 공동체인 요단 서편 지파들도 구원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32: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와 방백들이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을 떠나 길르앗 땅에서 가나안 땅에 돌아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러 회보하매 그 일이 이스라엘 자손을 즐겁게 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을 찬송하고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의 거하는 땅에 가서 싸워 그것을 멸하자 하는 말을 다시 하지 아니하였더라.

  오해로 인하여 발생할 수 있었던 동족상잔의 위기는 서로 솔직한 대화로 인해 극복되었습니다. 이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다툼이나 국가 간의 전쟁 등에 중요한 귀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34: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이 그 단을 엣이라 칭하였으니 우리 사이에 이 단은 여호와께서 하나님이 되시는 증거라 함이었더라.

  ‘엣(עד)’은 ‘증언’ 또는 ‘증거’라는 뜻으로, 이와 같이 명명한 것은 요단 동편 두 지파 반 역시 신실한 여호와 신앙을 지니고 있었음을 이 단이 증거해 주기 때문입니다. 히브리 원문과 칠십인 역에는 ‘엣’이라는 단어가 없는데, 아마도 후기 필사자들이 삽입했을 것으로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