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여호수아 제17장: 므낫세 반 지파의 기업 및 요셉 자손의 추가 요구

chukang 2014. 7. 13.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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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제17장: 므낫세 반 지파의 기업 및 요셉 자손의 추가 요구

 

  16장에 이어 본 장에서도 요셉 자손의 땅 분배 과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6절에서는 이미 요단 동편에서 자기 땅을 분배받은 므낫세 반 지파 이외의 남은 반 지파에게 요단 서편 땅 곧 가나안 본토에서 일정한 땅이 할당된 것을 언급하고 있으며, 7-11절에서는 요단 서편에 있는 므낫세 반 지파의 기업 경계와 12-13절에서는 므낫세 반 지파가 가나안 족을 축출하지 않은 사실과 후일에 가나안 족을 종으로 삼게 된 사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14-18절에서는 야곱의 축복에 따라 두 지파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요셉의 자손이라는 이유로 이스라엘 12지파가 하나씩 제비뽑아 땅을 나누는 과정에서 하나의 제비 몫만을 할당받은 데에(수 16:1-4) 불만을 품고 여호수아에게 추가 기업을 요구한 사실과, 여호수아가 그 해결책으로서 그들 지파에게 개척 명령을 내려 그들 지파 기업을 확장하도록 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여호수아가 야곱의 축복 예언을 무시한 것이 아닙니다. 사실 이미 에브라임과 므낫세 두 지파에게 분배된 땅은 충분히 각각 1지파로서의 몫을 취한 것이었습니다(14장 참고). 이러한 사태를 단순히 인간 보편의 이기심이 빚어낸 일의 하나로만 보지 말고 더 깊은 안목으로 여호수아가 그들의 불평을 해결하기 위해 전향적인 방법으로 개척 정복 명령을 내린 사실에서 구속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하나님의 통치 원리의 하나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구속사의 주도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나 세부 사역에 있어서는 항상 인간의 노력과 수고를 통한 동역을 원하십니다. 인간의 노력과 수고가 없이 일방적으로 하나님께서 일을 다 성취시키신 후 인간은 그 열매만 즐기도록 하지 않으십니다. 따라서 요셉 자손들처럼,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능력 안에서(빌 4:13) 어떤 장애물이라도 극복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성취시키겠다는 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주어진 달란트를 가지고 맡은 바 사명을 가지고 있는가? 아니면 눈앞에 나타난 현상만을 보고 지레 겁에 질려 하던 일을 포기하고 좌절하지는 않는지 살펴보는 지혜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1-6절: 므낫세 지파가 얻은 기업입니다. 먼저 므낫세의 장자 마길이 요단 동편에서 이미 기업을 얻은 사실과, 이어서 나머지 므낫세 반 지파가 요셉 자손의 요단 서편 기업 가운데 에브라임 지파가 차지한 지역 외의 기업을 차지한 것에 대한 기록입니다. 본문의 특징은 다른 지파와는 달리 기업을 차지한 므낫세 자손의 명단까지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아마도 슬로브핫의 다섯 딸이 기업을 얻게 된 것을 확인시켜 주기 위함인 듯합니다. 모세 당시 슬로브핫의 다섯 딸들은 여자에게 기업의 상속이 허용되지 않던 것에 이의를 제기하여, 모세에게 아비의 기업을 요구함으로 허락을 받았는데(민 27:1-7), 이제 여호수아에게서 그 기업을 분배 받았습니다.

 

1: 므낫세 지파를 위하여 제비 뽑은 것은 이러하니라. 므낫세는 요셉의 장자이었고 므낫세의 장자 마길은 길르앗의 아비라 그는 무사이어서 길르앗과 바산을 얻었으므로

  므낫세 지파 중 반은 갓, 르우벤 지파와 함께 요단 강 동편의 길르앗 부근을 기업으로 할당 받았습니다.(수 13:29-31) 그리고 이제 남은 반 지파가 요단 강 서편에서 자기의 기업을 할당 받고 있습니다. 비록 실질적인 장자권이 에브라임 지파에 넘어가(창 48:14-20) 좋은 땅을 할당 받지는 못했지만, 므낫세는 혈통적으로 분명히 요셉의 장자였습니다. 그러므로 므낫세 지파는 모세의 율법에 따라 두 몫을 분배 받는 장자의 특권을 누린 셈입니다. ‘마길’은 므낫세와 아람 여자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민 26:29; 수 13:31). 삿 5:14에는 마길이 요단 강 서편에 거하는 므낫세 반 지파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로 볼 때 마길은 므낫세 지파의 대표적 인물 중의 하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길르앗의 아비라’ 히브리어 본문에는 ‘길르앗’이란 말에 정관사가 붙어 있습니다(하길르아드:הגלעד). 이에 근거해서 카일(Keil)은 ‘길르앗’은 ‘길르앗 지방’을 가리키며 ‘아비’는 주인을 가리킨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또한 다른 해석으로는 마길이 기르앗 지방에 살던 아모리인들을 쫓아내고 그 땅을 차지하였으므로(민 32:39, 40; 신 3:15),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그의 아들 이름을 ‘길르앗’이라고 지었을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민 26:29). 이런 사실에 기초하여 ‘길르앗’은 지명인 동시에 사람 이름도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사’를 나타내는 히브리어는 ‘이쉬 밀르하마(אישׁ מלחמה)’인데 이를 직역하면 ‘전쟁의 사람’(a man of war)입니다. 이것은 마길과 그 후손들이 길르앗과 바산을 점령한 후에(민 32:39), 칭송의 의미로 그들에게 붙여진 것입니다. ‘길르앗과 바산을 얻었으므로’ 히브리어 원문은 ‘그리고 길르앗과 바산이 그에게 있었다.’입니다. 그러므로 ‘...이어서’, ‘...으므로'와 같이 번역한 것은 잘못된 것이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번역은 마길의 후손이 ’무사이기 때문에‘ 길르앗과 바산을 점령할 수 있었던 것으로 판단하게 하는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길과 길르앗 족속으로 구성된 므낫세 반 지파는 이미 길르앗 동편에 기업을 분배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직접 요단 서편 점령에 앞장선 것은 매우 큰 의미를 지닙니다. 이는 일차적으로 모세를 통해 내린 하나님의 명령이었는데(민 32:20-27) 이런 명령에 므낫세 반 지파가 순종했다는 사실은 이스라엘의 연대적 통일성을 잘 나타내줍니다.

 

2: 므낫세의 남은 자손을 위하여 그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는데 그들은 곧 아비에셀의 자손과 헬렉의 자손과 아스리엘의 자손과 세겜의 자손과 헤벨의 자손과 스미다의 자손이니 그들의 가족대로 요셉의 아들 므낫세의 남자손이며,

  이들은 므낫세 지파 중에서 요단 강 동편에 정착하지 않은 여섯 가족을 말합니다. 즉 아비에셀, 헬렉, 아스리엘, 세겜, 헤벨, 스미다의 가족들로서 길르앗의 아들들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므낫세 지파를 구성하는 다른 두 가족이 빠졌습니다. 제1세대로 마길 가족과 제2세대로 길르앗 가족입니다. 이들은 이미 요단 동편 길르앗과 바산에서 기업을 얻었으므로(수 13:29-31) 여기서는 제외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같은 지파였을 뿐만 아니라 크게는 같은 이스라엘로서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요단 동편에 기업을 얻은 마길 가족과 길르앗 가족도 역시 요단 서편, 곧 가나안 점령이라는 성전(Holy War)에 동참해야만 했습니다(민 32:20-27). ‘아비에셀’ 민 26:30에서는 ‘이에셀’이라고도 불리었습니다. 이름의 뜻은 ‘아버지는 도움이시다’로 여호와 신앙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3: 헤벨의 아들 길르앗의 손자 마길의 증손 므낫세의 현손 슬로브핫은 아들이 없고 딸 뿐이요 그 딸들의 이름은 말라와 노아와 호글라와 밀가와 디르사라

  길르앗의 여섯 아들 중 다섯 번째인 헤벨의 아들 슬로브핫은 아들이 없고 딸만 다섯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슬로브핫은 일찍이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민 27:3). 이것은 중요한 두 가지 문제를 야기 시켰습니다. 첫째 가계를 잇는 문제입니다. 당시 딸이 가계를 이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며, 둘째 기업, 곧 토지 상속에 관한 문제입니다. 여자는 토지를 상속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슬로브핫의 가계가 이스라엘 중에서 멸절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도 첩을 두어 아들을 얻거나 양자를 삼아 가계를 잇는 일이 있었습니다(창 15:2, 3). 그러나 슬로브핫은 객사(客死)하여 이러한 조치조차 취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특별한 경우와 관련하여 여자도 상속권을 가질 수 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민 26:33; 27:1-11; 36:1-13). 그러나 그러한 조처에 따라 슬로브핫의 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았다 할지라도 거기에는 ‘지파 내 결혼’이라는 단서가 붙었습니다. 때문에 그들이 만일 다른 지파로 출가하면 이 땅들은 다시 므낫세 지파에게 돌려져야 했습니다. 이것은 땅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므로 인간의 환경과 형편에 따라 소유권을 옮길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이러한 조치는 생산의 기반이었던 땅의 소유권 이전으로 인한 부의 편재와 이에서 파생될 수 있는 각종 사회 부조리를 막기 위한 것이라 해석할 수 있습니다.

 

4: 그들이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방백들 앞에 나아와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사 우리 형제 중에서 우리에게 기업을 주라 하셨다 하매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그들에게 기업을 그 아비 형제 중에서 주므로

  이들은 이스라엘 안에서 각각 종교적, 정치적 대표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방백들은 각 지파에서 뽑힌 10명의 족장들을 말합니다. 이 세 대표들이 연합해서 땅을 분배하였는데, 이는 편파적인 분배를 막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공정하게 기업을 분배하기 위한 것입니다. 슬로브핫의 딸들도 이들 모두가 기업 분배를 책임진 자들이므로 이들에게 자신들의 처지를 아뢰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슬로브핫이 아들이 없이 죽었지만 그는 죄악 된 일에 참여함이 없이 성실히 살다가 죽음을 맞았습니다(민 27:30) 그러므로 아들이 없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이들의 가계가 끊어진다는 것은 부당한 일입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 적용될 특별법이 제정되었습니다(민 26:7-11). 과거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모세가 제정한 법을 슬로브핫의 딸들이 이제 여호수아와 엘르아살 그리고 각 지파를 대표하는 방백들에게 다시금 상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의 정당한 요구로 모세가 제정한 특별법(민 27:7-11)이 곧 시행되었습니다. 2절에 언급된 헤벨 가족을 제외한 나머지 다섯 자손이 각각 한 분깃씩, 그리고 헤벨의 아들 슬로브핫의 다섯 딸들이 한 분깃씩 기업을 분배 받았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꼭 지켜야 할 한 가지 조건이 주어졌는데, 반드시 같은 지파 내에서만 결혼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민 36:6-9). 그 이유는 그들이 다른 지파에게로 시집가면 여자로서 다른 지파의 소속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기업 또한 다른 지파에게 속하게 되어 소유권 이전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상이 자주 일어나게 되면 땅의 편재를 가져올 수도 있으며, 한 지파가 다른 지파에 종속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었습니다. 이는 더불어 사는 사랑의 공동체여야 할 이스라엘에서는 결코 있어서 안 될 것입니다. 때문에 여성의 상속권은 인정하되 그에 따른 폐단은 막고자 단서를 단 것입니다.

 

5: 요단 동편 길르앗과 바산 외에 므낫세에게 열 분깃이 돌아갔으니

  길르앗과 바산은 모세에 의해 마길 가족과 길르앗 가족에게 이미 분배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 두 분깃을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에 대한 토지 분배가 요단 서편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여기에서 므낫세는 마길 가족과 길르앗 가족을 제외한 요단 서편의 므낫세 반 지파를 말합니다. 원래 서편의 므낫세 반 지파는 여섯 분깃이었으나 헤벨의 아들 슬로브핫의 다섯 딸들에게 각각 한 분깃씩 분배되어 열 분깃으로 재조정 되었던 것입니다. 아마 여자들이 받은 다섯 분깃은 슬로브핫이 분배받은 한 분깃을 다섯으로 나누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6: 므낫세의 여손들이 그 남(男)자손 중에서 기업을 얻은 까닭이었으며 길르앗 땅은 므낫세의 남은 자손에게 속하였더라.

  므낫세의 남은 자손은 요단 강 동편에서 길르앗과 바산 지역을 분배 받은 마길 가족과 길르앗 가족을 말합니다. 이들은 므낫세 지파를 구성한 3세대 중에서 제 1세대와 제2세대에 해당합니다.

 

  7-13절: 므낫세 반 지파가 요단 서편 가나안에서 얻은 기업에 관한 언급에 이어 그들의 기업의 경계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7: 므낫세의 경계는 아셀에서부터 세겜 앞 믹므닷에 미치고 우편으로 가서 엔답부아 거민의 땅에 이르나니

  요단 서편에서 기업을 분배 받은 므낫세 반 지파의 지리적 경계를 말합니다. 북으로 아셀, 스불론, 잇사갈 지파의 지경과 접하고, 남으로는 에브라임 지파와 경계를 접하며 가나 시내를 따라 답부아에 이릅니다. 또한 동으로는 요단 강 서편 계곡 지대이며, 서쪽으로는 지중해까지 이릅이다. 아셀은 아셀 지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의 경계에 있던 한 성읍의 이름입니다. 이 성읍은 세겜과 인접한 지역으로 나불르사 동북쪽 18km 지점에 위치한 현재의 ‘데야실(Teyasir)'로 추정합니다. ’세겜‘은 에발 산과 그리심 산 사이에 에브라임 산지에 위치한 성읍으로 예루살렘 북쪽 약 65km 지점에 있는 오늘날의 ’나불루스(Nabulus)'입니다. 이곳은 히위 사람의 방백인 세겜이 건설하였습니다(창 33:18). 기업을 분배할 때 이 지역은 에브라임 지파에게 분배되었다가 다시 레위인에게 할당되어 도피성으로 구별되었습니다(수 21:21). 또한 이곳은 이스라엘의 남북으로 분열될 때 북왕국 이스라엘의 중심지가 되었던 성읍으로(왕상 12:25), 신약 시대에는 사마리아인의 수도가 되기도 했습니다(요 4:5). 또한 특별히 이 지역은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종교적 중심지들 중의 하나였습니다(창 12:6, 7; 수 24:26). 믹므닷은 세겜의 남동쪽 약 2km 지점에 위치한 것읍으로, ‘믹므다’와 동일한 지명입니다. 에브라임 지파의 북쪽, 므낫세 지파와의 경계 지역에 위치했습니다(수 16:6) ‘엔답부아’는 ‘사과 나무의 우물’이라는 뜻으로, 이곳은 물이 풍부한 평야 지대입니다. 세겜 남쪽 13km 지점에 위치한 현재의 ‘엔 야습(야습의 우물)’으로 추정됩니다.

 

8: 답부아 땅은 므낫세에 속하였으되 므낫세 경계에 있는 답부아 읍은 에브라임 자손에게 속하였으며

  ‘답부아’ 곧 엔답부아는 수원(水源)이 되는 우물과 이 물로 경작을 하는 들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둘 중 우물을 중심으로 하여 촌락은 에브라임 지파에, 들판은 므낫세에 속한 것 같습니다. 이러한 기업의 분배 사례는 므낫세와 에브라임 지파가 서로 매우 긴밀한 동맹 체계를 형성했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근거입니다(수 16:1, 9).

 

9: 또 경계가 가나 시내로 내려가서 그 시내 남편에 이르나니 므낫세의 성읍 중에 이 성읍들은 에브라임에게 속하였으며 므낫세의 경계는 그 시내 북편이요 그 끝은 바다며

  ‘가나(קנה)’는 ‘갈대’라는 뜻입니다. 이 시내는 그리심 산에서 발원하여 욥바 바로 북쪽 지중해로 흘러들어갑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경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수 16:9에 의하면 므낫세 지파의 기업 속에 에브라임 지파에 속한 성읍들이 있습니다. 이로 보아 에브라임 지파의 경계가 가나 시내에서 약간 북상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끝은 바다며’ 여기에서 바다는 지중해를 말합니다.

 

10: 그 남편은 에브라임에 속하였고 북편은 므낫세에 속하였고 바다가 그 경계가 되었으며 그들의 땅의 북은 아셀에 미쳤고 동은 잇사갈에 미쳤으며

  므낫세의 경계는 7절을 참고하세요.

 

11: 잇사갈과 아셀에도 므낫세의 소유가 있으니 곧 벧 스안과 그 향리와 이블르암과 그 향리와 돌의 거민과 그 향리요 또 엔돌 거민과 그 향리와 다아낙 거민과 그 향리와 므깃도 거민과 그 향리들 세 높은 곳이라.

  에브라임 지파가 므낫세의 기업 내에서 성읍들을 가지고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므낫세 지파 역시 아셀과 잇사갈 지파의 기업 내에서 여섯 개의 독립된 성읍들을 소유했습니다. 이와 같이 지파 간에 성읍들이 서로 겹친 이유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연합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벧 스안’은 ‘휴식의 집’이란 뜻입니다. 므낫세와 잇사갈의 경계인 이스라엘 골짜기의 동쪽 끝으로 뻗은 요단 골짜기에 있는 성읍으로서, 갈릴리 바다 남쪽 25km, 요단 강 서쪽 5km 지점입니다. 이곳은 기후가 적당하여 수리아, 미디안, 애굽 사이를 왕래하는 많은 대상들의 휴식처와 교역 장소가 되었습니다.(삿 1:27; 왕상 4:12; 대산 7:29). 또한 이곳은 길보아 전투에서 패한 사울의 시체가 성벽에 매어달린 곳으로 유명한다(삼상 31:10; 삼하 21:12), 신약 시대에는 ‘시키도폴리스(Scythopolis)'라고 불렸습니다. ’이블르암‘은 ’빌르암(대상 6:70)‘과 동일 지명입니다. 벧스안의 서남쪽 약 16km 지점에 위치한 성읍으로 이스라엘과 므깃도 사이에 있습니다. 훗날 아하시야는 이곳에서 치명적인 부상을 입기도 했습니다(왕하 9:27). 현재의 ’길벳 벨라메‘로 추정합니다. ’돌‘ ’돌의 높은 곳‘으로 불려지기도 한 성읍입니다.(수 11:2; 12:230 므낫세 지파에 분배되었으나 다윗 시대까지 점령되지 못했습니다(삿 1:27). 가이사랴 북쪽 14km, 갈멜 산 남쪽 25km 지점에 있는 현재의 ’엘 부르지‘로 추정됩니다.(수 11:2 참고) ’엔돌‘은 다볼 산에서 약 6km 지점에 위치한 성읍으로 잇사갈 지파와 경계 지역에 있던 므낫세 지파의 성읍이었습니다. 사울은 이곳에서 신접한 여인에게 사무엘의 혼백을 불러내어 자기 운수를 보게 해 달라고 청했으며(상상 28:9), 미디안은 이곳에서 드보라와 바락에 의해 멸절되었습니다(삿 4장; 시 83:10). ’다아낙‘ 이고에서는 잇사갈과 아셀 지파의 성읍으로 부분되었지만 수 21:25에는 므낫세 지파에 분배되어 레위인들을 위한 성읍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지역은 드보라와 바락이 야빈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기까지는(삿 5:19) 가나안 사람들의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 ’므깃도‘ 이스라엘 계속 서쪽 경계에 위치한 이곳은 북쪽 다메섹과 남쪽 애굽을 잇는 고대 무역로의 중심지인 동시에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삿 5:19; 왕상 4:12; 9:15; 왕하 23:29-30; 대한 35:22-24). ’세 높은 곳‘ 엔돌, 다아낙, 므깃도는 산 위에 위치했기 때문에 ’높은 곳‘이라고 불렀습니다. 반면에 벳드안, 이블르암, 돌은 낮은 평지에 위치하였습니다.

 

12: 그러나 므낫세 자손이 그 성읍들의 거민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사람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하였더니

  므낫세 자손은 죄악으로 물든 가나안 족속을 모두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도 불구하고(신 7:1-5) 그들을 모두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이는 당시 그곳에 거했던 가나안 족속들이 모두 철병거를 가졌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16절). 그러나 가나안 정복 초기에 막강한 가나안 연합군을 쳐부술 때 선두에서 용맹을 떨쳤던 므낫세 지파(수 4:12)가 가나안 족속들이 철병거를 가졌다는 이유로 그들을 두려워하고 쫓아내지 못한 것은 점차 신앙적 나태에 빠져 현실의 안일만을 추구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결국 이러한 신앙적 나태함은 후에 가나안인의 우상 숭배가 이스라엘에게 퍼지게 되는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하고 말았습니다.(삿 2:2, 3) 이 이역들은 사사 시대에 여 사사 드보라와 장수 바락에 의해 부분적으로 점령되었으며(삿 4,5장)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완전히 이스라엘의 영토가 되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의뢰하고 믿음으로 순종하며 싸울 때 원수들의 강함을 능히 파할 수 있다는 것을 믿은 드보라와 그렇지 못한 므낫세 지파의 신앙이 잘 대조가 되고 있습니다. 결국 가나안 사람들은 결심하고(야알: יאל) 그 지역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는 므낫세 지파의 신앙의 나태로 인해 공존을 허락하게 된 것입니다. 므낫세 지파는 스스로 죄의 세력 곧 우상 숭배를 일삼는 가나안 족속과 함께 거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시험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연단의 시험(test)가 아니라, 개인적인 나태함에서 오는 시험(temptation)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3: 이스라엘 자손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사람에게 사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

  물론 아직 청동기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스라엘 자손이 철기 문화를 가진 가나안 족속들을 제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삿 1:19). 그렇지만 이는 단순히 그 같은 외적 요인 때문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내적 불신앙 때문이었음은 앞에서 거듭 밝혔습니다. 이로 인해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가나안 미정복지가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 이 말은 능력이 부족해서 가나안 족속들을 멸절시키지 못하였다고 한다면 이것은 하나님께 그러한 능력이 없었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나 실상은 이스라엘인들이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신 7:1-5) 만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므로(롬 6:23), 죄의 싹을 완전히 제거해야 했지만 실행하지 않으므로 그들은 스스로 범죄의 길로 들어서는 통로를 열어 놓았던 것입니다.

 

  14-18절: 요셉 자손들이 여호수아에게 더 많은 기업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들은 레위 지파가 기업 분배 대상에서 제외 된 대신(수 13:14; 14:3, 4) 자신들의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가 이스라엘 두 지파로 인정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기업 분배에 있어서는 한 분깃으로 제비 뽑힌 사실(수 16:1-4)에 불만을 품고 여호수아에게 더 많은 기업을 요구한 것입니다. 당시 요셉 지파의 인구수는 에브라임이 32,500명(민 26:37), 므낫세 지파가 52,700명(민 26:34)이었으므로 그 중 요단 동편에서 기업을 얻은 므낫세 반 지파를 제외하면 요단 서편에서 기업을 받을 인구는 60,000명을 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는 단 지파 64,000명(민 26:43), 잇사갈 지파 64,300명(민 26:25)에도 못 미치는 인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 자손은 단 지파와 잇사갈 지파에 비해 훨씬 좋은 토질의 지역과 광활한 땅을 기업으로 받았습니다. 그들의 요구는 지나친 욕심의 결과임을 알 수 있습니다.

 

14: 요셉 자손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을 주시므로 내가 큰 민족이 되었거늘 당신이 나의 기업을 위하여 한 제비, 한 분깃만 내게 주심은 어찜이니이까

  므낫세 와 에브라임 지파를 통틀어 요셉 자손이라고 합니다. ‘큰 민족이 되었거늘’ 이는 수적으로 많은 것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그 힘에 있어서도 우월함을 말합니다. 므낫세 지파는 가나안 정복 정착 전쟁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그리고 에브라임 지파는 후일 이스라엘 지파 가운데 유다 지파 다음으로 당당한 위세를 가졌고(삿 8:1-3; 112:1-6), 분열 이후에는 북 왕국의 10 지파와 종종 동일시 될 만큼(사 7;2; 렘 7:15; 겔 37:16) 막강한 힘을 가졌습니다.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내게 주심은 어찜이니이까’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사실 두 지파였음에도 불구하고 한 지파로 취급되어 한 제비만을 뽑았었습니다(수 16:1). 요셉 자손은 지금 그 사실을 놓고 불만을 토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요구는 지나친 것입니다. 므낫세 반 지파는 이미 요단 동편에서 넓은 지역을 차지했고, 에브라임 지파는 요단 서편에서 유다 지파 다음으로 넓고 비옥한 땅을 차지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나머지 므낫세 반 지파도 에브라임 지파 위쪽에 꽤 넓은 지역을 분배 받았습니다. 므낫세 지파의 인구가 5만 여명이고, 에브라임 지파가 3만 여명임을 불 때(민 26:34, 37), 이들이 분배 받은 지역은 결코 좁은 지역이 아니었습니다. 이들과 비교해 볼 때 단 지파와 잇사갈 지파는 므낫세 지파보다 인구가 더 많았음에도 (64,000정도) 불구하고 좁은 산악 지대를 분배 받았기 때문입니다(수 19:17-23, 40-48). 이는 그들의 소유욕과 권리욕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참 신앙인은 자기 것에 만족하며, 오히려 어려운 이웃 형제들을 도울 줄 알아야 합니다(고전 10:24).

 

15: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네가 큰 민족이 되므로 에브라임 산지가 네게 너무 좁을진대 브리스 사람과 르바임 사람의 땅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

  여호수아는 요셉 자손의 불만에 대해 현명하게 대처하였습니다. ‘너희들이 큰 민족을 이루었으니 미정복지를 정복하여 그것을 증명해 보이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개척하라’고 훈계함으로써 이제는 각 지파가 스스로 삶의 터전을 닦아나가야 한다는 삶의 법칙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에브라임 산지’는 이스라엘 산지로도 불기는 곳으로(수 11:16, 21), ‘기르얏 에아림’에서 내려오는 석회로 된 능선입니다. 또한 이곳은 은밀하여 방어지로는 좋았지만 거주지로는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에브라임 지파의 불평은 여기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브리스 사람’은 ‘시골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불리게 된 것은 이들이 산간 지역에 흩어져 살았기 때문으로 추측합니다(수 11:3; 삿 1:4, 5). ‘르바임 사람의 땅’ 르바임은 거인이란 뜻으로 이들 족속은 아낙 조속들과 같은 민족으로 간주됩니다. 성경에서 이들은 ‘삼숨밈’, ’에밈‘으로도 불렸습니다.(신 2:10, 11, 20) 이들은 주로 요단 동편에 거주하였지만 불레셋 기경과 그 밖의 요단 서편 지역에도 흩어져 살고 있었습니다. ’스스로 개척하라‘는 전쟁에 의한 정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벌목하고 개간하여 산지를 거주지로 만들라는 뜻입니다.

 

  16-18절: 에브라임 산지는 비옥하지 못했고, 이스르엘 골짜기는 철병거를 가진 가나안 족속이 살고 있어서 요셉 자손은 여호수아에게 다른 땅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요셉 자손의 비겁함을 간접적으로 질책하며, 그들이 여호와의 권능을 의지하는 참된 믿음만 지닌다면 철병거를 가진 가나안 거민도 능히 쫓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가나안 정복 과정에서 보았듯이 최후의 승리는 병기나 군사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도우심에 있습니다. 따라서 요셉 자손이 이전의 산 경험을 토대로 전투에 임한다면 그 승리는 보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도 세상에 대하여 담대함을 가지고 하나님만을 의지한다면 악한 마귀와 싸우는 영적 싸움에서 최후의 승리는 보장되어 있는 것임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16: 요셉 자손이 가로되 그 산지는 우리에게 넉넉지도 못하고 골짜기 땅에 거하는 가나안 사람에게는 벧 스안과 그 향리에 거하는 자든지 이스르엘 골짜기에 거하는 자든지 다 철병거가 있나이다.

  ‘골짜기’로 번역된 히브리어 ‘에메크(עמק)’는 산지 사이에 잇는 평지를 의미합니다. 이곳 거민들이 철병거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습니다. 병거는 평지에서의 전투에만 이용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르엘 골짜기’ 이스르엘(יזרעאל)은 ‘하나님께서 심으신다.’는 뜻입니다. 이 지대는 골짜기라기보다는 일종의 분지입니다. 이곳은 물이 풍부하기 때문에 팔레스틴 지역에서 가장 비옥한 곳입니다. 또한 이곳은 갈릴리 지방과 사마리아 지방을 구분하는 경계 지역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지형적 여건 때문에서인지 성경에서 특히 이곳은 전투가 많았던 곳으로 기록되었습니다(삿 6:33-7:22 기드온의 전쟁, 삼상 29:1; 31장 블레셋과의 전투).

 

17-18: 여호수아가 다시 요셉의 족속 곧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일러 가로되 너는 큰 민족이요 큰 권능이 있은즉 한 분깃만 가질 것이 아니라,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가나안 사람이 비록 철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

  이 말 속에는 ‘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도와 싸우리라’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하여 영토를 확장할 수 있으므로 신앙적 결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