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여호수아 제14장 강해: 요단 서편 분배 및 갈렙의 요구

chukang 2014. 5. 18. 0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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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제14장 강해: 요단 서편 분배 및 갈렙의 요구

 

  본 장에서는 땅 분배 책임자, 분배 방법 및 대상에 대하여 전반적 원칙을 기록한 전반부와, 유다 지파부터 각 지파별 땅 분배에 들어가지 전에, 비록 개인적으로는 유다 지파지만 신 1:36의 특별 약속을 받은 갈렙이 모세에게 약속 받은 기업을 요구(6-12)한 사실 및 이에 대해 여호수아가 헤브론 땅을 허락한 내용(13-15)을 기록하고 있는 후반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본 장에서 매우 중요한 하나님의 통치 원리를 두 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일을 맡은 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직 충성이며(고전 4:2), 그에 따른 보상은 절대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특별히 이스라엘의 땅 분배 과정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즉 가나안을 정복함에 있어 이스라엘 열 두 지파가 함께 수고했으나, 그들에게 기업을 분배할 때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따른 제비뽑기 방법에 의해 분배된 것입니다. 이처럼 보상에 관한 한 철저하게 하나님의 주권으로 정하시는 이유는 인간들이 단지 상급을 받기 위한 얄팍한 목적에서 선을 행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마 6:33) 하나님께 온전히 충성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사 64:8; 렘 18:6; 고전 4:5). 둘째 하나님은 약속하신 복은 반드시 주심으로써 백성들이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게 만드십니다(민 23:19). 각 지파에게 기업을 분배하기 직전에 갈렙이 개인적 기업을 요구한 것은 매우 당돌하게 생각이 되지만,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약속하신 보상(민 14:24, 30)은 반드시 주어진다는 사실이 백성들에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신약 시대의 성도들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가 더디게 성취된다고 불평하지 말고(벧후 3:9) 하나님의 약속을 끝가지 신뢰하며 맡은 바 책임에 충성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요 14:1-3).

 

  1-5절: 여호수아가 요단 서편 땅을 백성들에게 분배한 사실이 기록되기 시작합니다. 그 가운데 본문은 서론격으로 땅 분배 책임자와 땅 분배 방법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꼭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여호수아가 땅을 분배하면서 자신의 자의적 생각이나 독단으로 하지 않고 제사장 엘르아살 및 각 지파의 족장들이 입회한 상태에서 제비를 뽑아 공정하게 시행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제비뽑기 방식은 땅 분배 이후 혹시라도 있을 수 있는 불만과 부작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조처로써 일찍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셨던 방법입니다(민 26:55, 56). 여호수아가 그대로 시행한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인정하고 그것에 순복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땅에서 취한 기업 곧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족장들이 분배한 것이 이 아래와 같으니라.

  민 34:16-29을 보면 가나안 땅에 대한 분배는 이미 엘르아살과 여호수아와 그리고 매 지파에서 선발된 10명의 족장들에 의해서 행해지도록 명령되었습니다. 바로 이 명령이 그대로 지켜지고 있습니다. 제사장 엘르아살은 종교적 측면에서, 여호수아는 국가의 우두머리로 정치적인 면에서, 그리고 족장들은 국가의 연합적인 면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표입니다. 따라서 땅의 분배는 편파적이거나 시기심이 없이 원만하게 수행되었을 것입니다. 특히 대표 중에서 제사장이 제일 먼저 거론된 것은 땅을 분배함에 있어서 하나님과 상의하는 것이 제일 첫 단계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는 땅 분배를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그들의 기업을 제비 뽑아 아홉 지파와 반 지파에게 주었으니

  제비뽑기는 첫째 각 지파에게 분배된 기업이 하나님께서 그 지파의 특성이나 전반적인 성격 등 모든 면을 초려하여 지정해 주신 것을 깨닫게 하고, 감사함으로 그 땅에 정착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둘째로 그 땅이 기름지거나 그렇지 않은 박토의 땅이라도 그것으로 인한 시비나 분쟁을 미리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셋째 땅을 나누는 일이 인간의 계획이나 힘에 의해 좌우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 결정된 것임을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제비를 뽑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랍비들이 추측하기로는 두 개의 항아리에 지파 수 만큼의 자갈을 각각 넣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한 항아리의 자갈에는 각 지파의 이름을, 그리고 또 한 항아리의 자갈에는 각 지파의 이름을 적은 후 먼저 지파의 이름을 적어 넣은 항아리에서 제비를 뽑고, 그 뽑힌 순서에 따라 지명을 적어 넣은 항아리에서 제비를 뽑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아홉 지파 반’ 3절에 의하면 여덟 지파와 반 지파입니다. 그러나 레위 지파가 빠진 대신 요셉의 지파가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두 지파로 여겨졌으므로(4절: 창 48:5), 결과적으로는 아홉 지파와 반 지파가 됩니다.

 

3: 두 지파와 반 지파의 기업은 모세가 요단 저편에서 주었음이요 레위 자손에게는 그들 가운데서 기업을 주지 아니하였으니

  모세에 의해 요단강 동편에 기업을 얻은 므낫세 반 지파와, 르우벤, 갓 지파의 영토를 ‘요단 저편’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단 저판의 영토는 미디안과의 싸움에서 정복한 땅인데, 가나안 정복 정착 전쟁 시 그들이 선봉에 서서 싸우고, 또한 요단 서편에서는 분깃을 포기한다는 조건으로 주어진 땅입니다.

 

4, 5: 요셉 자손은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두 지파가 되었음이라 이 땅에서 레위 사람에게 아무 분깃도 주지 아니하고 오직 거할 성읍들과 가축과 재물을 둘 뜰만 줄 뿐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것과 같이 행하여 그 땅을 나누었더라.

  야곱은 임종 직전에 베푼 축복에서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양자로 삼고 그들의 신분을 르우벤과 시므온과 같은 아들의 위치로 격상시켰습니다(창 48:5). 이는 기근으로부터 야곱의 가족을 구한 요셉의 공적에 대한 배려였습니다. 그러므로 레위 지파가 그들의 임무로 인하여 땅 분배에서 빠졌다 해도 땅을 분배받은 지파는 총 열 두 지파가 되는 것입니다. 레위인들에게는 도피성을 비롯하여 모두 48개의 성읍이 주어졌습니다(민 35:1-8). 그리고 가축과 재물을 주었는데, 이것들을 둘 수 있는 목초지는 함께 주어졌습니다. 레위 지파에 이러한 최소한의 소유를 준 것은 레위지파는 오직 성전에 봉사하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늘 십일조와 감사예물이 드려진다고 해도 때에 따라 많고 적음이 있으므로, 만약의 때를 위해 예비적 성격으로 이 가축들과 재물들을 주셨던 것입니다.

 

  6-15절: 갈렙의 기업 청원의 내용입니다. 갈렙은 유다 지파의 족장으로 45년 전에 여호수아 및 다른 10명의 정탐꾼들과 함께 가나안을 정탐하고(민 13:7), 여호수아와 더불어 신앙적인 보고를 함으로써 모세로부터 헤브론을 기업으로 약속 받았습니다(민 13:22). 그러므로 이제 갈렙은 모세의 계승자인 여호수아에게 그 약속을 이행하도록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는 갈렙의 개인적인 욕심이 아니라, 자신의 신앙적인 보고대로 아낙 자손을 좇아내고 헤브론을 기업으로 삼고야 말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점령한 아름답고 비옥한 땅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에서도 증명이 되고 있습니다. 이 같은 갈렙의 신앙, 용기, 겸손 등은 오늘날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는 사명을 맡은 그리스도의 군사 된 성도들에게 귀중한 모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신앙은 결코 만용이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정녕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는 결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막 9:23; 빌 4;13).

 

6: 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이르신 일을 당신이 아시는 바라.

  길갈은 여리고 부근에 있는 지역으로 이스라엘이 요단을 건넌 후 최초로 진을 쳤던 곳입니다. 또한 가나안 땅의 분배가 이루어진 것도 이곳입니다. 그러므로 길갈은 가나안 정복 정착 전쟁의 시발지이면서 완결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갈렙(כלב)’은 개라는 뜻으로 종의로서의 충성과 애정을 나타냅니다. ‘그니스 사람’은 일찍이 팔레스틴 주변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던 에돔 족속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민 13:6에는 갈렙이 ‘유다 지파’로 나와 있어서 서로 모순이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갈렙의 가계는 순수한 히브리 혈통은 아니었으며, 그의 가계가 유자 지파로 유입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도 이스라엘 공동체는 폐쇄성으로 일관된 철저한 혈통주의적인 공동체는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데스 바네아’는 팔레스틴 남부의 변두리에 위치한 오아시스 지역입니다.(수 15:3). 창 14:7에는 ‘엔미스밧’(미스바의 샘)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곳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을 위한 거점으로 삼았던 곳이기도 합니다.(민 20:1-21 참고하세요.)

 

7: 내 나이 사십 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케 하므로 내 마음에 성실한 대로 그에게 보고하였고

  ‘내 나이 사십 세에’ 히브리어 원문에는 ‘내가 40세 된 아들이었을 때’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들’은 사람을 나타내는 일반적 표현이라고 합니다. 또한 ‘젊었을 때’를 나타내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현재 갈렙의 나이가 85세이므로 45년 전의 일을 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과거를 회고함에 있어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충실히 행했음을 여호수아 앞에서 간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인의 고백, 그것은 사람 앞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뜻과 명령을 좇아 살았다는 진실한 고백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내 마음에 성실한 대로’(카아쉐르 임레바비: כאשׁר עם־לבבי)는 ‘내 마음에 있는 대로’라는 뜻입니다. 영어 번역에서는 “내 확신에 따라(according to my convictions)”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이는 철저히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확신과 결단을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뢰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는 자에게는 언제나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갈렙의 말과 행동이 인간의 추함과 더러움에서 나오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았던 것입니다. ‘가나안을 치자’고 주장한 것은 갈렙의 말이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이었던 것입니다. 성도의 말과 행동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합당하기 위해서는 그 속에 먼저 하나님께로 향하는 신실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갈렙은 백성들의 반응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신앙에 따라 가나안 정탐의 결과를 보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8: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으므로

  당시 여호수아와 갈렙은 다른 10지파의 대표들과 함께 정탐했습니다. 이들은 가나안 사람들의 강성함을 복 두려워하여 가나안 정벌을 포기할 것을 건의했습니다. 그들은 대표로 뽑힐 정도로 특출한 자들이었지만 하나님을 의뢰하는 신앙이 부족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갈렙이 이들을 ‘내 형제’라고 부르는 것은 비록 그랬을지라도 가나안 정복에는 이스라엘의 통일된 힘이 무엇보다도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나안 정복은 이스라엘 모두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약속이며, 명령이었던 것입니다(민 13:30;14:7-9;신1:36 참고)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여기서 ‘간담(렙: לב)’은 마음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10지파의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움에 떨게 되었음을 말합니다. 그들은 당지 현재 이스라엘의 처지와 비교해서 가나안 족속들의 기골이 장대함과 강성함만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넉넉히 이기게 하실 것이라는 신앙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좌절과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성도가 느낄 수 있는 것은 갈렙과 다른 열 정탐꾼들과의 마음 상태가 다르다는 것에서 신앙의 행동이 다르게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갈렙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신앙을 가지고 ‘마음에 성실한 대로’ 말할 수 있었지만, 다른 정탐꾼들은 불신앙의 마음으로 백성들을 두려움 속으로 몰아넣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갈렙은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습니다. ‘온전히’(말레:מלא)는 ‘채우다, 만족시키다’는 뜻입니다. 이는 갈렙의 신앙 상태를 가장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9절과 14절에도 나타납니다.

 

9: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가로되 네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은 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영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그 날’은 12명의 정탐꾼이 가데스 바네아로 돌아와 보고를 마친 날입니다(민 14:24; 신 1:36). 민 14:20과 신 1:34에서는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여기에서 모세가 맹세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갈렙도 모세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불렀으므로, 모세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10: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 행한 이 사십 오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 나를 생존케 하셨나이다. 오늘날 내가 팔십 오세로되

  갈렙이 40세에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 정탐꾼으로 파견된 때로부터 현재 가나안 정복이 거의 끝난 때까지의 45년으로써, 정탐꾼을 파견한 때가 출애굽 2년째이므로, 광야 생활 전체를 40년으로 계산하면 갈렙이 말하는 45년 중 38년은 광야에서의 기간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7년은 가나안 정복 정착 전쟁에 소요된 기간이라고 하겠습니다(7절: 수 11:18 참고).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사람과 맺은 언약을 변치 않고 지키십니다. 갈렙이 지난 45년 동안의 치열한 전투 가운데서도 무사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가 기업으로 받을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까지 살아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11: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날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온즉

  갈렙의 강건함은 45년 정탐꾼으로 파견될 때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45년이라는 시간적 차이가 있어서 기력이 예전 같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온전히 좇는 믿음’이(8,14절) 그를 더욱 강하게 하였을 것입니다. 실제로는 그는 아낙 자손을 헤브론에서 내어 쫓는데(삿 1:20), 이것은 비록 늙어도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가 얼마나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힘은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가 얻는 새 힘입니다(사 40;31).

 

12: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곳에는 아낙 사람도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산지는 아낙 자손의 거주지인 헤브론의 산악 지대를 가리킵니다(민 13:22). 갈렙이 굳이 이 지역을 요청한 것은 그가 정탐하고 정복할 수 있다고 보고한 자신의 판단을 실제로 입증해 보이는 것입니다. 이런 태도야말로 자신의 말을 책임있게 수행하는 진정한 신앙인의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혹시~ 함게 하시며’ ‘혹시: 울라이(אולי)’는 의심을 나타내는 데 사용이 되지만, 여기에서는 ‘~하기만 하면’이라는 강한 소망과 확신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아낙 자손은 강하고 성읍이 견고하지만, 자신은 늙고 연약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조건들을 뛰어넘을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은 ‘임마누엘’(עמנוא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라는 사실을 갈렙은 역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13: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

  축복을 하였다는 사실이 땅을 준 사실에 선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갈렙의 불굴의 신앙에 대한 축복입니다. 그리고 이 축복은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약속에 따른 기업의 분배로 이어진 것이므로, 갈렙의 신앙대로 거대한 아낙 자손을 쫓아내고 헤브론을 점령할 수 있는 여호와의 능력이라고 하겠습니다.

 

14: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날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며

  ‘오늘날까지 이르렀으니’ 이 말은 여호수아 서(書)가 기록된 때입니다.

 

15: 헤브론의 옛 이름은 기럇 아르바라 아르바는 아낙 사람 가운데 가장 큰 사람이었더라.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기럇 아르바’는 ‘아르바의 성읍’이란 뜻으로, 사라가 이곳에서 죽었으며, 막벨라 굴 근처에 위치한 헤브론의 옛 이름입니다(창 23:2; 35:27).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이는 수 11:23에도 언급된 표현으로, 가나안 땅이 완전히 정복되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다만 잔존 가나안 족속들의 세력이 약화되어 이스라엘 대해 전쟁을 일으켜 이스라엘을 내쫓고 그 땅을 다시 되찾을 만함 힘이 없었음을 말합니다.(수 11:23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