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여호수아 제12장 강해: 요단 동편의 두 왕 및 가나안의 왕들

chukang 2014. 3. 23.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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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제12장 강해: 요단 동편의 두 왕 및 가나안의 왕들

 

  가나안 정복 기사의 마지막 부분으로써 이스라엘이 출애굽 이후 치렀던 정복 전쟁과 정복한 지역 및 왕들에 대한 열거를 통하여 지난 정복 사업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가나안 정복 전쟁은 크게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기로 한 언약의 성취이며, 둘째는 선과 악, 하나님과 사단의 세력 간의 거룩한 전쟁에서의 승리로 볼 수 있습니다. 가나안 족속들은 영적으로 볼 때 우상 숭배와 하나님을 대적하는 온갖 죄악을 행하는 불의의 세력들로서(창 15:16;신9:4,5), 공의로우신 하나님 편에서 볼 때에 그들은 원수요, 따라서 그들은 약속의 땅에서 추방되어 필히 괴멸되어야 할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과 가나안 족속과의 싸움은 이 땅이 존재하는 한 계속될 그리스도와 사단의 싸움이며, 이스라엘의 승리는 마침내 그리스도께서 사단을 이기고 주의 백성들에게 천국 입성의 승리를 주실 것을 예표하는 구속사적인 싸움입니다.

 

  1-6절: 모세가 정복했던 요단 동편의 두 왕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한 내용이 소개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에 의해 성취된 것임을 가르쳐주고 일찍이 이스라엘 조상들에게 약속했던 땅에 대한 언약 성취를 상기시키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창 15:18-21). 본래 이스라엘에게는 요단 서편에 대한 땅만 약속이 되어 있었고, 동편에 대한 약속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동편에는 가만히 통과하려고 했지만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이 그 땅의 통과를 거절하고 전쟁을 일으켰기 때문에 동편을 점령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가르쳐준다고 하겠습니다. 오늘날 진실한 성도를 핍박하는 사이비 이단들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리들은 장차 최후 심판의 날에 영원한 형벌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계 20:7-15).

 

1: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 저편 해 돋는 편 곧 아르논 골짜기에서 헤르몬 산가지의 동방 온 아라바를 점령하고 그 땅에서 쳐 죽인 왕들은 이러하니라.

  갈릴리 호수에서 사해로 흐르는 요간 강을 기준으로 했을 때, 동편지역으로 현재 ‘트랜스요르단’으로 불리는 지역을 ‘요단 저편 해 돋는 편’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모세에 의해 점령되어 르우벤, 갓, 므낫세 지판의 반(半)에게 분배되었습니다(민 32:33; 수 1:12-15). ‘아르논 골짜기’ 아르논이란 말은 ‘급하게’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레논(רנון)’에서 유래되어 ‘급류, 물살이 빠른 개울’이라는 뜻입니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구약 시대에 이 지역은 북부 아라비아 산지에서 흘러내리는 급류가 사해도 통하는 긴 강이었습니다. 또한 이곳은 지리적 여건으로 가나안 정복 정착 전쟁 이전에는 아모리 족의 영토와 모압 족의 경계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전쟁 후에는 르우벤 지파에 분배되어 르우벤 지파와 모압과의 국경선으로서 이스라엘 영토의 동쪽 한계선이었습니다(신 3:12). ‘헤르몬 산’은 ‘탁월한 산봉우리’라는 뜻입니다. 산꼭대기에는 항상 눈이 덮여 있어 그 아름다운 모습과 이슬로 유명합니다(시 42:6;133:3). 이곳은 성경에서 ‘스닐’ 또는 ‘시룐’(신 3:9)으로 불렸으며, 이스라엘 영토의 북방 한계선이었습니다(수 111:17;12:1;13:5). ‘동방 온 아라바’ 갈릴리 바다에서 아카바 만까지 이어진 대평원을 말합니다(수 3:16;8:14).

 

2: 헤스본에 거하던 아모리 사람의 왕 시혼이라 그 다스리던 땅은 아르논 골짜기 가에 있는 아로엘에서부터 골짜기 가운데 성읍과 길르앗 절반 곧 암몬 자손의 지경 얍복 강까지며

  헤스본은 본래 모압 족속의 땅이었으나 아모리 왕 시혼이 빼앗아 수도로 정한 성읍으로(민 21:26) 요단강으로부터 동쪽으로 약 30km 떨어진 곳, 즉 얍복 강과 아르논 강 사이에 위치했습니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정착 대 이 땅은 르우벤 지파의 영토에 해당됐으나, 갓 지파와의 경계 지대에 있었으므로 갓 자손이 이 성읍을 재건하여 그들의 소유로 삼았다가(민 32:37), 후일 레위인에게 할당되었습니다.(수 21:39;대상 6:81). ‘아모리 왕 시혼’ 모세에 의해 정복당한 가나안 최초의 왕입니다(수 2:10). 그는 아모리 영토를 통과하여 가나안에 들어가려는 이스라엘의ㅣ 통과를 거절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에게 정복되어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에게 분배되었습니다. ‘아르논 골자기~ 얍복 강까지며’ 시혼의 남쪽 경계는 아르논이고, 북쪽 경계는 얍복 강입니다.(민 21:24) ‘아로엘’은 ‘벌거벗은’이라는 뜻입니다. 이곳은 아르논 골자기 북쪽 요단강 언덕에 위치한 고대 도시로, 사해 동쪽 약 22km 지점에 위치하였습니다. 본래 모압 족속의 남쪽 경계였다가 여호수아에 의해 정복되어 르우벤 지파에 할당되었습니다(수 13:7; 삿 11:26). ‘길르앗 절반’ 길르앗(גלעד)은 ‘증거의 산’이란 뜻입니다.(창 31:48) 이곳은 요단강 동편의 산악 지대로서(신 2:3136) 아르논 강과 야르묵 강 사이에 있는 지역인데, 중간에 가로지른 얍복 강을 경계로 남북으로 나뉩니다. 이곳은 므낫세 반 지파에게 분배되었습니다(신 3:13). ‘암몬 자손’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에서 구원되어 소아에 거할 때 술에 취하여 두 딸과 동침하여 낳은 아들 중, 큰 딸이 낳은 아들이 모압이며, 작은 딸이 낳은 아들이 벤 암미였습니다. 암몬 족속은 벤 암미의 후손으로(창 19:38), 요단강 동편에 거주하였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과는 형제 국이었으므로 이스라엘은 이들과 싸우지 않고 돌아서 가나안으로 향하였습니다(신 2:19). 얍복 강은 ‘세찬 물줄기’, ‘넘쳐흐르는 물’이란 뜻입니다. 이 강은 평소에는 마른 ‘건천(乾川)’입니다. 이 강은 길이가 약 100km 정도로 북쪽은 암몬 자손들과 동쪽 경계를 이루고, 서쪽 부분은 길르앗 지역을 남북으로 구분시켜 아모리 족속의 시혼과 옥을 구분지어 줍니다. 이곳은 야곱이 천사와 씨름한 곳으로도 유명합니다(창 32:24).

 

3: 또 동방 아라바 긴네롯 바다까지며 또 동방 아라바의 바다 곧 염해의 벧여시못으로 통한 길까지와 남편으로 비스가 산록까지며

  ‘긴네롯 바다’ 신약에서는 갈릴리 바다(마 4:18;15:29;막 1:16; 7:31), 게네사렛 바다(눅 5:1), 디베랴 바다(요 6:1; 21:1) 등으로 불립니다. 구약에서는 ‘긴네렛 바다(민 34:11; 신 3:17)’로 불렸습니다. 남북이 약 22km, 동서 14km 정도의 넓이로 하프 모양의 내륙 호수입니다. 헤르몬 산의 눈 녹은 물이 흘러 들어오는 곳이기도 하며, 사해로 흘러들어가는 요단강의 진원지이기도 합니다. 주변은 비옥한 지역으로서 열대성 기후로 인해 밀보라, 무화과, 포도 등이 잘 자란다고 합니다. ‘염해’는 ‘싯딤 골짜기’로 불린(창 14:3) 사해의 다른 명칭입니다. ‘벧여시못’은 황폐한 곳이란 뜻으로 요단강이 사해로 흘러들어가는 어귀인 모압 평지에 위치하며, 이스라엘이 요단을 건너기 전 최후로 머문 곳입니다(민 33:49). 이곳은 르우벤 지파에 할당되었으나(수 13:20), 후에 모압 족속에 의해 정복당했습니다(겔 25:9). '비스가‘는 느보 산의 정상인 아바람 산 지역의 북부의 한 지점으로, 여리고에서 사해의 북단에 이르는 지역입니다. 과거 이곳에서 모세는 자신의 입성을 허락받지 못한 가나안 땅을 내려다보았고(신 3:27; 34:1), 바람은 여기서 일곱 단을 쌓고 이스라엘을 저주하려는 헛된 시도를 하였었습니다.(민 23:1-30)

4: 또 르바 남은 족속으로서 아스다롯과 에드레이에 거하던 바산 왕 옥이라

  르바(르파임: רפאים)는 아낙, 수스, 에밈 족속들과 함께 가나안에 r주했던 거인족입니다. 그들은 바산과 길르앗 땅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신 3:13). 여기서 ‘남은’이라는 말은 비록 그들이 북부의 넓은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다른 족속에 의해 패배 당했음을 의미합니다(창 14:5). ‘아스다롯’ 바산 왕 옥의 고향으로(신 1:4; 3:10; 9:10) 후에 므낫세 반 지파에게 할당되었습니다. ‘에드레이’는 강한 도시, 혹은 무장된 도시라는 뜻입니다. 바산 왕 옥이 거하던 성읍인데, 명칭에서 보듯이 바산 옥은 당시에 강한 군주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모세에게 쉽게 정복당했다는 사실은(민 21:33‘35; 신 3:1-6) 자신의 힘과 군대의 강성함만을 의지하는 자는 비록 연약하지만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를 대적하여 결코 이길 수 없음을 가르쳐 줍니다. ’바산‘은 갈릴리 동쪽, 곧 상부 요단강 동쪽에 위치한 넓은 평야 지대로, 북으로는 헤르몬 산, 남으로는 길르앗, 동으로는 살르가, 서로는 그술과 마아가를 경계로 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에는 60여개의 성읍이 있었으며, 옥은 이 성읍들을 다스리는 최고 실력자로 거인이었습니다(신 3:11). 그렇지만 에드레이 전투에서 모세가 이끄는 이스라엘에 패하여 그의 모든 성읍들이 함락 당했습니다(신 3:4-6). 이 사실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가나안에 입성하기 전에 다시 한 번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5: 그 치리하던 땅은 헤르몬 산과 살르가와 온 바산과 및 그술 사람과 마아가 사람의 지경까지의 길르앗 절반이니 헤스본 왕 시혼의 지경에 접한 것이라

  ‘헤르몬 산’ 여호수아가 정복한 이스라엘 땅의 북쪽 경계에 해당합니다. 사철 눈에 덮여 있으며, 봄에는 이 산의 눈 녹은 물이 홀레 호수와 갈릴리로 흘러 들어옵니다. 지리적으로 이 산은 므낫세 지파와 북쪽의 아랍 땅의 경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살르가’는 ‘길 따라 가다’는 뜻으로, 바산 동쪽 경계에 있던 옥의 성읍입니다(신 3:10), 후에 므낫세 지파에 배당되었지만 갓 지파가 거주하게 되어 갓 지파의 북쪽 경계로 되었습니다(수 13:11; 대상 5:11). ‘그술 사람과 마아가 사람’ 그술은 바산의 북동쪽 시리아와 접경 지역입니다. ‘그술 족속’이란 말이 수 13:11, 13에도 나오는 것으로 보아 그 당시까지 이스라엘에 점령되지 않고 독립적 주권을 가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지역은 ‘아람 그술’이란 이름으로도 나타나는데(삼하 15:8), 압살롬의 어머니였던 마아가가 바로 이 그술 왕의 딸이었습니다.(삼하 3:3; 대상 3:2). 다음으로 마아가는 그술의 북쪽 지역으로 후에 므낫세의 아들 야일에 의해 정복되었습니다(신 3:14). 암몬 자손들은 다윗에 대항하기 위해 마아가 사람들을 용병으로 고용하기도 했습니다(삼하 10:6).

 

6: 여호와의 종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치고 여호와의 종 모세가 그 땅을 르우벤 사람과 갓 사람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었더라.

  모세가 시혼과 옥을 멸망시키고 점령한 요단 동편은 이스라엘 두 지파 반,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분배되었습니다(민 32: 신 3:12-20).

 

  7-24절: 정복한 요단 서편 땅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스라엘은 레바논 골짜기 바알갓에서부터 고센의 할락 산까지 이르는 지역에서 모두 31개의 성읍을 정복하였습니다. 남부 16개, 북부 15개입니다. 이렇게 많은 성을 정복하기까지 많은 세월과 수많은 전투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무려 5년 여 동안 전쟁을 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적 가나안 곧 하나님 나라를 차지하기 위해서도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쉼 없이 수많은 대적들과 싸워야만 합니다. 이러한 영적 전쟁은 결코 휴전이나 중단이 있을 수 없습니다. 악의 세력들은 할 수만 있으면 언제라도 성도를 넘어뜨리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기 때문입니다(벧전 5:8). 그러므로 성도들은 항상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깨어 있어 긴장을 늦추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엡 6:10-20).

 

7: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 이편 곧 서편 레바논 골짜기의 바알갓에서부터 세일로 올라가는 곳 할락산까지에서 쳐서 멸한 왕들은 이러하니(그 땅을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구별을 따라 그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었으니

  여호수아가 요단 서편에서 멸한 왕들의 땅에 대한 서술로 북으로는 레바논 골자기의 바알갓에서부터, 남으로는 할락 산까지와 동으로는 요단강, 서로는 지중해 연안에 이르는 정복지에 대한 반복 기사입니다. 이처럼 많은 성읍을 쉽게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은 여호수아의 철저한 신앙과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비롯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수 23:3). 레바논 골짜기는 신약 시대 가이사랴 빌립보 지역에 해당하는 곳으로 가나안의 북부 경계에 해당합니다. 바알갓은 이 지역의 중심 도시입니다. 그리고 세일은 사해 남쪽의 산악 지대를 말하며 할락 산은 가나안의 남쪽 경계입니다. 그러므로 본 절은 가나안의 전 지역을 말합니다.

 

8: 곧 산지와 평지와 아라바와 경사지와 광야와 남방 곧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땅이라)

  ‘산지’는 유다와(수 15:48), 에브라임(수 16:1), 납달리 산지(수 19:32)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평지와 아라바는 골(Ghor)의 서부 지역을 말하며 광야는 유다와 베냐민에 속하는 유대 사막을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남방은 건조한 사막 지대인 가나안 남쪽 지역입니다(수 11:17). 이러한 구분은 지형적 특색에 의한 것으로서 가나안의 형세를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헷, 아모리, 가나안, 브리스, 히위, 여부스 사람은 가나안의 7족속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기르가스 족속(신 7;1; 수 3:10)이 빠져 있습니다. 아마 기르가스 족속이 주변 족속에 유입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9-24절은 여호수아가 요단 서편, 곧 가나안 본토에서 멸한 31명의 왕에 대한 명단을 서술한 부분입니다. 그중에서도 9-16절은 남부 가나안 왕들에 대해서, 그리고 17-24절은 북부 가나안 왕들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9: 하나는 여리고 왕이요 하나는 벧엘 곁의 아이 왕이요

  수 7:2 참고하세요.

 

10-13: 하나는 예루살렘 왕이요 하나는 헤브론 왕이요 하나는 야르뭇 왕이요 하나는 라기스 왕이요 하나는 에글론 왕이요 하나는 게셀 왕이요 하나는 드빌 왕이요 하나는 게델 왕이요

  ‘예루살렘, 헤브론, 야르뭇, 라기스, 에글론 왕’ 이들은 가나안 중부 지역의 왕들로써 이스라엘이 마침내 가나안에 침입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서로 연합하여 이스라엘에 맞선 왕들입니다.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이 주동이 되어 이스라엘과 화친한 기브온을 치려하였으나 길갈에서 이스라엘의 습격을 받아 패퇴하였습니다(수 10:1-12)

 

14: 하나는 호르마 왕이요 하나는 아랏 왕이요

  ‘호르마’는 ‘파멸’을 뜻합니다. 이곳은 두 차례나 파멸을 당했습니다(민 21:3; 삿 1:17). ‘스밧’으로도 불렸는데(삿 1:17),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성급하게 가데스를 침략했다가 가나안 인에게 패배를 당한 곳이기도 합니다(민 14:45; 신 1:44). 후에 이곳은 시므온 지파에게 분배되었습니다.(수 19:4; 삼상 30:30; 대상 4:30). ‘아랏’은 유다 광야 북쪽(민 21:1-3, 삿 1:16) 헤브론에서 남쪽으로 약 30km 떨어진 지점이라고 합니다.

 

15: 하나는 립나 왕이요 하나는 아둘람 왕이요

  ‘립나’(수 10:29 참조) ‘아둘람’은 유다 산지에 있던 성읍으로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도망할 때 이곳에 있는 동굴에 머물렀으며(삼상 22:1; 삼하 23:13; 대상 11:15), 후에 르호보암이 이곳을 요새화하기도 하였습니다(대하 11:7).

 

16: 하나는 막게다 왕이요 하나는 벧엘 왕이요

  ‘막게다’(수 10:10 참조)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란 뜻을 가지고 있고 예루살렘에서 세겜에 이르는 길 오른 쪽에 위치해 있는 예루살렘 주변 성읍들 중의 하나입니다. 야곱은 이곳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다고 하여 ‘벧엘’이라고 명명했습니다. 그러나 여로보암 때 이곳은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는 일로 인해 ‘우상의 집’이라는 ‘벧야웬’이란 이름을 갖기도 했습니다(왕상 12:28; 33; 13:1).

 

17: 하나는 답부아 왕이요 하나는 헤벨 왕이요

  ‘답부아’는 ‘사과 성읍’이란 뜻을 가지고 있으며 유다 지파에 있는 성읍(수 15:34)인지, 에브라임 지파에 있는 지는(수 16:8) 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 ‘헤벨’은 세벨라 평지에 있는 도시로, 솔로몬이 파견하였던 열 두 관장 중 한 사람에 의해 관할 되었던 것입니다(왕상 4:10).

 

18: 하나는 아벡 왕이요 하나는 랏사론 왕이요

  ‘아벡’은 요새라는 뜻으로 샤론 평지에 있던 성읍입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 침략의 교두보로 삼았던 곳입니다(삼상 4:1; 29:1) 블레셋은 이 전투에서 언약궤를 빼앗고 실로를 파괴했습니다. ‘랏사론’은 여기에서만 언급된 성읍으로 정확한 위치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19: 하나는 마돈 왕이요 하나는 하솔 왕이요

  ‘마돈’은 본문과 수 11:1에만 언급되어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며, 단지 갈릴리 서쪽 산지로 추정합니다. ‘하솔’은 북부 이스라엘의 전략적, 경제적 중심 도시입니다. 이곳 왕은 야빈입니다. 이 도시 국가는 주변 국가들을 규합하여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에 대항하였으나 메론 전투에서 패배하였습니다.

 

20: 하나는 시므론 므론 왕이요 하나는 악삽 왕이요

  ‘시므론 므론’ 수 11:1의 시므론과 동일한 지명으로 갈릴리 남서쪽 20km 지점에 위치한 스불론 지파의 성읍이었습니다(수 19:10, 15). ‘악삽’ 갈릴리 호수 서쪽에 위치하며, 갈멜 산 위쪽에 있습니다.

 

21: 하나는 다아낙 왕이요 하나는 므깃도 왕이요

  다나낙과 므깃도는 일반적으로 함께 언급이 됩니다(수 17:11; 삿 1:27; 5:19). 이 두 성읍은 모두 므깃도 강이 흘러들어 갔던 기손 강에 의하여 므낫세 지파와 잇사갈 지파의 영토가 구분되었던 그 중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다아낙’은 이스라엘 골자기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애굽에서 블레셋 지역의 해안과 내륙을 잇는 도로 상의 한 성읍입니다. 후에 므낫세에게 분배 되었으나 정복되지 않았고(삿 1:27), 이스라엘 왕국 시대에는 레위인들의 성읍이 되어 있었습니다. 므깃도는 가나안 지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교통 중심지로서 동서를 잇는 대상로였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역사상 여러 번 큰 전투가 벌어진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솔로몬은 이곳은 군사 요새로 사용하였으며(왕상 9:15), 유대 왕 아하시야가 예후에게 죽임을 당한 곳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요시아가 애굽 왕 느고와의 전투에서 패배한 곳이기도 합니다.(왕하 23:29, 30; 대하 35:20, 25). 신약에서는 이곳이 인류 최후의 아마겟돈(므깃도의 산) 전쟁이 일어날 곳으로 예언되었습니다(계 16:14, 16).

 

22: 하나는 게데스 왕이요 하나는 갈멜의 욕느암 왕이요

  게데스는 수 19:37에 의하면 납달리와 동일 지명입니다. 남달리 산지 위에 위치한 레위인의 성읍으로 도피성이기도 합니다(수 19:37; 20:7; 21:32). ‘갈멜의 욕느암’ 갈멜 산 인근에 있고 스불론 지파 경내에 있는 레위인의 성읍입니다(수 19:11; 21:34). 왕조 시대에 이곳은 솔로몬 궁전의 식물을 조달하는 곳이었습니다(왕상 15:12).

 

23: 하나는 돌의 높은 곳의 돌 왕이요 하나는 길갈의 고임 왕이요

  ‘돌’은 게데스 서쪽,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입니다. 수 11:2 참조. ‘길갈’은 예루살렘 왕 오디니세덱이 이끄는 가나안 연합군과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이 전투를 벌였던 지역과(수 10:7)는 다른 곳으로, 갈릴리 지방에 있는 길갈입니다. ‘고임 왕’ 고임(גוים)은 나라, 민족을 나타내는 ‘족속들’이란 뜻입니다. 즉 이 지역의 나라들이 부족 연맹체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이 부족 연맹체를 통치하는 최고통치자가 ‘야빈’과 같은(수 11:1) 고유 명사로 ‘고임’으로 불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24: 하나는 디르사 왕이라 도합 삽십 일 왕이었더라.

  ‘디르사’ 이 성읍은 세겜 북쪽에 있던 매우 아름다운 성읍으로(아 6:4), 여로보암이 왕궁으로 선택했고(왕상 14:17), 오므리가 사마리아에 왕궁을 짓기 전까지 북 이스라엘의 수도였습니다. 이후 바아사, 엘라, 시므리 왕이 이곳에 거했습니다(왕상 15:21; 16:8, 17, 23). 작은 가나안 땅에 무려 31명이나 되는 왕이 있었다는 것은 이 시대가 얼마나 분열이 심한 시대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마치 사사 시대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는 것과 (삿 21:25) 같은 상황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스라엘을 대항할 결집력을 갖지 못했기에 스스로 멸망을 앞당길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