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제11장 강해: 가나안 북부 정복 및 전쟁 종결
본 장에는 가나안 북부 지역을 정복함으로써 약 5년간에 걸친 전쟁이 종결되는 장면을 보도하며 또 가나안 주요 거점 정복 과정의 회고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의 성취이며, 장차 하나님을 믿는 모든 백성들이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을 예표하는 사건입니다. 이스라엘은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반역 사건 때에, 가나안 거인족 아낙 자손의 장대함에 기가 꺾여(민 13:22, 23) 가나안 정복을 포기하고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려 했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어리석은 백성을 끝내 버리지 않으시고 새로운 회개의 기회를 주시며 친히 앞서 인도하시며 요단강을 기적으로 건너게 하시고, 주요한 싸움의 고비마다 대승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이스라엘은 그토록 무서워했던 아낙 자손을 하나 없이 진멸하고 명실상부한 가나안 땅의 주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신약 시대에 있어서도 교회와 성도를 중심으로 구속사를 진행시켜 나가고 계십니다. 교회가 아무리 초라하고 성도가 아무리 연약해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택하신 성도들을 끝까지 지키시며 또 회개의 기회를 주시고 천국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살아계시고 역사하고 계심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범죄할지라도 회개하여 구속사의 대열에서 낙오하지 않도록 믿음을 지키야 할 것입니다.
1~5절: 이스라엘이 가나안 남부 지역의 왕들의 동맹군을 격파 섬멸한 것은 북부 지역의 가나안 족속들에게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이에 북부의 모든 거민들은 하솔 왕 야빈을 중심으로 동맹을 맺고, 이스라엘과 대적하기 위해 메롬 물가에 진을 쳤습니다. 이를 소위 가나안 족속들의 제2차 동맹이라 하는데, 남부 동맹과 구별하기 위함입니다. 이들은 동맹을 통하여 엄청난 세력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깨달았기 때문에 하나가 되어 대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큰 위기감을 느낀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북부동맹군을 만나 가나안을 정복하는데 큰 장애가 되는 동시에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북부동맹이 결성된 것도 역시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남부동맹군들처럼 북부동맹도 한 곳에 모이게 하여 단번에 정복 전쟁을 끝내시려는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겉으로 보기에는 가나안 북부 동맹은 대단한 위세로 보였지만 실상은 그들의 멸망의 전조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전쟁의 승패는 사람의 숫자나 무기의 성능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1: 하솔 왕 야빈이 이 소식을 듣고 마돈 왕 요밥과 시므론 왕과 악삽 왕과
‘하솔’은 ‘울타리로 둘러막은 경내’ 혹은 ‘요새’란 뜻입니다. 당시 가나안 북부에서 가장 강력한 성읍으로 이스라엘을 대적하기 위해 가나안 족속들 가운데서 형성된 동맹국들의 우두머리였습니다. 이곳은 갈리리 바다 북쪽 16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집트에서 북쪽과 동쪽으로 이르는 고대의 교역로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입니다. 하솔은 야빈이 여호수아와의 메롬 전투에서 패배함으로서 폐허가 되었으나(11,13절), 사사 시대에 다시 복구되었으며(삿 4:2; 삼상 12:9) 솔로몬이 축성하여 요새화하였습니다(왕상 9:15). 그러나 이스라엘 베가의 통치 시대에 앗수르의 디글랏벨레셀에 의하여 함락되어 그곳의 거민들은 모두 앗수르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야빈’은 ‘지혜로운 자’, ‘지적인 자’, 곧 ‘지략가’를 뜻하는 이름으로, 애굽의 바로(Pharaoh)와 같이 하솔을 통치하는 왕을 일컫는 공식 명칭입니다(삿 4:2, 23, 24). 그는 가나안 중부와 남부에서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을 비롯한 아모리 다섯 왕이 제1차 동맹을 맺어 이스라엘의 진지 기브온을 치려하였으나 길갈에서 패퇴하였다는 소식을 듣고(수 10:3-111), 북부 왕들과 규합하여 제2차 가나안 동맹을 맺고 이스라엘에 대항하고자 했습니다. 이처럼 사단도 마지막 때에는 자기의 모든 세력을 규합하여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항할 것입니다(계 20:7, 8). ‘마돈’은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나 여호수아 12:19에만 유일하게 나타나는데, 대개는 갈릴리 서쪽 산지, 즉 디베랴 서북쪽에 위치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시므론’은 ‘시므론 므론’으로도 불리는 성읍으로(수 12:20), 땅 분배시에 스불론 지파에게 할당이 되었습니다(수 19:115). 이 성읍은 디베랴 호수 남쪽 19km 지점에 위치합니다. ‘악삽’은 악고의 남동쪽 약 9.7km 지점에 위치한 곳으로 추정합니다. 이곳은 후에 아셀 지파에게 분배된 이스라엘의 북부 경계 도시입니다(수 19:25).
2: 및 북방 산지와 긴네롯 남편 아라바와 평지와 서방 돌의 높은 곳에 있는 왕들과
북방 산지는 납달리 지파의 변두리를 형성하는 갈릴리 산지를 가리킵니다(수 19:32; 20:7). ‘긴네롯 남편 아라바’에서 ‘아라바’는 게네사렛 호수 남쪽에 있는 골(Ghor) 계곡(요단 계곡)을 가리키며, ‘긴네롯’은 게네사렛 호수(민 34:11; 수 12:3), 혹은 호수 서북 연안에 있는 도성을 가리킵니다. 이곳은 갈릴리 바다에서 사해에 이르는 지역으로 요단 계곡을 포함하는데,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지역 중의 하나입니다. ‘평지’ 지중해 연안을 따라 악고에서 시돈을 잇는 ‘세펠라’(Shephelah), 즉 저지대 지역으로 좁고 긴 평원을 이룹니다. ‘돌’ 가이사랴 북쪽 14km 지점 갈멜 산 융기 부분 아래, 곧 지중해 연안에 위치하는 곳으로 작은 촌락으로 추정합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상당한 무역 항구였는데, 이는 적자색 염료의 원료가 되는 자주빛 섭조개가 많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이 성읍의 건설도 이곳에 정착한 베니기아 상인이 했다고 합니다. 이곳은 후에 므낫세 지파에게 분배 되었습니다(수 17:11).
3: 동서편 가나안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산지의 여부스 사람과 미스바 땅 헤 르몬 산 아래 히위 사람들에게 사람을 보내매
‘미스바’는 ‘망루’, ‘높은 장소’란 뜻으로, 성경에는 여기 외에도 다른 ‘미스바’가 여러 군데 다른 지명으로 나타납니다. 유다에 두 번, 길르앗에 두 번 나타나는데, 이것은 미스바(מצפה)란 이름이 아름다운 경치와 관련되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수 15:38;18:26; 삿11:29; 삼상 22:3). ‘산지의 여부스 사람’ 여부스는 예루살렘 근처에 있었던 성입니다. 아직은 예루살렘이 정복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예루살렘 주변의 도시들이 동맹을 맺어 이스라엘에 대행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헤르몬 산’ 아람의 가장 높은 산으로 ‘봉헌된 장소’라는 뜻이며, 일명 ‘시룐’, ‘스닐’, ‘시온’ 산으로도 불렸습니다(신 3:9; 4:48: 아 4:8). 이곳은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하였을 때 북방 경계선이었으며 당시에는 히위 족속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4: 그들이 그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나왔으니 민중이 많아 해변의 수다한 모래 같고 말과 병거도 심히 많았으며
‘해변의 수다한 모래 같고’ 이는 히브리 문헌에서 자주 나타나는 ‘많은 수’에 대한 시적인 표현으로(창 22:17;32:13;삿 7:12;삼상 13:5;왕상 4:20), 수효가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을 비유합니다. ‘말과 병거도 심히 많았으며’ 당시에 기병대와 병거는 사람들에게 매우 위협적인 것이었습니다.(출 14:18;수 17:16k 18;삿 1:19). 여기에서 병거는 나무 바퀴 수레였는데, 바퀴에 칼이 달리지 않았습니다. 바퀴에 칼이 달린 철 병거는 고레스 시대에 처음으로 소개되었습니다(삿 1:19). 요세푸스는 이 북방 연합군이 30만 명의 보병과, 만 명의 기병, 그리고 2만의 병거를 가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5: 이 왕들이 모여 나아와서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메롬 물가에 함께 진쳤더라.
‘메롬 물가’ 메롬은 ‘높은 곳의 물’이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이 호수는 이 지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내륙 호수이며, 반은 습지, 반은 호수로 요단 강의 근원지입니다. 이곳은 갈릴리 바다 서북쪽 15km 지점, 갈릴리 고산 지대와 헬몬 산 사이에 위치한 길이 약 25km, 너비 약 6km 되는 함몰지입니다. 그 폭은 우기와 건기가 바뀌는 계절에 따라 약간 차이가 있으나 평지 지역으로 실제로 전차를 동원한 전투에 용이한 지형입니다. 가나안 북부의 연합군은 이스라엘과 싸우기 위해 이곳에 진을 쳤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호수아의 기습 작전에 말려 대항해 보지도 못하고 대패하여 하솔은 철저히 파괴된 후 불살라졌습니다(7-11절). 여기에서도 보아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어떠한 대적이라도 능히 무찌를 수 있는 것입니다(요일 5:4).
6-15절: 북부 가나안 정복 내용으로, 하솔 왕 야빈을 중심으로 한 가나안 북부 지역의 동맹은 실로 대한한 위세를 가졌지만 그들 역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이스라엘의 적수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북부 동맹군은 하나님의 공격 명령을 받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군사의 갑작스런 기습을 받아 결국 대패하고 말았습니다. 하솔 성은 이스라엘에 의하여 완전히 황폐화되었고 야빈을 비롯하여 동맹에 참가했던 북부 지역 모든 왕들이 처형을 당하였습니다. 하솔을 제외한 다른 성읍의 재물과 가축은 모두 이스라엘 백성들이 취하였습니다. 이처럼 가나안 족속들은 외관상 강대해 보였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이스라엘의 상대가 되지는 못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통치자이심을 다시 한 번 입증해 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권념하시는 성도들은 어느 누구도 넘어뜨릴 수 없음을 일깨워 줍니다.
6: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일 이맘때에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 붙여 몰살시키리니 너는 그들의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불로 그 병거를 사르라
‘두려워 말라’ 이 말씀은 여호수아서 전체의 큰 배경입니다. 시작부터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에게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고 하셨습니다(수 1:9). 이는 가나안 정복의 모든 계획과 이를 실행하시는 분은 바로 여호수아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힘주시며, 이스라엘을 위해 친히 싸우시는 하나님이심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군대가 수많은 가나안 연합군의 군대와 기병과 병거로 인하여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두려워 말라’는 말씀으로 인해 용기를 얻고 승리를 확신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내가~ 몰살시키리니’ 오직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대적들을 진멸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전쟁에 대한 승리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가르쳐줍니다. 전쟁의 수행자는 이스라엘 군대지만 승리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붙여’ 이는 ‘주다’는 뜻을 가진 말의 현재분사형으로 하나님의 약속의 생생함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들의 운명을 이스라엘의 손에 내어주셨다는 의미로서 모든 생명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심을 알려줍니다. ‘힘줄’은 아킬레스건(Achilles's tendon)을 말하는 것으로 이를 끊는다는 것은 달리는 것이 속성이 말은 달릴 수 없게 되어 무용지물이 된다는 뜻입니다. 병거를 불사르라는 것은 당시 병거가 나무로 된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지시하셨을까요? 그것은 이스라엘의 승리가 결코 말과 병거의 많음, 곧 군대의 강성함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이스라엘로 하여금 명심하게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즉 노획한 말과 병거들을 의지하여 이스라엘이 전쟁에 임한다면 이스라엘은 더 이상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군대를 의지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 17:16에서도 병거를 갖추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방인들과 대적들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할지라도 하나님의 백성 된 이스라엘은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며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함을 가르쳐줍니다.
7: 이에 여호수아가 모든 군사와 함께 메롬 물가로 가서 졸지에 습격할 때에
‘졸지에’ 이는 ‘피테옴(פתאם)’이라는 단어인데, ‘눈을 깜박이다’(to wink)는 뜻을 지닌 동사 ‘페타(פתע)’에서 유래한 말로, 상대가 예측하지 못하는 사이에 갑자기 이스라엘의 공격이 이루어졌음을 말합니다. ‘습격할 때에’ 이는 공격의 신속성을 말해 줍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이 진을 치고 있는 길갈에서 메롬까지는 하루 만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닙니다. 때문에 가나안 연합군들은 여호수아의 군대가 아직 하루 이상 거리인 길갈에 있다고 방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갈릴리 지방의 어느 산길을 따라 그 거리를 하루 만에 주파하여 갑자기 들이닥쳐 습격한 것입니다.
8: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신 고로 그들을 격파하고 큰 시돈과 미스르봇 마임까지 쫓고 동편에서는 미스바 골짜기까지 쫓아가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쳐 죽이고
‘큰 시돈’ 시돈은 지금의 베이루트 남방 약 48km, 두로 북방 약 30km에 위치한 고대 도시로, 두로와 더불어 해상 상업 도시 중의 하나였습니다. ‘큰 시돈’으로 기록된 것은 당시 시돈이 인구가 많은 페니키아의 수도였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시돈은 고대에는 두로를 능가할 만큼 큰 도시였으나, 다윗 시대 이후로는 쇠퇴하여 현재는 약 5천의 인구밖에 없다고 합니다. 이렇게 여호수아서가 다윗 시대 이후에는 쇠퇴한 시돈을 ‘큰 시돈’으로 부르고 있는 것은 여호수아서의 저작 연대가 다윗 시대 이전인 고대임을 밝혀줍니다. ‘미스르봇 마임’은 ‘불타는 물’이라는 뜻으로 온수를 뜻합니다. 이러한 이름으로 인하여 학자들은 이곳을 ‘온천 지대’라고도 하며, ‘염전 지대’ 혹은 ‘유리 생산지’로 보기도 합니다. 이곳은 두로와 악고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곳으로 추정되는데, 이곳에는 온수가 나오는 샘물군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미스바’는 망대라는 뜻을 가진 지명이지만 정확한 위치는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단어의 의미로 보아 갈릴리 북부 경계 지역에 위치한 도성 중의 하나라고 여겨집니다.
9: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여 그들의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불로 그 병거를 살랐더라.
본 절은 6절에 지시된 하나님의 명령을 성실히 수행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일은 훗날 다윗에 의해서도 행해졌는데(삼하 8:4;대상 18:4), 전쟁에서의 승리는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달려있다는 강한 신앙의 발로입니다.
10: 하솔은 본래 그 모든 나라의 머리였더니 그때에 여호수아가 돌아와서 하솔을 취하고 그 왕을 칼날로 쳐 죽이고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 전쟁을 시작할 때 가나안 중부의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이 여러 왕들과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했듯이(수 10:1-11). 북부에서는 하솔이 강한 군사력과 전략적 요충지라는 지정학적 조건을 내세워 여러 왕들과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인간의 강함과 계략을 믿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의 최후를 우리는 11절에서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11: 그 가운데 모든 사람을 칼날로 쳐서 진멸하여 호흡이 있는 자는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고 또 불로 하솔을 살랐으며
‘진멸하여(하하렘: ההרם)’은 21절의 ‘멸절하고’에 해당하는 동사 ‘카라트: כרת’와 상응합니다. 이 단어의 의미는 회생 불가능한 상태로의 철저한 파괴를 의미합니다(신 3:6). 하나님께서 이렇게 철저히 가나안 족속을 멸하도록 명령하신 것은 첫째로는 이들의 관영한 죄악에 대한 심판이며, 둘째로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이스라엘이 이들의 풍습과 죄악에 물들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위치를 잊어버리고 살지 않도록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로 하솔을 살랐으며’ 고고학 발굴에 의하면 하솔은 B. C. 13세기 중엽 경에 파괴되고 불탄 흔적이 있다고 합니다. 하솔은 이스라엘 대적의 우두머리로 하나님과 그 백성 이스라엘을 대적했지만, 한 줌의 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이 사단도 그를 좇는 악한 세력의 우두머리로 군림하며 성도를 박해하지만 종국에는 흔적도 없이 멸망되고 말 것입니다(살후 2:8).
12: 여호수아가 그 왕들의 모든 성읍과 그 모든 왕을 취하여 칼날로 쳐서 진멸하여 여호와의 종 모세의 명한 것과 같이 하였으되
민 33:52; 신 7:1; 20:16에 기록된 내용을 가리키는 것으로, 모세는 여기서 가나안 족속 중 호흡이 있는 자는 모두 진멸할 것을 명령했습니다(11절). 이는 하나님의 백성과 그 나라가 죄악으로 관영한 이방 족속들과 공존할 수 없으며, 다만 죄악된 것들의 철저한 단절 위에 서야 함을 교훈합니다.
13: 여호수아가 하솔만 불살랐고 산 위에 건축된 성읍들은 이스라엘이 불사르지 아니하였으며
가나안 북부 지역 성읍들은 전쟁 시에 쳐들어오는 적을 방어하기에 용이하도록 대부분 산 위에 건축되었습니다(렘 30:18; 마 5:14). ‘건축된’ 이 말은 계속 서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 성읍들이 여호수아의 공격을 견디어 냈다는 의미가 아니라, 여호수아가 이 성읍을 불사르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여호수아가 이 성읍들을 남겨둔 것은 아마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거주지로 삼으려는 실용적 목적 때문으로 봅니다.
14: 이 성읍들의 모든 재물과 가축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탈취하고 모든 사람을 칼날로 쳐서 진멸하여 호흡이 있는 자는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첫 성인 여리고를 칠 때에는 사람뿐만 아니라 가축들까지도 멸해야 했으나(수 6:21), 여기서는 오직 사람만 멸해야 할 대상으로 명시되었습니다.
15: 여호와께서 그 종 모세에게 명하신 것을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명하였고 여호수아는 그대로 행하여 여호와께서 무릇 모세에게 명하신 것을 하나도 행치 아니한 것이 없었더라.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출 34:11-16; 민 33:51-56; 신 20:16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모세에게 전해 받은 것을 모두 행했다는 것은, 그가 비록 인간 모세에게서 지도권을 인수받고 명령을 전해 받았지만 그는 이 모든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16-23: 정복 전쟁의 종결입니다. 이스라엘은 메롬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그들이 그토록 열망했던 약속의 땅 가나안을 대부분 정복하는 쾌거를 이룩하였습니다. 본문은 그와 같이 이스라엘이 정복한 가나안 지역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입니다. 이스라엘은 남쪽으로는 세일 근처 할락산에서부터 북쪽으로는 레바논 골짜기의 바알갓까지 정복하였습니다. 물론 이스라엘과 화친을 맺은 기브온은 그 정복 대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 그리고 과거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토록 두려워했던 아낙 자손들도 가나안 땅의 변두리 지역의 소수를 제외하고는 이제 모두 진멸이 되었습니다. 이로써 이스라엘은 기나긴 가나안 정복 정착 전쟁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물론 가나안 전 지역의 모든 족속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멸절시켰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스라엘에 강력히 대항할 만한 세력은 모두 제거되엇음을 뜻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남은 자들을 진멸하지 않은 것은 힘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에서 비롯되었습니다(출 23:29,30). 하나님께서는 일시에 가나안 족속을 다 멸절시킬 경우 전국토가 황폐화되어 백성들에게 여러 가지 어려움을 끼치게 될 것을 방지하고자 소수의 잔존 세력들은 점차적으로 멸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가나안 정복 정착 전쟁은 철저하게 하나님에 의하여 계획되고 하나님에 의해 수행되었으며 또한 하나님에 의해 종결된 성전(聖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정복한 땅을 각 지파별로 나누어 주는 일입니다.
16: 여호수아가 이같이 그 온 땅 곧 산지와 온 남방과 고센 온 땅과 평지와 아라바와 이스라엘의 산지와 그 평지를 취하였으니
16, 17절은 지금가지 정복한 가나안 지역이 간단하게 요약되었습니다. 앞에서 정복한 지역에 예루살렘 북부 지역이 더 추가되었습니다. 이로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이 완전히 정복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직접 가나안 정복 정착 전쟁에 참여하심으로 그의 언약을 성취하셨을 뿐만 아니라 한 번 약속하신 바를 영원히 변개치 않으시는 분임을 입증하셨습니다(민 23:19; 사 57:15). ‘그 온 땅’ 가나안의 모든 땅을 뜻합니다. 이는 마침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땅에 대한 약속의 성취라 할 수 있습니다(창 12:7). 그러므로 수 12장부터는 이스라엘의 경계와 각 지파에게 땅을 배분하는 기사가 뒤따릅니다. ‘산지와 온 남방과 고센 온 땅과 평지’ 산지는 남부 지방의 유다 산지를 말하며 남방(네게브: נגב)은 ‘바짝 바른’의 뜻으로 건조한 남쪽 지역을 말합니다. 그리고 고센은 애굽 북부의 삼각주 지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동부 네게브 지역을 말합니다. 즉 가나안 남부 지역 전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아라바와 이스라엘의 산지와 그 평지’ 아라바는 갈릴리 호수에서부터 사해에 이르는 요단 동편의 저지대 지역을 말하며, 이스라엘 산지는 남쪽 유다 산지와 중부의 요셉 산지에 상응하는 북부 산지입니다. 그리고 ‘평지’는 아마도 이스르엘 평원을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즉 북부 지역을 포괄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17: 곧 세일로 올라가는 할락산에서부터 헤르몬산 아래 레바논 골자기의 바알갓까지라 그 모든 왕을 잡아 쳐죽었으며
‘세일’은 ‘털이 많은’이란 뜻입니다. 에서의 본거지였던(창 32:3) 사해 남쪽의 에돔 산악 지대(신 2:12)를 말합니다. 할락산은 ‘민둥산’이라는 뜻으로 사해 남방 약 12km 지점, 아라바 지역이 끝나는 곳입니다. 남방 경계를 이룹니다(수 12:7). ‘레바논 골짜기’ 레바논과 안티리바누스 사이에 있는 현재의 ‘베카’로, ‘예벨 셰이크’ 남쪽 기슭에 있는 골짜기입니다. 이곳은 신약 시대의 ‘가이사랴 빌립보’와 동일한 지역입니다. ‘바알갓’은 레바논 평원에 위치한 성읍으로 가나안 땅의 북쪽 경계선에 해당하는데, 이 지명은 ‘행운의 신’이라는 뜻으로 ‘바알’ 숭배에서 유래된 명칭으로 보입니다.(사 61:15). 삿 3:3에는 ‘바알 헤르몬’이라 표기 되었는데, 제롬에 의하면 바알 신전이 헤르몬 산 위에 있었다고 합니다.
18: 여호수아가 그 모든 왕과 싸운 지는 여러 날이라
약 5년 정도로 추산합니다. 왜냐하면 가데스 바네아에서 갈렙이 정탐꾼으로 파견될 당시의 나이가 40세였고(수 14:7), 광야 생활 40년 중 출애굽한 해와 시내 산 체류 1년을 제하면 가데스 바네아에서 요단을 건너기까지 약 38년 걸렸으며, 정복을 마친 때 갈렙의 나이가 85세였기 때문에(수 14:10), 가나안 정복 정착 전쟁의 기간을 약 5년으로 추산할 수 있습니다. 이 중 1년은 가나안 중부와 남주 정복에, 그리고 4년 여는 가나안 북부 정복에 소요된 것으로 봅니다.
19: 기브온 거민 히위 사람 외에는 이스라엘 자손과 화친한 성읍이 하나도 없고 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쳐서 취한바 되었으니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진군해 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은 기브온 거민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돌보시고 싸워주시는 이스라엘을 대적해서는 살 길이 없음을 깨닫고 교묘한 꾀로 이스라엘과 화친을 맺었습니다(수 9:3-15). 이는 이스라엘로서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가나안 사람들과 언약을 맺지 말라.’는 명령을 어긴 것입니다(출 34:15-17). 그러나 먼저 하나님의 사자인 여호수아를 찾아 온 이 기브온 인들의 열심은 죽음에서 그들을 구해냈으며 성전의 장작을 패며, 물 긷는 자로 봉사하게 되었습니다(수 9:27). 하지만 이들 외에 그 어떤 족속들도 멸망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멸시하며 조롱하며 하나님을 대적했기 때문입니다.
20: 그들의 마음이 강퍅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러 온 것은 여호와께서 그리하게 하신 것이라 그들로 저주 받은 자 되게 하여 은혜를 입지 못하게 하시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진멸하려 하심이었더라.
‘마음이 강퍅하여’ ‘강퍅(하자크: חזק)’은 ‘완고하다, 뻔뻔스럽다’는 뜻입니다. 이는 가나안 족속들의 교만과 하나님께 대한 완고한 저항을 표시하는 말로서 가나안 족속들이 멸망하게 된 주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강퍅한’ 상태로 버려두사 심판을 당케 하셨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리하게 하신 것이라’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여 애굽을 멸망으로 이끄셨던 하나님께서는(출 4:21), 가나안 족속들의 마음도 강퍅케 하여 이스라엘로 하여금 진멸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저들이 돌이키지 않는 죄악과 완고함을 단호히 심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심판의 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죄악이 관영할 때 하나님께서는 공의로 심판하시며, 택하신 자들을 통해 다시금 구원의 역사를 진행해 가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에 대한 예를 노아 시대의 홍수 사건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의 손에 이루어진 듯이 보이나 실상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 아래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악을 조성하셨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의에 적합한 형벌을 받을 행동을 하도록 내버려 두셨다는 의미입니다.
21: 그 때에 여호수아가 가서 산지와 헤브론과 드빌과 아납과 유다 온 산지와 이스라엘의 온 산지에서 아낙 사람을 멸절하고 그가 또 그 성읍들을 진멸하였으므로
그 때는 가나안 정복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을 말합니다. ‘아납’ 이 성읍은 헤브론에서 남서쪽 약 16km 지점인 유다 산지에 위치합니다. 여호수아는 이곳에 거주했던 아낙 자손을 몰아냈는데, 후에 이곳은 유다 지파에게 분배되었습니다(수 15:50). ‘아낙 사람을 멸절하고’ ‘아낙 사람’은 문자적으로 ‘목이 긴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이들은 장대한 체구를 가진 자들이었으며(민 13:28,32; 수 15:13, 14), 아모리 산지에 살던 족속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아낙 자손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은, 모세에 의해 파견된 열 두 정탐꾼 중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열 명의 정탐꾼들은 가나안 인들로 인하여 하나님을 의심하고 심히 두려워했을 뿐만 아니라(신 1:28), 실제적으로 가나안 정복을 40여년 늦추는 결과를 초래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여호수아는 여기에서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크게 두렵게 만들었던 그들을 이제 진멸한 사실을 언급함으로써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22: 이스라엘 자손의 땅 안에는 아낙 사람이 하나도 남음이 없고 가사와 가드와 아스돌에만 약간 남았었더라.
‘가사’는 블레셋 의 다섯 주요 성읍(가사, 아스돗, 아스글론, 에글론, 가드) 중에 하나로 애굽으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습니다(창 10:19; 수 10:41; 13:3; 15:47). 이곳은 삼손이 활약한 곳으로도 유명하며(삿 16:1-3), 신약 시대에는 사도들의 전도 활동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행 8:26). ‘가드’는 블레셋 장군 골리앗의 고향으로(삼상 17:4), 가사 동북쪽 약 39km 지점에 위치합니다. 이곳은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피한 곳이기도 합니다(삼상 21:10; 27:2). 나중에 르호보암은 이곳을 요새화했습니다(대하 11:8). ‘아스돗’은 풍요의 신이 ‘다곤’(Dagon) 숭배의 중심지였던 곳으로(삼상 5:1-7),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한 후, 언약궤가 옮겨진 장소입니다. 유다 지파에게 할당되었으나 정복하지 못하였고(수 15:47), 웃시야 때에 가서야 비로소 정복되었습니다. 신약 시대에는 ‘아소도’로 불렸으며(행 8:40), 지금은 ‘에스돗’으로 불립니다. ‘약간 남았었더라.’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은 주로 팔레스틴 중부의 산지와 내륙의 저지대를 중심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따라서 지중해 연안과 같은 곳은 여호수아의 손이 미치기가 어려웠습니다. 본 절은 이러한 이유로 ‘가사, 가드, 아스돗’이 정복되지 않았음을 가르쳐줍니다. 여호수아는 이러한 곳에 대해서는 땅만 분배하고 각 지파 별로 정복하도록 맡겨두었습니다(수 13:1-7).
23: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말씀대로 그 온 땅을 취하여 이스라엘 지파의 구별을 따라 기업으로 주었더라.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실제로는 가나안 전 지역이 정복된 것은 아닙니다. 블레셋은 계속해서 다섯 성읍들을 중심으로 유다 지파를 비롯한 이스라엘을 위협하였는데,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가서야 완전히 정복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땅을 취하여’라고 표현한 것은 가나안 전 지역이 골고루 정복되었으며, 정복되지 않은 성읍들도 더 이상 이스라엘에 대한 커다란 위협을 줄 수 없었기 때문이며, 또한 이들 성읍들은 각 지파의 점령 대상지로 남겨 놓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파의 구별을 따라 기업으로 주었더라.’ ‘구별을 따라’라는 말은 ‘제비에 의해 구별하여’라는 말입니다. 이는 이스라엘 기업 분배(수 13~19장)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공정한 방법(민 26:52-36)대로 실행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땅의 소유와 분배가 사람으로 말미암지 않고 하나님께로 말미암음을 인정한 것입니다.
이상과 같이 가나안 정복 정착 전쟁은 여러 가지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큽니다.
1. 하나님은 약속을 결단코 변개치 않으시고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민 23:19). 따라서 성도들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해도 하나님의 약속을 기대하며 인내할 수 있습니다.
2. 성도가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에게서 인간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렇게 하지 못하는 까닭은 우리가 육신을 입고 있기 때문이며 또한 자아가 강하게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의 감화에 힘입어 날마다 자아를 제어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갈 2:20).
3. 사악한 자들이 멸망당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강퍅케 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하게 하신 까닭입니다(시 81:11).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구원을 받게 된 것은 가장 큰 복이며(엡 2:8) 이적 중의 이적입니다.
4. 성도들이 누리게 될 진정한 안식은 세상과의 타협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악한 세력과 싸워 승리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딤후 4:7, 8). 우리가 죽기를 각오하면서까지 악에게 무릎을 꿇지 않아야 할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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