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서 제15장 강해: 유다의 기업 및 갈렙의 기업 쟁취
본장은 가나안 본토에서 처음으로 땅을 분배받은 유다 지파의 영토 경계 내용과, 갈렙이 기럇 아르바를 기업으로 받고 아낙 자손을 쫓아내고 쟁취한 내용입니다. 1-12절은 유다 지파 기업의 경계 지역을 소개하고 있고, 13-19절은 삽입 기사로서, 갈렙이 자신에게 보상으로 주어진(수 14:13-15) 헤브론을 쟁취하고, 또 웃니엘이 드빌을 쟁취한 사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갈렙과 옷니엘이 자기 땅을 쟁취한 것은 여호수아 사후에 일어났던 일인데(삿 1:11-15), 본서의 저자가 여기에서 이 사실을 언급하고 있는 이유는 유다 지파의 기업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중, 갈렙에게 주어진 땅 헤브론이 유다 지파의 경계 내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20-62절은 유다 지파의 영토 내에 있는 120여개의 성읍들을 일일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63절에는 과거 이상의 땅을 분배 받은 유다 지파가 본서가 기록이 최종 완성될 때까지도 여부스 족속을 축출하지 못함으로 그들이 여전히 예루살렘에 거주하게 된 사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는 유다 지파가 기업을 얻기는 하였으나 아직 완전한 정복을 이루지는 못하였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장자 지파가 르우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다 지파가 먼저 기업을 분배받은 것은 야곱의 예언대로(창 49:8-12) 유다 지파가 장자권을 계승하였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에 있어서는 연령이나 자식이나 또는 공적이나 지위 등 육적 상태에서 앞선 자 보다는 영적으로 앞선 자가 인정받게 되는 것임을 알게 합니다.(히 12:23)
1-12절: 유다 지파의 경계는 남쪽으로는 사해 남단에서 시작하여 가데스 바네아를 거쳐 애굽 시내를 연결하는 지역이며(1-4절), 동쪽으로는 사해입니다(5절). 북쪽으로는 요단 하구에서 시작하여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를 거쳐 지중해변에 있는 얍느엘을 연결하는 지역이며(5-11절), 서쪽으로는 대해, 곧 지중해입니다. 유다는 가장 먼저 제비를 뽑았을 뿐만 아니라 요단 서편에서는 다른 지파에 비해 가장 넓고 훨씬 비옥한 땅을 기업으로 분배받는 복을 받았습니다. 이는 유다가 야곱의 실질적인 장자권을 상속 받았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야곱 시대에 르우벤이 행한 범죄(창 35:22)와 레위, 시므온의 사악한 행동(창 34장)의 결과로 야곱의 제4남인 유다에게 장자권이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창 49:8-12). 따라서 유다 지파가 비옥한 토지를 차지하게 된 것은 그 같은 복의 성취로 볼 수 있습니다.
1: 유다 자손의 지파가 그 가족대로 제비뽑은 땅의 극남단은 에돔 지경에 이르고 또 남으로 신 광야까지라.
유다 지파는 블레셋 땅, 즉 요단 강 서편 가나안 지역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땅을 분배받았습니다. 이것은 유다 지파가 인구가 많고 강성했다는 데도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특별히 유다 지파가 아직 정복되지 않은 지중해 연안의 블레셋 지역을 포함하는 땅을 분배 받았다는 점은 다음과 같은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창 49:8-12에서 유다는 원수를 쳐서 굴복시키는 강한 용사의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야곱이 유다에게 행한 이 축복의 결실을 유다의 자손들은 가나안의 끊임없는 위협적 존재인 블레셋을 정복함으로써 이루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극남단은 에돔 지경에’ 에돔은 에서의 후손들입니다(창 25:30). 그러므로 이들은 암몬과 더불어(창 19:38) 이스라엘의 형제 국가였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정벌의 대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신 2:4-23). 실제로 가나안의 최남단 지역을 분배받아 거주한 지파는 시므온입니다. 그러나 시므온은 일찍이 유다 지파에 흡수되었으므로 유다가 에돔과 국경을 접하고 있었던 것으로 표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남으로 신 광야까지라.’ 여기서 말하는 ‘신(Zin) 광야’는 시내 산이 위치한 시내 반도의 ‘신(Sin) 광야’와는 다른 곳입니다. 이 “신(Zin)광야”는 에돔 지역에 위치합니다. 이곳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입성하기 전에 통과한 곳으로, 미리암이 이곳에서 죽었으며(민 20;1), 모세가 바위를 쳐서 물을 솟아나게 한 곳이기도 합니다(민 27:14).
2: 그 남편 경계는 염해의 극단 곧 남향한 해만에서부터
신(Zin) 광야로부터 사해의 남단에 이르는 유다 지파의 남쪽 경계는 이스라엘의 남쪽 경계가 되기도 합니다. ‘남향한 해만에서부터’ 오늘날 소위 염산(鹽山)과 소금 습지대인 사해의 남쪽 끝을 말합니다.
3,4: 아그랍빔 비탈 남편으로 지나 신에 이르고 가데스 바네아 남편으로 올라가서 헤스론을 지나며 앗달로 올라가서 돌이켜 갈가에 이르고, 거기서 아스몬에 이르고 애굽 시내에 미치며 바다에 이르러 경계의 끝이 되나니 이것이 너희 남편 경계가 되리라.
아그랍빔 비탈은 ‘전갈들의 비탈’이란 뜻으로 사해 남쪽에서 유다 남단으로 올라가는 도중 약 15km 지점에 위치한 아라바를 교차하는 높고 흰 바위 비탈이라고 합니다. ‘가데스 바네아’(신 1:2; 수 14:7 참고) ‘헤스론’은 둘러싸인 마당이란 뜻으로 가데스 바네아 서쪽에 위치한 작은 성읍입니다. ‘앗달, 갈가, 아스몬’등은 모두 사해 남쪽과 가데스 바네아 근처에 위치한 것으로 추정만 하고 있습니다. ‘애굽시내’는 ‘시홀 시내’와 같은 곳입니다.(수 13:3 참고) ‘바다’ 여기서 바다는 지중해입니다. 유다 지파의 남쪽 경계는 사해의 남단 소금 지대에서 서쪽으로는 가데스 바네아까지면 결국에는 지중해까지 이릅니다.
5: 그 동편 경계는 염해니 요단 끝까지요 그 북편 경계는 요단 끝에 당한 해만에서부터
동편 경계는 요단 강이 사해에 이르는 끝부분에서 사해의 서편 해안을 따라 남쪽 경계인 소금 지대에 이릅니다. 북편 경계는 사해 어귀에서부터 지중해에서 멀지 않은 ‘얍느엘’이라는 곳까지입니다. 이는 베냐민 지파와 단 지파의 남쪽 경계와 접하고 있습니다.
6: 벧호글라로 올라가서 벧 아라바 북편을 지나 르우벤 자손 보한의 돌에 이르고
‘벧호글라’는 오늘날의 ‘아인 하유라’로 추정되는 곳으로, 여리고에서 1시간 15분 정도 거리라고 합니다.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경계선상에 있던 성읍이며 후에 베냐민 지파에 분배가 되었습니다(수 18:15-19). ‘벧 아라바’는 ‘아라바의 집’ ‘광야의 집’이라는 뜻으로 역시 유다와 베냐민 지파의 경계에 위치했는데, 나중에 베냐민 지파에 분배되었습니다(수 18:22). ‘보한의 돌’은 유다와 베냐민 지파의 경계를 표시한 돌입니다.(수 18:17) 르우벤의 아들 ‘보한’의 이름을 따서 ‘보한의 돌’이라고 했습니다(수 18:17). 이로 볼 때 가나안 정복 초기에 르우벤 지파의 일부가 이곳에 거처를 정하고 경계를 삼았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7: 또 아골 골짜기에서부터 드빌을 지나 북으로 올라가서 강 남편에 있는 아둠밈 비탈 맞은편 길갈을 향하고 나아가 엔 세메스 물을 지나 엔로겔에 이르며
아골 골짜기는 여리고 성 근처에 있는 곳으로 ‘아간’과 관계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공략할 때 전리품들을 하나도 취하지 말라는 여호와의 명을 어긴 아간이 어기므로(수 7:21,22) 이스라엘의 아이 성 공격은 실패했고, 이를 알게 된 여호수아는 아간의 소유물을 몰수하고 아간과 그 가족들을 이 골짜기에서 죽였습니다.(수 7:24-26) 이와 관련하여 ‘아골’이라는 말은 ‘참혹한 일을 당하다’는 뜻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골 골짜기는 종말론적 의미로도 사용되는데, 이스라엘이 다시 회복되는 메시아의 날에 이 황폐한 골자기는 소 떼의 목초지가 될 만큼 비옥한 초원이 될 것으로 예언이 되었습니다(사 65:110; 호 21:15). ‘드빌’은 헤브론 근처에 있는 성읍으로 ‘기럇 세벨’(15절), ‘기럇 산나’로도 불렸습니다. 이 지역은 아낙 자손들의 거주지였으나 여호수아에 의해 점령되었으며(수 10:38, 39), 후에 옷니엘에 의해 재정복되었습니다(삿 1:11-13). ‘아둠밈 비탈’ 아둠밈은 붉은 바위라는 뜻인데, 이는 유다와 베냐민 지파의 경계인 예루살렘과 여리고 사이의 흙이 붉은 언덕길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길갈’은 이스라엘이 요단을 건넌 후 진쳤던 것입니다. ‘엔 세메스 물’은 태양의 샘, 근원이라는 뜻으로 오늘날 사도들의 샘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곳은 예루살렘 동쪽으로 약 5km 지점에 있습니다. ‘엔로겔’은 기드론 골자기와 힌놈 골짜기의 인접 지역 아래에 있으며, 실로암 연못의 남부에 있는 ‘욥의 우물’ 또는 ‘느헤미야의 우물’로 불립니다. 이곳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운데, 요나단과 아히마아스가 다윗의 소식을 들으려고 머물렀던 곳이며(삼하 17:17), 또한 아도니야가 왕위를 얻기 위해 큰 잔치를 베풀었던 곳입니다(왕상 1:9).
8: 또 흰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올라가서 여부스 곧 예루살렘 남편 어깨에 이르며 또 흰놈의 골짜기 앞 서편에 있는 산꼭대기로 올라가나니 이곳은 르바임 골자기 북편 끝이며
흰놈의 아들의 골짜기는 예루살렘에서 서남쪽으로 길게 뻗은 골짜기입니다. 여기에 솔로몬은 몰록을 위한 산당을 지었으며(왕상 11:7), 아하스 때에는 이곳에서 몰록과 바알을 위하여 자녀를 불에 태워 재물로 바치기도 했습니다(왕하 16;3; 대하 28:3). 그래서 예레미야는 이곳을 ‘살육의 골짜기’라고 불렀고(렘 7:31,32), 이후로 이곳은 더러운 곳의 전형이 되어(렘 19:13) 짐승과 죄인들의 시체를 이곳에서 태웠습니다. 그런 이유로 신약에서 이곳은 지옥의 상징으로 불렸습니다(마 5:22). 즉 신약 성경에 나타나는 ‘지옥’은 헬라어로 ‘게헨나(γεενα)로서 ’게‘는 골짜기며, ’헨나‘는 ’힌놈(חנם)‘을 헬라식으로 부른 말입니다. ’여부스‘는 예루살렘의 다른 이름입니다. 여부스 족이 이곳에서 살았는데 다윗 때에야 정복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예루살렘에는 여부스 성터가 남아 있습니다. ’르바임 골짜기‘는 거인들의 골짜기라는 뜻으로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경계, 곧 예루살렘 서남쪽의 골짜기입니다(수 18:16; 삼하 23:13, 14). 이곳에서 다윗은 블레셋을 쳐서 이겼습니다.(삼하 5:8-22) 또한 이곳은 곡창 지대로도 유명합니다(사 17:5).
9: 또 이 산꼭대기에서부터 넵도아 샘물까지 이르러 에브론 산 성읍들에 미치고 또 바알라 곧 기럇 여아림에 미치며
‘넵도아 샘물’은 현재에도 예루살렘에 물을 대는 근원지입니다. 예루살렘 북쪽 약 8km 지점에 있습니다. ‘에브론 산’은 ‘리프타’와 ‘쿠르옛 엘 에납’ 사이에 있는 높은 산등성이로, 근처에 예루살렘에서 욥바로 통하는 ‘쿠로니아’라는 길이 있습니다. ‘기럇여아림’은 유다 지파와 단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경계를 접하고 있는 지역에 있습니다.(수 9:17 참고)
10: 또 바알라에서부터 서편으로 돌이켜 세일 산에 이르러 여아림 산 곧 그살론 곁 북편에 이르고 또 벧 세메스로 내려가서 딤나로 지나고
‘세일 산’은 에서의 본거지였던 에돔 지경의 세일 산과는(수 32:3) 다릅니다. 유다 북쪽 국경을 이루고 있으며, 기럇여아림의 남서쪽에 위치한 능선입니다. 이곳은 오늘날 ‘사이라(Sairah)산’으로 불려집니다. ‘여아림 산’은 다음에 이어지는 ‘그살론’과 동일시 됩니다. 유다 지파 북쪽 경계에 위치하며, 오늘날의 ‘케슬라’로 추정됩니다. ‘벧세메스’는 태양의 집이라는 뜻으로, 제사장들의 성읍이었습니다. 유다와 단 지파의 경계선상에 위치했는데, 다 지파에게 할당되었다가 후에 다른 자손에게 할당되었습니다(수 21:16). 후일 이곳은 블레셋에서 돌아온 법궤가 옮겨진 곳이며(삼상 6:12-19), 유다 왕 아마샤가 이스라엘 왕 요아스에게 패하여 죽임을 당한 곳이기도 합니다(왕하 14:11).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약 25KM 지점입니다. ‘딤나’는 유다가 다말을 만난 ‘딤나’(창 38:12-14)와는 다른 곳으로 현재의 ‘아인 셈스’ 동쪽 약 5km 지점에 위치한 ‘딥네’(Tibn도)입니다. 삼손은 그의 아내를 이곳에서 취했습니다(삿 14:1).
11: 또 에그론 북편으로 나아가 식그론에 이르러 바알라산에 미치고 얍느엘에 이르나니 그 끝은 바다며
에그론(수 13:3 참고)하세요. '식그론‘은 ’만취‘라는 뜻을 가진 유다 지파의 성읍으로, 오늘날 ’집나‘(Jebna)에서 북동쪽 8km 지점에 위치한 ’수게일(Sugheir)‘로 추정됩니다. ’얍느엘‘은 욥바와 가사 사이의 지중해 연안에서 가까운 지역으로 ’얍네‘ 혹은 ’야브네‘(대하 26:6)라고도 불렸으며, 후기에는 ’얌니아‘라고 불렸습니다(마카비 1서 4:15; 5:58). 현재의 지명은 ’예브네‘(Jebneh)입니다.
12: 서편 경계는 대해와 그 해변이니 유다 자손이 그 가족대로 얻은 사면 경계가 이러하니라.
대해는 지중해를 가리킵니다. 이곳에는 블레셋 인들이 다섯 성읍(가사, 아스돗, 아스글론, 가드, 에글론)을 중심으로 정착해 있었으므로 정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이 해안 평지는 다윗 때에야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대상 18:1).
13-19절: 유다 지파의 분깃 가운데(1-12) 여호수아가 이미 갈렙에게 준 헤브론(수 14:13-15)을 갈렙이 차지하게 된 과정입니다. 갈렙은 자신의 기업으로 할당 받은 헤브론에서 아낙 자손을 쫓아내고(13, 14절), 계속해서 그 주위를 쳐서 기업으로 삼았습니다. 이때 갈렙은 드빌을 취하기 위해 드빌을 함락하는 자에게 자기 달을 주기로 약속하였는데, 옷니엘이 드빌을 취하자 자기 딸을 그에게 시집보냈습니다. 이때 갈렙의 딸 악사가 결혼 지참금조로 아비에게 샘물을 요구하여 윗샘과 아랫샘을 받은 것은 당시의 생활 풍속을 보여주는 일례라고 하겠습니다. 드빌을 정복하여 갈렙의 딸을 아내로 맞이한 옷니엘은 갈렙의 아우인지 조카인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대개의 영어 성경들은 옷니엘을 갈렙의 조카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그는 믿음과 용기로써 드빌을 정복하여 기업을 확장하는 데 일조했을 뿐만 아니라, 믿음의 선봉장이라 할 수 있는 갈렙의 사위가 되어 장차 이스라엘의 사사로 맹활약을 했습니다(삿 3:9-11).
13: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하신 대로 여호수아가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 성을 유다 자손 중에서 분깃으로 여분네의 아들 갈렙에게 주었으니 아르바는 아낙의 아비였더라.
갈렙이 헤브론을 받은 것은 수 14:13-15 참고하세요. 여호수아가 갈렙의 요구를 수락한 이유는 ❶ 민 14:24; 신 11:36에 나타난 것과 같이 그에게 주어진 약속 때문입니다. 이 약속은 하나님께서 ‘맹세하여’ 하신 약속이므로(신 1:34) 반드시 이루어져야만 했습니다. ❷ 갈렙의 신실함 때문입니다(민 13:30-33). 다른 정탐꾼들과는 달리 갈렙은 가나안 족속을 두려워 하지 않고 ‘마음에 성실한 대로’ 보고하여(수 14:7) 가나안을 정복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❸ 갈렙이 출애굽 세대의 남은 단 두 사람 중의 한 사람으로 그의 영향력이 컸기 때문입니다. 이는 갈렙이 여호수아의 동역자요 후계자였다는 점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❹ 요구한 땅이 유다 지파의 분깃이었는데, 갈렙 또한 유다 지파였기 때문입니다(대상 4:1-15). 어쨌든 갈렙은 헤브론을 기업으로 받아 그곳에 거주했던 아낙 자손을 몰아내고 그 땅을 차지함으로써 그이 말과 행동이 일치함을 보여주었습니다.
14: 갈렙이 거기서 아낙의 소생 곧 그 세 아들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쫓아내었고
헤브론에서 아낙 자손을 쫓아낸 것은 갈렙이 처음으로 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정복 정착 전쟁 초기에 여호수아는 헤브론을 점령하고 아낙 자손을 멸절시켰습니다(수 11:11, 21). 그러나 정복 정착 전쟁 기간이 7년이나 되었으므로 그 사이에 아낙 자손이 다시 세력을 얻은 것 같습니다. 따라서 갈렙이 다시금 헤브론을 치고 아낙 자손을 몰아내어 자기 가족의 거주지로 삼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성경 속에서는 서로 모순되어 보이는 사싥들도 실상은 서로 조화를 이룹니다. 한편 여기서 쫓아내다‘에 해당하는 단어 ’와요레쉬(וירשׁ)‘ ’뿌리뽑다‘는 뜻입니다. 여호수아의 정벌 이후 다시 헤브론 땅에 거주해던 아낙 자손을 갈렙은 완전히 진멸시켜 다시는 그곳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진멸했음을 가르쳐줍니다. ’세 아들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 이들은 아낙의 아들들이라기 보다는 후손들로서, 아낙 자손의 세 우두머리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15: 거기서 올라가서 드빌 거민을 쳤는데 드빌의 본 이름은 기럇 세벨이라.
7절과 수 10:38 참고 하세요.
16: 갈렙이 말하기를 기럇 세벨을 쳐서 그것을 취하는 자에게는 내가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 하였더니
고대 근동 지역에서는 아버지가 자녀들에 대해서, 특히 결혼에 있어서는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왕이나 장군들은 성읍을 취하고 원수를 죽이는 등 무공을 세우는 사람에게 딸을 아내로 주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였습니다(삼상 17:25). 이처럼 갈렙도 기럇 세벨을 쳐서 취하는 자에게 자기 딸 악사를 주어 결혼시키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17: 갈렙의 아우요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 그것을 취함으로 갈렙이 그 딸 악사를 그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옷니엘은 갈렙의 아우가 아니라 조카입니다. 즉 그나스가 갈렙의 아우입니다.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로 번역한 것이 옳다고 봅니다. 삿 3:9에는 그렇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옷니엘은 여호수아가 죽은 후 이스라엘의 첫 번째 사사가 되었습니다(삿 3:9).
18: 악사가 출가할 때에 그에게 청하여 자기 아비에게 밭을 구하자 하고 나귀에서 내리매 갈렙이 그에게 묻되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악사가 구한 밭은 악사가 직접 지정한 어떤 밭임을 암시합니다. 악사가 출가하면서 아비에게 밭뿐 아니라 샘물가지 요구한 것데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두 가지 대조적인 평가가 나옵니다. 악사가 그러한 요구를 할 만한 명분이나 권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자 특유의 허영심이 지나쳐 분에 넘치는 요구를 했다는 평가(Calvin), 그리고 그에 반대되는 평가로는 악사가 정당한 결혼지참금을 요구한 것이라는 견해가 있습니다(Keil, Mattew Henry). 이런 요구에 갈렙은 별다른 이의 없이 순순히 응한 것으로 보아 후자의 평가가 보다 타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19: 가로되 내게 복을 주소서 아버지께서 나를 남방 땅으로 보내시오니 샘물도 내게 주소서 하매 갈렙이 윗샘과 아랫샘을 그에게 주었더라.
여기에서 ‘복’(베라카:ברכה)는 ‘은혜, 또는 선물’이라는 뜻으로 악사가 갈렙에게 결혼 지참금을 요구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20-63절: 유다 지파가 받은 기업입니다. 유다 전 지파가 얻은 기업은 에돔과 경계한 남방 지역에서 38개 성읍(20-32절), 세펠라라 불리는 평지에서 40개 성읍(33-47절), 산지에서 36개 성읍(48-60절), 광야 지역에서 6개 성읍(61, 62절) 등 모두 120 여개 성읍과 그 주변 촌락들을 기업으로 차지했습니다. 이상과 같은 유다 지파의 기업은 유다 지파가 실질적인 장자 지파로서 얼마 만큼의 큰 복을 누렸는지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물론 유다 지파의 일부 지역은 나중에 형평의 원칙에 따라 베냐민 지파와 시므온 지파에게 할당되었습니다(수 18:21-28; 19:2-9). 하지만 그러한 땅의 재조정이 유다 지파에게 임한 복의 감소를 의미한다거나 장자권의 상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역사상 유다 지파는 이스라엘의 핵심적인 통치 세력으로 다른 지파에게 그 주도권을 빼앗긴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유다 지파의 기업 내에 다른 지파가 거주하게 된 사실은 오히려 다른 지파가 유다 지파의 복을 함께 향유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창 49:7).
20: 유다 자손의 지파가 그 가족대로 얻은 기업은 이러하니라.
본절은 뒤에 나오는 성읍들의 목록을 도입하는 역할을 합니다. 유다 지파가 할당 받은 땅은 첫째, 남방 혹은 네게브 지역(21-32절), 둘째, 골짜기나 평지 지역(33-47절), 셋째, 산악 지역(48-60절), 넷째, 광야 지역(61, 62절)입니다.
21-32절에 언급된 성읍들은 네게브, 곧 브엘세바를 중심으로 한 가장 남족의 에돔 경계 부근의 지역에 위치합니다. 모두 36개이나 32절에는 29개 성읍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그 정확한 의미는 아직 알 수가 없습니다.
21: 유다 자손의 지파의 남으로 에돔 경계에 접근한 성읍들은 갑스엘과 에델과 야굴과,
22: 기나와 디모나와 아다다와
23: 게데스와 하솔과 잇난과
‘게데스’는 ‘가데스 바네아’의 교호(交互)적 명칭으로 보입니다(수 14:6참고). ‘하솔’은 갈릴리 상부의 하솔(수 11:10)과는 구분이 됩니다.
24: 십과 델렘과 브알롯과
‘십’은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하여 몸을 숨겼던 유다 산지의 십 광야(55절; 삼상 23:14-18)는 아니며, 사해 남단의 서쪽 40km 지점에 있는 ‘키르벨 에즈 제이페’로 알려져 있습니다.
25: 하솔 하닷다와 그리욧 헤스론 곧 하솔과
26: 아맘과 세마와 몰라다와
27: 하살갓다와 헤스몬과 벧 벨렛과
28: 하살 수알과 브엘세바와 비스요댜와
‘브엘세바’는 네게브 지역에 위치한 성읍으로 이스라엘의 남방 한계로 지칭됩니다(삿 20:1; 삼상 3:20; 왕상 4:25). 이곳은 분지지역으로 애굽으로 가는 길과 유다 해안 길의 분기점입니다. 유다지파의 땅이지만 실제로는 시므온 지파가 거주했었습니다(수 19:2).
29: 바알라와 이임과 에셈과
30: 엘돌랏과 그실과 홀마와
31: 시글락과 맛만나와 산산나와 르바옷과
32: 살힘과 아인과 림몬이니 모두 이십 구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
‘시글락’은 브엘세바 북동족에 위치한 성읍으로 시므온 지파에 할당 되었습니다(수 19:5; 대상 4:30). 다윗이 블레셋으로 피신했을 때 이곳에 거하기도 했습니다(삼상 27:5,6).
33: 평지에는 에스다올과 소라와 아스나와
34: 사노아와 엔간님과 답부아와 에남과
35: 야르뭇과 아둘람과 소고와 아세가와
36: 사아라임과 아디다임과 그데라와 그데로다임이니 모두 십 사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
33-36절에서 남쪽 아둘람에서 북쪽 그데라에 이르는 지역에 있는 성읍들로, 현재의 예루살렘-얍바 간 철도를 따라 뻗어 있는 평지의 성읍들입니다. 이 부분의 성읍들은 모두 15개 성읍이나 36절에는 14개 성읍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 의도는 알 수가 없습니다.
37: 스난과 하다사와 믹달갓과
38: 딜르안과 미스베와 욕드엘과
39: 라기스와 보스갓과 에글론과
40: 갑본과 라맘과 기들리스와
41: 그데롯과 벧다곤과 나아마와 막게다니 모두 십 육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
이 지역의 성읍들은 대개 그 위치를 확인하기 어려우나 라기스와 에글론이 언급된 것으로 보아 평지 지역인 이 두 지역의 중간에 위치한 것으로 추측합니다. ‘라기스’는 예루살렘 남서쪽 45km 지점에 위치한 유다의 요새화된 성읍입니다. 이스라엘이 기브온 족속을 보호하기 위해 아모리 족속과 싸울 때에 함락되어 폐허가 되었습니다(수 10장). 그후 유다 지파에 분배 되었으며, 르호보암에 의하여 재건되었습니다(대하 11:9). ‘에글론’은 팔레스틴의 서쪽 낮은 구릉 지대에 위치해 있습니다. 에글론 왕은 여호수아와 화친을 맺은 기브온을 치려고 4명의 가나안 왕들과 동맹을 맺었지만(수 10:3-5), 여호수아에게 패하여 멸망을 당했습니다(수 10:34, 35). 이후에 이 성읍은 유다 지파의 영토가 되었습니다. ‘막게다’는 가나안 원주민들이 건설한 성읍으로 이 지역에는 석회암 지역으로 동물이 많습니다. 유다 지역으ㅢ 저지대에 위치했습니다.
42: 립나와 에델과 아산과
43: 입다와 아스나와 느십과
44: 그일라와 악십과 마레사니 모두 아홉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
이 부분의 성읍들은 헤브론 서쪽 약 20km 지점에 위치한 ‘마레사’를 중심으로 한 성읍들로, 동족 끝으로는 ‘그일라’이고 지중해 쪽 끝으로는 ‘립나’가 있었습니다. 에델과 아산은 시므온 지파에 속한 성읍입니다(수 19:7). ‘립나’는 라기스와 막게다 사이에 위치한 것으로 보입니다. 유다 지파에 분배되었으나, 후에 제사장들의 성읍이 되었습니다(수 21:3). ‘그일라’는 블레셋의 위협을 받았던 성읍으로 다윗이 구원한 일이 있습니다(삼상 23:1-5). 오늘날의 ‘카르벨 퀼라(Khirbet Qila)로서 예루살렘 남서쪽 25km, 헤브론 북서쪽 13.6km 지점에 위치합니다.
45: 에그론과 그 향리와 촌락과
46: 에그론에서부터 바다까지 아스돗 견에 있는 모든 성읍과 그 촌락이었으며
47: 아스돗과 그 향리와 촌락과 가사와 그 향리와 촌락이니 애굽 시내와 대해 가에 이르기까지였으며
애굽 시내와 인접한 남부 해안 평야 지대로서 블레셋의 땅이었습니다. 특히 아스돗은 애굽과 가나안의 관문 지대로서, 이 지역의 성읍들은 웃시야 때까지 미정복 상태로 남아 있었습니다(대하 26:6).
48: 산지는 사밀과 얏딜과 소고와
49: 단나와 기럇 산나 곧 드빌과
50: 아납과 에스드모와 아님과
51: 고센과 홀론과 길로니 모두 십 일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
가나안 남서부 지역의 성읍들로서, 드빌이 그 중심지였습니다. 드빌은 헤브론의 남서쪽 20km 지점에 위치한 성읍입니다(수 10:38, 39). 고센은 여호수아에 의해 정복된 성읍들 중의 하나로(수 10:41; 11:16) 헤브론 남서쪽 19KM 떨어진 오늘날의 ‘자하리에’(Zahariyeh)와 동일시 됩니다.
52: 아랍과 두마와 에산과
53: 야님과 벧 답부아와 아베가와
54: 훔다와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과 시올이니 모두 아홉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
남부 산악지대의 중심부에 위치한 성읍들로서, 헤브론을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헤브론은 예루살렘 남서쪽 35km 지점에 위치한 가나안의 오래된 도시입니다.(수 10:3)
55: 마온과 갈멜과 십과 윳다와
56: 이스르엘과 욕드암과 사노아와
57: 가인과 기브아와 딤나니 모두 열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
헤브론 남부의 유대 산악지대 동쪽 끝에 자리잡은 성읍들입니다. ‘마온’은 팔레스틴 중앙 산간 지대에 있는 성읍으로 헤브론 남쪽 13.6km 지점에 있는 ‘텔 마인’으로 추정합니다. 이 성읍의 동편은 ‘마온의 황무지’로서 다윗의 은신처였습니다(삼상 23:24, 25). ‘이스르엘’은 헤브론 남쪽의 구릉에 위치하였습니다. 다윗의 아내들 중 하나인 아히노남의 출생지이기도 합니다(삼상 25:43; 삼하 2:2).
58: 할홀과 벧 술과 그돌과
59: 마아럇과 벧 아놋과 엘드곤이니 모두 여섯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
헤브론 북쪽에 인접해 있는 산맥 지대의 성읍들로서, 헤브론 북쪽 6km 지점에 위치한 ‘벧 술’이 중심지입니다. ‘벧 술’은 ‘바위의 집’이란 뜻을 가졌습니다. 헤브론 북쪽 7km 지점, 해발 1,103m에 위치한 오늘날의 ‘길벳 엘 투베어카’와 동일시 됩니다. 갈렙의 후손들에게 정복되었으며(대상 2:45), 르호보암에 의해 요새화되었습니다(대하 11:7).
60: 기럇 바알 곧 기럇 여아림과 라빠니 모두 두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
유다 지파의 북부 경계선 주변에 인접한 성읍들로서, 예루살렘 서쪽 8km 지점에 위치한 ‘라빠’가 그 중심지입니다.
61: 광야에는 벧 아라바와 밋딘과 스가가와
62: 닙산과 염성과 엔 게디니 모두 여섯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더라.
이 부분의 성읍들은 유다 지파의 북쪽 경계선으로부터 사해를 따라 네게브 지역에 이르는 동부 경사지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그 서쪽에는 유대 산지가 뻗어 있습니다. ‘엔 게디’(עין גדי)는 ‘염소의 샘)이란 뜻을 가진 지명으로 사해 서편 광야 지역에 위치했습니다. 이 지역은 오아시스 지역으로 포도원과 고벨화와 종려나무로 유명했습니다(아 1:14). 이곳은 한 때 다윗의 은신처이기도 했습니다(삼상 23:29).
63: 예루살렘 거민 여부스 사람을 유다 자손이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사람이 오늘날까지 유다 자손과 함께 예루살렘에 거하니라.
여부스 사람들은 가나안 정복 시에 예루살렘 부근의 가나안 산중에 살고 있었던 여러 이방인종에 속합니다(민 13:29l;수 3:10;11:3). 여호수아는 이들을 예루살렘에서 쫓아내지 못했습니다(삿 1:21). 이들이 정복된 것은 다윗에 의해서였습니다(삼하 5:6-9; 대상 11:4-8). 그러므로 이들은 이후에도 한 동안 예루살렘에서 유다 지파와 함게 거주했는데, B. C. 1,00년 경 다윗에 의해 비로소 추방되었습니다(삼하 5:1-10). 아마도 그들은 시온 산에 강한 요새를 구축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여부스 사람’(수 3:10 참고). ‘오늘날까지’는 여호수아서가 기록될 때를 말합니다. 이 책이 기록될 당시에는 예루살렘에 유다 지파와 여부스 족속이 함게 거주했고, 여부스 족속은 다윗 시대에 추방되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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