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여호수아 제16장 강해: 요셉과 에브라임 지파의 기업

chukang 2014. 6. 21.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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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제16장 강해: 요셉과 에브라임 지파의 기업

 

  야곱의 11번째 아들인 요셉이 다른 아들들보다 두 배의 몫을 허락 받은 결과 그의 두 아들이 그들의 삼촌들과 나란히 독립된 두 지파의 조상이 되었던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후손 곧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가 각각 땅을 분배 받게 되었습니다.

본 장에서 구속사에 있어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비하여 인간은 너무나도 가증한 이기심과 패역을 발견하게 됩니다. 에브라임은 요셉의 차자였음에도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의해 야곱을 통하여 장자 므낫세보다 ‘더 큰 자가 될 것’(창 48:19)이라고 하신 약속대로 기업을 먼저 분배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에브라임은 오히려 자신들의 인간적 판단과 순간의 이익을 위하여, 가나안 족이 잔존할 경우 이스라엘이 그들의 풍습대로 우상 숭배에 빠질 염려와 또한 그들이 다시 발흥하여 두고두고 이스라엘을 괴롭힐 것도 염려하여 주어졌던 가나안 족 전멸 명령을 무시하고 가나안 인들을 종으로 삼음으로써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인간의 불성실함이 확실하게 대조가 되고 있습니다. 이 일은 후일 에브라임 지파 타락의 치명적인 원인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이는 오늘날 성도의 신앙생활에도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자신의 이기적 목적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반하여 세상과 타협할 때 그것은 결국 신앙생활에 있어 장애물과 가시로 변하기 마련입니다(삿 2:3). 현재 나는 하나님의 뜻과 그의 의로운 사업에 동참하기보다 나의 이기심에 끌려가고 있지 않은지 성찰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1-4절: 요셉 자손이 두 번째로 제비를 뽑아 기업을 얻었습니다. 요셉 자손은 므낫세 반 지파가 요단 동편에서 얻은 기업(수 13:29-31) 이외에 요단 서편에서 동편으로는 요단 강의 한 지류인 여리고 샘물에서 시작하여 남쪽으로는 단과 베냐민 지파의 경계를 이루는 벧엘, 서쪽으로는 지중해, 북쪽으로는 아셀, 스불론, 잇사갈 지파와 경계를 이루는 지역을 기업으로 받았습니다. 그들은 요단 동편의 넓은 토지 이외에도 요단 서편 가나안 땅에서 비교적 토질이 우수한 가나안 중앙 지역을 기업으로 받은 복을 받은 것입니다. 이는 야곱과 모세의 축복의 성취라고 할 수 있습니다(창 49:25, 26; 민 33:54). 즉 요셉은 자신에게 미친 극심한 환란을 믿음으로 이겨내고 야곱의 가족들을 오랜 기근의 어려움에서 구원해 낸 공로를 인정받아 하나님께 복을 받은 것입니다(창 48:117-22; 신 33:13-17).

 

1: 요셉 자손이 제비 뽑은 것은 여리고 곁 요단 곧 여리고 물 동편 광야에서부터 나아가 여리고로 말미암아 올라가서 산지를 지나 벧엘에 이르고

  요셉 자손은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말합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역사상 두 지파로 취급되었습니다(창 48:5).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절에서 ‘요셉 자손’이란 한 지파로 취급되어 하나의 제비를 뽑았는데 이것은 가장 가까운 형제지간인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동맹체적인 관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는 ‘므낫세 자손의 기업 중에서 에브라임 자손을 위하여 구별한 모든 성읍’이 있었다는 사실에 의해서도 확인이 됩니다. 이처럼 엄연히 두 지파임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제비를 뽑아 기업을 얻은 요셉 지파는 다음 장에서 여호수아에게 불만을 토로하였습니다(수 17:14). 그렇지만 여호수아로부터 기업 내의 미개간지를 개척하라는 권면의 말을 듣고 물러설 수밖에 없었습니다(수 17:15-18). ‘여리고 물’ 오늘날에는 ‘아인 에스 술탄(Ain es-Sultan)이라 불리는 샘입니다. 이 샘으로 인해 이 일대는 오아시스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리아(Riha)'에서 서쪽으로 약 8km 지점에 위치하며 여리고 근처에서는 유일하게 큰 샘물입니다. 이 샘물은 우기에는 요단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엘리사는 이곳에서 물의 수질을 고치는 이적을 행하기도 했습니다(왕하 2:19-22). ‘여리고’는 요단강 근처 서편으로 에브라임과 베냐민의 영토를 구분하는 경계에 위치합니다. 이곳은 ‘종려의 성읍’(신 34:3; 삿 1:16; 3:13; 대하 28:15)으로 불렸습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란 뜻입니다. 이곳은 예루살렘 북쪽 20km 지점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한 초기에는 베냐민의 성읍이었으나(수 18:22) 후에는 에브라임의 영토가 되었습니다(삿 4:5; 대상 7:28). 또한 이곳은 사무엘에 의해 세워진 선지학교가 있어 종교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으나(왕하 2:3),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수도를 정한 뒤부터는 그 중요성을 상실했습니다(수 7:2 참고).

 

2: 벧엘에서부터 루스로 나아가 아렉 사람의 경계로 지나 아다롯에 이르고

  ‘벧엘’의 본래 이름은 ‘루스’입니다(창 35:6; 48:3; 삿 1:23). 야곱이 이곳에서 밤을 지내던 중 꿈 속에서 하나님을 만난 후 이곳을 '벧엘‘이라고 불렀습니다(창 28:19). 따라서 벧엘과 루스는 한 지역입니다. 그런데도 저자는 벧엘과 루스를 따로 구분하여 각기 다른 곳으로 기록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첫째 벧엘과 루스는 서로 떨어져 있다가 후에 두 지역이 통합되어 벧엘로 부렸다는 해석입니다. 둘째는 벧엘과 루스는 서로 다른 지명이라는 해석입니다. ’루스‘는 벧엘에 속한 산지의 남부 능선을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곧 이 능선이 벧엘에서 루스까지 이어져 있다는 해석입니다. 이 중 어느 견해가 보다 더 타당한지는 분별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다만 성경에 있는 그대로 받아야 할 것입니다.

 

3: 서편으로 내려가서 야블렛 사람의 경계에 이르러 아래 벧 호른 곧 게셀에 미치고 그 끝은 바다라

  ‘야블렛(יפלט)’은 ‘하나님이 인도하신다.’ ‘하나님이 구원하신다’는 뜻입니다. 요셉 지파의 남쪽 경계지대에 살던 이들은 아마도 아셀 지파 헤벨의 아들(대상 7:32,33)이 그 시조인 것으로 추측됩니다. ‘벧 호론 곧 게셀’ ‘벧 호른’(בית־הורון)은 ‘호론 신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아마도 이스라엘에 의해 정복되기 이전에는 우상을 섬기는 신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지역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전략적 요충지입니다. 가나안 정복 후에 이곳은 레위 지파의 제사장들을 위한 성읍으로 분배되었습니다(수 21:22).

 

4: 요셉의 자손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그 기업을 얻었더라.

  요셉 자손, 곧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가 할당 받은 기업은 가나안 중앙지대로 토질이 매우 양호한 지역입니다. 동으로는 요단 강에 이르고, 서로는 지중해에 이릅니다. 그리고 남으로는 단과 베냐민 지파, 북으로는 아셀, 스불론, 잇사갈 지파와 경계합니다. 한편 요셉 자손은 이 지역 이외에도 므낫세 반 지파가 요단 동편의 넓은 지역을 차지했습니다. 이는 이들 두 지파의 인구가 많은 탓도 있지만 야곱이 요셉에게 행한 축복 중 요셉 자손의 기업이 형제자매의 기업보다 더 많을 것이라는 축복의 성취라고 할 수 있습니다.(창 48:22)

 

  5-10절: 에브라임 지파의 기업 내용입니다. 에브라임 지파는 가나 시내가 있는 지중해 연안에서 시작하여 북동쪽으로는 답부아, 아루마, 야노아를 잇는 지역과 남쪽으로는 가나 시내, 윗 벧 호론, 나아라를 잇는 지역, 그리고 동쪽으로는 야노아에서 아다롯을 지나 나아라를 잇는 지역을 기업으로 차지하였습니다(5-9절). 에브라임은 야곱의 축복대로(창 48_1022) 장자인 므낫세보다 더 큰 자가 되며 뛰어나게 되었습니다. 분배받은 땅을 보아도 역사적으로 증명이 됩니다. 에브라임 지파는 장차 남북 분열 왕국 당시 10지파가 모여 형성한 이스라엘 왕국의 실질적인 주도권자가 되었던 것입니다(사 7:2-17).

  하지만 에브라임 지파에 대한 하나님의 이 같은 복에도 불구하고 에브라임 지파는 하나님 앞에서 결정적인 잘못을 범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신 20:16-18)을 거역하고 가나안 사람을 그들의 종으로 부렸던 것입니다. 이러한 그들의 태도는 편의주의적 발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가나안족을 다 멸절시키라 하신 하나님의 뜻을 정면에서 거부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더욱이 훗날 에브라임 지파를 중심으로 한 북왕국 이스라엘은 가나안족의 풍습에 물들어 저들의 우상을 섬기는 죄악까지 범하게 되었으므로(왕상 12:29) 끝내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되었습니다(호 9:3-17; 12:7-14). 이 같은 사실은 아무리 하나님의 크신 은총과 복을 입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자는 결국 멸망 받게 된다는 교훈을 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그의 자녀가 된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행여라도 죄를 유발할 우려가 있는 요소들을 자신에게서 제해야 할 것입니다(고전 5:13).

 

5: 에브라임 자손의 그 가족대로 얻은 것의 경계는 이러하니라 그 기업의 경계는 동으로 아다롯 앗달에서 위 벧호론에 이르고

  에브라임은 므낫세와 함께 야곱의 양자를 택함을 받은(창 48:5) 요셉의 둘째 아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므낫세보다 먼저 땅을 분배받은 것은 그에게 주어진 장자권에 대한 복 때문입니다. 야곱이 에서의 장자권을 이삭에게서 받았듯이, 에브라임은 야곱에게서 므낫세의 장자권을 대신 계승받았습니다(창 48:12-22). 결국 이러한 장자권과 관련된 축복 때문에 에브라임은 이스라엘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지역을 분배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지역은 비옥했을뿐만 아니라 다른 지파들에 둘러싸여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보호될 수도 있었습니다. 한편 에브라임의 장자권은 이스라엘의 분열 이후 에브라임이 북쪽 열 지파의 주도 세력이었다는 사실에서도 입증이 되었습니다(사 7:2-17).

 

6: 또 서편으로 나아가 북편 믹므다에 이르고 동편으로 돌아 다아낫 실로에 이르러 야노아 동편을 지나고

  ‘믹므다’는 ‘잠복소’라는 뜻으로,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 사이에 있는 성읍입니다(수 17:7). ‘다아낫 실로’는 세겜 남동쪽 11km 지점에 위치합니다. ‘야노아’는 쉼터라는 뜻을 가졌는데 두 곳입니다. 하나는 베가의 치세 때에 디글랏 빌레셀에게 빼앗긴 납달리 지파의 성읍이며(왕하 15:29), 또 다른 곳은 세겜 남동쪽 12km 지점에 위치하여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경계를 이루던 성읍입니다. 여기의 야노아는 후자를 말합니다.

 

7: 야노에서부터 아다롯과 나아가로 내려가서 여리고에 미치며 요단으로 나아가고

  아다롯은 2,5절에 나오는 아다롯과는 구별되는 성읍으로, 에브라임 지파의 북동쪽 베냐민 지파와의 경계 지역에 있는 성읍입니다. ‘나아라’는 에브라임 지파 동쪽 경계에 있는 성읍으로 ‘나아란’과 동일한 곳입니다(대상 7:28).

 

8: 또 답부아에서부터 서편으로 지나서 가나 시내에 미치나니 그 끝은 바다라 에브라임 자손의 지파가 그 가족대로 얻은 기업이 이러하였고

  ‘답부아’는 믹므다 근처 므낫세 지파의 경계선에 있던 성읍(수 17:8)으로 유다 서쪽에 있던 ‘밥두아’(수 15:34)와는 구별됩니다. ‘가나 시내’는 ‘갈대 시내’란 뜻으로 그곳에서 많이 나는 갈대와 등나무로 인해 유래된 명칭이라고 합니다. 이 시내는 그리심산에서 발원하여 야르콘 강의 지류를 형성하면서 욥바 바로 북쪽 지중해로 흘러 들어갑니다.

 

9: 그 외에 므낫세 자손의 기업 중에서 에브라임 자손을 위하여 구별한 모든 성읍과 촌락도 있었더라

  므낫세 지파는 인구 비례에 따라 땅을 분배하는 원칙(민 6:23; 33:54)에 따라 에브라임 지파의 2배에 달하는 넓은 지역을 할당 받았습니다. 그러나 므낫세 지파는 이미 그 반 지파가 요단 동편에서 넓은 땅을 할당받았기 때문에(수 13:29-311), 요단 서편, 가나안 본토에서 분배받은 땅은 인구에 비해 너무 넓었습니다. 그러므로 므낫세 지파의 기업 중 일부를 에브라임 지파에 할당한 것은 형평의 원칙에 입각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좀 더 큰 내면적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장자 지파격인 유다(창 49:8-12)에 대해, 견제 세력을 형성하려는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 사이의 동맹체 관계가 성립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10: 그들이 게셀에 거하는 가나안 사람을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가나안 사람이 오늘날까지 에브라임 가운데 거하며 사역하는 종이 되니라

  ‘게셀’은 에브라임 영토에 있는 레위인의 성읍이었습니다(수 21:21). 여호수아가 게셀 왕 호람을 쳐서 패배시켰으나 다른 가나안 인들을 쫓아낼 수 없었습니다(수 1:29). 그러므로 이들은 에브라임 지파 중에 거하게 된 것입니다.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말은 에브라임이 군사적 힘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레위인들이 이 성읍에서 살았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해 줍니다(수 21:21). 그렇다면 이것은 에브라임 지파가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서 그렇게 했다는 뜻이 됩니다. 즉 그들은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가나안 인들을 종으로 남겨 놓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명령(신 20:16,17)을 거역한 명백한 범죄 행위로 훗날 에브라임 지파를 중심한 북왕국 이스라엘이 우상숭배에 빠지게 된 원인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그 같은 행위는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사고 말았습니다(호 12:7-14). 성도들은 ‘악은 무릇 모양이라도 버리라.’는 말씀대로 항상 주의하고 경성하여 사단에게 조금이라도 유혹의 틈을 주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살전 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