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출애굽기 제34장 강해 - 다시 받은 십계명

chukang 2013. 1. 19.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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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제34장 강해 - 새로 받은 십계명 두 돌판

 

  31장에서 모세는 하나님께서 친히 만드신 십계명이 새겨진 두 돌 판을 받았으나, 이스라엘이 우상숭배를 하는 현장을 목격한 모세는 의분을 참지 못하여 그만 그 돌 판을 던져서 깨뜨리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언약이 파괴될 위기 상황은 모세의 중보기도로 인하여 다시 회복이 되고, 모세는 두 돌 판을 만들어 시내산으로 올라가서 다시 40일 금식 기도를 하게 됩니다.

 

1-9절은 모세가 시내산에 다시 오른 사건과 십계명 돌 판과 그와 관련된 법을 주시기 전에 그 법의 입법자이며 언약의 주체로서 하나님의 존재는 바로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먼저 선언을 하셨습니다.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돌 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깎아 만들라. 네가 깨뜨린바 처음 판에 있던 말을 내가 그 판에 쓰리니

  처음 십계명 두 돌 판은 하나님께서 손수 만들어 주신 것이었습니다(32:16). 그런데 그 돌 판은 모세에 의해 깨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책임을 모세에게 묻는다는 측면에서 모세로 하여금 직접 새로운 돌 판을 다듬도록 명령하셨습니다.

 

2: 아침 전에 예비하고 아침에 시내산에 올라와 산꼭대기에서 내게 보이되

  ‘보이다’(나차브:נצב)는 ‘공고히 하다, 자리 잡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일순간 슬쩍 얼굴만 보이라는 뜻이 아니라 장기간 체류할 채비를 차린 후 하나님께 나아오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시내산에 올라간 모세는 그곳에서 40일을 체류하였습니다.

 

3,4: 아무도 너와 함께 오르지 말며 온 산에 인적을 금하고 양과 소도 산 앞에서 먹지 못하게 하라. 모세가 돌 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깎아 만들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그 두 돌 판을 손에 들고 여호와의 명대로 시내산에 올라가니

  온 산에 인적을 금한 것은 모세가 처음 시내산에 올라갈 때에도 주어진 것입니다. 이번에는 가축들까지도 접근을 하지 못하게 명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강림하심으로 인하여 시내산이 일시적으로 ‘성소(聖所)’로 구분된 것입니다. 이는 거룩한 것은 속된 것과 함께 할 수 없다는 평범하면서도 중요한 진리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돌 판 두개를 만들어 가지고 아침 일찍 시내산에 올라갔습니다.

 

5: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강림하사 그와 함께 거기서서 여호와의 이름을 반포하실 새

  이처럼 이스라엘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율례를 반포하시기 위해 시내산에 강림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이며, 훗날 죄인을 구속하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에서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그와 함께 거기서서’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와 같이 계심을 뜻합니다. 여호와께서 모세를 친구처럼 대하셨다는 표현과 상통하며(33:11), 모세와 함게 ‘친히 가리라’는 말씀(33:14)에 대한 1차적 성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반포하실 새’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자신의 이름을 선포한 것은 자신이 지금 시내산에 강림하셨음을 증거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제부터 들려 줄 자신의 말씀에 모세가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두 번이나 자신의 이름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6: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반포하시되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인자’(헤세드:חסד)는 ‘선함, 사랑’을 나타냅니다. 또한 ‘진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메트(אמת)’는 ‘신실하심(faithfulness)’이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나타난 자비롭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여호와의 속성들에 대한 총체적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속성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진노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자식을 대하는 아버지와 같은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보여줍니다.

 

7: 인자를 천 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아비의 악을 자여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형벌 받을 자’란 ‘범죄한 자(guilty person)'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과실과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범죄에 대해 아무 대가없이 용서해 주시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사해 주시되 반드시 그 죄과(罪過)와 죄책(罪責)은 물으십니다(욥 10:14).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도 바로 이와 같은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보응입니다(롬 3:25). ’아비의 악을 자여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는 말은 인자를 천 대까지 베풀며 라는 말과 대구를 이루는 것으로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에 비하면 그 진노는 아주 미약한 것임을 나타냅니다. 그렇지만 이는 부모의 죄의 결과와 그 영향력이 후손 3, 4대까지 미친다는 뜻이지, 하나님께서 아비의 죄 값을 후손 3, 4대까지 찾으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8,9: 모세가 급히 땅에 엎드리어 경배하며, 가로되 주여 내가 주께 은총을 입었거든 원컨대 주는 우리 중에서 행하옵소서 이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이다. 우리의 악과 죄를 사하시고 우리로 주의 기업을 삼으소서.

하나님의 영광을 직면했을 때 모세는 가장 먼저 엎드려 경배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 대한 경배(worship)의 표현이기보다는 순간적인 두려움으로 경외(敬畏)의 자세를 취한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은총을 입은 첫 번째 증거가 하나님의 동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사실은 ‘내가 주께 은총을 입었거든...’이라는 조건문에서 잘 나타납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중에 계시면, 이스라엘을 지키시고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에 광야 가운데로 행하는 이스라엘에게는 결코 두려워 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동행’을 간구했던 것입니다. ‘목이 곧은 백성’은 심령이 완악하고 미련하며 고집이 센 자들을 가리키는 성경의 관용적 표현입니다(32:9). ‘우리로 주의 기업을 삼으소서’ 여기에서 ‘기업’은 ‘소유(possession)’, ‘유산(inheritance)’이란 뜻입니다.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소유로 삼아 친히 아끼며 돌봐 주실 것을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10-26절은 새로운 십계명 돌 판을 수여함에 있어서 함께 주신 여러 기본 율법 곧 우상 숭배 금지, 가나안 인과의 결혼 금지, 안식일 및 삼대절기, 초태생에 대한 규례 등이 이어집니다. 이 부분을 20:1-17과 비교하여 ‘의식법 십계명(Ritual Decalogue)’라고 하기도 합니다. 즉 언약 관계를 재정립하시면서 여러 율법 내용을 의식법을 중심으로 요약해서 새로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이 의식법은 하나님과 백성간의 올바른 그리고 정기적 교제를 유지하기 위한 규정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구약 율법 중 의식법 전체가 수고사적으로 우리 주 예수님의 영원한 복음 사역을 예표한 점을 고려할 때에, 영적으로 보면 언약을 맺은 하나님과 성도의 교제가 영속(永續)될 수 있는 기본 방법을 주신 것입니다.

 

10: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언약을 세우나니 곧 내가 아직 온 땅 아무 국민에게도 행치 아니한 이적을 너희 전체 백성 앞에 행할 것이라 너의 머무는 나라 백성이 다 여호와의 소위를 보리니 내가 너를 위하여 행할 일이 두려운 것임이니라.

  여기에서 ‘아무에게도 행치 아니한 이적’은 하나님께서 장차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가나안 족속에게 행하실 이적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요단강이 갈라진 사건(수 3:14-17), 여리고 성이 무너진 일(수 6:20), 아모리 사람들과의 전투 중에 태양이 아얄론 골자기에 머무른 일(수 10:12-14) 등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행하신 이적입니다.

 

11: 너는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것을 삼가 지키라. 보라 내가 네 앞에서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리니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 당시 살고 있던 원주민들입니다. 그때 이들은 미처 다 축출되지 못하여 오랜 기간 동안 이스라엘과 함께 살았습니다(삿 3:1-6; 수 15:63).

 

12: 너는 스스로 삼가 네가 들어가는 땅의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라. 그들의 너희 중에 올무가 될까 하노라.

  즉 가나안 원주민들과 어떠한 평화조약도 체결하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이는 행여라도 그들과 교류하는 중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들의 사악한 우상숭배 행위와 기타 이교적 풍습에 물들까 염려함입니다. ‘올무가 될까 하노라’ ‘올무(모케쉬:מוקשׁ)’는 짐승을 잡는 덧(snare)을 가리킵니다. 여기서는 상징적으로 자신도 모르게 악의 수렁에 빠져 멸망에 이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13: 너희는 도리어 그들의 단들을 헐고 그들의 주상을 깨뜨리고 그들의 아세라 상을 찍을지어다.

  ‘단’은 이방 우상을 세워 놓은 제단과 제대(祭臺)를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처럼 가나안 족속들의 우상을 없애는 일입니다. 가나안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이며, 따라서 이 땅에서는 하나님만을 섬겨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만을 섬기기 위해 제일 먼저 우상을 파괴해야 하는 이유는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는 데 있어 우상만큼 큰 장애 요인이 없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때는 금송아지 숭배 사건이 있은 직후이기 때문에 우상 타파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은 어느 때보다 더욱 강경하셨습니다. ‘주상(맛체바:מצבה)’은 본래 ‘기둥, 비석’을 가리키는데, 점차 깎거나 다듬어 세운 우상이나 숭배물 따위를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아세라(Asherah)’는 ‘곧다, 번성하다, 복되다’는 뜻의 히브리어 아솨르(עשׁר)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고대 근동에서 아세라는 바알(Baal) 신의 아내요, ‘풍요와 생식의 신’으로 알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전에서는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기 위해 ‘창기’와 ‘미동(美童)’들이 벌이는 음란한 제전 의식으로 인해 성적인 타락이 자행되곤 하였습니다.

 

14: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십계명의 제2계명의 반복입니다(20:5) 그러나 이는 단순히 절하지 말라는 의미만이 아니라 어떤 신도 용납하지 말라는 강한 금지를 타나냅니다. ‘질투의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당신 외의 다른 존재를 숭배할 때는 결코 이를 용납하지 않으십니다(신 4:24; 5:9; 6:15). 이렇듯 질투하는 하나님의 성품은 하나님께서 그의 택하신 백성을 뜨겁게 사랑하신다는 또 다른 증거입니다.

 

15: 너는 삼가 그 땅의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지니 이는 그들이 모든 신을 음란히 섬기며 그 신들에게 희생을 드리고 너를 청하면 네가 그 희생을 먹을까 함이며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들과 언약을 맺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악한 자들과 동맹하는 것이 됩니다. 따라서 이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바람직하지 못하며, 아울러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파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분만 아니라 이방인과의 동맹은 우상 숭배 행위와 자연스럽게 연결될 소지가 다분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향하여 당신과 맺은 언약에 충실하며 당신만을 신뢰하며 살아야 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모든 신을 음란히 섬기며’ ‘음란히(자나:זנה)’는 ‘음행하다, 매춘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음란히 섬긴다’는 말은 가나안 족속들의 제전 의식이 성적으로 매우 문란함을 알려줍니다. 실제로 가나안의 제전 의식은 합법적 창기인 여사제(女司祭)와 제물을 드리는 자 사이의 음행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네가 그 희생을 먹을까 함이며’ 여기서의 희생(犧牲)이란 가나안 인들이 자신의 신들에게 바친 우상 숭배 제물을 가리킵니다. 물론 모든 짐승과 식물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기 때문에 여하한 것이라도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상숭배 제물인 줄 알고 마음에 꺼려하며 먹을 때는 스스로에게 걸림이 되는데 특히 의식법상 정결과 부정을 엄격히 규정하고 있는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불신자들이 볼 때에 우상제물을 함께 먹는 것은 같은 편이라는 오해를 충분히 받을 수 있기에 ‘모든 것이 가하지만,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라’는 말을 우리는 잘 새겨야 할 것입니다.

 

16: 또 네가 그들의 딸들로 네 아들들의 아내를 삼음으로 그들의 딸들이 그 신들을 음란히 섬기며 네 아들로 그들의 신들을 음란히 섬기게 할까 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한 결과는 타락이었습니다(창 6:1-7).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이방 여인들과의 결혼을 엄격히 금하신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이는 잘못된 결혼으로 신앙의 순수성을 오염시킬 소지가 많음을 교훈합니다. 이방 여인들을 아내로 맞은 솔로몬의 잘못된 결혼이 이스라엘 왕국 분열의 직접적 원인이 된 것은 이런 사실을 단적으로 증명하기에 충분합니다(왕상 11장). 오늘날 교회에서 성도와 불신자 간의 결혼을 금하고 있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고후 6:14-18).

 

17: 너는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말지니라.

  이 역시 십계명 중 제1계명의 반복입니다. 여기서 특히 우상을 ‘부어 만들지 말라’고 명하고 있는 것은 얼마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부어 만든 전례(32:4,8)가 있기 때문입니다.

 

18: 너는 무교절을 지키되 내가 네게 명한 대로 아빕월 그 기한에 칠 일 동안 무교병을 먹으라 이는 네가 아빕월에 애굽에서 나왔음이니라.

  무교절은 출애굽을 기념하기 위해 유월절로부터 1주일간 계속되는 절기입니다. 이 일주일 동안 누룩이 없는 떡을 먹는 것이기 때문에 무교절이라고 합니다(12:17). 아빕월은 일명 ‘니산월’로도 불리는데()느 2:1), 유대 종교력으로 제1월, 민간력으로는 제7월입니다. 이는 오늘날의 앙력 3-4월에 해당되는바 팔레스틴에서는 이때 보리 추수를 합니다(23:15).

 

19: 무릇 초태생은 다 내 것이며 무릇 네 가축의 수컷 처음 난 우양도 다 그러하며

  초태생은 ‘태의 첫 열매’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든 초태생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이유는 애굽에서 10번째 재앙 시 죽음을 면한 이스라엘 장자들의 모든 생명이 하나님의 것임을 상기하며 또한 이를 대대로 기념하기 위함입니다(13:2; 레 27:26,27).

 

20: 나귀의 첫 새끼는 어린 양으로 대속할 것이요 그렇게 아니하려면 그 목을 꺾을 것이며 네 아들 중 장자는 다 대속할지며 빈손으로 내 얼굴을 보지 말지니라.

  나귀는 하나님께 제물로 들릴 수 없는 부정한 동물로 분류가 됩니다. 그래서 나귀의 첫 새끼는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 대신 어린 양을 드리며 나귀의 첫 새끼는 살려 두었습니다. ‘대속’은 값을 지불하고 구해내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소유는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소유의 첫 열매나 초태생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모든 소유가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경우는 장자를 희생 제물로 드릴 수가 없기 때문에 장자를 대속할 수 있는 어린 양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 대속의 원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제물이 되심으로써 우리 모든 택한 죄인들의 대속물이 되셨습니다. ‘빈손으로 내 얼굴을 보지 말지니라.’ 이는 헌금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았으니, 받은바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예물을 드리라는 말입니다. 사실 우리가 주께 예물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되돌리는 것에 불과합니다(말 3:8). 따라서 예물은 인색함이나 억지로 드려서는 안 되며 감사하며 자발적인 자세로 드려야 합니다(고후 9:7).

 

21: 너는 엿새 동안 일하고 제 칠 일에는 쉴지니 밭 갈 때에나 거둘 때에도 쉴지며

  십계명 중 제4계명의 반복입니다. 이러한 안식일 규례는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제 일곱 째 날에 쉬신 것을 기념하는 것입니다(창 2:3). 또한 이는 성도들이 그 날에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며 하루를 특별히 구별하여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봉사하기 위함입니다(20:8-11). 팔레스틴에서는 우기와 건기가 비교적 명확하여 내리는 비를 놓치지 않고 밭갈이를 하며, 파종하고 기타 농사일을 진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식일에는 그런 일손마저 놓고 안식하라는 것은 어떠한 자세로 안식일 규례를 지켜야 하는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22: 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 가을에는 수장절을 지키라.

  보리 등의 농작물 수확을 감사하는 절기로 유월절 후 50일째 되는 날입니다. 그래서 이 날은 맥추절 또는 오순절이라고 부릅니다(23:16; 신 16:10). 수장절은 장막절 또는 초막절이라고도 합니다(출 23:16; 신 16:13). 가을에 포도나 올리브 등 과실 수확을 기념하는 추수감사절입니다.

 

23: 너희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 보일지라.

  이스라엘의 3대 절기인 무교절, 맥추절, 수장절에 하나님께서 지시한 곳(신 12:1-14)에 모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하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가나안 거주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세 절기 때마다 예루살렘에 모여 절기를 지내며, 이스라엘 중에 있는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일을 했습니다(신 26:10,11).

 

24: 내가 열방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네 지경을 넓히리니 네가 매년 세 번씩 여호와 너희 하나님께 보이러 올 때에 아무 사람도 네 땅을 탐내어 엿보지 못하리라.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거주하던 원주민들을 쫓아내 후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시며 또한 그 경계를 최대한 확장시켜 주시겠다고 한 약속은 본 서에서만도 수차례 나옵니다(3:17; 23:23, 28-31; 33:1,2). 그 약속은 이미 아브라함에게 주어졌던 것으로(창 15:18), 솔로몬 때에 이르러 비로소 성취가 되었습니다. 훗날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그곳에서 완전히 정착하게 되면 백성들은 일 년에 세 번, 예루살렘 중앙 성소에 모여야 했습니다(신 12:1-14). 따라서 그 때에는 전국 각지의 온 마을이 텅 비게 되는데 외적이 침입하게 되면 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전역을 친히 지키시고 방어하심으로써 아무도 침입하지 못하게 하신다는 약속입니다.

 

25: 너는 내 희생의 피를 유교병과 함께 드리지 말며 유월절 희생을 아침까지 두지 말지며

  하나님께 바치는 희생 제물은 대속의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희생의 피는 죄를 사하게 하는 피를 의미합니다. 이를 증명하는 역사적 실례로는 유월절에 이스라엘이 어린 양을 잡아 문설주와 좌우 인방에 바름으로 죽임을 면한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출 12:7). 그러나 이는 궁극적으로, 어린 양 되신 그리스도의 보혈만이 인류의 죄를 대속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예표합니다(히 9:13,14). ‘유교병과 함께 드리지 말며’ 유교병은 누룩이 들어 있는 떡으로 영적으로 부패함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대속으로 말미암은 구속의 상징인 희생의 피와 부패함의 상징인 유교병을 함께 드리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빛과 어둠,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조화를 이룰 수 없다고 교훈하고 있습니다.(고후 6:14,15)

 

26: 너의 토지 소산의 처음 익은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며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지니라.

  염소 새끼를 어미의 젖으로 삶는 것은 가나안 사람들의 잔인한 풍습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런 악한 풍습을 본받지 말도록 하셨습니다. 실제로 현대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은 양고기를 먹은 후 우유는 고사하고 크림이 들어 있는 커피도 마시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명령이 글자 그대로 의미는 아니라 하더라도 이는 실제로 하나님의 인자와 자비가 미물(微物)에게까지 임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27-35절은 시내산에서 40일 간 백성의 중보자로서 금식 기도하여 십계명 새 돌 판을 받아 내려온 모세의 얼굴에 신비한 광채가 발산되었던 오묘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결국 참으로 하나님과 선한 교제를 유지한 자의 영광을 암시하면서 특히 구속사의 관점에서 새 천국에서 성도들이 하나님과 완전한 교제를 회복하였을 때 받을 영광을 상징합니다(빌 3:14)

 

2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말들을 기록하라. 내가 이 말들의 뜻대로 너와 이스라엘과 언약을 세웠음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지금 모세나 이스라엘과 맺고 계신 언약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이는 모세가 처음 시내산에서 받은 언약의 돌 판이 이스라엘의 금송아지 숭배사건으로 깨어졌기 때문에 새로운 돌 판을 새기기 위해 두 번째로 반복되는 언약입니다(32:19). 그러므로 여기서 ‘언약을 세웠다’는 말은 언약을 회복시켰다는 뜻입니다.

 

28: 모세가 여호와와 함께 사십 일 사십 야를 거기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아니하였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언약의 말씀 곧 십계를 그 판들에 기록하셨더라.

  모세는 첫 번째 십계명 두 돌 판을 받을 때에도 시내산에서 40일을 머물렀었습니다(24:18). 그러므로 이번 것과 합하여 그는 도합 80일을 시내산에서 지내면서 금식하였던 것입니다. 그러한 기간은 실로 인내와 연단의 기간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십계명과 율법이 이스라엘에겐 더욱 더 소중한 것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모세가 새로 만들어 온 돌 판에 친히 십계명을 새기셨습니다.

 

29: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자기 손에 들고 시내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씀하였음을 인하여 얼굴 꺼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에 접하게 됨으로 자신도 그 거룩함을 덧입게 되었습니다.(고후 3:18) 이처럼 거룩하신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지속하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거룩함에 참여하게 되며, 따라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영광을 타인에게 비추게 되어 있습니다.(마 5:16) 성경에서 성도를 가리켜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부르는 것도 바로 이런 연유입니다(고후 3:15).

 

30: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볼 때에 모세의 얼굴 꺼풀에 광채 남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이와 유사한 경우는 변화 산에서 변형되시어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셨던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마 17:2). ‘광채나다’(카란:קרן)는 말은 ‘뿔이 나다’는 의미도 있는데, 모세의 머리에 뿔이 났다는 것은 있을 수 없으므로, 마치 모세의 얼굴에서 나는 광채가 머리 주변에 뿔처럼 혹은 가시처럼 뻗어나갔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31,32: 모세가 그들을 부르니 아론과 회중의 모든 어른이 모세에게로 오고 모세가 그들과 말하니, 그 후에야 온 이스라엘 자손이 가까이 오는지라 모세가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다 그들에게 명하고

  모세가 부른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입니다. 이들은 백성들 중 연장자로서 백성을 바른 길로 인도하며 마을 행정 책임도 지고 있던 장로들을 의미합니다(4:29).

 

33: 그들에게 말하기를 마치고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웠더라.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채 나는 모세의 얼굴로 인하여 모세를 섬기려는 유혹에 사로잡힘으로 다시금 하나님께 범죄하는 잘못에 빠질까 염려하기 때문입니다.

 

34,35: 그러나 모세가 여호와 앞에 들어가서 함께 말씀할 때에는 나오기까지 수건을 벗고 있다가 나와서는 그 명하신 일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며,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얼굴의 광채를 보는 고로 모세가 여호와께 말씀하러 들어가기까지 다시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웠더라.

  모세는 백성들을 염려하여 그들 앞에 설 때에는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려 광채를 차단하였지만, 회막(33:7)에 들어가 하나님 앞에 설 때에는 수건을 벗었는데, 하나님의 현현하심과 하나님의 영광을 밝히 보기 위함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언제든지 주 안에 거하기만 하면 마치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듯 주의 영광을 밝히 보게 되리라고 하였습니다(고후 3:1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