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출애굽기 제31장 강해 - 성막 제조자 임명과 안식일 준수 명령

chukang 2012. 12. 22. 16:16

 

첨부파일 출애굽기 제31장 강해.hwp

 

출애굽기 제31장 강해 - 성막 제조자 임명과 안식일의 강조

 

  1-11절: 성막 제조를 명하신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보여주신 성막의 식양을 실제로 제작할 두 책임자를 직접 선택하셨습니다. 일꾼을 택하시고 그들에게 성령으로 충만케 하시며 지혜와 총명과 재주를 부어 주심으로써 귀한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셨습니다.

 

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사렐을 지명하여 부르고

  ‘훌’은 이스라엘이 르비딤에서 아말렉과 싸울 때 아론과 함께 모세의 팔을 들어 올려 이스라엘이 승리케 하는데 기여하였습니다.(17:10) 그리고 그는 모세가 시내산에 계명을 받으러 올라갔을 때에 아론과 함께 백성들을 다스렸던 사람이기도 합니다(24:14). ‘우리’는 성막 건축자 브사렐의 부친입니다. 이 사람의 신상에 대해서는 특별히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브사렐을 소개하면서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까지 언급한 것은 중요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즉 ❶ 브사렐이 하는 일이 큰 중요성을 가진다는 것이며, 출애굽기 마지막 장까지 브사렐의 이름이 여러 번 기록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특별히 37:1에는 법궤를 만든 자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❷ 모든 성경 말슴이 그렇듯이 브사렐에 관한 기록도 허구가 아닌 엄연한 역사성(historicity)에 근거한 것임을 말해 줍니다. ‘지명하여 부르고’ 지명하다(nominate)는 말은 여럿 가운데서 가려 뽑는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지명 받는 자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그를 당신의 도구로 사용하시려는 하나님의 선택이 더 중요함을 말합니다. 누구를 택하여 쓰시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부른다’는 말은 이름을 불러 인격적 관계를 맺고 소명 의식을 갖게 하여 당신의 일을 맡기는 것입니다. 이 말에는 ❶ 인격적 관계의 긴밀함이 나타납니다. 즉 하나님은 아담은 창조하신 뒤 그에게 이름을 지어주셨고, 그가 범죄했을 때에도 멸하지 않으시고 이름을 부르시며(창 3:9) 여전히 그와 교통하셨습니다. 도 노아를 부르셔서 그의 가족을 구원하셨으며(창 6:13),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인류에 대한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창 12:1). ❷ 부르는 자와 불림을 받는 자의 관계가 수직적인 차등의 관계임을 나타냅니다. 즉, 아담은 들짐승과 새들의 이름을 짓고 불러주었는데(창 2:29,20), 이것은 아담이 하나님으로부터 이들을 다스릴 권한을 위임 받았음을 말합니다. ❸ 하나님께서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신다는 것은 그 사람을 선택하사 당신의 소유로 삼으시겠다는 뜻입니다(사 43:1; 45:3,4). 따라서 하나님께서 브사렐을 지명하여 불렀다 함은 그를 선택하여 특별히 당신의 거룩한 사역을 맡기시겠다는 의미입니다.

 

3: 하나님의 신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재주로,

  하나님의 신은 성령을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먼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다음으로 성령의 충만한 능력을 힘입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에 매임을 받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들 속에는 하나님의 영이 계셔서 행할 바를 친히 가르쳐주십니다(막 13:11).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재주’ 하나님의 일꾼들이 갖추어야 할 4가지 재능입니다. 이 능력은 하나님의 은사와 인간의 끊임없는 노력의 총체적인 결합에 의해서만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꾼인 우리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선물인 갖가지 재능들을 사모하는 마음과 아울러 끊임없는 자기 개발이 요구됩니다.

 

4,5: 공교한 일을 연구하여 금과 은과 놋으로 만들게 하며, 보석을 깎아 물리며 나무를 새겨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고

  ‘공교한 일’과 ‘연구하다’는 말은 동일 어근에서 파생된 명사형과 동사형입니다. ‘연구하다’라는 동사 ‘하솨브(השׁב)’는 ‘생각하다(think), 고안해 내다(devise)'는 뜻이며, 명사형인 ’마하솨브(מחשׁבה)‘는 ’고안, 생각‘의 뜻이 됩니다. NIV에서는 ’예술적인 고안들을 만들기 위하여‘(새 make artistic designs)로 번역합니다. 브사렐을 택하신 하나님께서 브사렐 자신의 개인적인 인격과 능력을 무시하고 단지 그를 기계적인 도구(mechanical instrument)로 사용하신 것이 아니라, 그의 개인적 인격과 능력을 존중하셔서 브사렐을 생명력을 지닌 유기체적 도구(organic instrument)로 사용하셨다는 것입니다. '보석을 깎아 물리며’ 이는 대제사장의 성의 중 에봇의 두 견대와 흉패의 12보석에 이스라엘 12지파의 이름을 새기는 금속 세공 작업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며, ‘나무를 새겨서’ 성막 기구에 사용된 조각목을 깎고 조각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6: 내가 또 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을 세워 그와 함께 하게 하며 무릇 지혜로운 마음이 있는 자에게 내가 지혜를 주어 그들로 내가 네게 명한 것을 다 만들게 할지니

  ‘단’은 야곱과 그의 아내 라헬의 몸종이었던 빌하 사이에서 태어난 야곱의 다섯 번째 아들입니다(창 30:1-6). 단의 후손들은 ‘길의 뱀’과 같이 교활하며, ‘첩경의 독사’ 같이 호전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창 49:17). 이들은 ‘사자의 새기’(신 33:22)로도 비유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이들은 전투적이며 공격적이었습니다. 이런 배경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오홀리압을 부르셔서 성막 건축에 쓰일 휘장을 비롯한 각종 직물 제작을 담당케 하신 것은, 하나님은 외양을 보는 인간과는 달리 오직 중심을 보시기는 분이심을 보여줍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를 택하시지 않고(고전 1:26) 당신의 사역에 꼭 필요한 자들을 적재적소에 들어 사용하십니다. ‘세워’(나탄:נתן)는 본래 ‘주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그에게’로 번역되는 히브리어 ‘이토(אתו)라는 말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위의 두 단어를 직역하면 ’그에게 주어서‘가 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브사렐과 오홀리압을 주신 것은 마치 아담에게 하와를 ’돕는 배필‘로 주신 것과 같은 이치라 할 수 있습니다.(창 2:20) ’무릇 지혜로운 마음이 있는 자‘에서 ’무릇‘은 ’모든‘(all, every)이란 뜻입니다. ’지혜로운‘(하캄:חכם)은 ’숙련된‘이라는 뜻입니다. 즉 특별한 재능이 있는 모든 자 혹은 숙련된 기술이 있는 모든 자라는 뜻입니다.

 

7: 곧 회막과 증거궤와 그 위의 속죄소와 회막의 모든 기구와,

  증거궤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하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섭리를 증거하는 궤로, 이 궤 안에는 십계명 돌 판과 아론의 싹난 지팡이, 만나를 담은 항아리가 들어 있습니다(히 9:4). 일명 법궤(레 16:2), 혹은 ‘궤’(25:10)라고도 합니다. 증거궤는 지성소 안에 위치합니다. 속죄소는 증거궤를 덮고 있는 뚜껑으로 천사 형상의 그룹 둘이 속죄소 양끝에서 서로 마주보며 날개로는 속죄소를 덮고 있는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25:17-22).

 

8: 상과 그 기구와 정금 등대와 그 모든 기구와 분향단과

  진설병을 하나님께 진설하기 위해 마련된 떡 상을 ‘상(床)’이라고 하였습니다. 성소 안의 북편에 위치합니다. ‘정금 등대와 그 모든 기구’ 등대는 성소 안을 밝히는 촛대입니다. 이 등대는 성소 안의 남쪽에 위치하며 떡 상을 마주보고 있습니다. 이 등대에 속한 부속기구로는 불집게와 불똥 그릇이 있습니다. ‘분향단’은 분향을 위해 마련된 단입니다. 성소의 휘장 바로 앞 중앙에 위치하였습니다. 제사장은 분향단에서 조석으로 매일 하나님께 분향하였습니다.

 

9: 번제단과 그 모든 기구와 물두멍과 그 받침과

  번제단은 각종 제사 시 희생 제물을 하나님께 화제(火祭)로 드리기 위해 조각목과 놋으로 만들어진 제단입니다. 번제단은 성소 입구 앞의 성막 뜰에 위치합니다. 그리고 재를 담는 통과 부삽, 대야, 고기 갈고리, 불 옮기는 그릇 등 부속 기구가 있습니다. 물두멍은 제사장이 제사를 집례하기 전에 수족을 깨끗이 하여 정결케 하기 위해 마련 된 성물입니다. 성소의 입구와 번제단 사이에서 약간 남쪽에 위치합니다. 물두멍을 바닥에 흔들리지 않게 고정시키기 위해서 받침대가 필요했습니다.

 

10: 제사직을 행할 때에 입는 공교히 짠 의복 곧 제사장 아론의 성의와 그 아들들의 옷과

  대제사장의 예복에는 흉패, 에봇, 에봇 받침 겉옷, 세마포 속옷과 관 등이 있습니다. 대제사장은 이런 예복을 입음으로써 성별된 자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오늘에 있어서는 성도들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이므로(히 10:19) 모든 성도는 외형상의 구별이 아닌 신앙에 의한 행실로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어야 합니다(계 19:8).

 

11: 관유와 성소의 향기로운 향이라 무릇 내가 네게 명한 대로 그들이 만들지니라.

   관유는 제사장의 위임식이나 성막의 성물들을 성별할 때 사용하는 거룩한 기름입니다. 이 관유는 몰약과 유계와 창포와 계피에 감람기름 반 힌(Hin)을 섞어 정교하게 만들어졌습니다. 이 관유 역시 하나님의 거룩한 성물에 속했기 때문에 사적인 목적으로 제작되거나 사용되는 것이 엄격히 금지되었습니다. ‘성소의 향기로운 향’은 분향에 사용되는 향입니다. 이 향은 소합향, 나감향, 풍자향, 유향이 동일한 비율로 배합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모든 성물들은 오직 하나님께서 명하신대로만 제작하도록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는 인간의 얕은 생각이나 꾀, 고집 등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주의 일을 위해 부름을 받은 성도들은 주의 뜻을 행하기에 앞서 항상 먼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묻고 그 분의 결정을 기다리며 순종하는 자세가 요구됩니다.

 

  12-17절: 다시 안식일 규례를 주셨습니다. 성막 제도 명령을 마감하는 시점에서 안식을 규례를 강조하시는 이유는 눈에 보이는 성막 제도라는 중요한 일을 한다고 하여, 그 눈에 보이는 성막을 진정으로 중요하게 만드는 근본 원인인 하나님과 자신들의 언약 관계를 망각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입니다.

 

12,1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나의 안식일’ 이는 하나님께서 안식일의 주인이심을 나타냅니다(막 2:28; 눅 6:5). 하나님께서 안식일의 주인이시기에 안식일은 더 큰 구속력을 가집니다. 왜냐하면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날을 도적질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안식일은 동시에 사람을 위하여 있다는 데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막 3:27). 이는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통하여 인간에게 육체저의 노동으로부터 귀중한 휴식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휴식이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 나그네 등 인간뿐만 아니라 소나 나귀 등 모든 피조물에게까지 주어졌다는 것은 휴식의 적용 범위가 하나님의 모든 피조 세계에 공히 적용됨을 보여줍니다. ‘표징’(오트:אות)는 신호(sign)라는 뜻입니다. 구약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몇 가지 표징들이 있습니다. 이중 대표적인 것을 들면 무지개와 할례와 안식입니다. 이 세 표징의 특징은 ❶ 무지개는 심판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자비로 말미암는 구원에 대한 표징이며(창 9:13) ❷ 할례는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임을 나타내는 언약의 표징이며(창 17:10,11) ❸ 안식일은 거룩함과 복 주심의 표징입니다(20:11; 창 2:2,3).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고통 받던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2:23; 3:7,9) 이들을 이끌어 내어(신 4:20)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실 것을 약속하신 이유는(3:8; 15:17), 이슬라엘 백성을 거룩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친히 지명하여 부르신 선민이요(사 43:1), 성민으로 불린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런 사실은 동시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야 한다는(신 4:39,40) 것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먼저 당신을 사랑하고(신 6:5), 또한 이웃을 사랑하도록 교훈하셨습니다(레 18:19). 결국 이 두 가지 사랑의 실천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성화(Sanctification)의 핵심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 40년간 연단을 이겨내며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양육 받은 것도 하나님의 이와 같은 놀라운 섭리에 기인한 것입니다.

 

14: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성일이 됨이라. 무릇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죽일지며 무릇 그 날에 일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쳐지리라.

  ‘더럽히다’는 말은 ‘상처를 입히다’ ‘욕되게 하다’는 뜻입니다. 도 ‘약속을 어긴다’(break promise)는 뜻으로도 사용이 됩니다. 안식일을 더럽히는 자는 곧 세속적인 생활과 관련된 일체의 일들로 인해 하나님을 욕되게 하며 하나님의 신성을 더럽히는 자입니다. ‘죽일지며’(모트 유마트:מות יות)는 같은 의미의 동사를 두 번 반복하여 쓴 강조형입니다. 이는 ‘반드시 죽여라’가 됩니다. 이러한 안식일을 어긴 자의 처벌 규정은 안식일을 더럽힌 죄가 우상 숭배의 죄만큼 중죄임을 보여줍니다(신 8:19,20; 17:2-5). ‘생명이 끊쳐지리라.’ 이는 첫째 육체적 생명이 끊어질 뿐만 아니라, 둘째 영적인 생명의 단절, 즉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 분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됨을 말합니다.

 

15: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제 칠 일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무릇 안식일에 일하는 자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큰 안식일’(솨바트 솨바톤:שׁבת שׁבתון)은 ‘안식의 안식일’(the sabbath of rest, KJV)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의 의미에는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첫째 7년에 한 번식 돌아오는 안식년을 가리킨다는 견해와(23:11) 둘재 안식일이란 말을 두 번 반복해서 쓴 히브리어 원문에 비추어 볼 때 ‘철저히 안식하는 날’로 보는 견해입니다. 여기에서는 두 번째 견해가 바른 것 같습니다.

 

16: 이 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

  안식일이 하나님 앞에서 영원한 언약이라 함은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안식일을 지킴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평안과 휴식을 누리며 장차 임하게 될 영원한 안식에 참여할 복을 누리게 된다는 뜻입니다. 또 이 영원한 언약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공통적으로 적용이 됩니다.

 

17: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제 칠 일에 쉬어 평안하였음이니라 하라.

  이 구절 맨 앞에 히브리어 원문에 보면 ‘키(כי)’라는 접속사가 있는데, ‘왜냐하면’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안식하셨기 때문에 인간들도 안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엿새 창조에 대한 기념의 성격과, 하나님의 구속에 대한 감사의 성경입니다. 오늘날의 주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한 죄와 사망으로부터의 해방과 구원에 대한 감사의 성격을 가지는 것은 이러한 안식일의 참 의미를 그대로 이어받은 것입니다. ‘평안하였음이니라.’(나파쉬:נפשׁ)는 ‘숨, 호흡’이라는 말의 동사형으로 ‘숨을 쉬다’는 뜻입니다. 이는 안식일이 새로운 시작을 위한 재충전의 의미가 있음을 가르쳐줍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처럼 휴식이 필요해서가 아니며, 인간의 몸에 비유하여 표현한 ‘신인동형적’(anthropomorphic) 표현입니다.

 

18: 여호와께서 시내 산 위에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마치신 때에 증거판 둘을 모세에게 주시니 이는 돌 판이요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이더라.

  십계명이 두 판 판에 기록되었다는 것은 현대의 계약서처럼 같은 내용을 두 돌 판에 나누어 기록했다는 것이 아니라, 열 개의 계명을 두 돌 판에 나누어 기록했다는 뜻입니다(32:15). 이 증거판들은 후에 법궤 속에 보관되었습니다(40:20). ‘하나님이 친히 쓰신’ 이는 십계명이 신적 기원을 가지고 있음을 말합니다. 따라서 십계명은 한 치의 오류가 없는 완전한 법이며 이스라엘 백성 뿐 아니라 모든 주의 백성에게 예외 없이 적용되는 보편성을 가지고, 또한 만고불변의 영원성을 갖습니다. 하나님을 비방하는 자들이나 자유주의자들 가운데는 이러한 십계명과 율법을 인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으나,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의 근본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즉 모든 성도들의 구원을 위해 주신 것이므로 십계명 즉 율법의 근본정신은 ‘사랑’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