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론

예정론 8: 제9장 부당한 사변에 대한 경고

chukang 2012. 10. 19. 19:27

제9장 부당한 사변에 대한 경고

 

  여기서 우리는 부당한 사변(思辯)과 호기심을 갖고 이 심원한 예정론을 취급하는 데 대하여 경고를 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 점에 있어서 이 문제에 관한 소론 제1절에 있는 칼빈 자신의 말을 인용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입니다. “그 자체가 극히 복잡한 주제인 예정에 관한 토론은 인간의 호기심으로 말미암아 매우 복잡해졌고 따라서 위험성을 띠게 되었다. 인간의 호기심이 하나님의 비밀 중 어느 것이나 탐지하지 못할 것이 없는 것처럼 알고 금단의 미궁 속으로 들어가거나 혹은 그 한계를 넘어 비상하는 것은 어떤 제방으로도 방지할 수 없다. 우리가 예정 문제에 대해 연구하고자 할 때는 첫째로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지혜의 가장 심오한 곳을 침임하려는 자임을 기억하여 부주의하거나 자신만만하게 난입했다가는 거기서 자기의 호기심을 만족시킬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의 한계선을 넘을 경우 오류와 실패와 타락을 피할 수 없는 곤경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첫째로 기억해야 할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이상으로 예정에 관한 지식을 알고자 함은 통행 불가능의 도로를 보행하고 함과 어두움 가운데서 물체를 보고자 함과 같은 어리석음인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일종의 학문적 무지(無知)가 있는 어떤 주제에 과한 것들에 대하여 우리가 무지하다는 것을 조금도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이 진리들을 해명할 의무가 없습니다. 다만 우리에게는 성경에 계시 된 대로 말하고 또한 우리의 힘이 미치는 데까지 그 말씀을 오해와 반대로부터 옹호할 의무가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계시하신 것은 무엇이든지 설사 우리의 이성적 사색으로써 그 깊이를 다 구명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의심할 여지가 없이 참되고 믿을만한 것이라고 확신한다면 우리가 이와 같은 깊은 진리에 대하여 알 수 있는 전부는 성령이 이런 진리들을 계시함이 적당하다고 보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상호 관련된 목적들에 대하여 무지하기 때문에 그의 조언자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시편 기자는 “주의 판단은 신묘하나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판단을 통찰하고자 함은 마치 대양을 헤엄쳐서 건너려 함과 같은 일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법칙의 비의(秘義)를 알기에는 너무나 적은 지식의 소유자입니다.

 

  본 주제가 중요한 만큼 자연히 우리는 깊은 경건과 주의를 가지고 이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의 비의는 신중히 취급하지 않으면 안 되며 거룩한 사건에 관한 부당하고 주제넘은 사변은 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복음을 복음 그대로 순수하게 전하려면 예정에 관한 성경의 선언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고 조금도 은닉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이 교리가 종종 불경건한 자들에 의해 왜곡되고 남용될 것을 예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경에 아무리 명백하게 가르쳐져 있을지라도 성령의 빛을 받지 못한 자들은 예를 들면 하나님의 삼위일체적 존재나 그의 예지에 관한 지리도 그의 계획이 인간 개개인의 운명을 포함한다는 도리와 같이 불합리라고 황당무개한 것으로 생각될 것입니다.

  우리는 예정에 대하여 하나님이 계시하신 것만큼만 알 수 있는 동시에 계시하신 것만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입니다. 만일 그것만큼도 알아야 할 필요가 없었다면 그만큼도 계시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이 가르치는 데까지는 주저하지 않고 따라가도 좋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