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론

예정론 7: 제8장 성경은 모든 사상 체계를 비판할 최종 권위서이다.

chukang 2012. 10. 19. 19:25

제8장 성경은 최종 권위서이다.

 

  기독교인들 간의 모든 논쟁에 있어서 성경은 최고 법정으로 인정됩니다. 역사적으로 성경은 기독교계가 공통으로 인정해 온 권위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조화 있고 완비된 하나의 교리적 체계를 포함하고 있으며 성경의 전 부분은 상호일치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각 구절을 신중히 연구함으로써 이 조화를 추구해 나가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는 것을 믿는다고 Dr. Samuel G. Craig는 말하고 있습니다.

  워버톤은 모든 교리들의 시비에 관하여 ‘성경이 최고 최종의 법정이다. 따라서 모든 교리를 성경 앞으로 가져 와서 성경으로 음미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들의 신념의 진위는 하나님께서 그의 영감된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무오(오류가 없음)한 계시에서 설명되는 가르침과 일치하는가 혹은 차이가 나는가에 따라 판단되는 것이다. 칼빈주의에 대한 시비의 결정도 이 규준에 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찬가지로 알미니안 주의나 펠라기안주의도 이 규준에 의하여 음미되지 않은 안 된다. 우리의 모든 지론은 그것이 종교적인 지론이든 과학적인 지론이든 이 규준에 의해서만 결정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만약 우리의 지론이 성경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 속에는 공명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무오한 축자영감임을 믿는다. 우리는 성경이 유일한 권위서임을 지지하는 동시에 성경적 근거가 없는 교리는 무엇이나 참되지도 않고 본질적이지도 아님을 중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이 심오한 예정론의 진위는 오직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서만 판정될 것입니다. 자기의 관찰과 판단만 쫓는 사람은 아무도 하나님이 수행하고 계시는 계획의 기본 원리가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모든 철학적 사변(思辨: 생각이나 뜻을 분별)이나 추상적 추리들은 우리가 먼저 성경의 증거를 듣기 전까지는 무용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성경적 증거를 들을 때는 겸손히 복종하여야 합니다. 이 일들이 과연 그런가 그렇지 않은가를 알기 위하여 매일 성경을 상고한 베뢰아 사람들과 같은 고귀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아지기를 희망합니다.

  본서에서 논의되는 교리마다 우리는 성경의 많은 증명-직접적 또는 간접적 증명, 더 이상 대답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증명-그 힘과 범위와 명확함에 있어서 반대편에서 들 수 있는 어떤 증명보다도 훨씬 더 우수한 증명을 제시하였습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칼빈주의적 구원 계획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교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자에게 전혀 의문을 품을 만한 여지가 없으리만큼 명료하게 가르쳐지고 있습니다. 이 교리들은 극히 인상적인 방법으로 설명되었고 또 그 표현 방법이 자연스럽고 단순해서 누구나 알아 볼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만일 어느 누가 하늘에 별이 있으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하늘에는 무수한 별이 있다(시 8:3-4)고 대답할 것이며 또 다시 바다에 고기가 있으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바다에는 무수한 고기가 있다(시 104:25-27)고 대답할 것이며 또 다시 산림 중에 수목이 있느냐고 물으면 우리는 산림 중에는 무수한 수목이 있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누가 우리에게 성경에 예정 교리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은 이 교리로 가득 차 있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삼위일체, 그리스도의 신성, 성령의 인격, 인간의 유죄, 미래 심판의 실재와 같은 교리들이 성경적인 것은 이 교리들을 진리로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까지도 부인하지 않습니다. 합리론자나 고등비평가도 일반적으로 사도들이 복음적 칼빈주의적 교리를 믿고 가르쳤다는 것과 성경 주석상의 규칙을 엄밀히 적용한다면 사도들의 서술이 다른 어떤 해석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다만 그들은 그들 자신이 사도들의 권위를 수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생각지 않을 뿐입니다.

예를 들자면 그들은 사도들의 신앙을 ‘미개한 시대의 그릇된 관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 교리들이 발견되는 모든 구절들을 비평적으로 해석해 볼 때 이 교리 이외에 다른 어떤 의미도 발견할 수 없다고 말하는 그들의 증언의 가치를 손상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합리주의자는 성경이 이 교리들을 가르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 대해서 아무 권리도 가지지 못한다고 말하는데 그래도 그것은 성경의 교훈을 믿는다고 공언하면서 성경의 논증의 능력을 교묘히 회피하는 고등비평가의 역설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칼빈주의 교리를 가지고 알미니안파가 제시하는 성경 구절들을 해석하는 데는 그리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반면에 알미니안주의 교리를 가지고 칼빈주의자가 제시하는 성경 구절들을 설명하려면 억지 해석을 하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더구나 칼빈주의 교리는 그것과 모순되어 보이는 여러 장구(章句)들을 제시하는 것쯤으로 전복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장구(章句)들을 제시한다는 것은 결국 성경 자체에 모순이 있다고 하는 오류에 빠지는데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과학적 주석에 의한다면 개혁주의 신학에 대한 여러 반대가 주석상의 반대라기보다 오히려 감정상 또는 철학상의 반대임이 분명합니다. 만일 기독교인들이 공인된 성경 해석의 원칙에 따라 성경을 해석하는 것에 만족하였다면 저들의 신조 간에는 더 많은 조화가 있었을 것입니다. 컨닝햄은 ‘칼빈주의의 반대자들은 성경의 단편적인 구절들에만 기초하여 어떤 논제의 가능성을 말할 뿐 문제 전체를 지해 주는 성경의 전반적인 증거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음의 특성, 원인, 결과를 제시해 주는 성경의 진술을 종합적으로 또는 상호 연락을 취해가면서 관찰하여 공평히 평한다면 우리는 의심할 여지없이 성경이 제시하는 전반적 결론을 적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성경을 교리에 관한 유일의 권위서로 인정하는 개혁주의적 원리를 주장하는 한 칼빈주의 체계는 하나님 인생 구속을 논하는 유일한 체계로 존속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