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제23편 강해 -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어린 시절 양을 치던 목동이었던 다윗이 자신의 생활 체험을 바탕으로 쓴 시입니다. 인생의 주인이 되시며 인도자가 되시는 하나님과 하나님을 따르는 성도 사이의 절대적인 신뢰와 보호의 관계 안에서 성도가 받는 복을 목자와 양의 관계를 통하여 비유하여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 시에서 다윗은 여호와를 단지 육적이며 현실적인 만족과 안정을 공급하는 분만으로 소개하지 않습니다. 영혼을 소생케 하며,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사람은 때때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은 상황에 처하기도 하는 인생에서 영혼의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를 제공하셔서 영적인 안위와 만족, 그리고 참 기쁨을 누리게 하시는 영혼의 목자이십니다. 종국에는 원수들 앞에서 택한 백성들에게 큰 상을 차려주시며 잔이 넘치는 복을 주십니다.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에게 주시는 복은 전인격적이며 궁극적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백성으로 삼아주신 것은 실로 놀랍고 은혜로운 일입니다. 이런 사실을 가슴 깊이 감격할 때에 누구든지 다윗처럼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라는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호와’ 하나님의 성호로 언약 관계에서 사용됩니다. 구원의 하나님으로서의 성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를 단순한 언약 관계를 넘어서 목자와 양의 관계로 보다 발전시켜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목동이었기 때문에 양과 목자와의 관계를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목자는 양의 일상 생활 전체를 관장합니다. 양의 목숨까지 돌보아 주며, 양은 이런 목자에게 순순히 따를 때에 안전과 평안이 보장이 됩니다. 성경에서는 여호와를 목자로 비유하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고 있습니다(사 40:11;렘31:10;히13:20). 주님께서도 자신을 선한 목자로 또 그의 택하신 백성을 양으로 비유하시기도 하였습니다(요 10:1-18).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목자가 되시는 여호와의 선한 인도하심을 일생 동안 체험을 한 다윗의 생생한 신앙 고백인 동시에 본 시 전체의 주제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양이 된 택한 백성들의 삶을 하나님께서 주권 가운데서 세밀하게 살펴주시고 인도하시며 환난과 곤핍 가운데서도 풍족함으로 채우시는, 곧 모든 것을 합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역사하심을 깊은 체험한 자만이 고백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고백은 성도들로 하여금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만족하는 여호와께 대한 절대 신앙을 잃지 않도록 용기를 북돋우어 주고 있습니다.
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 도다.
‘푸른 초장’이라는 단어는 ‘광야’ 혹은 ‘사막’이라는 단어로 대조 될 때에 더욱 명확하게 됩니다. 황량한 광야와 척박한 산지가 대부분인 팔레스틴 땅에서 푸른 초장은 풍요한 삶의 터전인 동시에 생명력이 넘치는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양들이 먹을 양식인 싱싱하고 부드러운 풀이 풍성하게 자라고, 양들이 뛰놀며 뒹구는 곳입니다. 양의 생존을 넘어 건강하고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곳이 푸른 초장입니다. 따라서 푸른 초장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영육간의 강건을 위하여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동시에, 편히 쉴 수 있는 장소를 상징합니다. 거기에 더하여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 도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쉴 만한’(메누호트:מנחות)은 ‘잔잔한’이라는 뜻입니다. 즉 잔잔하고 깨끗한 물이 흐르는 시냇가로 양들이 물을 먹기에 적당한 곳을 가리킵니다. 세찬 물결이 흐르는 곳에서는 양들이 겁이 많아 물을 잘 먹지 않습니다. 다윗은 이처럼 목자가 자신의 양들을 가장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여,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물을 공급해 주는 자임을 비유하고, 하나님께서 필요 적절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제공해 주시는 분이심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팔레스타인 지역은 비가와도 금방 물이 스며들고 고이지 않으며, 연평균 강우량도 600mm에 불과한 곳이므로 시냇물이 흐르는 쉴 만한 물가는 사막의 오아시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인은 바로 이것에 비유하여 하나님께서 진정 자신의 생명의 원천이심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을 우리에게 영생의 물을 주시는 자로 말씀을 하셨습니다(눅 6:5). 이런 주님이 나의 인도자가 되심을 진심으로 감사하며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소생시키다’는 말은 지치고 목마른 양이 물을 마시고 푸른 초장에서 꼴을 뜯으며 쉼으로 생기를 되찾듯이 곤고한 삶을 사는 자가 새로운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영혼을 소생시킨다는 말은 죄 가운데서 죽어가는 영혼을 다시 살리어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는 것입니다. 이는 ‘회개시키다’는 뜻이 됩니다. 다윗도 한 때 죄 중에 방황했으나(삼하 11장)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회개하고 영적 소생을 입었습니다(삼하 12:13).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하나님께서는 영혼을 소생시키시어 악으로부터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의의 길은 죄악 된 생활로부터 돌아서서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감으로 형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3절의 ‘인도하시 도다’와 병행구를 이루어 목자가 양을 인도하듯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말씀으로 가르쳐 인도하시는 것을 뜻합니다.(딤후 3:16). ‘자기 이름을 위하여’ 성도가 잘못된 길로 갈 때에는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므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위해 성도를 바른 길로 인도하심을 의미합니다.(시 5:8). 인간의 모든 삶과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는 모두 하나님의 영광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고자 인간을 창조하시고 또한 범죄한 인간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양떼와 같은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함으로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함을 교훈하고 있습니다(고전 10:31).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자칫 잘못 발을 헛디디면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져 목숨을 잏ㅎ게 되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위태로운 골짜기입니다. 이는 ‘푸른 초장’, ‘쉴 만한 물가’와 대조되는 개념입니다. 팔레스타인의 요단 계곡 지대는 이러한 험한 골짜기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목자가 없아 양떼가 이곳에 방치 된다면 대단히 위험합니다. 다윗은 이러한 사실에 비유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없이 인생길을 걸어가는 자의 삶이 곧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어가는 것과 마찬가지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음침한 골짜기라도 주님의 손을 잡고 간다면 위험도 없고 두려움이 없습니다. 나를 안전하게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목자가 되시는 주님께서 나와 함께 가시기 때문입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지팡이와 막대기는 여호와를 목자로 비유한 것에서, 목자가 가지고 다니는 것입니다. 지팡이는 평상시에 양의 무리를 인도하는 데 쓰이는 것이고, 막대기는 양을 해치려 하는 맹수를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평상시에는 인자하고 세심한 손길로 인도하시고, 위급할 때에는 권능의 팔로 보호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이는 전쟁에서 패한 포로들 앞에서 전쟁의 승리자를 위하여 베푸는 승전 축하 잔치입니다. 다윗의 주변에는 일생동안 그의 목숨을 위협한 대적들이 많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그 모든 대적들을 물리쳐 주사 승리하게 하신 것을, 이런 기쁨의 잔치에 비유하여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다윗에게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삼하 7:9)고 약속하셨습니다.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한 상에서 식사를 같이 하는 것은 상호간의 친밀한 교제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므로, 하나님과 다윗의 매우 밀접한 관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잔치를 베풀게 되면 특별한 손님에게는 머리에 향기로운 기름을 발라주는 풍습이 있었습니다(시 133:2). 잔치석상에서 주인에게 기름부음을 받는 일은 대단히 영광스러운 일로, 주인의 극진한 친절과 호의를 입는 것입니다. 그처럼 하나님께서 다윗을 매우 존귀하게 여기셨음을 표현한 노래입니다. 또한 성경에서 기름을 머리에 바르는 것은 큰 기쁨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주인은 잔치가 시작되면 손님에게 포 즙을 가득 차게 부어주는데 이는 손님에 대한 풍성한 호의를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잔’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허락하신 기업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영적으로도 풍성한 은혜를 내려주셨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 왕국도 팔레스타인 일대를 장악할 정도로 강성하게 해 주신 것을 잔이 차고 넘칠 정도로 풍성하게 채워주신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베푸시는 은혜는 이처럼 조금도 부족함이 없고 풍성한 것입니다(롬 11:33). 다만 우리가 그런 풍성한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 누릴 수 있는 그릇을 준비하고 있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신앙의 물음이 될 것입니다.
6: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선하심’은 항상 좋은 것을 주시며 늘 ‘의로운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뜻합니다. ‘인자하심’은 택한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아니하신다는 언약에 근거하여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은총과 사랑에 근거하여 앞으로의 남은 삶도 하나님께서 권념해 주실 줄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는 말은 여호와의 집은 일차적으로 예루살렘 성막을 의미합니다.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서 계신 곳입니다. 다윗은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과 영원토록 동행하며 교제하는 삶에 대한 강한 소망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런 소망은 일평생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직접 체험했던바 인생의 참 행복은 오직 여호와와 함께 거할 때만이 얻을 수 있다는 다윗의 경험과 확신에서 우러나온 것입니다. 이 소망은 또한 모든 세대의 성도들이 궁극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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