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제25편 강해: 험한 세상에서의 참회와 간구
다윗이 지은 비탄(悲歎)시이지만 그 정확한 저작 시기와 배경은 알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비탄시들은 저작 동기가 원수로 인한 부당한 핍박과 역경이면 그런대로, 자신의 불의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로 인한 고난이면 그런대로 그 직접적인 저작 동기가 단순한 반면에, 본 시의 경우에는 원수의 핍박과 자신의 범죄로 인한 비탄이 복합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따라서 다윗이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급박히 지은 시라기 보다는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아 선민 이스라엘 신정 왕국이 세워진, 신본주의적 정통성을 가진 왕이었으면서도 일평생을 두고 대내외의 정적(政敵) 및 원수들과 투쟁해야 했던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또 미래의 역경을 조망하면서 자신의 불의를 참회하는 동시에 또 하나님의 구원을 희구(希求)하며 쓴 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1: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
여기에서 영혼(네페쉬:נפשׁ)은 생명(life)의 뜻입니다. ‘우러러 보나이다.’는 말은 ‘고개를 쳐들고 위를 바라보는 것’으로, 시인 자신의 영혼 곧 생명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앙망하는 그의 간절한 심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2: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로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로 나를 이기어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부끄럽다’는 말은 ‘수치를 당하다’는 뜻입니다. 수치는 원수들에게 굴복 당하여 겪게 되는 수모를 가리킵니다. 다윗은 자신의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절대 의지함을 들어 의인이 도리어 악인에게 소모를 당하는 일이 없게 해 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나의 원수’ 다윗의 시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단어로, 말로든 행위로든 다윗을 훼방하며 대적하는 모든 자를 가리킵니다. 이런 자들은 궁극적으로 다윗의 배후에서 역사하고 게시는 하나님을 대적하며 그분의 공의를 무시하는 자들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3: 주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무고히 속이는 자는 수치를 당하리이다.
시인 자신과 자신의 원수를 각기 ‘주를 바라는 자’와 ‘무고히 속이는 자’로 비유하여 대조시켜 이들의 결국 또한 각기 다를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바라는’는 ‘기다리다’는 의미로 신앙의 눈으로 미래의 구원을 명확히 바라보면서 현재의 고통이나 고난을 뛰어넘는 자세를 말합니다. 즉 주를 바라는 자는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심과 그분의 선하심과 공의로우심을 믿기에 현재의 곤고한 처지 가운데서도 낙심치 아니하고 의인의 궁극적 형통을 기대하는 자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인간의 모든 행위에 대하여 장차 선악 간에 철저한 공의의 보응을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는 자는 그날에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무고하게 남을 속이는 자와 같은 악인은 자신의 악한 행실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을 당하게 될 것이므로 그 수치가 이루 말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무고히 속이는 자’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든 행위를 감찰하고 계시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거짓말로 남을 모함하여 해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4,5: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바라나이다.
‘주의 도’ ‘주의 길’ ‘주의 진리’는 같은 의미로 하나님의 말씀 속에 계시되어 있는 뜻과 섭리를 각기 다른 측면에서 묘사한 말들입니다. 성도들은 평상시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고 있다가도 환난이 닥치면 그만 이를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간과(看過)하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행하기보다는 인간적인 해결책을 강구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위기에 처한 때일수록 더욱 더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깨닫게 해 주시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행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식적으로는 알기 쉽지만 그 뜻을 진정으로 깨닫고 실천하는 데 있어서는 성령의 도우심이 절대 필요하기 때문에, 이를 간구하는 신앙 자세는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야고보는 ‘너희 중에 지혜가 부족하거든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 1:5)고 하였습니다.
6: 여호와여 주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부터 있었사오니 주여 이것을 기억하옵소서.
다윗이 하나님께 죄사함과 구원을 호소하고 있는 근거입니다. ‘주의 긍휼’은 죄인이 회개할 때 외면치 아니하시고 마침내 돌아보시는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인자하심’은 당신의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겠다는 언약에 근거하여 자기 백성을 권면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합니다. 이러한 주의 긍휼과 인자는 하나님이 영원자존하시는 자인 것처럼 영원하므로 다윗은 그것들에 의거하여 구원을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다.
7: 여호와여 내 소시(少時)의 죄와 허물을 기억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을 인하여 하옵소서.
자신의 죄는 기억지 마시고 하나님의 긍휼을 간구하는 자신만 기억해 달라는 다윗의 간구는 너무도 진솔하고도 절박합니다. 다윗은 자신이 행위로는 하나님께 정죄를 당해 마땅하나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에 근거해 구원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내 소시의 죄와 허물’은 ‘내가 젊었을 때 저지른 잘못과 죄악’이란 의미이지만 넓은 의미로는 ‘지난날의 모든 죄과’를 뜻합니다.
8: 여호와는 선하시고 정직하시니 그러므로 그 도로 죄인을 교훈하시로다.
만일 하나님께서 정직하시기만 하다면, 즉 공의롭기만 하시다면 인간은 모두 다 죄인이니 하나님의 정죄를 당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면서도 또한 선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죄인을 회개하게 하시고 또한 당신의 말씀으로 교훈하셔서 죄악의 길에서 떠나 의로운 길로 가도록 인도하시며 결국 구원을 얻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어떻게 오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9: 온유한 자를 공의로 지도하심이여 온유한 자에게 그 도를 가르치시리로다.
‘온유한 자’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자신이 죄인임을 시인하며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자입니다. ‘가르치다’는 단순히 지식적으로 알게 하는 것이 아니라 거듭되는 훈련을 통해 완전히 몸에 익히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죄인을 절대 긍휼로 받아들이시되 그의 삶을 인도하심에 있어서는 절대 공의로 하셔서 결국 성화에 이르게 하시는 것입니다.
10: 여호와의 모든 길은 그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에게 인자와 진리로다.
‘여호와의 모든 길’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과 섭리를 계시해 보이시는 모든 말씀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인자와 진리’는 언약에 대한 신실하심으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총과 구원의 복을 가리킵니다. 다음으로 ‘그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그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는 자입니다. 따라서 본 절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여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는 여호와께서 실실하심에 따라 언약을 통해 약속하신바 모든 복을 허락하심을 가리킵니다.
11: 여호와여 나의 죄악이 중대하오니 주의 이름을 인하여 사하소서.
여기에서 시인의 죄악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이것은 7절의 ‘내 소시의 죄와 허물’과 같은 죄를 가리키는 말일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악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한 것이므로, 그 죄의 심각성을 여기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의 이름을 인하여 사하소서’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이나 성품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여기에서 자신은 연약하여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 언약을 끝까지 실행하셔서 하나님의 영광스런 이름에는 해가 가지 않도록 해달라고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의 이름’을 생각하는 시인의 태도는 곧 부패한 죄성 때문에 그 행위에 있어서는 실수가 많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 있어서 만큼은 누구보다 크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사 43:25; 렘 14:7; 요일 1:9).
12: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뇨 그 택할 길을 저에게 가르치시리로다.
불의가 득세하기 일쑤인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실족하지 않을 수 있는 비결이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 있음을(잠 1:7) 교훈해 주는 구절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 가볍게 여기지 않고 진심으로 청종하는 자이며 하나님은 또 그런 자를 진리 가운데로 올바로 인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13: 저의 영혼은 평안히 거하고 그 자손은 땅을 상속하리로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가 누릴 심령의 평안함을 가리킵니다. ‘그 자손은 땅을 상속하리로다.’ 농경 사회인 이스라엘에서 땅은 가문의 기업으로 물질적인 부(富)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땅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창 15:7; 신 4:1)은 궁극적으로 영적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천국을 예표합니다(히 11:8-10). 시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내세와 현세에서 하나님께 복을 받게 될 것임을 확실히 믿고 있습니다.
14: 여호와의 친밀함이 경외하는 자에게 있음이여 그 언약을 저희에게 보이시리로다.
‘친밀함(소드: סוד)’은 ‘은밀한 만남’을 의미합니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는 은밀히 만나셔서 자신의 뜻을 숨기시지 않고 밝히 보여주신다는 뜻입니다(민 12:8). 이는 곧 한 가족과 같이 특별하고도 밀접한 관계를 의미합니다. ‘언약을 저희에게 보이시리로다.’ 여호와께서 은밀한 뜻을 밝히 보여주신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언약의 비밀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택한 백성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섭리와 경륜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제하는 자들은 그러한 하나님의 섭리를 하나하나 깨달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자신의 구원을 확신하게 됩니다.
15: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앙망함은 내 발을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임이로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소망으로 조금도 낙심하거나 의심함이 없는 신앙의 자세를 보여줍니다. 시인은 자신의 곤고한 처지를 그물에 발이 걸려 위험과 곤란 속에 빠져있는 짐승에 비유하여 표현하면서 하나님께서 그러한 자신을 반드시 구원해 주실 것을 믿기 때문에 항상 여호와를 앙망한다고 고백합니다. 이는 실로 환난 중에서도 모든 염려와 의심을 떨쳐버리고 여호와를 절대 신뢰하는 불굴의 신앙 자세라고 하겠습니다.
16: 주여 나는 외롭고 괴롭사오니 내게 돌이키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이는 현재 시인 자신에게 닥침 암담한 상황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서 돌아서 계신 결과임을 깨닫고 다시 돌이켜 관계를 회복시켜 주실 것을 촉구하는 간구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시인을 멀리 떠나신 것은 결국 그의 죄악의 결과이므로 회개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7: 내 마음의 근심이 많사오니 나를 곤란에서 끌어내소서.
‘많다(라하브: רחב)’는 ‘넓히다, 확장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근심(차라: ערה)’은 ‘역경의 길’이라는 뜻입니다. 즉 ‘역경의 길이 넓어졌다’는 뜻이 됩니다. 긍정적인 의미에서 역경이 없어진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의미로써 역경의 길이 많아진 것입니다. 따라서 현재 시인의 마음 상태는 완전히 고통에 사로잡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그 같은 심적 고통의 원인은 죄책감뿐 아니라 자신의 원수들이 자신을 심히 군박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8: 나의 곤고(困苦)와 환난을 보시고 내 모든 죄를 사하소서.
‘곤고’는 내적인 심적 고통을, ‘환난’은 원수로 인한 외적인 고난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내외적인 곤고와 환난은 궁극적으로 죄로 인한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사 59:1,2). 이에 다윗은 그 모든 고통의 궁극적인 원인인 죄의 용서를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19: 내 원수를 보소서 저희가 많고 나를 심히 미워함이니이다.
대적들의 많은 수와 그들의 극심한 미움에 대한 호소는, 죄는 미워하시되 택한 백성만큼은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20: 내 영혼을 지켜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오니 수치를 당치 말게 하소서.
2절의 내용과 그 의미가 일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께 피한다’는 말은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나타내는 말로 ‘주를 바라봄’(3,5,15,21절)과 동일한 의미입니다.
21: 내가 주를 바라오니 성실과 정직으로 나를 보호하소서.
‘성실’은 중도에 변함이 없이 일관된 자세를 보이는 것이며, ‘정직’은 거짓됨이 없는 것입니다. 이는 곧 하나님의 성품과 관련된 것으로 여기서 시인은 자신의 구원은 자신의 행위에 달린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성실과 정직에 달린 것임을 고백하는 심정으로 구원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22: 하나님이여 이스라엘을 그 모든 환난에서 구속하소서.
다윗은 이제까지 자신의 구원을 위해 간구를 했지만 본 절에서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위한 중보 기도로 본 시를 끝맺고 있습니다. 이는 곧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백성들이 처해 있는 제각기 고난을 자신의 아픔과 동일시 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다윗의 태도는 신앙공동체의 일원인 성도들에게 교훈해 주는 바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성도들은 비단 자신의 문제를 위해서만 기도할 뿐 아니라 모름지기 다른 믿음의 형제들 및 자기 민족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중보 기도해야 함을 알려주고 있습니다(요 17:1-26; 롬 10:1-4; 엡 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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