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제24편 강해 - 법궤 안치 감사의 시
다윗이 온 우주의 주권자각 되시는 만왕의 왕이요 영광의 왕이신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를 오벧에돔의 집에서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인 시온 산성으로 옮겨 안치할 때(삼하 6:12-19) 감격과 기쁨에 겨워 지은 시입니다.
본 시는 3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1,2절은 창조주로서의 하나님께 대한 찬양으로, 천지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무엇보다 먼저 여호와 찬양의 필연성을 확립하고 있습니다. 3-6절은 여호와를 경배하는 자의 마땅한 자세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를 시온 산에 안치하기에 파서 그 법궤를 대하는 자들의 마음가짐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7-10절은 법궤가 성소에 도착하였을 때 성소의 문지기들에게 영광의 왕이 왕궁으로 입성해 보좌에 앉든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물인 법궤가 성소로 들어갈 터이니 성소의 문을 활짝 열라는 외침입니다.
본 시의 깊은 뜻은 여호와 임재의 결정적 증거이신 임마누엘 예수 그리스도 곧 영광의 주님을 맞이하고 그 마음 가운데 모시는 성도의 기쁨과 찬양, 그리고 마땅한 경배의 자세 등을 오묘하게 예언 하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영광의 왕께서 영원한 성소의 문으로 들어가심을 찬양한 본 시는 예수의 십자가 수난을 위한 예루살렘 입성과 나아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후 영광된 모습으로 하늘 성소의 자리로 올라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까지 예언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 시는 내용상 메시아 예언시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본 시는 초대 교회 당시 ‘예수 승천절’에 낭송되었으며, 오늘날에도 부활 절기에 여러 교회에서 즐겨 낭송되고 있습니다. 본 시는 우리에게 전 우주의 왕이신 여호와와 그리스도를 경건한 자세로 인정할 것을 교훈함과 아울러 주를 그 심령과 인생에 받아들임으로써 주의 영광과 환희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1: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땅’과 ‘세계’, 그리고 ‘거기 충만한 것’과 ‘그 중에 거하는 자’를 서로 병행시켜 천지만물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임을 강조함으로써 본시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즉 시인은 세상에 있는 모든 물질이나 또 그 속에 거하는 모든 자들이 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들임에 근거하여 만물에 대한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이처럼 천지만물이 모두 다 하나님의 것이니 그의 소유된 자들인 인간은 하나님을 경외함이 마땅함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2: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히브리어 본문에는 본 절 앞에 ‘왜냐하면(키:כי)로 시작을 하고 있어서 1절에 언급한 모든 만물이 여호와의 것이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의 주인이심은 그 분이 그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시며 강들 위에 건설‘하셨다는 말은 직접적으로는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하의 물을 바다와 강으로 모으시사 땅이 드러나게 하신 창조 사역(창 1:9,10)과 관련한 표현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다윗이 드러내고자 하는 의믄 땅, 바다, 강의 모든 피조물의 삶의 터전을 상징하는 것이므로 하나님은 바로 그 모든 피조물들에게 삶의 기반을 주신 분이시며, 따라서 그것들에 대한 절대 주권을 소유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3: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여호와의 산’과 ‘거룩한 곳’은 같은 의미의 말로 대구시킨 표현으로 앞의 2절에서 소개한바 모든 피조물들에 대해 절대 주권을 가지신 창조주 하나님은 절대 거룩하신 분이심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그곳에 오르며 설 자가 누구냐는 말은 그렇게 모든 피조물들과 구별되는 절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경배할 자격을 갖춘 자가 누구냐는 물입니다. 이에 대한 답은 4절에 주어지고 있습니다.
4: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손’은 행위를 상징하는 말로 ‘손이 깨끗하다’는 말은 흠 없는 깨끗한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마음은 사람의 내면적인 자세를 상징하는 것으로 ‘마음이 청결하다’는 말은 외면적 행동뿐만 아니라 내면적으로도 사악한 생각을 품지 아니하고 은밀하게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는 인간이 영원토록 누릴 수 있는 것이 못 되는 이 세상의 것들에 지나치게 탐닉하는 헛되고도 어리석은 욕심에서 벗어나야 하며, 또한 자신의 말을 지키지 않는 불성실한 태도를 버리라는 충고입니다. 이는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적극적으로 행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교훈한 것입니다. 절대 거룩하신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과 교제할 자는 곧 그 행위나 마음 자세가 그분의 거룩한 성품에 맞는 자이어야 함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5: 저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4절과 같이 손, 마음, 입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칭함을 받고서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제할 수 있는 복을 누리게 된다는 뜻입니다. 물론 이 말은 인간이 자신의 행위로써 하나님께 의롭다 인정받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이것은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제하는 자는 그 행실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삶을 힘써야 함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사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은 구약 시대에나 신약 시대에나 오직 동일하게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의할 뿐입니다(합 2:4; 롬 1:17).
6: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셀라).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어떠한 자인지를 4절에 이어서 다시 언급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이 하나님을 붙들고 씨름하여 복을 받은 것처럼(창 32:22-30) 하나님을 갈망하는 자가 하나님과 영원토록 교제할 수 있는 복을 받게 됩니다. 4절에서는 하나님의 산에 오를 자의 자격에 대해 윤리적인 측면에서 말했다면 본 절에서는 종교적인 측면에서 그 자격을 말한 것입니다. 이는 결국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는 행함과 믿음이 함께 병행되지 않으면 안 됨을 교훈합니다. ‘셀라’는 노래를 부를 때에 음을 높이라는 지시어인 것으로 추정되는 음악 용어입니다.
7: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7-10절까지의 내용은 다윗이 오벧에돔의 집에 있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길 때의 정경을 배경삼고 있습니다(삼하 6:12-19). 본절에서 시인은 의인법을 사용하여 문들에게 열릴 것을 명령하고 있는데, ‘문’은 시온에 설치된 성소인 장막(tabernacle)의 문입니다. 이것은 당시 예루살렘 성전이 건축되지 않았지만 장차 세워질 성전의 장엄한 입구를 염두에 둔 표현으로 보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것은 영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의 성전인 성도 자신(고전 3:16)의 ‘마음 문’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실 때 우리가 마음 문을 열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와 영원토록 거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계 3:20).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예루살렘 성막도 예루살렘 성전도 영원히 존속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다윗이 성소의 문을 가리켜 ‘영원한 문’이라고 노래한 것은 지극히 정당합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영원히 존속하는 하늘 성소를 예표하는 것으로써 그 모형은 폐하여졌지만 그 실체는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인해 굳건히 서 있기 때문입니다(히 9:23-28).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도다.’ 시인은 법궤가 성막에 들어가는 것을 온 천하에 위엄을 떨치시는 영광의 왕이신 여호와께서 왕궁에 입성하시는 것으로 묘사하여 노래하고 있습니다. 실로 신정 왕국 이스라엘에 있어서 진정한 왕은 여호와이십이다. 또한 그분은 천지 만물의 창조주로서 온 우주의 왕이십니다. 때문에 다윗은 이러한 만왕의 왕이신 여호와의 입성을 선포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은 물론 온 우주가 그의 주권에 복종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8: 영광의 왕이 뉘시뇨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오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이스라엘이 법궤를 앞세우고 전쟁할 때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인해 승리를 거둔 사실에 근거한 표현입니다. 시인은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능히 지켜 보호하시는 전능자이심을 전쟁 시에 뛰어난 전과를 거두는 강한 용사에 비유하여 표현하고 있습니다.
9: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7절에 이는 반복 구절로 여호와께서 온 우주의 최고 통치자이심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10: 영광의 왕이 뉘시뇨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셀라).
‘만군의 여호와’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다스리시는 분이시자 천군 천사들을 통하여 당신의 택한 백성들을 보호하시며 악인들을 징벌하시는 분이심을 강조하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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