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제27편 강해 - 절대적 신앙
본 시는 일평생 대내외의 정적들과 극한 갈등과 위기 속에서 살아야 했던 다윗이 남긴 비탄시의 하나입니다. 대부분의 비탄시는 시인이 당장 직면한 고통에 대한 호소, 구원의 간구, 간구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실 것에 대한 선취적 확신과 찬양 등의 내용과 순서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본 시에서는 이런 자연적이고도 기본적인 유형을 탈피하여 무엇보다 먼저 절대 초월자가 되시는 하나님의 궁극적 구원에 대한 절대 신앙의 확신이 먼저 피력되고 난 후에 구원의 호소 및 간구가 이어지고 또 다시 간략히 선취적 신앙에 의거한 확신과 찬양이 선포되는 구조로 진행되는 특징을 보입니다.
여호와의 궁극적 구원의 확실성은 기독교가 우리에게 승리와 구원의 진리임을 새삼 깨닫게 합니다. 기독교 진리는 분명 사단 및 인간의 죄악으로 오염된 현세상이 온갖 질고와 모순에 휩싸일 수밖에 없는 필연적 원인과 또한 하나님의 최후 심판이 시행될 세상 끝 날까지의 한시적 기간 동안에는 선과 악의 혼재가 불가피함을 말하며, 그 과정에 있어서는 모든 인간에게 혼돈과 고통이 필연적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궁극적으로는 마침내 시행될 하나님의 심판에 의한 정의와 사랑의 승리와 영원한 구원과 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 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 하리요.
빛과 대조되는 어둠은 흔히 대적들의 공격으로 인한 내적인 갈등과 곤경 등을 의미합니다. 빛은 생명과 구원 및 환희 등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빛이 어두움을 몰아내듯이 여호와께서는 모든 대적들을 물리쳐 주시며 또 성도를 생명과 구원의 길로 인도해 주시는 분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능력’ 능력(마오즈:מעוז)는 ‘피난처’라는 뜻으로 ‘산성, 방패, 요새’와 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생명의 능력’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명의 보호자이시며 피난처가 되심을 의미합니다. 내 생명의 능력이 되시는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계실 때에 악인들이 생명을 위협하며 준동할지라도 두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어떠한 위협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믿음에 굳게 선 자를 가리켜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자”(히 11:38)이라고 하였습니다.
2: 나의 대적 나의 원수 된 행악자가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다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맹수가 먹잇감을 사로잡아 갈가리 찢어 삼키듯이 자신의 대적들이 자신을 해치려고 달려든 급박한 위기 상황에서 시인이 직접 경험했던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3: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안연하리로다.
2절에 언급한 과거의 체험을 바탕으로 설사 적군이 와서 전쟁을 일으킨다 할지라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심령의 평안을 누리겠노라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이는 실로 일생 동안 전쟁터에서 수많은 적군과 맞닥뜨렸던 다윗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인해 적군을 물리치기도 하고 절대 절명의 위기 상황 가운데서 구원 받기도 한 자신의 생생한 체험을 바탕으로 한 신앙 고백입니다.
4: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청하였던’이라는 말과 ‘구하리니’란 말을 종합해 보면 시인이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하나님께 간구해 왔던 한 가지 요구 사항을 앞으로도 계속해서 구하겠다는 다짐의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한 가지 소원은 여호와의 집 곧 여호와의 전에 거하며 여호와를 경배하는 것입니다. 영원토록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제하기를 원한다는 뜻입니다. ‘여호와의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외면적 모습이 아니라 사람들이 흠모할 만한 품성 곧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신 그 분의 공의로우심을 뜻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베푸시는 은혜를 가리키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신령한 은혜를 늘 입기를 간절히 원하고 원하는 것입니다.
5: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바위 위에 높이 두시리로다.
시인은 여호와께서 환난 때에 자신을 지켜 보호하시는 절대적인 보호자 되심을 ‘자신을 은밀하게 초막 속에 두셔서 지키시는 분’, ‘그 장막 은밀한 곳에 숨기시는 분’, ‘높은 바위 위에 두시는 분’ 등 삼 중적으로 강조하여 표현하고 있습니다. ‘초막’은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지켜 보호해 주신 것을 기념하여 지키는 초막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임시로 거처하기 위해 나뭇가지나 잎으로 지은 가건물을 말합니다(레 23:42). 따라서 이것은 여호와의 보호를 상징합니다. ‘장막(tabernacle)'은 하나님께서 임재해 계심을 상징하는 성소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그 장막 은밀한 곳에 숨긴다.‘는 말은 환난 중에도 시인과 늘 가까이에 계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위 위‘는 전 시에 적의 공격을 받아도 쉽게 함락되지 않는 안전한 요새를 가리키는데, 여기에서는 결코 요동하거나 변하지 않는 하나님을 상징한다고 하겠습니다(시 18:2).
6: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두른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이는 원수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을 확신하는 말인 동시에 원수들을 패배시키고 완전한 승리를 얻게 되는 것을 확신하는 말입니다. 원수를 패배시킨 후에 승리의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온전히 돌려드리고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널리 증거 하겠다는 노래입니다. ‘즐거운 제사’라는 말을 볼 때에 현재 다윗은 성소를 떠나 있는 상황에서 다시 성소로 돌아갈 수 있기를 고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7: 여호와여 내가 소리로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
부르짖음은 혼신을 다해 하나님께 매어 달리는 간절한 기도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마음과 뜻과 힘을 당해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기도의 간절함은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비결 중의 하나입니다. 시인은 자신의 구원을 하나님의 긍휼에 근거하여 호소하고 있는데, 이는 죄인인 인간은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에 의해서만 구원의 소망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시 63:7; 롬 9:30, 31)
8: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 마음이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내 얼굴을 찾으라’ 하나님의 얼굴은 은총과 긍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내게 부르짖어 긍휼을 간구하라’는 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만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그를 구하면 만나리라.’(신 4:29) 말씀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도하라는 명령에 순종하여 기도하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살전 5:17). 이 명령에 순종하여 우리가 마음과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께 구하면 그는 우리를 만나주시고(시 4:29),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사 1:18), 분명한 응답을 주실 것입니다(마 7:7,8). 성도가 무슨 일에든 하나님께 기도함으로써 해결의 방도를 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9: 주는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버리지 말고 떠나지 마옵소서.
‘주의 얼굴’은 하나님의 은총을 상징하는데(시 113:1), 그 얼굴을 숨긴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기도를 거부하시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숨기지 마시고’ ‘버리지 마시고’ ‘떠나지 마소서’란 같은 의미의 말을 삼중적으로 강조하여 사용하여 기도 응답에 대한 간절한 소원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시인이 갑자기 과거에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베푸신 구원 역사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그것을 근거로 하여 현재 환난 중에 처해 있는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간구하는 자신의 기도에 힘을 더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는 곧 하나님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한결같이 동일하시고 신실하신 분이시니(히 13:8) 과거와 마찬가지로 현재에도 동일한 구원을 베풀어 주심을 믿는 시인의 신앙을 표출하고 있습니다.
10: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시인은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과 구원하시고자 택하신 당신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비교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보다 더 극진하며 영원한 것임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부모가 실제로 다윗을 버렸다는 말이 아니라 육신의 부모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해 자기 자식과 떨어지는 경우가 혹 있을 수 있으나 절대 권능을 가지신 하나님께서는 영원토록 자기 백성을 돌아보시며 거두어 주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실로 인간관계에서 가장 숭고한 부모의 사랑도 인간 자체의 연약함으로 무너질 수 있으나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 완전하며 견고하다는 사실에 대한 확신(롬 8:31)만큼 성도들에게 더 큰 위로는 없습니다.
11: 여호와여 주의 길로 나를 가르치시고 내 원수를 인하여 평탄한 길로 인도하소서
‘평탄한 길’은 울퉁불퉁하여 발부리가 걸려서 넘어지는 이이 없는 곧은 길을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대적의 위협이 없는 안전한 상황을 상징합니다. 다윗은 이러한 상황이 자신의 힘이나 의지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인도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고백하면서 원수의 위협에 처해 있는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당신의 택한 백성들에게 나아갈 길을 제시하실 뿐만 아니라 환난을 통해서도 자기 백성을 연단하신 후 때가 되면 평탄한 길로 인도하시고 합니다(삼하 7:14). 그러므로 성도는 어떠한 어려운 고난의 상황 속에서도 모든 것을 합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구원 섭리를 절대 확신하는 믿음의 인내를 가져야 합니다(롬 8:28).
12: 내 생명을 내 대적의 뜻에 맡기지 마소서. 위증자와 악을 토하는 자가 일어나 나를 치려함이니이다.
‘대적의 뜻’이란 다윗을 해치려고 하는 자의 사악한 ‘욕망’(desire) 혹은 ‘의지’(will)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대적들이 자신을 해하려는 궤계가 성공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 도움을 호소하는 것입니다. 위증자는 거짓 증거로써 남을 해하려고 하는 악인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악을 토하는 자’는 남에게 악담을 퍼붓는 자 또는 남에게 악행을 일삼는 자를 가리킵니다. 다윗은 이러한 모함을 종종 받았는데, 사울을 측근들로부터(삼상 24:9), 압살롬으로부터도(삼하 15:3)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악인이 의인을 핍박할 때 종종 행하는 일반적인 방법입니다.
13: 내가 산 자의 땅에 있음이여 여호와의 은혜 볼 것을 믿었도다.
‘산 자의 땅’이란 육신의 생명을 지니고 있는 자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자신이 숱한 죽음의 위기를 맞이했었지만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셔서 아직까지 목숨을 보전하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은혜 볼 것을 믿었도다.’ 이는 ‘내가 여호와의 은총을 입을 것을 믿지 않았다면 내가 이미 죽었을 jt이다.’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다윗이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현재 죽지 않고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자신의 감격을 더욱 높여 나타내기 위한 표현입니다.
14: 너는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바랄지어다’는 말은 소망 중에 인내하며 참고 기다리라는 말입니다. 다윗은 본 시 마지막 절인 본 절에서 ‘너’라는 2인칭을 사용해서 자신을 포함은 모든 성도들에게 어떠한 형편 중에라도 항상 여호와를 굳게 믿는 믿음에 굳세게 서 있으라고 당부함으로써 끝을 맺습니다.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용기를 주시며 항상 그와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실 때 주셨던 말씀이기도 합니다(수 1:9). 뿐만 아니라 이는 이 세상의 환난과 핍박으로 고통을 받는 모든 시대의 성도들에게 주는바 여호와를 신뢰하는 신앙은 그 모든 환난 중에도 반드시 승리를 가져다주는 것을 굳게 믿고 신앙의 정진에 최선을 다하라는 강한 권면의 말씀이기도 합니다(사 4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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