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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제28편 강해: 절대 공의에 근거한 구원의 간구

chukang 2012. 12. 12.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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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제28편 강해: 절대 공의에 근거한 구원의 간구

 

  아들 압살롬은 그의 추종자들과 함께 아버지의 왕권을 탐욕에서 탈취하고자 천륜까지 저버린 사악한 반역을 일으키고, 다윗은 단순한 정치적 위기를 넘어 전인격적의 위기에 빠졌을 때에 지은 비탄시입니다. 평생을 전장에서 살아 온 그지만 노년에 친자식에게 반역을 당한 고통은 말로 형언키 어려운 치욕이며 고통입니다. 이런 위기에 처하여 다윗은 이 땅에 속한 그 어떤 인간이나 권위에 호소하거나 아니면 그저 자신의 분노와 힘으로 문제 해결을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절대 공의의 주(主)로써 인생의 궁극적 심판자요 주재자이신 동시에 자신을 왕으로 세워주시고 지금까지 지켜주셨던 하늘의 여호와를 향하여 울면서 원수들과 자신 사이에 임재하사 자신의 정당성을 판결해 주시고 그러한 정당성에 기인한 구원을 주실 것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본 시는 여호와를 향한 호소와 간구로 시작하여 이를 절대 능력과 절대 은혜의 주께서 필히 이루어 주실 것을 평생 간직해 온 여호와 절대 신앙으로 확신하고 미리 자신의 승리를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에 감사하는 소위 ‘선취적 감사 찬양’으로 끝맺는 비탄시의 전형적 유형을 보이고 있습니다.

  구속사적 관점에서 볼 때에 하나님께서 세우셨던 위대한 왕 다윗이 이 세상 나그네 인생길에서 끝없이 역경을 당해야 했으며 또한 다윗이 그러한 위기를 오직 여호와 신앙으로 극복하고 꿋꿋이 승리와 전진의 삶을 살다 간 사실은 모든 성도들의 구속사적 삶의 예표입니다. 다윗의 생애는 이미 천국 시민권을 회득하였으면서도 이 세상에서 잠시 더 살아야 하는 모든 세대의 성도들이 오히려 성도이기 때문에 사단과 인간의 죄성으로 오염된 이 세상에서 당하는 각종 고난, 질고 및 이의 극복과 일맥상통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위기에 처할 때 세상에 속한 자들의 온갖 질시가 휘몰아쳐 오는 공포와 고통에 질식되지 말고 오직 여호와 신앙으로 이를 극복한 다윗처럼 이 땅과 이 세상이 주는 위기는 잠시 뿐이며, 여호와의 절대 공의가 실현되는 그날 우리의 전인격이 영생과 지복을 누리는 구속사적 구원이 영구히 실현될 것임을 확신해야 하겠습니다.

 

  본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먼저 전반부 1-5절은 절박한 위기 중에 처한 다윗이 하나님께 구원과 자신의 대적들에 대한 공의의 보응을 호소하며 간구하는 내용입니다. 후반부 6-9절은 자신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으로 악인에 대한 의인의 궁극적 승리와 구원을 확신하며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불의가 득세하고 있는 현 세상에서 하나님 뜻대로 의롭게 살고자 하는 성도는 핍박을 받기 마련입니다(딤후 3:12). 그러나 그런 핍박보다 성도에게 있어서 더 비참하고 끔찍한 일은 하나님이 성도의 기도에 응답지 않으시고 침묵하시는 경우입니다. 다윗은 이 때문에 본시 서두에서 하나님께 애타게 자신의 기도에 귀 막지 마시고 잠잠치 마시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하나님을 창양하고 기뻐하는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의인의 기도에 침묵치 않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악인에게 반드시 공의의 보응을 베푸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은 참으로 복되고 기쁜 일입니다.

 

1: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나의 반석이여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러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

  ‘부르짖다’(카라: קרא)는 ‘외치다’라는 뜻과 ‘도움을 청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는 위급한 시기에 또는 절망과 궁핍의 상황에서 도움을 간절히 구할 때 자주 쓰이는 단어로(창 27:34) 여기서도 기도하는 다윗의 간절한 심정을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나의 반석’에서 반석(추르:צור)은 대개 견고성과 불변성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절대적 보호와 그로 인한 안전을 뜻합니다. 이는 고난과 절망의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자신의 반석으로 믿으며 전적으로 신뢰하는 다윗의 여호와 신앙의 견고함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만일 절대 위기 속에서도 침묵하신다면 자신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이 될 것이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모든 시대의 성도들에게도 더 이상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만큼 간절하게 공의의 심판에 의한 자신의 구원을 간구하는 역설적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2: 내가 주의 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성소(Sanctuary)’는 다윗 당시 시온 산성에 설치된 장막(tabernacle)을 가리킵니다.(삼하 6:12-19) 여기서 다윗이 ‘성소가 있는 곳을 향하여’ 바라보는 것은 곧 그가 예루살렘을 떠나 피난 해 나온 상태에서 이 노래를 부르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나의 손을 들고’ 손을 하늘을 향해 드는 것은 히브리인들의 일반적인 기도 자세입니다.(왕상 8:22;사 1:15). 그 같은 자세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택한 백성들에게 주시겠다고 이미 약속하신 복을 풍성히 받고자 하는 심정을 나타내며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마음을 들어서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고자 하는 전적인 헌신의 마음을 나타냅니다.(애 3:41)

 

3: 악인과 행악하는 자와 함께 나를 끌지 마옵소서 저희는 그 이웃에게 화평을 말하나 그 마음에는 악독이 있나이다.

  ‘끌다’(마솨크:משׁך)는 ‘똑바로 뻗다’는 뜻 외에 ‘움켜잡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강제적으로 누구를 멸망의 길로 이끌거나 혹은 심판대로 끌고 간다는 뜻으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다윗이 자신이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행악자들과 다름을 강조하면서 자신을 그들과 함께 멸하지 말아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4: 저희의 행사와 그 행위의 악한대로 갚으시며 저희 손의 지은대로 갚아 그 마땅히 받을 것으로 보응하소서.

  성경적 응보 사상,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결국에는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선악 간에 정당하게 심판한다는 사상을 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는 하나님께 개인적인 차원에서 복수를 간구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신정 왕국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운 자에게 반역한 무리들로 인해 무너진 이스라엘의 도덕 체계와 질서가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역사로 인해 재수립되기를 간구한 것입니다.

 

5: 저희는 여호와의 행하신 일과 손으로 지으신 것을 생각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저희를 파괴하고 건설치 아니 하시리로다.

  ‘여호와의 행하신 일과 손으로 지으신 것’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천지만물과 그 안의 모든 것, 우주와 역사에 대해 절대 주권을 소유하고 계심을 의미합니다. 좁은 의미로서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기름 부어 신정 왕국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신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것을 모르는 반역자들은 하나님의 성호를 훼방하며(계16:9), 성도를 괴롭히며, 의인을 미워하고(시 5:11,12), 악을 선하다고 외치는 행위(사 5:20)는 결국 자신들의 멸망, 즉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초래하게 될 뿐입니다.

 

6: 여호와를 찬송함이여 내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심이로다.

  다윗은 자신의 기도가 확실히 응답될 것임을 확신하면서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리고 있습니다. 이는 그가 환난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음으로 구원을 얻었던 과거의 체험에서 비롯된 확신이며 또한 여호와의 공의가 신실하심을 절대적으로 신뢰함에서 비롯된 확신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마 21:22)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반드시 기도 응답을 얻을 것입니다.

 

7,8: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시니 내 마음이 저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저를 찬송하리로다. 여호와는 저희의 힘이시오 그 기름부음 받은 자의 구원의 산성이시로다.

  ‘힘, 방패, 산성’은 전쟁과 관련된 용어로, 적군을 단번에 파하시기도 하시고 자기 백성을 절대적으로 지켜 보호하시기도 하시는 하나님의 절대 능력을 상징합니다. 다윗은 이러한 능력의 하나님이 자신의 힘이 되어주셔서 자신이 결국 압살롬의 군대를 물리치고 승리할 것임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소망대로 다윗은 훗날 압살롬의 군대를 물리치고 수도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다시 평화와 번영을 누렸습니다(삼하 17:24-18:3). ‘여호와의 저희의 힘’이라는 말은 ‘나의 힘’ 즉 개인 다윗의 힘에 대조되어 이스라엘 백성의 힘이시라는 뜻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백성의 대표자로서 자신을 도우심은 곧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 대한 것임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처한 상황이 이스라엘 선민 전체, 나아가 하나님 나라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름부음 받은 자’는 다윗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메시아 왕국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기도 합니다. 다윗의 승리를 기대하는 본 시는 사단의 권세를 깨뜨리실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기대하는 시로도 볼 수 있습니다.

 

9: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주의 산업에 복을 주시고 또 저희의 목자가 되사 영원토록 드십소서.

  ‘주의 산업’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기업’이란 의미로 ‘주의 백성’과 같은 말입니다. 다윗의 최대 관심이 자신의 개인적인 구원이 아니라 오히려 그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백성의 평안과 번영이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다윗이 신정 왕국 이스라엘의 왕으로서의 자신의 위치와 사명을 잘 깨달은 훌륭한 지도자였음을 증거해 줍니다. 그는 일국의 통치자로서 자신의 당면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면서도 자기 백성들의 안위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잊지 않았던 것입니다. ‘저희의 목자가 되사 영원토록 드십소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삶을 주관하시고 저들을 보호하시며 인도하시는 영원한 통치자가 되어 달라고 요청하는 기도입니다. 이는 곧 이스라엘의 진정한 최고통치자가 다윗 자신이 아닌 하나님이심을 겸손히 고백한 말입니다. 다윗은 여호와를 ‘목자’로 표현함으로써 여호와께서 위엄으로 자기 백성을 다스리시는 분이 아니라 온유와 사랑으로써 자기 백성을 돌보시는 자이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