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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제30편 강해 -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chukang 2013. 1. 3.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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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제30편 강해: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다윗이 노년에 이르러 자신의 일평생동안 이어져 온 여호와의 은총으로 부족한 자신을 선민 이스라엘 왕국의 왕으로 세우시고 지키시며 승리와 영광을 얻게 해 주신 일을 돌아볼 때마다 흘러넘치는 감사를 찬양하는 시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아 세워진 신본주의적 정통성을 가진 왕으로서 그리고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훌륭한 왕이자 시인으로서의 은총을 누렸지만, 그 역시 불완전한 인간이기 때문에 자신의 죄성으로 야기 된 온갖 질고를 겪어야 했습니다. 일생동안 인본주의적 탐욕에서 자신의 번영과 왕권을 노리는 대내외의 숱한 정적들로 인하여 끊임없는 갈등과 극한 위기 상황을 맞이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다윗의 생애는 이미 천국 시민권을 획득하였으면서도(빌 3:20) 각자 죄성을 완전히 벗지 못한 채 구속사가 종결되는 세상 끝날까지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모든 세대 모든 성도들의 원형입니다. 이제 다윗이 구속사의 주체이신 하나님께로부터 자신이 일평생동안 받은 구원과 승리 및 사죄 등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우리 인생들의 영원한 복을 결정하는 구속사적 은총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성전 낙성가’라고 표기가 되어 있는 것은 본 시가 성전 낙성 시에 사용하기 위해 지어진 것임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다윗은 성전 건축을 준비하기는 했지만 그 낙성은 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내용도 성전 낙성식과는 젼혀 관련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전 낙성가로 불려진 이유를 추정해 보면, 포고 귀환 후에 재건된 성전 봉헌식(B. C. 516. 스 6:16-22) 때나 신구약 중간기인 암흑시대에 마카비가 중수하여 재봉헌한 때(B. C. 164) 곧 ‘수전절’ 행사에 본 시가 감사 찬양시로 선택되어 낭송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이 어느 특정 시기를 배경으로 기록했다기보다는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은 왕으로서 일생동안 이 세상에 속한 자들과 극한투쟁을 전개해야 했던 자신을 한 순간의 단절도 없이 끝없이 그리고 신실하게 지켜주신 하나님을 기리고자 쓴 찬양시입니다. 또한 이 시는 다윗 왕가의 후손이었던 히스기야 왕이 병들어 죽게 되었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한 후에 하나님께 감사 찬양한 노래(사 38:9-20)와 일맥상통하기도 합니다.

 

  1-3절은 먼저 연화를 향하여 평생 동안에 각종 은혜를 베푸신 데 대하여 감사 찬양을 하며, 4-5절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요청하면서 그 이유를 밝히는 부분입니다. 6-10절은 다윗의 신앙 가증으로, 자신이 이전에 하나님 앞에서 자만한 결과 고난에 처했었으며 그로인해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그분의 긍휼을 구했었던 사실에 대한 진솔한 고백입니다. 11-12절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간구에 응답해 주셨음을 고백하면서 이 때문에 자신은 영원토록 하나님께 감사 찬양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다윗의 신앙 선언입니다.

 

1: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 내사 내 대적으로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시인이 큰 위기 상황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구원을 받고 이에 감격하여 감사와 찬양을 올리고 있습니다. ‘주를 높일 것은’이란 말은 ‘내가 당신을 찬양합니다.’란 의미로, 시인이 자신을 극한 공경에서 구원해 주셨기 때문에 은혜에 감격하여 혼신을 당해 감사 찬양을 올리는 것을 뜻합니다. ‘끌어내다(달라: דלה)’는 우물 같은 곳에서 물을 긷다, 감옥에서 끌어내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깊은 웅덩이와 같은 극심한 위험에 직면했으나 하나님께서 자신을 들어 올려 구원해 주심으로 인해 원수들이 기뻐할 수 없게 된 데 대한 감사 찬양임을 알 수 있습니다.

 

2: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일부 학자들은 다윗이 중병에 걸렸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회복하고서 본 감사 찬양시를 지은 것으로 추정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1절에서 언급한 ‘대적’이라는 단어와 3,4절의 ‘구원과 찬양’의 의미를 생각할 때에 ‘고치다’는 ‘회복하다’, ‘세우다’는 의미로 어떤 위기 상황에 처한 다윗을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신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또 다르게는 환난으로 인하여 겪었던 정신적인 아픔을 치유해 주신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3: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음부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나이다.

  ‘여호와’는 본 시에서 10회나 언급될 정도로 중심 시어(詩語)를 이루고 있습니다. 일생동안 자신을 지켜 보호해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리는 시로서 구절구절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불러 시인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의 개인적인 친밀성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음부’는 ‘죽음 자체’ 또는 ‘무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나를 살리사’ 이는 거의 죽어가던 사람이 소생하거나 또는 어떤 생명체가 목숨을 유지하는 것을 가리킬 때 주로 쓰이는 단어입니다.

 

4: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

  ‘성도들’(하시딤:חסידים)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불변하는 사랑을 받고 또 하나님을 신실하게 사랑하는 자들를 가리킵니다. 구약 시대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해당되는 명칭이 아니라 영적 이스라엘 백성인 오늘날의 모든 성도들에게도 해당이 됩니다. ‘그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 여기서 ‘이름(제케르:זכר)’은 ‘기념, 기억된 것’입니다. 곧 성도들의 삶 속에서 체험하여 깨달아 알게 된 하나님의 성품과 그 은혜를 기억하고 찬양할 것을 촉구하는 말입니다.

 

5: 그 노염(怒焰)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여기서 ‘노염’은 인간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은총’은 죄를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를 가리킵니다. 다윗은 때로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죄에 대해 진노하사 고난을 주시기도 하지만 그것은 잠깐이며, 궁극적으로는 영원한 은총을 주시는 분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는 바로 고난 중에 있다 하더라도 성도들이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밤이 지나면 찬란한 태양이 비취는 아침이 오듯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조시함의 은총을 입는 자는 여호와로 인하여 지난날의 환난과 고통을 다 잊어버리고 심령에 진정한 기쁨과 평강을 누리게 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6: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과거 시인 자신이 주의 노염을 사서 대적으로 고난당하게 된 이유와 하나님의 은총으로 그런 고난에서 구원받고 기쁨을 얻게 된 경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시인이 형통할 때 그 형통이 마치 자신의 힘으로 이룬 것인 양 교만했었음을 뉘우치며 고백하고 있습니다.

 

7: 여호와께서 주의 은혜로 내 산을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우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산’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불멸의 이미지, 그리고 어떠한 난리 중에도 요동치 않는 견고함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습니다. 다윗은 이런 산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시온 산성을 수도로 삼은 다윗 왕국의 견고함이 전적으로 여호와의 은총에서 비롯된 것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는 다윗이 자신의 교만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 이후에 비로소 얻게 된 깨달음입니다. ‘얼굴을 가리우신다.’는 말은 의인법적 표현으로, 은총을 거두시고 진노를 내리시는 것을 뜻합니다. 본 절은 자만하여 떠났다가 징계를 받고서야 비로소 그분의 은총의 소중함을 깨닫는 어리석은 인생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8, 9: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고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어찌 진토가 주를 찬송하며 주의 진리를 선포하리이까.

  시인은 징계를 받을 때 자신이 오직 주께만 부르짖고 또 부르짖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자신이 여호와께 어떠한 죄를 범하였는지를 분명히 깨달았을 뿐만 아니라 주의 은총이 아니고는 잠시도 생명을 부지할 수 없는 자기 존재를 절실히 깨달은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나의 죽음으로부터 주께서는 무슨 유익을 취하시겠습니까? 하는 말입니다. ‘피’는 일반적으로 생명(창 9:4,5)을 뜻하나 여기에서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여호와께서 자신의 생명을 영장시켜 주셔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어찌 진토가 주를 찬송하며~’ 에 나와 있습니다. 진토는 먼지나 흙을 뜻하지만 여기서는 상징적으로 죽어 썩은 몸, 즉 생명을 소실한 육체를 가리킵니다(시 6:5; 88:10; 155:17; 사 38:18). 어떻게 생명을 소실한 육체가 하나님을 찬송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두루 선포할 수 있겠는가? 하는 말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죽으면 이전에 자신이 지은 죄로 인하여 주의 영광을 가리웠던 일을 결코 회복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외에도 더 이상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없으니 자신의 생명을 연장시켜 달라고 역설적으로 간구한 것입니다. 이런 다윗의 자세는 비록 잠깐의 실수는 있었지만 그의 마음만큼은 전적으로 신정 왕국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자신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일생을 바쳐 온 자임을 시사합니다. 이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야 할 우리 성도들에게 귀감이 되는 자세라고 하겠습니다(고전 10:31).

 

10: 여호와여 들으시고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여호와여 나의 돕는 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

  다윗은 자신이 교만히 행한 잘못을 생각할 때 주의 도움을 간구할 입장에 전혀 서 있지 못하지만 오직 여호와의 긍휼에 의지하여 도움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실로 우리가 자신의 죄악 된 모습을 돌이켜 볼 때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택하신 죄인의 부르짖음을 외면치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로우심(시 37:40; 사 41:10; 히 13:6)이 아니면 전혀 불가능함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엡 2:8,9).

 

11: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하나님게서 자신의 간구에 응답해 주셨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시인의 환난을 멈추게 하시고 예전의 형통함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다윗은 그 같은 기도의 응답으로 인하여 춤을 출 정도로 기뻐하고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5절에서 보는 것처럼 ‘그 노염은 잠간이요, 그 은총을 평생이로다.’라고 노래할 수 있었습니다. ‘베옷’은 히브리인들이 자신의 통회하는 심정과 슬픔을 나타내기 위해 입던 옷입니다(대상 21: 16). 그리고 ‘띠 띠운다’는 것은 옷을 입고 단장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다라서 하나님께서 죄를 자복하고 긍휼을 구하는 다윗의 기도를 들어주심으로써 다윗의 슬픔의 옷을 벗기시고 기쁨의 새 옷을 입혀 단장시켜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실로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는 말의 산 증거입니다.

 

12: 이는 잠잠치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케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영히 감사하리이다.

  ‘영광(카보드:כבוד)’은 ‘마음, 영혼’이라는 뜻도 가집니다. 여기에서는 마음이나 영혼으로 보면 더 적절합니다. 여호와께서 자신에게 그 같은 엄청난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은 다윗 자신으로 하여금 마음을 다하여 영혼으로 찬양케 하시기 위함이라는 뜻입니다. ‘주께 영영히 감사하리이다.’ 이는 곧 자신이 죽을 때까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헌신하는 삶을 살겠다는 신앙의 표명입니다. 다윗은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자신을 다시금 살려 주신 하나님께 철저한 헌신을 맹세하였습니다. 이는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얻은 우리 성도들의 마땅한 삶의 자세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 지를 교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