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제31편 강해: 긴급한 구원의 호소
본 시는 그 정확한 배경은 알 수 없으나 이스라엘이 왕정 체제로 전환하는 급변기에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아 신본주의적 정통성을 가지고 사울 왕가를 폐하고 새 왕가의 첫 왕이 된 자로서 일생동안 극한 상황을 겪으면서 지은 비탄시입니다. 이 시는 한 마디로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극한 한계 상황임을 짐작하게 합니다. 원수들이 자신을 모해하고, 무리들이 비방하며, 친구나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대적의 핍박으로 인하여 극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받게 됩니다. 이런 절망적 상황에 놓인 자신을 ‘사망한 자’, ‘깨어진 그릇’에 비유하여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런 절대 한계 상황에서도 평소 자신이 가졌던 여호와 중심 신앙을 다짐하며,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내 시대가 주의 손에 있사오니’와 같은 놀라운 신앙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한계 상황도 초월하는 여호와 신앙의 위대함이 아닐 수 없습니다.
1: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로 영원히 부끄럽게 마시고 주의 의로 나를 건지소서.
‘내가 주께 피하오니’라는 말을 볼 때에 위험과 어려움의 상황 속에서 인간을 의지하거나 인간적 방법을 강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절대적으로 의지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다윗은 하나님만이 인간이 진정으로 의탁할 수 있는 안전한 피난처이시며(삼하 22:3; 시 46:1; 142:5; 잠 14:26), 모든 문제를 능히 해결해 주시는 전능자이심을 믿고 의지하였습니다. ‘주의 의로 나를 건지소서’ 의는 믿음 때문에 겪는 환난을 참고 견디는 신앙인에게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공의로운 판결과 보상입니다. 다윗은 뜻밖에 당하는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으로 인한 자신의 구원을 애타게 간구하고 있습니다.
2: 내게 귀를 기울여 속히 건지시고 내게 견고한 바위와 구원하는 보장이 되소서.
‘견고한 바위(추르마오즈:צור מעוז)’는 바위와 요새가 합성된 말로서 ‘견고한 바위 위에 세워진 요새’를 뜻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이것에 비유해 하나님만이 자신을 절대적으로 안전하게 지켜 보호해 주시는 난공불락의 요새 같은 분이시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하는 보장이 되소서.’ 보장에 해당되는 말은 튼튼한 방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성채(城砦)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자신의 ‘구원의 보장’이 되어 달라는 기도는 감히 지상의 어떤 권세도 함부로 넘볼 수 없도록 하나님께서 견고한 성채가 되셔서 대적들로부터 자신을 철저하게 지켜 보호해 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3: 주는 나의 반석과 산성이시니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인하여 나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소서.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인간사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하나님 자신의 영광과 관계되어 있음을 들어서 혹시라도 자신의 어려움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누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신앙이 반영이 되어 있습니다.
4: 저희가 나를 위하여 비밀히 친 그물에서 빼어 내소서 주는 나의 산성이시니이다.
사냥꾼이 그물을 놓아 새를 사로잡는 것에 비유하여 다윗의 대적들이 간교한 계략으로 다윗을 해하려고 한 것을 표현하였습니다. ‘나의 산성’ 산성은 대적들이 결코 간교한 책략을 펼 수 없는 곳, 또 책략을 펼지라도 결코 성공할 수 없는 곳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호와께서 그처럼 자신을 전적으로 의뢰하는 자는 안전과 평안을 보장해 주는 산성이 되심을 가리킵니다.
5: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를 구속하셨나이다.
‘영’은 ‘영혼, 생명’을 뜻합니다. 시인이 자신의 영혼을 주께 맡기는 것은 자신의 삶과 죽음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으므로 어떻게 하시든지 그 뜻에 절대 순종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눅 23:46). 스데반도 순교할 때에 이 말씀을 인용했습니다(행 7:59).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를 구속하셨나이다.’ 이는 현재 다윗이 고난 중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생명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길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입니다. 여기에서 진리는 ‘근거가 확실한 것’ 혹은 ‘참으로 믿을 만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다윗이 여호와를 ‘진리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이유는 인생들에 대해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실 수 있는 주권자이심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당신의 약속대로 자신에게 신실하게 구원을 베푸셨을 뿐 아니라 또 그 베푸신 구속이 참으로 정당하고 의로웠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진리의 하나님을 체험하였기에 현재 고난 중에 있으면서도 시인은 전적으로 자신의 영혼가지도 하나님께 의탁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6: 내가 허탄한 거짓을 숭상하는 자를 미워하고 여호와를 의지하나이다.
‘허탄한 거짓’을 숭상한다는 말은 본래 점이나 마술 등을 신봉하거나 우상을 숭배하는 행위입니다. 여기에서는 넓은 의미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멀리 떠난 모든 유형의 삶을 말합니다. 다윗은 앞의 5절에서는 구원의 확신과 근거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고백하였고, 여기서는 자신의 경건에 대한 다짐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진리의 하나님은 반드시 경건한 자를 구원하시리라는 확신 속에서 본 절의 내용을 말한 것입니다. 이는 시인 자신에게 신실하셨던 하나님께 대한 마땅한 보답으로 경건을 다짐한 것이기도 합니다.
7: 내가 주의 인자하심을 기뻐하며 즐거워할 것은 주께서 나의 곤란을 감찰하사 환난 중에 있는 내 영혼을 아셨고
5절에 이어 다시 한 번 주의 인자하심 곧 신실하심을 노래하는 이유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고난 중에 있는 시인 자신의 형편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시고 구원을 베푸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알다(아다:ידע)’는 단순한 관념적 지식이 아닌 경험적 지식을 가리키는 말로서 대상을 파악하여 그 대상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입니다.
8: 나를 대적의 수중에 금고치 아니하셨고 내 발을 넓은 곳에 세우셨음이니이다.
‘금고하다(사가르:סגר)’는 ‘넘겨주다’ ‘포기하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에게 어떤 것을 양도하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넓은 곳’은 ‘낭떠러지 길’과 대조되는 개념으로 전혀 위험이 없는 안전한 곳을 뜻합니다.(시 18:18) 따라서 하나님께서 시인 자신을 대적의 손에 그냥 맡겨두지 않고 곧 구원하시고 평안케 하실 것을 믿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9: 여호와여 내 고통을 인하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근심으로 눈과 혼과 몸이 쇠하였나이다.
9-13절은 시인이 현재 당하고 있는 대적들의 핍박으로 인한 고통을 하나님께 토로하면서 이제도 구원해 주시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근심’은 분개와 적개심에 가득 찬 대적들의 핍박으로 인한 심리적 압박감과 그로 인한 고통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이러한 고통이 얼마나 극심했는지 영육 모두의 기력조차 쇠하게 될 정도였다고 누, 혼, 몸의 3중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10: 내 생명은 슬픔으로 보내며 나의 해는 탄식으로 보냄이여 내 기력이 나의 죄악으로 약하며 나의 뼈가 쇠하도소이다.
본 절만 보면 다윗은 현재 자신에게 닥친 환란을 자신의 죄 때문으로 고백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본 절 이하에는 죄에 대한 탄식과 회개 그리고 죄의 용서를 비는 간구가 나와야 하지만, 여기에는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구체적인 어떤 죄가 아니라 단순히 인간의 모든 고통의 원인이 근본적으로 인간이 저지른 죄악 때문이라는 사고 아래 자신의 고통이 그런 근본적인 인간의 죄성에서 비롯된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11: 내가 모든 대적으로 말미암아 욕을 당하고 내 이웃에게서는 심히 당하니 내 친구가 놀라고 길에서 보는 자가 나를 피하였나이다.
다윗이 사울에 의해 반역자로 몰려 쫓겨 다닐 때 아니면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해 피신할 때 그의 친구나 이웃들이 공연히 대적들의 분노를 사게 될까 다윗을 도와주거나 숨겨주지 않았음을 뜻합니다(시 88:8). 이는 곤경에 처한 자를 돌아보기 보다는 자신의 안위만을 도모하는 인간들의 각박한 세태를 잘 드러내 줌과 동시에 인간이 진정으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심을 다시 한번 증거하고 있습니다.
12,13: 내가 잊어버린바 됨이 사망한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함 같고 파기와 같으니이다. 내가 무리의 비방을 들으오며 사방에 두려움이 있나이다. 저희가 나를 치려 의논할 때에 내 생명을 빼앗기로 꾀하였나이다.
죽은 사람은 무덤에 묻힌 이후 점차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깨어진 그릇 역시 쓰레기통에 버려져 더 이상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합니다. 다윗은 현재 위기 중에 처해서도 아무에게도 동정을 받지 못하는 딱하고 가련한 자신의 신세를 이와 같이 비유하여 참담한 상황을 더욱 강조하고 있습니다. ‘무리의 비방을 들으오며’ 다윗이 사울을 죽이고 대신 왕이 되려 한다거나(삼상 24:9), 다윗이 백성들의 억울한 사정을 헤아려 주지 않는다는 등(삼하 15:3)의 전혀 사실무근의 모함을 당한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방에 두려움이 있나이다.’ 이는 ‘두려움이 나를 에워싸나이다.’는 말입니다. ‘두려움’은 공포심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도처에 깔려 있는 위험을 의미합니다. 다윗의 원수들이 다윗을 파멸시키려고 중상모략하며, 특히 백성들을 선동하여 다윗의 생명을 해하려 하기에 다윗은 어디를 가든지 위험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14: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말하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였나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극한 고난의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자신을 구원해 주실 것을 확고하게 신뢰하였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4,6절에 이어 여기서도 시인은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하는 근거로서 여호와께 대한 자신의 확고한 신앙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15: 내 시대가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와 핍박하는 자의 손에서 나를 건지소서.
인간의 생사화복이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뜻에 달려 있음을 인정하면서 자신의 전 삶을 하나님께 내어 맡기겠다는 다짐입니다. ‘내 원수 핍박하는 자의 손’은 ‘주의 손’과 대조를 이룹니다. 원수와 핍박하는 자의 손은 일시적으로 다윗을 대적하고 괴롭힐 수 있어도 하나님이 그 손을 꺾으시면 꺾길 수밖에 없습니다. 다윗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자신을 대적들의 손에서 구해 주시기를 간구한 것입니다.
16: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취시고 주의 인자하심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하나님께서 얼굴빛을 비취신다는 것은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은총과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주께서 종에게 은총과 은혜를 베푸소서“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기대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종‘이란 하나님의 뜻이면 그 무엇이든지 청종해야 할 위치에 있는 자신을 가리켜 다윗이 스스로를 겸비하게 낮추어 일컫는 말입니다.
17: 여호와여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나로 부끄럽게 마시고 악인을 부끄럽게 하사 음부에서 잠잠케 하소서
다윗은 천지만물을 다스리시며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하고 자신을 구원하실 이는 오직 하나님이심을 믿는 믿음으로 여호와께 구원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음부(쉐올:שׁאול)’은 구약 시대 히브리인들이 죽은 자의 혼이 가서 거하는 사후 세계로 이해한 곳입니다. ‘악인’은 현재 다윗을 중상모략하여 해치려고 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현 세상에서 악인들에 의해 조롱을 받던 의인은 하나님의 구원으로 그 부끄러움을 씻으며, 악인은 그 반대로 음부에서 영원한 부끄러움을 당하되 한 마디 변명조차 할 수 없게 해 달라는 내용의 간구입니다. 이 구절에서 의인과 악인의 대조적인 결말을 볼 수 있습니다.
18: 교만하고 완악한 말로 무례히 의인을 치는 거짓 입술로 벙어리 되게 하소서.
악인들이 현재는 의인들을 비방하며 중상 모략하는 거짓 입술을 떠벌리나 심판주이신 공의의 하나님 앞에서는 한 마디 변명도 못하는 벙어리가 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는 17절의 ‘잠잠케 하소서’라는 내용을 강조하여 표현하고 있습니다.
19: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두신 은혜 곧 인생 앞에서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본 절부터는 지금까지 암울한 분위기가 찬양의 분위기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는 다윗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응답해 주실 줄로 확신하고서 그 확신에 근거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를 두려워하는 자’는 하나님의 권능을 인정하며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쌓아두신 은혜’는 하나님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주실 복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예측할 수 없는 대와 방법을 이용하여 주시고자 하는 복을 주십니다. 성도에게 임할 복은 인간이 능히 측량할 수 없을 만큼 무한하고 풍성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복은 현 세상에서의 복이 아닌 천국에서의 영생의 복입니다.
20: 주께서 저희를 주의 은밀한 곳에 숨기사 사람의 꾀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비밀히 장막에 감추사 구설의 다툼에서 면하게 하시리이다.
‘주의 은밀한 곳’과 ‘비밀히 장막에 감추사’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호를 확신하는 말입니다. 은밀한 곳과 장막은 모두 은신처를 의미합니다. ‘구설의 다툼’은 18절의 교만하고 완악한 말로 무례히 의인을 치는 거짓 입술과 같은 의미입니다.
21: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견고한 성에서 그 기이한 인자를 내게 보이셨음이로다.
20절의 장막은 하나님의 보호와 그로 말미암은 안식과 평안이라는 매우 부드럽고 방어적인 이미지를 주는 반면, 본 절의 견고한 성은 적의 공격을 분쇄하고 적들을 멸하는 매우 강하고 공격적인 이미지입니다. ‘기이한 인자’란 겹겹이 둘러싸인 대적들을 가볍게 물리치시고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이 놀라운 구원 역사와 은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22: 내가 경겁한 중에 말하기를 주의 목전에서 끊어졌다 하였사오니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주께서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셨나이다.
‘경겁한’은 깜짝 놀라 당황하다는 뜻입니다. ‘주의 목전에서 끊어졌다’는 말은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다윗은 급작스런 곤경에 처하였을 때 순간적이나마 자신이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고 마치 하나님께로부터 아주 버림을 받은 것 같은 생각에 좌절하기도 했었으나, 그럼에도 하나님은 구원의 기이한 역사를 베푸셔서 그러한 자신의 좌절이 실로 어리석었음을 깨닫게 해 주셨다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각 사람에게 베푸신 구원의 은혜를 돌이켜 볼 때 실로 기이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우리 자신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주께서는 우리의 엄청난 문제들을 해결해 주신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23: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와께서 성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히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
‘모든 성도’는 일차적으로 구약 선민이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시대를 초월한 하나님의 택하신 모든 성도들입니다. 시인은 자신의 체험을 근거로 하여 모든 성도들에게 진정한 소망을 오직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을 신뢰하고 경외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성실한 자와 교만한 자의 결국을 대비시켜 하나님의 공의의 보응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실한 자’는 하나님께 충성하는 자 또는 그분을 절대 신뢰하는 자입니다. 교만히 행하는 자는 하나님 대신 자신을 높이는 자를 말합니다. 시인은 하나님께 대한 신뢰의 영부에 따라 상반된 보응을 받을 수밖에 없음을 말함으로써 ‘여호와 신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24: 강하고 담대하라.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은 절망과 위험 속에서도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삶을 살고 있는 성도들을 말합니다. 다윗은 이들의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임을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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