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제29편 강해 - 뇌성도 증거하는 여호와의 영광과 능력
다윗이 쓴 감사 예배 시로, 웅장하고도 강력히 천지를 진동시키는 뇌성을 만물 위에 주권을 가지신 여호와의 영광을 실증하는 이미지로 선포하며 여호와를 향한 찬양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또 역으로는 그러한 선포를 통하여 높으신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시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여호와의 영광을 위엄을 실증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러한 여호와께서 우리의 왕이요 동시에 구원자이심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1-2절은 백성들을 향한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촉구이며, 3-9절은 여호와의 영광과 주권을 산천을 울리고 휩쓰는 크고 놀라운 뇌성으로 형상화하여 이를 나열식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10-11절은 영원한 우주의 통치자이신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복 주시는 분이심을 최종 선언하며 노래로 끝맺음을 하고 있습니다.
1: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베네 엘림: בני אלים)는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너희 신들의 아들들아’라는 뜻입니다. 때문에 이 ‘신들의 아들들’이 누구를 지칭하는 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의견이 분분한데, 네 가지로 집약할 수 있습니다. ❶ 거룩한 천사로, 천사들의 임무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라는 점에 근거한 주장입니다(욥 38:7; 사 6:3) ❷ 세상의 권력을 지닌 군주를 의미합니다(Calvin). 이는 세상 권세 때문에 교만한 자들을 겸손케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다윗이 본시를 지었다는 주장을 펴는 자들의 견해입니다. ❸ 이교도의 신들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보기도 합니다.(Kay, Michaelis) ❹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을 의미합니다(Alden). 이 네 가지 견해 중 가장 타당한 것은 네 번째입니다. 왜냐하면 본시 저자는 본서 마지막 절에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심을 들어 그들이 마땅히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려야 할 것임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이름에 합당한 영광’(케보드 쉐모:כבוד שׁמו)는 문자적으로 ‘그의 이름의 영광’이라는 뜻입니다. 이 구문을 직역하면 ‘그의 이름의 영광을 여호와께 돌리며’가 됩니다. 이는 곧 능력이 무한하시고 거룩하시며 영원 자존하시는 하나님께 걸맞는 영광을 돌리라는 뜻입니다. ‘거룩한 옷을 입고’ 거룩한 옷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절기 때에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 특별히 구별하여 입던 옷이나, 또는 제사장이 하나님게 봉사하기 위해 입던 예복을 의미합니다.(대상 16:29; 시 96:9). 그러나 본 절에서는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벧전 3:4), 즉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성도가 다른 무엇보다도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정결한 마음과 내적인 성결을 의미한다고 보겠습니다.
3,4: 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도다. 영광의 하나님이 뇌성을 발하시니 여호와는 많은 물 위에 계시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힘 있음이여 여호와의 소리가 위엄차도다.
하늘의 높은 곳에서 급작스럽고도 웅장하게 울리는 뇌성이라는 청각적 이미지를 통해 자연과 인생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권능과 만물 가운데 깃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형상화하여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뇌성을 두려움으로 대하는데 시인은 그것을 하나님의 큰 권능의 현시(顯示)로 본 것입니다. 이 여호와의 소리는 본 시에서 7번이나 언급될 정도로 중심 시어를 이루고 있습니다. ‘많은 물 위에 계시도다.’ 이는 폭풍우가치고 비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뇌성이 울리는 장면을 하나님의 장엄하고도 광대한 권능이 현시된 것으로 본 비유적 표현입니다.
5: 여호와의 소리가 백향목을 꺾으심이여 여호와께서 레바논 백향목을 꺾어 부수시도다.
뇌성과 함께 떨어진 벼락에 의해 거목이 부러진 것에 비유하여 하나님의 권능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백향목은 대단히 재질이 강한 나무인데 그 나무조차 벼락에 의해 부러졌다는 것은 그토록 강한 하나님의 권능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백향목은 성경에서 ❶ 이스라엘의 번영(민 24:6; 시 80:10) ❷ 의인의 번영(시 92:12) ❸ 강대한 나라(암 2:9) ❹ 그리스도의 영광(겔 17:2, 23) ❺ 교만한 자(사 2:13) 등으로 비유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교만한 자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자연계뿐만 아니라 인간 역사 속에 개입하셔서 ‘교만한 자나 세상적인 권세를 자랑하는 자들을 꺾으신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교만은 궁극적으로 우주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무시하거나 인정하지 않는데서 비롯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인간의 교만을 꺾으심은 당신의 절대 주권에 대한 선언과 동일한 의미를 갖습니다.
6: 그 나무를 송아지 같게 뛰게 하심이여. 레바논과 시룐으로 들송아지같이 뛰게 하시도다.
레바논은 팔레스틴 최북단 곧 갈릴리 북쪽에 위치한 레바논 산맥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시룐은 레반논 산맥의 동편에 위치한 헤르몬 산을 가리킵니다. 고대 시돈 사람들은 헤르몬 산을 ‘시룐’(신 3:9)이라 불렀습니다. 헤르몬 산이 위치하고 있는 산맥을 가리켜 ‘안티레바논 산맥’이라 칭하는데 헤르몬 산은 그 산맥에서 최고봉입니다. 하나님의 자연적 섭리 가운데 하나인 뇌성을 동반함 심한 폭풍우에 의해 산의 나무들이 마치 송아지가 뛰듯이 흔들리고 있다는 표현은 하나님의 권능의 위대하심에 대한 묘사입니다. 시인은 레바논 산맥과 헤르몬 산과 같은 크고 장엄한 이미지를 사용하여 하나님은 그런 것들보다 월등히 크신 권능의 소유자이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7: 여호와의 소리가 화염(火焰)을 가르시도다.
하나님의 권능과 위엄을 하늘에서 천둥소리와 함께 여러 갈래의 번개가 번쩍이는 것과 같은 청각적, 시각적 이미지로 형상화하여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여러 갈래의 번개를 단순한 자연의 현상으로 묘사한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하나님의 권능 곧 자연을 주관하시는 위대한 능력을 보여주시는 것으로 이해하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8: 여호와의 소리가 광야를 진동하심이여, 여호와께서 가데스 광야를 진동하시도다.
‘가데스 광야’는 ‘가데스 바네아’와 동일한 지역으로, 이곳은 팔레스틴의 최남단에 위치하며 에돔(민 20:16)과 아모리 족속의 산지(신 1:20)와 접경지역입니다. 가데스에서 레바논까지는 팔레스틴 전역을 포함합니다. 따라서 레바논에 대한 6절의 언급에 이어 ‘가데스 광야’를 진동시켰다는 것은 하나님의 장엄하고도 광대한 권능이 팔레스틴 전역에 현시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레바논에서 가데스까지의 전 팔레스틴은 곧 전 세계를 상징합니다. 이는 전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한 것입니다.
9: 여호와의 소리가 암사슴으로 낙태케 하시고 삼림을 말갛게 벗기시니 그 전에서 모든 것이 말하기를 영광이라 하도다.
이는 곧 새끼 밴 암사슴이 뇌성에 놀라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그만 낙태하였다는 말로, 천지 만물을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절대 권능과 대비되는 피조물의 나약함을 형상화시킨 표현입니다. ‘암사슴’은 보다 직접적으로 인간을 비유한 것으로, 지극히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티끌 같은 존재에 불과한 인간은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경배하지 않으면 안 됨을 낙태한 암사슴에 비유하여 표현한 것입니다. ‘삼림을 말갛게 벗기시니’ 뇌성을 동반한 폭풍우로 말미암아 산의 나무들이 온통 잎에 떨어지고 가지가 꺾이며 심지어 뿌리 채 뽑힌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암사슴의 삶의 터전인 삼림은 곧 인간의 삶의 터전을 비유한 것입니다. 이는 곧 인간의 삶이 여호와께로부터 비롯된 것이며,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는 인간은 언제라도 하나님의 징벌에 의해 그의 삶의 기반을 상실할 수 있음을 타나내는 것입니다. ‘그 전(展)’는 성소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천지 만물에 대한, 보다 직접적으로는 인간의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 앞에 절대 순복하며 경배하는 것입니다.
10: 여호와께서 홍수 때에 좌정하셨음이여! 여호와께서 영영토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
여호와께 절대 순복하며 경배치 않을 수 없는 이유에 대한 언급입니다. ‘홍수 때에 좌정하셨음이여’ 홍수는 일반적인 홍수가 아닌 과거 노아 시대 당시의 ‘대홍수’를 가리킵니다. 악인에 대한 징벌과 의인에 대한 구원의 사건인 노아 홍수를 언급하면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심판자이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영영토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 하나님께서는 과거 노아 시대 뿐 아니라 영원토록 온 세상을 주장하시는 최고통치자시라는 말입니다. 과거에도 천상(天上) 옥좌에 앉아 계시면서(시 115:16) 홍수로 불의한 세상을 심판하셨듯이 지금도 자신의 뜻대로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은 악인을 징벌하시고 의인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것이 본 절의 요지입니다.
11: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온 세계에 그의 위대한 능력을 떨쳐 보이시지만, 당신의 택한 백성, 당신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고 순복하는 자들을 특별히 사랑하심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땅에 살면서 환난을 당할지라도 굴하지 않고 인내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심과 또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피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심입니다. ‘평강의 복’ 본 시의 결말로, 앞에서 언급한 ‘홍수’와 대조되는 개념으로, 홍수가 하나님께 순복치 않는 악인에 대한 심판의 상징이라면 이는 홍수 심판 후에 살아남은 노아와 그 식구들과 같이 여호와께 순복하는 의인들에 대한 영원한 복을 가리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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