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제20장 강해 - 십계명 (Decalogue)
시내 산에 강림하신 여호와께서 반포하신 십계명은 백성들이 직접 들을 수 있도록 친히 음성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1-17절은 도덕의 영원한 기준인 십계명(Decalogue) 조항의 기록이며, 22-26절은 종교 생활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1-17: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민족과 언약의 체결을 위하여 시내 산에 친히 강림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선민이 되는데 있어서 가장 핵심 되는 십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십계명은 여호와께서 친히 제정하신 것입니다. 3-11절은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 12-17절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기록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생활하는 행동 규범의 대강입니다. 이 계명들을 지킴으로 인해 여호와와 더 깊은 교제를 하게 되며, 선민으로서 세속에 물들지 않고 경건을 지속하게 되고, 죄로 인해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에 상존하는 불화와 부조화를 이겨내고 평화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1,2: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하나님께서 자신이 어떤 분이시며, 어떤 일을 하신 분이신지를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 한 번 밝히신 후에 친히 십계명을 반포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즉 십계명을 주시는 주체가 ‘하나님 여호와’이심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 여호와는 바로 ‘너의’ 즉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믿는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는 여호와가 무섭고 두려운 분이 아닌,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시며 애굽 군대로부터 보호하시며 홍해를 건너고 목 마를 때에 마실 물을 주신 그 좋으신 하나님이심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런 좋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억지로가 아닌 감사와 기쁨으로 순종하라는 뜻입니다.
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제1계명입니다. 다른 신들에게 경배하지 말라는 것과 우상 숭배 금지 명령입니다. 신은 오직 여호와 한 분이심을 분명히 가르쳐주셨습니다. 찬양과 경배를 받으실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다른 신’은 허망한 신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어느 지역에 있는 것이라도 그 신들과 모든 우상들은 허망한 것입니다. 넓은 의미에서 ‘다른 신’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존경과 경배를 받는 유, 무형의 모든 것으로, 사상이나 철학, 물질 등도 포함이 됩니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을 제 1위에 놓지 않는 것은 그 사람에게 있어서 ‘다른 신’이 되는 것입니다.
4-6: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 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제2계명입니다. ‘새긴 우상’은 나무나 돌에 새기거나 다듬은 것을 뜻하므로 조각하여 만든 우상을 말합니다.(왕하 21:7; 사 40:18-20; 합 2:18-20) 넓은 의미에서 사람이 작위적으로 제작한 모든 우상을 뜻합니다. 여기에는 ‘화상(畵像)’ 그림도 포함이 됩니다. 우상 제작 금지 명령은, 이스라엘이 있던 애굽이나 또 들어가야 할 가나안에 수많은 우상들이 존재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으며, 타락한 인간의 본성은 항상 보이는 것, 만질 수 있는 것을 추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상에는 ‘하늘, 땅, 물 속에 있는 모든 것들, 즉 우주 만물을 지칭합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들이라도 형상화하여 경배의 대상으로 삼지 말라는 것입니다. 형상을 빌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해도 엄금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요 4:24) 그 어떤 것으로 형상화하여도 안 되는 것입니다.
‘절하지 말며’ 절한다는 것은 예의를 갖춰 절하는 것 뿐 아니라 그 대상을 향한 찬양과 경배의 몸짓까지 포함이 됩니다. 우상에게 내, 외면상 그 어떤 숭상의 몸짓도 행하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우상숭배자들은 우상을 하나의 인위적인 조각품으로서가 아니라, 그 섬기는 신의 화신으로 생각하며 경배하는 것입니다. 이들의 영혼은 우상에게 온전히 매여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섬기지 말라.’ 주권을 상실하고 우상에게 완전히 예속된 자처럼 그렇게 우상에게 매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행위는 애굽의 노예 상태에 있던 그들을 구원해 내어 당신 안에서 자유와 생명과 권리를 누리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짓밟는 사악한 행위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그것을 부정한다고 해도 필연적으로 어떤 존재에게 예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무엇에 예속이 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영혼의 향방이 결정이 될 것입니다.
‘질투하는 하나님’ ‘질투한다’는 말은 맹렬히 분노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자를 뜨겁게 사랑하십니다(아 8:6). 그러나 그 사랑을 받는 자가 다른 존재에게 그 사랑을 바칠 때에 맹렬히 분노하시는 것입니다(신 6:15). 하나님은 자신에게 돌려진 찬양과 경배를 그 어떤 존재에게도 양보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이를 거역하는 자는 철저하게 응징하십니다.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을 거역하며 그분에게 합당한 영광을 돌리지 않는 죄를 가리킵니다. 여기에서 죄는 도덕적인 것을 말하지 않고 영적인 것을 말합니다.
‘삼, 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부모의 죄 값을 3, 4대 후손에게까지 갚으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부모의 죄의 결과로 인한 악한 영향력이 3, 4대까지 미칠 정도로 심각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거역하는 집안의 후손들은 믿는 가정의 자녀보다 그만큼 신앙적 측면에서 볼 때에 열악한 환경에서 출발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계명을 지키는 것은 긴밀한 연관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마음 깊이 사모하고 인정하고 신뢰치 않는 자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명령을 온 마음을 기울여 준행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키다’는 말은 마치 울타리를 쳐놓고 그 속에 담긴 내용물의 안전을 위해 온 신경을 쓴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이처럼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하나님의 진노가 후대에 미치는 영향력에 비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는 훨씬 더 지속적입니다. ‘천대’ 단순히 후손의 대수만을 가리키지 않고 그 후손에게 미칠 유익한 복들, 긍정적인 영향력까지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만 보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죄로 인하여 심판을 받기보다는 회개하여 구원의 은총에 이르기를 더 기뻐하시는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겔 18:23; 딤전 2:4)
7: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제3계명입니다. 이 계명은 앞의 1,2계명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형상으로도 존재하지 않는 불가시적(不可視的) 존재이시지만, 여호와는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여호와의 성호를 함부로 부름으로써 망령되이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름은 대개 상대방의 성품과 인격을 대변합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이름은 결국 하나님의 속성과 본질을 가리킵니다.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존재를 무시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품성을 훼손시키는 것입니다.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이는 허탄한 일에 적용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 믿음 없이 부르는 것, 하나님보다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하는 것, 더 나아가서는 무익한 맹세에 하나님의 이름을 걸지 말라는 뜻입니다(레 19:12). 하나님의 거룩한 성호는 예배와 찬양, 경배 외에는 결코 언급되어서는 안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문자적으로는 ‘형벌을 받지 않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 형벌을 받게 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호를 함부로 남용하는 행위에 대해 특별히 형벌을 명시하여 경계하는 이유는 이 세 번째 계명이 다른 계명에 비해 특히 범하기 쉬운 계명이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8-11: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 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마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제4계명입니다. 안식일 준수에 대한 규정입니다. 이 계명을 주신 이유는 첫째 하나님께서 6일 동안의 창조 사역 후 안식하신 것을 기념하며, 둘째 하나님의 안식에 동참함으로 최후에 있을 하늘나라에서의 영원한 안식(히 4:4-11)을 예시하기 위함이며, 셋째 구속의 은혜에 감사하며(신 5:15) 영광을 돌리기 위함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만물의 주인이심을 확실히 믿게 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재창조 사역, 즉 인류 구원의 은혜를 세세토록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누릴 천국에서의 영원한 안식을 미리 맛보다는 것인 동시에 그 완전한 안식을 대망(待望)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거룩히 지키라.’ 이는 구별하여 성결케 하는 것입니다. 안식을 거룩하게 지킨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창조 사역을 마치신 뒤 특별히 한 날을 택하여 안식하셨듯이, 바로 그 날을 성별하여 거룩하신 하나님께 바치며, 천지 만물의 조성자요 주관자이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엿새 동안은 힘써 일할 것이나~’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첫째 방법은 우선 6일 동안 맡겨진 본분에 충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힘써’ 그럭저럭 대충 보내는 것이 아니라 힘써 생활하는 것은 안식일을 지키기 위한 준비입니다.
안식일을 준수할 대상은 사람에게는 물론 짐승까지 적용이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가축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고대 근동의 여러 나라에서 발견되는 법에는 가축의 보호와 안식은 나타나지 않지만, 성경에는 이런 미물들에게까지 관심을 가지는 것만 보아도 하나님의 말씀은 우주적이며 매우 세밀하며 포괄적인 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안식일을 지켜야 할까요? 내 집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포함이 됩니다. 일꾼, 노예, 놀러온 사람, 외국인 모두 다 포함이 됩니다. 나 혼자 안식일을 지키고 회사 사람이나 집안사람들에게는 일을 시킨다면 그것은 결코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일’은 큰 일이나 작은 일이나 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안식일에는 생계나 오락 등 개인을 위한 어떤 사소한 일도 금하는 것입니다. 사사로운 말도 금하고 있습니다.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사 58:13,14). 생계를 위하여 장사를 하는 일, 즉 팔고 사는 일은 결코 해서는 안 됩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스스로 삼가서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으로 들어오지 말며 안식일에 너희 집에서 짐을 내지 말며 아무 일이든지 하지 말아서 내가 너희 열조에게 명함같이 안식일을 거룩히 할지어다.”(렘 17:21,22) 여기에서 ‘짐’은 상품을 뜻합니다.
안식일에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여기에 ‘선행(善行)’ 즉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한 선행은 포함이 되지 않습니다.(마 8:14; 12:1-8) 또한 긴급한 일은 어쩔 수 없이 해야 합니다. 사람이 다쳤을 때에 돌보거나 병원으로 데려가는 것, 짐승이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 구해 주는 것 등은 해도 괜찮습니다. 예배드리고, 심방하고, 찬송과 기도와 선한 일은 할 수 있습니다.
‘안식일을 복 되게 하여’ 인간이 타락하기 이전에 노동은 신성하고 복된 의무요 권리였습니다(창 1:28). 그러나 타락한 후에는 그 죄 값으로 인하여 피곤한 의무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창 2:17-19). 따라서 노동을 쉬고 하루를 안식하라는 명령은, 하나님 안에서 쉴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일시적으로 죄의 책임에서 벗어나 타락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는 하나님 안에서 누리게 될 영원한 안식의 예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주일)은 복된 날입니다.
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제5계명입니다. 이 계명은 부모 공경에 관한 규례로, 대인(對人) 계명 가운데 가장 먼저 언급되고 있습니다. 고대 다른 나라들에서도 부모 공경에 대한 법은 공통적으로 발견이 됩니다. 그러나 그들의 법이 십계명과 다른 점은 이방인들의 부모 공경에 관한 내용은 단순히 윤리, 도덕적 차원에 머물고 있음에 비하여 성경은 ‘주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엡 6:1-3). 성경에서 ‘부모’라 함은 일반적으로 육신의 부모는 물론이고, 영적으로 보호와 양육을 책임지는 하나님의 사역자들까지 포함을 하고 있습니다. 신앙을 지도하는 하나님의 대리자를 아버지(왕하 2:12;13:14), 또한 이 사역자들의 지도를 받는 제자들을 가리켜 자녀(잠 1:8,10,15)로 일컫는 성경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공경하라는 말은 하나님께 대한 경외를 말할 때 사용된 것과 같은 단어입니다. 부모를 단순히 존경하는 정도가 아니라 삼가 조심스럽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처럼 공경하며 영광스럽게 하라는 뜻입니다(엡 6;1; 골 3:20; 딤전 3:4). 따라서 육신의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부모 공경을 통하여 권위의 궁극적 원인자인 하나님을 공경하는 훈련을 쌓도록 하신 것입니다. 부모 공경의 대가는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는 가나안 땅에서 지속적인 평안을 누리며 오래 살 것이지만, 더 나아가서는 천국의 영원한 복락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합니다.
13: 살인하지 말지니라.
제6계명입니다. 이는 계획적이고 보복적인 살인(21:12,14; 레 19:17,18)뿐만 아니라 실수로 야기된 살인(신 22:8), 심지어는 자살 행위 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살인 금지 규정입니다. 이는 단순히 인륜을 저버린 부도덕한 행위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권위를 침해하는 중범죄인 동시에 하나님의 형상(창 9:6)을 훼손시킴으로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파괴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형제를 미워하거나 욕하는 행위도 살인 행위로 간주하셨는데(마 5:21,22), 이는 살인의 결과적 행위를 유발시키는 원인 역시 살인 행위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14: 간음하지 말지니라.
제7계명입니다. 간음은 합법적인 결혼을 통해 부부가 된 상호간 정상적 성관계를 벗어난 모든 불법적 성접촉을 총괄하는 포괄적인 의미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창조 질서와 결혼의 원리(창 2:24)에 정면으로 대치될 뿐만 아니라, 결혼의 신성함을 파괴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마땅히 금지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육체적인 성접촉 뿐만 아니라 마음속으로 음욕을 품는 것도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된다고 가르치셨습니다(마 5:27-32). 이는 온전하신 하나님을 신앙하는 자는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전인격적으로 온전해야 한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음행을 피하도록 교훈하면서 그 이유는 성도의 몸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전(展)이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고전 6:17-20).
15: 도적질하지 말지니라.
제8계명입니다. 이웃의 권리에 대한 침해를 하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이웃의 재산을 훔치거나 불의한 방법으로 빼앗는 것뿐만 아니라 부당한 절차를 밟아 이웃의 권리를 박탈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이웃의 모든 재산과 인격에 대한 광범위한 권리 침해 행위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6: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제9계명입니다. 이 계명은 이웃 사람에 대한 거짓말뿐만 아니라, 공식적으로 위증(僞證)행위에 대한 금지 규정입니다. 이 계명을 통해 거짓 증거를 금하신 이유는 거짓 행위는 사탄에게 속한 것으로(요 8:44) 빛이며 진리되신 하나님의 품성에 정면으로 위배되기 때문입니다. 거짓 증거는 이웃을 속이는 동시에 하나님을 속이는 이중 범죄입니다. 심지어 상대방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살인 행위가 될 수도 있습니다(왕상 21:13). 따라서 이런 거짓 증거나 거짓 증인은 율법으로 매우 엄격하게 다스렸습니다.
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제10계명입니다. 탐심 금지에 대한 규례입니다. 탐심은 마음에서 비롯되며(잠 6:25), 죄의 씨앗이 되며 마침내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 파괴의 결과를 낳게 되는 큰 죄악입니다(약 1:14,15). 탐심을 금지하라는 명령은 이웃을 향한 모든 죄악의 근거가 되는 불의한 욕망을 적극적으로 경고한 것입니다. 고대법에서 단순히 외적인 행위만을 규제하고 있음에 반해 이스라엘 율법은 인간의 내면까지 법으로 규제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율법이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 근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외적 행위는 내부의 마음에서부터 출발하며, 따라서 행위의 결과와 원인을 동일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18-26절은 우상 척결 및 제단에 대한 규례입니다.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들으면서 두려움에 휩싸이게 되었지만, 중보자 모세는 이들을 안심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십계명의 실제적 운용을 다루는 70여 항목의 언약서 가운데 초반부인 우상 제작 엄금 및 제사 종교의 근간인 제단에 관한 지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8: 뭇 백성이 우뢰와 번개와 나팔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
율법은 천둥과 번개를 동반하여 두렵고 무서운 상황 속에서 수여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장엄한 배경 속에서 모세에게 계명을 주신 것은, 율법의 입법자가 평범한 인간이 아닌 엄위하신 하나님이시며, 이 법을 거역하는 자는 엄위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철저한 징계를 받게 된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19: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아담이 범죄한 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두려워하며 피한 이후로(창 3:8-10) 인간은 어느 누구라도 감히 하나님 앞에 떳떳이 나설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중재자로 내세워 하나님의 지시를 받으려 한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신 5:24-27). 이런 면에서 볼 때 모세는 하나님 계시의 결정체요, 중보자이신 그리스도의 예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강림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치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뢰와 번개를 동반하고 강림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장엄하고 놀라운 광경을 보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경외하는지의 여부를 시험하기 위함입니다. 이런 엄청난 광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 범죄를 삼가게 하는 데 충분한 역할을 하였을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강림은 아직 신앙의 초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21: 백성은 멀리 섰고 모세는 하나님의 계신 암흑으로 가까이 가니라.
‘암흑으로’(엘 하아라펠:אל הערפל) ‘매우 짙은 구름으로’라는 뜻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현현의 상징이며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한 구름 기둥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검은 구름 속에 거하신 것은 당신의 실체를 인간들에게 숨기시기 위한 조처입니다.
22: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라. 내가 하늘에서부터 너희에게 말하는 것을 너희가 친히 보았으니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율법을 직접 만드셨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율례를 반포하기에 앞서 그 범의 근거가 하나님이심을 밝힌 것은 백성들이 율법을 거역하지 않고 겸손하게 순종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23: 너희는 나를 비겨서 은으로 신상이나 금으로 신상을 너희를 위하여 만들지 말고
십계명 중 첫 번째 두 계명의 중심 내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다시 반복하신 것은 우상숭배가 만연했던 당시 상황에서 이 두 계명이 이스라엘이 가장 범하기 쉬운 계명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실은 모세가 율법을 받기 위해 40일 간(24:18) 시내 산에 머물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산 아래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든 데서도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상 제작을 금한 이 율례는 하나님은 영이시며 거룩한 존재이기 때문에 세상의 그 어떤 형상으로도 표현될 수 없음을 말해 줍니다. ‘나를 비겨서’는 ‘나와 더불어’라는 뜻으로 우상을 새겨서 하나님과 동일시하거나 또는 가상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생각하여 우상을 만드는 행위를 말합니다. 율법은 하나님을 형상화시키는 그 어떤 행위도 엄격하게 금하고 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손으로 만든 어떤 형상 속에 구속되는 제한된 존재가 아니며 우주 만물 가운데 편만하신 초월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24: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너의 양과 소로 너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무릇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
토단은 흙으로 쌓은 제단입니다. 당시 성막이나 후대 성전이 건축되기 전에는 흙이나 다듬지 않은 돌을 모아 쌓은 단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정교한 제단은 잘못하면 우상화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세상의 어떤 것, 특히 하나님께 경배 드리기 위해 세워진 성전조차도 결코 하나님의 거룩함과 영화로움을 능가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25: 네가 내게 돌로 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
다음은 돌로 쌓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인간의 생각이나 공로를 배제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연장을 사용하여 다듬을 경우에는 ‘부정하게 함이니라.’ 즉 하나님의 거룩함을 훼손시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유일한 목적을 가진 단을 날카로운 도구를 사용하여 인위적으로 정교히 조각하여 거기에 우상적 요소를 가미하는 것은 죄악이 되는 것입니다. 성물 숭배를 공공연히 강요하는 로마 카토릭의 교리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죄악입니다.
26: 너는 층계로 내 단에 오르지 말라. 네 하체가 그 위에서 드러날까 함이니라.
인류가 타락한 뒤 의복을 착용하면서부터 하체를 드러내는 것은 부도덕한 일로 여겼습니다(창 9:20-23). 따라서 제사장 역시 층계로 만들어진 하나님의 제단을 오르내리다 보면 하체를 드러낼 수 있는 소지가 있었고 이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부정한 행위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제단에 층계를 사용치 말게 하셨습니다. 당시에는 제단을 만들 때에 경사면을 활용하였으며, 후에 성막이나 성전 시대에는 제사장이 속바지인 고의를 입어 하체를 가렸습니다(28:42).
'출애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출애굽기 제22장 강해 - 손해 배상 및 사회보장법 (0) | 2012.09.09 |
---|---|
출애굽기 제21장 강해: 시민법(종, 사형, 상해, 배상법) (0) | 2012.08.26 |
출애굽기 제19장 강해: 여호와의 시내 산 강림 (0) | 2012.08.02 |
출애굽기 제18장 강해 -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지혜 (0) | 2012.07.28 |
출애굽기 제17장 강해 - 호렙산 반석에서 물이 솟다. (0) | 2012.07.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