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제19장 강해 - 시내 산에 강림하신 여호와
본 장부터 24장까지는 시내 산 언약 체결 기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1-15절은 언약 체결 의사를 확인하는 내용이며, 16-25절은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언약 체결자로서의 자세를 각성시키고 언약의 내용을 받기 위하여 시내산 위로 올라가는 내용입니다. 이 언약 체결은 이스라엘 백성이 공식적으로 하나님의 선민이 되는 것이며, 이는 신약의 성도가 믿음으로 십자가의 은혜에 동참하여 참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1-15절: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선민으로 출발하는 획기적인 사건의 도입부분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 언약을 체결해야 하는데, 그 준비 작업으로 ‘성결’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삼으신 것은 단지 그들만의 구원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중심으로 전 인류의 구속사를 전개해 나가시기 위함입니다.
1: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올 때부터 제 삼월 곧 그 때에 그들이 시내 광야에 이르니라.
출애굽 원년 3월 15일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던 날로부터 계산 한 것입니다. 출애굽한 지 3개월이 되는 날 이스라엘은 시내 광야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은 시내 산 남쪽 약 10km 지점에 위치한 오늘날의 ‘와디 세바예’(Wady Sebayeh)로 추정이 됩니다. 광활한 평지이기 때문에 200만 명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막을 치기에 충분한 장소라고 합니다.
2: 그들이 르비딤을 떠나 시내 광야에 이르러 그 광야에 장막을 치되 산 앞에 장막을 치니라.
르비딤은 시내 산에 오기 직전에 장막을 쳤던 곳으로 시내 산 북서쪽 20km 지점에 위치한 오늘날의 ‘와디 페이란’(Wadi Feiran)으로 추정합니다. 이곳에서 식수난으로 큰 고통을 겪었으며 아말렉의 공격을 받은 곳입니다. 이스라엘은 시내 산 이 보이는 계곡에 진을 쳤습니다.
3: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너는 이같이 야곱 족속에게 이르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라.
모세는 출애굽 이전에 여호와를 만난 시내 산에서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를 섬기게 될 것을 알고 믿고 있었습니다(3:12). 그는 시내 산 앞에 장막을 친 뒤 곧바로 하나님의 산으로 향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시고 ‘야곱 족속’ 곧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르라고 하셨습니다.
4: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지금까지 애굽 사람들에게 어떤 징계를 내리셨는가를 상기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이제 하나님께서 주실 율법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발적이고 감사한 마음으로 받고 순종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하나님의 강력한 능력과 누구도 훼방할 수 없는 사랑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구속하셨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이스라엘은 시내 산으로 인도하셨다는 것은 표면적인 것이며, 하나님의 은총 아래로 이끄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보았느니라.’ 이는 이스라엘이 친히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눈으로 보았을 뿐만 아니라 체험을 통해 알고 있음을 말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을 확실하게 알게 된 것입니다.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이 말씀은 세계의 모든 민족들 중에서 오직 이스라엘만이 하나님의 선민이 될 것임을 말씀하시기 위한 서론입니다. ‘내 언약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주실 율법을 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유익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친히 베풀어 주신 말씀이며, 하나님과 택한 백성 사이에 맺으신 영원한 약속입니다.(레 26:9)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조건은 그들이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표면적 유대인이 참 유대인이 아니라 진정과 신령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이면적 유대인이 참 하나님의 백성임을 교훈하였습니다(롬 2:28,29).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
‘제사장 나라’는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모든 민족들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중재 역할을 하며 또한 그들을 통치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 세상이나 사단을 섬길 필요가 없는 하나님 앞에서 왕 같은 권위를 지닌 자유인이 된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특권과 영광은 말씀에 순종할 때에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말씀에 불순종하여 불신앙으로 제사장 나라의 권위를 박탈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영적 이스라엘을 예비하심으로 택한 백성들을 향한 구속 계획을 계속 실현해 나가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의 자격을 모든 성도들에게 부여하셨습니다.(벧전 2:9)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이방인과는 엄연하게 구별되는 성결한 선민이 되어 하나님께 헌신 봉사하는 백성이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외적으로는 언약의 증표인 할례를 통해, 내적으로는 여호와를 향한 순결한 신앙을 통하여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될 것입니다. 이는 거룩한 백성은 영, 육간에 성결하고 온전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엡 5:8,9)
7: 모세가 와서 백성의 장로들을 불러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그 모든 말씀을 그 앞에 진술하니
장로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는 무리로서, 백성들 가운데 연장자이며 덕망이 높은 정신적 지도자들입니다. 모세가 이들을 모은 것은 이스라엘 전체를 회집시킨 것과 동일합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연결시키는 종재자로서, 하나님의 언약을 받기에 앞서 이스라엘이 그 언약의 권위를 인정하고 전적으로 순복할 것인지를 묻기 위해 불러 모은 것입니다. 모세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도구가 되어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전한 것입니다.
8: 백성이 일제히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모세가 백성의 말로 여호와께 회보(回報)하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순종하겠다고 이구동성으로 외쳤습니다. 당시에는 그들에게 주어진 복과 그들의 후손들에게 다가올 영광스러운 미래를 생각하며 이런 약속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결심도 잠시 뿐이며 과거의 실수와 범죄를 수없이 반복하게 됩니다. 이는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롬 3:20)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한 번 맺은 언약은 인간의 편에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편에서 실행하심으로써 당신의 백성들을 궁극적으로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처럼 일방적인 것입니다(엡 2:8; 요일 4:10). ‘여호와께 회보’ 모세는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메시지를 가감 없이 백성에게 전달했고, 백성들의 맹약을 하나님께 보고 드린 것입니다.
9: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빽빽한 구름 가운데서 네게 임함은 내가 너와 말하는 것을 백성으로 듣게 하며 또한 너를 영영히 믿게 하려 함이니라. 모세가 백성의 말로 여호와께 고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는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의 짙은 구름 속에서 모세와 말씀을 나누셨는데, 그 대화하는 용어는 이스라엘 언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습을 숨기신 것은 죄 많은 인간이 거룩한 하나님을 가까이 하거나 보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10:28; 사 6:5). 여호와께서 모세와 대화하는 것을 보고 들은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가 하나님의 종으로 그들의 중재자가 됨을 확실히 믿기에 충분하였을 것입니다.
1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백성에게로 가서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케 하며 그들로 옷을 빨고
여호와께서는 2일 간의 시간을 주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물로 몸을 깨끗하게 하며 옷도 깨끗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외적인 성결만이 아니라 내적인 정결한 마음가짐을 갖추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에 앞서 몸과 마음을 정결케 하는 것은 백성 된 기본 도리입니다. 이처럼 누구든지 스스로를 정결케 하지 않고는 감히 하나님께 나아갈 수도 없고, 하나님 앞에 설 수도 없습니다. 주님의 보혈로 정결케 되지 않은 자는 결코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음을 예시하고 있습니다(계 7:14).
11: 예비하여 제 삼 일을 기다리게 하라. 이는 제 삼 일에 나 여호와가 온 백성의 목전에 시내 산에 강림할 것임이니
제 3일은 하나님께서 율법을 수여하시기 위해 시내 산에 강림하시는 날입니다. 2일 간의 성결 기간을 거친 다음 날이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을 성결케 하는 데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인들은 하나님은 하늘 위에 거하시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여호와께서는 친히 이 땅에 강림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천지만물의 창조하시며 주재이신 하나님께서는 하늘에만 국한되어 머물지 않으시는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분이십니다(시 139:7-10). 문학적으로는 하늘에 계신다는 표현은 여호와의 절대 권위와 통치를 강조하는 묘사입니다. ‘온 백성의 목전에’ 이는 온 백성이 모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오실 것임을 뜻합니다.
12: 너는 백성을 위하여 사면으로 지경을 정하고 이르기를 너희는 삼가 산에 오르거나 그 지경을 범하지 말지니 산을 범하는 자는 정녕 죽임을 당할 것이라.
‘사면으로 지경을 정하고’ 이는 시내 산과 이스라엘이 머물고 있는 장막 사이를 임의로 구분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좁힐 수 없는 간격을 시사합니다. 이는 백성을 위한 조치입니다. 인간이 부주의하여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침해하여 맞게 될 죽음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이같은 경계를 정하신 것입니다. 이런 율법적 경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으로 ‘지성소’의 휘장이 찢어짐으로 철회되어 직접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새롭고 산 길이 열려 지게 되었습니다(히 10:20). ‘범하지 말지니’ 이는 손을 대거나 만지는 것입니다. 시내 산의 경계에 가까이 접근하거나 혹은 이 경계 내부의 어떤 것이라도 손을 대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 결과는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역에 함부로 침범하는 것은 하나님과 인간을 동일시하는 불경건한 행위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거룩함을 침해하는 행위입니다. 이런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죽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사 6:5). 하나님께서 강림하실 시내 산에 울타리를 치고 사람이나 가축이 범접하지 못하도록 명하신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13: 손을 그에게 댐이 없이 그런 자는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하거나 살에 쐬어 죽임을 당하리니 짐승이나 사람을 무론하고 살지 못하리라. 나팔을 길게 불거든 산 앞에 이를 것이니라 하라.
하나님께서는 시내 산에 접근한 자는 그 자가 존귀한 자이든 비천한 자이든, 하찮은 미물이든 간에 멀리서 돌이나 화살로 처형시키라고 명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 앞에 부정한 자에게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부정해지기 때문입니다(민 19:11). 이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존귀함은 어떤 이유로도 침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입니다.
14,15: 모세가 산에서 내려 백성에게 이르러 백성으로 성결케 하니 그들이 자기 옷을 빨더라.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예비하여 제 삼 일을 기다리고 여인을 가까이 말라 하니라.
모세는 여호와의 명령을 받들어 백성들로 성결케 하도록 하였습니다. 특히 여인을 가까이 하지 말라는 것은, 추후 율법이 수여 될 때에 남녀가 잠자리를 함께 함으로 설정하는 것은 졍결 의식상 부정한 행위로 간주 되었고 이런 자들을 물론 몸을 깨끗이 씻음으로 정결케 될 수 있었습니다(레 15:18). 따라서 하나님께로부터 율법을 수여받기 위해서는 스스로 성결케 해야 하므로 부부 사이에 동침을 삼가야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 정결케 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즐거움을 절제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16-25절: 시내 산 강림에 앞서 백성들의 성결을 명하셨던 하나님은 그 작업이 끝나자 마침내 영광과 위엄찬 모습으로 시내 산에 강림하셨습니다. 그리고 오직 모세의 접근만을 허락하심으로써 그를 유일한 중보자로 삼으시고, 모든 자들은 접근을 엄금하셨습니다. 이는 주어질 율법의 절대 권위를 시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모세의 신적 권위를 명확히 부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16: 제 삼 일 아침에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소리가 심히 크니 진중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우뢰’는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과 권위에 찬 임재의 청각적 측면이며, ‘번개’는 시각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초자연적인 현상입니다. 빽빽한 구름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현존을 상징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실체를 감추시기 위한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조처입니다. ‘나팔소리가 심히 크니’ 나팔 소리는 하나님의 강림을 예고하는 신호입니다. 따라서 뇌성이 치고 땅이 진동하는 가운데 거룩하고 엄위하신 하나님의 강림을 알리는 이 나팔 소리를 듣는 순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움을 가지고 크게 떤 것은 매우 당연하였을 것입니다. 이 나팔 소리는 천사에 의해 불리어졌을 것입니다(계 8:6; 9:1).
17: 모세가 하나님을 맞으려고 백성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오매 그들이 산기슭에 섰더니
사람이나 가축의 접근을 막기 위해 시내 산 주위에 둘러 쳐진 울타리 밖에 섰다는 뜻입니다. 이 울타리와 이스라엘 백성의 장막 사이에는 상당한 공간이 있었는데, 모세는 백성의 대표자 자격으로 장로들을 대동하고 울타리 밖 시내 산기슭에 서서 하나님의 다음 명령을 기다렸습니다.
18,19: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점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나팔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 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
하나님께서 불 가운데서 나타나신 것은 불이 뜨겁게 태운다는 성질을 통하여, 하나님 자신이 전능하시며, 불의와 죄에 대하여 맹렬히 질투하시는 분이심을 나타내 보이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옹기점 연기 같이’ 도기를 굽는 가마의 연통에서 뿜어 나오는 연기와 유사한 연기라고 합니다. 이 연기는 구름과 마찬가지로 거룩하신 하나님의 현현을 가리기 위한 초자연적 연기였을 것입니다.(사 4:5)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이는 ‘우뢰’ 때문이라고 보는 학자도 있고, 지진 때문이라는 학자도 있지만, 이 현상은 분명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임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모세가 말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강림으로 인한 두려움과 압박감으로 인하여 속히 하나님께서 명령을 내리시기를 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말에 응답하심으로써 그를 향한 관심이 지극함과 그가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할 것임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20: 여호와께서 시내산 곧 그 산꼭대기에 강림하시고 그리로 모세를 부르시니 모세가 올라가매
여호와께서는 모세만을 호출하여 산꼭대기로 올라오도록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교제의 주체는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허락과 요청이 없이는 인간은 결단코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습니다. 이것인 계시 종교의 한 특징입니다.
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려가서 백성을 신칙(申飭)하라. 백성이 돌파하고 나 여호와께로 와서 보려고 하다가 많이 죽을까 하노라.
‘신칙: 우드(עוד)’는 ‘경고하다’, ‘훈계하다’는 뜻인데 반복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은 다시 한 번 더 깨우치라는 뜻입니다. 시내 산을 오르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는 하나님의 현현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내 산을 오르려는 충동에 사로잡힌 자들이 많이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돌파하고’ 이에 해당하는 말은 ‘하라쓰(הרס)’로 ‘허물다, 파괴하다, 넘어뜨리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현현을 보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 경계에 쳐진 울타리를 무너뜨리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현현에 대한 지나친 호기심은 자칫하면 영원히 헤어 나올 수 없는 멸망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불의한 호기심으로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낙원에서 추방된 사건은 좋은 교훈입니다(창 2:6).
22: 또 여호와께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로 그 몸을 성결히 하게 하라. 나 여호와가 그들을 돌격할까 하노라.
당시에 제사 제도가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론과 그 자손들을 제사장으로 보기보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로서 제사를 담당한 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굳이 제사장의 성결에 대한 명령이 언급되는 이유는 스스로 성결함을 자처하는 제사장이라도 하나님의 강림을 예비하기 위해 다시 한 번 더 성결에 신중해야 하는데, 하물며 일반 백성들이야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돌격할까 하노라.’ 즉각 심판한다는 뜻입니다.
23: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께서 우리에게 명하여 이르시기를 산 사면에 지경에 세워 산을 거룩하게 하라 하셨사온 즉 백성이 시내 산에 오르지 못하리이다.
모세는 백성들로 하여금 시내 산에 오르지 말도록 하라는 하나님의 금지 명령이 이미 시달되었기 때문에 다시 반복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말씀을 드립니다. 여기에서 모세는 순간적이나마 자신의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보다 더 합리적일 것이라 착각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24: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가라. 너는 내려가서 아론과 함께 올라오고 제사장들과 백성에게는 돌파하고 나 여호와께로 올라오지 못하게 하라. 내가 그들을 돌격할까 하노라.
동일한 명령을 두 번씩 반복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모세의 제안을 정면에서 거절하신 하나님은 다시 한 번 더 반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산에 오르지 말도록 경고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이 명령을 반복하시는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주의 현현을 목도하려는 자들이 끊이지 않았고 이로 인해 순간적인 잘못으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25: 모세가 백성에게 내러가서 그들에게 고하니라.
모세는 자신의 제안이 그 자리에서 거절되자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산에서 내려와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전달하였습니다. 이는 모세가 자신의 순간적인 실수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그대로 순종하는 모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출애굽기 제21장 강해: 시민법(종, 사형, 상해, 배상법) (0) | 2012.08.26 |
---|---|
출애굽기 제20장 강해 - 십계명 (Decalogue) (0) | 2012.08.10 |
출애굽기 제18장 강해 -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지혜 (0) | 2012.07.28 |
출애굽기 제17장 강해 - 호렙산 반석에서 물이 솟다. (0) | 2012.07.20 |
출애굽기 제16장 강해 - 만나와 메추라기 (0) | 2012.07.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