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제21장 강해 - 시민법(종, 사형, 상해, 배상)
율법에는 도덕법, 의식법, 시민법(Civil Law: 사회법)이 있습니다. 당시 사회생활을 위해 주신 법입니다. 남종에 관한 법(21:1-6), 여종에 관한 법( 7-11), 살인자에 관한 법(13), 불효자 처형법(15,17), 인신매매에 대한 법(16)과 그 외에 많은 세부 규례들이 있습니다. 본 장에서는 시민법 중 종, 사형, 상해, 배상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11: 히브리 종에 관한 법으로 십계명의 실제적 운용이라는 측면에서 제5, 제6계명에 관련된 율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난 또는 형벌 상 노예로 전락한 동족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를 지시한 일종의 인권 보호에 관한 지침입니다. 1-6절까지는 히브리 남종 관계, 7-11절은 여종 관계법을 다루고 있습니다.
1: 내가 백성 앞에 세울 율례는 이러하니라.
‘율례’라는 말은 ‘재판하다, 판단하다’는 뜻입니다. 법정적 재판 혹은 판결을 위하여 가장 적당하게 사용할 수 있는 판례를 가리키는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을 가리킵니다. 히브리인 율례의 근본정신은 공의와 사랑의 2대 원리로 되어 있습니다.
2: 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가 육 년 동안 섬길 것이요 제 칠 년에는 값없이 나가 자유할 것이며
고대에서 노예제도는 일반적 풍습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율법이 당시에 존재하던 노예 제도의 잔인함과 무정함으로부터 노예들의 인격을 보호할 목적으로 제정 되었다는 점에서 당시 노예의 인격을 함부로 짓밟았던 비방 노예 제도와는 차이가 난다고 하겠습니다. 히브리인이 동족의 노예가 되는 경우에는 ① 가나난하여 빚을 갚을 능력이 없을 때(레 25:35,39)와 ② 훔친 남의 물건을 배상할 능력이 없을 때(22:3)입니다. 이들은 종이 된지 제7년 째 되는 해에는 해방이 되었습니다. 7년을 채우기 전에 희년을 당하게 되면 그 종은 그 해에 해방이 되어 더 빨리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습니다(레 25:40). 그리고 이때 자유의 몸이 된 종에게는 빈손으로 보내지 말고 양과 곡식과 포도주를 후히 주어 보내야 합니다(신 15:12-14). 이는 그 종이 새 생활을 시작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 주시려는 하나님의 크신 배려입니다. 이 규례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안에서 안식과 평화를 누리기 위해 제정된 안식년 규례에 근거합니다. ‘값없이 나가’ 노예의 몸값을 지불받지 않고 해방시켜 주는 것입니다. 율법은 노예로 팔린 자를 그 친족이 몸값을 지불하고 해방시켜 주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친족이 없는 자는 결국 노예로 6년이란 기간을 채운 뒤 그 주인으로부터 놓임을 받는데, 이때 주인은 노예로 팔린 자를 아무런 조건 없이 자유인으로 해방시켜 주어야 합니다. 이는 6년 동안 행한 노동의 대가가 몸값으로 상정되었기 때문입니다.
3: 그가 단신으로 왔으면 단신으로 나갈 것이요 장가들었으면 그 아내도 그와 함께 나가려니와
제7년에 주인이 종을 해방시킬 때 발생할 수 있는 세 가지의 경우 중 두 가지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① 독신인 종이 단신으로 왔다가 단신으로 나갈 경우 ② 결혼한 종이 처자들을 데리고 왔다가 함께 나갈 경우입니다. 그런데 둘째 경우는 종이 데려온 처자들의 소유권은 주인에게 있지 않고 종에게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사실은 비천한 종을 주인의 종속물이 아닌 하나의 완전한 인격체로 인정하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4: 상전이 그에게 아내를 줌으로 그 아내가 남녀 간 낳았으면 그 아내와 그 자식들은 상전에게 속할 것이요 그는 단신으로 나갈 것이로되
결혼하지 않은 자가 종이 된 이후에 주인의 여종을 아내로 맞아 자녀들을 낳았을 경우입니다. 이때에 그 종의 아내와 아이들은 주인의 소유임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주인의 소유권을 보호하기 위한 규례입니다. 이 규정은 그 종의 가족들을 떨어뜨려 놓는다는 점에서 지나친 처사로 보이지만 주인과 종 사이의 상호 인격을 존중하고 소유권 문제를 불만 없이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당시 최선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 종이 진정으로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하지 않겠노라 하면
당시 히브리 사회에서 상전들은 노예로 팔린 자신의 종들에 대해서 매우 관대하였다고 합니다. 이들은 단순히 주종(主從)관계 이상으로 서로 인격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종이 주인과의 인간적 유대 관계로 인해 평생 자신의 가족과 더불어 주인의 집에 머무는 경우가 흔히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자유하지 않고 평생 동안 종으로 주인을 섬기겠다고 하면, 그 종은 주인에게서 얻은 아내와 자식과 더불어 살 수 있는 권리가 있었습니다. 이 경우에는 종들은 단순한 종의 차원을 넘어 나그네와 고용인과 같은 대우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 제도는 평생 동안 종의 신분과 인격을 철저히 보장하는 상당히 합리적인 제도입니다.
6: 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 귀를 뚫을 것이라 그가 영영히 그 상전을 섬기리라.
‘재판장에게로’(엘 하엘로힘: אל האלהים) 직역하면 ‘하나님에게로’라는 뜻입니다. 재판은 사람이 하지만 사실 판결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라는 개념입니다. 재판장에게 가서 상호 확인을 한 후에, 주인은 종의 귀를 문설주에 대고 귀를 뚫습니다. 이는 일평생 종이 될 것을 서약하는 고대 근동의 풍습입니다(신 15:17). 고대 카르타고인들은 귀걸이를 달아서, 고대 바벨론인들은 이마에 불을 지져서 종의 표식으로 삼았습니다. 이와 비교하여 볼 때에 히브리인들은 고대 근동의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쉽고 간단하고 관대한 방식으로 종이 되는 의식을 이른 것입니다.
7: 사람이 그 딸을 여종으로 팔았으면 그는 남종같이 나오지 못 할지며
고대 사회에서 가장의 권한은 대단히 커서 자식들을 필요에 따라 팔 수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가난하거나 빚이 있는 경우에 가장 자식을 남의 종으로 파는 경우가 허다하였습니다. 이때 종이 된 남자나 여자는 제7년째에는 모두 해방될 수 있지만(신 15:12), 여종이 주인의 첩이 되었을 경우는 계속 주인을 섬겨야 했습니다. 본 절은 바로 이 경우를 규정한 것입니다. 이 경우 여종이 주인으로부터 자기 지위를 확실히 보장 받게 됩니다.
8: 만일 상전이 그를 기뻐 아니하여 상관치 아니하면 그를 속신케 할 것이나 그 여자를 속임이 되었으니 타국인에게 팔지 못할 것이요
‘상관치 아니하면’ 이 말은 주인이 첩으로 삼은 여종을 싫어하여 첩으로 인정하지 않고 동침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럴 경우에는 ‘속신’케 하여야 합니다. 속신케 하는 방법은 네 가지입니다. ❶ 외국인을 제외한 히브리 동족에게 파는 것 ❷ 자신의 아들에게 첩으로 주는 방법(9절) ❸ 아들로부터도 버림을 받으면 책임지고 그녀의 생계를 보상해 주어야 하며(10절) ❹ 위의 3가지 조건이 하나도 충족되지 않을 경우에는 그녀를 자유인으로 해방시켜 주어야 합니다.(11절) ‘그 여자를 속임이 되었으니’ 첩으로 삼은 여자에 대해 주인이 남편의 의무를 소홀히 하거나 혹은 남편의 의무를 포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주인이 자신과 혼인한 여종에 대한 계약을 파기한 결과를 낳았기 때문에 여종의 입장에서는 결국 속임을 당한 것입니다. ‘타국인에게 팔지 못할 것이요’ 히브리 노예는 결코 이방인에게 매매되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이는 외국으로 팔려 가면 제7년째에 해방 될 수 있는 권리가 상실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최악의 상태가 발생하여 히브리인이 이방인의 종이 되었을 경우 그 사람의 가장 가까운 친족은 속전을 지불하고 그를 해방시켜 주어야 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9: 만일 그를 자기 아들에게 주기로 하였으면 그를 딸같이 대접할 것이요
주인이 어떤 여종을 첩으로 삼으려고 샀으나 자기 마음에 들지 아니하여 아들에게 첩으로 주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 그 주인은 그녀에게 딸과 같은 대우를 해 주어야 합니다.
10: 만일 상전이 달리 장가들지라도 그의 의복과 음식과 동침하는 것은 끊지 못할 것이요
일단 주인과 결혼한 여종은 일생 동안 첩으로서의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다. 따라서 ‘의복과 음식과 동침하는 것’은 결혼한 여인이 누릴 수 있는 모든 특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 주는 말입니다. 특히 ‘동침’이란 부부 사이의 성관계뿐만 아니라 부부가 서로에게 주장할 수 있는 권리 내지는 부부 각자에게 주어진 의무까지 포함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주인이나 혹은 그 아들의 첩이 된 여종이 그 인격조차도 무시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해 주셨습니다.
11: 이 세 가지를 시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속전을 내지 않고 거저 나가게 할 것이니라.
주인이 첩이 된 여종에게 남편으로서 당연히 해 주어야 할 의무(의복과 음식과 동침)을 시행하지 않으면, 그 여종은 처음 팔릴 때의 몸값을 변상하지 않고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습니다. 단순한 여종으로 남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남자와 결혼할 수 있는 자유인의 권리를 되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당시 가장 비천한 신분 중 하나인 여종의 인격과 권리를 최대한으로 보장해 주시는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와 지극한 사랑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12-17: 사형에 관한 법입니다. 인권과 질서를 유린하는 흉악 범죄에 대한 처벌법입니다. 인명을 고의로 살해 한 범죄 및 예외 조장(12-14절), 부모를 구타한 범죄(15절), 타인을 유괴한 범죄(16절), 부모의 권위를 무시하고 저주한 범죄(17절) 등 4종류의 사형에 해당하는 죄악입니다.
12: 사람을 쳐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나
십계명 중 제6계명의 규정에 살인자를 반드시 죽이라는 처벌 규정이 부가되었습니다. ‘치다(나카: )’는 때리다는 뜻 외에도 살인하다, 죽이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쳐 죽이다’는 말은 단순히 때려서 죽인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살인 행위를 강조하기 위한 표현입니다. 이 행위가 철저하게 금지된 이유는 살인이 매우 비인간적 행위라는 도덕적 측면도 있지만 살인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을 파괴함으로써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권한을 침해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13: 만일 사람이 계획함이 아니라 나 하나님이 사람을 그 손에 붙임이면 내가 위하여 한 곳을 정하리니 그 사람이 그리로 도망할 것이며
‘계획함’의 원 의미는 사냥꾼이 짐승을 잡기 위해 덫을 놓고 기다리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사람을 죽일 목적으로 음모를 꾸미거나 함정을 파는 행위, 즉 고의적 살인 행위를 말합니다. ‘붙임이면’ 이는 ‘념거주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취할 권한을 사람에게 넘겨주셨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국가나 민족 또는 개인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내가 위하여 한 곳을 정하리니’ 이는 본의 아니게 살인한 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오살(誤殺)한 사람은 하나님의 율례에 의해 보호를 받지만 일정한 장소로 도피해야만 하는 조건이 있었습니다. 이 도피 장소는 초기에는 하나님의 제단이 있는 성소 한 곳 밖에 없었으나(14절) 후에는 도피성 제도로 발달되어 요단 강 양편에 각각 세 곳씩 모두 여섯 성읍에 마련이 되었습니다(민 35:10-15: 수 20:1-9).
14: 사람이 그 이웃을 짐짓 모살하였으면 너는 그를 내 단에서라도 잡아내려 죽일지니라.
짐짓은 ‘교활하게’, ‘뻔뻔스럽게’라는 뜻입니다. ‘모살하였으면’ 음모로 살인한 것을 말합니다. 이는 우발적 살인과 달리 계획적 살인입니다. 고의적이고 계획적인 살인자는 어떤 경우라도 용서를 받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제단이나 도피성으로 도망한 모든 살인자가 다 사면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모살죄는 살인죄뿐만 아니라 살인을 금하시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죄까지 범했기 때문입니다. 모살자에 대한 처형은 하나님으로부터 권한을 부여받은 재판관의 고유한 권한입니다. 따라서 피해자의 가족이나 친지에게 복수권이 있다 하더라도 모살자를 임의로 처벌할 수 있는 권리는 없었습니다.
15: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친다’는 말은 단순히 ‘때린다, 죽인다’는 차원을 넘어서 온갖 종류의 악한 행실을 포함합니다. 이 율례는 단지 부모 학대 내지 살해 금지 규정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차원에서 십계명 중 대인에 관한 첫 계명인 부모 공경에 관한 규정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처럼 부모가 공경의 대상인 이유는 ❶ 자식에게 생명을 주시고 길러주신 분이기 때문이며, ❷ 가정생활에서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가정에서의 부자 관계는 하나님과 성도의 관계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학대하거나 살해한 죄는 살인죄보다 더 큰 죄입니다. 부모에 대한 효도가 인간에게 주어진 제1의 계명임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16: 사람을 후린 자가 그 사람을 팔았든지 자기 수하에 두었든지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이는 사람을 도적질한 자를 말합니다. 유괴법입니다. 인신매매나 종을 삼을 목적으로 사람을 훔치는 일은 고대 근동부터 현대까지 계속해서 저질러지는 범죄입니다. 율법이 유괴범에 대해 사형을 명시한 이유는 ❶ 타인의 생명을 도둑질한 자는 자기 생명으로 배상해야 하며, ❷ 유괴와 인신매매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의 존엄성을 철저하게 짓밟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17: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저주하다’(칼랄: קלל)은 ‘업신여기다, 훼방하다’는 뜻입니다. 이 율례는 부모와의 논쟁이나 항변조차도 금하는 명령이 아니라 부모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부모를 멸시하며 제멋대로 행동하는 자에 대한 제재 율례입니다. 부모를 저주한 자는 하나님을 저주한 자와 똑같이 취급되어 사형을 당했는데(레 34:16) 이는 부모가 단순히 생명의 어버이일 뿐만 아니라 믿음의 양육자였기 때문입니다. 이 율례는 시대가 흐름에 따라 재판장이나 백성의 지도자, 즉 믿음의 양육자들에게까지 확대 적용 되었는데,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영적 어버이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입니다(22:28; 왕상 2:8,9).
18-36: 피해 보상에 관한 법입니다. 이웃에게 신체상의 손상을 가한 경우*18-32) 및 재산상의 손해를 입힌 경우(33-36) 그 각각에 해당하는 처벌 기준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는 자신의 허물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이웃의 재산권 및 인권 보호라는 3대 목적이 있습니다.
18,19: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하나가 돌이나 주먹으로 그 적수를 쳤으나 그가 죽지 않고 자리에 누웠다가 지팡이를 짚고 기동하면 그를 친 자가 형벌은 면하되 기간 손해를 배상하고 그로 전치(全治)되게 할지니라.
철 연장을 사용한 살해가 계획적 살인 행위임에 반해(민 35:16) 돌은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돌이나 주먹으로 사람을 쳤다는 것은 우발적인 행위로 보았습니다. 따라서 돌이나 주먹으로 가해를 당한 자가 죽으면 우발적 살인 행위였기 때문에 가해자는 도피처로 피신할 수 있었으며, 다행히 피해자가 상처만 입었으면 그에 상당한 배상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피해자가 죽는다 하더라도 그 죽음에 대해서는 가해자에게 책임이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이는 피해자가 병상에서 일어나 지팡이를 짚고 움직이는 것은 이미 가해자로부터 받은 상처가 회복 단계에 있음을 의미하며, 따라서 그후 피해자가 죽는 것은 가해자의 가해 행위가 아닌 피해자의 잘못된 자기 관리에 기인하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기간 손해’라는 말은 부상당한 기단 동안 입은 정신적, 물질적 손해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만일 가해자가 피해 보상금 지불 능력이 없을 경우에는 도적질한 자와 같이 그 몸을 팔고 종이 되어서라도 배상을 해야만 했습니다(22:4).
20,21: 사람이 매로 그 남종이나 여종을 쳐서 당장에 죽으면 반드시 형벌을 받으려니와, 그가 일 일이나 이 일을 연명하면 형벌을 면하리니 그는 상전의 금전임이니라.
율법은 부모가 자녀를 훈계하듯 주인이 종에 대하여 훈계의 차원에서 매질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합니다. 그러나 매질 과정에서 종이 죽음을 당하면 그 주인은 이에 대한 응분의 형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런 사실은 고대 근동의 일반적인 노예법이 종의 생사여탈권을 전적으로 주인에게 부여한 것과 비교할 때에 율법이 얼마나 종의 인권보호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율법 역시 종을 주인의 재산으로 인정하지만, 종을 단순한 재산으로 취급하기에 앞서 영혼을 가진 인격체로 존중한다는 점에서 이방인들의 법과는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매를 맞은 종이 바로 죽으면 주인의 매질에 고의적인 살인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인정되어 살인죄가 적용 되지만, 구타 후 하루나 이틀 정도의 기간이 경과한 후에 종이 죽으면 고의성이 없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 경우에 종의 죽음이 주인의 재산적 손실로 여겨져 주인이 죄 값을 치른 것으로 인정 되었습니다.
22: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아이 밴 여인을 다쳐 낙태케 하였으나 다른 해가 없으면 그 남편의 청구대로 반드시 벌금을 내되 재판장의 판결을 좇아 낼 것이니라.
두 가지의 경우를 추측할 수 있습니다. ❶ 사람이 아이 밴 여인과 싸우다가 낙태케 한 경우일 수도 있고 ❷ 남자들의 싸움에 기어들어 남편의 편을 들다가 낙태한 경우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경우든 상관없이 임산부에게 낙태 이외의 다른 피해가 없을 경우 가해자는 남편의 요구하는 만큼의 배상금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요구액이 많다고 생각될 경우 가해자는 재판장에게 호소하여 배상금 액수를 조정할 수 있었습니다.
23-25: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
이 부분은 ‘동해보복법(同害報復法, lex talionis)’에 관한 규례입니다.(레 24:17-20; 신 19:21) 이 규례는 개인적인 보복의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복의 남용을 방지하려는 것입니다. 그 근본정신은 복수를 최대한으로 억제하고 용서와 사랑의 정신을 심어주려는 데 있습니다. 이러한 율법의 정신은 신약 시대에 와서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도 돌려대라.’는 주님의 가르침(마 5:38-44)으로 발전되었습니다.
26,27: 사람이 그 남종의 한 눈이나 여종의 한 눈을 쳐서 상하게 하면 그 눈 대신에 그를 놓을 것이며
그 남종의 한 이나 여종의 한 이를 쳐서 빠뜨리면 그 이 대신에 그를 놓을지니라.
종의 주인의 소유물이기 때문에 동해보복법의 적용을 받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종이 인격의 침해나 신체의 제재를 받아서도 안 되었습니다. 주인은 종을 교훈할 목적으로 매질할 권리는 있었지만, 종의 신체 중 어떤 부위라도 상해하면 그 대가로 종을 해방시켜야 했습니다. 이런 사실은 고대 근동의 어떤 법률에서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종이지만 종의 신체적 권리를 최대한으로 보장하기 위함입니다.
28: 소가 남자나 여자를 받아서 죽이면 그 소는 반드시 돌에 맞아 죽을 것이요 그 고기는 먹지 말 것이며 임자는 형벌을 면하려니와
소가 사람을 받아 죽인 경우 그 소는 이유 불문하고 돌로 쳐 죽여야 했습니다. 사람이 죽을 때 받은 만큼의 고통을 소에게도 주어야 한다는 견해도 있지만, 비록 짐승이지만 사람의 피를 흘리게 했으면 반드시 피 값을 치러야 했기 때문입니다(창 9:5). 소를 돌로 쳐 죽이는 이유는 그 소가 사람을 죽임으로써 살인죄의 적용을 받았기 때문입니다.(레 24:16) ‘고기는 먹지 말 것이며’ 소가 사람을 죽이고 피를 흘림으로써 부정해졌기 때문입니다. 이 고기는 이방인에게도 팔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임자는 형벌을 면하려니와’ 사람을 받아 죽인 소의 주인이 형벌을 면한 이유는 ❶ 소가 사람을 받아 죽이리라는 것은 예측할 수도 없고 방지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으며 ❷ 소를 잃게 되는 재산상의 손실만으로도 과실에 대한 책임을 진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입니다.
29: 소는 본래 받는 버릇이 있고 그 임자는 그로 인하여 경고를 받았으되 단속하지 아니하므로 남녀 간에 받아 죽이면 그 소는 돌로 쳐 죽일 것이고 임자도 죽일 것이며
자기 소가 사람을 죽일 만큼의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제대로 단속하지 못하여 살인이 날 경우에는 자신의 임무에 소홀했기 때문에 주인은 소와 함께 사형에 처하도록 하였습니다.
30,31: 만일 그에게 속죄금을 명하면 무릇 그 명한 것을 생명의 속(贖)으로 낼 것이요, 아들을 받든지 딸을 받든지 이 율례대로 그 임자에게 행할 것이며
직무 소홀로 자신의 소가 사람을 죽인 경우 그 주인은 사형을 면할 수 있는 예외 규정을 두었습니다. 속죄금을 지불함으로 그 책임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속죄금(코페르:כפר)은 ‘숨김, 덮음’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속죄금은 죄를 가려 주는 돈, 즉 몸값을 의미합니다. ‘생명의 속으로 낼 것이요’ 목숨을 대속하기 위해 속전을 내어야 합니다. 당시 히브리인의 속전은 신분, 연령, 성별에 따라 구분이 되었습니다(레 27:3-8). 그러나 그 속전에 관계없이 사람을 죽여 피를 흘린 소는 반드시 죽여야 했습니다.
32: 소가 만일 남종이나 여종을 받으면 소 임자가 은 삼십 세겔을 그 상전에게 줄 것이요 소는 돌에 맞아 죽을지니라.
소가 종을 받았을 경우 소 주인의 속전에 관한 규례입니다. 이 규례로 보아 아마 당시 히브리 사회에서 종 한 명의 몸값은 남녀 구분 없이 은 삼십 세겔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속전이 소에게 받혀 죽은 종의 주인에게 지급이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도 종 한 명의 몸값인 은 삼십에 팔리신 것은 당시 제사장이 얼마나 주님을 가볍게 생각했는지를 알 수 있고, 그들은 그 죄값을 치르고야 말았습니다.
33,34: 사람이 구덩이를 열어 두거나 구덩이를 파고 덮지 아니함으로 소나 나귀가 거기 빠지면, 그 구덩이 주인이 잘 조처(措處)하여 짐승의 임자에게 돈을 줄 것이요 죽은 것은 그의 차지가 될지니라.
팔레스타인 지역은 물이 귀했으므로 개인이 판 우물이나 물구덩이는 곧 개인의 재산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우물이나 샘은 대개 깊고 위험했기 때문에 항상 덮개로 덮어 사람이나 짐승이 빠지지 않도록 유의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우물의 주인이 게을러서 덮개를 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소나 나귀가 빠져 죽는 경우 우물의 주인은 마땅히 짐승의 값을 전부 지불해야 했습니다. 죽은 가축의 고기는 우물 주인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35: 이 사람의 소가 저 사람의 소를 받아 죽이면 산 소를 팔아 그 값을 반분하고 죽은 것도 반분하려니와
소끼리 싸워서 한 소가 죽은 경우의 해결법입니다. 이때는 산 소를 팔아 반반씩 나누고 죽은 소도 반반씩 나눔으로써 두 소의 주인이 공동으로 책임져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우발적으로 발생했을 경우에 국한합니다.
36: 그 소가 본래 받는 버릇이 있은 줄을 알고도 그 임자가 단속하지 아니하였으면 그 소로 소를 갚을 것이요 죽은 것은 그의 차지가 될지니라.
싸운 두 소 중에서 한 소가 볼래 받는 버릇이 있음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주인이 제대로 단속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가해 한 소의 주인은 피해를 당한 소의 주인에게 산 소로 갚고 피해자의 죽은 소를 가져야 했습니다. 여기에서 소를 소로 갚는 것은 동해보복법의 원리에 입각한 규정이며 가해를 한 소의 주인도 죽은 소를 가지도록 함으로써 큰 손해는 입지 않도록 배려하였습니다.
이러한 규례들은 사람의 나태와 부주의로 이웃에게 손해를 끼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손해를 끼쳤을 경우에는 성실하게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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