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출애굽기 제17장 강해 - 호렙산 반석에서 물이 솟다.

chukang 2012. 7. 20. 16:11

출애굽기 제17장 강해 - 호렙산 반석에서 물이 솟다

 

  이스라엘이 르비딤에 머물고 있던 중 두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1-7절에는 ‘물’ 때문에, 8-16절은 아말렉 족속과의 전투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7절: 마라에서 있었던 쓴 물 사건이 기억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또 다시 불평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번에도 그들을 책망하지 않고 참으시는 중에 그들에게 반석의 생수를 주셨습니다. 반석처럼 굳은 백성들의 심령에 은혜의 생수를 부으심으로써 그들이 지닌 모든 문제와 갈증의 궁극적인 해결자는 오직 여호와이심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여호와의 명령대로’는 ‘여호와 현존의 상징인 구름의 지시에 따라’라는 뜻입니다. 광야의 길을 걸어가는데 있어서 실족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여호와의 명령대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엘림에서 떠나 신 광야에 있던 이스라엘은 발행하여 르비딤으로 옮겼습니다. 이렇게 장막을 옮기는 것은 여호와의 명령에 따른 것입니다. ‘그 노정대로 행하여’라는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즉흥적으로 어느 곳으로 이동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목적지를 설정해 두시고,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르비딤’이라는 말은 ‘쉬는 장소’, ‘평야’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마실 물이 없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장소라고 할지라도 백성들에게는 부족한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나아간다고 해도 어려운 난관에 부딪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모두 우리에게 유익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2: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가로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다투다’는 말은 폭력을 휘두르듯이 불평과 불만을 토로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어려운 일 발생할 때마다 그들의 지도자를 원망하는 비신앙적이며 이기적인 속성을 드러내 보였습니다. 이는 지도자를 배신하는 것이며, 신앙적으로는 하나님의 능력과 섭리를 불신하는 행동입니다. 이스라엘이 비록 하나님의 구속 계획에 따라 출애굽 한 것이지만 한편으로 볼 때에는 지도자 모세를 향한 적극적인 지지와 동조 아래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에 대한 신의를 저버리며 하나님께는 불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이는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이적을 체험하여도 여호와를 믿지 못하는 것은, 이적을 일으키시는 하나님보다 그 이적 자체에 빠져들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신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점이 되는 문제입니다.

 

3: 거기서 백성이 물에 갈하매 그들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생축으로 목말라 죽게 하느냐.

  이스라엘 백성만 그런 게 아니라 모든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는 항상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애굽에서 고통을 당할 때에는 벗어나기를 원하고, 벗어난 후에는 환경에 불평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라의 쓴 물이 달게 변하여 저들이 목을 축인지 얼마나 지났다고, 또 다시 물이 없어서 자신들과, 자녀와, 생축까지 죽게 만든다고 원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근시안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른 신앙은 ‘왜?’라고 하는 물음을 던지고 해답을 찾아야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광야로 인도하셨을까?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즉 하나님께서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우리를 인도하시는가 하는 물음을 묻고 답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받은바 은혜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4: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얼마 아니면 내게 돌질 하겠나이다.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항상 겸손한 자세로 여호와께 간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상황은 백성들이 돌질을 할 기세가 될 만큼 험악한 상황이었습니다. 이처럼 자신에게 힘들고 손해가 될 것 같으면 지도자와 하나님을 대적하는 완악하고 패역한 이스라엘이었기에, 모세는 오직 여호와께만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5,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가서 이스라엘 장소들을 데리고 하수를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내가 거기서 호렙산 반석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하나님께서는 모세로 하여금 백성들은 원망하는 그대로 놔두고 장로들만을 데리고 호렙산 반석 위에 서게 하셨습니다. 장로들을 데리고 간 것은 증인으로 삼기 위함입니다. 나일 강을 피로 물들게 한 이적의 지팡이를 들고 가게 하셨습니다. 지팡이를 통하여 다시 이적을 일으켜 주실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 지팡이는 능력의 지팡이가 아닙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능력을 상징하는 매우 귀하게 쓰임을 받는 도구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호렙산’은 ‘시내산’과 동일한 장소입니다. 모세가 정확히 산의 어느 장소 어느 반석에 섰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너를 대하여 서리니’ 이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도우신다는 표현입니다. 이 호렙산 반석의 물 사건은 신약에서는 영생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갈증으로 고통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호렙산 반석에서 솟아난 물로 기갈을 해갈했듯이, 이 세상에서 갈급한 심령으로 살아가는 성도에게 영원한 생명수가 되시는 분은 오직 예수님 밖에는 없습니다.

 

7: 그가 그곳 이름을 맛사라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 하였음이더라.

  ‘맛사(מסה)’는 ‘시험하다’는 말에서 파생하여 ‘시련’ ‘유혹’이라는 뜻입니다. ‘므리바(מריבה)’는 ‘불평하다’ ‘다투다’는 말에서 나와 말로 ‘말다툼’, ‘쟁투’란 뜻을 가집니다. 이 두 지명은 고갈된 식수 문제로 모세와 다툼으로써 하나님의 존재를 시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앙을 대대로 기억하게 만들기 위하여 지어진 명칭입니다.

 

  8-16절: 호렙산 반석의 생수 사건 이후 다시 전열을 가다듬은 이스라엘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처음으로 맞이하는 전투였습니다. 이 전투에서 하나님의 지시와 모세의 지도 아래 이스라엘은 승리를 체험하게 됩니다. 이는 전쟁의 승패가 여호와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요, 여호와를 의지할 때에 반드시 승리하게 된다는 믿음과 용기를 주시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8: 때에 아말렉이 이르러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르비딤에서 식수가 없어 기갈로 크게 고생하며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던 이스라엘이 반석에서 솟아난 물로 해갈을 한 후에 아말렉이 나타난 것입니다. 에서의 손자인 아말렉의 후손들입니다. 이들은 일 년 중 비가 내리지 않는 상반기(봄, 여름)에는 물과 풍성한 목초지를 찾아 다녔습니다. 이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은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목초지를 차지하게 될 것을 염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후미를 공격하였습니다(신 25:17,18). 이는 신앙의 대열에서 이탈하여 낙오된 자는 언제든지 원수 마귀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영적인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9: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여호수아는 ‘여호와는 구원’이라는 뜻입니다. 원래 이름은 ‘호세아’로 ‘눈’의 아들이며(민 13:8), 에브라임 지파에 속하였습니다(대상 7:23-27). 르비딤에서 아말렉과 싸울 때에 처음으로 등장하는데, 모세는 그에게 총사령관의 직책을 부여하여 모든 작전권을 위임한 것으로 보아, 이미 모세의 신임을 받는 충직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전투에 임할 인원의 선발권을 위임하고, 자신은 산꼭대기에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고 서겠다고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께 기도하겠다는 뜻입니다. 모세는 여호수아를 육체적 전쟁터에 보내는 동시에 자신은 영적 전쟁터에 나서겠다는 뜻입니다. ‘산꼭대기’는 ‘기브아(גבעה)’로 낮은 산 혹은 언덕을 뜻하므로, 모세는 전황을 똑똑히 분별할 수 있는 언덕에 올라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10,11: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곡대기에 올라가서,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모세, 아론, 훌은 하나님께 승리를 간구하기 위하여 산에 올랐습니다. 아론과 훌은 모세의 조력자입니다. 중요한 것은 합심해서 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합력한 기도가 아말렉을 물리칠 정도로 엄청난 결과를 가져 온 것입니다. 모세가 손을 들었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해 간절히 기도를 계속하고 있음을 뜻합니다. 그러나 모세의 팔이 피곤하여 내려왔을 때에는 아말렉에게 패하였습니다. 이는 이스라엘과 아말렉이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을 통하여 하나님께 의뢰할 때에만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만이 육적인 전투와 동시에 영적인 전투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영적 나태는 패배를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12,13: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파하니라.

  80이 넘은 모세가 팔을 들고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요? 아론과 훌은 치열한 영적인 전투에서 지취기 쉬운 복음의 사역자들을 위해 도와주는 성도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히 13:17). 이들은 지혜로 작은 바위를 가져다 모세를 앉히고 두 사람은 양쪽에서 그의 팔을 들어 올렸습니다. 모세의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기도는 여호수아와 그 군대가 아말렉을 이길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입니다. 악한 자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오직 손을 들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

  전쟁의 결과를 책에 기록하게 한 것은, 첫째 승리의 비결이 하나님의 도우심에 있음을 기억하게 하여 장차 가나안 정복 전쟁을 승리를 이끌게 하기 위함이며, 둘째 오고 오는 세대로 하여금 하나님만을 의뢰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셋째 이를 통하여 여호와께서 자신의 성호에 합당한 영광을 영세토록 받으시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전쟁으로 인하여 아말렉은 ‘도말(塗抹)’되게 되었습니다. 이 지구상에서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아말렉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그 백성 이스라엘을 공격했기 때문이며, 그들이 무더위 속에서 장기간 동안 여행으로 피곤해진 상태에서 형제 족속을 뒤에서 공격하는 비겁한 행동을 했기 때문입니다(신 23:18).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공격한 아말렉은 오히려 하나님에 의하여 그들의 완전히 도말되는 상황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15: 모세가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아말렉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주신 여호와께 감사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여호와 닛시(יהיח נסי)’는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라는 뜻입니다. 전쟁에서 군기(軍旗)는 전의를 북돋우며 소속 집단의 결속력을 강화하는 표식이며 승리의 상징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깃발이라고 함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항상 승리케 하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영적인 전쟁에서 마귀의 세력을 물리치고 승리를 얻을 수 있는 비결은 십자가를 군기로 삼고 대장되신 그리스도의 뒤를 좇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딤후 2:3).

 

16: 가로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이스라엘을 공격한 아말렉의 행위는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도전입니다. 따라서 아말렉은 대대로 전능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끊임없이 징벌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아말렉은 끊임없이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대적하다가 말세에 멸망당하게 될 마귀의 최후를 예시해 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