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제14장 강해 - 홍해의 기적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은 행군을 계속하여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까지 와서 일단 장막을 치고 휴식을 취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로는 이스라엘을 내 보낸 것을 후회하여 다시 그들을 잡아와서 노예로 삼고자 하는 욕망으로 인하여 온 군대를 동원하여 추격을 시작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소식을 듣고 절망에 빠져 두려워하며 여호와께 부르짖게 됩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초자연적인 역사를 일으키사 홍해를 갈라 백성들을 무사히 건너게 하시고, 뒤 따라 들어오는 애굽의 군대는 몰살시키셨습니다. 이 홍해의 기적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하는데 충분하였습니다.
1-9절은 바로의 추격, 10-14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울부짖음, 15-31절은 홍해가 갈라지는 역사로 이스라엘은 무사히 구원을 받지만 애굽의 군대는 몰살을 당하게 되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걸어서 건넌 것은, 죄악과 고통과 절망으로 상징되는 과거 애굽 생활을 홍해 물속에 모두 장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써 새로운 피조물, 새로운 나라 시민으로 다시 태어나는 중생을 예표합니다.
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돌쳐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
출애굽 이후 광야 행군을 시작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여정은 오직 하나님의 지시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험난하고 어려운 광야의 행군은 매순간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성도들이 거칠고 메마른 이 땅을 살아갈 때에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기 때문에 천국을 향하여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돌쳐서’라는 말은 ‘뒤로 혹은 옆으로 돌다.’ 혹은 ‘돌려 보내다.’는 뜻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숙곳으로부터 에담 쪽으로 진행을 했는데, 갑자기 방향을 변경하여 홍해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땅으로 나아가는 원을 원치 않으셨기 때문이며, 또 바로에게 이스라엘 손쉽게 제압하여 다시 애굽으로 끌고 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어 유혹함으로써 그들에게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을 다시 한 번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믹돌’은 ‘망대’라는 뜻입니다. ‘비하히롯’은 믹돌과 그 반대편 바알스본 앞에 있는 바다 사이에 위치한 것으로 보입니다(민 33:7)
3: 바로가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들이 그 땅에서 아득하여 광야에 갇힌바 되었다 할지라.
‘그 땅에서 아득하여’ 이 말은 ‘그 땅에서 혼돈케 되었다.’ ‘그곳에서 당황하였다.’는 뜻입니다. 나아갈 길을 잃고 상당히 당황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는 바로의 착각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손길에 의해 질서정연하게 가나안으로 나아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광야에 갇힌바 되었다’는 말은 이스라엘이 나아갈 방향을 잃고 혼란 속에서 방황하고 있으며, 마치 문이 닫혀 버린 감옥에서처럼 광야가 그들을 가두었다고 생각했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생각했기에 바로가 급히 추격을 해 올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4: 내가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한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그 온 군대를 인하여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으로 나를 여호와인줄 알게 하리라 하시매 무리가 그대로 행하니라.
바로는 또 다시 마음이 강퍅케 되었습니다. 악한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게 그대로 두어 스스로 멸망으로 치닫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의 마음이 강퍅해져야 군대를 동원하여 추격을 할 것이며, 추격으로 인하여 멸망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악인을 괴멸시킴으로 오직 여호와만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역사를 친히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세상에 드러내고자 하셨습니다.
5: 혹시 백성의 도망한 것을 애굽 왕에게 고하매 바로와 그 신하들이 백성에 대하여 마음이 변하여 가로되 우리가 어찌 이같이 하여 이스라엘을 우리를 섬김에서 놓아 보내었는고 하고
바로는 공식적으로 3일 간의 광야 행진을 허락했습니다(12:31). 그리고 그 이후에 대해서는 사호 아무런 약속을 하지 않았습니다. 바로의 심중에는 이스라엘이 자의로 애굽에 되돌아올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았을지라도, 막상 그들이 3일이 지난 시점에도 애굽 관할 구역 밖을 향하여 계속 행진을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매우 당황한 것으로 보입니다. 장자 사망의 재앙 이후 이스라엘을 탄압하지 않기로 했던 바로의 마음이 다시 돌변했음을 뜻하기도 합니다. 이들의 마음이 바뀐 이유는 이스라엘이 자유를 얻게 되므로 애굽 인들은 60만 명이나 되는 노예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며, 그들은 이스라엘이 광야로 나가는 것을 막지 못 했다는 후회 때문입니다.
6,7: 바로가 곧 그 병거를 갖추고 그 백성을 데리고 갈새, 특별 병거 육백승과 애굽의 모든 병거를 발하니 장관들이 다 거느렸더라.
병거와 기병대는 애굽의 주력부대라고 합니다. 당시 병거는 두 개의 바퀴가 달려 있고 두 마리의 말이 끌었으며, 그리스나 앗시리아 처럼 뒤가 열려 있고 앉는 자리가 갖춰져 있었다고 합니다. 특별 병거는 애굽의 병거 가운데 특별히 뽑은 병거로 600승을 뜻합니다. ‘장관들이 다 거느렸더라.’ 장관들 곧 군대의 고위 지휘관들이 그들 전군을 거느렸다는 뜻으로, 당시 애굽 군대가 체계적인 지휘 조직을 갖춘 정예 부대였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8: 여호와께서 애굽 왕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의 뒤를 따르니 이스라엘 자손이 담대히 나갔음이라.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내버려 두신 이유는, 열 가지의 재앙을 통해서도 회개하지 않는 사악한 자이기 때문이며, 그런 바로가 이스라엘을 추격할 때에 심판하심으로써,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담대히 나갔음이라.’ ‘담대히’는 높은 손에 의해서라는 뜻입니다. 즉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초월적인 능력에 의해 나간 것입니다. 이들은 승전한 군사와 같이 당당하게 광야로 나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9: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과 그 군대가 그들의 뒤를 따라 바알스본 맞은편 비하히롯 곁 해변 그 장막 친 데 미치니라.
‘바로의 말들, 병거들’은 ‘모든 말 병거들’이란 뜻입니다. 이는 바로가 총력을 기울여 이스라엘을 추격하고 있음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마병’은 말을 모는 자, 말을 탄자를 말합니다. ‘그 군대’ 바로의 군대로 병거와 보병으로 조직이 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이 장막을 친 곳까지 다가 왔습니다.
10: 바로가 가까워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 뒤에 미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심히’라는 말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강력한’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이 심히 두려워한 이유는, 이스라엘에게는 무기가 없었고, 군사적 훈련도 받지 못했으며, 무엇보다도 그들은 싸울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애굽군대가 추격해 오는 모습을 보자 도저히 대항할 수 없음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여자와 어린아이와 노인 등이 많아 쉽게 도망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습니다. 이에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여호와께 도움을 청한 것입니다. 사실 이 부르짖음은 신앙이라기보다는 불신앙적인 아우성이었습니다.
11,12: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고한 말이 이것이 아니뇨. 이르기를 우리를 버려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 하더뇨.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애굽에는 각 도시의 교회에 공동묘지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광야로 이끌어내어 죽게 만드냐고 하는 원망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를 짓밟는 매우 사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자유와 생명보다 육신의 안일함을 더 추구하는 불신앙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모세를 향하는 불평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을 향한 불신앙적인 불만입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직 출애굽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몸은 해방이 되었으나 정신은 아직 애굽의 노예 상태로 머물로 있음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할 때에 심각한 오류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들이 절망에 빠진 나머지 사태를 분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와 특권을 버리고 스스로 노예가 되기를 자처하고 있는 것입니다. 애굽의 노예로 벽돌 가마 연기 속에서 사는 것보다는 오히려 광야의 넓은 대기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겠다는 말을 해야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두려워 말고’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초월한 능력을 믿는 신앙인의 호소입니다. 하나님께 모든 상황을 의뢰하고 더 이상 인간의 눈과 생각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가만히 서서’ 매우 급박한 상황이지만 어떤 해결책을 모색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모두 하나님께 맡기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가 자신의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주인이 되시는 것입니다(갈 2:20). ‘구원을 보라’ 전능하신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해 일하시는 그 놀라운 구원의 사역을 지켜보라는 뜻입니다. 진정 죽음의 물결이 넘실대는 세상을 바라보기 전에 그 물결을 딛고 서 계신 하나님을 먼저 바라보고 소망하는 것이 성도의 바른 태도입니다(마 14:22-33;행27:23,24). 온전히 하나님만 믿고 모든 것을 의뢰할 때에 그 결과는 ‘오늘 본 채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두 이 세상에서 없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절박한 상황에 구체적으로 개입하셔서 모든 대적을 물리치시고 이스라엘에게 평안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저 저 멀리 하늘에 계시며 침묵하시는 존재가 아니시고, 우리를 위하여 거룩한 노동을 아끼지 않으시는 신실한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휴식을 취한 채 조용히 하고 더 이상 불평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1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고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너는 왜 큰 소리로 강청하기만 하느냐?’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모세가 해야 할 일을 촉구하시는 것인 동시에 책망을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앞으로 나가라고 하였습니다. 장막을 걷고 앞으로 행진하라는 뜻입니다. 이는 믿음의 발걸음을 떼어 놓는 것입니다.
16: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
지금 모세가 가지고 있는 지팡이는 바로 앞에서 하나님의 이적을 나타낸 권능의 지팡이입니다. 이는 임마누엘의 하나님께서 적극적인 후원과 초월한 권능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지팡이를 잡은 손을 바다위로 내밀라고 하십니다. 이는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역사를 일으키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바다가 육지가 되어 이스라엘이 그리로 걸어갈 것이라는 것입니다.
17,18: 내가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강퍅케 할 것인즉 그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갈 것이라. 내가 바로와 그 모든 군대와 그 병거와 마병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리니, 내가 바로와 그 병거와 마병으로 인하여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시더니
하나님께서 바로와 그 군사들의 마음을 강퍅케 되는대로 그냥 내버려 두시는 것은, 이들이 이스라엘을 따라 홍해 바닷길로 들어오게 만들기 위함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들을 홍해에 수장시킬 계획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때에 비로소 저들은 이스라엘의 신이 ‘여호와’이심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19,20: 이스라엘 진 앞에 행하던 하나님의 사자가 옮겨 그 뒤로 행하매 구름 기둥도 앞에서 그 뒤로 옮겨, 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이르러 서니 저편은 구름과 흑암이 있고 이편은 밤이 광명하므로 밤새도록 저편이 이편에 가까이 못하였더라.
여기에서 ‘하나님의 사자’는 구약 시대에 활동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스라엘 진영 앞에서 그들을 인도하던 구름 기둥이 이스라엘의 안전을 위해 그들의 뒤편으로 옮겨가 그들이 안전한 처소에 당도할 때까지 내내 애굽 군대를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구름으로 인하여 애굽 군대 쪽에는 캄캄한 밤과 같이 되어 진행하기가 매우 어려웠지만, 구름이 없는 이스라엘 쪽은 밝은 빛으로 활동에 조금도 지장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멸망을 받는 자들에게는 캄캄한 밤과 같이 두려움이 임하지만 구원을 받는 백성에게는 밝은 빛이 비치는 것입니다.
21: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어민대 여호와께서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가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바다 위로 불러 오는 바람은 ‘큰 동풍’입니다. 이 큰 동풍이 밤새도록 불어서 바닷물이 물러가고 바닥이 단단하게 변했습니다. 오직 여호와께서 보내신 큰 동풍만이 바다를 갈라놓고 바닥까지 마르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22: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
육지는 바다 밑바닥 땅을 가리키는데 여기에서는 그것이 건조한 상태에 있음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좌우에 벽’ 이는 담벼락을 말합니다. 이는 절대 안전을 뜻합니다. 홍해 물이 벽이 되어 이스라엘에게는 보호벽의 역할을 한 것입니다.
23-25: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들이 다 그 뒤를 쫓아 바다 가운데로 들어오는지라. 새벽에 여호와께서 불 구름 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그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 그 병거 바퀴를 벗겨서 달리기에 극난하게 하시니 애굽 사람들이 가로되 이스라엘 앞에서 우리가 도망하자 여호와가 그들을 위하여 싸워 애굽 사람들을 치는도다.
홍해가 갈라지고 바닥이 마르게 된 것은 오직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애굽 군대가 그리로 들어왔을 때에는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 의인이 아닌 악인이 들어올 수가 없음을 뜻합니다. 홍해로 뒤따라 들어오는 애굽 군대를 향하여 여호와께서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막아 이스라엘에게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불기둥의 강한 힘으로 애굽 군대가 어지럽게 되고 병기 바퀴까지 빠져서 도무지 달릴 수가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자, 그제야 애굽 군대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자신들을 치는 것을 깨달고 도망하려고 하였습니다.
26,2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바다 위로 내어 밀어 물이 애굽 사람들과 그 병거들과 마병들 위에 다시 흐르게 하라 하시니, 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어 밀매 새벽에 미쳐 바다의 그 세력이 회복된지라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스려 도망하나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시니
아침이 다가왔을 때에 바다는 그 자리, 영원한 제 위치로 돌아왔습니다. 초자연적 보호벽을 제거하심으로써 해류의 흐름이 자연적인 상태로 돌아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바닷길을 지나 육지로 올라갔지만, 애굽 군대는 아직 바닷길 사이에 있을 때에 바다 물이 합쳐지니 그들은 한 사람도 남김없이 모두 파도에 장사가 되었습니다.
28: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쫓아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
바로가 자랑하던 병거와 기병들, 또한 모든 보병들도 도망할 수가 없었습니다. 순식간에 보호벽이 무너진 바닷물은 그들을 덮치고 그들은 모두 죽고 만 것입니다.
29: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였고 물이 좌우에 벽이 되었더라.
장정 60만을 포함한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과 가축들은 밤중부터 아침이 되기 전가지 모두 건넜고, 그 때까지 바다 물은 벽처럼 견고하게 서 있었습니다.
30,31: 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스라엘을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매 이스라엘이 바닷가의 애굽 사람의 시체를 보았더라.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베푸신 큰일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었더라.
바닷물이 제자리를 찾을 때에 모든 애굽 사람들은 죽고 말았습니다. 그 시체가 바닷가로 밀려온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권능의 역사를 체험한 이스라엘은 비로소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경외하게 되었으며, 모세가 하나님의 종임을 인정하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넌 것은 회개와 죄 씻음을 상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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