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제15장 강해 - 홍해 기적에 대한 찬양과 마라의 쓴 물
본 장은 전반부 1-21절에서 홍해의 기적을 일으켜 주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이며, 22-27절은 수르 광야로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을 얻지 못하다가 마라에 이르러서 물을 발견하였으나 그 물은 써서 마시지 못하는 물이므로 백성들은 홍해의 기적을 잊어버리고 또 다시 모세를 원망하는 내용과 모세의 간구로 인하여 쓴 물이 단 물로 변화시켜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기록되고 있습니다.
1: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여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넌 이스라엘은 바닷가에 밀려온 애굽 군사들의 시체를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은 무사히 건너게 하시고 뒤따르던 애굽 군사들은 홍해 바다에 몰살시키신 것을 확인한 것입니다. 모세와 온 백성들은 여호와를 찬송하였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여호와께 찬송을 드릴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노래의 첫머리에 두었습니다.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그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이 홀로 영화로우신 여호와라는 뜻입니다. 찬송해야만 하는 이유는 강퍅하고 패역한 바로의 군대를 바다에 몰살시키셨기 때문입니다. 이 찬양은 이스라엘이 경험한바 은혜를 간증하는 것입니다.
2: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힘은 권능 혹은 능력을 뜻하는 말로써, 이스라엘이 애굽의 압제와 추격을 모두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었던 사실을 염두에 둔 표현입니다. ‘노래’는 단순히 ‘찬양하다’는 뜻 외에 ‘악기에 곁들여 노래하다’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친밀한 관계성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피상적인 존경의 대상이 아니라 그들의 생존과 번영의 유일한 관건인 바로 ‘나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이는 찬송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의 영광을 기리는 중요한 수단임을 말해 줍니다.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친밀한 관계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음을 강조한 표현입니다. 조상들과의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께서 그 언약을 변개치 아니하시고 지금까지 계속하여 지켜주시고 계심에 대한 표현입니다.
3-5: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그가 바로의 병거와 그 군대를 바다에 던지시니 그 택한 장관이 홍해에 잠겼고, 큰물이 그들을 덮으니 그들이 돌처럼 깊음에 내렸도다.
여기에서 ‘용사’는 단순한 ‘전사’라는 뜻이 아니라 전쟁에 능하신 분으로서 모든 대적을 무찌르고 홀로 승리하시는 막강한 능력의 소유자라는 뜻입니다.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영원하신 능력의 신이신 여호와 앞에 아무도 설 수 없으며, 초월한 능력을 지닌 구원자이시며 심판자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바로 자기 자신임을 스스로 입증하셨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던지시니’ 마치 용사가 상대 적군을 향해 힘껏 창을 날리듯 내치심을 말합니다. 이는 곧 바로의 군대를 홍해의 깊은 물에 모두 몰살시켰음을 두고 묘사한 것입니다. ‘돌처럼 깊음에 내렸도다.’ 애굽의 중무장한 군사들은 홍해의 물속에 깊이 빨려 들어가 몰사한 것을 말합니다. 이는 완전한 승리를 뜻합니다.
6: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시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원수를 부수시니이다.
‘주의 오른손’은 하나님의 강한 능력, 공의로우신 심판인 공시에 택한 백성에게는 절대적인 후원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원수’ 좁게는 애굽을 넓게는 이스라엘 괴롭히고 해치는 모든 악한 세력들을 가리킵니다. 여호와께서 원수들을 부수시는 것은 곧 여호와와 이스라엘은 하나의 공동체임을 알 수 있습니다.
7: 주께서 주의 큰 위엄으로 주를 거스리는 자를 엎으시니이다. 주께서 진노를 발하시니 그 진노가 그들을 초개(草芥)같이 사르니이다.
‘주를 거스리는 자’ 하나님을 대적하여 뻣뻣이 버티고 서 있는 자들로 애굽을 뜻합니다. ‘엎으시니이다.’ 건물을 무너뜨린다는 뜻으로, 뻣뻣이 버티고 물러서지 않는 대적을 건물을 넘어뜨리듯이 일거에 멸망시키는 것을 뜻합니다. ‘주께서 진노를 발하시니’ 진노는 마치 활화산에서 용암이 분출하듯 강한 열기를 내뿜는 상태입니다. 그 누구도 제어할 수 없는 하나님의 강력한 심판 의지와 그 심판의 맹렬함을 암시합니다. ‘초개같이 사르니이다.’ 하나님의 심판의 칼이 그 대적 애굽을 손쉽게 무너뜨렸다는 뜻입니다.
8: 주의 콧김에 물이 쌓이되 파도가 언덕같이 일어서고 큰물이 바다 가운데 엉기니이다.
‘주의 콧김’은 여호와께서 일으키신 ‘동풍’을 뜻합니다. ‘파도가 언덕같이 일어서고’ 이는 바닷물의 본래 현상인 흐름이 완전히 멈추고 이스라엘이 건너게 된 통로를 중심으로 양편에 차단막이 형성되었음을 나타내는 시적인 표현입니다. ‘큰물이 바다 가운데 엉기니이다.’ 파도가 마치 단단히 굳어진 덩어리처럼 되어 둑을 형성하게 된 것을 말합니다.
9,10: 대적의 말이 내가 쫓아 미쳐 탈취물을 나누리라. 내가 그들로 인하여 내 마음을 채우리라. 내가 내 칼을 빼리니 내 손이 그들을 멸하리라 하였으나, 주께서 주의 바람을 일으키시매 바다가 그들을 덮으니 그들이 흉용한 물에 납 같이 잠겼나이다.
애굽 군대는 반드시 이스라엘을 잡아서 전리품을 챙기겠다는 것으로 불타는 욕망이 강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내가’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반드시 잡고 또 그로 인하여 분노의 욕망을 만족하도록 메꾸고야 모세와 아론을 위시한 이스라엘 사람들을 살해하고 말겠다는 오만하고 사악한 집념을 노출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바람’ 동풍은 홍해를 둘러 갈랐고, 그 갈라진 길은 이스라엘에게는 구원의 길이 되었지만, 애굽 군사들에게는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11: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에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 누구니이까?
헛된 우상 신과 모든 잡신에 초월하신 여호와를 비교하여 오직 여호와만이 하나님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거룩함’은 한계가 분명한 피조물인 인간의 불완전성과 오류투성이들을 훨씬 초월한 위대하신 하나님의 신적 위엄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인간들을 능히 구원할 수 있음을 확증해 주는 것이며, 또 그로 인해 인간들로부터 영광과 찬송을 받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절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죄인인 인간들은 경건한 떨림과 거룩한 두려움 속에서 구원과 은혜를 베푸신 것에 대한 찬양을 드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12,13: 주께서 오른손을 드신즉 땅이 그들을 삼켰나이다. 주께서 그 구속하신 백성을 은혜로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성결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추격하던 애굽 군대를 홍해 바다 가운데 수장시킨 것을 가리켜 ‘땅이 그들을 삼켰나이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진실하시고 자비하신 성품 때문임을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는 것이 ‘은혜로 인도하시되’라는 말씀입니다. ‘주의 성결한 처소’ 하나님께서 친히 성결케 한 처소인 ‘가나안’ 땅을 말합니다. 이는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켜 홍해를 무사히 건너게 하신 일은 그들이 마침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게 될 것에 대한 명확한 보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4,15: 열방이 듣고 떨며 블레셋 거민이 두려움에 잡히며, 에돔 방백이 놀라고 모압 영웅이 떨림에 잡히며 가나안 거민이 다 낙담하나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당시 세계 최강이던 애굽 군대를 무찌르고 홍해를 건넌 사건의 소식은 주변 국가인 블레셋, 에돔, 모압 및 가나안 거민들에게 전해졌고, 이들은 두려워 떨었습니다(민 22:2; 수 2:9-11). 그들은 이미 정신적인 면에서 이스라엘에게 압도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나라와 성도들은 이처럼 세상을 압도하는 위엄과 권세를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요 16:33).
16: 놀람과 두려움이 그들에게 미치매 주의 팔이 큼을 인하여 그들이 돌같이 고요하였사오되 여호와여 주의 백성이 통과하기까지 곧 주의 사신 백성이 통과하기까지였나이다.
이 구절은 현재가 아닌 미래의 일이지만, 이미 완성된 것처럼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 함께 하시는 백성 이스라엘이 반드시 가나안을 점령할 것임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통과하기까지’ 이는 홍해 바다를 건너는 것이 아니라 광야를 통과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의 사신 백성’ 유월절 출애굽 시에 어린양의 피로써 하나님의 백성을 대속하신 것을 가리켜 ‘샀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린양으로 예표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값으로 사신바 된 것입니다.
17,18: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 여호와의 다스리심이 영원무궁하시도다.
‘주의 기업의 산’은 가나안 전 지역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지경을 기업으로 주신 것을 뜻합니다. 작게 보면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성소라고 할 수 있지만, 크게 보면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전 지역을 성소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가나안 전 지역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사는 곳이며,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은 자기 삶의 터전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영원무궁토록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고 다스리실 것입니다.
19: 바로의 말과 병거와 마병이 함께 바다에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바닷물로 그들 위에 돌이켜 흐르게 하셨으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서 육지로 행한지라.
본 절은 앞에 나온 홍해 도하 사건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구절입니다. 하나님께 굴복하지 않고 대적한 애굽은 홍해에 몰살이 되었으나,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안전하게 육지로 올리는 구원을 베푸신 것입니다.
20,21: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으매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추니, 미리암이 그들에게 화답하여 가로되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하였더라.
미리암은 아론과 모세의 누이로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아론과 모세를 도와주며 최초의 여선지자로 기록되고 있습니다(미 6:4). 선지자였지만 제한된 능력과 권위로 한정적인 직분을 수행하였습니다(민 12:2-8). 그리고 소고와 춤으로 남자 찬양대에 답하여 노래하는 여자 찬양대를 지도하였습니다. 이후로 여인들이 소고치며 춤을 추는 것은 전쟁에서 승리한 용사들의 무사 귀환을 축하는 전통적인 행사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삿 11:34; 삼상 18:6,7; 29:5).
22: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 길을 행하였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수르 광야는 ‘술(Shur)' 또는 ’에담‘ 광야를 뜻합니다(창 20:1; 민 33:8). 이는 애굽과 가나안 중간 지대에 펼쳐진 넓은 광야지대로서 지중해로부터 홍해까지 펼쳐져 있습니다. ’사흘 길‘ 홍해를 건넌 뒤 도착한 광야의 한 지역에는 물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전민족이 이동하며, 가축들도 이동을 하기 때문에 매우 힘들었을 것입니다. 물이 없는 고통을 참으며 이동을 한 것입니다.
23: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마라’는 ‘쓰다’는 뜻입니다. 이곳 지명이 된 것은 물맛이 써 마시지 못하고 지도인 모세를 백성들이 괴롭힌 사건에서 유래한 것으로 봅니다. 이곳은 이스라엘이 홍해 도하 후 최초로 휴식을 취한 지역입니다. 학자들은 이곳을 홍해 남동쪽 약 75km 지점인 ‘모세의 샘들’이라고 불리는 ‘아윤 무사(Ayun Musa)'에서 약 53km 떨어진 ’아인 하와라(Ain Hawarah)'는 곳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24,25: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 새
백성이 모세를 ‘원망하여’ 이 원망은 온 밤을 지새우며 울분을 참지 못하는 심정으로 모세에게 불평을 했다는 뜻입니다. 홍해의 그 큰 기적을 체험하고서도 단지 물을 마시지 못했다는 이유로 이처럼 불평하는 것은 인간이 지닌 유약함과 동시에 간악하고 이기적인 단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세는 또 다시 여호와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백성들을 달래며 타협하기보다는 여호와께 문제 해결을 의뢰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응답을 받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한 나무를 가려주셨습니다. 그 나무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나무 자체에 어떤 효능이 있어서 물을 달게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변화되어 마실 수 있는 물이 된 것입니다. 이곳에서 ‘법도와 율례’를 정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시내산에서 받은 ‘십계명’ 이전에 이미 마라에서 일종의 율법을 수여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시험하실 새’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더욱 성숙한 신앙 인격체로 만드시기 위하여 연단을 시키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성숙한 믿음을 위하여 연단과 훈련을 계속적으로 시키고 계십니다.
26: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을 인도하시고 도우시고 치료하시며 구원하시는 데에는 반드시 약속을 지킬 것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율례와 법도에 순종하며 의롭게 살 것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물론 이것은 우리를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삶은 경건하고 거룩한 삶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삶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교훈을 받아야 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과 우리의 기도가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이 바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되어야 하고, 그 다음이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기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이는 택한 백성들의 모든 고초와 아픔과 질병을 능히 치료하시는 신실하고 믿을 만한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치료(라파:רפה)’는 질병과 대조되어 ‘온전하게’, ‘꿰매어서 고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육의 치료자가 되시는 여호와이십니다. 우리를 온전하게 완벽하게 치료해 주시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27: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 물 샘 열둘과 종려 칠십 주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엘림은 홍해를 건넌 후 두 번째 휴식을 취한 장소로 ‘큰 나무’라는 뜻의 지명입니다. 이곳에는 주변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풍부한 물과 키 큰 종려나무와 아카시아, 큰 풀들이 어우러져 있는 곳이며, 오늘날에도 수에즈와 시내 반도 사이의 중간 휴식처로 애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물 샘 12개와 종려 70주가 있었는데, 물 샘 12개는 이스라엘 12지파에게 각각 하나씩 배당이 되고, 종려 70주는 이스라엘 70자로들의 장막 하나씩에 돌아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엘림은 이스라엘 전체를 위하여 예비 된 곳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막 한 가운데서 택한 백성을 위해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평안과 안식의 공간은, 죄악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을 위한 하나님의 안식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종려나무’는 중근동 지역의 오아시스 주변에 서식하는 ‘대추야자’(date-palm)입니다. 팔레스틴의 여리고 성읍에 특히 무성하여 여리고는 종려나무 성읍으로도 불렸습니다(신 34:3).
'출애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출애굽기 제17장 강해 - 호렙산 반석에서 물이 솟다. (0) | 2012.07.20 |
---|---|
출애굽기 제16장 강해 - 만나와 메추라기 (0) | 2012.07.15 |
출애굽기 제14장 강해 - 홍해의 기적 (0) | 2012.06.29 |
출애굽기 제13장 강해 - 초태생 및 무교절 규례와 구름기둥 불기둥 (0) | 2012.06.18 |
출애굽기 제12장 강해 - 장자의 죽음 재앙과 출애굽 (0) | 2012.06.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