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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제3편 강해 쫓기는 다윗

chukang 2009. 9. 13.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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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제3편 강해 쫓기는 다윗

 

노년이 된 다윗이 통치시기에 반역(삼하 15:1-18:15)으로 인하여 그것도 사랑하는 아들과 부하들로부터 쫓기는 당하는 치욕을 당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서 기자는 이때에 다윗이 머리를 가리고 맨발로 울면서 도피(삼하 15:30)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 시에는 이런 참담한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비탄의 속에서도 구원의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확신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평생을 여호와 제일주의로 살아온 다윗은 인간적으로 볼 때에 도저히 소망이 없는 것 같은 위기 상황 중에서도 자신을 지켜 보호하시는 하나님이 계심과 그 하나님을 의뢰하는 신앙에 있어서 조금도 흔들림이 없는 그야말로 믿음의 용사 중의 용사였던 것입니다.

 

본 시는 모두 8절로 구성되었으며, 전반부 1,2절은 많은 대적들에게 둘러싸여 있어서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위기 상황에 처한 다윗이 하나님께 자신의 절박한 심정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중반부 3-6절은 다윗이 절대 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의 보호와 능력을 확신하였던 그의 신앙을 보여줍니다. 후반부 7,8절은 하나님의 보호와 구원의 능력을 확신하는 다윗이 아무런 주저함이 없이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 시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의지하고 소망하는 자에게는 그 어떤 고난과 위기도 결코 그를 실족케 할 수 없으며 오히려 그러한 고난과 위기는 그의 신앙을 한층 더 성숙시켜 주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는 신앙의 위대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룻밤 동안에 무슨 변고가 일어날지도 모를 위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섬세한 손길로 하룻밤을 평안히 지내고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벅찬 신앙의 감격을 노래하는 이 시는 하루하루를 아무런 감동 없이 습관처럼 무덤덤하게 보내는 우리들에게 생각을 해 보게 하고 있습니다.

 

1.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

시작을 대적이 많음을 여호와께 강조하며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다윗의 심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삼하 15:13-16:4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아들 압살롬과 그 추종 세력들의 반역으로 인해 황급히 왕궁과 수도 예루살렘을 피신하여 떠날 때 ‘머리를 가리우고 맨발로 울며’ 갔다고 했습니다. (삼하 15:30)

이 같은 참담한 상황에 처한 다윗의 입에서 나온 고백으로 단순히 자신을 대적하는 자들이 많은 것을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자신의 부하들은 물론 아들 암삽롬까지 대적이 되어 의지할 사람이 하나도 없게 된 사면초가의 상황을 호소하는 것입니다. 앞이 캄캄합니다. 앞에서 적군이 들이 닥치고 뒤에는 절벽과 같은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 처할 때에 인생들이 호소할 곳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밖에는 없습니다. 다윗이 바로 오직 권능의 여호와께만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많은 사람이 있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 하나이다(셀라).

이 도움은 어떤 위기 상황이나 고통 가운데서 건져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말합니다. 대적들이 다윗을 가리켜 하나님의 버림을 받은 자라고 저주하고 조롱하는 말입니다. 실제로 삼하 16:5-8을 보면 도피 중인 다윗을 향하여 시므이가 사울 왕가를 무너뜨린 죄로 하나님께 징벌을 받은 것이라고 조롱하며 저주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런 저주를 들었음에도 다윗은 시므이를 곧바로 응징하기 보다는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형편과 처지를 맡기는 신앙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삼하 16:11). 바로 이 때의 심정을 잘 반영하는 내용입니다.

끝에 ‘셀라’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것은 시편 에 자주 나오는 음악용어입니다. 히브리어 ‘셀라’는 높이다, 들어올리다는 뜻의 ‘살랄’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노래를 부를 때 음정을 높이라는 지시어인 것으로 학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3.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나의 방패라는 말은 ‘나의 앞뒤에 씌운 방패’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철저한 보호를 나타냅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전쟁터에서 적의 공격을 막아주는 방패에 비유하여 하나님이 모든 대적의 공격에서 자신을 보호하고 구원하시는 분이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의 영광’ ‘나의 머리’ 하나님께서 나의 영광이시라는 것은 비록 지금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으로 쫓기는 처지에 있지만 과거 비천한 목동이었던 자신을 이스라엘의 왕의 자리에 올려놓으신 하나님(삼하 2:4; 5:3)께서 왕권을 다시 회복시키고 번영케 해 주실 것을 확신하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이처럼 바람 앞에 등불과 같은 처지에서도 결코 낙담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의 긍휼과 도우심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그의 신앙을 볼 수 있습니다.

 

4.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셀라).

내가 부르짖을 때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다윗의 체험적 신앙을 의미합니다. 지금까지 응답하신 하나님께서 이번에도 반드시 응답해 주실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에게는 기적의 체험이나 응답의 체험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주의할 점은 이러한 기적과 같은 어떤 표적에 의지하는 신앙은 하급신앙입니다. 고급 신앙은 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응답을 받는 것입니다.

 

5.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는 나를 붙드심이로다.

본 시에서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생명이 경각에 달려있음에도 하룻밤을 잘 자고 아침에 일어날 수 있는 것은 긍휼과 자비를 베푸시는(애 3:22, 23)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이라는 신앙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는 매일 매일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는 평범한 신앙 고백이 아닙니다. 하룻밤에 무슨 변고가 일어날지 모르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순간순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신앙은 얼마나 고귀한 것입니까? 힘들 때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거나 원망하는 우리의 모습과는 완연하게 차이가 나지 않습니까?

 

6: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둘러친다는 것은 적을 공격하려고 포위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대적이 나를 둘러싸고 있어도 두렵지 않은 것은, 곧 전쟁의 승패는 군사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삼상 14:6) 믿음이요, 오직 여호와께 함께 하시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믿음입니다. 압살롬과 그 군대가 자신과 따르는 부하들보다 훨씬 많지만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고백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믿는 믿음입니다.

 

7.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위기 상황에서 하나님의 빠르고 힘 있는 구원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냥 지켜 보고만 계시지 않고 권능으로 역사를 일으켜 주실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를 눈동자와 같이 지키시고, 우리의 원수로부터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존재와 그 역하사심을 생동감있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대적들이 부끄럽도록 징계를 내리실 것입니다. 사자의 이를 꺾음과 같이 악한자의 힘을 꺾으실 것입니다. 또한 악의 세력은 반드시 꺾이고 수치를 당하게 될 것임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습니다. ‘꺾으셨나이다.’ 이미 과거형을 사용하는 것을 보아도 얼마나 다윗의 믿음이 좋은지를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이러한 믿음대로 압살롬의 반역은 모두 진압이 되었습니다(삼하 18장).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라고 하였습니다.

 

8.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셀라).

다윗은 자신이 숱한 역경을 겪었고, 전쟁터에서도 체험한 그 크신 하나님의 능력 확신하고 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헤어날 가망성이 없는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자신을 능히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손길이 지금도 함께 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다윗이 위대하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은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라는 구절입니다. 다윗은 자신에게 반역한 자들에게까지도 복을 내려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즉 자신이 당한 이 고난은 자신의 죄로 인한 결과임을 겸허하게 인정하는 것입니다(삼하 16:10-12). 또한 이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사랑함과 같이 자기 백성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왕으로서의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