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제2장 강해 - 모세의 출생과 성장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노예로 전락하여 고통을 받고 있으며, 바로가 이스라엘의 유아 말살 정책을 펼 때에 한 아기가 태어났는데, 그 아기가 바로 하나님의 도구로 선택되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 낼 ‘모세’입니다. 출생 즉시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오히려 핍박자 바로의 궁에서 왕자로 양육되는 것은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입니다. 본 장은 모세의 탄생과 위기에서의 구출에 대한(1-10절) 내용과 도피와 목자 생활(11-22절), 그리고 이스라엘의 고통이 극에 달한 내용을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는 23-25절의 3부분으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1-10절: 모세의 출생과 구출
바로는 이스라엘의 힘을 무력화시키기 위하여 남아 출산 억제 및 살해 명령을 내리며, 이스라엘 민족을 영구히 노예로 만들기 위하여 간악하고도 집요한 시도를 계속하고 있을 때에, 레위 지파에서 한 아기가 태어나게 되는데, 그 아기는 모세였습니다. 부모는 이 아기를 차마 죽일 수가 없어 갈대 상자에 담아 강물에 버리지만, 공주가 이를 발견하여 양자로 삼아 키우게 됩니다. 이는 사단의 조종을 받는 바로의 뒤편에서 구속사를 위하여 조용히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1: 레위 족속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들었더니
레위 족속 중 한 사람은 곧 모세의 아버지로 ‘아므람’입니다(출 6:16-18). 레위 여자는 모세의 모친인 ‘요게벳’입니다. 모세가 출생할 때에 이들은 결혼한 상태에 있었고, 이미 모세의 형인 아론과 누나인 미리암이 있었습니다.
2: 그 여자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아 그 준수함을 보고 그를 석 달을 숨겼더니
새로 아기가 태어날 당시에 바로는 이스라엘 남아 학살 정책이 시행되고 있었습니다. 이때는 주전 1526년으로 역사학자들은 추정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출생할 당시 통치자는 제18왕조의 투트모스 1세(Thutmose I, B. C. 1539-1514)로 가공할 남아 살해 정책이 그에 의해서 시도가 되었습니다. 태어난 모세는 ‘준수’하였다고 했습니다. 이는 단지 용모가 잘생겼다는 것을 넘어,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범상치 않는 표징이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역사하심은 인간들처럼 우연이나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창세전에 이미 작정된 계획 아래에서 철두철미하게 추진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석 달을 숨겼더니’ 석 달은 신생아의 울음소리가 그리 크지 않아, 모세의 부모는 모세를 낳은 후에 그 아이를 외부에 노출되지 않도록 집 안에서 몰래 키울 수 있을 만큼 키웠음을 알 수 있습니다.
3,4: 더 숨길 수 없이 되매 그를 위하여 갈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진을 칠하고 아이를 거기 담아 하숫가 갈대 사이에 두고, 그 누이가 어떻게 되는 것을 알려고 멀리 섰더니
‘갈 상자’는 고대 이집트의 나일 강변에서 흔하게 자라던 ‘파피루스(papyrus)'를 이용하여 만든 상자를 가리킵니다. ’역청‘(헤마르: 콜타르)은 주산지가 팔레스틴의 사해 근처 지역입니다. 모세의 모친 요게벳이 갈 상자에 나무진과 역청을 바르는 것은 애틋한 모성애의 반영이자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섭리를 고대하는 신앙의 일면을 보이는 것입니다. 모세를 갈 상자에 넣고 떠내려가도록 하지 않고 갈대 사이에 둔 것은 모세가 다른 사람, 곧 애굽 사람에 의해 구출되기를 바라는 모친 요게벳의 간절함 염원이며 기도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누이 미리암으로 하여금 멀리서 지켜보게 하였습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자기의 아들을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5: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하수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하숫가에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
바로의 딸은 이집트의 제18왕조를 세운 아모스 1세의 아들인 아멘호텝1세(Amenhotep I, B. C. 1560-1539)의 딸과 투트모세 1세(B. C. 1539-1514) 사이에서 태어난 무남독녀 ‘하셉수트(Hatshepsut)입니다. 그녀는 무남독녀로 태어났기 때문에 법적으로 왕위 승계권이 있었으나 그 남편 투트모스 2세에게 왕위를 넘겨주었습니다. 그녀는 나일 강에 목욕을 하러 나왔습니다. 당시 애굽 인들은 이 강의 한 구역을 특별히 구분해 여자들을 위한 목욕 장소로 제공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나일 강은 신성시하여 성역으로 여겼으며 그 강에서 목욕하는 것을 일종의 종교적 정결 예식으로 간주했으며, 여자들이 이 강물에 목욕함으로써 장수하고 다산의 복을 얻는다고 믿었습니다. 모세가 애굽 공주에 의해 구출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가 이 나일 강에 갈대 속에 놓였기 때문입니다. 시녀들은 공주를 특별 보좌하는 시녀들입니다. 당시 고위급 집안의 여인들이 목욕하러 나올 때에는 여러 명의 시녀들이 호위하여 강변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시녀들은 공주가 목욕하는 동안 신변 보호를 위해 그 주위 강변을 조용히 왕래했다고 합니다.
6: 열고 그 아이를 보니 아이가 우는지라, 그가 불쌍히 여겨 가로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이로다.
아이가 우는 것을 본 공주는, 비록 이교도이지만 동정과 연민의 정으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어린이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심어 주신 것입니다. 이는 인종이나 계급과 사상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공주는 단번에 모세가 히브리 사람의 아이인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얼굴의 생김새에서 히브리인의 특징이 나타나 것이며, 당시 어린아이를 강물에 버려야만 하는 처지에 있었던 것은 히브리 민족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7: 그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이르되 내가 가서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당신을 위하여 이 아이를 젖 먹이게 하리이까.
바로의 딸이 물에서 건진 아이가 우는 것을 보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간파한 미리암은 즉시 다가가서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 오겠다고 제안을 합니다. 이는 모세의 누이 미리암의 민첩하고 재치와 지혜가 있는 모습입니다. 모친인 요게벳의 용기와 지혜와, 하나님의 은혜의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인 아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음과, 어떤 어려운 처지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고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난 것입니다. 당시 유모는 단지 젖만 먹이는 것이 아니라 수유기간(3년 정도) 동안 성장과 교육 전반을 맡아 돌보았습니다. 이런 연유로 그 아이가 성장한 뒤에도 유모는 그 아이의 후원자 역할을 했습니다. 모세의 유모로 그의 친어머니 요게벳이 채용되었다는 것은(9,10절) 모세의 육체적인 성장과 아울러 영적 성장을 도우신 하나님의 깊고 넓은 사랑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8,9: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그 소녀가 가서 아이의 어미를 불러오니,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이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이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
바로의 딸은 미리암의 제안을 선뜻 수용하여, 유모를 데려오도록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배후에서 역사하시기 때문임을 믿어야 합니다. 모세의 생모인 요게벳은 합법적으로 모세를 키울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아들을 키우면서 삯까지 받게 된 것입니다.
10: 그 아이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 이름을 모세라 하여 가로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 내었음이라 하였더라.
모세는 수유기간이 다한 후에 바로의 딸에게로 이양이 되어 그녀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바로의 딸은 모세를 자기 아들처럼 여겨 그에게 왕족의 모든 혜택을 부여했습니다. 스데반에 의하면(행 7:22) 모세는 애굽의 학술(산술, 기하학, 천문학, 철자법, 문법, 역사, 의학 등)을 모두 배웠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의 대역사를 위한 주비로 당시 사회적으로 가장 안전하고, 진보된 보호처에서 모세를 양육하셨던 것입니다. ‘모세’는 ‘모우세스(Mouses)라는 단어로 ’모‘(Mo)는 물, ’우세스‘(Uses)는 ’건짐을 받다.‘는 뜻으로 애굽 공주가 모세를 나일 강에서 건져내어 아들을 삼은 것을 기념하여 붙인 이름입니다.
11-25: 자신의 출신성분을 깨닫게 된 모세
모세는 친모 요게벳을 통하여 양육이 되면서 여호와 신앙을 전수하였고, 하나님께서 친히 마련해 주신 지복(至福)한 처소에서 애굽의 모든 학문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40세에 이르러 여호와의 선민으로서의 자의식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혈기로 인해 40년을 더 성숙의 기간이 필요했습니다. 이 40년의 시간은 본인에게 고통의 시간이면서도 하나님께 매달리는 부르짖음의 시기였습니다.
11: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 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고역 함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어떤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모세가 40세가 되었을 때입니다(행 7:23). 장성했다는 말은 단지 나이만 어른이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애굽 왕자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덕목들로써 지, 정, 의 모든 측면에서 완벽한 성년의 경지에 도달한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애굽 사람이 히브리 사람을 치는 것을 보고는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이라고 한 것은, 모세가 애굽의 왕자로 자랐지만, 자신이 히브리 인임을 자각하며 여호와 신앙 안에 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12: 좌우로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 죽여 모래에 감추니라.
좌우로 살피는 것은 모세의 성격이 매우 조심스럽고 차분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감찰하고 계심은 깨닫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즉 인간을 의식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의식하는 사람이 될 때에 그 사람의 잘못은 최소화가 될 수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아무리 행악자라 하더라도 사형집행권을 갖지 못한 자가 이를 처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더구나 이런 실수는 흔히 의협심만 가진 채 덕망을 쌓지 못한 자에게서 종종 발생한다. 그러나 이런 자가 덕을 쌓게 되면 세상은 엄청나게 밝은 사회로 변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모세는 히브리인을 핍박하는 애굽 인을 쳐 죽여 모래 속에 감추었는데, 이는 애굽 왕자로서 누릴 온갖 영광에 안주하기보다는 고난을 당하는 자기 민족의 아픔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의로운 행동이지만, 합법적인 행동이 아닌 우발적이며 감정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런 아직 모자란 부분을 채우시기 위하여 미디안으로 보내셔서 40년을 더 연단하시면서 인격적으로 성숙하게 만드셨습니다.
13,14: 이튿날 다시 나가니 두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우는지라 그 그른 자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매, 그가 가로되 누가 너로 우리의 주재와 법관을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임같이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가 두려워하여 가로되 일이 탄로되었도다.
모세는 히브리 사람끼리 싸우는 것을 보고, 잘못한 사람에게 ‘어찌 동포를 치느냐?’고 묻습니다. 이는 모세 스스로 히브리 사람임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통당하는 자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여길 줄 아는 모세의 인품을 엿볼 수 있습니다. 가해자는 전날 있었던 모세의 살해 사건을 빌미로 오히려 모세를 비난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으로 모세는 결국 미디안으로 도망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는 범죄에 대한 죄책은 반드시 치러야하며, 과거의 잘못은 과거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 미래까지 그 악한 영향을 행사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고전 10:31). 모세는 아무도 모르게 애굽 사람을 죽인 것이 발각된 것을 깨닫고 몹시 당황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문제를 그릇된 자기 지혜로 해결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면 더 큰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를 하나님께 맡길 때에, 더딜지 모르지만 그 문제는 이미 해결되고 있는 것입니다(시 37:5).
15: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은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곁에 앉았더라.
모세가 왕자의 신분으로 사람 한 명을 죽인 것은 당시로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죽음의 위기를 맞이했다는 것은, 왕궁 내에 왕의 세력과 공주의 세력 간의 권력 다툼이 있었다는 것과, 애굽 민족과 히브리 민족의 사건이라는 큰 두 축이 작용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당시 바로는 핫셉슈트의 남편인 투트모스 2세와 궁녀 사이에 태어난 투트모스 3세(B.C. 1504-1448)였습니다. 그러나 투트모스 2세의 사후 슬하에 자녀가 없던 하셉수트는 애굽의 권력을 한 손에 쥐고 있었고, 그 결과 그녀의 양자로 입양된 모세 역시 상당한 힘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를 두려워한 투트모스 3세는 가장 큰 견제 세력인 모세를 제거할 기회만 엿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침내 이 살해 사건이 일어나자, 바로는 이를 애굽에 대한 노예 민족인 히브리인의 반역이라는 민족적인 문제로 확대시켜 애굽인의 민족 감정을 자극하여 모세를 제거하고자 한 것입니다. 모세는 결국 바로의 추격의 손길을 피하여 미디안 지역으로 도주하고 말았습니다. 미디안 인들은 애굽 인들과 잦은 전쟁으로 사이가 좋지 못하여, 애굽으로부터 도망하는 자는 미디안지역이 애굽 군사의 추격을 뿌리치기에 가장 좋은 땅이었습니다. 모세가 우물곁에 앉았다는 것은, 우물은 생명의 원천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모세가 그곳 사람들로부터 친절한 접대를 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16,17: 미디안 제사장에게 일곱 딸이 있더니 그들이 와서 물을 길어 구유에 채우고 그 아비의 양 무리에게 먹이려 하는데, 목자들이 와서 그들을 쫒는지라 모세가 일어나 그들을 도와 그 양 무리에게 먹이니라.
미디안 제사장은 당시 미디안 인들이 섬기는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사제를 말합니다. 이 제사장에게 7명의 딸이 있었는데, 당시에 여자가 양을 돌보는 것은 일반적 관습이며, 오늘날에도 흔하게 나타난다고 합니다. 이 경우 여자들은 마을 어귀에 주민들이 공동으로 마련한 우물에서 물을 길어 양을 먹였다고 합니다. 이 우물은 공동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합심해야 들 수 있는 크고 무거운 뚜껑이 덮여 있었습니다. 따라서 여러 목자들이 함께 모여야 사용할 수 있었고, 이 때 힘센 자들은 때때로 물을 먼저 사용하기 위해 횡포를 부리기도 합니다(창 29:8). 힘센 목동들이 여자들을 괴롭히자 불의를 참지 못하는 모세는 이런 모습을 보고 그 본래의 성격이 나타고 있습니다. 여자들로 하여금 양떼에 물을 먹일 수 있게 했습니다. 약한 자와 가난한 자를 향한 섬김과 사랑의 모습입니다.
18,19: 그들이 그 아비 르우엘에게 이를 때에 아비가 가로되 너희가 오늘은 어찌하여 이같이 속히 돌아오느냐. 그들이 가로되 한 애굽 사람이 우리를 목자들의 손에서 건져내고 우리를 위하여 물을 길어 양 무리에게 먹였나이다.
르우엘은 일곱 딸의 아버지로 장차 모세의 장인이 됩니다. ‘하나님의 친구’라는 뜻으로 미디안 족속이 하나님을 섬긴 것처럼 생각될 수 있지만 당시 ‘엘’은 유일신 하나님을 가리키기보다는 당시 근동 지방에서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로 알려진 셈족 계통의 단일 신을 지칭합니다. 르우엘의 딸들은 모세가 애굽사람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모세의 복장이 급하게 탈출하느라고 애굽 귀족의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고 또한 애굽 말을 사용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20: 아비가 딸들에게 이르되 그 사람이 어디 있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그 사람을 버리고 왔느냐 그를 청하여 음식으로 대접하라 하였더라.
르우엘은 딸들이 은혜를 입은 것에 대한 보답을 하지 않고 황급하게 집으로 돌아온 것을 부끄러워하며 책망하고 있습니다. 작은 일에도 은혜를 잊지 않는 르우엘의 성품을 볼 수 있습니다.
21,22: 모세가 그와 동거하기를 기뻐하매 그가 그 딸 십보라를 모세에게 주었더니, 그가 아들을 낳으매 모세가 그 이름을 게르솜이라 하여 가로되 내가 타국에서 객이 되었음이라 하였더라.
모세는 도망자의 신세라 거처할 곳이 없으며 식량을 구하는 것도 매우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에, 르우엘의 제안은 매우 반 가웠을 것입니다. 이렇게 르우엘의 집에 거하게 된 모세는 성심껏 양떼를 돌보며 그의 가족과 재산을 보호해 주었을 것입니다. 모세를 살펴보던 르우엘은 모세의 모든 면을 파악한 후에 자신의 딸과 혼인을 시키기로 했습니다. 십보라(한 작은 새)와 결혼 한 모세는 '게르솜‘을 낳았습니다. 이방 여인과의 결혼은 복음은 이스라엘 것만이 아닌 모든 이방 세계에도 주어진 것임을 간접적으로 암시하고 있습니다.
23: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
‘여러 해’라는 말은 많은 날들이 지난 후라는 뜻으로, 지금까지 시간의 흐름이 일단락되고, 어떤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이 때 모세가 40세의 나이로 애굽에서 도피한 지 40년이 되는 때로, 그가 80세에 이른 시점입니다. 바로 이시간은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출애굽의 기운이 찬 때, 곧 새로운 역사가 막 시작되려는 때입니다. 모세의 정적으로 죽이려 했던 투트모스 3세가 죽은 것입니다. 그 다음 왕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더욱 고역을 시킴으로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께 부르짖게 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실행될 시점이 가까웠음을 의미합니다.
24,25: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더라.
‘들으시고’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신음 소리를 귀 기울이고 들으셨다는 뜻입니다. 노역과 압제를 고통당하는 이스라엘의 모든 간구를 경청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들으셨다는 것은, 이제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해결해 주실 구체적인 행함이 나타남을 뜻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의 언약을 실천하실 시기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번 맺은 언약은 결단코 변개치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권념’은 ‘알다, 돌아보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당하는 고통을 돌아보시고 자비를 베풀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이제 출애굽을 위한 준비와 연단의 과정이 거의 끝나고 이제 시행할 단계가 되었다는 것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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