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절의 추수 데살로니가전서 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여러분은 누구나 다 행복하기를 바랄 것입니다. 이 행복을 찾기 위해서 사람들은 여러 가지 힘들고 고달픈 일들을 해 나갑니다. 오늘만 일하면 내일은 이 일들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의 일을 내일도 해야 되고, 또 내일도 해야 합니다. 매일 매일 계속되는 생활이지만 그래도 견디어 나갑니다. 그 이유는 그 일을 해야 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떤 이유가 있기에 그 끝이 없는 일들을 하고 있을까요? 그 답은 행복해지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학생들이 공부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특히 수험생들은 새벽부터 일어나서 밤늦게까지 학교로 학원으로 또 집에 와서도 공부를 합니다. 상급 학교에 들어가서 공부를 해서 좋은 회사에 취직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기술계 학생들은 공부도 하지만 기술을 습득하기 위하여 또 다른 노력을 하게 됩니다. 남보다 훌륭한 기술을 배워야 좋은 곳에 취직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좋은 곳에서 일하고 있는 회사원들도 더 높은 연봉과 진급을 받기 위해서 늘 자신을 계발하고 채찍직하면서 힘들지만 참고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배가 고픈 사람은 배가 부르기를 원합니다. 건강하지 않은 사람은 건강하기를 바랍니다. 실업자는 취직을 하기 원합니다. 추우면 따뜻하기를 원합니다. 반대로 더우면 시원하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현재 필요한 것을 추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필요한 것들은 쉽게 해결되는 경우도 있지만, 하루 이틀에 끝나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욕구의 끝에는 ‘행복’이라는 종착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행복을 찾기 위해서 노력하고, 힘들어도 참고 견디어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데 이 말을 곰곰이 잘 생각해 보면 행복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지금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 행복을 언제 누릴 수 있게 될까요? 그것은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행복해지기를 바라면서 행복에 필요한 조건들을 하나씩하나씩 채워나가는 작업을 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의 갈등을 느끼게 됩니다. 즉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행복을 위해서 현재의 이 어려움들이나 고통들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입니다. 심리학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면을 해소하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연구한 결과 인간의 긍정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는 ‘긍정심리학’이라는 분야를 개척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즉 내가 가지고 있는 장점은 무엇인가? 내가 가지고 있는 자원은 어떤 것이 있는가? 미덕이라는 것, 행복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을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실험과 방법을 찾아보았더니 참 많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감사’라고 합니다. 감사를 하면 행복해 진다고 합니다.
사람들에게 감사할 일을 찾아보라고 했더니, 처음에는 대충 찾아보고는 감사할 일이 없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 노트를 만들어 보라고 하였습니다. 한두 가지 찾아내고는 더 감사할 것이 없다고 한답니다. 크고 그럴듯한 감사만 찾지 말고 사소한 것이라도 찾아서 기록을 하라고 했더니, 처음에는 없을 것 같던 감사가 넘치더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감사가 풍성해 지게 되면 사람의 생각은 감사와 연결되는 다양한 감정으로 퍼져나가게 되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행복이라고 합니다.
심리학 중에서 ‘인지심리학’이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이는 쉽게 설명하면 어떤 한 가지를 생각하게 되면 이와 연결이 되는 다른 사건들이나 이미지나 느낌들이 계속해서 떠오르게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나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끼리 다툼이 일어나게 되면 옛날 일을 들먹이거나, 한 번 공상에 빠지게 되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것은 우리의 기억이 지식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감사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한 번 시작된 감사는 그동안 잊고 살았던 고마운 마음과 기쁜 일들과 설레임 등과 같은 긍정적인 정서와 기억으로 빠르게 퍼져나가게 되며, 특히 그 중에 긍정적인 정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행복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감사의 마음이 행복으로 전이가 되고, 감사를 회복할 때 행복을 느끼게 되는 원리라고 합니다. 사람들에 따라서 지나간 시간들을 후회와 아쉬움으로 기억할 수도 있고, 감사와 행복으로 기억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감사한 것을 하나씩 적어보면 자꾸 늘어날 것인데, 목록이 많아질수록 행복이 늘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긍정심리학이라는 학문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요소로 감사를 들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범사에 감사하라’로 권면하고 있습니다. 당시 데살로니가 교회는 핍박과 환난에 직면해 있었습니다(3:4). 바울은 디모데를 데살로니가 교회에 파송하여 상황을 조사하게 했습니다. 디모데의 보고에 의하면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환난 가운데서도 믿음과 사랑 안에서 굳게 서 있으며, 그들이 바울을 간절히 보고 싶어 한다는 내용을 바울에게 전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보고를 듣고는 매우 기뻐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 기쁨은 바울의 일신상의 문제가 아니라 전도의 결실로 위로받고 기뻐하며 이를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으로 귀결시킨 것입니다.
바울이 전도 사역을 하면서 순례의 길을 행할 때에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과 사랑 그리고 바울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위로를 받으며, 서로 가지고 있는 궁핍과 환난을 잘 극복하도록 도움을 주었습니다. 바울에게나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는 환난을 기쁨으로 여기는 믿음을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떠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보답할꼬?”(살전 3:9) 기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환경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원망과 불평이 될 수도 있지만 그것에 대하여 오히려 감사할 때에는 갑절로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는 원리가 성경에 나오고 있습니다.
1.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는 만나를 내려 먹이실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거두는 원칙을 알려 주셨습니다. 첫 번째 원칙은 ‘1인분이 1 오멜’이라는 것입니다. 1 오멜은 약 2.2리터입니다. 이것은 하루 1인분 식량입니다. 두 번째 원칙은 거둔 만나를 그 다음날까지 남겨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 원칙은 제6일에는 갑절로 2 오멜을 거두고 안식일에는 거두러 나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백성들 중에는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아침까지 남겨두었더니 썩고 냄새가 나고 벌레가 나기도 했습니다. 안식일에도 거두러 나간 사람도 있었지만 만나는 없었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고 우습게 생각하여 제6일에 갑절로 거두지 않은 사람입니다. 말씀에 순종한 사람만 만나를 갑절로 거두었고 안식일에는 거두지 않았지만 먹을 수 있는 식량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창세기 26:12을 보면 가나안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가나안을 떠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하셨고, 이삭은 순종했더니 100배로 수확을 하였습니다. 레위기 25:21을 보면 제7년에는 안식년을 지켜 파종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순종하게 되면 제6년에 3년 먹을 것을 거두게 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왜 3년이나 먹을 것을 주실까요? 제6년에 먹을 것, 제7년 안식년에 먹을 것, 제8년 씨뿌리고 수확할 때까지 먹을 것 이렇게 3년 치를 주시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악행에 대해서도 갑절로 갚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 주고 그의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계 18:6) 이 말씀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기의 생각과 판단으로 행할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31:14,15을 보면 안식일을 범하는 자는 반드시 죽여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어진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실제로 생명이 다하는 것이며, 또 구원의 길에서 떨어져 지옥의 불 속으로 들어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성도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따르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따르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할 때에 복을 갑절로 받을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길 때
룻 2:2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나로 밭에 가게 하소서 내가 뉘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 룻은 남편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모압에서 베들레헴으로 왔습니다. 오기는 왔지만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끼니 걱정을 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돌아온 때가 추수철이었다는 것입니다. 룻은 시어머니와의 끼니를 이어가기 위해서 추수한 들에 떨어진 이삭을 주으려고 결심을 했습니다. 창피할 것이 없었습니다. 한 알 한 알 정성껏 주어 모았습니다. 줍다보니 보아스의 밭에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보아스는 열심히 일하고 있는 낯선 여인 룻을 발견하여 그 여인에 대하여 하인들에게 들어 알게 되고, 혜택을 주어서 물도 먹게 하고 아무도 그녀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도록 보호해 주었습니다. 나중에는 보아스의 아내가 되어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의 이름이 ‘오벳’입니다. 오벳은 바로 다윗의 할아버지가 됩니다. 이처럼 자신의 처지와 형편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작은 이삭을 소중하게 주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을 보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25:23에서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고난을 이긴 후에
욥기 42:10 “욥이 그 벗들을 위하여 빌매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 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여러분은 욥이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익히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아들이 7명입니다. 딸이 3명입니다. 재산으로 양 7,000만리, 약대 3,000마리, 소 500겨리, 암나귀 500마리며, 이 외에 종이 많았고,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고 했습니다. 이 욥은 얼마나 신실한 사람인지 혹시나 자식들이 범죄하였을까 하여 그들을 불러다 성결케 하고 번제까지 드렸습니다.
이런 욥에게 어떤 시련이 닥쳐왔습니까? 욥에게 닥친 것은 시련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무서운 재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종 하나가 욥에게 와서 고하기를, 하루는 맏형의 집에서 식사를 할 때입니다. 소는 밭을 갈고 있고, 나귀는 그 곁에서 풀을 뜯고 있을 때에 스바 사람이 갑자기 이르러 그것들을 빼앗고 칼로 종들을 죽였는데, 자기 혼자만 혼자 살아서 이렇게 고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종이 고하기가 끝나기가 무섭게 다른 종이 달려와서 말하기를,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양과 종들을 살라버렸는데, 저는 혼자 피하여 주인에게 고하러 왔다고 말합니다. 미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종이 와서 또 고하기를 갈대아 사람이 세 떼로 몰려와서 약대를 모두 빼앗아 가고 종들을 다 죽이고 자기 혼자만 살았다고 합니다. 또 그 종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다른 종이 와서 말하기를 주인의 자녀들이 맏형의 집에서 식사를 하는 도중에 들에서 대풍이 불어와서 집이 무너져 모두 죽고 말았다는 것입니다.(욥 1:13-19)
이 얼마나 무서운 환난입니까? 그 가운데에서도 욥은 한마디도 하나님을 원망하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이런 믿음의 사람입니다.
사단이 약이 올랐습니다. 이렇게 물질을 모두 거두어 가고 자식들까지도 죽였는데도 욥의 믿음이 흐트러지지 않자, 이번에는 그의 몸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병이 들게 하지만, 그래도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은 와서 위로의 말을 한다고 하면서도 욥이 잘못했기 때문에 이런 징계를 받았으니 회개하라고 촉구를 합니다. 그들의 말이 맞기는 하지만 욥의 경우와는 다른 것이며, 또한 그들의 입술은 옳았으나, 그들의 행위는 잘못되었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징계를 내리시려고 했습니다. 욥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욥에게는 전에 있던 것의 갑절로 내려주셨습니다.
오늘날 이 욥보다 더 큰 환난을 당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작은 고난만 닥쳐와도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기를 쉬지 않습니다. 입술로 범죄하는 것은 이미 그 마음이 범죄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성도들에게 ‘네 믿음이 얼마나 되느냐?’ “네 믿음으로 어느 정도까지 견딜 수 있느냐?‘ 이런 시험을 하실 때가 있습니다. 로마서 5:3,4에서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도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벧저 1:7)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결코 고난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 고난이 나로부터 시작되었든지 타인으로부터 시작이 되었든지, 아니면 마귀가 가져다주었든지, 하나님께서 시험을 하시든지, 그 어떤 것이라도 우리는 결코 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그 고난으로 인하여 범죄를 하든지 아니면 잘 이겨내든지 둘 중의 하나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잘 이겨내리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갑절로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4. 잘못된 감사
그런데 감사 중에도 잘못된 감사가 있습니다. 말이 좀 앞뒤가 안 맞는데, 어떻게 감사가 잘못된 것이 있을 수가 있을까요? 그런데 분명이 잘못된 감사도 있습니다. 만일 어떤 분이 60세 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만 병이 들어 죽고 말았다고 하면, 조문 간 사람이 ‘참 잘 죽었습니다. 이 세상 이렇게 험한데, 이렇게 일찍 죽었으니 얼마나 감사할 일입니까?’ 그렇게 말했습니다. 정말 감사할 일이기는 할까요? 물론 험한 일을 더 이상 보지 않게 되었다는 것도 감사할 조건이기는 하지만, 일찍 죽었다는 점에서, 가족들의 슬픔 앞에서 그런 것으로 감사하라고 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런 좀 모자라는 사람의 우스갯소리 같은 잘못된 감사가 아니라, 성경에도 잘못된 감사가 있습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눅 18:11,12) 이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교만을 아뢰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자신이 외식하는 것을 자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바리새인과 같지 아니하고, 내가 아무리 잘한 일이 있어도 그것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할 줄 아는 참 감사를 할 줄 아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단의 목표 중에 하나는 성도가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것을 훼방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좋은 성도일수록 감사하게 되지만, 믿음이 떨어지면 감사보다는 원망과 불평이 더 많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사단은 언제나 우리 마음을 혼란하게 만들어서, 진정한 감사가 무엇인지, 진정 어떤 것이 믿음인지를 분별하지 못하게 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육체적인 질병, 물질적인 손해, 정신적인 고통을 주어 성도로 하여금 낙심하게 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믿음에서 떠나도록 시험합니다. 때로는 세상의 물질과 세상의 명예와 권세를 미끼로 믿음을 버리는 행위를 하게 만들 때가 있습니다(마 4:1-11). 때로는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여(고후 11:14) 헛된 생각이나 철학으로 믿음을 훼방하기도 합니다.
성도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기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진실하고 진정한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없는 신앙은 결코 믿음이 자라나지 않습니다. 다만 마귀의 놀이 감이 될 뿐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의 사람,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신앙의 사람, 고난이 닥칠 때에도 범죄하지 않는 신앙의 사람이 되어서, 추수 때에는 갑절로 추수하는 복을 받아 누릴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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