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창세기 제31장 강해 - 야곱의 귀향

chukang 2011. 10. 1. 12:29

창세기 제31장 강해 - 야곱의 귀향

 

  야곱은 무려 20년간이나 되는 밧단아람에서의 도피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에서 출발할 때에 그랬듯이 또 다시 도망하듯이 가나안으로 길을 떠나게 됩니다. 달라진 것은 갈 때에는 혈혈단신에 무일푼의 신세였으나, 돌아가는 길은 하나님의 은혜로 일가족을 이루고 무수한 가축 등 거부가 된 것입니다.

 

1: 야곱이 들은즉 라반의 아들들의 말이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인하여 이같이 거부(巨富)가 되었다 하는지라.

  야곱의 소유가 된 얼룩지고 아롱지고 점이 있는 양과 염소들은 야곱의 지혜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벧엘 언약을 기억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라반의 양떼에 비하여 기하급수적으로 급증하는 야곱의 양떼를 보면서 라반의 아들들은 야곱이 속임수로 자기 부친의 양떼를 빼돌린 것이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과 야곱의 성실함으로 이룬 것을 라반과 그 아들들은 알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들에게서도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탐욕과 시기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2: 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본즉 자기에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더라.

  야곱과 임금 계약을 체결할 때와 같이 라반은 다정함이나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야곱이 잘 되는 것을 탐욕이 많은 라반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3: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여호와께서 어떤 방식으로 야곱에게 오셔서 말씀하셨는지는 확실하지는 않으나 구약 시대에 가장 보편적으로 계시하시는 꿈을 통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야곱에게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20년 전 야곱이 밧단아람으로 도망 할 때에 벧엘에서 약속하신 것입니다.(28:15) 여호와는 변개치 않으시고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4: 야곱이 보내어 라헬과 레아를 자기 양떼 있는 들로 불러다가

  ‘자기 양떼’라는 말을 볼 때에 야곱은 이미 라반으로부터 독립하여 생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유목 생활은 가족 단위로 장막을 치고 살았습니다. 여자들은 장막에서 가사 일을 주로 하며, 남자들은 들판에서 양떼를 쳤습니다. 여호와께로부터 가나안 귀환 명령은 받은 야곱은 즉시 레아와 라헬을 불러 자기 장막으로 오게 했습니다. 아마도 가나안으로 귀환 계획을 상의하기 위함으로 보입니다.

 

5: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그대들의 아버지의 안색을 본즉 내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러할지라도 내 아버지의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셨느니라.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라는 말에는 라반과 하란의 우상과 조상 때부터 신실하게 언약을 지키신 하나님을 구별하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능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과 변역하기 잘하는 라반을 대비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함께 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이 객지 생활하는 동안 내내 함께 하시면 돌봐주셨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6,7: 그대들도 알거니와 내가 힘을 다하여 그대들의 아버지를 섬겼거늘, 그대들의 아버지가 나를 속여 품삯을 열 번이나 변역하였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금하사 나를 해치 못하게 하셨으며

  ‘힘을 다하여’ 이 말은 숨이 차도록 전심전력으로 라반을 섬겼다는 뜻입니다. 라반의 양떼를 침에 있어서 게으르지 않았고, 간교하게 속임수를 써서 가축을 빼앗은 일도 없이, 성실하게 행했음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야곱이 스스로의 양심에 의거하여 정직하게 사실대로 말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라반은 계약과 달리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었습니다. 꼭 열 번을 바꾸었다는 것보다는 10이 완전수임을 감안할 때에 그만큼 자주 바꾸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라반의 변역으로 야곱이 손해를 보지 않도록 보호해 주셨습니다.

 

8,9: 그가 이르기를 점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떼의 낳은 것이 점 있는 것이요 또 얼룩무늬 잇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떼의 낳은 것이 얼룩무늬 있는 것이니, 하나님이 이같이 그대들의 아버지의 짐승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

  라반이 약속한 계약 내용을 변역하는 내용입니다. 처음에는 모든 점 있고, 얼룩무늬 있는 것을 주기로 하였으나(30:32, 34), 나중에는 점 있는 것만으로 제한하였다가, 얼룩무늬가 있는 것으로 또 다시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계약 내용을 다 알고 계셨고, 라반이 부당하게 계약을 변역하였으므로 응당 야곱의 소유가 되어야 할 것들을 라반으로부터 되찾아 주셨던 것입니다.

 

10-12: 그 양떼가 새끼 밸 때에 내가 꿈에 눈을 들어 보니 양떼를 탄 수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 점 있는 것, 아롱진 것이었더라. 꿈에 하나님의 사자가 내게 말씀하시기를 야곱아 하기로 내가 대답하기를 여기 있나이다 하매, 가라사대 네 눈을 들어 보라 양떼를 탄 수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 점 있는 것, 아롱진 것이니라 라반이 네게 행한 모든 것을 내가 보았노라.

  야곱이 지금 말하고 있는 꿈은 6년 전에 라반과 계약을 체결한 직후에 꾼 것입니다. 당시 꿈 내용을 회상하면서 아내들에게 현재 시점에서 들려주고 있습니다. ‘양떼를 탄 수양’이라는 말은 양들의 교미 행위를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꿈에서 보여주신 대로 이루어졌음을 간증하는 것입니다.

 

13: 나는 벧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

  본 절은 10-12절과는 별개의 꿈으로 최근의 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이 아내들에게 이 꿈이 동시에 일어났던 것처럼 설명하는 이유는, 함께 가나안 귀향길에 오를 아내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강하게 부각시켜 여호와 신앙을 심어주기 위함이라고 보겠습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으로 하란 도피 길에 오른 야곱이 돌베개를 베고 유숙하던 중 꿈속에서 하나님을 만난 장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약속한 대로 지킬 것을 명령하고 계십니다.

 

14: 라헬과 레아가 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우리 아버지 집에서 무슨 분깃이나 유업이나 있으리요.

  고대 근동의 관습에 의하면 출가한 딸들은 부모의 재산에 대해 아무런 권리도 없었기 때문에, 라헬과 레아는 아비 라반의  집이 아니라, 남편 야곱의 집에 자신들의 소망이나 기쁨이 있음을 분명하게 인식한 것입니다.

15: 아버지가 우리를 팔고 우리의 돈을 다 먹었으니 아버지가 우리를 외인으로 여기는 것이 아닌가?

라반도 딸들인 라헬과 레아를 사랑하였을 것이지만, 야곱과의 혼인을 시킨 것은 탐심에 의한 정략결혼이라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이 결혼으로 무려 14년 동안을 야곱으로부터 노동력을 착취할 수 있었습니다. 라헬과 레아가 ‘우리를 팔고 우리의 돈을 다 먹었으니’ 이 말은 아버지가 정략결혼을 시킨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야곱의 몫의 가축을 주지 않고 변역한 것을 말합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딸이라고 하면 이런 일을 할 수 없다고 하는 배신감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자신들을 ‘외인’으로 여긴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16: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에게서 취하신 재물은 우리와 우리 자식의 것이니 이제 하나님이 당신에게 이르신 일을 다 준행하라.

  하나님께서 라반에게서 취한 재물 즉 야곱이 소유하게 된 모든 재물들은 야곱이 속임수나 사기로 얻은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도우심으로 인한 정당한 재물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시 아버지로부터 빼앗아 야곱에게 주었다는 것입니다. 아내들은 야곱의 제안에 적극 동참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정리하면, 첫째 아버지로부터 재산 상속을 도저히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며, 둘째 평소부터 품어 온 부친에 대한 불만, 셋째 남편 야곱을 통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낯선 타향으로 이주해 가는데 따르는 모든 어려움을 기꺼이 감수하고 남편 야곱을 적극 동조하고 나선 것입니다.

 

17,18: 야곱이 일어나 자식들과 아내들을 약대들에게 태우고, 그 얻은바 모든 짐승과 모든 소유물 곧 그가 밧단아람에서 얻은 모든 짐승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있는 그 아비 이삭에게로 가려할 새

  아내들의 적극 동조에 힘은 얻은 야곱은 귀향을 서두르게 됩니다. 야곱은 하란 인접 지역에서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며 가축을 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19: 때에 라반이 양털을 깎으러 갔으므로 라헬은 그 아비의 드라빔을 도적질하고

  야곱이 떠나려는 때에 마침 라반은 양털을 깎으러 갔습니다. 유목민들에게 있어서 양털 깎는 일은 연례행사 중 큰 행사이며, 양의 수에 따라 며칠 씩 계속해서 털 깎는 작어을 합니다. 이 때에는 친구들을 초청하여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라헬은 아버지가 없는 틈을 타 ‘드라빔’을 도적질 했습니다. 드라빔이라는 말은 편안하게 살다는 ‘타라프(תרף)’에서 파생된 말로 사람 형상을 한 우상으로 족장 시대에 가정 수호신으로 널리 숭배 되었습니다. 보통 나무로 만들지만, 은으로 만드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드라빔은 우상으로 뿐만 아니라 재산 상속권의 증표로도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라헬이 아비의 드라빔을 훔친 이유는 단순히 우상으로서만 아니라 후일 재산 상속의 욕심도 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20: 야곱은 그 거취를 아람 사람 라반에게 고하지 않고 가만히 떠났더라.

  거취라는 말은 어떤 일에 대해 자신의 태도를 분명히 밝히는 것을 말합니다. 즉 야곱은 라반에게 자신이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사 표명을 하지 않고 떠난 것입니다. 무려 20년 동안이나 체류한 곳이며, 장인이며 외삼촌인 라반에게 말을 하지 않고 도망치듯 떠난 것은, 당시 둘 사이의 불화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짐작하게 합니다.

 

21,22: 그가 그 모든 소유를 이끌고 강을 건너 길르앗 산을 향하여 도망한 지 삼일 만에 야곱의 도망한 것이 라반에게 들린지라.

  야곱이 강을 건넜다는 것은 하란이 유프라테스 강 상류 지역에 있기 때문입니다. ‘길르앗 산’ 길르앗은 산에 대한 명칭이 아니고 지역 명칭입니다. 따라서 야곱은 길르앗 지역에 있는 산을 향해 출발한 것입니다. 야곱이 고향을 떠난 지 3일 만에 라반에게 그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 이유는 야곱과 라반이 임금 계약을 맺을 때에 라반의 아들들과 치는 양떼와 야곱이 치는 양떼의 거리를 3일 길로 떼어 놓았던 대로 계속 그 간격을 유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3: 라반이 그 형제를 거느리고 칠일 길을 쫓아가 길르앗 산에서 그에게 미쳤더니

  라반의 추격대는 야곱이 출발한지 열흘 만에 따라잡을 수 있었습니다. 야곱이 삼일 먼저 출발했음에도 추격을 당한 것은, 대가족과 가축 떼로 인하여 빨리 갈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밧단아람으로부터 길르앗 산지까지의 거리는 대략 480km가 된다고 합니다. 하루에 70km의 빠른 속도로 야곱 일행을 추격한 것으로 계산이 나옵니다.

 

24: 밤에 하나님이 아람 사람 라반에게 현몽하여 가라사대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 간 말하지 말라 하셨더라.

  추격 7일째 밤에 라반은 야곱 일행을 발견했고, 다음 날 공격을 할 예정을 하고 잠을 청했던 것 같습니다. 그 밤에 하나님께서는 라반의 꿈에 나타나셨습니다. 그 이유는 택한 백성인 야곱 일행을 보호해 주시기 위함입니다. ‘선악 간 말하지 말라’ 은 ‘선에서 악에 이르기까지’라는 뜻으로, 야곱을 해할 목적으로 가타부타 시비를 가리지 말라는 뜻입니다. 즉 야곱을 곱게 보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은 라반은 분노를 누그러뜨렸으며, 야곱을 위기에서 건져주셨습니다.

 

25,26: 라반이 야곱을 쫓아 미치니 야곱이 산에 장막을 쳤는지라 라반이 그 형제로 더불어 길르앗 산에 장막을 치고,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내게 알리지 아니하고 가만히 내 딸들을 칼로 잡은 자 같이 끌고 갔으니 어찌 이같이 하였느냐?

  자막은 유목민의 이동식 집입니다. 야곱은 열흘 동안 밤마다 쉬기 위하여 장막을 쳤을 것입니다. 다음날 라반은 야곱에게 가까이 가서 같이 간 자들로 하여금 장막을 치게 하고, 야곱에게 몰래 떠난 까닭에 대하여 묻고 있습니다. ‘칼로 잡은 자 같이’ 이는 전쟁의 포로와 같이 끌고 갔다는 것입니다.

 

27,28: 내가 즐거움과 노래와 북과 수금으로 너를 보내겠거늘 어찌하여 네가 나를 속이고 가만히 도망하고 내게 고하지 아니하였으며, 나로 내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 맞추지 못하게 하였느냐 네 소위가 실로 어리석도다.

  고대 유목민 사회에서는 장거리 여행을 떠나는 사람을 위하여 환송 의식을 베푸는 관계가 있었다고 합니다. 잔치를 베풀어 귀향을 축하해 주려고 했는데 몰래 도망갔다고 책망을 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딸들과 손자들에게 이별의 인사도 하지 못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이 말에는 라반의 진심도 들어 있을 것입니다.

 

29: 너를 해할 만한 능력이 내 손에 있으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어제 밤에 내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 간 말하지 말라 하셨느니라.

  라반의 추격대는 젊은 장정들로 구성되어 있을 것이며, 야곱의 일행은 아녀자와 어린이들과 종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공격하게 되면 야곱 일행은 모두 죽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라반은 바로 이러한 일을 얼마든지 행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서 지난 밤 꿈에서 ‘선악 간 말하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30: 이제 네가 네 아비 집을 사모하여 돌아가려는 것은 가하거니와 어찌 내 신을 도적질 하였느냐?

  ‘사모하여’라는 말은 ‘창백해지다’(카사프:כסף)는 뜻입니다. 마음 속 깊은 곳의 그리움과 향수로 수척해 지는 상태입니다. 야곱은 하란에서 객지 생활을 하는 동안 아비 이삭의 집에 있는 가나안 땅을 무척 그리워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라반이 야곱을 추격해 온 가장 큰 이유는 어쩌면 ‘드라빔’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라헬이 도적질 한 드라빔은 라반의 가정의 수호신이었으며, 재산 상속의 합법적 증표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드라빔이 도적질 당할 정도로 우상이라고 하는 것은 ‘헛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31: 야곱이 라반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말하기를 외삼촌이 외삼촌의 딸들을 내게서 억지로 빼앗으리라 하여 두려워하였음이니이다.

  야곱이 라반 몰래 하란을 떠난 이유는 라반의 변덕으로 인해 언제 두 딸을 빼앗아 갈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라반의 자식들까지 재산 문제로 자신을 시기하고 증오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32: 외삼촌의 신은 뉘게서 찾든지 그는 살지 못할 것이요, 우리 형제들 앞에서 무엇이든지 외삼촌의 것이 발견되거든 외삼촌에게로 취하소서 하니 야곱은 라헬이 그것을 도적질한 줄을 알지 못함이었더라.

  외삼촌의 신은 드라빔을 말합니다. 야곱은 일행 중에서 아무도 도적질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살지 못할 것이요’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죽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결국 이 말대로 라헬은 베냐민을 낳던 중 사고 끝에 죽고 말았습니다.

 

33,34: 라반이 야곱의 장막에 들어가고 레아의 장막에 들어가고 두 여종의 장막에 들어갔으나 찾지 못하고 레아의 장막에서 나와 라헬의 장막에 들어가매 라헬이 그 드라빔을 가져 약대 안장 아래 넣고 그 위에 앉은지라 라반이 그 장막에서 찾다가 얻지 못하매

  당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각기 장막을 따로 치고 생활하였다고 합니다. 라반은 야곱의 장막부터 레아와 두 여종 빌하와 실바의 장막을 다 뒤졌지만 찾지 못하고, 마지막으로 라헬의 장막으로 들었습니다. 라헬은 야곱이나 라반과 같이 꾀가 많은 것 같습니다. 약대 안장 아래 넣고 그 위에 앉은 것은, 치마로 다 가릴 수 있기 때문에 때문입니다.

 

35: 라헬이 그 아비에게 이르되 마침 경수가 나므로 일어나서 영접할 수 없사오니 내 주는 노하지 마소서 하니라. 라반이 그 드라빔을 두루 찾다가 얻지 못한지라.

  경수(經水)란 여성의 생리 현상입니다. 모세 율법에서는 여성의 월경은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 기간 중에는 종교의식은 물론 외부와의 접촉도 금지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상은 모세 율법이 만들어지기 이전 시대부터 여러 민족과 국가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때문에 라반은 구태어 라헬을 조사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라반은 혹시 자신의 가축을 도적질하지는 않았는가 하는 것은 관심이 없고 오직 드라빔만을 찾았습니다. 그만큼 드라빔을 매우 중요한 가보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36,37: 야곱이 노하여 라반을 책망할 새 야곱이 라반에게 대척(對斥)하여 가로되 나의 허물이 무엇이니이까 무슨 죄가 있기에 외삼촌께서 나를 불같이 급히 쫓나이까? 외삼촌께서 내 물건을 다 뒤져 보셨으니 외삼촌의 가장집물(家藏什物) 중에 무엇을 찾았나이까? 여기 나의 형제와 외삼촌의 형제 앞에 그것을 두고 우리 두 사이에 판단하게 하소서.

  대척하는 것은 기세가 등등하여 상대방에게 따짓듯이 항변하는 것입니다. 야곱은 20년 동안 온갖 고생을 다하고도 마치 죄수처럼 추겨당하고 검색을 당하는 현실에 마침내 울분을 터뜨린 것입니다. ‘나를 불같이 급히 쫓나이까?’ 이 말은 ‘내 뒤에 계속 불을 붙이나이까?’라는 뜻으로, 마치 중죄인 다루듯 하는 끈질긴 추격과 잔인한 핍박 상태를 일컫는 말입니다. 가장집물은 살림살이에 쓰이는 여러 가지 가재도구나 집안 소장품을 말합니다. 야곱은 양쪽의 많은 일행들 앞에서 그들을 증인으로 일의 사리를 판단하자고 항변하고 있습니다.

 

38,39: 내가 이 이십 년에 외삼촌과 함께 하였거니와 외삼촌의 암양들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또 외삼촌의 양떼의 수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물려 찢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지 아니하고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 낮에 도적을 맞았든지 밤에 도적을 맞았든지 내가 외삼촌에게 물어내었으며

  야곱이 라반의 집에 있는 동안 가축들이 건강하게 지내며 새끼를 낳을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며, 수양을 먹지 않았다는 말은, 수양은 암양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경제성이 떨어져서 잡아먹는 일이 흔했지만, 자신은 그것도 하지 않았으며, 맹수나 도둑으로 인한 피해까지도 스스로 물어냈다는 것입니다. 라반은 어떤 피해가 있을 때마다 야곱에게 피해보상을 요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0: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내었나이다.

  팔레스타인의 더위는 땅이 말라 갈라질 정도이며, 밤에는 얼음이 얼 정도로 춥다고 합니다. 특히 하란 지역은 낮과 밤의 일교차가 극심합니다. 이러한 속에서 야곱이 얼마나 고생하면서 성실히 라반의 양떼를 돌봤는지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41,42: 내가 외삼촌의 집에 거한 이 이십 년에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 사년, 외삼촌의 양떼를 위한 육 년을 외삼촌을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값을 열 번이나 변역하셨으니,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의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공수로 돌려 보내셨으리이다마는 하나님이 나의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감찰하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

  20년 동안의 봉사 생활을 하나님께서 보살펴 주셨다고 하는 신앙 간증이라고 하겠습니다. 조부 아브라함, 부친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바로 하나님이라고 하는 대목에서 보듯이, 자녀는 부모의 신앙을 본받게 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이 진실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삶을 지키시며, 수고에 합당한 보상을 해주시는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43: 라반이 야곱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딸들은 내 딸이요 자식들은 내 자식이요 양떼는 나의 양떼요 네가 보는 것은 다 내 것이라 내가 오늘날 내 딸들과 그 낳은 자식들에게 어찌할 수 있으랴.

  이 말은 라반의 억지이며, 모든 것은 야곱의 소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반은 이러한 억지와 엄포를 통해 자신의 추격을 정당화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만일 드라빔이 발견 되었다면 이런 추가의 억지는 부리지 않았을 것이지만, 드라빔을 찾지 못하여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하여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드라빔이 나오지 않자 야곱은 즉시 항의를 했고, 이 항의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라반은 태도를 바꾸어 부드러운 자세로 야곱과 화해를 도모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44-46: 이제 오라 너와 내가 언약을 세워 그것으로 너와 나 사이에 증거를 삼을 것이니라. 이에 야곱이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또 그 형제들에게 돌을 모으라 하니 그들이 돌을 취하여 무더기를 이루매 무리가 거기 무더기 곁에서 먹고

  라반이 야곱과 언약을 세우고자 하는 내용은 상호불가침 약속과 우의의 다짐입니다. 이 언약의 참된 의미는 라반이 야곱의 귀향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승인했다는 데 있습니다. 그 증거로 돌기둥을 세웠는데, 고대에 돌기둥은 언약의 증표이며 영토의 경계석 역할을 하였습니다. 돌무더기를 쌓은 것은 언약의 증표도 되는 동시에, 식탁용이나 때로는 제단용으로도 사용이 됩니다.

 

47-49: 라반은 그것을 여갈사하두다라 칭하였고 야곱은 그것을 갈르엣이라 칭하였으니, 라반의 말에 오늘날 이 무더기가 너와 나 사이에 증거가 된다 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갈르엣이라 칭하였으며, 또 미스바라 칭하였으니 이는 그의 말에 우리 피차 떠나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너와 나 사이에 감찰하옵소서 함이라.

  ‘여갈사하두다’와 ‘갈르엣’이라는 말은 ‘증거의 무더기’라는 뜻의 아람어와 히브리어입니다. 아람어와 히브리어는 모두 같은 셈족어군에 속하기 때문에, 약간의 방언 상의 차이점이 있지만 의사소통에는 별 어려움이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메소포타미아 직역에서는 아람어를, 가나안 지역에서는 히브리어를 사용했다는 사실을 최초로 증거하는 성경 구절이기도 합니다. ‘미스바’라는 말은 ‘파수대’(Watchtower)라는 뜻으로, ‘갈르앗’의 또 다른 명칭입니다. 이 명칭은 야곱과 라반이 헤어진 후 피차 맺은 언약을 얼마나 성실히 지키는가 하나님께서 감찰해 주시기를 원한다는 뜻에서 지어졌습니다. 훗날 사사 입다와 사무엘 시대 길르앗 지역에 속한 이곳 미스바는 이스라엘 역사의 주요 무대가 되었습니다.

 

50-52: 네가 내 딸을 박대하거나 내 딸들 외에 다른 아내들을 취하면 사람은 우리와 함께 할 자가 없어도 보라 하나님이 너와 나 사이에 증거하시느니라 하였더라. 라반이 또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너와 나 사이에 둔 이 무더기를 보라 또 이 기둥을 보라. 이 무더기가 증거가 되고 이 기둥이 증거가 되나니 내가 이 무더기를 넘어 네게로 가서 해하지 않을 것이요 네가 이 무더기, 이 기둥을 넘어 내게로 와서 해하지 않을 것이며

  라반이 계약 내용을 밝히고 있습니다. ① 자기의 딸들 외에 다른 아내를 더 두지 말 것. ② 돌기둥과 돌무더기를 경계로 상호불가침 언약을 성실히 이행할 것입니다. 라반은 혹시 야곱이 가나안 땅에서 더욱 부강해진 이후 자신에게 당한 온갖 핍박과 설움을 보복할 요량으로 다시금 자신에게 올까봐 이처럼 상호불가침 조약을 굳게 맺고, 증거의 돌기둥과 돌무더기를 세우고 쌓았습니다. 이런 모습은 라반이 하나님을 매우 두려워했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53: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홀의 하나님,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은 우리 사이에 판단하옵소서 하매 야곱이 그 아비 이삭의 경외하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고

  라반이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홀의 하나님’을 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신앙관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여호와’로 유일신이며, 나홀의 하나님은 옛 조상들이 섬겼던 하나님 곧 우상(수 24:2)임을 분간치 못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자신도 우상을 섬겼던 라반의 종교관은 유일신관이 아니라 다신관입니다. 그래서 다신론적 사상에 기초하여 여호와 하나님과 동일하게 옛 조상의 신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조부 아브라함이 믿고, 아비 이삭이 경외하는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했습니다. 이는 언약의 후사로서의 야곱의 진실한 신앙관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54: 야곱이 또 산에서 제사를 드리고 형제들을 불러 떡을 먹이니 그들이 떡을 먹고 산에서 경야하고

  언약 체결이 끝난 후에 야곱은 따로 산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라반과 같이 다신론 사상에 기초하여 드려진 것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 한 분만을 위하여 드려진 감사와 희생의 제사였습니다. 당시 풍습으로는 언약이나 동맹 관계 등 조약이 체결되면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희생 제사를 드리고 잔치를 벌여 함께 우호와 화해의 식사를 즐기는 관례가 있었습니다.(26:28-30) 라반 일행은 야곱 일행과 함께 밤을 지내었습니다.

 

55: 라반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 맞추며 그들에게 축복하고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더라.

  야곱과 화해하고 언약을 마친 후 라반은 딸들과 손자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고향 밧단아람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후에 라반의 이름은 성경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구속사의 맥을 따라 선민과의 관계에서의 그의 역할이 끝났기 때문입니다. 즉 필요로 할 때에만 이방인을 적절히 등장시키시는 하나님의 구속사의 섭리라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