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제28장 강해 - 야곱의 도주와 벧엘 언약
야곱이 속임수로 축복을 가로챈 후에 이삭의 집안은 큰 갈등을 넘어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에서가 야곱을 죽일 계획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이에 리브가는 이런 에서의 계획을 알고 야곱을 보호하기 위하여 하란의 친정으로 보내려고 하였습니다. 또한 하란에서 야곱의 아내를 맞도록 하는 목적도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위기의 발생은 인간 중심적인 사고에서 일어난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중에도 계획하신 일들을 이루어 가고 계시는 중입니다. 그것이 바로 벧엘 언약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야곱의 말에서 나타나는 매우 중요한 점은 하나님이 ‘유일신’이심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일하신 신이지만 어느 곳에나 계시는 ‘편재성’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본문은 1-5은 야곱의 도주, 6-9절은 에서의 중혼, 10-15절은 벧엘 언약, 16-22은 야곱의 서원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부탁하여 가로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고
야곱은 모친 리브가의 뜻에 따라 형 에서의 보복을 피하기 위하여 하란으로 떠날 결심을 했고, 부친 이삭은 리브가가 야곱을 하란으로 보내어 아내를 맞도록 하려고 한다는 말을 듣고 야곱을 불러서 축복을 하였습니다. 개인적인 욕심으로 에서에게 축복을 하려고 했으나, 이제 모든 되어가는 일들을 보고 야곱에게 축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리브가의 말대로 야곱의 아내는 동족 처녀와 혼인을 시켜야 한다는 말에 동감하고 야곱에게 가나안 사람의 딸 즉 이방여인과 혼인을 하지 말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2: 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너의 외조부 브두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너의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취하라.
밧단아람은 ‘아람의 평야’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작은 지역이 아니라 매우 광범위한 지역을 가리킵니다. 하란은 이 밧단아람 지역 내에 있는 한 성읍으로 추측됩니다. ‘브두엘’은 리브가의 부친으로 야곱의 외조부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아들(24:15,24)입니다.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취하라고 하는 것은 권면이나 부탁의 차원을 넘은 요구와 명령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는 언약 가문을 이어나갈 야곱으로 하여금 여호와 신앙의 순수성을 보전토록 하기 위함입니다.
3: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어 너로 생육하고 번성케 하사 너로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리셨던 복(22:16-19)이 이삭을 거쳐 야곱에게 계승되고 있습니다. 복의 내용은 불변입니다. 언약 후손의 번성과 약속의 땅 가나안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것입니다. ‘여러 족속’을 이룬다는 말은 ‘백성들의 모임’이란 뜻으로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열 두 지파의 조상이 되어 많은 백성을 이루게 하리라는 의미라고 보입니다. ‘여러 족속(케할 암밈:קהל עמים)’은 신약시대 교회란 뜻을 지닌 ‘에클레시아(ἐχχλησία)’와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를 보아 이삭이 야곱에게 한 축복은 구속사적 의미에서 영적으로 택함을 받은 백성들의 생육과 번성의 복까지 포함하고 있습니다.
4,5: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 주사 너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너의 우거하는 땅을 유업으로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에 이삭이 야곱을 보내었더니 밧단아람으로 가서 라반에게 이르렀으니 라반은 아람 사람 브두엘의 아들이요 야곱과 에서의 어미 리브가의 오라비더라.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한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과 동일한 것입니다. 결국 후손의 번성과 가나안을 기업으로 받는 것에 대한 약속이 아브라함에서 이삭으로 야곱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너의 우거하는 땅’은 현재 이방인의 신분으로 머물고 있는 가나안 땅을 말합니다. 야곱 대에 이르기까지도 아직 가나안 땅은 유업으로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아비 이삭의 정식 허락을 받고 집을 떠나 이삼촌 라반이 있는 밧단아람으로 향했습니다.
6,7: 에서가 본즉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고 그를 밧단아람으로 보내어 거기서 아내를 취하게 하였고 또 그에게 축복하고 명하기를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라하였고, 또 야곱이 부모의 명을 좇아 밧단아람으로 갔으며
에서는 야곱이 하란으로 도망하기 전에 죽일 기회가 있었습니다. 에서는 야곱의 모든 상황을 다 파악하고도 행동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27:41에서 보듯이 부친의 생전에는 보복을 하지 않기로 단단히 결심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이러한 결심은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붙드셨기 때문입니다. 브엘세바로부터 밧단아람까지는 대략 800km나 되는 먼 길입니다. 후일 야곱은 급히 도망하느라 ‘지팡이만 가지고(32:10)’ 집을 나섰다고 회고하고 있습니다.
8: 에서가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그 아비 이삭을 기쁘게 못하는지라
에서는 이삭이 야곱을 보내기 전에 가나안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라고 명하는 것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의 두 아내들이 가나안 사람이기 때문에 부모에게 큰 근심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에서가 비로소 깨닫게 된 것입니다. 사냥꾼으로서 들과 산으로 돌아다니며 영적 가문의 신앙적 전통과 관습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나, 이를 계기로 돌이켜 보니 이방 아내들은 가나안의 우상 풍습과 불신앙으로 부모에게 큰 근심이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성도와 불신자의 혼인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9: 이에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 본처들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취하였더라.
아브라함이 86세에 첩 하갈로부터 얻은 아들이 이스마엘이며(17:24,25), 이삭의 이복 형으로 이삭보다 14살 위입니다. ‘그 본처들’은 에서가 처음 아내로 맞은 가나안 여인들로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엘론의 딸 바스맛입니다(26:34,35). ‘느바욧’은 이스마엘의 장자로(25:13) 그의 후손들을 북부 아라비아에서 약탈을 주업으로 하는 ‘나바다안스족’(Nabatheans)으로 추정합니다. 에서는 늦게나마 자신이 이방 여인과 혼인한 것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부모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세 번째 아내로 이스마엘의 딸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러나 에서는 역시 영적인 면에 매우 무지한 것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스마엘 역시 구속사에서 배제되었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부일처제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10,11: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
야곱은 형 에서의 보복을 피하는 동시에 아내를 구하기 위해 하란으로 향했습니다. 해가 지고 더 이상 여행을 하지 못하게 되어 유숙을 하게 되는데, 그곳은 ‘벧엘, 곧 루스’입니다. 루스는 예루살렘 북쪽 에브라임 산 근처로 약 85km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하루 만에 벧엘까지 간 것이 아니라 대략 2-3일이 걸렸을 것입니다. ‘유숙’이라는 말은 나그네가 자기 겉옷으로 몸을 덮고 밤을 지새우는 것입니다(19:2). 나그네의 처량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구약 시대의 꿈은 하나님께서 계시하는 수단으로 많이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치고 피곤한 언약의 후계자 야곱에게 꿈을 통해 직접 현현하사 언약의 말씀으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계십니다. 야곱의 꿈에 나타난 사닥다리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그 밤에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셨다는 그 사실이 중요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닥다리에 대한 해석은 땅과 하늘을 연결하는 즉 인간과 하나님을 연결하는 유일한 길인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요 1:51; 14:6). 사닥다리가 하늘에 닿았다는 것은 땅과 하늘의 교제의 가교 즉 길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야곱이 대화를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이 말은 천사들이 인간의 간구를 하나님께로 가져가고, 하나님의 응답이나 은혜를 인간에게 가져다주는 천사 고유의 역할을 했다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천사들의 주된 임무는 첫째 하나님의 메시지 전달(슥 1:9; 5:5), 둘째 심판과 구원의 임무 수행(삼하 24:17; 시 78:49), 셋째 하나님 찬양(시 148:2; 사 6:3) 등입니다.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여호와께서 사닥다리 위쪽에 서계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위엄과 권위를 나타내 주는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여호와’라는 표현으로 보아 야곱에게 말씀하시는 주된 내용과 목적이 언약과 관련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라고 하시는 말씀은 야곱의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성실하게 수행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의 표현이며, 야곱이 그들의 후계자가 됨을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너 누운 땅’ 직접적으로는 ‘루스’를 가리키지만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지경을 가리킵니다.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편만하다’(파라츠: פרץ)는 ‘번지다’는 뜻입니다. 곧 사방으로 점점 확산되어가는 모습을 강조한 표현입니다. 자손이 확산되는 것은 곧 성도가 확산되어 가는 것입니다. 주님의 나라의 점진성과 보편성을 나타낸다고 하겠습니다.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함께’(아맘: עמם)은 결합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야곱은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동행의 약속입니다. 주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마 28:20). 야곱과 함께 하란에 가시고 그곳에서도 보호해 주실 것이며, 또한 하란에서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야곱과 함께 계시며 그를 보호해 주실 것을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영적 언약으로 모든 성도들에게도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보혜사 성령을 성도들의 마음 속에 내주하게 하심으로 약속을 다 이루셨습니다(요 14:16; 15:26).
16: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야곱은 이 꿈을 통하여 여호와께서는 특정한 장소, 즉 거룩하게 구별된 장소에서 뿐만이 아니라 어느 곳에서든지 자신을 계시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야곱은 아브라함과 이삭을 통하여 말로만 듣던 여호와께 대한 지식을 체험을 통해 실제로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생활 속에서 체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17: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야곱은 여호와께서 어디에서든지 언약 백성에게 계시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후 하나님의 임재 사실과 위대하심에 대한 경외함으로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지존하시고 엄위하시고 무한한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을 깨닫게 되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에는 인간 스스로의 무능함과 연약함과 죄악을 깨닫게 되는 것도 포함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나님과 교제를 나눈 장소에 대한 야곱의 상징적 표현입니다. 하나님과 진정한 교제를 나누는 곳인 성전이며,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곳이며, 하나님께 이르는 통로라는 것입니다.
18,19: 야곱이 아침에 일지기 일어나 베개 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본 이름은 루스더라.
‘기둥’(마체바: מצבה)이란 어떤 사람 혹은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서 세우는 기념비입니다. 야곱이 베개 하였던 돌로 기둥을 세운 것은 하나님을 만난 사실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언약을 기념하기 위함입니다. 돌기둥에 기름을 부은 것은 거룩하게 구별하려는 행위로, 자기 자신과 그 장소를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의 표현입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예루살렘 북쪽 야 19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베이틴(Beitin)’으로 불린다고 합니다. 후일 가나안에 귀환 후 야곱은 이곳에 돌아와 서원대로 여호와께 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그곳 명칭은 ‘엘벧엘’이라고 칭했습니다(35:1-7, 14).
20: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서원은 ‘네데르(נדר)’로 ‘자신의 입술을 통해서 하나님께 자신을 바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대체적으로 서원 시에는 단순한 맹세뿐만 아니라 제물을 함께 드리기도 했으며(레 27장), 어떤 특정 행위, 혹은 음식을 삼가는 행위(시 132:2-5)등도 수반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에 대한 감사와 헌신의 표시로 서원을 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여 동행과 보호, 그리고 생활에 필수적인 것들을 구체적으로 간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야곱의 간구대로 하나님께서는 하란 도피 시절 20년 동안 내내 야곱의 지켜 보호하셨으며(31:41), 여러 처자와 많은 노비 및 숱한 가축 떼를 야곱에게 더하시고(30:43) 무사히 가나안으로 돌아오도록 섭리하셨습니다.
21: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이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타향살이 동안 평안히 지켜주실 것, 둘째 에서의 보복에서 무사히 지켜주실 것입니다. 후일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이 두 가지를 신실하게 이행하셨습니다(31:43-55; 33:4).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여호와께서 나에게 하나님(엘로힘)이 되시고’라는 뜻입니다. ‘여호와’와 ‘하나님’의 개념을 잘 알아야 합니다. 여호와는 우리 구속사의 주인이 되시며 창조주를 뜻합니다. ‘하나님’은 유일신의 개념보다는 ‘최고의 신’이라는 뜻입니다. 즉 인간이 생각하기 자기가 섬기는 최고의 신에 대한 호칭을 ‘엘로힘(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야곱에게는 여호와만이 자기에게 최고의 신이 되신다는 뜻입니다. 일평생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모시고 섬기겠다는 신앙고백입니다.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하나님의 전’이 된다는 말은 이곳에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장소로 삼겠다는 뜻입니다. 훗날 야곱은 서원대로 제단을 쌓고, ‘엘벧엘’이라고 불렀습니다(35:1-7, 14). ‘십분 일’ 십일조를 바친다는 뜻입니다. 모세가 율법에 십일조를 성문화하기 이전에 이미 십일조가 자원 예물로 드려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멜기세덱에게 승리의 전리품 중에서 십일조를 바친 최초의 인물입니다.(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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