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창세기 제27장 강해 - 이삭의 축복

chukang 2011. 8. 28. 08:45

 

창세기 제27장 강해 - 이삭의 축복

 

  이삭이 나이가 들어서 앞이 잘 보이지 않게 되자 에서를 편애하여 에서에게 축복을 하려고 했지만, 결국에는 둘째 아들인 야곱에게 축복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과정에서 야곱이 이삭과 에서를 속인 것은 분명히 지탄을 받아야 할 것이며, 그에 대한 대가는 반드시 치러야만 했습니다.

 

1,2: 이삭이 나이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맏아들 에서를 불러 가로되 내 아들아 하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이삭이 가로되 내가 이제 늙어 어느 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노니

  이때 이삭의 나이는 대략 137세로 추정합니다(25:26;31:38;41:46;47:9). 야곱의 나이는 77세입니다. 이삭은 60세에 쌍둥이 에서와 야곱을 낳았기 때문입니다. 눈이 어둡다는 말은 안력이 쇠약해 지는 것입니다. 이삭은 안력이 쇠약해져서 점차로 보이지 않는 상태에 이르게 되었는데, 노년에는 거의 앞을 볼 수 없는 상태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이에 에서를 불러서 자신의 몸 상태가 앞으로 얼마나 더 살지 모르는 상황임을 알렸습니다.

 

3,4: 그런즉 네 기구 곧 전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나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다가 먹게 하여 나로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전통(箭筒)은 화살을 넣은 길쭉한 통을 말하지만, 히브리어로는 ‘텔리(תלי)’로 ‘건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어깨에 거는 무기의 총칭입니다. 즉 사냥무기를 가지고 들로 가서 야생 짐승을 사냥을 하여 그것으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가지고 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음식을 먹고 기분이 좋고 흡족한 마음으로 축복을 해 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5,6: 이삭이 그 아들 에서에게 말할 때에 리브가가 들었더니 에서가 사냥하여 오려고 들로 나가매, 리브가가 그 아들 야곱에게 일러 가로되 네 부친이 네 형 에서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내가 들으니 이르시기를

  리브가는 일찍이 복중에서 예언된바 야곱이 장자권을 계승하리라는 하나님의 계시(25:23)를 늘 마음 속에 새기고 있었던 듯합니다. 평소부터 장자 축복에 대한 이삭의 태도를 면밀하게 주시해 온 듯하며, 결국 에서를 향한 이삭의 축복 의도를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리브가는 이삭이 하나님의 계시에 위배되는 축복권을 행사하려고 하자 이를 막기 위해 야곱과 함께 모의를 하게 됩니다.

 

7,8: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가져다가 별미를 만들어 나로 먹게 하여 죽기 전에 여호와 앞에서 네게 축복하게 하라 하셨으니 그런즉 내 아들아 내 말을 좇아 내가 네게 명하는 대로

  이삭은 에서에게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축복권은 하나님께서 족장에게 일임하신 사항이기 때문에, 족장이 축복을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하신 것과 동일한 효력을 발행하기 때문에 반드시 막아야만 하는 것이 리브가와 야곱의 입장이었습니다. 그래서 리브가의 마음은 매우 바쁘게 되었고, 즉시 야곱을 불러서 이에 대한 대비책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9,10: 염소 떼에 가서 거기서 염소의 좋은 새끼를 내게로 가져오면 내가 그것으로 네 부친을 위하여 그 즐기시는 별미를 만들리니, 네가 그것을 가져 네 부친께 드려서 그로 죽으시기 전에 네게 축복하기 위하여 잡수시게 하라.

  ‘염소의 좋은 새끼’는 좋은 염소 새끼 두 마리라는 뜻입니다. 아마도 야곱이 좋아하는 야생 짐승의 고기와 비슷한 맛을 내는 부위가 염소에게는 적었기 때문에 두 마리가 필요한 것으로 보입니다. 리브가는 이삭이 평소에 좋아하는 음식 취향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리브가가 염소로 음식을 만들면 야곱은 에서처럼 변장을 하여 이삭에게 음식을 먹게 한 후에 대신 축복을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11,12: 야곱이 그 모친 리브가에게 이르되 내 형 에서는 털 사람이요 나는 매끈매끈한 사람인즉, 아버지께서 나를 만지실진대 내가 아버지께 속이는 자로 뵈일지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

  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전신에 털이 많았습니다. 에서라는 이름도 털이 많은 자라는 뜻입니다. 이와는 대조되는 야곱의 모습은 아버지를 속이기가 쉽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즉 눈이 어두운 아버지는 자식의 신분을 확인하기 위하여 몸을 만져볼 것이라는 짐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들키게 되면 축복이 아닌 저주를 받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족장의 저주도 역시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야곱은 매우 두려워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야곱은 그렇게 간교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13,14: 어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좇고 가서 가져오라. 그가 가서 취하여 어미에게로 가져왔더니 그 어미가 그 아비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었더라.

  만일 속임수가 탄로 나면 전적으로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며 야곱을 안심시키고 있습니다. 이는 리브가가 잉태 시 받은 하나님의 복중 계시를 그만큼 철저히 믿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을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행하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따라서 이러한 모습은 그에 대한 징계라고 할까, 이 일 이후에 야곱을 밧단 아람으로 보낸 후에 죽기까지 다시는 상봉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 일은 리브가와 야곱이 몰래 진행시키는 것으로 하인들에게 시키지 않고 직접 염소를 잡고, 리브가가 요리를 했습니다.

 

15-17: 리브가가 집안 자기 처소에 있는 맏아들 에서의 좋은 의복을 취하여 작은 아들 야곱에게 입히고, 또 염소 새끼의 가죽으로 그 손과 목의 매끈매끈한 곳에 꾸미고, 그 만든 별미와 떡을 자기 아들 야곱의 손에 주매

  ‘좋은 의복’은 값지고 아름다운 천으로 마든 두루마기식 겉옷으로, 특별한 잔칫날이나 예식 때 입기 위해 간직하는 외출복입니다(39:12-16). 야곱이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이삭 앞에 나아감에도 불구하고 에서의 좋은 의복을 야곱에게 입힌 이유는 그 옷에는 들의 향취와 에서의 체취가 배어있기 때문입니다. ‘야곱에게 입히고’ 이는 야곱이 스스로 옷을 입게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즉 야복은 적극적으로 리브가의 계획에 동참하고 있는 것입니다. 속이는 방법으로 염소 털을 이용하여 노출되는 부분은 모두 감싸 마치 에서의 몸에 난 털처럼 느껴지도록 야곱을 꾸몄습니다. 염소로 만든 음식과 함께 떡도 가지고 가게 합니다. 일반적으로 고기만 먹는 것이 아니라 떡도 함께 먹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8-20: 야곱이 아버지에게 나아가서 내 아버지여 하고 부른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노라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 야곱이 아비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명하신대로 내가 하였사오니 청컨대 일어나 앉아서 내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의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이삭이 그 아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네가 어떻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 그가 가로되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삭은 비록 노쇠하여 앞을 잘 보지 못하기는 하지만, 귀로서는 에서와 이삭을 충분히 구별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에서에게 축복하기 위하여 들짐승을 잡아 요리를 만들어 오라고 한 직후에 이처럼 야곱이 자신에게 찾아왔기에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야곱은 아버지 이삭에게 거짓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20절까지 이어지는 대화 속에서 야곱은 세 가지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첫째 자기가 바로 에서라고 한 것, 둘째 자기가 고기를 직접 사냥했다고 한 점, 셋째 하나님이 사냥감을 순적히 잡도록 도우셨다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처음에는 리브가의 계획에 조바심을 내었지만 이제 실행하는 단계에 있어서는 적극적이며 대담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처럼 거짓말을 시작하게 되면 환경에 의해서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는 것을 깨우쳐줍니다. 심지어는 여호와의 성호까지 언급하며,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쉽게 사냥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21-23: 이삭이 야곱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가까이 오라. 네가 과연 내 아들 에서인지 아닌지 내가 너를 만지려 하노라. 야곱이 그 아비 이삭에게 가까이 가니, 이삭이 만지며 가로되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하며, 그 손이 형 에서의 손과 같이 털이 있으므로 능히 분별치 못하고 축복하였더라.

  이삭은 야곱에게 지금 가까이 다가오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만져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목소리에 의심을 품은 이삭이 손수 만져 그 촉각으로 에서인지를 확인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눈으로 확인할 수 없어서 손에 털이 만져지자, 에서라고 판단을 하고 축복을 하고 말았습니다.

 

24: 이삭이 가로되 네가 참 내 아들 에서냐? 그가 대답하되 그러하니이다.

  이삭은 손의 촉감으로 에서인 것을 확인하였으나, 목소리에는 여전히 의심을 하기에 신중을 기하여 다시 한 번 묻는 것입니다. 이는 장자에 대한 축복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고 있기에,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에서에게 축복 기도를 하기 위하여 매우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야곱은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가로채기로 이미 작정을 하였기 때문에 아버지의 물음에 아무런 동요도 없이 자신이 에서라고 대답을 하고 말았습니다.

 

25,26: 이삭이 가로되 내게로 가져 오라. 내가 아들의 사냥한 고기를 먹고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리라. 야곱이 그에게로 가져가매 그가 먹고 또 포도주를 가져가매 그가 마시고 , 그 아비 이삭이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가까이 와서 내게 입 맞추라.

  마침내 이삭이 모든 의심을 버리고 야곱에게 축복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외면적으로는 리브가와 야곱의 계책이 성공한 듯하지만, 실상은 하나님께서 이미 정해 놓으신 것이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속임수를 좋아하실 리가 없지만, 이 일을 계기로 리브가와 야곱이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게 하시고 성숙한 신앙인이 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시는, 즉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야곱은 밧단 아람으로 20년간의 도피 생활을 하게 되고, 리브가는 사랑하는 아들과 죽을 때까지 만나지 못하게 되는 징계가 내려진 것입니다. ‘포도주’는 ‘야인(יין)’이라는 말인데, 포도즙부터 독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사용이 되었습니다. ‘내게 입 맞추라.’ 이삭은 에서로 변장한 야곱에게 자신에게 입을 맞추도록 했습니다. 이는 이미 에서인 것으로 확인이 끝났기 때문에 사랑과 신뢰의 표현으로 입을 맞추도록 하는 것입니다.

 

27: 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 맞추니 아비가 그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의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야곱이 에서의 옷을 입고 이삭에게 가까이 갈 때에 옷에서 풍겨나는 에서의 체취가 이삭의 코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향취는 광활한 가나안 들판을 누비는 동안 스며든 밭의 향취입니다. 그 향취는 바로 여호와께서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의 향취입니다. 이 향취를 맡은 말년의 이삭은 끓어오는 감흥으로 마음껏 축복을 하고 있습니다.

 

28: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팔레스틴 지역은 기후가 건조하여 가뭄이 잦았고 흉년이 잘 들었습니다. 그러나 일교차가 커서 밤새 이슬이 내리곤 하였습니다. 이 이슬은 가뭄에도 불구하고 식물들이 자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슬을 비와 더불어 하나님의 주시는 복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땅의 기름짐’ 비옥한 옥토라는 뜻입니다. 땅이 기름지다는 것은 풍성한 수확을 보장하는 것이며, 풍요로운 생활을 뜻합니다.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는 이 땅에서 받게 되는 복을 말합니다.

 

29: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27,28절은 물질적인 축복이었다면, 여기에서는 영적인 축복입니다. 야곱의 후손 이스라엘은 장차 열방 중 하나님의 선민으로 택정되어 만방에 복을 전파하는 제사장 나라가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출 19:5, 6). 이삭의 이 축복은 결국 야곱의 후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만민 구원 사건으로 성취가 되었습니다. 형 에서의 후손은 이스라엘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이삭의 축복은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의 재확인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의 계승이며 발전입니다.

 

30: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기를 마치매 야곱이 그 아비 이삭 앞에서 나가자 곧 그 형 에서가 사냥하여 돌아온지라.

  야곱이 나가자마자 곧 에서가 들어왔습니다. 간발의 차이로 두 사람이 부딪치지 않았음을 강조한 표현입니다. 이는 인간사의 배후에서 세심하게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31: 그가 별미를 만들어 아비에게로 가지고 가서 가로되 아버지여 일어나서 아들의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에서는 사냥한 것을 요리하여 이삭에게로 가지고 왔습니다. 누워있는 아버지에게 일어나서 요리를 먹고 마음껏 자신에게 축복해 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32: 그 아비 이삭이 그에게 이르되 너는 누구냐 그가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아들 곧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에서가 요리를 가지고 와서 잡수시라는 말에 이삭은 깜짝 놀라서 누구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에서가 자신을 ‘아버지의 맏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은 자신만이 아버지의 축복을 받을 자격이 있는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33: 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 가로되 그런즉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너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정녕 복을 받을 것이니라.

  이삭이 심히 크게 떨었다는 것은 야곱의 속임수에 크게 놀랐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곧 놀라움과 분노를 가라앉혔습니다. 그리고 이미 축복한 것은 되돌릴 수가 없고, 축복을 받은 자가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말 속에는 리브가가 잉태하였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야곱이 큰 자가 되고, 큰 자 즉 에서가 작은 자 야곱을 섬길 것을 분명히 깨달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34,35: 에서가 그 아비의 말을 듣고 방성대곡하며 아비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이삭이 가로되 네 아우가 간교하게 와서 네 복을 빼앗았도다.

  크게 소리 내어 비통하게 울부짖는 에서의 모습을 봅니다. 야곱에 대한 분노와 원망입니다. 축복권을 상실한 데 대한 절망의 울부짖음입니다. 전날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먹은 자신의 경솔한 행동에 대해 통한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에게도 축복을 하라고 아버지에게 간청을 합니다. 이는 축복권과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따로 할 말이 별로 없습니다. 네 아우가 간교하게 와서 네 복을 빼앗았다고 말할 뿐입니다.

 

36: 에서가 가로되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치 아니하니이까? 그가 나를 속임이 이것이 두 번째니이다.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문을 빼앗고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 또 가로되 아버지께서 나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

  야곱은 발꿈치를 잡은 자, 속이는 자, 사기꾼이라는 뜻이므로, 자신을 두 번씩이나 속인 것을 들어 야곱이라는 그 이름이 그에게 합당하다고 말합니다. 야곱의 행동에 대한 강한 비난과 분노가 담겨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즉 빼앗긴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판 것입니다(25:33). 자신의 경거망동을 야곱의 교활함과 유혹 때문이라고 책임을 전가하고 있습니다. 또한 복을 빼앗았다는 것에 대하여서는, 이미 하나님께서 야곱을 위하여 복을 주실 것을 약속해 놓았다(25:23)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나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 이 말은 에서는 이삭이 아무 내용이나 축복을 하면 되는 줄로 잘못 알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분명한 것은 복을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민 6:24-26).

 

37: 이삭이 에서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그를 너의 주로 세우고 그 모든 형제를 내가 그에게 종으로 주었으며 곡식과 포도주를 그에게 공급하였으니 내 아들아 내가 네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이삭은 자신이 이미 축복한 내용, 자신의 축복에 절대적 권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후일 에서의 후손은 야곱의 후손 이스라엘의 종이 되었습니다(삼하 8:14). ‘내 아들아 내가 네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사랑하는 아들 에서의 눈물어린 하소연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아들을 위해 축복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38: 에서가 아비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아버지의 빌 복이 이 하나 뿐이리이까?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 하소서 하고 소리를 높여 우니

   에서는 이제야 자신이 경홀히 취급했던 장자의 명분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소리 높여 울어도, 아무리 아버지에게 축복하라고 애원을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귀중한 것을 지키지 못한 에서는 비참한 결과를 맞보게 되는 것입니다.

 

39: 그 아비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너의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뜨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뜰 것이며,

  “보라 그 땅의 기름진 곳과 하늘 이슬 내리는 곳에서 떠나서 너의 주소가 되고”라는 뜻입니다. 에서와 그의 후손들은 야곱과 그의 후손이 거주하게 될 기름진 가나안 땅 대신 척박하고 메마른 땅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에서의 후손을 후일 가장 척박한 땅인 세일 산지를 그들의 주소로 삼게 되었습니다(32:3; 신 2:5).

 

40: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메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 버리리라.

  칼을 믿고 생활한다는 것은 호전적인 백성이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들은 척박한 산지와 거칠고 사나운 호전적이고 약탈을 일삼는 유랑 민족이 되었습니다(렘 49:7-22).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에서의 후손은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에게 정복되어 공물을 바치고 섬기게 되었습니다.(삼상 14:47; 삼하 8:14; 왕상 11:16; 왕하 14:7-10; 대하 20:22-25). ‘네가 메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 버리리라.’는 말은 에서의 후손이 번성하고 강하게 되어, 목에 매인 멍에를 벗어 내던지기 위해 반항하거나 투쟁할 때를 말하며, 이들이 힘이 커지고 반면에 이스라엘은 그 힘이 약화될 때 비로소 에돔이 이스라엘을 섬기는 것에서 벗어나 해방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이 예언은 후일 유다 왕 여호람 때 성취가 되었습니다(왕하 8:20-22). 신약 시대에 이스라엘을 통치는 헤롯 왕은 에돔 사람이었습니다(마 2:1; 눅 1:5). 그러나 이러한 에돔의 해방은 부분적이고 일시적입니다.

 

41: 그 아비가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을 인하여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웠은즉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하였더니

  에서는 그 본래의 성격대로 장자권을 쉽게 판 것에 대한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한 회개와 참회의 눈물을 흘리지 않고, 야곱에게 축복을 빼앗겼다는 배반과 분노로 통한의 눈물을 흘렸고, 이는 마음속으로 야곱을 죽이겠다는 생각으로 굳어지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웠은즉’ 에서는 아버지가 죽을 때가 가까웠기 때문에 이삭의 장례후로 잠시 야곱을 죽일 계획을 연기하였습니다.

 

42-44: 맏아들 에서의 이 말이 리브가에게 들리매 이에 보내어 작은 아들 야곱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 형 에서가 너를 죽여 그 한을 풀려하나니, 내 아들아 내 말을 좇아 일어나 하란으로 가서 내 오라버니 라반에게 피하여, 네 형의 노가 풀리기까지 몇 날 동안 그와 함께 거하라.

  야곱은 속임수로 아버지의 축복을 받은 뒤 에서가 오기 직전에 아비의 장막을 떠나 다른 곳에 거처하고 있었습니다. 에서의 분노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가 되어 야곱을 반드시 죽일 것이라는 말을 하였고, 이 말은 리브가의 귀에 들어가고, 리브가는 이대로 있을 수가 없기에, 야곱을 불러서 그 사실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몇 날 동안’ 리브가의 생각에 에서의 급하고 다혈질적인 성격상 그 분노가 쉽게 가라앉을 것으로 판단했으며, 야곱은 오래지 않아 다시 돌아올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하란에서 몇 년이 아닌 무려 20년이나 머무르게 되었습니다(31:38). 그리고 리브가는 사랑하는 아들 야곱은 다시 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20년이라는 기간은 분명 징계의 기간인 동시에, 성화의 시간으로 간교하고 교활한 야곱의 성품을 승리의 사람 ‘이스라엘’로 변화시키는 시간으로 하나님께서는 역사하셨던 것입니다.

 

45: 네 형의 분노가 풀려 네가 자기에게 행한 것을 잊어버리거든 내가 곧 보내어 너를 거기서 불러오리라 어찌 하루에 너희 둘을 잃으랴.

  먼저 야곱은 에서의 손에 죽임을 당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장남에서 역시 살인자가 되어 피의 복수를 받게 될 것이므로(9:6; 삼하 14:6,7) 야곱과 에서 둘 다를 잃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에서의 분이 풀릴 때까지만 밧단 아람으로 잠시 피해 있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46: 리브가가 이삭에게 이르되 내가 헷 사람의 딸들을 인하여 나의 생명을 싫어하거늘 야곱이 만일 이 땅의 딸들 곡 그들과 같은 헷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면 나의 생명이 네게 무슨 재미가 있으리이까?

  에서가 헷 사람의 딸들과 혼인한 것으로 인하여 자신의 삶에 어떤 재미나 의미가 없어졌으니, 이제 야곱은 동족과 혼인시키기 위하여 자신의 친정으로 보내려고 한다고 꾸밈으로써, 야곱의 여행이 에서와 무관한 것처럼 위장하고 있습니다. 에서의 아내를 핑계로 삼기는 했지만, 실제로 리브가는 그들로 인하여 매우 많은 염려를 하였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리브가가 일단 야곱을 친정으로 보내어 에서의 분노의 보복을 면케 하며, 또한 본토 친척의 집에서 아내를 구하게 하여 순수한 언약 가문의 신앙과 혈통을 계승하게 하는 이중의 목적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아서 매우 지략이 있고 현명한 여인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