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벌이 되는 우상 사도행전 19:23-41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신전 중에 ‘파르테논’이 있습니다. 수천 년간 웅장한 자태를 보여 주며 아테네 시가지를 내려다보고 있는 파르테논 신전은 전쟁과 지혜의 신이자 아테네의 수호신이기도 한 아테네 여신을 모시던 곳입니다. 이 신전은 세계에서 가장 균형 잡힌 건축물로 불리며 도리아 양식의 건축물 중 최고봉으로 꼽히는 이 신전은 규모 면에서 아크로폴리스에서 최대이며 한때 아테네가 폴리스 동맹국 사이에서 제국적인 역할을 담당하던 시기에 델로스 동맹의 금고로 이용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B. C 4세기경에 페리클레스가 설계를 하고 조각가 피아디아스가 총 15년이나 걸려 완성한 건축물로 현재 UNESCO 고적 1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초대 교회 시대 시절 에베소라는 곳에도 신전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제3차 전도 여행 당시 아데미 여신 숭배의 본거지입니다. 이곳에서 복음을 힘차게 전하고 여러 기적을 행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돌리고 있던 바울과 일행은 아데미 전각의 은장색 데메드리오라는 자의 소요로 인하여 곤욕을 치르게 됩니다. 29절에 나오는 “연극장”이라고 하는 장소가 바로 아데미 신의 신전입니다. 약 25,000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매우 큰 규모입니다.
아데미(Artemis)는 그리스에도 있었습니다. 그리스 즉 헬라의 아데미는 제우스의 딸이요 아폴로의 누이로, 순결한 처녀의 신이자 사냥의 신입니다. 로마에서는 섬기는 신 중에는 ‘다이애나(Diana)'가 있는데 헬라의 아데미와 동일 신입니다.
에베소의 아데미는 다산(多産)을 상징하는 대지의 모신(母神)이자 신들과 사람들의 어머니로서 소아이아에서는 태고적부터 숭배되어 왔다고 합니다.
성경에서는 ‘아세라, 혹은 아스다롯’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에셀나무(창 21:33, 삿 6:25)는 아세라를 상징하는 성수(聖樹)로 여겨지는데, 그 나무 가지의 무성함처럼 풍요와 번성을 상징하는 신입니다. 이 신의 다른 특징은 하나의 작은 숲과 같은 개념입니다. 숲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 나름대로의 형상을 만들어 놓은 것으로 하나의 세트라고 봐야 합니다. 이러한 아세라의 모습은 오늘날 천주교에 그대로 재현되어 있습니다. 출입구에 작은 숲은 만들어 놓고 그 안에 아기를 안고 있는 마리아의 모습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세라입니다.
에베소에 있는 아데미는 12개의 유방을 가진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고, 신전의 크기는 가로 세로 120m x 60m 가 되는 당시로서의 어마어마한 크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마다 수많은 순례자와 여행객들이 이 신전을 방문하려고 몰려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신전의 주변에는 순례자와 여행객들을 상대로 음식이나 기념품, 제물 등을 팔고 숙소를 제공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장사꾼들과 행상들이 득실거렸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수입이 좋은 장사는 아데미 여신의 은감실, 즉 은으로 만든 아데미의 신전 모형물을 파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것을 기념품이나 헌물 또는 호신물로 사용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에베소 사람들의 우상 숭배 행위를 책망하니까 그들의 경제적 수입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은장색 조합의 우두머리인 데메드리오가 주동이 되어 소동을 일으키고 말았습니다. 그는 이런 소동을 통하여 사람들을 선동해서 바울의 전도를 중지시키려고 하는 것과, 또 아데미 여신에 대한 보다 큰 열심을 불러일으키려고 하였습니다. 이 일은 결국 그들에게 보다 많은 수입을 가져다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데메드리오는 기어코 은감실을 만드는 직공들과 파는 사람들을 다 모아서 선동을 시작했습니다. 바울이 사람들에게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고 말하였으며, 당신들도 이 말을 들었으며, 이제 그로 인하여 영업이 ‘천해질 위험’이 있다고 했으며, 따라서 아데미 전각도 경홀히 여김이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여 그의 위엄도 떨어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잘 분석해 보면 바울의 전도로 인하여 아시아 전역에 걸쳐서 많은 사람들이 우상을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약간 과장된 표현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바울의 전도는 아시아에서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데메드리오는 자신의 동업자들을 선동하면서 나름대로 세 가지의 합리적인 이유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아데미가 한갓 우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바울의 전도로 인해 아데미 신전 모형을 만드는 자신들의 사업이 천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둘째 복음이 전파되면 될수록 아데미 신전 모형을 사려는 사람이 적어짐으로 인해 결국 신전의 권위도 떨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셋째 온 세계가 숭상하는 이 여신의 위신은 땅에 떨어지고 그로 인해 여신의 분노를 유발하여 대재난이 닥칠 것이라는 주장인데, 이는 아데미의 위엄과 권위 수호를 위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신의 이익 유지에 있는 것입니다.
‘아데미의 전각’ 즉 아데미 여신의 신전이 B. C 550년에 만들어졌다가 B. C 356년에 ‘에로스트라토스’라는 이름을 가진 정신착란증 환자에 의해 불태워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후대에 새롭게 재건되었습니다. 지금까지 고고학적인 발굴에 의해 에베소 외에도 32곳이나 되는 곳에서 아데미 숭배의 흔적이 발견되었다는 것입니다. 전 세계적인 숭배는 아니었지만 상당히 광범위한 지역에서 아데미 숭배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데메드리오가 이처럼 동업자들을 모아서 선동을 하고 데모를 부추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동업자들의 반응은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28절을 보면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데메드리오의 선동에 의해 분노와 위기감을 느낀 동업자들은 마치 바울이 전하는 여호와 하나님을 업신여기기라도 하듯 자신들이 섬기는 아데미 여신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성경 말고, 서방 사본에 보면 ‘거리로 뛰어나가’라는 말이 앞에 붙여 있다고 합니다. 즉 “거리로 뛰어나가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라고 외쳤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에베소의 중심부를 관통하는 ‘아카디안 대로’ 즉 에베소 항구에서 신전이 있는 산기슭까지 곧게 뻗어 있는 길을 휩쓸고 다니면서 온 성읍을 소란케 하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악인의 무리들은 선동을 잘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공산주의 사회주의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침소붕대하는 경향이 많이 있습니다. 작은 것을 크게 부풀려 상대방을 곤란에 빠뜨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합니다.
그 다음에는 바울의 동반자인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잡아 갔습니다. 무리들이 우연하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길거리에서 만나 붙잡고 연극장에 끌고 가 증언을 강요하도록 한 것으로 보입니다. 뒤늦게 동료들이 붙잡힌 것을 안 바울은 그들을 구출하고 군중들을 설득시키기 위해 극장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으므로 안전할 것으로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에베소 교인들의 눈에는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어 보였을 것입니다. 에베소 교인들은 바울이 연극장으로 들어가려는 것을 극구 만류하였습니다.
31절에 보면 “아시아 관원”이라고 나오는데, 이들은 아시아 각 도시에서 해마다 뽑히는 10인의 의회 관원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의 주임무는 동맹을 결성하여 로마 황제에 대한 충성심을 고양시키는 것입니다. 이들은 대체적으로 부유한 집안의 출신들입니다. 그런데 이들 중 몇몇이 바울과 친분 관계를 맺고 있다가 위급한 상황에서 바울에게 조언을 해 주었다는 사실은 그 당시 기독교가 이미 상류 계층에까지 상당히 전도되어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연극장에 모인 사람들은 어떤 문제 때문에 모였는지를 잘 알고 있었을까요? 32절은 보면 태반이나 모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선동하기에 엉겁결에 따라나서서 연극장까지 오기는 왔는데, 이 사람 저 사람 서로 다른 말을 하므로 자신들이 무엇을 해결해야 하는지의 문제조차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정작 주동자인 데메드리오는 결정적인 순간에는 뒤로 살짝 빠져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악한 자들은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사람들을 이용하는 데는 능숙하며, 혼란을 조성한 후에는 자신은 빠져나가서 책임을 지지 않는 행태를 보입니다. 어수룩한 사람들만 이용을 당하는 것입니다.
또 한 무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유대인들입니다. 유대인들은 아시아 전역에 회당을 건립하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까지도 연극장에 따라 들어와 있었습니다. 기독교와 유대교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기독교는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고, 유대교는 오실 예수님만 기다리고 있는 종교입니다. 유대교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이 정말 여호와를 믿는다면 이방인들 속에서 기독교인들에게 해로운 일은 하지 않아야 할 터이지만, ‘알렉산더’라는 사람을 전면에 내세워서 ‘발명’ 즉 자신들을 방어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에베소 인들은 그 나서서 외치는 자가 유대인인 줄을 알고 큰 소리로 저지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에베소 사람들이 섬기는 아데미 여신을 거부하는 것에 있어서는 그리스도인이나 유대인이나 차이점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영문은 모르지만 일단 함께 모여 있는 상황에서 이들의 감정은 상당히 격해 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유대인들에 대해 가지고 있던 악감을 이런 기회를 통하여 갚으려고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계속하여 두 시진이나 더 소란을 피웠습니다.
돌아가는 추세를 관망하고 있던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서기장입니다. 에베소 시의회에서 선출된 최고 행정관리입니다. 비록 로마에서 직접 임명한 관리는 아니나 로마 총독과 논의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시의회의 결의사항을 발표하고 집행하는 관리로서 시민들과 로마의 행정 당국 사이를 연결시켜주는 중요한 일을 맡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에베소에서 발생하는 모든 종류의 소요사태나 불법 시위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고 있었습니다. 이번 소요 사태로 인하여 로마로부터 받을 문책을 염려하여 일단 소요를 진정시키려고 애를 썼습니다.
‘쓰스에게서 내려온’ 쓰스는 헬라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Zeus)를 가리킵니다. 쓰스에게서 내려왔다는 것은 아데미 신상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말로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을 신으로 섬기면서 생겨난 전설입니다. ‘전각지기’ 는 신전의 가장 천한 청소부를 가리켰으나, 후대에는 신전수호자 내지는 신을 섬기는 헌신자라는 뜻으로 바뀌어 신에게 특별히 바쳐진 도시에 붙인 명예로운 이름이 되었습니다.
서기장이 이 같은 말을 하게 된 것은 에베소 인들의 자존심을 살려주고 자부심을 부추기어 소란을 진정시키기 위함입니다. 즉 에베소는 아데미의 전각지기로서 그 존엄성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니 진정하라는 말입니다. 사실 당시 에베소는 아데미를 섬기는 대표적인 도시였습니다. 그곳 주민들은 아무런 구애도 받지 않고 마음껏 아데미를 숭배할 수 있었고, 이 일에 대해서는 아무 염려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 다음에 서기장이 한 일은 붙잡혀 온 가이오와 이리스다고를 풀어주기 위해 무리를 설득시키는 일입니다. 이들은 아데미 신전의 물건을 훔치거나 아데미 여신을 훼방한 적이 없으니 어떻게 징벌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이런 죄목으로 이방인들이 유대인들을 고소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성도들에게 이방 신전의 물건을 훔치는 행위를 철저히 금지시켰습니다. 따라서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도 바울의 말을 따랐을 것입니다. 더욱이 바울은 이방 신들이나 특별히 아데미 신을 비방하는 대신 사람들이 그토록 찾아 헤매는 참 신이 하나님이심과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곧 인류의 구세주이심을 증거하였으니(행 17:22-31) 가이오와 아리스다고 역시 그러한 식으로 전도하였을 것입니다.
서기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리들이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고발하려고 한다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소송을 제기하라고 결론적인 말을 하였습니다. 이 적법한 절차는 로마 총독의 주재 아래 실시되는 정규적인 순회 재판 일에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지 않고 다른 무엇을 원한다면 ‘민회’에서 결단하라고 하였습니다. 민회는 시의원들로 구성되어 있던 자치의결기관입니다. 이 민회는 정규적으로 매월 세 번씩 모였으며 모일 때마다 도시 내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을 자체적으로 해결하며 또한 그 도시의 행정 사무 일체를 논의하였습니다. 따라서 서기장은 이유 없는 불법 집회로 인하여 로마 당국으로부터 미움을 받아 그의 지위가 위태롭게 됨은 물론이요, 에베소의 자치권이 박탈되는 위험을 당하지 않기 위해 이렇게 중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데메드리오의 선동에 놀아나던 무리들은 서기장의 끈질긴 설득과 최후의 위협에 굴복당하여 결국 해산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위기 상황은 끝이 났는데, 이는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때문입니다. 즉 서기장의 이와 같은 판결은 바울의 2차 전도 여행 때 유대인들에 의해 발생한 고리도 소동에 대해 아가야 총독 갈리오가 취했던 조치처럼(행 18:12-16) 기독교에 대한 유리한 판례를 남긴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의 에베소에서의 오랜 가르침과 신비한 기적은 우상이 흥왕하던 에베소에 튼튼한 교회를 세우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반면에 이러한 교회의 급속한 성장은 당시 에베소에 세계적으로 커다란 신전을 가지고 있던 아데미 숭배자들에게는 큰 위협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크게 들고 일어나 바울과 기독교를 위협하였고, 이것이 바울로 하여금 에베소를 떠나 마게도냐로 가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하여 나타난 아데미 숭배자들의 행태를 어떤 것입니까? 데메드리오의 발언은 그가 아데미의 은감실을 통하여 거대한 수입을 올리고 있었음을 알려주는 말입니다. 우상숭배를 통하여 재물을 모으는 것은 대부분의 우상숭배자 혹은 이단들의 공통된 특징입니다. 신흥 종교의 사이비 교주, 이단, 온갖 우상숭배자들 치고 재물을 가져오라고 강요하지 않는 자들이 있습니까? 이들은 종교성은 있으나 믿음이 없는 사람들의 그럴듯한 사탕발림으로 유혹한 후에 반드시 재물을 가져오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들을 향해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자기의 배만 섬긴다고 하였습니다(롬 16:18). 또한 그들의 신은 배라고 하였습니다(빌 3:19). 그러므로 어떠한 경우에도 우상숭배자들에게 미혹을 당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재물과 함께 영혼까지 도적질당하는 어리석은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게 되었고, 데메드리오는 계속하어 아데미를 통하여 막대한 수입을 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입니까? 성경은 이에 대하여 저주를 선포하고 있습니다(신 11:28). 물론 아데미 숭배자들의 종말까지는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모든 우상숭배자들에게 대하여 분명하게 성경은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그들의 종말은 곧 죽음입니다(롬 1:32). 이 세상에 살 동안에는 교묘한 말로 사람들을 속이고, 또 수많은 이득을 취할지 모르지만, 그 뒤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에 데메드리오가 바울 일행에게서 승리를 거둔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데메드리오의 행태는 반드시 하나님의 불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재물에 대한 욕망, 종교를 이용한 선동, 이 모든 행태는 스스로 지옥에 들어가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성도들은 바른 분별력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당장은 조금 어렵고 힘든 일이 있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지혜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서 유혹하는 달콤한 말에 속지 않은 지혜도 있어야 합니다. 그들의 현재는 달콤하고 아름답고 유익하게 보일지라도 그 끝은 멸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고난과 역경 뒤에는 반드시 주님의 보살피심이 있으며,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은총이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만이 참 생명의 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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