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민수기 제6장 강해

chukang 2009. 8. 16.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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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제6장 강해 서원과 축도

 

본 장은 전반부 1-21절로 나실인에 관한 법이며, 후반부 22-27절은 제사장이 백성을 축도할 때의 기도문입니다. 신앙 공동체인 이스라엘 민족 중에서 의무적이든 자발적이든 신앙공동체 생활의 유지에 절대 핵심인 종교 사역을 담당하는 자들에 대한 핵심 의무 규정이라고 하겠습니다.

 

1-12절은 나실인의 헌신에 관한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은 선민으로 삼으시고, 그들로 하여금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존재가 되게 하셨습니다.(출 19;6) 앞에서는 이스라엘의 성결을 위한 각종 조항을 가르쳐주셨고, 여기에서는 나실인 제도를 통하여 거룩한 하나님 나라라는 이상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1,2: 남자나 여자

남성 우월주의 사상이 팽배했다고 하는 이스라엘 내에 여성의 나실인 허용 규정은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류 최초 범죄 이후 편협한 율법의 울타리 안에서는 여성은 남성의 권위 아내 놓일 뿐 아니라, 아예 예속되었으며, 남성을 통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제한된 존재였습니다(창 3:11). 그러나 나실인 규정은 그 여인으로 하여금 율법의 한계를 뛰어넘어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로서의 독립적 위치를 차지하게 했으며, 성의 구분 없이 자원적 헌신을 가능하게 한 것입니다.

특별한 서원: 하나님과 맺은 거룩한 약속입니다. 즉 자신을 구별하기로 하나님과 약속한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나실인의 약속’입니다. 나실인은 구별하여 하나님께 봉헌 된 사람을 말합니다. 세속적인 욕망으로부터 분리된 성별한 영혼입니다. 따라서 나실인은 일정 기간 또는 평생 동안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구별하여 하나님께 헌신, 봉사하기로 서원한 이스라엘의 남자나 여자를 가리킵니다. 이렇게 자원하는 경우 외에도 하나님께 직접 지명하여 부르신 경우와 부모에 의한 경우가 있는데, 삼손과 사무엘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삿 13:5,7; 삼상 1:11; 눅1:15)

3: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며~

여기에서 ‘멀리하며’라는 말은 철두철미하게 자신을 분리시키라는 뜻입니다. 포도주는 포도즙과 누룩을 섞거나, 포도즙에서 자연발효가 일어나서 술이 되는 것이고, ‘독주’는 포도주 외에 모든 술로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레 10:9; 눅 1:15). 애굽 인들이 즐겨 마셨다는 맥주도 독주입니다. 나실인은 이 모든 술의 탐닉에서 자신을 구분하라는 강한 명령입니다.

술은 인간의 육체적 감각을 자극시키고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것으로 향락과 무절제의 대명사입니다(삼상 25:18; 잠 31:5; 호 3:1). 이 금지의 목적은 멸망당한 아론의 아들들에게서 보듯이 성화(聖化)를 손상시키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술을 멀리하지 못할 때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는 육체적 소욕에 더욱 얽매이게 되며, 하나님을 자신의 유일한 기쁨으로 삼을 수 없게 됩니다.

‘포도주의 초나 독주의 초’: 초는 발효된 것 혹은 신맛이 나는 것입니다. 포도주의 초는 히브리 가정에서 빵을 먹을 때 양념용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롯 2:14). 심지어 포도와 관련된 모든 것은 먹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생포도, 건포도, 포도즙과 같은 것은 몸에 유익함에도 불구하고 먹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즉 철저한 분리, 그 가능성마저도 완전히 제거해 버리라는 뜻입니다.

포도즙(야인)은 즙 틀에서 포도를 짓이겨 만든 것으로 대부분 물로 희석합니다(욥 14:11). 건포도는 히브리인들의 간식으로(삼상 25:18) 흔히 부유층이 먹었습니다. 또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먹던 식품으로 향락을 상징하기도 합니다(호 3:1).

이렇게 포도와 관련 된 모든 것들은 하나님 앞에 서원한 기간 동안에는 철저하게 분리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정해진 날에 지나면 평범한 백성으로 다시 돌아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은 무모한 금욕주의자들로 만드시려고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약속을 성실히 준행할 수 있는 신실한 인간, 오직 하나님만을 위해 절제할 수 있는 의지를 소유한 사람을 요구하셨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5: 삭도를 도무지 그 머리에 대지 말 것이라

머리는 그 사람을 지배하는 어떤 절대적 권리를 상징합니다(고전 11:3-10). 그리고 삭도는 면도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들은 머리를 짧게 깎은 그리스 사람이나 면도질한 애굽인들과는 달리, 머리가 남성의 남자다운 힘을 나타내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머리가 자라면 힘도 자라고 머리가 쇠해짐에 따라 그 힘도 쇠약해 진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나실인의 자르지 않은 머리 다발은 힘과 생명의 완전함을 상징하는 수사자의 갈기와 같은 것으로 보았습니다.(삼하 14:25, 26; 왕하 2:23) 일반 백성들은 머리카락과 수염을 단정하게 잘랐습니다(레 21:5).

 

6: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 것

시체는 죄악의 치명적 결과로 생겨난 것입니다(창 3:19; 롬 6:23). 따라서 시체 접촉은 의식상 죄악과 부패의 접촉으로 간주됩니다. 그래서 당연히 나실인은 멀리하여야 합니다. 부모가 죽은 때에도 동일합니다. 이것은 제사장과 동일합니다(레 21:11, 12). 제사장이나 나실인은 하나님께 구별된 자이기 때문이며, 그들의 최우선 순위는 하나님입니다. 따라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 위해 가장 가까운 혈육의 죽음에 직면했을지라도 죄와 부패에 오염된 시체에 근접할 수 없었습니다. 이 조항은 인륜보다 천륜을 먼저 생각하라는 것이지 인륜을 완전히 무시하라는 명령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마 10:36-39).

‘하나님께 드리는 표가 머리에’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리는 외적인 표가 긴 머리인 까닭입니다. 그래서 그의 머리는 대제사장의 관이나 제사장의 머리에 비견될 수 있었습니다.

 

8: 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

나실인들은 이 기간 동안 하나님 이외의 어느 누구, 다른 무엇을 위해서도 활동할 수 없었으며, 그 구별 기간이 최소한 30일 이상이었다고 합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속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는 마음에 따라 세속의 기쁨을 멀리하고, 자신의 유일한 주인인 하나님이심을 인식하며, 죄를 청산하고 단절해아만 합니다.

 

9: 누가 홀연히 그 곁에서 죽어서 스스로 구별한 자의 머리를 더럽히거든~

예상치 못한 갑작스러운 죽음이 발생했는데, 공교롭게도 나실인에게 접촉하게 되었을 경우가 발생하였을 경우입니다. 또 만약에 어떤 사람이 사고를 당하여서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있으므로 그 해결 방안을 마련해 두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 행위의 외적 결과보다 내면적 동기와 의지를 더욱 중요하게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시체에 접촉하였을 때에는 7일간 부정합니다. 나실인이라도 머리카락이 부정하게 되었을 경우에는 완전히 밀어야만 합니다. 죄 있는 그대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8일에 회막으로 와서 비둘기 두 마리를 제물로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한 마리는 속죄 제물로 시체로 인하여 얻은 죄를 속하는 것이며, 도 한 마리는 번제물로 앞으로의 헌신과 충성을 소원한 표로 드리는 것입니다.

 

12: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릴 날을 새로 정하고~

시체에 오염되었을 때에는 지금까지 헌신해 왔던 모든 기간을 전혀 무시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나실인으로서의 헌신에 대한 기간을 새로 정하고 서원을 다시 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죄악이 가져다주는 폐해가 얼마나 큰가를 깨닫게 해 주고, 더불어 범죄한 영혼일지라도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 새롭게 시작할 수만 있으면 하나님과의 교제 회복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13-21 나실인 서원 기간의 종료 절차: 서원 기간이 끝난 나실인이 지정된 의식 절차를 통해 그 서원과 의무 조항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습니다.

 

13: 구별한 날이 차면~

일정 기간의 나실인 서원이 만료된 자에게 국한된 것으로 평생 나실인에게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회막 즉 하나님께 나아가서 제물을 드리는데 번제물로 일 년 된 수양 하나와 속죄 제물로 일 년 된 어린 암양 하나와 화목 제물로 흠 없는 수양 하나, 그리고 무교병 한 광주리와 고운 가루에 기름 섞은 과자들과 기름 바른 무교 전병들과 그 소제물과 전제물을 드려야 합니다.

번제물은 나실인의 정한 기한이 지나 자유로워졌지만 계속적 충성과 헌신을 다짐하는 증표로 수양 한 마리를 드렸습니다. 속죄 제물은 자신이 본질적으로 죄인임을 용서해 줄 것을 소원하는 것이며, 이 속죄제는 우리로 하여금 나실인이라도 죄를 짓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화목 제물은 정한 날 동안 보호와 인도하심에 감사하며 지속적인 하나님과의 관계를 기대하는 예물입니다. 소제물은 헌신할 수 있게 해 주신 것을 감사하는 예물이며, 전제물은 독립적 제물이 아니라 다른 제물에 곁들어 지는 부속 제물입니다.

이 네 가지 제사 중에서 속죄제를 제일 먼저 드립니다. 이는 하나님과 화목 및 헌신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죄를 청산해야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고 그래야 헌신도 할 수 있습니다.

 

18: 그 머리털을 밀고~

이는 자신의 최고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거나 그 분과의 관계를 아예 청산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실인의 특별법에 의해 제한 되었던 생활을 마감하고 이제 일반 선민으로 환원한다는 공식적 표시입니다. 놋제단의 불에 헌신자의 머리카락을 태우는 것은, 지금까지 자신의 헌신을 기쁘게 받아주시고 그 아름다운 관계를 지속시켜 주신 은혜에 전적으로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19: 그 머리털을 민 후에 제사장이 삶은 수양의 어깨와 광주리 가운데 무교병 하나와~

서원 종결을 위한 마지막 제사로서, 화목 제물과 소제물에 곁들여, 떨며 흔들어 드리는 요제가 드려야 합니다. 이것은 제사장 몫으로 분류된 가슴과 넓적다리와 함께 제사장의 음식이 되었습니다. 화목 제물이 제사장에게 돌려진 것은 제사장을 통하여 그 나실인이 하나님과 나누었던 친교의 복을 지속하는 것이며, 성도들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시며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영속적 친교를 이를 수 있는 복된 사실을 예표한 것입니다.

 

21: 이 외에도 힘이 미치는 대로

나실인 서원의 만료에 따른 기본적인 제물 외에도 그가 자원하는 심정이면 더 많은 헌물을 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에 기쁨이 있는 상태로 드리는 예물을 기뻐하시며, 또 바치고는 싶지만 경제적 빈곤으로 인해 바칠 수 없는 영혼의 안타까움도 익히 이해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22-27절은 제사장의 축도권입니다. 이것은 제사장들의 권위를 인정하시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절대 권위와 의지가 모든 사람들에게 두루 미치도록 하는 도구로 사용한 것입니다.

 

2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축도에 관한 내용이면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말씀해야 할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모세와 아론 간의 고유한 직임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아론이 대제사장의 역할을 수행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모세를 통하여 받아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24-26: 아론과 그 아들들은 백성들에게 축복할 때에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복을 주시는 주체가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들에게 온갖 좋은 것들을 허락하십니다. 단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적이고 현실적이며, 또 영적이며 신령한 것들을 포함하는 모든 복입니다. 또한 복을 주시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좋은 것을 뺏으려하는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시고 보호해 주실 것임을 선한하고 있습니다.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얼굴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품성과 의지를 상징합니다. 만약 그 얼굴이 외면하거나 숨겨지면 매우 고통스럽고 절망적인 상태입니다(신 31:17, 18; 욥 13:24), 그 얼굴이 적대감 없이 비춰진다는 것은 곧 생명과 구원과 복의 상태를 의미합니다(시 27:1; 44:3). 따라서 모든 어둠과 절망을 걷고, 생명력 넘치는 은혜와 회복의 기쁨을 허락하신다는 뜻입니다.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하나님의 얼굴이 비춰질 때 필연적으로 그 영혼들에게 주어지는 선한 영향력입니다. 은혜(하난)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상체를 구부리는 것을 표현한 것인데, 낮고 천한 인간을 향해 내미시는 뜨거운 사랑의 손길, 또는 한량없는 측은지심 즉 긍휼을 의미합니다. 이 은혜야말로 인간 생존의 유일한 열쇠입니다.

‘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비취는 것보다 훨씬 특별하고 적극적인 의미입니다.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 평강은 온전, 완전, 평안, 우정, 건강, 번영 그리고 원수 되었던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평화까지 포함되는 매우 깊은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전달하시고자 하는 복의 요체이며 완성입니다.

 

27: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이름은 단순한 호칭 정도가 아니라 그 존재의 품격과 의지와 명예 등이 포함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내 이름’이라고 하심은 당신의 절대적 권위로 축복하라는 뜻이며, 그 축복은 바로 하나님 자신의 명예와 품격을 걸고 한 것이기에 반드시 응답하리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 것은 당신께서 반드시 이루어주실 것이라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형식적으로는 제사장이 축복의 메시지를 선포하지만, 내용상으로는 하나님께서 복의 근원이여 베푸시는 분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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