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이 선택한 길 창세기 13:1-13
창세기 11:27-32을 보면 믿음의 조상이요 선민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와 형제와 조카들의 족보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후손(창 3:15), 곧 메시아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인류의 구속과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위해 먼저 인류 중에서 셈의 후예들을 구분하셨고, 이어 셈의 후예들 중 데라의 가정을 다시 구별하시고, 마침내 데라의 가정 중에서 아브람을 선택하셨습니다. 인간들은 실패와 반역과 타락의 역사를 거듭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크신 긍휼과 은총으로 구속 사역을 성취하기 위해서 착실하게 준비를 하시며 계획대로 이끌어 오셨던 것입니다.
데라는 갈대아 우르에서 살았습니다. 그곳은 티그리스와 유브라데 강 사이의 남쪽에 위치한 비옥한 지역입니다. 상업, 천문학, 점성술이 발달한 곳입니다. 이곳은 뛰어난 고대 문명과 아울러 우상숭배가 성행하였습니다. 데라는 세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브람과 하란과 나홀입니다. 하란은 갈대아 우르에서 먼저 죽었으며, 하나님의 부르심이 아브람에게 임하였습니다. 성경을 보면 데라가 가족들을 거느리고 갈대아 우르를 떠난 것처럼 기록되어 있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아브람의 주도하에 모든 가족이 함께 가나안을 향하여 출발하였습니다. 데라는 우상숭배자였습니다. 모든 가족들이 다 그 영향 속에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 가정을 선택하시고 아브람은 가족들을 설득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갈대아 우르를 떠나도록 하였고 중간 기착지인 ‘하란’에서 205세에 데라는 죽고 말았습니다.
하란은 바벨론과 지중해, 팔레스타인과 애굽으로 연결되는 교통의 요지이며 상업의 중심지입니다. 이곳은 나중에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태어나게 되며, 야곱이 형 에서로부터 도망하여 20년간이나 종살이를 하던 역사적인 곳입니다.
당시에 가나안 땅은 갈대아 우르에서는 매우 생소한 곳이었습니다. 세상적으로 볼 때 이런 풍요한 곳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황량한 가나안 땅으로 향한 것은 하나님의 놀라우신 계획과 섭리가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내가 네게 지시할 땅”(창 12:1)으로 가라고 했지, 정확하게 구체적인 장소나 방향도 제시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는 “갈 바도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히 11:8)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모든 인생을 맡긴 채 오직 당신의 인도하심을 좇아 한 발자국 또 한 발자국 나아가는 순종의 사람들을 통하여 새 역사를 창조하셨고 또 믿음의 계보를 형성해 가는 줄로 믿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실 때에 무조건 순종하였습니다. 그리고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는 그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가나안 땅에 이르기까지는 나그네의 삶이었습니다. 고대에서 나그네는 언제 원주민에게 죽임을 당할지 모르는 매우 위험하고 고달픈 처지였습니다. 이런 모든 악조건을 견디며 가나안에 도착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에서의 삶도 평탄치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는 정반대로 극심한 가뭄이 들어서 먹을 것이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할 수 없이 애굽으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지만 아브람은 애굽으로 내려갔고 그곳에서 애굽 왕에게 아내를 동생이라고 속여 ‘사래’를 빼앗길 위험을 맞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바로로부터 많은 가축을 받고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환경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또 자신의 인간적인 지혜를 더 신뢰하는 결과였던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반드시 수치와 부끄러움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제 아브람은 다시 벧엘과 아이 사이로 돌아와서 장막을 치고 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브람과 롯의 목자들 사이에 다툼이 벌어졌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가축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거하고 있는 땅에서 기르기가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서로 좋은 목초지를 차지하려고 하니 당연히 싸움이 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유목민에게 있어서 목초지는 재산을 보존하고 증식시키는 결정적인 원인이 됩니다. 그래서 이 목초지 확보를 위해서 목자들 간에 치열한 쟁투가 가끔 발생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미디안 광야로 도망했을 때에 그곳에서 이드로의 딸 들이 양떼를 몰고 물을 마시게 하려고 할 때에 늦게 온 목동들이 방해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처럼 목초지와 물은 목축에는 절대적인 요소인 것입니다. 물질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기는 하지만 때때로 물질은 분쟁을 일으키고 인간관계를 파괴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까지, 그리고 하란에서 가나안까지,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애굽에서 다시 가나안에 이르기까지의 험난한 유랑 속에서 아브람과 롯 사이에는 아무런 다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애굽에서부터 급속하게 불어난 재산으로 인하여 부유한 생활을 영위하게 된 시점에서 이들 사이에는 분쟁이 발생한 것입니다. 즉 가난과 고생보다는 오히려 부요와 평안함이 이들 둘 사이를 갈라놓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결단을 하고 조카인 롯과 헤어지기로 하였습니다. 먼저 롯에게 우선권을 주었습니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롯에게 가고 싶은 곳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네가 원하는 곳, 네가 좋아하는 곳이면 나는 그곳과는 반대로 가겠다는 제안을 하였습니다. 이런 제안을 받은 롯은 마음속으로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롯은 눈을 들어 사방을 바라보았습니다. 어느 곳이 목축을 하기에 가장 좋은 곳일까 하고 세밀하게 관찰을 했을 것입니다. 요단 들을 바라보았더니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고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그곳이 마치 ‘여호와의 동산’과 같이 보이고 애굽 땅처럼 보였습니다. 당연히 롯은 요단 온 들을 택하여 그곳으로 옮겨 갔습니다.
롯이 요단 들을 택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당연히 목축 때문이지요. 그 마음은 자신이 더 부유해지려는 유혹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유혹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도 파괴하기 마련입니다. 롯은 세상적인 판단으로 보호자였던 아브람이 우선권을 준 것에 대하여 한 마디의 감사나 인사도 없이 요단 들을 택하고 숙부의 곁을 떠나버렸습니다. 육신의 욕심에 이끌려 최소한의 인간적인 신의마저도 저버린 롯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요?
그는 요단들로 옮겨 온 후에 양떼를 먹이다 보니 ‘소돔’이라는 성에 가까이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소돔 사람들은 매우 악하며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 죄인이지만, 당시 소돔 사람들의 죄는 특별히 사악하였습니다. 아마도 물질의 부요함이 이들로 하여금 더욱 타락하고 사악하도록 재촉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악인의 손에 쥐어진 재물은 난폭한 자의 손에 들려있는 흉기와 다른 바가 없는 것입니다.
롯은 이방 세속 문화에 발 들여 놓게 되고 점점 더 깊숙한 죄의 세계로 빠져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보이는 현실의 풍요한 화려함에 눈이 먼 자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세상 문화의 포로가 되어 마치 부드럽게 집어 삼키는 수렁과도 같이 죄의 깊은 곳으로 빠져들고 마는 것입니다. 롯의 선택은 무엇이 잘못 되었던 것일까요?
1. 욕심의 선택이었습니다.
사람은 때때로 이기적인 모습을 보여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야곱입니다. 야곱은 아버지를 속이고 형을 속이고 장자권을 움켜쥐었고, 아버지로부터 장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로 인하여 밧단아람(하란)으로 도망가서 20년간이나 종살이를 하기는 했지만, 그곳에서도 또한 야곱은 악착같은 성격으로 매우 불리한 조건으로 종살이를 하도록 만든 외삼촌 라반으로부터 많은 가축을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욕심 많은 목사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내 교회를 채우겠다는 욕심입니다. 다른 교회에 출석하는 성도라도 내 교회로 옮기도록 하는 것입니다. 아파트 신규 입주하는 곳에 가면 대형교회에서는 천막을 치고 이삿짐을 날라주고 음료수를 대접하면서 이사 오는 성도를 붙잡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어떤 교회에서는 떠나려는 성도에게 ‘만일 우리 교회를 떠나면 큰 재앙이 임할 수 있다.’고 협박 같은 것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불신자를 전도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교인 쟁탈전에 불과한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사람의 앞날은 한 순간의 선택에 달려있을 수도 있습니다. 소위 군대에서는 ‘줄을 잘서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공무원 사회나 일반 회사에서도 누가 실세인지를 잘 살펴보고 그 뒤에 줄을 서면 출세하고, 출세는 못하더라도 자리를 보전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선택의 연속인 우리의 삶에서 잘된 선택을 하면 성공적인 삶을 살게 되고, 잘못된 선택은 인생의 파멸로 이끕니다. 이 선택은 대부분 돌발적인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평소 생각이나 인생관의 반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평상시에 믿음이 좋은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따른 선택을 하게 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분쟁을 일으킬 결정이나 실패할 선택을 하기가 쉬운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분쟁을 없애기 위해서 확보할 수 있는 이익을 포기했습니다. 즉 연장자로서, 또 롯의 보호자로서 먼저 좋은 곳을 선택할 수 있었지만, 롯에게 양보를 했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조카인 롯과 다투지 않기 위함입니다.
반대로 롯은 아브라함의 양보와는 달리 극히 이기적인 선택을 하였습니다. 롯은 사방을 둘러보면 심사숙고한 끝에 자신의 이익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는 결정을 한 것입니다. 어쩌면 롯은 일찍 부모를 여의고 할아버지와 삼촌과 함께 살아오면서 남들이 느끼지 못했던 외로움도 있을 것이며, 부모 없는 설움을 만회하기 위하여 물질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롯의 마음은 이기적이었습니다. 선택하라는 삼촌 아브람의 말에 욕심이 솟구쳐 오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욕심에 이끌려 요단 들을 선택하고 떠났던 것입니다.
2. 안목의 정욕에 따른 선택입니다.
안목의 정욕은 매우 위험합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눈에 좋아 보이는 것을 갖고 싶어 합니다. 물건을 살 때에도 사람들은 우선 첫 눈에 보기에 좋아 보이는 것을 고르게 됩니다. 만드는 사람도 속은 어떻게 되었든지 일단 관심을 끌 수 있도록 꾸며 놓습니다. 아이들도 먹을 것 사러 가면 예쁜 색깔로 된 과자가 먼저 눈에 띄고 고르게 됩니다. 아기들도 장난감을 울긋불긋한 것을 고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것을 먹으면 배탈이 나고 부작용으로 종기도 생기고, 중금속 오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법으로 학교 옆에 있는 문구점에서는 이런 불량식품을 팔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옷도 예쁜 옷이 눈에 들어옵니다. 상품마다 멋있고 눈에 잘 띄는 색깔로 포장을 해 놓고 진열대에 놓습니다. 사람도 잘 생긴 사람이 눈에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눈을 현혹시키는 것들에 많은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롯은 자기의 눈에 보기에 기쁘게 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기쁘고 눈을 즐겁게 하는 것을 선택하게 되면 불량식품을 먹을 때처럼 부작용이 반드시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와는 뱀의 속삭임에 선악과를 바라볼 때에 ‘보암직’하였다고 말합니다. 보암직하다는 것은 곧 안목의 정욕입니다. 안목의 정욕에 넘어가서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인류 최초의 범죄자가 되었고, 우리는 모두 죄인이 되고 마는 부작용이 일어난 것입니다.
3. 선택의 결과
롯이 요단들에서 점점 소돔 성에 가까이 가서 거하게 되고, 소돔 사람들과 왕래를 하면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북쪽에 있는 4왕의 연합군이 조공을 거절하는 요단 근처의 5왕들을 공격하기 시작하였고 싯딤 골짜기에서 전쟁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비롯한 5왕들은 패하고 말았습니다. 이때에 많은 사람들이 사로잡혀가고 수많은 재물을 약탈당하였습니다. 당연히 롯과 그의 재물도 사로잡히고 약탈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눈의 보기에는 좋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택을 한 아브라함은 북쪽의 4왕을 쫓아가서 그들을 파하고 사로잡힌 모든 거민들과 조카 롯과 또한 약탈당한 모든 재물도 다시 되찾아 왔습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아브람에게 더 좋은 일은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서 영접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살렘 왕 멜기세덱은 평강의 왕이요 영원한 대제사장입니다. 인간 대제사장 아론의 반차를 초월한 영원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분입니다.
아브람은 전리품의 십일조를 메기세덱에게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거룩한 신성을 인정하며 행한 멜기세덱의 축복에 대한 감사의 표시와 아울러 그의 거룩한 제사장 직분을 인정한다는 의미를 같습니다. 십일조는 세상 만물을 창조,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데서 비롯되어야 하며 또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의 표시로부터 비롯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아브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택을 하였습니다.
롯은 포로로 잡히는 비참한 경험을 하였으면서도 끝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소돔 성에 거하다가, 아브람의 중보기도와 천사의 인도로 불과 유황불로 소돔성과 고모라성이 심판 받을 때에 간신히 탈출하였고, 그의 후손은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의 대적자가 되어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선택과 판단을 할 때에 내 눈으로 제일 먼저 하게 되지만, 즉시 결정하기보다는 내 영혼과 신앙으로 다시 한 번 살핀 후에 선택과 판단을 해야 합니다. 내 눈이 즐겁고 기쁜 것, 내 마음이 기쁘고 즐거운 것보다는 하나님께서 좌정하고 계시는 우리의 심령으로 하여금 판단하고 선택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눈으로 판단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택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택 그것은 곧 나의 장래를 보장 받는 것입니다. 그 선택은 누구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나를 위한 선택이 될 것입니다. 이제 지난 한 해는 잊고, 새 해에는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선택을 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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