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신명기 제26장 강해 -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chukang 2010. 10. 1. 22:00

 

첨부파일 신명기 제26장 강해 -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hwp

 

신명기 제26장 강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4:44-26:19까지 진행되어 온 모세의 제2차 고별 설교의 결론 부분입니다. 1-11절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정착한 후에 농사하여 첫 수확을 얻었을 때에 이를 제물로 삼아 하나님께 감사 제사를 드릴 것과 그 때 드릴 신앙 고백을 규정하고 있으며, 이어서 12-15절에서는 소위 제2십일조(레 27:30-34)를 제3년에는 가난한 이웃을 구제하도록 한 것과 그 때 드릴 신앙고백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내용들은 처음 언급되는 것이 아니지만 고별 설교의 결론적 주제라는 점에서 주목해야 합니다. 즉 전반부는 하나님께 대한 성도의 의무와 사랑, 후반부는 이웃에 대한 성도의 의무와 사랑에 대한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결국 율법의 근본정신은 사랑이며, 그 사랑은 하나님과 인간을 동시에 포함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사 얻게 하시는 땅에 네가 들어가서 거기 거할 때에

모세는 기업으로 주신 가나안 땅에서의 첫 소산물과(1-11절), 제3년마다 드리는 십일조에 관한 규례(12-15)를 언급하고, 그 규례와 법도를 지키는 자세와 그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선포하고 있습니다.(16-19절)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살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또한 가나안에서 살 때에 성민으로서의 바른 삶을 살도록 교훈하고 있습니다.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그 토지 모든 소산의 맏물을 거둔 후에 그것을 취하여 광주리에 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으로 그것을 가지고 가서

가나안에서의 사회적 규례들을 가르쳐 준 후에 마지막으로 모든 소산의 첫 번째 것을 여호와께 드릴 것을 가르치고 있는데, 이는 여호와께 첫 소산을 성별하여 드리는 마음이 모든 규례의 근본이 되기 때문이며(미 7:1), 여호와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삶을 통해서만 가정적, 사회적 규례가 온전히 준수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맏물(레쉬트:ראשית)은 ‘처음, 시작’을 의미하는 것으로 ‘첫 열매’를 가리킴과 동시에 제일 좋은 것을 뜻합니다. 이 맏물을 여호와의 성막으로 가져가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3: 당시 제사장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늘날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고하나이다. 내 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리라고 우리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렀나이다 할 것이요.

이는 여호와의 인도하심에 대한 감사의 신앙고백이라고 하겠습니다.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신다는 언약의 성취에 대한 감사고백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의 첫 열매를 거두었다는 것은 그 땅을 소유했다는 분명한 증거이며, 첫 열매를 바침으로써 출애굽의 해방과 광야 생활을 마치게 해 주시고 기업을 주신 하나님을 기뻐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은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솔로몬의 성전 봉헌사(奉獻詞)에도 반영이 되어 있습니다(왕상 8:56-61).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라는 표현에서 나타나는 것은, ‘내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못하고 ‘당신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은 구약에서는 오직 제사장을 중보자로 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마 6:9)라고 부르며 기도하게 하셨고, 사도 바울은 이제 우리가 ’아바 아버지‘(롬 8:15)라고 부르짖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죄악의 담을 허물어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4,5: 제사장은 네 손에서 그 광주리를 취하여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단 앞에 놓을 것이며, 너는 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아뢰기를 내 조상은 유리하는 아람 사람으로서 소수의 사람을 거느리고 애굽에 내려가서 거기 우거하여 필경은 거기서 크고 강하고 번성한 민족이 되었더니

제사장은 첫 소산물의 광주리를 받아 봉헌하기 위해 제단에 둔 후 다시 한 번 신앙고백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이스라엘의 출애굽 역사에 대한 감사의 내용입니다. 이스라엘의 조상이 ‘아람’ 사람이라고 그 근원을 밝히고 있으며, 그 중에서 야곱으로부터 12 지파가 갈라져 나온 것입니다. 아마도 야곱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있는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무려 20년이나 거주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창 29-31장). 또 아브라함도 밧단아람을 자신의 고향이라고 부르고 있으며(창 24:4), 이삭의 아내 리브가, 즉 야곱의 외가도 바로 그곳입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두 딸을 아내로 맞아들여 밧단아람에서 명실상부한 가문을 형성하였기 때문에 이스라엘 조상이 ‘아람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유리하는’ 고통을 겪었다고 하였습니다. 실제로 아브라함부터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하기까지 그들은 고향을 떠나 긴 여정을 거쳤고, 극심한 가뭄으로 고통을 받았으며, 애굽에서의 삶은 학대받는 나그네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70명이(창 46:27), 출애굽 당시에는 군대의 숫자만 60만명이나 되는 번성한 민족이 되어서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6,7: 애굽 사람이 우리를 학대하며 우리를 괴롭게 하며 우리에게 중역을 시키므로 우리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우리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하감하시고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당한 갖가지 고통을 당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물질적인 가난으로부터 오는 정신적인 아픔과 육체적인 중역(重役)으로 인한 노고를 함께 의미합니다. 그리고 권세를 가진 애굽의 지배자들로부터 받은 것을 ‘압제’라고 하였습니다. 인권 유린과 그로 인한 고통 및 억압을 말합니다. 이같은 뼈저린 과거를 상기시키는 것은 가나안 정착 뒤에 오는 해방과 자유의 기쁨이 곧 하나님께로부터 온 은혜임을 깊이 인식하고 감사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 생활 전반에 걸쳐 겪었던 아픔들을 간결하게 표현한 ‘고통’ ‘신고’ ‘압제’ 이 세 단어는 온 인류가 지상 생활에서 겪는 보편적인 고통들을 말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이러한 현실적인 고통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입니다.

 

8,9: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파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이곳 으로 인도하사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나이다.

‘손’은 힘, 권세, 능력 등을 상징합니다. 이것은 특히 애굽의 군대를 홍해 바다에 수장시킨 하나님의 기사와 관련된 표현으로 보입니다(출 15:1-18). ‘큰 위엄’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두려워하게 하거나 놀라게 하는 것으로 적에게는 두려움과 공포가 됩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부터 광야를 거쳐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셨다는 고백은, 첫 소산물을 드리는 예배와 함께 이스라엘과 여호와 하나님 사이에 있는 언약적 관계를 더욱 확고하게 다지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 언약의 힘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게 하는 힘의 원동력이 됩니다. 우리 성도들도 보다 힘 있는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죄를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역사적 구속 사건을 날마다 상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10: 여호와여 이제 내가 주께서 내게 주신 토지 소산의 맏물을 가져왔나이다 하고 너는 그것을 네 하 나님 여호와 앞에 두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경배 할 것이며

신앙고백의 형식의 기도를 마친 후에 여호와의 앞, 곧 첫 소산물이 든 광주리가 놓여져 있는 제단을 향하여 절함으로써 제사는 마치게 됩니다. 여기서 ‘경배하다’는 ‘샤하(שחה)’의 엎드는 것, 몸을 굽히는 것, 복종하는 것으로 헌신과 복종을 다짐하는 경외의 표시로 땅에 엎드려 절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1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네 집에 주신 모든 복을 인하여 너는 레위인과 너의 중에 워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할지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복’은 가나안 땅에서 허락하신 토지의 모든 소산물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모든 은혜를 포함합니다. ‘레위인, 객’과 함께 즐거워하는 것은 십일조(14:23), 가축의 첫 새끼(15:20), 소산물의 맏물을 드릴 때에는 제사장의 몫(18:4; 민 18:2)을 제외한 후 따로 더 준비하여 잔치를 벌이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공동체 결속을 위한 잔치로 소외 받는 자들이 없도록 하고 하나님의 은총을 모두 함께 나누고 기뻐해야 함을 가르칩니다. 가진 자나 못가진 자나 다 같이 하나님 앞에서는 한 형제요 자매로서 즐거워하며 주신 복을 함께 기뻐할 수 있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12: 제 삼 년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다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서 네 성문 안에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십일조에는 소산의 십일조와 그리고 그 나머지 십의 구에서 또 십일조를 내는 제1, 제2의 십일조가 있습니다. 제 삼년의 십일조라고 하는 것은 제2의 십일조의 용처(用處)에 대한 설명으로 매 삼 년마다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들의 몫으로 돌렸기 때문에 일명 ‘구제용 십일조’라고 불립니다(14:28,29). 이는 가난한 자가 항상 땅에 존재하므로 궁핍한 자에게 손을 펴서 구제하라는 말씀을(15:10) 제도적으로 의무화 시킨 것으로 매년 마다 드리는 십일조에 비하여 소홀해질 염려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규례는 계속적으로 반복하여 강조되는 것입니다. 레위인까지 포함되는 것은 그들이 특별히 받은 기업이 없이 이스라엘의 십일조에 의존해서 생활하기 때문입니다(14:27). 즉 이스라엘에게는 자신의 성 안에 거주하고 있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를 돌아볼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애굽에서의 노예 생활을 경험한 이스라엘이 당연히 행해야 할 의무입니다. 공동체적인 의식을 강조하는 이웃 사랑입니다.

 

13: 그리할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고하기를 내가 성물을 내 집에서 내어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기를 주께서 내게 명하신 명령대로 하였사오니 내가 주의 명령을 범치도 아니하였고 잊지도 아니하였나이다.

이는 자신의 공로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마땅히 수행해야 하는 의무를 실행하였음을 보고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켰다는 이 보고는 십일조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라는 명령에 대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며, 명령을 지키지 않는 것은 곧 징계를 받아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하신 명령을 수행하지 않을 때에는 반드시 징계가 있을 것임을 알고 경외함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명망의 원인 중에 이러한 의무를 수행하지 못한 것도 상당히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사 10:2; 렘 7;6; 슥 7:10; 말 3:5).

 

14: 내가 애곡하는 날에 이 성물을 먹지 아니하였고 부정한 몸으로 이를 떼어 두지 아니하였고 죽은 자를 위하여 이를 쓰지 아니하였고 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대 로 다 행하였사오니.

애곡하는 날은 초상 기간을 가리킵니다. 대략 7일 정도 소요됩니다. 이 기간에는 죽은 자의 시신을 만짐으로 인하여 종교적으로 부정하게 됩니다(레 21:1-3). 그러므로 부정한 몸으로 성물을 먹는 경우에 그는 징벌을 받아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레 7:20) 그렇기 때문에 여호와께 드리는 성물을 따로 떼어 구별해 둘 때에 부정한 몸으로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죽은 자를 위하여 이를 쓰지 아니하였다는 말은 7일 간의 초상 기간 동안 조문객을 위해 많은 음식이 소요되는데, 그 음식을 성물 중에서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엄격한 관습 때문에 아무리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해도 반드시 장례 의식을 치러야 했기 때문에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떼어 놓은 십일조를 사용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지 않았다는 뜻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드려야 한다는 것이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구제용 십일조까지도 빠뜨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섬기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드려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15: 원컨대 주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서 하감하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시며 우리 열조에 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신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복을 내리소서 할지니라.

‘하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명을 준수하고 있는지를 지켜보시는 것을 뜻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복을 주십사 요청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여호와의 계명을 온전히 수행한 뒤에 주어지는 권리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언약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계명이 결국 여호와 자신의 직접적인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시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16: 오늘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규례와 법도를 행하라고 네게 명하시나니 그런즉 너는 마음을 다 하고 성품을 다하여 지켜 행하라.

이제 두 번째 설교의 결론 부분입니다. ‘오늘날’이라는 단어는 당시 모세가 설교하던 현장감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모세의 설교는 당시 듣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모든 성도들에게도 해당이 된다는 점입니다. 여호와께 순종하는 자세는 마음을 다해야 합니다. 성품(네페쉬:נפש)은 곧 생명입니다. 삶의 일부분으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다하기까지 계명을 지켜 행하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역시 동일하게 하나님을 섬길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마 22:37; 막 12:30).

 

17: 네가 오늘날 여호와를 네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또 그 도를 행하고 그 규례와 명령과 법도를 지키 며 그 소리를 들으리라 확언하였고

이는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고 너희는 나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명백히 말하도록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심을 선포하는 대신에 그의 백성들로 하여금 언약에 대한 순종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을 믿고 그 규례와 명령을 행하는 것은 곧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서 마땅한 것입니다(출 19:5). ‘그 소리를 들으리라.’ 실제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앞에서 언약 체결을 위하여 취하는 태도를 묘사하고 있습니다(출 20:19).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두 형식으로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그의 법에 따라 순종하며 행할 것을 다짐하는 모습입니다.

 

18: 여호와께서도 네게 말씀하신대로 오늘날 너를 자기의 보배로운 백성으로 인정하시고 또 그 모든 명령을 지키게 하리라 확언하셨은 즉

‘인정하다(아마르:אמר)’는 말하다, 선언하다는 뜻이며, ‘보배로운 백성(세굴라:סגלה)’ 곧 ‘보화같이 특별히 숨겨둔 소유’를 의미합니다. 즉, 거룩한 백성으로 특별히 선택한 이스라엘을 자신의 소유로 선언하신 대로(출 19:5,6) 하나님께서 이제 그 사실을 증명하시기 위해 그 백성들에게 명령을 주셨던 것입니다. ‘지키게 하리라 확언하셨은즉’ 여호와 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기의 특별한 보배로운 백성으로 인정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법도를 온전히 지킬 수 있게 하시겠다고 확언하셨음을 뜻합니다. 이에서 여호와와 이스라엘 간에 언약 체결식이 끝나는 것입니다.

 

19: 여호와께서 너의 칭찬과 명예와 영광으로 그 지으신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그 말씀하신 대로 너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라.

모세 설교의 핵심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든 민족들로부터 칭찬과 명예를 얻게 하실 뿐만 아니라, 그 부귀와 영화를 뛰어나게 하시고 ‘여호와의 성민’으로서 손색이 없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기를 원하심을 표현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여호와의 성민으로서 성화되는 것이며 이로써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다같이 영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명하신 모든 법도와 규례를 지킬 때에만 이같은 영광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